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피로써 이어지는 찬가

5

 

자동차는 김포비행장을 향하여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였다.

차창으로는 눈에 익은 서울의 풍경이 피끗피끗 스쳐갔다.

도시에서 벗어난 자동차는 한강다리를 넘어 인왕산기슭에 이르더니 방향을 꺾어 김포쪽과는 반대인 북악산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마동열은 서울을 훌쩍 벗어나는것이 자기 마음을 산란하게도 했지만 보다는 정시명과 전우들이 싸우고있고 네해나 정들은 땅을 떠나는것을 괴로와하는 안해의 애절한 심정을 생각해서 서울변두리를 한바퀴 돌면서 례영의 서글픔을 다소라도 덜어주고싶었던것이다.

례영이도 마동열의 그 심중이 대뜸 속에 짚이워 말없이 고마운 눈매로 그를 한번 돌아보고는 다시금 창밖에 눈을 박을뿐이였다.

차안에는 이상야릇하고 무겁고 침울한 침묵이 오래동안 계속되였으나 젊은 부부는 고집스럽게도 입술을 닫아붙이고 제가끔 깊은 상념에 잠겨있었다.

이따금 마동열은 눈앞에 있는 자동차거울을 쳐다보기도 하였는데 거기에는 다치면 터질듯싶은 오열을 짓씹고있는 안해의 비감이 서린 얼굴이 비쳐있어 얼른 눈길을 옮기며 가느다란 한숨만 뽑아올렸다.

자동차는 한시간반이나 걸려서야 다시 한강다리를 넘어 강변을 따라 김포쪽으로 뻗은 넓고 시원한 아스팔트길에 들어섰다.

《김포공항이요.》

마동열이 시야에 안겨오는 비행장전경을 바라보며 나직한 어조로 무겁게 서린 차안의 침묵을 깨뜨렸다.

그제서야 례영은 자기 생각에서 벗어나 등받이에서 허리를 떼고 앞에서 급하게 달려오듯 다가서는 김포비행장의 우중충한 건물들을 두려움이 실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차를 세워주세요.》

문득 례영이 속삭이듯 말하자 자동차는 공손히 속도를 죽이더니 인차 길가에 단김을 칙― 뽑으며 멈춰섰다.

마동열이 먼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말없이 자동차주변을 거닐면서 주인의 분부를 기다리는 충실한 하인처럼 례영의 다음말을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자기 주머니에 례영의 출국과 관련한 증빙문건과 비행기표가 제대로 건사되여있는지, 비행장에서 뜻밖의 정황에 부딪치지 않겠는지 다시한번 곰곰히 정리해보았다.

(모든것이 빈틈이 없고 원만하다. 이제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례영은 한시간 반정도 지나 도꾜에 이르게 될것이다. 거기서 인도지나쪽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면 된다.)

마동열은 안해의 비행길을 그려보다가 로상에서 너무 오래 지체되는듯싶어 례영의 말을 더 기다리지 않고 다시 자동차에 올랐다.

마동열이 운전대를 잡고 한손으로 시동열쇠를 돌리자 자동차는 고르로운 엔진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문득 례영이 말없이 운전대를 틀어쥔 그의 오른손등에 땀발이 척척한 자기의 손을 얹었다.

흠치시 고개를 돌린 마동열이 안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잔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한줄금 휙- 자나가는듯싶었다.

언제나 맑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은은하게 빛을 보이던 례영이의 두 눈에 수심이 짙게 서리였는데 눈굽에는 구슬같은 눈물방울이 피여 파들거리고있었다.

마동열의 놀라는 모습에 례영이 웃어보였지만 애써 지어보이는 그 웃음이 고운 살갗에 어울리다가 인차 저녁노을처럼 스러지고 또렷하게 선을 이룬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리별의 설음을 새기기 저렇게 힘들어 하는것일가.

마동열은 정시명의 곁을 떠나는 안해의 눈물겨운 슬픔을 얼마든지 짐작할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닌것 같다. 보다 엄청난 비분과 고민과 그러면서도 그것을 이겨내려는 강렬한 지향이 그 스러지는 웃음밑에 깔려있는것 같다.

마음의 갈래가 흐트러져 있으면서도 속깊이에 다져진것이 모질게 돋혀있는 모습이다.

마동열은 여적 례영에게서 지금처럼 복잡한 심경이 착잡하게 엉켜있으면서도 무엇인가 차돌처럼 여무지고 강심이 굳어진 얼굴을 보아둔 기억이 없었다.

《이 사람이 또…》

번개처럼 펑끗 뇌리에 비껴든 생각에 마동열은 시동열쇠를 홱 뽑아내며 불에 덴 사람처럼 화닥닥 몸을 솟구쳐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질렀다.

