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장  결 전 전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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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범석은 사무실의 쏘파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다. 문진국더러 일체 방문객을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받아들이지 말라고 엄하게 지시하였다.

한시간전에 리범석은 기별없이 나타난 옛친구인 써젠트를 만났다.

써젠트는 중경에서 리범석이 미전략정보국 중경지국에 들락날락할 때 사귀였던 미국사람이였다. 광복후에는 리범석이 조직한 《민족청년단》고문으로 와있었다. 《민족청년단》을 세우고 막후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써젠트는 특히 미군정청의 정당, 단체 후원비에서 큰 몫을 짤라내여 리범석에게 넘겨줌으로써 빈손으로 서울에 들어왔던 리범석이 남조선에서 제일 큰 규모의 청년단체였던 《민족청년단》을 단시일안에 조직하고 통이 크게 운영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써젠트는 리범석이 총리로 입각하도록 떠밀어주고는 미중앙정보국 본부에 소환되였다. 일후에도 종종 서울에 그의 후원자로 리승만, 무쵸와의 모순과 대립을 해소하는데 중재인으로 되군 하였다.

리범석은 써젠트의 불의의 출현이 미국대사와 노불의 조종에 의한것이라는것을 간파하였다. 무쵸와 노불은 리범석이 화평통일론을 주장할 때부터 공공연히 압력을 가해오다가 최근에는 리승만과 함께 총리직사퇴를 권고하고있다. 그들의 사퇴권고에 직면할 때마다 리범석은 문진국을 불러 《이판에 사직해서 일개의 자유민이 되여 남북통일회담을 추진하겠다.》고 흥분하여 말하군 하였다. 그때마다 문진국은 《국무총리》자격으로 통일론을 주장해야 사회전반에 울리는 메아리가 커진다, 총리직을 내놓으면 리승만에게 쉽게 제압될수 있다, 김구, 려운형의 운명을 보라는 정시명의 의향을 정중히 전달하군 하였다.

써젠트는 리범석을 만나자 찾아온 용건을 내놓았다.

《리장군, 난 대사의 긴급요청을 받고 서울에 왔다. 대사는 〈대통령〉과 총리의 호흡이 일치되지 않고있는데 대하여 자기로서는 더이상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리범석―써젠트, 나와 대사 아니, 미국과의 모순이 걱정스러운가?

써젠트―좋도록 리해하라. 나와의 모순이라고 해도 된다. 이건 원론적인 문제다.

리범석―나는 우리 나라의 화평통일을 주장한다. 지난해까지 내가 《북벌》을 주장하고 《북벌》공격을 여러번 주도했던것은

      당신들도 번연히 아는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다 실패하였다. 오늘의 내외적여건은 더 렬악하다. 미국도 원조를 주

      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갈 길은 북과 회담을 벌려 함께 살아가는것이 아니겠는가.

       분렬은 참으로 우리들에게 거대한 부담거리를 만들어내고있다. 세월과 더불어 걷잡을수 없이 커가고만 있다. 분렬로

     인한 헛된 국력의 탕진을 나는 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냥 수수방관할수 없다.

써젠트―난 당신이 《한국》이 겪고있는 위기의 탈출구를 그쪽에서 찾는것이 위험천만하다는것을 경고하고싶다.

리범석―그러면 당신은 《북벌》을 통한 통일을 바라는가? 나는 미국이 그걸 추진해오고있다는것을 알고있다. 그렇기때문에

      나는 더구나 화평통일을 주장하는것이다. 어떤 리유에서든지 동족간의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이 땅의 량심인들의 제안을

      당신들도 리성적으로 분석해서 옳은 평가를 내리고 우리에게 공정한 조언을 주어야 한다.

써젠트―난 솔직하게 말하고싶다. 미국은 이미 선택하였다. 이제는 국론을 《북벌》이라는 한곬으로 모아야 한다.

