제 2 장

16

 

숲속에서 누기진 바람이 이따금 스쳐지나갈 때면 달콤하면서도 머리가 핑 돌게 하는 꽃향기를 취하도록 날라오군 한다. 오불고불 이어진 오솔길옆에는 빈자리를 남길세라 소나무, 이깔나무, 비자나무와 같은 바늘잎나무들과 함께 신갈나무, 황철나무, 벗나무를 비롯한 넓은잎나무들이 빼곡이 서있다. 혼성림을 이룬 공원속의 갖가지 식물들은 해빛을 찾지 못해 힘껏 키돋움을 하는것 같이 보인다. 나무의 줄기를 보아서는 나이가 어리지만 껑충해서 볼품이 없는 아카시아는 금시 넘어질듯이 자작나무에 의지하여 겨우 피운것 같은 떨기꽃을 맥없이 드리웠다.

리면상은 일행의 제일 뒤에서 걸음을 옮기고있다. 고국을 떠나 이 나라에 발을 짚은 순간 심정은 형언하기 어려웠다. 식민지청년이 음악을 배우겠다고 종주국인 일본에 왔다는 굴욕감에 거리와 집들 지어는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비웃는것만 같았다. 치욕을 삼켜야 하는 이국살이가 시작되였다는 생각이 갈마들 때면 떠나온 걸음이 후회되기도 하였다. 산설고 물설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겠는지 막막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것이 우연처럼 여겨진다. 내가 과연 귀인을 만났단 말인가. 음악학원 시험을 너무도 쉽게 치르고 입학하였다. 일본사람들속에도 좋은 사람이 있는것 같았다. 그가 바로 앞에서 걸어가고있는 가네다 산조다. 유럽에 가서 음악교육을 받고 온 가네다는 이름있는 작곡가, 지휘자로서뿐만아니라 교육자로서도 명망이 높았다. 남다른 점은 그가 인재에 대한 민족차별의식이 없다는것이였다. 가네다는 어찌 보면 해외침략에 광분하고있는 일본제국의 배타적인 사상에 도전하는 인물처럼 보였다.

《우리는 인류공동의 재부를 창조하는 사람들입니다. 음악의 세계에는 국경이 없소. 당신들은 음악의 사원에서 선률이라는 복음을 배우며 신비한 세계에 들어설것이요.》

가네다는 음악광신자였다. 그가 피아노건반을 두드리며 청음훈련을 줄 때는 수강생들모두가 신전에 앉은 기분에 잠겼다. 희고 검은 건반들이 조화로운 음향을 울리기 시작하면 얼이 나가 기도문처럼 따라 불렀다.

하루수업이 끝난 후 가네다는 리면상을 자기 방에 불러 한두시간 개별수강까지 해주는 류다른 은총을 베풀었다.

《면상군! 군은 열심히 배워야 해, 자기를 알 때까지. 그러면 반드시 성공할거네. 음악밖의 일체 잡념을 하지 말아야 해. 천재의 특질은 본질에 있어서 노력이라는걸 명심하게.》

리면상은 자기에게 차례진 행운에 도취되여 이따금 미친 사람처럼 바이올린을 켜대군 하였다. 그것은 사실상 가네다의 의식속으로 빨려 들어가는것이였지만 자신은 알수 없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

그는 이 말을 어느덧 의심할수 없는 진리처럼 여기게 되였다.

지금과 같은 들놀이를 나갈 때 일본사람들은 민족옷인 기모노를 즐겨 입지만 가네다부부는 다같이 양복차림이다. 가네다 부인곁에서 무슨 말인가 속삭이듯 나누며 걷는 후지무라 요꼬의 자태는 흰 비둘기를 방불케 하였다. 하얀 치마에 윤기가 도는 흰 공단투피스를 입었던것이다. 두 녀자는 다같이 맵씨있게 엮은 참대바구니를 들었다.

앞서서 걷던 가네다가 벗나무옆에서 멎었다.

《여기가 좋을것 같구만. 여보, 어떻소?》

등성이진 곳에 이른 그는 석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야 면상씨에게 물어야지요.》

가네다의 부인 도모미는 애교가 넘치는 눈길을 돌렸다. 그통에 요꼬와 리면상의 시선이 부딪쳤다. 처녀의 눈동자는 어떤 물음을 던지는것 같이 보였다.

