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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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이 넘는 답사를 마치고 중국 동북의 산야를 떠나 조국땅을 향해 귀로에 올랐을 때 리면상은 마중나와선것만 같은 남양의 크지 않은 역전을 보며 눈굽을 훔쳤다.

망국수난의 장장 40여년, 정녕 세상에 살아남지 못할 민족으로 될번 하였던 겨레의 가슴에 재생의 환희가 용암처럼 솟구쳐올랐다. 민주의 새 나라에 천지개벽이 일어났으며 굴욕으로 살던 백성들이 인민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건국의 고고성을 울렸다. 조선민족은 동방의 별로 솟아 오늘은 세상이 부러워하는 영웅의 나라로 그 이름 만방에 떨치고있다.

조국에 도착한 답사단은 그길로 백두산에 올랐다. 천지의 호반우에서 창검처럼 번쩍이던 번개의 기상, 포효하는 물결과 여름철에도 눈보라를 일으키군 한다는 백두의 뢰성을 들으며 무엇을 생각했던가. 가림천물가를 건늘 때 백두산에서 만난 청년답사대원처녀가 손을 잡고 부탁했다.

《선생님, 좋은 노래를 지어주십시오. 우리에겐 백두의 기상으로 세기를 주름잡으며 천리마를 타고 달릴 노래가 필요합니다.》

가슴이 뭉클하도록 떠밀어주던 그 목소리를 다시 들으며 리면상은 자신에게 물었다. 한생 선률을 찾아 살아오는 내가 아닌가. 나는 노래를 어떻게 지어왔는가. 사람들이 부르고싶어 부르는 노래는 창작가에 의하여 보태지지 않는 우리 시대의 진실한 감정일것이다.

그는 지금 음악은 시대의 성격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새기며 사색을 이어갔다. 귀전에서는 항일의 전구들에서 채보한 노래가 울리고있었다. 간고한 혈전만리에도 언제나 노래는 앞장에서 진군가로 우렁찼다. 그것은 혁명적락관이였고 해방된 조국의 앞날이였다. 민족음악의 전통을 옳게 리해하여야 한다는것을 새롭게 인식한 그였다. 자기가 오랜 세월 추구한 민족음악장단이 백두산의 눈보라와 조화를 이루며 선률의 세계로 들어서는데 곁에서 찾는 소리가 들렸다.

《위원장동무, 담배를 피울 생각이 없소?》

억양없는 침착한 목소리의 주인은 문화성 부상 렴필재였다. 아래침대에서 부시럭대는 인기척이 이상할만큼 자극을 주었다. 함흥에서 만나 함께 온 사람이다. 그곳 예술단에서 형상하고있는 예술공연작품을 현지에서 보아주려고 내려왔던것이다. 사업에서 정력적인 렴필재이지만 지나친 절제로 하여 뭇시선들이 자못 어려워하는 일군이다.

리면상은 바람을 쏘일 차비로 일어나 앉으며 렴필재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였다.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와는 해방전 서울에서 사귀였고 일본음악학원 동창으로서 막역한 사이였다. 작곡가이며 성악가수인 렴필재는 구전문학을 소재로 한 창극을 여러편 만들어낸 이름있는 예술가일뿐만아니라 리론분야에서는 론적이 없을만큼 권위가 당당했다.

렬차복도에 먼저 나와선 렴필재는 차창을 열고 새벽바람을 들이키며 담배를 꺼내들고 냄새를 맡고나서 피워물었다.

《좋구만. 이번 려행이 길어서 피곤하지는 않소?》

리면상은 백두산일대에 대한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미 계획된대로 함흥에서 렴필재를 만났으며 예술공연을 같이 보았다. 물론 견해는 예견한대로 차이가 났다.