리범석―그러면 지난 1월말에 당신네 국무장관이 대만과 남조선을 미국의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다고 한 애치슨라인 선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써젠트―난 당신께서 정치적행위의 본질에 대하여 옳게 리해해주기를 바란다. 최근 조선반도의 무력통일을 주장해온 덜레스

      가 애치슨의 고문으로 들어앉아 미국통치권의 각이한 주장을 일치시키는 작업에 착수하였다는것을 특별히 당신에게 통

     보한다. 그리고 미국회가 올해 군사예산항목에 전해의 2배에 달하는 500억딸라의 자금을 돌리였다는것도 통보한다. 이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은 옳게 판단해야 한다. 애치슨의 라인선포는 미국의 군사팽창주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있

     는 쓰딸린과 모택동의 주목을 돌리기 위한 정치적제스츄어정도로 접수하는것이 현명하다.

리범석―그러면 전쟁은 피할수 없게 되였는가?

써젠트―난 당신이 대세에 역행하지 말고 리승만과 무쵸대사와 맥을 같이할것을 오랜 친구로서 부탁하고저 한다. 무쵸대사는

     당신이 맥을 같이할수 없다면 물러나게 하는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반응하고있다. 나는 당신이 현직무에서 리탈함이 없

     이 자기의 주장을 교정하리라 기대한다.

 

원체 사고가 없고 실무적이면서도 단순한 써젠트의 말은 고저가 없이 부드럽게 흘러나왔으나 그밑으로는 나역시 리승만과 무쵸의 립장을 지지한다는 무언의 강한 입김이 스며있었다. 써젠트는 이 정도로 자기의 립장을 밝히고 하루후에 다시 찾아오겠노라 하고는 떠나갔다.

(그래, 그렇단 말이야. 맥을 같이할수 없으니 물러서야지. 암, 내가 리승만이나 미국과 맥을 같이할수 있는가.)

리범석은 예까지 생각을 굴리자 초인종을 눌렀다. 지금껏 소용돌이해온 끝없는 번민을 드디여 끝장내기로 결심하였다.

문진국이 들어왔다.

《이리 가까이 와서 앉으라구. 자, 받게. 내가 부르는대로 쓰게.》

리범석은 그에게 펜과 종이를 내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영문을 모르고 자기 말을 기다리는 문진국을 자리에 앉히고는 잠시 말없이 방안을 천천히 거닐었다.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대통령〉각하,… 썼나?… 본인은 총리직을 원만히 감당할수 없는 여러가지 사안이 있으므로 금일부터 본직무에서 해탈해줄것을 바라는바입니다.》

문진국은 그의 말을 받아쓰다말고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또다시 흥분이 발작한것인가. 벌써 다섯번째이다. 써젠트가 그의 심기를 흔들어놓고간 모양이다. 문진국이 간곡하게 만류하려고 하는데 리범석이 그의 심중을 알아차리고 석쉼한 어조로 설명을 하였다.

《왜 쓰지 않나? 내 결심을 자네들이 여러번 막아왔네만 이번은 최종적이야. 이번 사퇴문제는 좀 성격이 달라. 지금까지는 리승만꼴이 보기 싫고 양놈들이 하는짓이 너무 더러워 물러서려 했는데 이번에는 나의 인격과 량심에 관한 문제가 나섰어.

우리는 불운하게도 전쟁의 불소나기를 맞아야 할가보네. 그게 멀지 않았어. 내 더는 이 자리에서 전전긍긍하다가 리승만과 쌍벽을 이루어 동족상쟁의 불을 지른 전쟁도발자로 력사에 내 이름을 남길수는 없단 말일세. 이에 대해서는 그 정사장도 이미 경고한바일세. 그러니 이번 사퇴의향은 객기가 아닐세. 자, 마저 쓰라구… 한번 읽어주게.》

문진국이 리범석의 말투와 낯빛에서 더는 드틸수 없는 결연한것을 찾아보자 하는수없이 마저 써놓고 읽어주었다.

리범석은 실팍한 허리를 쏘파에 맥없이 붙이며 푹 꺼져든 소리로 부탁하였다.

《문장을 잘 다스려가지고 들어오게.》

문진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다가가다가 돌아섰다.

《하루만 저에게 문건을 완성할 시간을 주십시오.》

《하루?… 음… 정사장에게 통보하겠다는거겠지?》

《예?… 저 그건…》

넘겨짚어 직통배기로 내뱉는 소리에 문진국은 가슴이 덜컥하여 당황해하는데 리범석이 껄껄 웃었다.