두손을 옆구리에 얹은 가네다가 감상에 잠기며 이시가와 다꾸보꾸의 시를 읊었다.

《<고향산 바라보니 감개무량하고 고향산 그 어데 비길데 없이 제일이구나…> 면상군, 저 석탑은 조선사람들의 옛 조상이 만든거라고 하네.》

세월의 비바람에 이끼 낀 고깔을 쓰고 고개를 앞으로 수그린채 땅에 뿌리를 박고 선 석탑의 모양이 측은하게 안겨왔다. 누구의 손길도 가지 않은채 수백년동안은 저렇게 서있었을것이다. 남의 나라 땅에 남긴 조상의 숨결이 느껴지자 리면상은 공연한 걸음을 했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안해가 자리를 펴주자 가네다는 앉으며 손짓했다.

《앉게. 인간은 자연과 가까와질 때가 아름다운걸세.》

《전 무슨 일인지 모르고왔는데 돌아가렵니다.》

들놀이에 초청되리라고 생각 못한 리면상은 옹색한 마음을 거둘수 없었다. 자기가 들고 온것이란 보기에도 초라한 바이올린통이 전부이다. 고학을 하는 그에게 있어서 일요일은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날이다. 밤마다 도꾜화물역에 나가 짐부리는 일을 하거나 필사를 하여 학비와 생계를 유지하는 그였다. 오늘같은 날에는 낮에도 일감이 있다. 하루에 삼사십전은 벌어야 했다.

억세여보이는 턱을 든 가네다의 얼굴에는 동정을 품은 안온한 미소가 흘렀다.

《오늘 자네를 이 자리에 오라고 한것은 내 안해의 초청일세.》

《네? …》

제때에 친절한 대답을 할줄 아는것도 일본녀자들의 례절에 속하는지 모른다.

《그래요. 면상씨의 바이올린연주를 감상하는게 소원이였어요.》

마치 그 말을 옳다고나 하듯 요꼬의 속눈섭이 사르르 감겨지며 오묘한 웃음이 피여올랐다가 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음악학원에서 전도가 양양한 피아노연주가로 지목되고있는 처녀다. 가네다의 부인과는 달리 일본녀성고유의 체취보다 자유분방하고 경망스러운 성격이 자주 드러나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는 처녀인데 오늘은 별스럽게 침묵만 지키고있었다.

난감해하는 리면상을 살짝 쳐다본 도모미가 요꼬의 어깨를 건드렸다.

《요꼬, 말 좀 하렴.》

그 말에 요꼬는 대답대신 고개를 숙였다.

가네다의 훤칠한 얼굴에 벙글웃음이 떠돈다.

《어서 앉게. 요꼬는 음악만 아니라 력사에도 견문이 넓다네. 오늘 여기서 저 석탑을 보며 력사에 대한 요꼬의 강의를 들어보지 않겠나?》

가네다는 눈앞에 펼쳐진 공원숲을 가리키며 말하는데 마치도 지휘봉을 휘두르는것처럼 보였다.

《인간은 력사속에 사는 존재라고 해야 할거네. 따라서 민족이라는 집단도 그 력사와 함께 흥망성쇠라는 심포니를 연주하지. 요꼬, 전주가 울렸으니 박식을 자랑해야지. …》

스승의 청을 받은 요꼬는 음식을 차리던 손을 거두고 잠시 망설이였다. 시원스러운 코마루와 도고한 눈빛이 리면상을 향해 돌려졌다.

《선생님, 정말 뜻밖입니다. 여기로 올줄도… 지금같은 청을 받을줄도 몰랐습니다. …》

요꼬는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며 리면상을 재빨리 일별했다. 가네다의 각본을 옮기기 위한 재치있는 연기였다. 그런 까닭에 긴장하기도 했던것이다.

《설사 불쾌하다 하여도 저를 탓하지 마세요. 내나름으로 이 책, 저 책을 뒤져가며 배우느라 한것이니 년대도 인물명도 그닥 정확할수는 없을거예요. 력사의 한페지를 번질뿐인걸요. 우리 일본엔 조선인들이 남겨놓고 전파해준 저러루한 문화가 적지 않답니다. 저 석탑도 백제사람들이 세웠다는 말이 있어요. …》

요꼬의 목소리는 그 어떤 비감으로 떨려나기까지 했다.

