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에 젖은 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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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명도 자주 심문실에 불리워나갔다. 남아있는 조직을 내놓으라는것이였다. 정시명은 쓰겁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건 아마도 통일된 다음에 공개하게 될거요.》

어떤 날에는 최운하가 나타나 눈을 부라리기도 하고 애걸도 하였다. 그놈은 몇가지 문제를 시인하고 지장을 눌러달라는것이였다. 하나는 북에서 임무를 받고 파견되였다는것이고 하나는 리승만정권을 무력으로 전복하자고 했다는것이였다.

정시명은 조용하게 대답하였다.

《당신들은 나를 잘못 보고있소.》

하루는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오성도가 앞서고 방대광이 뒤따라 감방에 나타난것이다.

방대광은 처참하게 달라진 정시명의 겉모양을 측은하게 살펴보다가 대바람에 호령했다.

《본부장, 당신은 이 사람의 몸값이나 알고 이 꼴로 만들었소?》

오성도가 얼굴이 시뻘개서 변명투로 대답했다.

《방사단장님, 이 사람은 〈대통령〉께서 직접 령을 내린 국사범입니다.》

하며 그는 량해를 구하듯 어색하게 웃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오성도의 눈만은 웃지 않는다. 입가에 웃음을 지어내고 볼편이 풀려도 그 눈찌만은 오히려 파릿해지면서 얼음처럼 차고 반들반들한 빛을 뿜었다. 뱁새눈처럼 가늘게 열려진 눈에서 속눈섭에 가리운 동자가 살모사의 눈처럼 예리한 광채를 내보낼 때면 보통사람들은 벌써 오금이 매시시해져서 말마디까지 떠듬거리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 눈이 신문쟁이들의 구설수에 올라 여러가지로 표현된다. 살모사눈이라느니 고양이눈이라느니 쥐눈이라느니 삵의 눈이라느니…

하지만 방대광의 간담은 그 눈에 풀리지 않았다.

《국사범?… 흥, …국사범은 국사범답게 취급해야지.》

방대광은 코방귀를 뀌고는 정시명의 앞에 무릎을 세우고 마주앉았다.

《정선생, 이게 어찌된 일이시오?》

《그렇게 됐소.》

《그렇게 되다니요?》

《리승만을 찾아가 나라건질 방략을 권고했더니 쇠고랑을 채우더구만.》

《예?!… 비루먹은 하늘소 같은게. 정선생, 이 사람이 날 찾아와 선생이야길 하기에 여기 온줄 알았지요. 이 사람이 나를 데려온 목적인즉 이를테면 전향공작에 협조하라는거지요.》

그 소리에 정시명은 껄껄 웃었다. 그러면서도 방대광의 뒤소리가 기다려졌는데 당자도 너털웃음부터 터쳐놓는다.

《내 껄끄름하면서도 쾌히 동의한것은 실상 선생을 뵙고싶었기때문이요. 본부장, 석방하시오. 만약 나와 만났던 일때문이라면 당장 석방하시오. 아니면 나도 함께 여기서 옥살이를 시키든지. 이분은 김장군의 대표야!》

《선배님, 자중하십시오.》

오성도가 다소 권력의 입김이 풍기는 어조로 방대광의 옹골찬 말투를 누르려고 하였다.

그러나 방대광은 그 말투가 거슬려 더구나 분기가 꼭뒤까지 뻗쳐올라 버럭 고함을 질렀다.

《자중하라구?… 그래 뉘들이 써낸 대사를 나더러 따라외우라는거야? 자넨 이분의 몸값도 모르지만 이 방대광의 몸값도 모르는구만.》

오성도가 록록치 않게 눈을 치뜨더니 성깔사납게 쏘아붙였다.

