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좌 절 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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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검훈련장에서 한바탕 땀을 뽑고난 방대광은 부관과 함께 방금 한증탕에서 나왔다.

참대로 엮은 흔들이걸상에 비스듬히 누워 잠시 땀을 들이던 방대광은 채수염을 기른 사람이 회색 두루마기를 걸치고 난데없이 훈련장에 들어서는 바람에 깜짝 놀라 후닥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얼른 부관을 사무실에 가서 대기하라고 쫓고는 그에게로 정중히 마중을 갔다.

정시명의 뒤에는 신변호위원들처럼 송호정과 권총까지 바지괴춤에 찌른 헌병대 대령까지 따라오고있었다.

대령은 조태준이였다. 조태준은 리범석의 방에서 여러번 눈에 익힌적이 있었다.

그러면 저 사람들도 다 정대표의 수하사람들이란 말인가?

놀랍고 희한스러운 일에 방대광은 더구나 눈앞이 어질어질하고 허리가 꼿꼿해졌다.

《아, 정대표, 어서 오십시오. 가만, 아뿔사, 이거 잠간 실례하겠습니다.》

방대광은 황황히 마중을 가다가 일본사람들이 입는 하오리 비슷하게 지은 시커먼 겉옷을 대강 걸치고있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런데 마음이 급해난듯 단추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아 거울앞에 가서 다시 옷매무시를 보았다. 금줄이 번쩍거리는 시누런 모직군복에 장검까지 꼼꼼히 차고 운두높은 군모까지 꾹 눌러쓰니 방금전의 늙고 초췌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위풍당당한 무장답게 발자국소리를 크게 내며 다가선다.

《대표, 그동안 귀체무고하셨습니까?》

방대광은 사뭇 정중하게 다시 례를 표시하였다.

정시명은 이 사람이 매우 당황망조해하고있으며 급해맞아 안절부절하고있다는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에는 개의치 않고 그의 손을 쾌히 잡고 흔들었다.

방대광은 송호정과 조태준에게로 돌아섰으나 그들과는 어떤 식으로 인사를 나누었으면 좋을는지 료량이 되지 않아 다소 어리벙벙한 눈길로 정시명을 쳐다보았다.

《송사령관, 조대령, 인사를 하시우. 방사단장도 우리의 애국대오에 동참하고저 나선 우리의 우인이시오.

방사단장, 인사하시오. 이들은 방형보다 몇걸음 앞서 나라의 통일대업에 나선 애국지사들입니다.》

정시명이 이쪽저쪽을 장중하게 소개하자 좌석은 더욱 엄숙해졌다.

방대광도 몸가짐이 부자연스럽고 꾸둑꾸둑해졌다. 어제날까지만 해도 이남무력을 통솔하던 송호정과 리범석의 심복중의 심복으로 움직이고있던 조태준마저 정시명의 사람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리해가 인차 되지 않는듯 그들앞에 와서도 머뭇거릴뿐 혀가 풀리지 않는 기색이였다.

《사단장, 오래간만이요. 내 방금 방사단장이 헐치 않은 결단을 내렸다는것을 대표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축하하오.》

송호정이 아직도 얼떠름해있는 방대광에게 손을 내밀며 지레 축하부터 하였다.

《자, 말씀을 나누시오. 우린 바람이나 쏘이겠습니다.》

송호정과 조태준은 인사를 마치자 인차 그들에게 자리를 비여주고 훈련장에서 나갔다.

방대광은 휴계실로 자리를 옮기자고 하면서 옆방으로 안내하였다.

아늑한 방이였는데 증기방열기에서 증기가 새는 소리가 들렸다.

방대광은 둘이 호젓이 자리를 잡자 전과는 달리 주눅이 들고 벌을 기다리는 죄인의 상이였다. 그는 정시명의 앞에 마주앉기는 하였으나 눈건사를 어떻게 할지 몰라 정시명의 엄엄한 기색을 살피기도 하고 창문턱에 있는 참대나무화분으로 황황히 눈길을 옮기기도 하였다.