《일본땅에는 조선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았습니다. 기원후 6세기경까지 일본은 하나의 나라를 가지지 못하고 수많은 소국들로 널려서 패권다툼과 령토빼앗기를 일삼았는데 원시신앙을 믿을뿐 오늘로 말하면 변변한 국가리념도 가지지 못한 무리들의 생활에 불과했습니다. 그중에 가장 세력이 강한 소국이 아스까지방에 할거하고있었고 그 우두머리들은 대다수가 고구려와 백제의 왕족후손들이였다고 합니다. 아스까소국의 재상인 소아마자도 백제왕족이였는데 세력을 장악하고 마침내 반대파들을 내몬 다음 추고녀왕을 즉위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추고녀왕은 소아마자의 누이인 소아겸원의 딸이며 그의 아버지는 흠명왕입니다. 일본말로 추고녀왕은 스이꼬녀왕이라 부르면 통용될는지도 모릅니다. 추고녀왕의 즉위로 아스까소국은 불교를 국교로 받들게 되였으며 마침내 국가의 체모를 갖추고 일본의 력사에 등장하였습니다. 기원 815년에 편찬된 일본고대가문기록인 <신찬성씨록>에 씌여진데 의하면 법륭사를 세운 날 의식에 참가한 대신 100여명이 모두 백제의 옷차림을 하였다니 놀라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도 놀라운것은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까지 조선사람 후손들이 일본땅에서 자기의 혈통을 이어가고있고 관습을 고집하며 살아가는것입니다. … 물론 궁극에는 일본에 동화될테지만…》

조선땅 어데서나 볼수 있는 석탑을 바라보며 리면상은 남의 나라에 와서 좋은 일만 해주고 백골이 되여 묻힌 조상들이 가엾게 생각됐다. 비석에 이름을 새겨넣으며 무엇을 바랬으랴. 고향땅, 고국의 하늘아래로 가고싶었으리라. 나는 지금 어디에 와있는가. 다시는 조국땅을 밟아보지 못하는것이나 아닐가. 무거운 상념에 빠진 그는 끝없이 갈마드는 서글픈 감정을 맛보고있었다. 아, 오지 않은것만 못한 걸음이다. 모르고 사는것만 못함을 알았다. 그는 요꼬의 말이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며 자기 생각에 잠겨있었다.

《면상군, 력사란 흘러가버리는걸세.》

《그러나 인간은 력사를 만들어내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요꼬의 그 말에 가네다는 너그럽게 웃어주었다.

《우리는 그 력사에 음악을 수놓는 사람들이지.》

《음악이라는 세계도 이것 다음에 있지 않을가요?》

도모미는 풀밭우에 눈같이 하얀 천을 펴고 그우에 차려놓은 음식을 가리키며 물었다.

《하하, 지극히 옳은 말이요. 굶주린자에게 음악이 밥으로 될수는 없지. 안 그런가, 면상군?》

가네다는 시종 웃음을 거두지 않은채 안해가 부으려는 술병을 보며 《마사무네도 술이요? 위스키를 마셔야지.》 하고 손을 내흔들고나서 리면상의 의향을 눈짓으로 물었다.

대답은 요꼬가 하였다.

《일본사람들은 이상한 족속들이예요. 사나이들은 더해요. 칼부림과 싸움질이 업인데 술만은 고작 <마사무네>니 말이예요. 녀자들을 한정없는 순종으로 길들인것이 이 나라 남자들이 쌓은 업적인가 봐요.》

《요꼬, 여기 일본남아가 앉아있는데 너무 그러지 마오. 듣기가 거북하구만. 오늘같이 좋은 좌석에서야… 자, 어서들 들자구.》

즐거운 웃음이 떠도는 속에 도모미가 잔마다에 술을 부었다.