《사단장님, 당신도 결국은 이 사람의 간계에 걸려들었습니다. 당신도 이 사람들의 모략에 걸려든 자신의 실책에 대하여 인정해야 합니다. 난 우리 수사본부의 상보를 발표하면서 당신에게 대답이 될수 있는 해명을 충분히 하였습니다.》

《닥쳐, 본부장! 간계에 넘어갔다구? 이 방대광이 그런 맹물단진줄 아는가.》

방대광이 골이 나서 소리쳤으나 오성도는 그에는 아랑곳없이 옆에 끼고있던 서류가방에서 두장의 신문을 꺼내 방대광과 정시명에게 내밀었다.

《정선생, 난 당신을 리해합니다. 그러나 당신을 더는 도와줄수 없습니다. 당신은 리승만과 미국의 관심사인물입니다.

그들은 이미 당신운명에 명확한 선을 그어놓았습니다. 괴롭지만 우리들의 요구에 응하고 다시 정치무대에 나서겠는가, 아니면 자기의 인생을 끝내겠는가… 사태는 이 량극단에서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게 합니다. 우선 신문을 보십시오.》

신문을 재빨리 훑고난 정시명은 《본부장, 이젠 당신이 나라는 인간에 대하여 알만큼 알았다고 생각하는데…》하며 눈을 잠시 붙이고 생각에 잠기였다.

오성도는 정시명의 심중을 제나름으로 포착한듯 다소 밝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며칠후 미국대사관에서 1등서기관 노불이 당신을 만나려고 올것입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아십니까?》

《미중앙정보국의 서울책임자이며 리승만과 매우 절친한 막후조종인물이라는 정도로…》

《옳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상보가 마음에 드십니까?》

《당신들은 우리가 한 일에 대하여서는 비교적 사실그대로 밝혔소. 의견이 있다면 〈흥국상회〉의 투쟁규모를 너무 축소한거요. 당신들이 여기서 음페한것은 우리가 벌린 투쟁의 성격과 본질에 관한 문제요. 이건 리해가 되오. 반통일분자들이 통일운동자들의 투쟁의 의의를 공명정대하게 평가할수 없다는것은 불보듯 한 일이요. 여기서 나를 흥분시키는것은 당신들이 나더러 심문때도 그러했는데 김일성장군님의 대표라는 위임장을 제시하지 못한데 대하여 까박을 붙이고 다른 의미에서 해석하여 당신들의 모략에 써먹으려 시도하고있는 문제요.》

《옳습니다. 정선생님은 아직 그 문제에서 정확한 대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방선생님, 당신도 정선생이 제시한 대표위임장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위임장?… 그건…》

오성도의 대질심문에 방대광은 자기도 의식할새없이 끌려들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정시명이 다소 흥분한 어조로 궁한 처지에 빠져든 방대광의 말꼬리를 받아물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미 두세차례 천명한바가 있소.

좋소, 다시금 당신에게 명백히 밝혀두겠소.

나는 사실 장군님의 대표로 불리울만 한 재목이 못되오. 위임장을 받은 일은 더구나 없소.

김일성장군님과 나와의 관계로 보면 나는 그분의 통일애국의 뜻을 받든 전사요, 그분을 경모하는 만백성중의 한사람일따름이요. 나는 그분의 민족애에 반해서 벌써 광복전부터 그분을 따르리라 굳이 다짐하였소. 뭐 서울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뵙고 왔소. 내가 감히 장군님의 대표라고 서슴없이 밝혔던것은 그분의 위대한 통일의지를 꽃피우려는 나의 간절한 희망과 이 땅에서 그분의 사상과 리상을 대표하고싶은 열망으로부터 출발한것이였소. 나는 죽어도 그러한 자부심을 안고 죽으려고 하오.

