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5

 

화물역에서 이사짐을 다 부친 왕성실은 수건으로 땀을 씻으며 반달음쳤다. 남포로 가는 렬차가 역홈에 들어올 시간이 되였다. 룡악산쪽에서 검은구름이 무겁게 밀려오고있었다. 둔중한 기적소리가 울린다. 개찰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홈에 선 안내원처녀들이 이따금 호각을 불어대고 붉은색천을 씌운 모자를 쓴 조역이 길표를 메고 나온다.

걸음을 늦추며 두리번거리던 그의 눈길이 한곳에서 멎었다. 리면상과 조령출이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운다. 그들옆에 류진이 구부정한 자세로 서있다. 손짐들이 놓인 곳에 머리를 맞대다싶이 하고 앉은 녀자들은 김형숙과 오일선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김형숙이 이따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눈굽을 훔친다. 저건 또 누군가. 개찰구를 나서는 렴필재를 본 왕성실의 눈이 의혹으로 커졌다.

렴필재는 류진을 바래려고 나온 리면상일행을 보자 걸음을 멈추더니 함께 온 젊은 사람에게 뭐라고 이르고나서는 돌아서서 사라져버렸다. 좀 난처한 기색으로 서있던 젊은 사람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리면상에게 인사를 해보이고는 류진을 데리고 역밖으로 나갔다.

심상치 않는것을 느낀 왕성실은 김형숙과 오일선이 들을세라 나직하나 모가 선 소리로 물었다.

《저 어른은 왜 나왔다 가버린답니까?》

담배진이 윤기가 나게 밴 호박물주리를 쥔 조령출이 어덴가 불안한 기색으로 머리를 젓고 리면상은 왕성실을 외면한채 하늘만 쳐다보았다.

류진은 인차 돌아왔다. 그의 얼굴에서는 이상한것을 발견할수 없었다. 일부러 웃음을 짓고있었기때문이다. 왕성실은 모를 일이라는듯 고개만 가로저었다.

《그 량반이 무슨 일로 찾던가?》

조령출의 물음에 류진은 다가서더니 귀에 대고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하게 짤막한 말을 하고나서 하찮은 일이라는 표정으로 시무룩이 웃어보였다.

렬차가 들어섰다.

《형님, 제 일로 더이상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좋은 노래를 기다리겠습니다.》

류진의 인사를 받은 리면상은 그의 손을 잡았다 놓는것으로 대답했다.

오일선의 어깨를 쓸어만진 김형숙이 격해나는 마음을 이기며 나직이 당부했다.

《일선이, 몸을 잘 돌보라구. …》

트렁크를 든 류진과 오일선이 승강대에 올라서자 발차신호가 길게 울렸다. 홈에 선 사람들은 말없이 손저어 바래웠다. 기적소리가 사라져가는 곳에서 아물거리던 렬차의 마지막 바구니가 형체를 감추자 김형숙은 뒤로 돌아서며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왕성실도 눈물을 훔치며 김형숙을 부축하고 개찰구쪽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가지 않겠소?》

리면상이 물어서야 불이 죽은 담배물주리를 꽉 쥔 조령출이 채머리를 흔들며 돌아섰다. 아무 말도 없이 역사를 나선 그들은 대타령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류진이 무슨 말을 하던가?》

《인간이 아니야. 사람이 저렇게 돼먹어가기도 하는가.》

통탄같은 말을 쏟고난 조령출은 류진이 귀에 대고 한 말을 옮겼다. 렴필재는 바래러 나올 위인은 아니고 그럴 처지는 더욱 못되지만 나타난 용무가 하도 치졸하여 듣기조차 힘들었다. 그는 자기가 요구한 리면상의 해방전 생활자료를 받아내자고 나타났던것이다.

