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에 젖은 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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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형무소는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었다. 이 건물은 1908년에 경성감옥으로 시작이 되였다. 그후로 일본놈들이 넘겨받아 부지를 늘구고 감방도 더 건설하여 부지면적이 일약 3만 1천 5백 44평에 달하는 감옥지역으로 되였다.

일본놈들은 죄수들의 도주를 막기 위하여 붉은 벽돌로 4m이상의 담벽을 둘러치고 여기저기에 망루를 세워놓았다.

광복후에 리승만의 지시로 담장에 하얀칠을 하였다. 이른바 형벌보다 교도를 강조한다는 의미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초기부터 대체로 정치범만 가두어두는 곳이였다. 광복전까지 무려 1천 693명의 광복운동자들이 여기서 옥살이를 하였다.

광복이래 이곳에는 주로 통일운동에 나섰거나 반미반독재투쟁에 나섰던 사람들이 쇠고랑을 차고있었다.

오성도가 관할하게 된 《흥국상회》의 관련자들은 감옥에서 제일 으슥진 곳에 위치한 10호동에 수용되여있었다.

김명호는 이날 아침 통풍구에 해빛이 비쳐들 때에야 깨여났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방안을 천천히 거닐기 시작하였다. 왼다리가 아직도 신경이 풀리지 않아 발을 옮길 때마다 절룩거렸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벽을 손으로 짚으며 걸음을 옮겼다.

옆감방에서는 여러 사람이 일어나 실내체조를 하는것 같았다.

감옥에 들어온 후 김명호는 점차 안정이 되고 고열도 내리고 기침도 멎었다. 그 사이에 오성도가 한번 왔다가고는 더는 불러내지 않았다.

오성도는 김명호가 제발로 찾아들어온것을 의아쩍어하면서도 정시명이 자기의 《호의》를 일축했다는것을 깨닫고 입만 쓰겁게 다시였다. 그리고는 자기의 소행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신경을 썼다.

오성도의 념려를 알게 된 김명호는 그럴법 한 일이라고 인정하고 시원스럽게 말해주었다.

《정도 품앗이라는 말이 있소. 우리 사람들은 선의에 악으로 대답하는 비렬한짓을 하지 않소.》

오성도는 김명호가 분명 정시명에게서 새로운 지시를 받고 들어왔을것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지하의 사형수감방에서 꺼내 10호동의 독감방에 따로 수감하라고 지시하고는 도망치듯 가버렸다.

김명호는 감방의 전우들과의 련계를 곧 회복하였다. 그는 통방신호로 동지들속에서 변절행위가 속출되고있으며 결과 몇개의 거점이 기습을 당하였다는것을 공개하였다. 그리고 《죽음도 투쟁이다!》,《감옥도 전투장이다》는 구호를 매일 아침과 저녁에 한차례씩 통방신호로 전하군 하였다.

김명호의 호소는 감옥안의 동지들에게 그대로 전달되여 그들을 단합시키고 그들의 피를 끓게 하였다.

감방들에서는 그날 심문에서 제기된 사항들을 짤막짤막하게 보고하여왔다.

벌써 서른명의 동지들이 놈들의 고문에 숨이 지거나 재판도 없이 단두대에 끌려가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그밖의 적지 않은 동지들이 팔다리가 부서지고 척추가 부러지고 운신도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더는 변절행위가 나오지 않았으며 투지만만해서 싸우고있었다.

교형리들의 수사는 정시명의 거처를 알아내기 위한 방향으로 집중되고있었다.

하나와 같이 모른다고 버티고있었다.

하기는 정시명이 누구라는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례영이까지도 모르고 서울을 떠나갔다.

심문은 주로 서울경찰청 부청장이며 수사본부의 부책임자인 최운하의 지시와 감독밑에 야만적으로 벌어졌다.

김명호는 천천히 감방을 몇바퀴 돌고는 벽에 다가앉아 통방신호를 시작하였다.

《동지들, 새날이 밝았다. 감옥도 전투장이다.》

통방신호는 옆방에 전달되여 다음 방으로 전해져갔다. 그것은 오늘 하루도 교형리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자는 심장과 심장들이 나누는 당부이고 맹세였다.