정시명은 장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있는 그의 손이 떨고있는것을 엄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섭섭하오, 사단장. 장수는 한번 토한 결심을 번의할줄 모른다고 한 사단장의 말을 나는 장군다운 기상과 배짱으로 중히 접수하였소. 그 소리가 입빠르게 던지는 려염집아낙네들의 새빠진 넉두리였는가? 뭐 듣자니 방사단장은 지금 딴꿈을 꾸고있다면서요?》

정시명이 직방으로 쏴갈긴 기관총련발사격같은 질책이 휴계실을 쩡쩡 울렸다. 눈에서 노여움의 빛이 번뜩이고 잘 다스린 수염이 푸들거렸다. 신의를 우롱하는 인간들앞에서는 타협이 없고 아무리 굳어진 정분이라도 절교를 서슴지 않고 선언해버리는 정시명이였다.

사람들을 사귀는데서 제일 고결한 미덕은 믿음과 보답이다. 믿음과 보답이 없는 인간이란 애초에 인간다운 면모를 상실한 저속한 인간이다. 그래서 정도 품앗이라는 옛 성인들의 격언이 생겨난것이 아닌가.

정시명은 신의를 쉽게 저버리는 인간은 미리감치 시야에서 추방하는것이 인간세계의 륜리라고 생각해왔고 또 그렇게 해왔다. 믿음과 보답이라는 인간의 아름다운 륜리에서는 성실성이라는 인간고유의 고상한것이 바탕으로 되여야 한다. 성실성은 인간의 진가를 가려보게 하는 시금석처럼 귀중한것이며 그 인간의 모든것을 규정해주는 자대와도 같은것이다.

정시명이 방대광을 돌려세울수 있다고 본데는 성실성의 일종의 변형형태라고 할수도 있는 우직한 성미라는 그 인간의 기질에 막연해도 한가닥의 기대가 간데 있었다. 그런데 방대광은 그 우직한 성미를 집어던진 약아빠진 인간으로 탈을 바꾸어쓰자고 꿍꿍이를 하고있는것이다.

상대의 면모를 다시 찾아보게 된 지금 정시명은 그에 대한 경멸의 감정을 묻어두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정시명은 자기가 필요이상 흥분했다는것을 깨닫고 자신을 다잡았다. 상대를 버리러 온것이 아니라 끌어당기고 이 인간의 어지러움을 씻어주려고 온 길이다. 묵새겨야 한다. 큰일을 위해 감정을 삭여내야 하였다. 이 인간의 어느 구석부터 튕겨주어야 낡은 종처를 콱 터쳐줄수 있겠는가.

정시명은 자기의 첫 공세가 다소 격한것은 사실이지만 잘못된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방대광의 성미에 제일 아프게 감수되는것이 바로 신의를 저버린 그 자신의 용렬한 처사를 인정시키는것이다.

사실 방대광은 정시명의 신랄한 공격이 개시되자 낯빛이 인차 원숭이볼기짝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눈빛이 사납게 번쩍거리다가 이내 꺼져버렸다.

그래서 두눈이 침울해지고 낯빛도 재빛으로 질려지고 《날 잡아가소》하는 체념에 사로잡힌듯 대답 한마디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당신은 아무나 받아안을수 없는 특전을 받아안았소. 원래 당신은 공산주의자들은 물론 이남〈국회〉가 친일파숙청을 목적으로 만들어낸 반민법으로도 쇠고랑을 차야 할 우두머리급 친일분자였소.