《서울에서 같이 살았는데 뭘 몰라서, 허허.》

《저 량반 조국을 떠나간게 내 기억이 틀리지 않으면 35년도네. 그 다음부터를 알자는거겠지. 자기는 해외에서 돌아쳤으니 친일은 하지 않았다는 배심일거네.》

《그 시절을 떳떳했다고 말할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소. 구슬픈 노래가락이나 울렸으니.》

《그 이상은 살수 없었던 우리가 아니였나. 어제는 나를 만나 어지간히 성가시게 굴었다네. 올리훑고 내리훑으며 시시콜콜 물어대더니 왜 시대가요를 창작하려고 하지 않는가. 극문학을 내놓는것도 모두 고전물이 아닌가. … 그러니 날 보고 복고주의유령이라는거요. 기가 막힌 노릇 아니요. 손오공이 아무리 고패질을 잘한대도 저 량반 재간을 따르지 못할거네. 어떻게 되여 저런 속물이 생겨나는가 말이네. 설사 이 조령출의 정신이 흔들려서 복고주의나 수정주의진창에 빠졌다고 하세나. 하다면 한뉘 같이 살아오는데 인생말년을 가까이 한 나한테 옳은 말로 타일러줘야 인간이 아니겠나, 응?! 인간은 사랑으로 살지 않나. 사람을 사랑할줄 모르면 인간이기를 그만둔것이야! 소위 원칙이라는것을 내들고 아무 사람이나 교살하려고 드는 관료주의자들을 용서치 말아야 해! …》

조용히 들으며 걷던 리면상은 신음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길옆에 주저앉은 조령출이 한손으로 가슴을 움켜쥔채 급한 숨을 내쉬였다.

《명암, 왜 그러나? 협심증이 발작하는게 아니요?》

《아프네. 이 가슴이… 파렴치한에게 롱락당하는 내가…》

조령출은 힘들게 말을 내뱉고는 두무릎우에 고개를 맥없이 떨구었다.

《이 일을 어쩌는가? 명암, 정신 차리게! …》

당황한 리면상은 그를 조심히 그 자리에 눕히고나서 무작정 길가로 들어서며 마주 오는 차들을 향해 손을 쳐들었다.

제1병원 구급과에 조령출을 입원시킨 리면상은 의사들에게 치료를 부탁하고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온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요즘 와서 위병이 어지간히 괴롭혔다. 궤양이 활동기에 들어섰는지 불로 지지고 칼로 찌르는것 같이 아팠다. 그 복통이 시작되는것을 참으며 천리마동상아래 언덕을 겨우 올라섰다. 잔뜩 찌프렸던 하늘에서 비꽃이 떨어졌다. 등골로 식은땀이 흐르고 하늘에서 뿌리는 비방울까지 목을 타고 미끄러져내리니 한층 지긋지긋해났다. 사무실로 가리라 마음을 먹었던 그는 견딜수 없어 집문을 열었다. 안해가 마주 나오기에 약을 달라고 하려다 왕성실이 있는것을 보고 한손을 흔들며 웃방에 올라가 무너지듯 침대우에 몸을 부리웠다.

《위원장동지, 너무 마음을 쓰지 마십시오.》

왕성실의 걱정해주는 소리를 흘려들으며 손더듬질로 책상서랍을 연 리면상은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약통을 찾았다. 마침 촉각으로 익숙된 통이 잡히자 서둘러 열고는 세여보지도 않고 쏟아서 입에 넣었다. 바싹 마른 입안에서 알약이 넘어가려고 하지 않아 혀짧아진 소리를 쳤다.

《나 물이나 좀 주오.》

여느때 같으면 벌써 들어와볼 안해인데 왕성실이 와있으니 물도 그의 손에 들려 올려보냈다.

《어데 불편한게 아닙니까?》

벽에 기대여앉은 리면상은 한손을 내젓기만 했다. 약을 먹었다는 본능적인 심리가 아픔을 덜해주는것 같았다. 아래방에서는 왕성실의 말이 쉴새없이 계속되고 안해는 이따금 코물을 훔치며 듣기만 한다. 이야기란 왕성실의 성격처럼 기세찬것인데 렴필재에 대한 로골적인 불만이였다. 부상이 뭐 타고난 벼슬자린가, 판소리로 넉두리같은 노래가락을 뽑아댈 땐 그래도 감정이나마 좀 통했는데 이제는 마주서기조차 싫은 인간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류진동문 음악광이라는 말까지 듣는 사람이예요. 류학을 했고 남의 나라 물이 오른것도 사실이구요. 그렇지만 아까운 인재가 아닌가요. 그를 지금같이 만들어놓고 공이나 세운것처럼 돌아치는게 과연 옳은 처사겠어요. 누구도 사람을 책임지려고 안해요. 모두가 보신의 울타리안에 숨어서 제 걱정만 하고있단 말이예요. 이러다간 나 같은 녀자도 언제 무대에서 쫓겨날지 모를 형편이예요. …》

왕성실의 입심 센 이야기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화제가 어데로 이어질지도 향방이 없기에 리면상은 식은땀을 씻으며 큰소리로 말했다.