요 며칠동안 당신의 부하들은 나더러 장군님의 밀령을 받고 서울에서 정부전복을 꾀한 〈용공간첩〉이라는것을 접수시키려고 갖은 오그랑수를 다 쓰고있소. 그건 당신들이 우리 장군님의 바다같은 도량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고 하는 수작들이요. 수리개가 제아무리 용맹하더라도 하늘의 끝을 다 헤아릴수 없고 물고기가 날래다 해서 바다의 깊이를 다 짚어낼수는 없소.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를 만나신 자리에서 서울에서 벌어지고있는 리승만암살기도들에 대하여 명백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하시면서 리승만까지도 조국의 통일위업에 동참시켜 그네의 이름도 통일력사에 새겨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하시였소.

이것이 바로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동포애요, 고결한 덕망이요, 자애론 인간사랑의 세계요!

그래 이러한 사상과 리념과 덕망을 따르고 대표하고싶은 우리의 권리를 당신들이 감히 막아나설수 있겠는가?

나는 민족의 이 당당한 권리행사에 당신들이 아무리 어지러운 감투를 씌운대도 두렵지 않소. 나라와 동포가 안중에 없는 당신들, 권력의 파수군들이 어찌 우리 장군님의 도량과 뜻을 만분의 하나인들 헤아릴수 있겠소.

난 여기 남녘의 형제들에게 장군님의 동포애를 전하기 위하여 애썼고 그 길에서 이 방사단장과도 마음이 통하게 됐던거요. 그걸 구태여 〈정부전복〉으로 명명한다면 당신네 식의 해석에 나는 동의하겠소.

그래, 이젠 오성도, 당신은 내가 김장군님의 대표로 스스로 자칭하고 나선것이 리해가 되오? 당신이야 대학물까지 먹은 지성인이 아닌가?》

오성도는 정시명이 고통을 참아내며 저저이 토해놓은 이야기에 취해있다가 그가 기침을 깇기 시작하자 그제야 수인앞에 나선 법관의 신분을 의식한듯 랭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손을 홱 내리찍었다.

《그만 하시오!》

그러나 그의 뜻과는 달리 목소리는 터갈라져나왔다. 그것은 정의앞에 선 부정의의 비명이였고 량심앞에 선 비량심의 전률이였다.

《오성도, 생각을 깊이 하게. 나나 자네나 광복후에 친일분자로 숙청돼야 할 사람들이였네. 헌데 말일세. 자넨 나하고도 처지가 달라. 지금 자네보고 사람들은 이남법조계에 떠오른 별이라고 한다더구만. 말하자면 난 명을 다하고 빛이 꺼진 인간이지만 자넨 앞길이 구만리라는거야. 한즉 더는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할 허물을 만들어내지 않는게 좋아.

그리고 자네가 섬기는 그 두상태기 진맥을 똑똑히 짚어보게. 백천가지 덮어놓고라도 절 찾아 화평담판하러온 지사를 이렇게 가두어놓고 막군들에게 넘겨 팔다리 부러지게 하는짓도 정치하는 놈의 례법인가? 참말로 패륜아요. 패덕한이야!》

방대광은 준절하게 꾸짖고는 혀를 끌끌 찼다.

그는 오성도를 호되게 답새겨 눌러놓고 정시명에게로 돌아섰다.

이 뜻 높고 불굴한 인간을 감방에 그냥 놔두고는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채 정시명의 부러진 팔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연해연송 방바닥이 꺼질듯 푸푸― 긴 한숨을 내쉬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잇! 한바탕 들부시고싶구나!》

그는 턱부리를 쳐들고 얼룩얼룩한 감방의 천정을 올려다보며 감때사납게 부르짖고는 신경질적으로 감방의 철창문을 홱 열어제끼며 감방에서 나가버렸다.

이날 밤 정시명은 온몸을 쑤시는 아픔과 함께 낮에 겪은 일들을 생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무엇보다도 방대광이 찾아온것이 그를 감동시켰다. 그가 던진 이야기들이 벅차고 신선한것이 차오르게 하였다. 자기 모습을 되찾으려는 지각과 량심만 있다면 인간은 어차피 방대광처럼 인생말년이라도 량심의 궤도우에 다시 오를수 있다.