하지만 우리 장군님께서 당신이 미국놈들과 리승만앞에서 용기있는 주장을 한 그 한가지 사실을 중히 여겨주시고 일생토록 민족을 등져온 당신 인생의 말년에 재생의 등불을 켜주도록 은정을 베푸시였소. 그런데 어찌 당신이 결초보은으로 신의에 보답하기는 고사하고 감히 저울질할수 있겠는가?》

《정대표, 내 그런건 아니올시다.》

여전히 도도한 열변으로 죄상을 단죄하는 정시명의 앞에서 방대광은 너무 바빠 엉뎅이를 들썩거리였다. 그는 꺼져드는 소리로 발뺌을 하려고 했으나 뒤말이 쉬이 이어지지 않았다.

《다시 리승만의 풍에 놀겠으면 그렇게 하시오. 하지만 하나는 똑똑히 명심하시오. 그 길은 영원히 당신을 파멸시키는 길이요, 영원히 당신을 이 나라 인민의 저주로운 락인이 찍힌 민족의 반역도배로 남게 하는 길이요. 민족이 내미는 애국의 손을 잡겠는가, 이것이 당신에게 차례진 처음이자 마지막기회라는걸 다시한번 경고하오. 한번 뜻을 세운 무장이라면 목에 칼이 박혀도 휘여들지 말아야지 목숨 귀한 생각만 해서야 어찌 대의를 도모할수 있겠소. 나는 이걸 말해주고싶어서 당신을 한번 더 보고자 했소.》

정시명은 이날은 이 정도로 방대광의 흔들리는 심대에 대못을 처박아주는것으로 그치기로 하고 일어났다.

그런데 방대광이 걸상을 우당탕 뒤로 밀어던지고 급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정시명의 바지가랭이를 잡았다.

《아, 대표어른! 이러고 떠나시면 내 꼴이 뭣이 되는겁니까?》

그는 정시명의 발부리에 부동의 자세로 곰처럼 엎드린채 용서를 빌었다.

《허허, 참. 이 무슨 노죽이요. 왕년에 병사 수천을 수하에 두고 천지간을 호령하던 무장이 이럴수가 있는가. 어서 일어나시오.》

정시명은 도로 제자리에 눌러앉으며 엄하게 소리쳤다.

그제야 방대광이 일어나면서 옆구리에서 절걱거리던 장검을 홱 뽑아들어 휭하니 던져버렸다. 서슬푸른 칼날이 공중에서 반원을 그리다가 맞은편 벽에 걸어놓은 태국기가운데 들이박혀 부르르 떨었다.

《좋다, 외풍에 흔들렁거리던 방대광이 이젠 명이 다 진했다. 방대광이 이제 더는 리승만의 장수로는 되지 않을것이다.》

한껏 흥분한 방대광은 어조에 강약을 박아 결연히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두손을 다시 멋스럽게 척 내놓고 고개를 떨군다.

정시명은 그의 손을 덥석 잡아쥐고 걸상에 앉도록 부축하여주었다. 인생전환을 맹세한 그를 보자 가슴이 찌르르 울리고 목구멍이 더운것으로 차들었다.

정시명은 그를 무랍없이 받아들이고싶었다. 그리고 그의 페부에 다시는 지워지지 않도록 그 자신의 맹세를 깊이 쪼아박아주고싶었다.

《사단장, 그렇다면 내 말 좀 더 합시다. 나는 이 서울에 와서 숱한 동지들을 잃었소. 하나같이 끌날같은 젊은이들이고 한생을 나라의 독립과 겨레의 행복을 위하여 한걸음새로 살아온 사람들이였소. 개중에는 20대의 꽃나이에 애인을 남겨두고 요절한 처녀도 있고 서울바닥에 견줌이 없이 끌끌한 신랑도 있었소. 지금도 철창속에서 수백명의 동지들이 매를 맞고 피를 토하고있소.》

정시명의 눈가에 언듯 맑은 눈물이 돋쳤다. 말을 떼놓고보니 쓰러진 전우들과 이 시각에도 서대문감옥에서 온갖 악형을 받고있을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랐던것이다.