《말장단은 그만하고 술이나 들여다 주오.》

위아픔도 멎는것 같고 속에서 이는 불도 꺼야겠다는 생각이 났던것이다.

《언니, 앉아계세요. 위원장동지 마음도 괴로울거예요. 이럴 땐 술을 마시는것도 나쁘지 않아요.》

남자에게서 술은 친구를 대신하는가보다. 혼자 마시는데도 외롭지 않았다. 속을 덥혀주고 씻어내리는 그 물은 이상한 매력을 가졌다. 지쳤던 육체에 기운을 보태주고 복잡하게 뒤엉킨 생각들을 정돈하여 단순하게 만들어주는것이다. 사색은 의식의 광야를 주름잡으며 과거에서 오늘로 추억과 현실사이로 매처럼 날아옜다. 대담해질수록 몽롱한 기분이 안개처럼 떠돌았다.

왕성실이 간다고 인사하는 소리를 듣고나서 리면상은 자리에 누웠다. 구름우에 실린것 같은 온몸은 두서없는 생각으로 그네우에 앉은듯 흔들거렸다. 류진이네가 어떻게 떠났더라. 렴필재, 그 사람은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다지도 기승을 부리는가. 왕년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였는데. 그때야 인생길을 바로잡지 못해 모두가 갈팡질팡하며 살았지. 렴필재의 처는 리혼후 자식들을 데리고 친정이 있는 전라도로 갔다. 나라가 분렬되지 않았으면 자식들이라도 만나보았을 사람이다. 불행하다면 불행해. … 아, 명암이 한 말이 가슴을 쳤어. 올곧은 사람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그리도 타매했겠는가. 옳구말구. 사람을 사랑해야 해. 사랑을 떠나서 무슨 예술을 창조한단 말인가.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을 인간이라고 할수 없거던. 렴필재, 당신이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조령출이 얼마나 많은 노래가사를 썼나. 좋은 노래지. 그런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다니. 용서를 빌어야 해. 남자답게 말이야. 암, 그래야지. 왕성실이 대는 세우는 녀자야. 류진의 결함도 감추지 않고 말했고 모두를 비판했거던. 허, 나를 두고 한 말이지. 보신의 울타리안에 숨어 살고있단 말도 틀리지는 않아. 내가 도대체 뭘 했느냐 말이야. 음악가동맹 위원장? 여보시오, 요란한 자리에 앉아있소그려. 얼떨떨해서 뭉개며 산단 말이요. … 그러니 낸들 어떻게 한단 말인가. 류진의 문제로 나설 형편은 고사하고 사업정형을 료해받고있는 내가 아닌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주장들을 내세우는데 내가 그걸 갈라볼 재목이 되는가 말이지. 그러니 고개를 숙이고 앉아서 대세관망이나 한다는건가. 얼마든지 비판을 주어 예술창조활동을 시킬수 있는 사람들을 망탕 처리하면 나라에서 큰 품을 들여서 키운 사람들을 잃지 않는가 말이요. 그러게 말이지. 아깝거던. 인재를 중히 여겨야 할텐데. 아, 어떻게 해야 좋은가. 노래나 지어야 할 위인인 내가 위원장자리에 앉아있으니 일이 잘될턱이 없어. 하지만 내 잘못이라고만 할수야 없지 않은가. 내 잘못만이라고… 그는 마침내 끝없이 이어지던 생각을 잠속에 묻어버리고말았다.

6월의 훈풍에 실려오는 은방울꽃향기를 감촉하며 리면상은 눈을 떴다. 열려진 창가에서 축축한 기운이 스며든다. 간밤에 비가 내린 모양이다. 잠기를 가시지 못하는 그의 귀전으로 음악이 흘러들었다. 고성기에서 울리는 소리가 아니다. 예민한 청각기관은 먼곳의 음향을 서서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은은하게 확대되는 음악, 그것은 잊을수 없는 노래 《조국의 품》이였다.