《여보, 당신이 무슨 말인가 하고싶어하는것 같은데…》

잔을 든 가네다가 안해에게 의미있는 눈길을 보내자 도모미는 고개를 살풋이 숙여보이고나서 친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면상씨의 성공을 바래요.》

《좋소, 아주 좋소. 건배!》

흡족한 얼굴로 가네다가 잔을 쳐들자 리면상은 진심으로 사의를 표시하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리면상은 자기에게 기울여주는 가네다부부의 보살핌에 목이 메여올랐다. 음악을 배우려고 부평초같이 헤매는 인생이 아닌가. 누가 나에게 재능의 싹이 있다고 소중히 여겨주었던가. 설사 피줄기는 달라도 진심으로 위해주는 이같은 사람들을 어데서 만날수 있겠는가.

《면상씨, 한곡 타세요.》

도모미의 조용한 미소가 담긴 청을 받자 리면상은 바이올린을 잡았다.

《조선곡을 연주하게. 면상군의 감정에 어울릴테니까.》

술잔을 든 가네다가 곡목을 지적하자 도모미는 손벽을 치고 실눈을 지은 요꼬가 리면상의 거동을 살피며 말했다.

《우에노공원의 숲속에서 조선음악을 연주하다! 참, 미묘한 자연과 선률의 결합이군요. 과거와 오늘, 오늘에서 래일로… 괜찮아요. 흥미있어요.》

요꼬의 말뜻은 리해하기 힘든것이여서 가네다부부는 웃기만 하고 리면상은 활을 천천히 그러면서도 힘을 주어 내리그었다. 그는 이 순간 어떻게 자기의 활이 《봉선화》를 찾았는지 의식하지 못했다. 울분과 설음으로 몸부림치는 선률이였다. 선량한 사람들사이에 심정을 하소하듯 활과 현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망국으로 한 민족이 겪는 수난을 대변한 꽃의 노래는 작곡가가 놀랄 형상으로 바뀌우고있었다. 항거의 감정은 사라지고 애절한 비탄만 연주가에 의하여 옮겨지고있었던것이다.

가네다는 벗나무에 기댄채 하늘가를 바라보고 도모미의 갸름한 얼굴엔 서글픈 안개가 흐르는데 요꼬는 풀대를 꺾어들고 잘근잘근 짓씹으며 리면상을 경멸에 가까운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바이올린선률이 흐느낌을 날리며 사라지자 청중이라고 해야 할 세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도모미가 두손을 모아서 꼭 잡으며 먼저 말했다.

《정말 훌륭해요. 연주기법도 세련되였지만 선률이 참으로 아름다와요.》

《여보, 음악이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찾아드는것이요. 학자인 당신은 교단에서 사회정치학을 어떻게 가르치오? 맹렬한 강의가 사실상 하나의 주입에 불과하다는데 대해 인정하기 괴로울거요. 그러나 노래는 저절로 배운다고 할가. … 그렇소, 노래는 강의하지 않아도 전파되는거요.》

《선생님, 전 인식과 감성이라는… 말하자면 하나는 사유이고 다른것은 정서의 전달이기에 우렬을 론할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요꼬의 도전적인 표현으로 하여 화제는 방향을 바꾸었다.

《음악을 단순한 감성의 자극으로만 보는것은 예술에 대한 비속화요. 칸트는 이르기를 감각은 조직없는 자극이요, 지각은 조직된 감각이고 개념은 조직된 지각이요, 과학은 조직된 인식이라고 했소. 음악에 개념이 없는가. 음악에는 조직된 인식이 필요없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 요꼬의 피아노연주곡들에는 감각, 지각, 개념, 인식이 음부들의 공식으로 이루어져있소. 부정하는가?》

자기를 비난하는 소리같이 들리던 요꼬의 말을 마음속으로 새긴채 앉아있던 리면상은 가네다의 말에 내심 감탄하였다.

《칸트까지 불러다 부인의 교육을 주입이라고 공격하지 말아주길 바랍니다. 일본은 정신주입으로 오늘의 제국을 세우지 않았습니까. 아마데라스 오미가미로부터 야마도 다마시에 이르기까지 군벌싸움과 오늘의 해외전쟁은 사무라이라는 정신적노예나 같은 무사도들을 길러내지 않았습니까.》

요꼬의 이야기를 듣고난 가네다는 호기있게 손벽을 두드리고나서 열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개인도 집단도 종족도 민족도 국가도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기회! 그속에 개인과 국가의 멸망과 강대가 숨어있다. 오늘 우리가 백제사람의 손에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저 석탑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했는가. 반도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기회를 놓친것이다.