정시명은 북받쳐오르는 오열을 꿀꺽 삼키였다.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동지들의 모습이 앞을 가리자 정시명은 갑자기 사색이 흐트러지고 이제 꺼내놓아야 할 말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 잠시 말을 끊고 격해오르는 숨을 주체하느라고 이마를 찡그리였다.

방대광은 방금전에 성난 호랑이같이 노호하던 사람이 눈가에 이슬을 담고 추연한 비분에 잠겨드는것을 일별하자 자기도 덩달아 가슴이 쭝해서 마른 기침만 연신 컹컹거리였다.

정시명은 고뿌에 물을 따라가지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제야 속이 다소 가라앉고 목구멍이 트이는듯싶었다.

《그들은 쓰러지면서도 통일만세를 불렀소. 무엇때문이겠소? 뭣때문에 그들이 청춘도 사랑도 생명도 다 바치면서 통일만세를 부르는것이겠소? 어느 한 동지는 7층옥상에서 몸을 던지면서 이 노랠 불렀구 어느 동지는 미군을 몰아내는 싸움에 앞장섰다는 리유로 교형리들에게 매맞아 죽으면서도 이 노랠 불렀소. 어느 한 녀동지는 빨찌산대오에서 수류탄을 뽑아들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치면서도 이 노랠 불렀소. 얼마전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을 안은채 이 노래를 부르면서 젊은이들이 또 숨이 졌소.

후- 더 말해서 뭘하겠소. 그 아름다운 인간들이 하나둘 내곁을 떠날 때면 이 한몸이 그들을 대신해주지 못하고 그 앞길이 구만리같은 젊은이들을 앞세워야 하는 절통함때문에 뼈가 산산쪼각으로 부스러지고 살이 찢기는것 같소. 무엇때문에 생겨난 비극인가.

나라의 분렬, 분렬이 가져온 분렬시대의 인간비극이요.

방사단장, 우린 나이찬 사람들이요. 우리 젊은이들이 나라 위한 의로운 길에 나섰다가 비명에 죽지 말고 사랑을 즐기고 행복을 즐기고 나라를 위하여 더 값지게 인생을 이어가게 해야 될게 아닌가.

방사단장, 이 시대에 뜻가진 사람들이 바르게 사는 길은 오직 한길이요. 통일대업에 나서는 길이요. 그 길이야말로 겨레에 헌신하는 길이요, 겨레와 더불어 사는 길이요, 겨레의 추억속에 아름답게 묻히는 길이요.

나는 당신이 분렬의 방패막이가 되지 말기를 바라오. 방대광이라는 이름이 다시는 외세에 붙어 민족과 등진 역적도배들과 나란히 새겨지지 않도록 여생을 가꾸시오.》

방대광의 눈빛이 간절하게 젖어올랐다. 그는 정시명이 말을 끊자 원탁에 있는 물주전자에서 고뿌에 물을 부어 내밀었다. 그의 목소리가 갈리고 관자노리에서 피줄이 살아나는것이 걱정스러웠던것이다.

정시명이 그걸 받아들고 맛스럽게 마시는 모습을 고마운 눈길로 지켜보다가 방대광은 다소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대표, 나를 정말 끝까지 믿어주시겠습니까?》

《내 전번에도 말했지요. 공산주의자들은 일구이언이 없다구요. 나는 다시금 당신에게 그 대답을 드리고싶소.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일구이언이 없소.》

《고맙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시오. 믿는다면 의심점부터 해소해야 합니다. 아무거나 기탄없이…》

《난 김일성장군님께 나의 대표를 파견해야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대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고…》

방대광은 뒤말을 가무리지 못한채 두볼이 또 수수떡처럼 달아오른다.

정시명은 방대광의 심중이 십분 리해되였다. 살아온 전생을 무시하고 삶을 새로운 궤도우에 올려태우는 일인데 그것이 가벼울수는 없는 일이다. 항차 방대광의 인생전환이야말로 극단에서 다른 극단에로의 비약이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상상할수 없다.