《오히려 힘을 얻었네. 좋은 노래를 지을 생각밖에 없구만.》

《그렇지 않다면 리면상이겠소. 하지만 자기가 음악가동맹 위원장이라는것도 잊지 말아야 하지 않겠소.》

불만섞인 말을 들으며 리면상은 조용히 웃었다. 남다른 지도능력을 가진 렴필재였다. 점잖다가도 무대를 마주하기만 하면 두주먹을 내흔들며 가수들과 연주가들이 자기 소리와 연주기교를 다 발휘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게 만들었다. 그 유표한 쐑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장고를 두드려댈 때면 볼만 했다. 평시에는 자못 부드럽기도 하고 엄숙감을 주는 목소리지만 그럴 땐 어데서 울려나오는 소리인지 놀라게 만든다. 판소리창법의 집요한 옹호자인 그로서 자랑으로 여기며 뽑아대는 특이한 소리인것만은 사실이다. 해방전 풍각쟁이남편과는 못산다는 행악질에 안해와도 아무 미련없이 헤여진 그였지만 오늘까지 판소리와는 리별을 모르며 그야말로 해로하고있다.

《여보 위원장동무, 노래라는게 뭔가 하는거요. 노래란 곡조로 표현하는 인간의 감정이 아니겠소.》

렴필재의 음성은 조용했지만 미리 준비한 말을 하고있었다.

《심각한걸.》

《심각성을 느끼는 나요. 우리의 민족음악의 발전을 두고 생각이 깊소.》

《진정한 예술가라면 마땅히 걱정해야지.》

《그렇게 생각한다면 둘이 마주선 기회에 말해봅시다. 위원장동무의 견해에 의혹을 품기 시작한 나니 말이요.》

열려진 차창너머에서 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있었다. 어둠이 서린 해안가의 방풍림들이 물결치며 흘러간다.

렴필재는 문학예술부문의 현 실태를 랭철하게 분석하였다. 예술단체들이 독자성을 주장하면서 민족적특질을 무시하고 새로운것을 표방하며 자유주의적으로 창작하고있는 편향으로 하여 각이한 사조들과 경향이 머리를 쳐들고있다. 연극과 영화부문에서 비전형이 사실주의를 표방하며 나오고 무대우에는 색스폰과 같은 악기들이 나타나 머리를 휘두르는 선률을 주도하려고 하는가 하면 현대음악을 떠드는 혼잡속에서 민족음악은 음지의 꽃같은 신세에 놓이고있으며 악기들마저 곰팽이가 낄 지경에 이르렀다.

《무지한 사람들이 무슨 놀음을 벌리고있는지 보지 않았소. 우리 장단이라는건 들어볼수도 없는 얼치기가극까지 만들어내려고 하는 판이요. 음악의 전통이 뭔지 알지도 못하는 량반들이 판소리는 낡았소 하고 곧잘 소리를 치는데 참으로 가소롭소. 한 민족의 음악이란 자기의 풍격을 갖춘다는걸 모르니 답답하지 않은가 말이요. 깃처럼 가볍고 경쾌한 가락과 산악처럼 웅장하고 무게있는 소리가 하나로 통일되여있는게 우리 민족음악의 면모일진대 그중에서 판소리가 웅건한 바탕이 아니란 말이요? 만약 부정한다면 <밭갈이타령>이나 <쾌지나 칭칭 나네> 같은 민요만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래 그런 민요의 곡조에는 판소리의 영향이 미친 흔적이 없는가. 내가 말하고저 하는건 량반들이 부른 노래와 백성들이 부른 노래를 갈라볼 필요는 없다는거요. 민족음악의 유산에 관한 견해는 이렇에 서야 옳지 않소?》

리면상은 무엇이든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렴필재의 특징을 알고있었다. 그 과장에는 근거가 있었고 그럴듯한 론리를 타고 전개해나가는것으로 하여 감동할만 한 재능이 엿보였지만 자칫하면 실수할수 있는 가능성이 풍부하였다. 그것은 한 측면으로 안목이 넓은것 같이 보이지만 달리 보면 상대가 당초에 머리를 들지 못하게 눌러놓으려는 위엄이기도 했다.

