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12

 

금강산팔선녀가 춤을 추며 피리를 불며 날아내리는 전막뒤에는 교향곡 《초원의 가을》창조성원들이 연주석에 앉아서 막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드디여 최종심의단계에 이르렀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와 콘드라바스와 같은 현악기들의 질서정연한 연주대형, 황금빛을 번쩍이는 금관악기들의 위풍있는 자세, 공격진지를 차지한 선률의 담당자들을 믿음직하게 지원할 준비를 하고있는 각종 타악기들, 교향곡이라는 함선의 마스트를 방불케 하는 피아노앞에는 검은색연주복을 입은 녀성연주가가 안경을 번쩍이며 출항을 알릴 기상을 하고 앉아있다.

지휘자인 류진은 몇분전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드디여 공격출발진지에 섰습니다.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나는 동무들을 믿습니다.》

서서히 막이 열린다. 선률의 통솔자인 지휘자가 자신에 넘친 걸음으로 걸어나와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지휘봉을 잡는다. 쳐들어올리는 두손과 온몸에서 곡상이 제시되며 기본선률의 시작을 암시한다. 연주가들은 각자가 자기의 무기를 틀어잡고 명령을 기다린다.

교향곡이 울려나온다. 단풍계절을 형상한 신비한 음악의 세계, 가을바람에 설레는 나무잎새들의 노래인양 현악기들의 절절한 선률이 굽이치고 갖가지 새들처럼 울어예는 죽관악기들의 경쾌한 지저귐, 맑은 하늘, 푸른 들이 끝없이 펼쳐진 아득히 먼곳에서 울려오는 말발굽소리, 호수가의 저녁노을처럼 아름답고 고요한 피아노의 선률을 타고 열정적인 률동을 가진 원무곡풍의 음악이 재치있게 반복되다가 타악기의 음향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지휘자는 밝은 웃음으로 조용히 선률을 이끌어가다가도 엄숙해진 표정과 눈길로 악사들에게 지휘봉을 힘있게 가리켜 급격히 빠르면서도 도약이 심한 연주를 진행할것을 요구한다. 타악기들의 포성같은 울림이 터져나온다. 바이올린이 흐느낀다. 엄혹한 계절의 도래가 암시되는것이다. 락엽이 우는 애상의 기슭을 휩쓸며 다가오는 무거운 선률의 파도, 열정적인 연주률동… 거대한 음악의 화폭은 마침내 그 어떤 환희를 향하여 절정에로 치달아오른다. 고조를 이루는 현악기들의 절절한 감정토로에 맞춰 현란한 광채를 뿜으며 관악기들이 장중한 울림으로 선률전체를 싸안으면서 여운을 조성한다. 곡상에 심취된 지휘자는 모든 악기들의 조화로운 소리를 들으며 형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던 두손을 조용히 멈춘다.

관중의 호흡이 없는 공연이였다. 객석에는 10여명의 심사원들이 앉아있다. 그들중에서 몇사람만이 무대쪽에 손을 흔들어보인다. 고심어린 창조과정을 거친 교향곡이 판결을 받아야 한다. 성공인가, 실패인가. 극장안은 침묵의 정적속에 잠기였다. 무대에서 내려온 지휘자가 심사원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목언저리에서 흐르는 땀이 무리등빛을 받아 번들거린다.

심사원들의 표정은 각이하다. 그들의 시선이 등받이에 몸을 기댄채 눈을 감고 앉아있는 사람에게 모인다. 리면상이다. 한손으로 턱을 고이고 무슨 생각인가를 골몰하고있다. 미간주름을 세운 그는 곁에 앉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고 손짓을 해보이고는 한자세로 움직이지 않는다. 징조가 좋지 않았다. 심사책임자인 음악가동맹 위원장이 지금같이 눈을 감으면 문제가 있다는것을 예고하는것이다. 요란한 분석을 하지 않아도 탈선한 형상을 찾아내고야만다.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는 지금같은 자리에는 박식을 자랑하고싶어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있기마련이다. 예리하고 분석적인 언어를 무기로 간담을 서늘케 하게도 하고 창작가들이 얼굴을 들수 없게도 하는 비평의 소나기를 퍼부어대기가 일쑤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기지있는 언어의 명수들이 오늘은 하나같이 좋은 말로 교향곡을 평가하였다. 음악리론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이 특유한 탁성으로 류창하게 엮어댄다.