 

모란봉에 붉게 타는 노을인가요

대동강에 곱게 비낀 무지갠가요

노을처럼 아름다운 조국의 품은

내가 자란 정든 집 고향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면상은 누가 찾기라도 한듯 서둘러 마당에 나왔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은방울꽃이 반겨주었다. 가슴속에서는 이름할수 없는 새 힘이 솟구치였다. 심장에 자리잡은 노래가 부어주는 희열을 안은채 마음속에 안고 사는분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언제나 수수한 교복차림으로 찾아주군 하시였다. 음악을 사랑하시기에 음악을 들으시려 작곡가의 집으로 오시였다.

《우리 인민들이 선생님의 노래를 사랑합니다. 더 좋은 노래를 많이 지으셔야 합니다.》

친근하신 그이의 음성을 듣는 리면상의 볼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진정 그리움의 눈물, 의지의 품을 찾아 노래로 한생을 사는 사람이 흘리는 눈물이였다.

친근하신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시작하시였다! 그분이 곁에 계신다! 마음속에 안고 사는 고충을 보고드리리라 마음먹는 그의 심중은 세찬 흥분으로 설레였다.

집에서 아침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리면상은 시계를 보았다. 벌써 7시가 가까와온다. 서둘러 세면을 하고 들어서던 그는 밥상을 보고 고개를 기웃했다. 오늘따라 자기 집 밥상우에 쉽지 않게 오르는 닭곰이 자리를 잡았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이요?》

그의 목소리는 무척 밝았다. 묻는 말도 노래처럼 울려나왔다. 숭늉그릇을 들고 들어오던 김형숙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엊저녁에는 혼자서 늦도록 술을 마신 남편이다. 고뇌에 잠긴 모습을 보기가 민망스러웠는데 하루밤사이에 기분이 달라진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것이다.

《6월 스무하루, 목요일이예요.》

《누가 그걸 묻소? 내 생일은 지나갔는데…》

닭곰을 두고 하는 말이여서 김형숙은 대답을 하지 않고 앉으며 숭늉그릇을 상우에 놓았다.

《애들은?》

《다 학교에 갔어요. 어서 드세요.》

《아이들은 먹었소?》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야 아무걸 먹으면 뭐래요. 몸을 좀 돌보세요. 그 술은 좀 안 마셔도 되실텐데.》

오늘래일 륙십고개에 오르는 나이에 이르도록 동고동락하는 안해한테서 늘 들어가지고 사는 말인지라 리면상은 그 걱정이 고마와 웃으며 말했다.

《당신 간밤에 잠을 설쳤구려. 나 같은 사람을 만나서 고생이 많소.》

《바이올린소리를 못 들으니 그러지요. 한숨만 잦으니…》

《하하하, 그게 우리 집안 자장가나 같다는걸 내 잊었소그려. 여보, 우거지상을 싹 지울테니 같이 밥을 먹기요.》

출근한 리면상은 책상우에서 가사 한편을 찾아내고는 직접 선률을 붙이며 노래를 불렀다. 《하늘에 빛나는 태양과 같이 땅우에 흐르는 강물과 같이…》 아침창가에서 그리움을 안고 간절히 우러른 감정이 시어와 어울리면서 서정적인 리듬을 형성하며 울려나오고있었다. 발견한 선률이 마음에 들자 그는 오선지우에 옮기기 시작했다. 가요 《어머니당이여》였다. 문두드리는 소리에 대답을 하면서도 하던 일을 계속했다. 못마땅하다는 기침소리가 들려서야 누구냐 하는 눈길을 들었다.

렴필재가 젊은 사람을 대동하고 들어서있었다.

《앉으라구. 잠간 기다려야겠네.》

리면상이 코노래를 부르며 일부 음부들의 위치를 바꾸고나서 손으로 박자를 쳐가며 휘파람까지 불어대자 렴필재는 랭담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찾아온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악보의 왼쪽 꼭대기에 《좀 느리면서도 절절하게》라는 악상을 써놓고야 리면상은 얼굴을 들었다.

《위원장동무,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왔소.》

《그럽시다.》

렴필재가 데리고 온 젊은이는 창문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무릎우의 책을 펼치였다. 서기까지 데리고 왔는가. 창밖에서는 뢰성이 먼곳에서 이따금 으르렁거리며 번개를 불러오려고 했다.