현실은 문학과 예술이 인민대중의 요구, 시대의 요구에 맞게 복무할것을 바라고있다. 이 과정을 새것과 낡은것과의 투쟁이라고 해야 옳지 않겠는가. 어느것이 새것인가는 대중이 평가할것이다.

리면상은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반문했다.

《음악유산과 계승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옳소. 위원장동무의 견해를 알게 되여 반갑소. 유산에서 어느것은 이어받고 어느것은 버려야 한다는건데 그것이야말로 모순된 사고요. 낡았다고 버린다면 오늘의 새것도 언젠가는 낡아서 버림을 받을것이요. 종당에는 남아서 전해질것이란 없을게 아니요.》

렴필재의 리론전개는 언제나 이렇게 난해한 문제를 도출하여 대답할수 없게 만들었다. 리면상은 은근히 화가 치미는것을 참으며 무표정하려고 애썼다. 그는 상대를 잘 아는것만큼 리론상의 문제를 놓고 언쟁을 하고싶지 않았다. 항시 자신을 속박하는것은 리론이였다. 리론의 빈곤을 알고있기에 이른바 리론에 도전하기를 주저하는 자기를 볼 때면 측은해지기도 하는것이다.

《우리 창작가, 예술인들은 시대의 지향을 잘 알고있네. 그들이 하는 창조활동을 이래라저래라 할수는 없는거지.》

《그러니 창작의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는거요?》

《나는 그 어떤 자유가 아니라 창작가들의 시대적지향을 말하고있네. 부상동무가 유산으로 말하는 판소리형식의 노래를 대중이 부르려고 하지 않고 창작가들이 그런 풍의 가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하다고 할수는 없지 않은가.》

렴필재의 시선이 날카롭게 돌려졌다.

《부르고싶어하는 노래라는게 날라리풍의 곡조인데도 허용된다는 말을 하고싶소? 우리 사람들속에서 그런 사조가 고개를 쳐든다는것은 느껴보지 못했소?》

리면상은 렴필재의 감정변화를 포착하며 은근히 놀랐다. 《녹지 않는 얼음》이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인데 지금은 흥분하고있지 않는가. 언젠가 지금같이 조용한 기회에 일군으로서 사람들을 차겁게 대하지 말라고 권고했더니 《얼음도 물이요. 끓는다는걸 알아야 하오.》 하는 대답에 두손을 들고말았다. 자기의 성격을 잘 알고있는 렴필재였고 틀리는 말이 아니였다. 상대방이 하고싶은 말을 다할 때까지 기다릴줄 아는 놀랄만 한 인내력도 배울 필요가 있는것이다. 일단 자기가 발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래동안 준비한 론거와 불같은 주장으로 반론할 여지가 없게 만드는 렴필재였다. 예술가로서 그의 창작적흥분은 채로 친것처럼 정교한것이여서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노래로, 창극으로 완성되군 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부상의 말은 언제나 권위있는것으로 되여있었다.

한편 렴필재는 이 고집쟁이와 이야기하는게 아니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나 자기의 주장을 납득시키고싶었다. 그는 리면상에게 생활에서 절제를 지키며 즉흥을 피하라면서 이렇게 타이르기도 하였다.

《위원장동무의 선률은 자기를 닮았단 말이요. 정서가 있고 민족적인 향취가 풍기는건 좋지만 그대신 범박하기도 하오. 한마디로 깊이가 모자란다는 생각으로 아쉽소. 음악이란 무게가 있어야 되지 않겠소.》

그런 충고를 들을 때면 리면상은 빈정거리군 했다.

《나야 농사군의 자식이 아닌가. 그러니 소잔등우에서 불어대는 풀피리소리일수밖에.》

《난 량반의 후손이여서 판소리가락이나 뽑아댄다는 소리요?》

《배불러본 생활도 알지 않나. 사람의 창자라는게 하루삼시 낟알 반되면 되는데 우리 집안은 배채워보는게 소원이였거던.》

《그럼 배부른 생활과 일찌기 결별한 나는? 음악을 론하는데 한다는 소리란 천박하단 말이요.》

《자네가 풍격을 갖추었다는 그런 노래는 못 지으니 어찌겠나. 그건 내 감정이 아니기때문이네.》

그때와는 달리 오늘은 마음을 먹고 물었는데도 리면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렴필재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바라보았다. 심각한 문제라는것을 모를리 없는데 어찌된 일인가.

