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피로써 이어지는 찬가

3

 

흥제동의 판자집동네에 있는 거점에 도착하여 초인종을 누르니 먼저 와있던 례영이가 버선발로 대문가에 달려나왔다.

《아버님!》

《례영아!》

례영이 정시명의 품에 무랍없이 안기며 그 고운 눈가에 눈물을 함초롬히 담는다.

《걱정이 컸지요? 저때문에 아버님께서…》

례영이는 말을 맺지 못하고 흑흑… 흐느꼈다.

례영이는 마동열로부터 정시명이 리범석을 찾아갔던 이야기를 전해들었던것이다.

마동열은 길철이에게서 들었다.

하마트면 옥에 갇힐수 있는 아슬아슬한 고비를 겪었다고 하는 마동열의 이야기에 례영이는 벌써전부터 가슴에 고마움의 눈물이 가득 차있었다.

《저 같은게 뭐라고 아버님께서…》

《용하다. 네가 강하게 버티여냈다는 소식을 듣군 하였다.

아, 복은 홀로만 온다더니 그 말도 헛말이였구나. 오늘은 참말로 이모저모로 복이 굴러드는 날이구나. 허허, 례영아…》

정시명은 례영이의 동그란 어깨를 정에 겨워 얼쓸어주며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저녁상에 오붓이 모여앉은 네사람은 례영의 옥살이부터 시작하여 마동열의 이야기로 곁가지를 치며 밤가는줄 몰랐다.

정시명은 동열이와 례영이 하도 졸라 평양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기쁨에 웃고 행복에 눈물지으며 기나긴 겨울밤이 깊어갔다.

자정을 알리는 싸이렌소리가 울린 때에야 정시명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한마디 했다.

《동열이는 인차 서울을 떠나라구. 떠날 때 례영이를 데리고 가오. 한주일이면 출국준비를 끝낼수 있겠지. 내 길철동무에게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라고 하겠소.》

《그러면?… 선생님은 언제 가시렵니까?》

《나?… 여기 형편을 들었다면서 그걸 묻나?》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면 선생님은 그냥 서울에 계시겠다는겁니까?》

마동열이 닁큼 놀라 아래방으로 향하는 정시명의 앞을 그 담벽같은 가슴으로 막으며 웨치듯 물었다.

마동열로부터 이미 장군님께서 불러주신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에 울고 기쁨에 울며 둥둥 떠있던 례영이도 민순임도 깜짝 놀라 입들이 크게 벌어졌다.

마동열은 정시명이 대답하기 전에 격한 어조로 주장을 폈다.

《장군님께서 기다리고계시는데… 제 은송선생에게 백사를 젖혀놓고 모시고오겠다고 했는데… 안됩니다. 떠나셔야 합니다. 길철동지한테서 다 들었습니다.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였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헌데 여기 동지들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선생님을 모시고 일본까지 갔다가 여기로 다시 와서 동지들을 돕겠습니다.

우리들을 믿고 떠나십시오. 길철동지 하는 말이 선생님이 자리를 뜨면 방대광과의 사업이 걸릴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도 이렇게 문을 열어놓았으니 제대로 돼갈게 아닙니까. 선생님은 떠나셔야 합니다.》

마동열은 자기가 지금 책임적인 시각에 책임적인 사명을 맡아해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절절하면서도 단호하게 주장하였다. 자기가 물러서면 뒤날에 치명적인 후과를 낳을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에 마동열은 가슴이 후두둑 뛰기까지 하였다.

정시명은 진심에 겨운 마동열의 념려와 부탁에 발목이 잡힌듯 그자리에 서있다가 《동열이, 앉자구…》하고 그의 어깨를 눌러 구들바닥에 앉히고 자기도 마동열의 앞에 올방자를 틀고앉았다. 그리고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었다.

례영이가 성냥을 찾아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주고는 그옆에 무릎을 세우고 다소곳이 앉는다.

숨이 막힐듯 한 무거운 침묵을 먼저 깨뜨린것은 지금껏 마동열이 안고 온 희소식에 들떠있던 례영이였다.

《아버님, 떠나주세요, 저같은거야 뭐랍니까. 정 급하면 혜숙의 집쪽에 가서 숨어있으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그래도 안되면 혜숙이처럼 빨찌산에 가면 됩니다.