《예술이란 이런게 아니겠소. 오늘에야 음악다운 음악을 감상했다는것을 나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는 자기나름의 결론부터 먼저 내렸는데 완전히 때벗이를 한 교향곡이라는 요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나서 악장별로 분석한 다음 우리도 유럽의 음악을 따라설수 있고 도전할수 있게 되였다는 흥분을 터뜨리였다.

이어 열기띤 목소리들이 울려나왔다.

20세기 60년대에 살고있는 우리가 아닌가. 지금은 인공위성이 하늘을 날고있다. 우리의 음악도 세계의 음악속에 존재하며 발전해야 한다는것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교향곡은 발전된 유럽을 지향해야 하며 응당한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

《<초원의 가을>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음악의 본도를 지켜야 한다는거요. 그 본도라는게 뭔가, 세계가 가는 길이라 그 말이요. 현대음악에 대한 리해를 바로가져야 하오.》

《좋구만, 좋아! 창작가의 그 대담성에 감탄하게 되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민족악기들을 가지고 이런 요란한 울림을 뽑아낼수 있는가. 안되지. 안된다는것을 모른다는데 또한 우리의 빈곤이 있는거요. 역시 유럽음악은 무시할수 없으며 배워야 한다는거요. 발전하자면 말이요.》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목소리들에 이어 부정하는 론조도 거침없이 울려나왔다.

《나는 의견을 달리하오. <초원의 가을>은 목가적인 선률의 조립품에 불과하오.》

《초원이 문제야. 내 나라가 아니라 남의 땅에 선 기분이요. 하? 거기다 마주르까춤곡까지 먹여대니 듣기가 숨이 차단 말이요. 우리 민족장단은 찾아볼수가 없으니… 악기편성에도 문제가 있소.》

《금관악기들과 타악기들을 너무 불고 두드려대니 정신을 못 차리겠구려. 반시간가까이 앉아있었지만 어느것 하나도 리해할수 없으니 공허하거던. 이게 어디서 환기되는 감정인가. 창작가의 수고를 몰라주는것은 아니지만 말하지 않을수도 없다는데 더 큰 고민이 있단 말이요.》

《너무 가벼운 평가요. 혹독하게 말하면 자연주의면사포를 쓴 교묘한 수정주의작품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겁니다!》

《창작의 자유를 너무 구속한단 말이요!》

《자유, 어떤 자유? 만용을 용납하는 자유를 말하는가!》

《사납게는 으르렁거리는군. 저 량반 만나면 서슬단지가 눈에 얼른거려.》

《언젠가는 제절로 마시지 않나 두고보라구.》

론리에서 시작되여 감성의 부딪침에 이르는 과정은 이렇게 흐를 때도 있다. 이런 례는 일상다반사나 같아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면서도 예술창조는 그것대로 하는것이다.

리면상의 심중은 착잡하였다. 누구도 아닌 류진의 작품이다. 보름전 일요일 아침 극장에서 만났다. 창작으로 너무 무리하는것 같아 걱정해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오늘은 좋은 말만 할수 없는 자리다. 설마 이런 엄청난 작품이 태여나리라고 생각이나 했던가. 민족적인것은 찾아보기 힘든 교향곡이다. 무엇을 말하자는것인가. 창작가의 형상적의도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형상전반이 남의 풍을 따르다나니 모호하기 그지없다. 교향곡의 창작가가 작곡가이며 지휘자인 류진이란 말인가.