《내 생각에는 우리의 음악이 복고주의와 양풍을 반대하며 민족적인 새로운것을 창조해야 하는 력사적인 시기에 서있다고 보네.》

《옳은 말, 그 새것이 어떤것인가 하는건데…》

윤기가 도는 이마에 손을 올려놓은 렴필재는 이상야릇하게 긍정하고나서 소리없이 웃었다. 그가 이런 묘한 미소를 지을 때엔 열띤 주장을 준비한다는것을 잘 아는 리면상이기에 말하기를 기다렸다.

《함흥예술단 단장의 궤변같은 말이 들려오는것 같소. 허허.》

예리해진 감정의 색채가 함흥에서 시작된것임을 알아챈 리면상은 몇시간전에 있었던 일을 되새겨보았다.

그곳 예술단에서 준비한 음악작품들은 로동계급의 사상감정에 맞게 새로운 형상을 시도한것이 알렸다. 지난 시기와 다른것은 생활정서와 감정을 밝고 명랑하게 반영하기 위해 노력한것이였다. 평양에서 문화성의 부상과 음악가동맹 위원장이 내려와 앉은 시연회여서 배우들은 자그마한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으며 공연은 손색없이 진행되였다.

예술단 단장은 농악을 가지고 군무를 만들어낸 재능있는 안무가로서 성격이 능청스럽고 질긴 사람이였다.

《이번 종목들은 전국순회공연까지 할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였습니다.》

시험지를 바친 학생이 제가 점수를 매기는것 같이 비위살이 좋은 단장을 가리키며 리면상은 《이 량반이 곱새춤부터 추는구만.》 하고 웃고나서 렴필재를 보았다. 꼿꼿이 앉은 자세가 동지섣달 고드름같았다. 한손에 쥔 안경으로 공연종목을 찍은 종이장을 두드려대기만 할뿐 아무 말이 없다. 단장은 그쯤한데는 개의치 않으며 리면상에게 어서 좋은 말이나 해달라고 매달리는 눈길로 웃어보였다.

《이것 보오, 단장동무.》

무대우에 섰던 배우들이 전막뒤로 사라지자 침묵을 쑥덕 자르며 렴필재의 목소리가 옆에서 나직하나 엄하게 울렸다.

《동무네 미감이 좀 이상하지 않소? 민족악기를 들고 나왔지만 별나게 연주하는감을 못 느꼈소? 아니면 못 느끼는거요?》

소리는 낮아도 나꿔채는것 같은 물음에 처음보다는 자세를 바로잡았지만 여전히 익살기를 거두지 않은 단장이 제편에서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한 낯색을 지었다.

《너무 새로와서 그럴가요? 원체 지나치게 대담하지 않은가 하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천톤프레스를 목표로 한, 예… 함흥로동계급의 투쟁정신으로 무대도 일신해보자고 마음먹으며 해봤습니다. …》

《요란한 광고는 그만하오.》

의자등받이에 기댄 렴필재는 두손을 깍지낀채 눈을 감으며 물었다.

《도대체 뭐요, 혼성2중창말이요.》

《불리우는 노랜데요. … 가수들이 너무 흔듭니까?》

《멀미가 나오. 우리 로동자부부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출근을 하오? 너무 앞서거던. 그런걸 두고 뭐라고 하는지 아오?》

《그렇게 되길 바래서… 좋지 않습니까?》

단장의 비위좋은 넉살머리에 두어깨를 솟군 렴필재는 잠시 바라보기만 하더니 기막히다는 웃음을 짓고나서 엄하게 말하였다.