《여보! 안되오, 그건 안돼!》

그의 눈앞으로 2년전 렬차에서 결혼식을 끝낸 뒤 남해의 도미섬에서 지내던 일이 떠올랐던것이다.

그때도 이렇게 헤여졌다. 그날도 례영은 바로 저런 얼굴로 자기를 울렸다.

그것은 더없이 고결하면서도 더없이 가슴쓰리는 추억이였다.

례영이 그때까지 참아오던 울분을 왈칵 터치며 남편의 실팍한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여보-》

《안돼! 또 어쩌자는거요? 아버님곁에 가있기도 어려워졌는데 당신이 도대체 여기 남아서 아버님 위해 무슨 일을 한다는거요?

당신은 로출된 몸이요. 하여간 아버님곁에서 비켜서야 하오. 좋든 싫든 그건 조직규률이란 말이요.

그리고 방금전에 하신 회장동지의 부탁을 잊어서야 되겠소! 아버님의 부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돼. 그건 우리 전우들의 념원이요. 꿈이란 말이요.

그래서는 안되오. 그래서는 안돼. 떠나야 하오. 당신이 옆에 있어야 회장동지에게 이젠 부담으로 된다는걸 왜 모르오? 지금의 당신 처지는 우리가 도미섬에서 지내던 때와는 다르단 말이요. 난 동의할수 없소. 안되오, 안돼. 안된다니깐.》

마동열은 례영이 두해전 그때처럼 또다시 누를수 없는 사연으로 자기를 꼼짝달싹 못하게 얽어매놓을것 같아 그가 자기 주장을 펴볼세라 격한 어조로 안된다는 말만 련발하였다. 까닭모를 불안과 공포가 사나이의 몸을 한순간에 불덩이처럼 달구어 이글거리게 하였다.

《여보!… 절 좀 리해하여주세요. 절 용서해줘요.》

례영이는 예상대로 남편의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자 울음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용서해요.》

《여기에 뭐 리해고 오해고 있소? 아버님의 말씀이 너무도 분명한데 뭘 내가 리해하여 달라는거요? 그리고 당신이 더 리해받을건 뭐란 말이요? 안되오, 도대체 뭘 용서해달라는거요?

당신도 여기 서울에서 헐치않은 싸움을 벌렸소. 그래 당신이 당한 시련이 아직도 모자란단 말이요. 안돼! 량심에 꺼릴게 뭐란 말이요. 안돼》

마동열은 화가 나서 여전히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 이번에는 례영의 요구에 덜미를 잡히는 일이 없게 하리라 단단히 속을 도슬러먹었다.

례영은 숨결마저 거칠어진 남편의 가차없는 반발에 잠시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손수건을 꺼내 눈물에 씻겨진 얼굴을 꼭꼭 눌러 닦았다. 그리고는 잠시 차창을 내리우고 거기에 팔꿈치를 붙이고는 손바닥으로 달아오른 이마를 받쳐들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한동안 자동차안에는 흥분을 주체할길이 없어 성난 말처럼 씩씩거리는 마동열의 탁한 숨소리와 도툼히 내불린 입술을 잔조름한 앞이로 감쳐물고 마구 뒤채는 안타까움과 슬픔과 비분을 새겨야 하는 례영의 고르지 못한 숨소리가 꽉 찼다.

《여보!》

례영이 다시금 간곡한 어조로 불렀다.

마동열이 다시 소리치려고 했으나 례영이 왼손바닥으로 얼른 그의 입을 막아주는 바람에 입을 다물고말았다.

《전 아버님께 가려고 하는게 아니예요.》

례영은 고집스럽게 되풀이하였다.

《그럼… 어쩌자는거요. 왜 심각해서 그러오?》

마동열의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졌으나 새로운 의문과 불안으로 그 큰눈이 번쩍거리였다.

《제가 아까 아버님앞에서 말같지 않은 말을 해서 노엽혔어요.

아버님말씀이 천만번 지당하죠.》

《바로 그렇단 말이요. 하지만 거야 뭐…》

《고우나 미우나 이 땅은 우리 땅이구 우리 후손들이 대를 이어 가게 될 보금자리죠. 이 땅이 귀하지 않다면 무엇때문에 우리가 지금껏 모진 고생을 락으로 여기며 살아왔겠어요. 그러니…》

《그런데?…》

마동열이 말끝을 여물구지 못하는 안해의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바라보다가 아직은 딱히는 잡히지 않는 례사롭지 않은것을 예감하며 급하게 말을 받았다. 다시금 세찬 격류가 속 한끝에서 사품치며 치솟아올랐다.