리면상의 눈길이 지휘자를 찾았다. 류진의 몸가짐은 긴장되여있는것 같이 보이지만 기대를 보내는 눈빛에 자신심이 어려있었다. 연주가들과 가수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인 지휘자, 형상에 대한 그의 요구성은 엄격했다. 자기를 지나치게 확신하는탓으로 하여 건방지다는 뒤소리를 듣군 하는 예술가이다.

《류진동무, 어떻소? 의견을 가볍게 받아들일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류진의 얼굴로 비웃음같은 경련이 스쳤다.

《나의 음악을 리해할 때가 올겁니다.》

지휘자의 대답이 사람들의 심중을 휘저었다. 이어 터져나올듯 하던 반발이 기침소리로, 입안의 웅얼거림으로 잦아들었지만 예리한 시선들은 무엇인가를 기대했다.

《나의 음악이 아니라 인민의 음악이요! 내 말의 뜻은 그 누구이든 시대의 요구, 인민의 감정정서를 떠난 예술을 창조할 때 그것은 죽음이라는것을 알아야 한다는것이요.》

말이 길어지는것 같아 리면상은 류진을 엄한 시선으로 바라보고는 옆에 선 사람에게 심의에서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하라고 지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향곡 《초원의 가을》은 심의에서 부결되였다.

그로부터 며칠후 리면상의 사무실에 렴필재가 나타났다.

《내가 바쁜 시간에 온건 아니요? 오늘은 방이 조용하구만.》

리면상은 렴필재의 음색이 평온하지 못하다는것을 느끼며 자리를 권했다.

《앉게. 내 방이라는게 소란스럽지. 노래를 부르는 곳이나 같거던.》

《나도 시간을 내서 왔소. 그… 교향곡인지 한데 대한 의견을 듣자고 말이요. 어떻게 생각하오?》

《초원의 가을》이 다시 문화성 부상과의 대화에 오르는것이다. 일부에서는 변이나 난것처럼 떠들어대고있다. 수정주의작품을 만들어낸 창작가에 대하여 되게 문제를 세워야 한다는 말들이 울려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류진의 태도이다. 심의에서 부결되였으면 응당한 교훈을 찾아야 하겠으나 접수하지 않고있으며 자기의 주장을 고집하면서 재심의를 요구하고있다.

《심의에서 통과되지 못한 형상중의 작품이라는거야 알고있지 않소.》

《나 역시 예술가요. 동업자로서는 리해해줄수 있겠지만 부상인 나로서는 음악계의 사상적병균을 보는것 같아 생각이 많소.》

리면상은 렴필재가 류진을 만났으며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것을 간파하였다.

《심각하구만. 창작가의 심리적고충도 리해해야 하지 않겠소. 자기의것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창작가라고 말할수 없지.》

렴필재는 공감이 간다는 낯색을 지어보이지만 속마음이 아니라는것을 옷깃을 만지는 군동작으로 표시했다. 이렇게 자세가 달라질 때는 심리에서 큰 변화가 일고있다는것을 말한다. 인내와 침착성은 이 사람의 무기이다. 리면상은 불안한 마음을 지우지 못하며 어떤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위원장동무, 나로서는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수 없소. 지금의 태도는 창작가를 비호하는 우유부단인지 아니면 동조인지 알수가 없기때문이요. 제기된 대상이 류진이기에 그런다면 옳다고 할수가 없소. 그렇지 않소?》

《선명하게 펼쳐보여주면 좋겠는데…》

리면상은 담배를 꺼내는 렴필재의 행동을 주시했다. 꼭같은 담배이겠는데 그속에서도 고른다. 꺼내들고는 자호를 보고 냄새를 맡고나서 조심히 입에 문다. 애연가의 남다른 취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흡연절차까지 갖추고 살다니 원, 저 사람의 절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해 하고 생각했다.

《우린 다같이 음악과 함께 늙어온다고 말할수 있네. …》

담배연기처럼 흘러나오는 렴필재의 목소리는 늘 들어온 음성이 아니였다. 푹 가라앉은 음성은 한량없는 노여움을 담고있었다.