지금까지 저 인간은 우리 인민들에게 어지러운 인간으로 평가되여왔지만 력사는 공정하다. 그리고 력사는 대범하다. 후대들은 어느 때 가서라도 편견없이 매 인간들의 애국적량심에 대하여 재평가를 하게 될것이다. 설사 죽은 다음에라도 사람들의 량심에 대해서는 바르게 전해지게 될것이다.

방대광으로서도 죽기 전에 지나온 나날을 더듬으며 값지게 추억할만 한 선과 덕을 쌓게 되였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의거인가. 애국통일위업에 무엇인가 크게 빛을 내지는 못했어도 나름으로의 모지름을 쓴것이 있었다는 추억을 가지게 된것이 저 인간에게서는 아마도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재부로 남을것이다.

그러나 신문에 난 오성도의 상보는 그를 크게 괴롭혔다.

정시명은 오성도와 방대광이 감방을 나선 후 다시금 신문을 깐깐히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앞으로 예견되는 적들의 흉계의 저의가 다분히 드러나있었다. 《흥국상회》의 활동을 북의 조종으로 련결시켜 그 어떤 첩보적인 활동으로 국한시키려 하는것이였다. 오성도라는 놈이 등을 쳐서 간을 빼먹는 여우요, 웃는 이리요 하더니 상보를 엮어놓은 솜씨가 간특하고 노리는바가 음흉하기 그지없다.

오성도에게 애당초 기대를 걸어본 일은 없지만 그가 서울탈출을 제의해왔을 때 그래도 그놈이 민족앞에서 더는 죄를 짓지 않고 대세의 추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인생의 궤도를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속단이였다.

그것은 한갖 남과 북의 국민의 신임을 받을수 있는 인물을 위험으로부터 빼돌림으로써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려는 교활무쌍한 보신책이였다는것을 실감하였다.

최근에 남조선의 우익세력이 전반적으로 동요하고있다는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그들중에서 정세에 대한 식견이 있는자들은 저들의 운명이 여론의 재판에 오를 경우에 거기서 빠져나갈수 있도록 한두개씩 들고나설 주패장을 지금부터 마련하기 위하여 뒤구멍을 파고있었다. 그러나 그런 놈들이 다시 정세가 저들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지면 동요하던 때가 언제였더냐싶게 악을 쓰고 덤벼들것이다.

그러니 오성도의 눈에 정세가 다시 급회전할만 한 조짐이 나타나고있다는건가? 오성도도 전쟁바람에 말려들어 기운을 얻은것인가?

정시명은 오성도의 상보에서 《흥국상회》의 활동을 리승만의 전쟁도발의 하나의 구실로 만들려는 적들의 흉계가 다시금 짚이우자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전률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놈들이 이미 사회여론을 향해 시작한 모략극을 짓부시고 《흥국상회》의 애국적리념을 지키고 그 활동의 민족사적의의를 과시할수 있겠는가?

정시명은 새롭게 자신이 해나가야 할 과제를 찾아내자 흥분하였고 거기에 사색을 집중시키느라 아픔도 가뭇 잊어버렸다.

《선생님, 주무십니까?》

이제껏 옆에서 누워 잠든줄 알았던 맹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어서 자오.》

《잠이 오지 않습니다. 잠들고싶지 않습니다.》

어쩐지 례사롭지 않다.

《그래? 그럼 얘기나 하지.… 누워서… 누운채로.》

《전 아까 신문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제가 속한 조직이 얼마나 큰일을 해온 집단인가 하는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그래…》

정시명은 반듯이 누운채 미소를 지었다. 이 영특하고 애젊은 청년이 지금까지는 조직이라는 하나의 큰 집단을 이루고있는 작은 서까래에 불과하였으니 그의 전모를 모르고 지냈다가 비로소 그 웅장함에 접하여 크게 흥분된 모양이다.