《이봐, 비서… 내 눈을 속이지 못해. 낫가지고 눈가릴수야 있나. 난 자네가 내 집 지붕밑에서 딴꿈을 꾸고있다는걸 벌써부터 짐작했지. 헌데 뭐라나. 좋은 꿈을 꾸는거야 개의할것 없지.》

《사실은 그전에는…》

문진국이 오래동안 섬겨온 상전에 대한 정에 못이겨 얼굴이 금시 뜨끈뜨끈해져 말끝을 흐리마리하자 리범석은 만사를 초탈한 사람처럼 다시 껄껄 웃었다.

《됐네, 됐어. 뭘 계집애들처럼 그따위 일에 바글거리는거냐. 뜻이 좋아 뜻을 따르고 따르는 뜻을 보짱으로 세워두었으면 평생껏 그 뜻 허물지 말게. 자넨 젊어서 좋은 길에 들어선 행운아야. 어, 돌아서자고보니 어느덧 인생에 락엽이 졌거든.》

리범석은 부지불식간에 밸속 깊은데서 치달아오르는 절망과 공허감을 헌헌한 소리로 가리우며 문진국의 청을 받아주고 그의 등을 철썩 갈겨주었다.

문진국의 통보를 받은 정시명도 더는 리범석을 만류할수 없다는것을 알았다.

또다시 새로 조성된 정황이였다. 그래서 리범석의 사퇴후의 방향을 생각하여 의견을 적어보냈다.

 

리장군, 장군의 의로운 결단에 지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총리직사퇴가 범상한 일이 아닌만큼 만인에게 그 리유를 공개하고 립장표명을 강하게 하였으면 합니다.

리장군도 이미 접수하였겠지만 이북에서는 최근 또다시 평화적통일립장을 재천명하고 서울에 공식대표를 파견할것이라 하였습니다. 이러한 때 리장군의 총리직사퇴의 주되는 리유를 화평통일론에 대한 외세와 리승만일파의 반대와 끈질긴 압력으로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면 3천만의 지지와 공감을 크게 받을것이며 몰려드는 대재난을 막고 국토안정과 통일번영을 도모하는데 큰 기여로 될것입니다.

이러한 장거가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라의 통일을 위해 수천수만의 지사들이 이미 자기의 목숨을 바쳤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면서 더는 주저해서는 안될줄로 믿습니다. 정치인이 외부의 압력에 흰기를 들고 은둔하거나 제소리내길 두려워한다면 두고두고 한을 남기게 될것이고 나라앞에서 수치로 될것입니다.

나는 리장군의 태도표명이 사회의 광범한 지지를 받게 되리라는것을 확신하면서 금후 자기 세력을 결집시켜 강력한 반전통일운동을 이끌어줄것을 바랍니다. 우리도 리장군의 정의로운 진출을 적극 도와줄것이라는것을 확언합니다.

 

정시명의 편지를 받은 리범석은 운명의 좌절에 새로운 서광을 밝혀준 정시명의 고무에서 크게 흥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보다 굳센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정의와 불의가 명백해졌으나 선택은 가볍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드디여 열흘후에 리범석은 고민끝에 내외의 주요신문사와 방송사의 특파원들을 불러들였다. 기자회견장에서 리범석은 총리직사퇴를 선언하고 그 리유를 엄숙히 밝히였다.

《본인은 이 나라가 겪고있는 분렬의 비극을 더는 감수할수 없는 민족분렬시대에 사는 행정권의 수반으로서 화평통일에 대한 자신의 일관한 소신을 현 직무에서 도저히 실행할수 없으므로 오늘을 기하여 총리직에서 사퇴하기로 결심하였다.

지금 우리 민족은 분렬의 고통에다가 외세가 강요하는 전쟁이라는 새로운 멸살위기에 봉착하고있다. 이 나라에 태를 묻고 이 나라의 물과 공기를 마시며 자라난 사람이라면 단연코 이 나라의 아름다운 삼천리강토에 전고미문의 파괴와 살륙을 노리는 전쟁의 총포성이 울리는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나는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일본제국의 침략에 전체 국민이 분개하였던것처럼 분렬과 전쟁을 막고 평화와 통일을 위한 대세의 흐름에 동참할것을 이남국민에게 호소하면서 금후 일개 야인의 몸으로 통일운동에 나설것임을 밝힌다.》

리범석의 기자회견소식은 다음날로 서울안의 신문과 방송을 통하여 내외에 널리 전해졌다. 대기하고있던 많은 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이에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여 성명을 내고 각지에서 련대성집회들이 벌어졌다. 화평통일을 론제로 한 대정치전이 치렬하게 벌어졌다.