김명호가 통방신호를 그칠무렵에 갑자기 밖에서 자동차 멎는 소리가 났다.

김명호는 통풍구에 턱을 걸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한대의 수인차가 10호동 뒤마당에 들어온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잠시후 호동 철문이 찌그덩거리였다.

옆방에서 통방신호가 전달되여왔다.

《수인차가 왔다. 거기서 경찰놈들이 담가 두채를 들고 내렸다. 담가 한채는 지하감방으로 갔고 또 한채는 2층으로 올라갔다.》

김명호는 갑자기 흉벽이 쿵쿵 울리기 시작하였다. 10호동에 왔다면 틀림없이 오성도가 끌어온 사람들이고 《흥국상회》사람들일것이다. 누가 또 불었는가.

더욱 놀라게 한것은 담가 하나가 지하감방으로 갔다는것이다. 자기도 《흥국상회》지도부성원이라는것이 적들에게 확인되였을 때부터 지하감방에 갇혀 악형을 받았다.

그러면 길철부회장이 잡혀왔는가? 혹시?… 김명호는 갑자기 전기에라도 감전된듯 온몸이 쩌릿해왔으나 머리를 홱 내저으며 강하게 부정하였다.

그럴리 없다, 그럴리 없다. 회장동지가 여기로 끌려올리는 만무하다. 김명호는 떠나오기 전에 길철부회장에게 회장의 신변문제를 다시 강조해주지 못하고 떠나온것이 후회막심하였다.

 

… 정시명이 지하감방에서 눈을 뜬것은 여러 시간후였다. 한줄기 빛도 없는 컴컴한 곳이였다.

(예가 어딜가?…)

정시명은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듯 한 아픔을 느끼며 의식을 가다듬었다.

악몽과도 같은 괴괴한 정적이 깃들고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똘랑똘랑 으스스하게 들리고 쥐새끼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릴뿐이다.

그는 몸을 세우려고 손을 허우적거렸으나 잡히는것은 누기찬 어둠뿐이다.

(감방이로구나. … 그런데 동굴속인가?… 김명호가 지하감방에 갇혀있었다더니 여기가 서대문형무소인가?…)

꿈속일처럼 어제 저녁무렵에 있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 정시명이 탄 차는 경무대의 정문을 벗어났을 때부터 다섯대의 오토바이와 두대의 경찰차의 추격을 받았다.

자동차가 죽첨동 네거리를 벗어나 아현동고개에 올라섰을 때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따라오던 오토바이들이 갑자기 속도를 높여 앞서더니 차를 세우게 하고 수갑부터 절렁거리며 욱 달려들었다.

《경무대 경찰이다. 수갑을 받아.》

박륭정이 왼손에 틀어쥐고있던 스파나로 앞에서 너덜거리는 놈을 후려쳤다.

그러자 10여명의 경무대경찰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무작정 총탁으로 까고 주먹으로 냅다지르며 한바탕 행패질을 하였다.

놈들의 폭행에 박륭정이 온몸에 피칠갑하여 쓰러지고 정시명은 한팔이 부러지고 허리도 심히 상하였다.

그들은 의식을 잃은채 경무대경찰서 구류장에 갇혀있다가 새벽 일찌기 최운하의 손에 넘어왔다. …

정시명은 이곳이 서대문형무소라면 전우들을 만나게 될수 있다는 생각에 저으기 마음이 놓이였다.

한치앞도 보이지 않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아픔을 이겨내며 요 며칠사이 벌어졌던 일들을 되새겨보고 재평가를 내렸다.

이제 다시는 투쟁에 합세할수 없다는 생각이 그를 고통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리승만을 단독으로 만나 설전을 벌린데 대하여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찌보면 자기의 삶을 총화한 새로운 방식의 투쟁이고 승리이기도 하였다. 매국과 전횡으로 나날들을 보내고 악의 장막에 가리워있던 그 인간에게도 이 나라 인민의 참목소리가 정확하게 전달된것만 해도 다행이고 성과였다.

이제부터 맞다들 상황과 투쟁에 대하여 그려보았다.