허지만 아버님께서는 그럴수야 없지 않습니까?

장군님께서 기다리신다는데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겠습니까?》

례영이는 벌써 눈섭끝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가지고 애끓는 심정을 토로하였다.

정시명은 자기 무르팍을 쥐고 흔드는 례영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고맙다, 례영아. 그러나…》

《아버님, 더 말씀하지 마십시오. 어떤 말씀을 하시려는지 전 다 알아요.》

《례영아, 그걸 다 알면서 너희들이 나를 각박하게 몰아대면 난 어떻게 하라는거냐?

후- 난 정말 이제라도 장군님슬하에서 살고싶다. 그 길이 만리면 대수냐. 총칼이 숲을 이룬들 헤쳐가지 못하겠느냐. 항차 떠난다면 반나절 길이다. 그런데…》

《아버님!》

《례영아, 나를 리해하여다오.》

《아버님이 안떠나시면 저도 서울을 뜨지 않겠습니다. 전… 전… 아버님.》

《무슨 소리냐? 너는 떠나야 한다.》

정시명이 례영이 떠나는 문제를 놓고 딴소리를 못하도록 엄하게 눌러버렸다.

《아버님, 아버님께서 어찌 저에게 그런 모진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아버님을 두고 어찌 홀로 떠날수 있겠습니까? 아버님!》

례영이 더는 북받치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정시명의 무릎에 왈칵 얼굴을 묻으며 쫘르르 더운 눈물을 쏟아놓았다.

정시명을 남겨놓고 자기만이 서울을 떠난다는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례영이였다. 어떻게 그럴수 있는가. 부모이상으로 기울여준 정에 갚음은 고사하고 속만 태워드리다가 저만 달랑 가버리다니 세상에 그런 배은망덕이 또 있을가.

《얘야, 이러지 말아. 너만은 떠나야 한다. 너까지 잘못되는걸 보면 난 정말 심장이 파렬되고말게다. 혜숙이네 사랑을 지켜주지 못한걸 너도 알지? 순애네 사랑도 깨여진걸 너도 알지 않느냐? 너희들의 사랑마저 내 눈앞에서 꺼져버리면 나도 너희들과 함께 꺼져버리고말게다. 자기 같은건 뭐라고라니?… 그게 내앞에서 하는 소리냐? 도대체 우리가 뭘 위해 싸우는지 네가 아직도 다는 모르는것 같구나. 그래 례영아, 너희들때문에 아버지의 가슴에 재가 차고 눈물이 다 말라버린걸 여적 모르고있었단 말이냐?》

정시명은 자기의 아픔을 다 헤아려주지 못하는 례영이에게 노여움이 끓어올라 곰방대를 재털이에 여러번 두드려 털며 어성을 높이였다.

례영의 행복은 정시명에게 있어서 단순한 기쁨이 아니였다.

그것은 자기 인생에 빛을 가져다주는 등불같은것이였다. 투쟁의 보람을 느끼게 하는 고결한 리상의 열매이기도 하였다. 젊은이들의 창창한 미래와 사랑을 위해 싸운다는것을 무시로 깨우쳐주고 그길로 떠밀어주는 힘이였고 행복이였다.

례영이네 사랑마저 지켜주지 못한다면 정말 자신도 요절하고말것이다.

《아버님, 그만해요! 저도 알아요1 알아요!… 그렇지만 … 나 홀로 … 아버님, 전 … 전…》

《안된다!》

정시명은 무뚝뚝하면서도 단호하게 그냥 바재이는 례영의 말을 툭 잘라버렸다.

《너 혼자의 문제라고만 생각지 말라지 않느냐. 우리 위업의 미래에 속하는 문제다. 우리 위업의 정당성에 관한 문제이다.

나는 우리의 정으로운 리상이 통일된 조국의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지고 쓰러진 우리 전우들의 넋이 살아 빛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나는 우리가 아끼고 씨를 뿌려 풍성하게 키운 사랑과 행복이 통일된 조국에서 열매맺고 더 아름답고 푸르싱싱하게 솟아오르기를 바란다. 나는 우리의 전우들도 우리가 념원했고 그를 위해 피를 바친 민족의 대업이 성취되는 그날까지 살아서 그 영광스러운 미래의 주인된 삶을 누리는것을 꼭 보고싶다.