《양풍, 수정주의적인 음악의 출현과 그 목적은 사람들을 벌거벗기자는거요. 벗긴다는 말을 새겨듣소. 단장동무가 그 날라리배의 노대를 잡을 잡도리는 아니요?》

《부상동지도 원, 무슨 말씀을… 너무 어마어마합니다. 저야 몇번이나 딩굴었습니까. 여기 함흥의 로동계급들속에 와서야 정신을 차리고 로동계급적인 예술을 창조하려고 결심을 단단히 했는데요. …》

《동문 세번 과오를 범했소. 여기로 내려올 땐 나한테 걸려들었고… 단단히 결심을 한줄 알았는데 여전히 딴소리를 하자고 든단 말이요.》

《부상동지, 제가 딴소리를 하다니요? 로동계급의 소리군이 되자고 하는데요. 그 노랜즉 룡성기계공장 문화회관이 들썩하게 부르는겁니다. 로동자부부가 나란히 출근길에 오르는 풍경을 그려보십시오. 선률은 또 얼마나 다정합니까. 혁신자부부의 감정을 진실하게 반영한 노래라고 봅니다. …》

《여보, 당신의 감정이 대체 어떤데로 흐르는가를 내가 모를 사람이요? 헛눈 팔다 이번에 문제가 서면 단장은 고사하고 무대에서도 떠나게 될줄 아오.》

옆사람도 가려들을수 없게 조용히 나누는 두사람의 대화이지만 말마디들은 자못 날카롭게 오갔다.

《전 말입니다. 함흥에 내려오니 부상동지의 서리발같은 충고를 자주 듣지 못하는게 제일 아쉽습니다. 로동자부부의 노래가 마음에 안들면 한 종목을 선정해주십시오. 하지만 리론상의 문제에서 석연하게 리해할수 있는 결론을 주기를 바랍니다.》

비꼬며 낮추 붙는 단장의 교제술도 보통이 아니였다. 이들은 평양에서 한 예술단체의 단장, 부단장직무에 있기도 했었다. 한때 렴필재의 판소리장단에 맞춰 무용창작도 한바 있는 단장은 양보는 하되 물러서지 않는 기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니 나더러 함경도 진창밭에 들어서라는거요? 그 싸움에선 내가 이기지 못하지. 니전투구에선 말이요. 어떻소, 위원장동무? 이야기하오.》

검질긴 단장을 리면상에게 떠민 렴필재는 옆자리에 앉은 연출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좋습니다. 부상동지와는 무승부로 보고 위원장동지의 의견을 듣습니다.》

렴필재에게 그루를 박은 단장이 리면상의 옆으로 왔다.

《어떻습니까, 때벗이를 했지요?》

《허허, 하는것 같소. 묵은때를 벗기기가 쉽겠소.》

《그렇다마다요. 로동자부부의 노래를 부른 녀가수 소리가 생신하지 않습니까? 비날론공장에서 찾아낸 재간둥입니다. 종목도 그 동무가 선정했지요. 그러니 로동자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분명하지 않습니까.》

《부상동문 넓은 의미로 표현한거요. 선률만큼 예민한건 없지 않소. 그야 단장동무가 잘 알지 않소. 민족장단을 놓쳐서는 안되오. 가수들이 노래보다 률동으로 지나친 감정을 드러내는건 고려해야 하오. 우리 음악이 고루한 세계에서 벗어나 시대의 지향을 반영한 새것을 창조해야 한다는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소.》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건데… 명심하겠습니다. 과장하지 말며 진실하게, 그렇지요?》

《옳소. 단장동무가 직접 형상한 농악무는 우리 민족예술사에 남아있을거요.》

역에까지 따라나온 단장은 성미그대로 렴필재에게 매달렸다.

《로동자부부의 노래는 형상을 다시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지요?》

《결심을 했으면 책임질줄도 알아야 하오.》

리면상은 역홈에 서서 렬차를 바래며 《잘 가십시오.》 하고 소리치던 단장의 목소리가 그냥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작별의 그 웨침속에 깔지랑거리는 서방에게서 벗어난 아낙네의 후련함같은것이 담겨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한편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 소리없이 웃었다.

