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에 젖은 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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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승만의 오른팔격인 경무대 비서실장의 방에서 정시명의 처리와 관련한 긴급모의가 열렸다.

리승만측을 대표하여 비서실장이 참가하고 대법원과 검찰청의 대표 그리고 합동수사본부 본부장 오성도가 참가하였다.

그동안 정시명에 대한 체포에 각별한 관심을 보여온 미국대사관측을 대표하여 노불도 왔다.

비서실장이 먼저 정시명을 전향시킬데 대한 리승만의 립장을 짤막히 전달하였다.

《대통령께서는 정시명이 협조한다면 즉시 대사를 내릴데 대한 특별칙사를 발표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성도는 비서실장이 정중한 어조로 말하고 자리에 앉자 즉시에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오성도는 이런 일에서는 서뿔리 허리굽히고 나서면 뒤날에 책임한계가 따져진다는것을 잘 알고있는지라 접수는 하되 곱게는 받아들일수 없다고 생각하였던것이다.

《정시명을 전향시킨다는것은…》

오성도는 불쑥 튀여나오는 자극적인 표현을 피하느라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젖까지 와서 뱅뱅 도는 《서쪽에서 해를 띄우는 일》이라는 대답대신 《쉽지 않을겁니다.》하고 여유있는 대답을 했다.

오성도의 말에 노불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성도는 맞서기만 하면 까닭없이 불쾌해지는 노불의 동의를 받는것이 언짢았지만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립장표시라는 부담스러운 자리였으므로 노불의 동의가 다행스러웠다.

비서실장은 두사람이 다 반대의사를 명백히 보이자 다소 근엄한 자세로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론난이 있으리라는것도 미리 예견하셨습니다. 그러니 본부장은 그런 방향에서 최선을 다하여야 할줄로 믿소.》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령에 날을 세우고 무게를 가하며 특히 노불이 딴전을 부릴가봐 오금을 박았었다.

노불은 리승만의 고집에 습관되여있는지라 더 주장을 펴지 않고 고개를 다시 끄덕거리는것으로 자기의 립장을 바꾸었다.

오성도도 별수 없는듯 《알겠습니다.》하고 간단하게 접수하였다.

이리하여 긴급모의는 정시명조직을 뿌리채 일망타진하며 전향공작을 전격적으로 진행할데 대한 합의를 보고 인차 끝났다.

방을 나선 노불은 리승만을 만나볼가 하다가 오성도를 따라서며 말했다.

《본부장, 그 정시명에게 전해주시오. 내가 인차 찾아간다고.》

《당신이?… 그러면 당신이 직접 전향공작에…》

오성도는 노불의 심중이 인차 가닥이 잡히지 않아 뜨아한 기색을 지었다.

노불도 정시명이라는 인간을 전향시킬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 구워놓은 게처럼 생각하고 제가 나서려는가?

《아, 아니… 거저…》

노불도 오성도의 차고 예리한 눈이 자기의 살가죽을 파고드는 선뜩한 느낌을 받자 어설프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노불은 언제나 이 사람앞에서는 혀가 꾸둑꾸둑해지는것을 어찌할길 없다.

그들은 타고온 차를 타고 각기 제 소굴로 헤여져갔다.

노불이 정시명을 찾아가려는 목적은 좀 류다른것이였다.

첫째 목적은 그에 대한 호기심이였다.

정시명이란 어떤 인물인가.

서울에 들어선 이래 정시명과의 소리없는 대결을 해를 넘기며 벌려온 그였다. 정시명이라는 미지의 인물은 그의 뇌리에 수많은 의혹과 분노와 경탄을 불러낸 신비로운 존재였다.

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서울에서 거대한 군권과 통치권을 장악한 미국에 여러해째 맞서오는가.

오성도로부터 정시명이 서울에서 벌린 사업내용을 여러번 청취한 노불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노불은 젊은 시절에 첩보계에 발을 들이민 후 고금동서로 소문난 비밀결사들에 대하여 연구하여왔다.

그러나 정시명과 그의 동료들이 벌린 투쟁과 같은 선례를 찾아볼수 없었다.

《흥국상회》는 조직자체가 합법과 비합법의 효과를 최대로 활용한 특수한 집단이다. 그 활동규모와 심도에 있어서 류례가 없다. 활동방식과 수법에 있어서도 리해가 되지 않는것이 많다. 투쟁실적에 있어서는 한 나라의 정치권을 흔들어댈 정도의 용량이다.

노불은 미국과 정면으로 대결한 조선사람들의 담력에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이들은 서울에서 그 누구를 겨냥하여 포탄 한발 날린적이 없다고 한다. 헌데 어떻게 되여 벌써 여러해동안 미국의 뒤덜미를 움켜쥐고 내키는대로 백악관의 안방까지 들썩거리게 하였는가.

하긴 이 나라 사람들은 조상적부터 미국사람들을 강물속에 처넣은 전통이있다.

조선사람의 그러한 정신적위력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굴려보게 하는 인물이 정시명과 그의 동료들이다.

광복후 하지와 리승만과 무쵸를 상대로 과감하게 직사로 강타해온 그 인물이 노불에게는 벌써부터 위압적이고 신비의 운무에 휘감겨 솟아있었다.

노불은 그와 직접 만나 한번 얘기라도 나누고싶었는데 드디여 그런 행운이 차례진것이다.

정시명을 직접 만나보고싶은 다른 하나의 목적도 있었다.

최근에 노불은 조선에서 살아온 50년세월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보고싶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있었다.