반심문투쟁이다. 동지들을 찾아야 한다. 여기서도 동지들과 조직을 찾아야 한다. 감옥밖의 조직과도 빨리 선을 이어 밖의 전우들이 싸움을 계속하도록 밀어주어야 한다.

길철은 지금 파괴된 조직을 수습하면서 전쟁도발에 대처할 여러가지 투쟁을 조직하고있다. 군수기업소들에서는 태업투쟁이 벌어지고있으며 서울시안의 대학들에서는 학생전쟁반대소조가 조직되여 활발히 움직이고있었다. 그리고 사처에 전쟁놀음을 반대배격하는 여러가지 형식의 조직들이 무어져 활동하였다. 군부안에도 새로운 애국조직들이 무어져 병사들과 장교들속에서 반전선전을 광범하게 벌리는가 하면 유사시 빨찌산에 합세하기 위한 준비도 진척되고있었다.

이 투쟁을 계속 고무하고 힘차게 추동해야 한다.

정시명은 이제부터 자기앞에 나선 또 하나의 투쟁은 감옥안의 동지들의 투쟁을 지도하여 그들이 용기와 신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적들과 싸워나가도록 하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감방안에서 어떻게 시간이 흘러가는지도 의식할수가 없었다. 아픔속에서 배고픔이 느껴지는것으로 보아 어림짐작으로 시간이 흐르고 날자도 바뀌는것 같은데 어느 놈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다.

《잠이나 청해야지.》

정시명은 중얼거리다가 짜릿해오는 충격에 흠칫 굳어졌다.

《승원이 그 사람이 말했지. 가막소에 가서 밀린 잠이나 실컷 자두고 오겠다고… 음-》

정시명은 눈을 스르르 감았다. 온몸을 들쑤시는 동통과 무수히 일고잦는 생각들에서 피해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그는 단조롭게 수자를 세기 시작하였다. 잠을 청할 때면 항용 써보는 방법이다.

하건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전히 새록새록하다. 그는 잠을 청하는것이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오금에 힘을 주었다. 무엇인가 붙잡으려고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으나 왼손은 들리지도 않고 오른손에 잡히는것은 여전히 누기찬 어둠뿐이였다.

그러자 자기도 어쩔새없이 신음소리가 나왔다. 아직은 육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일어나기는 코집이 글렀다. 하기는 일어날 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칠흑같은 악몽속에 묻혀있으니 일어나 앉아있어야 힘만 뽑을뿐이다.

그는 다시 잠을 청하려는 생각은 단념하였다.

그러자 기다린듯 추억의 세계가 그의 뇌리를 꽉 채우기 시작하였다.

밤! 밤! 밤은 결코 악몽의 세계가 아니다. 은하의 세계, 반짝이는 별의 세계다. 별이 총총한 밤!

문득 그의 눈앞으로 저멀리 중국의 서안의 그 밤이 떠올랐다.

어째서인지 심장부터 쿵쿵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참말 정시명의 인생에서 환희와 열정과 자각을 주는 가장 귀중한 추억이다.

그 밤에 그의 인생의 극적인 전환이 결정되였던것이다.

분렬된 겨레의 아픔을 씻고야말 남다른 포부와 의지가 별빛 령롱하던 그 밤에 굳어졌었다. 반짝반짝거리던 뭇별들을 쳐다보며 청청한 하늘에 수놓아가듯 마음속에 새겨가던 인생전환의 속다짐이 떠올랐다.

《옳은 선택이였던가?…》

정시명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다.

그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 별이 총총한 그 밤에 시작된 새로운 투쟁무대에서의 수난에 찬 나날들이 떠올랐다.

그는 랭정한 리성의 눈으로 시야에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복잡다단하였던 싸움들을 하나하나 주의깊이 더듬어갔다. 굵직굵직한 과제들을 스스로 둘러멨다. 쏘미공동위원회와 관련한 투쟁, 《유엔조선위원단》과의 공작, 북남정치인들의 련석회의 실현, 미군철거투쟁… 어느 하나도 헐치 않았고 그 규모와 투쟁의 진폭 또한 거창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해제꼈다. 련전련승의 쾌가를 울려왔다. 우리의 투쟁이 통일위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긍지를 가지고 선언할수 있다.