내가 지금 너무 감상에 젖어 비장하게 오늘과 래일을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례영아, 내 아버지로서의 부탁이다. 우리를 더 가슴쓰리게 하지 말고 떠나다오. 응, 그래 주지?》

《아버님! 아버님…》

례영은 정시명의 그 격해진 이야기에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런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이렇게 목메여 부르며 그냥 어깨를 들먹이였다.

그들사이에 오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번져질지 가슴에 눈물을 한동이 채워놓고 애끓이고있던 민순임이 례영의 얼굴을 조심이 들어주며 자기속을 위로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타일렀다.

《이것아, 그만 그쳐라. 아버님말씀대로 서울을 떠나는게 내 생각에도 좋을듯싶구나. 끌날같은 사람이 옆에 끼고가니 우리도 널 보내놓고 마음놓을게 아니냐. 아버님속을 더 태워드리지 말아.》

장군님께서 남편을 부르시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커다란 꿈에 부풀어있던 민순임도 빠질빠질 타드는 속을 다잡느라고 애를 쓰는것이 헨둥하였다.

《어머니, 어머님까지 이러시면 전 어떻게 하랍니까?》

례영이 민순임의 가슴을 파고들며 태를 쳤다.

얼굴이 시꺼매서 뚝해 앉아있던 마동열이 오가는 이야기들에 결이 오른듯 성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례영이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꽉 그러잡았다.

《여보, 어떻게 하겠소. 당신이 서울을 떠나는건 피차에 옳은 일이요. 이제 당신이 여기 더 있어야 아버님께 짐밖에 되지 않소. 자, 아버님을 쉬시도록 합시다. 사실 오늘 아버님은 헐치 않은 싸움을 하시느라고 지쳐계시오. 어서…

아버님, 저희들이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례영이 무슨 소리냐는듯 한 눈매를 지어보였으나 마동열은 그의 손목을 그악스레 잡고 걸음을 옮겼다. 례영은 마동열의 손에 끌려 그냥 어린애처럼 턱을 떨며 건넌방으로 갔다.

정시명은 더 떼질을 하지 않고 손을 들어주는 마동열이 다행스러워 고개를 끄덕여보이고는 자리에 들었다.

이날 밤 남편의 옆자리에 돌아누운 민순임은 장밤토록 잠에 들지 못하고 궁싯거렸다. 소리없이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푹 적시였다. 퍼내도 퍼내도 끝이 없이 눈물은 아침녘까지 쉴새없이 쓰라린 속을 훑어내렸다. 소리쳐 통곡이라도 하면 속이 후련하련만 남편의 곤한 잠을 깨칠세라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없이 흐느꼈다.

하지만 정시명도 이밤에는 잠들수가 없었다. 너무도 많은 생각들이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고 또 밀려오군 하였다.

정시명은 옆자리에 돌아누워 소리를 죽여가며 흐느껴우는 안해를 달래주고싶었으나 굳이 참고 아침까지 눈을 감고 대척없이 누워있었다. 그의 속깊은 곳에서도 뜨거운 감사와 애모쁨과 그리움의 눈물이 자오록이 차서 튕기면 솟구쳐오를듯 넘실거리고있었다.

끝없이 길고도 짧은 밤이였다. 건너방에 자리를 편 젊은 부부들도 이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있었다.

눈물겨운 사연과 정으로 얽혀진 네 심장은 사랑의 향기가 진동하는 한지붕밑에서 서로서로 쓰다듬고 위로해주며 고귀한 리상과 인간본연의 아름다움을 읊조리며 밝아오는 새벽을 맞고있었다.

그 다음날 례영은 마동열에게 시장에서 모실을 구해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마동열이 모실을 한보따리 사들고 오자 그날밤부터 밤을 새워가며 뜨개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속탈이 있는 정시명에게 제손으로 털실내의를 떠드리고 떠나고싶었던것이다.

마동열도 떠나는 문제를 놓고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아침에 일찌기 나갔다가 저녁에는 늦게 들어오군 하였다. 늦게 들어와서는 정시명에게 편히 쉬라고 밤인사를 하고는 저희들끼리 소곤거리다가 잠자리에 들군 하였다.

정시명도 련속 부닥치는 일감에 묻혀 그들의 출국준비에 더 개의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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