《무슨 용무인지 어서 말하오, 부상동무.》

책상우에 얹은 한손으로 다독거리던 렴필재가 입을 열었다.

《위원장동무, 이건 누구나 하나같이 인정하는건데…》 말꼬리를 끄는것으로 긴박감을 조성하며 이었다.

《해방전 노래들 말이요, 위원장동무가 창작한 가요들도 포함해서 말하는거요. 그런것들은… 그렇소. 한마디로 그 어지러운 노래가락들을 통털어 퇴페적인 류행가로 규정해야 하겠는데 그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소.》

화제가 이렇듯 폭이 넓게 시작되리라고 생각 못한 리면상이였다. 해방전 서울에서의 생활을 물을것이라고만 여기였던것이다. 가슴은 금시 울기로 차올랐다. 반생의 음악을 부정해야 하는것이다. 민족의 노래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작곡가와 가수들에게 내리는 가혹한 선고였다. 해방전 가요들이 시대밖으로 밀려난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다시 찾은들 돌아올손가. 하건만 마음은 그지없이 처량했다. 굶주림으로 무대우에서 쓰러지며 노래를 부른 가냘픈 가수들의 모습이 보였다. 망국민의 통탄을 안고 목놓아 운 《황성옛터》, 사랑하는 벗들을 향수에로 불러주던 《찔레꽃》, 빼앗긴 나라를 님으로 부르며 돌아올 날을 간절히 바란 《눈물젖은 두만강》…

《어떻게 생각하오?》

《어떻게 대답하라오?》

렴필재의 군턱이 들리며 젊은이를 돌아보았다. 정확히 기록하라는 눈길을 보낸다. 요구만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색은 근엄한 혈조를 피워올렸다.

《위원장동무의 노래 <사랑가>나 <진주라 천리길>이 오늘의 우리 진군에는 백해무익하다는것을 생각해보았소? 혁명의 리익과 필요성 문제요.》

《굳이 물을게 없다고 보는데… 부르지 않는데야 문제로 될것도 없지 않소.》

《잔여물이 스며들었소. 말끔히 씻어내치워야 한단 말이요.》

《그럽시다그려.》

《그러니 염세와 타락만을 가져다주는 음악이라는것을 인정하오?》

리면상은 귀찮아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만 끄덕였다.

《좋소. 그리고 이건 위원장동무에 대한 대중의 일치한 의견들이요. 이속엔 과거의 생활이 많이 론의되고있소.》

가져온 자료를 리면상의 앞으로 밀어놓으며 렴필재는 계속했다.

《일본에서 고학할 당시 <스승>이였던 가네다, 그의 처 도모미, 그때 가까웠다는 후지무라 요꼬와의 관계를 사실대로 알아야겠소.》

리면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 시절을 회고하기를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요.》

《그 까닭은 뭐요? 가네다의 수제자로서 불미한 일이라도 남겼소?》

《그렇소.》

렴필재는 의자등받이에 상체를 실으며 바라보았다. 너무도 솔직했는데 대담성이 납득되지 않았던것이다. 음악학원을 1년간 같이 다녔다지만 자기는 리면상처럼 도꾜 화물역에 나가 석탄을 부리운 일도 없었고 이른아침 우유통을 메여나르지도 않았다. 치과공부를 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부친은 그가 아부재기를 치면 현해탄건너에서 언제나 돈을 보내주군 하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 제일 넉넉히 살았다.

《가네다와 부인은 리면상을 제일 관심했소. 학생들중에서 그들부부가 마련하는 야회에 참가한 사람은 위원장동무 한사람이요. 그건 나도 아는 사실이요. 어떤 리해관계의 결합이였는가? 가네다의 목적이 리면상을 친일음악가로 키우려고 한것은 아니였소?》

《그렇소!》

부지런히 만년필을 놀리던 젊은이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진실한 목소리를 듣고싶소.》

《나는 자신을 감추고 사는 사람이 아니요. 과연 알고싶소?》

《동창이였는데도 호기심이 동하오.》

《난 원래 지루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이요. 원한다면 들려주겠소. 잘 들으시오. 나의 신변잡사지만 선률은 있다는것을 명심하기 바라오.》

리면상은 방안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무시한듯 고개를 쳐들고 허공을 응시하였다. 인생의 지난날을 더듬으며 무거운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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