거기에 조선의 력사와 지리, 풍습과 문물을 아는껏 그려볼 심산이였다. 아직도 미국사람들에게는 조선이란 미개한 렬등민족이 사는, 그러면서도 발길에 걷어채이는것이 누런 황금덩이라는 나라로 인식되여있다.

신비스러우면서도 군침이 도는 나라…

이것은 미구하여 세상에 나타날 책의 운명을 광휘롭게 해줄수 있는 관건적인 요소이다. 독자들은 누구나 상상밖의 이야기를 좋아하며 렵기적인것을 좋아한다. 이 땅과 이 땅의 주인들은 충분히 미국사람들을 매혹시킬수 있는 대상들이다. 언젠가 무쵸에게 한마디 넌지시 비쳤더니 대찬성이였다. 그 책이 나오면 우선 자기부터 열성독자가 돼주겠다고 하였다.

노불은 서울에 왔던 뉴욕도서출판사 사장에게도 책의 집필목적과 서술체계에 대하여 설명한 일이 있었다. 그도 역시 그 책은 조선반도에 대한 미정계의 관심이 폭발점에 이르고있는 현시점에서 틀림없이 베스트셀러(가장 많이 팔리는 책)가 될것이라 장담하면서 당장 자기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자고 했다.

두사람의 의욕적인 지지를 받자 노불은 분명 그 책은 자신의 로후생계를 윤택하게 해줄수 있는 황금거위로 될것이라고 확신하고 슬금슬금 체계를 세우고 자료수집을 착실히 해나갔다.

그러지 않아도 얼마전부터 노불은 이제는 자기 나이면 복잡다단하고 구린내가 나는 정치와 모략의 세계에서 벗어나 인생사를 새롭게 정립해갈 때가 되였다고 생각하여왔다. 그 책에 조선의 수려한 산천, 조선의 눈부신 아침과 아름다운 저녁노을, 조선의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을 될수록 그대로 그려갈것이라고 결심하였다.

이 땅에다가 태를 묻고 이 땅의 신선한 공기와 맑은 물을 마시며 자라온 노불은 이 땅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있는 흔치 않은 미국사람이였다. 그는 지금도 어린 시절 노닐던 대동강이며 솔숲 푸른 모란봉을 애틋한 감회속에 추억하군 하였다. 하기는 노불의 출생지는 미국이 아니라 평양이다. 노불이 태여나 처음으로 본 하늘은 그의 조상들이 살아왔던 매연으로 하냥 흐려있는 아틀란드의 하늘이 아니라 햇솜같은 흰구름이 피여나던 평양의 하늘이였다.

지금 미국에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조선사람들을 잘 모르고 숱한 지령과 추궁을 해오며 현지에 가있는 전권대표들의 무능에 대하여 고아대고있다. 그러니 결국 대조선정책은 코코에 엉망진창이다. 무지가 빚어놓은 통탄할만 한 일이다. 미국은 이미 이 나라를 《셔먼》호의 대포로 굴복시켜보려고 하다가 쫓기고 불타고 만신창이 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의 혼맹이를 뽑아보려고 선교사를 앞세우고 금계탑같은 약으로 녹여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실패하였다. 그쯤되면 이 나라에 대한 판단과 처방이 달리 되겠는데 아직도 백악관은 19세기 중반기의 진단 그대로 어리석게 이 나라와 말하고있다.

이제 또 대포로 반도전체를 거머쥐려고 하는데 노불은 개인적견해로는 승산이 없는 대도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 노불은 자기의 책에 조선사람의 정신적산아들인 려운형과 김구와 함께 정시명도 소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여기서 제일 매력적인 인물이 정시명이다.

려운형과 김구는 미국에 비협조적이며 미군정을 반대하여온 반항적인 지도자들이라면 정시명은 그 지위와 성격이 다르다. 정시명은 반항적이면서 미국의 대조선정책을 통채로 주무르고 능란한 책략과 담력으로 자기들의 정치적의도를 고압적으로 관철시켜온 인물이다.

노불은 이 인물의 비상한 용기와 담기와 재능에 대해 알고있었다. 특기할만 한 가치가 있는 거인이다.

그래 광복후의 남조선의 정치사를 주름잡아온 정시명이라는 미지의 인물의 초상과 인격, 사상과 리념, 취미와 정서, 성격적특질에 대해서도 언급할 심산이였다.

노불은 자기 앞에 설정한 이 과제를 미국에 대한 첩보원으로서의 마지막 봉사라고 자기를 위안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첩보의 원칙을 살리기로 결심을 벼리고있었다.

첩보의 세계에는 첩보의 륜리가 있다. 그것은 보고 듣고 체험한것을 말그대로 《그대로》 제공해야 한다는것이다. 첩보가 위정자의 구미에 따라 재료리되거나 특정집단의 정치방식과 리해관계에 따라 색갈이 달라지면 그것은 첩보의 본질이 탈색된것이다.

지금껏 이 원칙을 지켜내지 못한 노불은 이제 서술하게 될 책에서만은 그 어떤 도전이나 압력도 배제하고 조선과 조선사람들을 그리고 정시명에 대해서도 아는껏 생겨먹은 그대로 옮길 생각이였다.

이것으로 하여 경무대의 안방주인 프란체스까로부터 정시명을 체포할데 대한 통보를 받은 그 순간부터 노불은 지금까지 맞서온 인물을 드디여 손에 넣게 되였다는 성취감과 함께 이러루한 자기의 리해관계와 호기심을 만족시킬수 있게 되였다는 야릇한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그래 즉시로 오성도에게 자기가 인차 찾아갈것이라는 이야기를 정시명에게 전해주라고 지시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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