김구의 생각이 들었다. 그도 평양길에 오르기 전에 얼마나 복잡한 심리적모대김을 겪어야 했던가. 김구도 자기의 대표를 먼저 평양에 보내 장군님의 신임을 재확인받고서야 움직였다. 그래도 한생을 《민족헌신》으로 누벼온 김구가 그랬을진대 민족반역으로 살아온 인생을 말년에 와서 비로서 바로잡고저하는 이 사람의 심중이야 오죽하랴.

방대광의 고충과 번뇌자 짚이우자 그것을 속에 묻어두지 않고 탁 털어놓는데 오히려 믿음이 가고 고맙다.

정시명은 더 길게 생각하지 않고 즉석에서 수락하였다.

《좋습니다. 파견하시오. 당신의 측근중에서 제일 믿음이 가는 인물로 선발하시오. 그를 보낼 때 안내는 우리 측에서 맡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당신의 위임을 받은 대표가 가면 크게 반가와하실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방대광은 어렵게 제기한 문제가 마주앉은 자리에서 순조롭게 해결되자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러면 정대표는 제가 어떻게 할걸 바라십니까?》

방대광은 흉중에 얹혀있던 큰 문제에서 쉽사리 합의가 이루어지자 실무적인 어조로 물었다.

《그건 사단장의 결심대로 하시오. … 좋습니다. 정히 내 의견을 바라신다면 우선 이런 말씀부터 드리고저 합니다.

방사단장님의 평소의 소신을 세상에 밝히시오. 정정당당하게 우리는 외국의 간섭을 배격한다, 동족상쟁을 반대한다, 우리 민족끼리 서로 타협하고 단합하여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우자… 이러루한 주장을 말입니다.

이미 리승만앞에서 밝힌바가 있으니 이제는 사회에 공개해서 전국민이 알고 삼천만동포가 다 방대광사단장에 대하여 재인식을 하도록 합시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막상 움직이자니 생각되는게 많은데 량해하여주시오.》

《말씀하십시오. 우리는 이젠 한배에 올랐습니다. 끝까지 함께 노를 저어봅시다.》

《고맙습니다. 나의 사단은 내 명령일하에 따라 복종할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당신을 따라 통일대업에 나서고 우리 장병 1만이 나를 따라나선다면 그땐 어떻게 해주시렵니까?》

방대광은 퍼그나 소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힘들게 이 말을 꺼내놓았다.

정시명은 흔연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방대광이 부하장병들의 운명문제를 책임지려는것이 대견하기도 하고 더욱 호감이 가기도 하였다. 그것도 인간이 갖춰야 할 미덕중에서 중요한 요소로 된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가 담보한바가 있고 또 선행한 본보기도 있습니다. 의거입북한 당신네 두개 대대 장병들은 지금 북에 가서 자기의 대오를 그대로 유지하고 통일위업에 바쳐진 공로로 군사칭호도 한등급씩 승진하였다고 합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벌써 이 문제에서 명확한 대답을 주시였습니다.

나는 통일독립된 새 조선에서 당신이 인솔하는 사단은 통일국가의 정규군으로 인정될것이며 당신과 당신의 령을 따르는 모든 장교들과 사관들의 지위도 담보될것이라는것을 다시금 천명합니다. 이 문제에서는 절대로 의외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장군께서 절 통일나라의 수하장수로 써주신다면 제 그분휘하에 마음을 두고 백골이 진토되도록 분골쇄신하렵니다.》

방대광은 격정에 넘쳐 서약을 다졌다.