《정말 저놈들이 발표한 내용이 맞습니까?》

《맞는것도 있고 꾸며낸것도 있지. 쏘미회담이니 〈국회〉투쟁이니 남북회담이니… 뭐 이러루한것들은 대체로 맞고… 하지만 우린 그보다도 비할바없이 더 큰 싸움을 벌려왔고 크게 이겨왔지…》

《예― 그렇군요!》

맹호는 크게 놀라면서 감격을 금할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그는 지금까지 누워서 신문의 내용을 더듬으면서 의혹을 풀지 못하면서도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 잠들수가 없었던것이다. 그 커다란 사변들에 자기의 땀도 스며있다는것이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흐뭇하였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게 사실인가, 놈들이 과장날조해서 발표한것이겠지 하는 생각도 금할수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책임자에게서 사실확인까지 받고나자 그는 더욱 커다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게 뛰였다.

정시명은 그가 크게 감동에 젖어 기세가 높아졌다는것을 느끼자 전우들에게 투쟁내용을 다 알려주는것이 좋을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것이 그들의 법정투쟁에서 힘으로 되고 의지가 될것이다. 피와 희생의 보람에 대한 긍지와 자각은 전우들을 더 크게 결속시켜줄것이다. 그리고 적들의 흉계를 전우들이 미리 알고 대처하도록 하는데도 좋을것 같다.

《맹호동무, 그 신문을 우리만 보지 말고 어떻게 감방에 다 돌릴수가 없을가?》

《예?… 예, 정말 모두 좋아할겁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래일 운동시간에 넘기겠습니다. 전 사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큰일을 해낸걸 모르고있었습니다. 이런 싸움에 저도 끼였다고 생각하니 정말 기운이 납니다. 죽어도 한이 없을것 같습니다.》

맹호는 여전히 기세충천해서 부르짖었다.

《자, 눕소. 밤에 달게 자야 낮에 힘을 돋굴수 있소.》

《예!》

맹호는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다시 정시명의 옆자리에 누웠다.

그들은 천정에 매달린 수수떡같은 전등불을 쳐다보며 자기 생각에 잠겨들었다.

인차 맹호가 잠이 든듯 가벼운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단잠에 든 모양이다. 피와 희생의 보람으로 하여 맹호는 행복해하고 쉽게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

감방은 무덤속처럼 괴괴하였다.

간간이 뒤산에서 접동새가 슬피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접동― 접동― 접동―》

부르고 화답하는 접동새의 구슬픈 울음소리는 감방에서 쉬이 잠들지 못하고있는 수인들을 명상의 세계로 실어간다.

정시명의 마음도 그 접동새의 처량한 울음소리에 실려 멀리로 날아갔다.

물결맑은 순화강, 누렁소가 가담가담 풀을 뜯고 하늘이 높게 들렸던 가을날의 그 유정한 강반이 눈앞에 삼삼히 다가온다.

그 강반에 호탕히도 울려퍼지던 위대한 인간의 장쾌한 웃음!… 목메이는 사랑의 향기가 진동하고 가슴쩌릿한 행복의 음향이 꽃보라처럼 날리던 그 고결한 추억의 쪽대문을 열자 정시명은 마음속이 따스해왔다.

장군님께서는 지금 집무실에 계실가? 어느 공장의 구내길을 거닐고계실가, 아니면 홀로 지도앞에서 가까이 들려오는 전쟁의 포성에 귀를 기울이고계실가?…

아, 나는 그이께 다진 언약을 다하지 못했구나. 순화강에서 다진 그 언약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느라 했건만 끝내…

그는 부지중 가슴속깊이에서 쇠물처럼 굼니는 격정을 안고 부르짖었다.

《장군님이시여! 당신의 전사 정시명은 최후의 시각도 당신의 전사답게 맞이하리다!》

《접동― 접동―》 접동새의 우짖음이 더욱 유정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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