보다 큰 자랑거리는 우리모두가 나라앞에서 스스로 걸머진 막중한 임무를 위해 자기들의 힘과 재능을 아끼지 않았다는것이다. 할수 있는껏 땀과 지혜와 피와 지어는 목숨까지 다 바쳐왔다. 아니 우리는 능력의 한계를 뛰여넘어 최선을 다했노라 자부할수 있다. 그러니 이 서울땅에서 인생의 참의미를 찾기로 했던 그 이역의 총총한 별밑에서 쉽지 않게 내렸던 선택은 옳은것이였다.

허지만… 지금까지 승리자연한 희열과 긍지로 부풀던 가슴은 새벽안개처럼 홀연히 잦아내리고 뼈아픈 자책과 죄스러움이 꾸역꾸역 차들었다.

그리도 애타게 바라던 조국의 통일은 아직도 투쟁과제로 남아있다. 동족상쟁의 불구름은 바야흐로 머리우에 무겁게 드리워 불의 소나기가 되여 쏟아질 전야에 이르렀다. 나, 정시명은 겨레앞에 다졌던 언약을 다하지 못했구나. 아, 나야말로 력사앞에서 제할바를 다하지 못한채 중도에서 쓰러져버리는 죄인이구나.

쓰라린 비분이 파편처럼, 칼날처럼 가슴한복판에 쿡 박혀들었다.

추억의 세계를 떠올려놓고 쓰라린 자책에 잠겨들던 정시명의 바닥없는 사색은 문득 들려온 발자국소리로 토막났다. 여기로 들어오는 통로가 꽤나 긴지 멀리서 굴안이 쿵쿵 울리더니 여럿의 구두발소리가 어지럽게 가까와왔다. 여러개의 전지불이 지하감방의 여기저기를 핥았다.

그제야 정시명은 자기가 갇힌 곳을 둘러볼수 있었다.

《정신을 차렸는가?》

어느 놈이 전지불로 정시명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치며 물었다.

정시명은 눈이 사물거려 성한 팔로 얼굴을 가리웠다.

《걸을수 있는가?》

정시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담가에 실엇!》

그놈의 구령에 따라 두놈이 달려들어 우악스럽게 그의 팔다리를 들어 담가에 눕혔다.

정시명은 저도 모르게 나직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긴 통로를 지나 밖으로 나갔다. 저녁무렵이였다. 또 하루가 지난 모양이다. 밝은 빛이 무척 반갑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유난히도 정겹다.

간수들은 정시명을 10호동의 뒤에 있는 자그마한 목조건물로 실어갔다.

이 주변에 철창을 붙이지 않고 창마다 카텐을 드리워놓은 집은 그것밖에 없는듯싶었다.

정시명은 어느 한 방의 침대에 옮겨졌다.

의사가 들어와서 상처들을 살펴보고 얼굴에 묻은 피자국을 솜으로 꼼꼼히 닦아주고 나갔다.

정시명은 첫 심문을 시작하려는가부다 하고 저으기 긴장해졌다. 잠시후 마당에서 자동차가 급제동하는 소리가 나더니 여러놈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방문이 열리자 보통키에 허리통이 호리호리한 양복쟁이가 앞장서 들어오고 그 뒤로 금줄을 두른 경찰제복차림의 고관이 들어섰다.

방안에 있던 간수들이 일제히 인사를 하고는 부동자세로 그들을 맞는다.

양복쟁이는 넥타이를 조여매고 머리칼에는 동백기름을 발랐는데 진한 향수내까지 풍기였다.

양복쟁이는 자기를 맞아주는 간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정시명의 앞으로 다가와서 잠시 포악한 만행의 자리가 력력한 정시명의 아래우를 찬찬히 살피였다.

《다들 나가시오!》

양복쟁이는 간수들이 줄레줄레 나가버리자 그 자리에 서있는 경찰고관에게도 《당신도 잠간… 난 이 사람과 몇마디 조용히 말할게 있소.》하고 그마저 쫓아버렸다.

경찰고관이 힐끔 곱지 않은 눈총을 던졌으나 양복쟁이의 위압적인 눈길에 예기가 질린듯 공손히 물러났다.