《내 오늘까지 살면서 예술가라고 자부했건만 한 음악망나니한테서 모욕을 당할줄은 몰랐소, 허허》

《그 사람이 뭐랬기에…》

《난 그래도 타일러볼가 해서 찾아가 만났소. 허? 아니요. 유아독존을 보았소. 나 같은 판소리군들이 예술을 망쳐먹고있다는거요. … 뭔가 리해해볼가 해서 갔다가 가련하게도 복고주의면류관을 얻어쓴 모양이 됐거던. 이렇게도 초라해질수 있는가? 과연 민족음악이라는 배의 조타를 그런 인간들에게 맡겨야 하는가 말이요.》

리면상은 류진의 행동이 어떠했겠는가는 렴필재의 말을 통하여 예상할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일이 이 지경으로 번져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던것이다.

《추태요. 망동이요. 도전이요! …》

렴필재는 자제력과 침착성을 잃지 않고 자기의 짤막한 말마디들로 반복하며 강조했다. 흥분을 억제한 표현들은 자못 날카로왔다. 그가 빚어진 일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그자신의 결심에 달린것이였다.

렴필재가 돌아간 다음에도 리면상은 두손을 마주잡은채 눈을 감고 숨조차 쉬지 않는 사람처럼 앉아있었다. 가슴속에서는 배반당한 심정이 회오리쳤다. 사람처럼 변하기 쉬운것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자기가 겪어보니 참기 어려운것이였다. 류진인 변했다. 음악만이 아니라 인간도 변질됐다. 어떻게 보낸 외국류학인가. 전후복구건설이 한창이던 때였다.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한푼한푼을 아껴쓰던 그 어려운 시기에 앞날의 음악인재를 키우기 위해 천금같은 돈으로 공부를 시키지 않았는가. 어떻게 되여 류진과 같은 인간이 생겨나는것인가. 떠나갈적에 한 결심은 입으로 흘린 말에 불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책임질수 있는가. 자신에게 물을수록 마음은 그지없이 쓸쓸해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면상은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눈앞으로 은방울꽃화분이 다가왔다. 푸르싱싱한 다섯포기의 잎사귀에서 서로 다른 곡선을 이루며 자란 가지들에 눈같이 흰 꽃송이들이 조롱조롱 피여 그윽한 향기를 풍긴다. 무겁던 마음이 그 향기에 가시여지며 소중한 추억을 더듬는 그였다. 이 나라의 숲속 어데서나 핀다지만 이름조차 몰랐던 꽃이 자기 집 마당에 옮겨와 생활의 다정한 벗이 되여준것은 언제부터였던가.

준엄한 전쟁의 포화가 멎은 이듬해였다. 온 나라가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때 리면상도 새 노래 창작을 위해 제철소와 농장벌, 평양시 살림집건설장에 나가서 살다싶이 하였다. 어느날 저녁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마당가에서 울리는 노래소리가 가슴을 흔들었다. 그가 최근에 새로 지어 내놓은 《노래하자 대동강》이기에 다가가보니 교복차림의 위대한 장군님께서 동무들과 함께 마당둘레에 꽃모를 심고계시였다.

《이 꽃의 이름은 은방울꽃이다. 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생식물이며 5월과 6월에 꽃을 피운단다. 향기가 기막히단다. 선생님이 우리가 심은 이 꽃의 향기속에서 더 좋은 노래를 많이 지으실거야.》

너무도 갸륵하고 진정에 넘친 그 마음을 읽으며 리면상은 목이 메여 선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진정에 넘친 그 마음에 드리고싶은 감사의 격정은 세월을 넘어 오늘도 가슴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있다. 그것은 이름할수 없는 기대이고 의지였으니 사무실화분에 옮겨심고 자신만이 예감하는 환희의 격정을 맛보는것이다.

리면상은 고개를 들고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고있다. 1964년 5월이 저물어가고있었다. 그의 귀전으로 아름다운 선률이 조용히, 한없이 숭엄하게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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