《그러니… 이걸 버릴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 땅에서 제 몫을 찾자는거예요.》

《당신 몫을… 제 몫이라니?》

《그럼요. 제 몫이지요. 아버님이 대신해줄수 없는 제 몫을 남겨둔채 이렇게 떠나는게 전 정말 죄스러원요. 혜숙이, 순애가 지금 내 걸음을 지켜보는것 같아요. 그들은 영웅들이죠. 나라앞에 제 몫을 맡아 부끄럼없이 살았죠. 그들은 량심앞에 흠잡힐게 하나도 없죠. 그런데 전 자기 몫을 여기에 남겨두고 이 땅을 버리려고 하죠.》

《여보, 그러나… 너무 자기를 학대하지 마오.》

《여보, 이렇게 떠나자니 그들이 제 발목을 꼭 붙잡는걸 어떡해요. 이 길에서 물러선다는건 제 량심이… 전 정말 이런 말을 당신께 꺼내놓기가 두려워요. 아참, 어쩌면 좋담. 여보, 난 어쩌면 좋아요?…》

례영이 다시 눈물을 좌르르 쏟으며 마동열의 가슴에 파고들어 흑-흑- 아이들처럼 턱을 떨었다.

안해의 세찬 흐느낌이 사나이의 심장에 세차게 메아리쳐 온몸을 뒤흔들어놓았다.

《여보!-》

마동열은 그제야 안해가 지금 무엇을 결심하고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결전터에 뛰여들어 통일성업에서 받아안은 자기 임무를 감당하겠다는것이다. 그 성스러운 결전터에서 우리 곁을 먼저 떠나간 용사들이 쓰러지면서도 목청껏 불렀던 조국통일찬가를 피로써 이어나가겠다는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안해의 연한 허리를 꽉 그러안았다. 그리고 그의 동그란 어깨우에 얼굴을 묻었다. 그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쭈르르 이랑을 지어 례영의 옷섶을 적시였다.

더없이 신성하고 거룩한것이 례영이의 심장의 울림에 실려 마동열의 심장에 벅차게 전해졌다.

(례영이는 커졌다. 례영이는 투사로 되였다. 우리는 통일위업의 한길에서 몸도 마음도 하나로 되였다.)

마동열은 이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하였다. 녀동생처럼 사랑스럽고 귀엽기만 하던, 그래서 끝없이 아끼고 지켜주고싶던 례영이가 이 순간 마동열에게는 비길바없이 숭고한 모습으로 비쳐졌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누벼가는 전투서렬의 전우로, 동지로 비로소 솟아오른것이다.

안해의 말에는 감히 막을수 없고 무시할수 없는 인간의 아름다움이 보석처럼 빛나고있다. 량심앞에 깨끗한 넋을 지켜가려는 례영의 결곡한 뜻을 어찌 마다할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속깊이에서 욱 치밀어오르는 애통함과 불안을 금할수 없었다.

(아-아- 이 일이 장차 어떻게 될려나…)

마동열과 례영은 잠시후 약속이나 한듯 차에서 내려 팔을 끼고 가까이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다. 마동열의 보짱같은 다리도 자꾸만 후들거렸다. 그들은 돌부리에 채여 여러번 넘어질번 하면서 다박솔이 듬성듬성 서있는 산등성이에 이르렀다.

서울장안은 푸릿한 운무에 싸여 그 륜곽이 뿌잇하게 보였다. 피어린 투쟁의 자욱자욱이 찍혀있고 사랑이 얽혀진 곳이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어간 거리들과 들쑹날쑹 숲을 이룬 집들이 뿌옇게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삼각산과 북악산이며 서울 한복판을 가로질러 느물느물 굼니는 한강도 희뿌연 운무가 서려 뿌옇기만 하다.

네해째 살아온 거리들과 집들을 다시금 눈에 새겨넣고싶어 눈여겨보던 례영은 온통 뿌연 빛이 감겨들어 숨막힐듯 한 서울장안을 둘러보느라니 저 거리 저 집들에서 양키들과 리승만의 학정밑에 질식되여 삶의 의미를 잃고 사는 수십수백만 인간들의 빛이 꺼진 얼굴들을 보는것만 같다. 저 거리에 언제면 통일의 새 아침이 밝아올가. 언젤가, 그날은… 그들은 서로 한덩어리가 된채 서울장안을 굽어보면서 자기들의 사랑과 행복에 련이어 들이닥치는 그리고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 감수해야 하는 가슴저미는 비극을 눈물로 삭여가며 앞날을 떨리는 어조로 서로서로 위로하고 의논하였다.

례영이는 이 길로 권혜숙의 자취가 있는 남도의 리점분유격대로, 마동열은 탈옥투쟁을 지원한 후 례영이를 따르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어데가 싸우든 죽지 말고 살아서 정시명과 동지들의 애끓는 부탁을 들어주자고, 통일된 조국에서 오래오래 살자고 거듭거듭 서로에게 다짐을 두었다.

행동계획이 확정되자 그들은 해빛이 자글자글한 다박솔밑에서 여러시간 한몸으로 굳어져있다가 정오가 가까와서야 자기들의 새로운 투쟁전구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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