《두고보오. 이제 그 질긴 량반과 비슷하거나 한발 앞서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말이요. 오늘은 로동자부부노래라고 우겨대지만 래일은 젊은이들이 부둥켜안고 돌아가게 만들 희귀한 곡조와 춤가락이 나타나지 않는가를. 예술에서는 민족의 고유한 감정, 습관, 풍속을 지켜야 하오. 낡았다는것이 낡지 않는 리유가 거기에 있단 말이요.》

《하지만 발전하는 현실과 시대의 감각을 따라야 해.》

《어느것이 시대감정인가? 남의 풍에 뜨면 제것은 사라지기마련이라는걸 알아두는게 나쁘지 않을거요. …》

무슨 말을 더하려던 렴필재가 뚝 끊기에 리면상은 좁은 복도를 둘러보았다. 완장을 낀 렬차안내원처녀가 길이 막혀 어쩔바를 몰라 서있는 모습이 눈에 비껴들자 서둘러 말했다.

《어서 가오. 우리가 이야기에 팔려있다보니 길을 막고있었구만.》

처녀는 무척 상냥하고 활달했다.

《전 아무것도 들은게 없습니다. 호호…》

정들게 인사까지 남긴 처녀가 사뿐사뿐 걸어가며 노래를 불러댔다.

《어서 가요 같이 가요 서로 찾으며…》 하는 함흥극장에서 들은 노래를 다시 듣게 되는것은 참으로 묘한 생활의 일치였다.

와이샤쯔단추를 벗기며 렴필재는 미간을 약간 찌프렸다.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론문을 발표할 결심이요. 나는 예술가로서 자기를 주장하겠소. 판소리가 밀려나고있지만 결코 낡은것으로 뒤자리에 놓이게 되지는 않을거요.》

《판소리곡조로 청년들의 행진곡을 지을수는 없다는것도 알아야지.》

제각기 침대를 차지한 두사람은 렬차가 충격을 주는 진동에 몸을 맡긴채 서로 다른 생각을 하였다.

리면상은 다시금 백두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밀림의 눈보라소리와 천지의 호반에서 울리던 번개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선률을 찾기 위한 감상에 서서히 빠져들어가고있었다. 생활의 많은것을 쉽게 잊는데 습관된 그였다. 가정에서 안해의 부탁, 친우들과의 약속도 지금과 같이 선률의 세계에 잠기면 언제 있었던가싶게 잊어버리기가 일쑤였다. 그에게 있어서 창작이라는 원시림속을 헤쳐나가는것은 최상의 만족이였기에 렴필재와 나눈 이야기를 밀어버리고 자기의 음악속에서 헤염치는것이였다.

동일한 렬차의 흔들림속에 누운 렴필재의 사색은 리면상과는 달랐다. 남다른 집중력을 가진 그는 음악과 생활의 계선을 명백히 긋고 자기에게 필요한것을 추구하는데 버릇이 되였다. 사소한 현상이라 하더라도 내포된 본질이 어떤 결과를 빚어낼수 있다는것을 예감하면 준비를 빈틈없이 하였으며 미구에 있게 될 어떤 사람과의 대화도 무대우에 올릴 연극의 대사작업을 하듯 하는것이다. 상대방의 견해와 성격을 파악하고 그가 하게 될 말을 연구하며 자기가 세울 론거의 타당성을 찾아낸 다음에야 마주섰다.

렴필재는 지금 자기가 매우 불안한 심리상태에 놓여있다는것을 자각하고있었다. 그 원인을 찾으려고 뇌수의 세포들을 고도로 발동시키지만 정확한 대답을 찾을수 없었다. 사고에 균렬이라도 생겼는가. 아니면 공연한 위구심에 사로잡힌것인가. 기적소리가 울리다 사라지더니 차창밖은 어둠속에 잠겼다. 차굴속에 들어선것이다. 한층 선명한 렬차의 동음을 들으며 그의 생각은 집요하게 그 무엇인가를 찾아내려고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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