《그 다음에 정대표가 저에게 바라시는것이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는 당신 사단관할지역을 평화지대, 완충지대로 선포하고 이 지역에서 남과 북의 군사적대결을 종식시키는 모범을 보이는것이 어떻습니까? 리승만이 이에 도발해오면 단호히 응징합시다.》

《좋습니다. 하겠습니다. 반격해버리겠습니다. 그까짓 놈 무섭잖습니다. 내가 그렇게 나서면 두개 사단이 동조해나설겁니다. 내 인차 그들과도 상론하겠습니다.》

《두개 사단이라…》

정시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들에게는 우리의 담화내용을 공개하지 맙시다. 부대의 의거가 다 무르익은 다음에 이야기하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당신과의 사업에 대해서는 우리 동지들도 극히 일부에 한정되여 알고있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좀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김일성장군님께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우선은 나의 대표로 남창영씨를 보내겠습니다. 남씨는 량쪽의 신뢰를 받는 인물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몇십년째 상종해오는 벗입니다. 어떻겠습니까?》

《아, 거야 방사단장의 선택권에 속하니 나의 의향을 물으실게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래일로 내가 방사단장의 도움을 급히 받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도움이라는 소리에 방대광은 다소 긴장해지는것 같았다.

《뭔고하니 총리를 찾아봐주시오. 나를 만나고 왔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협의한 문제를 그에게 통보하십시오.》

《리범석총리에게?… 음… 알만합니다. 헌데 그 어른이 놀라지 않겠습니까?》

《지금 리범석총리에겐 방사단장과 같이 무게있고 명망있는 분의 지원이 매우 필요합니다.

리범석은 북과의 화평담판을 통한 통일국가건설을 희망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리승만과 무쵸의 주변에 성을 쌓고있는 사대매국노들과 정치간상배들때문에 제 소리를 높이지 못하고있습니다.

이런 때 방사단장이 우리의 합의내용을 들고가면 용기백배할겁니다. 방사단장같은 무게실린 우군이 생긴것을 환영하리라고 봅니다.》

《알겠습니다. 리범석을 나도 잘 압니다. 그 사람은 주견머리있는 정치인입니다. 서울정계에서 흔치 않는 인물입지요.》

방대광은 이 문제를 놓고 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방대광은 리범석의 경향이든지 성격기질에 이르기까지 대강은 파악하고있었다.

광복후에 방대광과 리범석사이에는 과거에 반일과 친일이라는 량극단에서 총부리를 겨누어온 경력상 모순과 대립은 뒤전에 밀어놓고 모종의 감정상 타협과 융합이 되여왔다. 그들은 서로 미국놈들과 리승만앞에서 제 할 소리를 할줄 아는 상대방의 인격을 주목하고 신뢰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때문에 미국놈들과 리승만이 은근히 이단자로 경원시하고있다는 공통의 뉴대감으로 얽혀져 간간이 어울려 술잔을 기울이면서 어지러운 시국을 개탄하고 서로의 간격을 좁혀왔다. 《북벌》의 기수로 함께 서기도 했다. 북에 대한 도발에서 쓴맛을 본 후에는 돌아앉아서 리승만의 《북벌》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것도 그들이였다.

방대광은 정시명이 이미 리범석을 끌어당기고있다는 생각에 속으로 혀를 찼다.

하기는 리범석의 정도에서 손을 헐하게 들어줄리는 만무지만 종당에는 달리는 될수 없을것이라고 생각되였다.

그는 정시명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면서 상대방의 심금을 울려 마침내 제 사람으로 만들어놓고마는 정시명의 비상한 친화력과 인품에 다시금 크게 탄복해마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가 선택한 길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정대표님, 리범석이 움직인다니 나도 기운이 솟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방대광은 기쁨에 넘쳐 정시명의 부탁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는 훈련장 뒤마당으로 정시명을 바래주고는 송호정의 손목을 잡고 세괃게 흔들며 귀속말로 속삭이였다.

《사령관님, 정회장은 분명 제갈량 셋을 합친것만 한 재사입니다. 당신들이 부럽습니다.》

그 말에 송호정은 껄껄 웃다가 이내 정색해서 대꾸하였다.

《아니요. 제갈량은 재사였을뿐이지만 저분은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애국충신이요. 그리고 그지없이 아름다운 인걸이지요.》

그 말에 방대광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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