우리 일본의 력사라는것을 거슬러보라. 요꼬의 말대로 사무라이전쟁은 그칠줄 몰랐다. 동족상쟁이 계속되였더라면 기어코 일본은 망했을것이다. 일본은 늦었지만 기회를 노렸고 기회를 리용하여 렬강들과 세계제패의 길에 나섰다. 약육강식은 인간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한 생존법칙이며 힘의 대결은 전쟁이라는 불가피한 현상을 초래할것이다. 력사는 종족들과 민족들의 동화와 사멸과정을 수없이 기록하고있다. 그것은 마치도 음계의 불안정음들이 주음, 가장 안정된 음에 모여드는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말할수 있다.

내가 오늘 사랑하는 두 제자를 앞에 앉히고 말하게 되는것은 성공도 기회가 마련해준다는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재능을 가졌어도 기회가 차례지지 않으면 빛을 볼수 없다는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리면상은 스승의 말이 진심으로 들렸다. 력사속에 인간이 산다는 사실을 부인할수 있는가. 외롭게 선 석탑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무엇인가 잊은듯 한감이 들지만 딱히는 알수 없었다. 망각의 의미를 찾기에는 스승의 당부가 너무도 절절하였던것이다. 가네다가 조선청년이라 하여 조심하면서 에둘러 말했다면 지금과 같은 진실감은 느끼지 못했을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가네다는 량심적이고 선량한 교육자였다.

《아유? 선생님말씀을 듣고나니 머리가 텅 비여나는것만 같습니다.》

요꼬가 자기 머리를 다독거려 모두를 웃기였다.

《요꼬, 이제라도 내 교단밑에 오지 않겠어?》

《여보 무슨 말을 하는거요? 남편주머니도 털어낼셈이군.》

《당신 욕심이야 당하겠어요?》

《그래서 남자지, 하하하…》

도모미는 리면상의 앞에 초밥과 모찌를 놓아주며 많이 들라고 다정하게 말했고 가네다와 요꼬는 여전히 력사문제를 가지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의 화제에 이따금씩 끼여들며 도모미가 자기의 지식을 간단히 비치군 한다. 말없이 듣는 사람은 리면상이였다.

그의 귀전으로 요꼬의 목소리가 쉼없이 흘러들었다. 화제의 채를 잡자 아스까문화에 대한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는것이다.

추고녀왕의 시대가 도래함으로써 일본의 국가발전에 추동력이 생기였다, 불교의 전파와 함께 농경사회의 문화적진보를 이룩했던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오늘은 이방이라고 해야 할 조선의 문명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 …

듣고있던 가네다가 고구려, 백제 소리가 거슬렸던지 반문하다 도모미의 도움을 청했다. 도모미는 리면상의 안색을 살피는것을 잊지 않으며 요꼬의 설명을 보충하였다.

그 당시 일본땅에는 백제는 물론 고구려와 신라의 이민들이 많이 건너와 살았으며 자기의 종교와 문화, 선진적인 기술을 가지고 강력한 세력을 이루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아스까문화를 조선사람들이 창시하였다는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력사란 과거다. 로마제국이 그리스도의 교리를 국교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제우스나 포세이돈, 아폴론과 같은 신들을 우상으로 섬기던 강대한 로마가 예수라는 실지 인간을 우상으로 받아들이게 된것이다. 숭배의 대상을 만들어내여 더 많은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하여 칼부림을 해온 수천년이 인류의 력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우리 일본이 아마데라스 오미가미를 동아의 우상으로 만들려고 하는것도 력사를 이루기 위한 피어린 싸움이다. 도모미는 교단에서처럼 랭정하게 결론하였다.

《이건 참말 훌륭한 3중주예요. …》

탄성을 올리던 요꼬가 가네다와 눈길이 부딪치자 서둘러 입을 막았다. 그리고는 교수선생이 다르다고 어색한 칭찬을 하자 가네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나서 리면상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에 온 기분이 어떤가?》

《많이 들었습니다.》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밝은 낮에 등불을 켜들고 다니며 말했네. <너는 자신을 알라.> … 군은 음감처럼 명석한 두뇌를 가졌으니 다른 말을 하지 않겠네. … 요꼬가 어떤가?》

가네다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물어보는것이지만 뜻밖의 질문이여서 리면상은 어정쩡한 대답을 할수밖에 없었다.