나들문이 닫기자 양복쟁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자기를 소개하였다.

《정선생, 내가 오성도입니다. 들으셨겠지요?》

카랑카랑한 말투였다.

그 소리에 정시명은 잠시 그에게로 눈길을 보내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아, 자네가 오성도였구만. 좌익권에서 자넬 곱게 보지 않지.》

《길게 말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째서 서울을 뜨지 않았습니까?》

오성도는 실무적인 어조로 쌀쌀하게 물었다.

《내가 서울을 뜨다니?》

《내가 당신들에게 보인 처음이자 마지막호의였습니다. 당신은 이런 난처한 처지에 빠지리라는걸 예상하지 못하였습니까? 당신은 나도 난처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참, 미안하구만. 하여튼 고맙소. 그런데 오성도본부장, 그건 당신이 나를 잘못 알고 베푼 호의였소.》

《잘못 알다니요. …난 김장군의 대표를 모살해서는 안되겠다는 나름으로의 량심에서 어렵게 선택한 일이였습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는 당신을 모살하여 김장군께 득죄하고싶은 생각은 지금도 없습니다. 난 얼마전에 통일호소문을 가지고 찾아온 이북의 사절들을 체포한 우리 당국의 처사에 대하여 문명하지 못한 폭거라고 개탄하고있습니다. 당신에 대한 나의 립장도 다를바 없습니다.》

《당신의 호의를 내가 다르게 받아들이는건 다른 문제요. 나는 죽을 때까지 통일만세를 부르려고 이미 결심품고 이 길에 나선 사람이요. 이건 분렬된 이 나라의 운명이 걱정되여 이 길에 오른 나의 필생의 의지이고 행복이기도 하오. 헌데 당신은 그걸 리해하려 하지 않고 나 홀로 서울을 뜨라니 어디 될상싶은 이야기요. 그래 호의는 고맙지만 받아들일수 없었던거요.》

《이제 또 그런 기회를 마련한다고 해도 사절하겠습니까?》

《물론, 내가 서울에서 활동하는 담보가 있는 호의라면 받아들일수 있소. 더구나 나와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해온 동지 수백명을 여기에 두고 떠난다는것은 량심에 죄되는 일이요. 본부장, 그 말이라면 그만합시다.》

《나에게 부탁할게 없습니까?》

오성도는 이 사람과는 긴 흥정이 무모한 일이라는것을 느끼자 차겁고 메마른 어조로 물었다.

《있소. 첫째는 정말로 당신이 더 득죄를 하지 않겠다면 우리 동지들에 대한 학살과 고문행위를 중지시키시오. 그들은 다 나라와 겨레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할 이 나라의 훌륭한 아들딸들이요. 둘째는 나를 이 새까만 굴에서 꺼내주고 내 방에 아무 사람이든 좋으니 한두명 넣어주오.》

《첫째 요구는 들어줄수 없습니다. 우리는 〈국회〉가 만들어낸 〈보안법〉이라는 국가법률에 따라 범죄를 계산하고 징벌을 합니다. 둘째 요구는 접수합니다.》

오성도는 고개를 까딱 숙여보이였다. 겨레의 수난을 그러안고 일신의 안위에는 초연하며 죽음도 흔연히 맞으려는 이 강직한 사나이앞에 그 정도로 경의를 표하는것이 죄스러웠던지 얼른 돌아서서 방에서 나가버렸다.

그는 마당에서 서성거리고있는 최운하를 보자 짤막하게 지시하였다.

《바깥 감방으로 옮기시오. 그리고 한사람을 집어넣으시오. 거들어줄만 한 녀석으로. 거물은 거물답게 대접해야지.》

《알았시다. 헌데 본부장, 저자가 정시명이라는게 맞기는 한 소리요?》

오성도는 그를 향해 마뜩지 않게 눈을 찔 빨고는 맺고 짜르는듯 한 랭담한 말투로 명령하였다.

《우리의 기본임무는 끝났소. 이제부터 수사본부는 세번째 작전으로 넘어가게 되오. 정시명조직의 전모를 들어내야 하오.》

《알았습니다.》

최운하는 자기의 상급동료인 오성도의 서리발같은 눈총에 질려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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