바빠맞은것은 무쵸와 리승만이였다. 그놈들은 전쟁과 분렬을 반대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리범석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련합되고있다는것을 직감하였다. 벌써 여러개의 군소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리범석의 휘하에 들어갈것을 요청하고있다는 소식이 미대사관의 첩자들과 경무대에 포착되여 리승만과 무쵸에게 전해졌다. 어느 한 주간잡지에는 방대광이 리범석을 찾아와 축배잔을 드는 사진이 실리기까지 하였다.

사태가 새로운 단계로 급회전하여가자 리승만과 무쵸와 써젠트가 리범석을 련쇄방문하여 물러날것을 요구하던게 언제였던가싶게 총리직사퇴를 철회하도록 달래보기도 하고 위협도 하였다.

리범석이 반석같이 움직이지 않자 리승만은 그에게 대만주재 대사직함을 안겨주어 전격적으로 서울에서 추방하여버렸다. 미리 앞발치기를 한것이다.

리범석이 불응하였으나 정 그러하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항명죄명을 달아 외국에 추방하겠다고 하는바람에 받아 들일수밖에 없었다.

리범석을 중심으로 화평통일과 전쟁반대구호를 든 새로운 통일전선을 무어낼데 대한 정시명의 구상은 실현될수 없었다. 그러나 리범석의 결단이 정치권과 사회에 주는 영향은 컸다.

《보안법》의 칼날에 스러진것만 같던 북과의 담판을 통한 화평통일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더 힘있게 사회의 각계에서 터진 동뚝에서 물쏟아지듯 터져나왔던것이다. 이것은 제2차 《국회》선거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국회》선거에 출마한 과반수의 후보들이 민심을 재빨리 읽고 선거유세에서 화평통일을 주장해나섰다. 결국 《국회》선거에서 리승만의 북진통일과 분렬론을 제창한 리승만지지세력은 불과 30석밖에 차지하지 못하여 대패하였다. 반대로 대미자주로선과 평화적협상에 의한 남북통일을 주장하는 진보적인사들이 130여명이나 당선되였다. 그 가운데는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였던 조소앙같은 인물도 있었다. 이것은 북의 련속적인 평화통일주장을 받아문 남조선정치권의 진보적량심의 대답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또한 미국놈들을 몰아내고 통일된 조국을 위해 피의 항전을 벌리고있는 남조선의 빨찌산운동과 애국세력의 위대한 승리였다.

정시명은 이 혁혁한 승리에 자기들도 기여하였다는것으로 하여 다행스러웠다. 리승만의 정계추방도 이제는 시간문제로 되였다. 《국회》의 반대세력 130여명이 손을 합치면 리승만을 적당한 구실을 걸어 탄핵하여 임의의 시각에 몰아낼수 있었다. 리승만독재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듯 하였다.

그러나 경무대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점점 흉흉해갔다. 정시명은 남조선의 진보적인 정치권이 승리의 환희에 휩싸여있을 때 오히려 보다 깊은 불안과 괴로움으로 모대기였다. 정세가 미국놈들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다시 급선회를 하기 시작하였던것이다. 리승만과 미제의 현지기관들은 2차《국회》선거가 리승만독재의 파멸로 이어지리라는것을 명백하게 깨닫게 되였다. 위기로부터의 탈출은 이미 준비하여온 모험에 매달리는수밖에 없게 하였다. 벌써 그러한 움직임이 로골적으로 더욱 파렴치하게 여기저기서 벌어지고있다는 소식이 정시명에게 집결되였다. 끝끝내 전쟁을 막을수 없다는것이다.