《예? … 똑똑하고 재능있는…》

요꼬를 가리키며 가네다는 흥미가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음악이 일본녀자를 저렇게 일신시켰다고 생각하네.》

도모미의 일손을 도와 가져온 그릇들을 바구니에 담던 요꼬가 고개를 돌렸다.

《전 일본녀자라면 딱 질색입니다.》

《면상군이 어떤가?》

가네다가 싱글싱글 웃으며 묻자 요꼬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선생님이 방금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너는 자신을 알라.>, 이 말이 면상씨에게 적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복되는 인용으로 리면상은 처음과 다른 모욕감을 느꼈다. 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달랐다. 너는 자기가 조선사람이라는것을 알라고 하는것이 분명했다. 일본인의 타민족에 대한 렬등감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는것이다.

가네다가 요꼬의 곁으로 가더니 나직한 말로 나무리였다. 그러고나서 리면상에게 다가왔다.

《불쾌하게 생각지 말라구. 요꼬가 사죄할거네. 여보, 우린 앞서 갑시다.》

《면상씨, 먼저 가요. 요꼬, 성격을 살리지 말아.》

리면상에게 상냥한 웃음을 보낸 도모미가 정찬 어조로 요꼬에게 당부했다. 그리고는 가네다의 팔을 살며시 끼고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몇걸음 앞서기를 기다린 리면상은 요꼬를 돌아보지 않으며 발자국을 뗐다.

참대바구니를 팔에 건 요꼬는 눈을 감은채 서서 춤추듯 몸을 흔들다 앞에 선 리면상을 따라잡기라도 할듯 두다리를 날렵하게 움직였다.

리면상은 자기가 든 바이올린통이 오늘은 여느때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면상씬 저를 리해해야 해요.》

요꼬다운 사죄였다. 사죄아닌 요구였기에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지만 울분으로 터져나오는 말은 막을수 없었다.

《나는 오늘 내가 누구인가를 잘 알게 되였소.》

《제 말의 뜻을 그렇게 해석했어요?》

리면상은 요꼬의 목소리가 한숨에 섞여 떨려나오는것을 들으면서도 일본녀자의 위선으로 여기였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면상씨를 주의깊이 지켜보는 눈길들이 있어요. 나도 그중 한사람이예요. 왜냐구요? 설명하기가 어렵군요. 인간의 심리란 모순투성인걸요. 인간 그자체가 모순을 안고 사는 존재가 아닐가요. 바로 그때문에 사람에게는 그림자가 따르는거예요.》

요꼬의 궤변같은 인생철학이 시작되고있었다. 일본녀자들이 요사스럽다고 하는 말이 그르지 않다. 갑삭거리는 순종뒤에 간교성이 도사리고있다. 사무라이들에게 길들여진 2중성격이 아닌가.

《내 말을 혐오감만 가지고 듣지 말기를 바래요. 난 면상씨의 바이올린연주를 들으며 불쾌했어요. 차라리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선택했더라면 좋았을거예요. 연주가가 내면세계를 지나치게 로출시키는것이 좋지 않았어요.》

지겨운 이야기에 지친 리면상은 걸음을 멈추었다. 가슴속에 들어찬 모욕감은 분격으로 변하지만 리성을 잃고 터뜨려놓을수 없었다. 자기곁에 선 일본처녀의 얄궂은 비난의 상대가 된 자신이 얼마나 가련한 존재인가. 어떻게 하면 부드러우면서도 맵짜고 조용하면서도 랭담한 말로 상대가 모욕을 느끼게 할가를 생각하였다.

《자신이 일본녀자라는것을 잊지 마오. 나는 요꼬가 만족할 음악을 연주할수 없는 조선사람이요.》

고개를 끄덕인 요꼬가 묘한 웃음을 지었는데 어떤 만족감을 느끼고있었다.

《일본사람들을 알기는 어려울거예요. 아마도 영원히 모를수도 있어요.》

리면상은 요꼬의 목소리를 등뒤에 남긴채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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