정시명은 고민이 커졌다. 가능성만 있다면 한몸이 그대로 만쪼각으로 흩어진다 해도 던져보련만 더는 기대를 걸데가 없었다. 그는 몰려드는 전쟁의 검은 구름을 막연히 기다리고있어야 하는 자기에 대한 불만과 죄의식으로 하여 때식을 건늬며 달력을 자주 들여다보군 하였다. 시간을 보낼수록 그만큼 전쟁의 포성이 가까와진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은 말라들고 뼈가 저려났다. 어느날 정시명은 낚시대를 들고 한강의 버들숲으로 갔다. 낚시를 물에 처넣고는 다시금 조성된 정세와 그에 대한 방략을 무르익혀갔다.

(정말 무너지는 하늘을 외기둥으로 막아내지 못하겠는가. 무너지는 방뚝을 흙 한짐으로 건질수 없겠는가.)

정시명은 때없이 이렇게 속깊이 부르짖으며 괴로이 여러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다른 대안이 없다. 시간도 없다. 역풍은 맞받아나가야 한다. 다시 정면으로 돌파하자. 리승만을 만나자.)

마침내 정시명은 이렇게 결심하였다. 리승만과 최후담판을 벌려보려는 그의 비장한 결심은 지난해의 가을철에 평양에 가서 김일성동지를 뵈왔던 그때로부터 서서히 굳어져왔다. 그 결심은 최근에 이르러 조직이 진통을 겪으며 세웠던 방대광의거사업이 파탄되고 반면에 평화의 마지막방어계선이 정세의 엄혹한 풍랑에 떠밀려 바야흐로 허물어져나가게 되자 움직일수 없는것으로 되였다.

림인석이 최근에 종합보고하여온 자료에 의하면 전쟁물자가 부산과 인천항으로 대량적으로 반입되고 륙군사단들이 38°선 접경지역으로 이동전개되여 공격태세를 완료하였다고 한다. 미국으로부터 뻔질나게 호전광들이 쓸어들어 전쟁준비상태를 현지에서 최종검열하고있었다. 반면에 리승만일파의 정치적립지는 좁혀들대로 좁혀들어 현 정치적공백을 더이상 끌어나간다면 불원한 장래에 리승만독재는 물먹은 흙담벽처럼 허물어내릴 판이다. 리승만으로서는 자기의 잔명을 유지하는 길이 전쟁을 떠난 다른 출로가 없게 되였다는것이다.

미국의 정책립안자들도 더는 전쟁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고있는것이 분명하다. 미국내에서는 경제공황으로 하여 업체들이 무리로 녹아나 실업자가 거리를 휩쓸고있다. 특히 2차대전기간 비대할대로 비대해진 군산복합체들이 경제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군수관련물자의 대소모전을 공공연하게 요구하여 저들의 대변자들로 무어진 백악관과 펜타곤에 압력을 가하고있다고 한다. 대외적으로 미국은 발칸반도와 동유럽에서 계속 밀려나고있으며 중국의 광활한 지역과 인도지나반도에서도 쫓겨나고있었다. 미국놈들은 조선전쟁이라는 거대한 전쟁도박으로 국내외적으로 겪고있는 정치, 경제, 군사적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마지막 준비작업을 마무리하고있었다.

그러니 조선전쟁문제를 놓고 안팎의 미치광이들의 손벽이 마주치게 된것이다.

정시명을 더욱 흥분시킨것은 얼마전에 공화국북반부에서 광복 5주년을 맞으며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정부를 세울데 대한 호소문을 채택하고 그것을 전달하기 위하여 서울에 파견한 공식사절들을 리승만일파들이 38°선을 넘어서기 바쁘게 려현역에서 체포한것이였다. 어떻게 공개방송을 통하여 사절단파견을 공개하고 분계선을 넘어선 주권국가의 공식대표들을 잡아넣을수 있는가.

거기에 그 무슨 초보적인 례의와 도덕이 있는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이 불법무법의 폭거에 정시명은 경악과 분노를 금할수 없었다.

(정말 리승만에게는 나라와 겨레가 그렇게도 안중에 없고 제놈의 고향이 있는 북에 불의 소낙비를 퍼부어야 성차겠는가.

리승만을 만나자, 그에게 김일성장군님의 위대한 민족대단결의 사상을 전하자, 그 어떤 동맹도 혈맹보다는 굳건할수 없다는것을 말해주자, 이 땅의 통곡을 들려주자,…)

정시명은 마지막결전을 엄숙히 다지며 강변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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