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죄여드는 그물

5

 

이밤에 서켠으로 미끄러져내리는 달을 바라보며 잠들지 못하는것은 그들뿐이 아니였다.

리승만이 도사리고있는 경무대의 우중충한 건물의 어느 한 방에서는 이밤따라 밤늦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고있었다.

리승만은 참대로 엮은 흔들이걸상에 허리를 붙이고 누워있었다. 뒤에서는 마누라인 프란체스까가 아기의 요람을 흔들어주듯 걸상을 흔들어주며 리승만이 코소리를 내기만 기다리고있었다. 지금 응접실에서는 방금 리승만에게서 물러난 노불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잠시전에 이 방에서는 노불의 참석밑에 최근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정책적립장을 천명한 미국의 정책립안자들의 발언이 전달되였다.

국무장관 애치슨은 미국무성관계자들의 협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고 한다.

《리승만은 최근 남조선에서 제2차 〈국회〉선거를 50년 11월에 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정계는 물론 미국과 유엔무대에서까지 리승만이 독재를 한다고 떠들고있다. 이에 대처하여 미행정부는 남조선에서 헌법에 규정된 선거를 실시하지 않는 한 경제원조를 삭감하며 〈유엔한국위원단〉을 철페시키며 군사장비공급도 보류할것이다.》

4월남북련석회의와 관련한 미국의 모략공작을 현지에 와서 총괄하다가 쓰디쓴 고배만 마시고 태평양을 넘은 후로 미정계에서 동방문제의 최고권위자로 자처해온 호프킹즈는 트루맨에게 다음과 같은 진언서를 제출하였다.

《미국은 남조선을 포기하는것이 바람직하다. 리승만과 그의 〈국회〉는 국민의 대표성을 상실한 인기없는 물건짝이 되였다.

미국납세자들의 지지(딸라)를 토대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공산주의 침략〉이라는 연기를 꾸미고있는 정부를 계속 뒤받침하는것은 실리가 담보되지 않는 모험이다. 이미 리승만은 개성에서 상대측에 대한 대규모의 도발을 하고는 쏘련의 공격이요, 북의 공산주의세력의 선제타격이요 하면서 인민군 400명을 사살했다고 떠들고있다.

현지 미군고문들의 보고에 의하면 1구의 시체도 발견한것이 없다. 올해 봄에는 남조선의 춘천에서 800명, 홍원에서 500명의 남조선군이 금방 넘겨받은 미국제신형무기를 가지고 북으로 넘어갔다. 미국이 이런 나라에 기대를 건다는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나는 남조선과 대만을 포기하는 극동방위라인(선)을 다시 그을것을 맥아더에게도 강경히 지시하였으면 한다. 중요한것은 남조선에 선거일정을 지켜나가도록 적절한 압력을 가하는것이 요망된다.》

남조선에 대한 미국의 주요공직자들의 폭탄선언같은 발언들은 극비에 속한것이였다. 그것을 남조선통치권에 그대로 전달되게 한것은 무쵸의 계략이였다.

무쵸는 리승만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켜 전쟁광증을 더 야단스럽게 벌리도록 하기 위한 전략의 첫 단계 포문을 연것이였다. 노불이 회의에서 짐짓 리승만의 지인답게 장중하면서도 념려스러운 표정을 짓고 그 하마상을 꺼떡거리며 극비발언문을 전달하자 예상했던대로 리승만과 그의 장관들은 대경실색이 되였다. 그러나 리범석이만은 올것이 왔다는 식으로 태연하게 앉아있다가 술렁거리는 좌중을 돌아보며 심술궂게 내뱉았다.

《크게 놀랄게 있습니까? 헌법대로 하면 되는거요.》

그 소리에 리승만이 입을 쭉 내밀고 대뜸 언성을 높였다.

《그게 총리의 해결책이요? 헌법대로 선거를 할것 같으면 5월에 해야 하는데 그렇게 빨리 선거를 치를 돈이 어디 있소? 지금도 집안꼴이 성하지 못한데 항차 그걸 벌려놓고 정국수습을 어떻게 한다는거요?》

리승만이 총리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대바람에 일축하여버리는데는 연고가 있었다.

원래 맥아더가 수정완성시켜 보낸 남조선헌법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임기가 4년으로 규정되여있었다. 그런데 1기 《국회》만은 례외로 헌법을 제정한다는 의미를 두고 제헌국회라고 해놓고 임기는 2년으로 규정하여놓았다. 그러니 헌법대로 하면 5월 10일에 2차 《국회》선거를 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에 선거만 치르면 지금의 정치세력관계로 보아 리승만세력이 대패하리라는것은 명백하였다. 타개책은 선거를 미루는수밖에 없었다.

리승만은 《국회》의원 임기를 연장한다는 달콤한 약속으로 《국회》의원들을 충동질하면서 막후공작을 벌려왔었다. 그러나 리승만의 의도를 간파한 반대세력들은 이에 결사적으로 반발하여나섰다. 그 주창자가 리범석과 《국회》의장인 민주국민당 당수 신익희였다.

그들은 선거만 치르면 리승만계의 《국회》의원들이 대거탈락되여 리승만을 통치권에서 순조롭게 밀어내게 될것이라고 확신하고있었다.

이날 국무회의는 자연히 선거와 관련한 문제로 넘어갔고 리승만파와 리범석파로 갈라져 옥신각신하면서 야밤삼경까지 매듭을 짓지 못하고 끝났다.

리승만은 지금 코코에 제말이라면 한사코 걸고들어 한바탕 독을 쓰고야 직성이 풀리는듯싶어 하는 리범석의 길쑴한 얼굴을 그려보며 속으로 그냥 불끈거리는것을 누르고있었다. 리범석의 언동으로 보면 뒤에 단단한 배경을 두르고있는것이 헨둥하다. 그래 그저 덮어놓고 쳐갈기지는 못하겠고 그걸 참아내자니 울화가 터지군 해서 견딜수가 없다. 그 중요배경인물이라는게 미국대사 무쵸가 틀림없어 리범석과의 대립이 더구나 지겹기만 하였다.

지난 봄에 38°선에서 벌어진 군사작전의 실패와 2개 대대의 입북을 구실로 국방장관직을 빼앗아내는데는 성공하였지만 리범석의 추천으로 그의 후임으로 내세운 신임국방장관 신성모도 코가 세기로 고래힘줄같은 사람이다. 리승만은 영국에서 항해사로 이름을 날렸던 그 사람이 그닥 탐탐치 않았는데 리범석이 자기가 물러나는 조건부로 그 사람을 천거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내세웠다. 한데 이번 회의에서도 리범석의 편에서 소란을 피우는것이였다.

《괘씸할지고… 저놈들을 어떻게 한다? 리범석은 아무튼 쫓아버려야 되겠고… 그놈의 선거가 정말 야단이야. 맥아더더러 전쟁을 좀 더 당겨보자고 할가…》

리승만은 이렇게 중얼중얼거리였다.

《각하,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리승만에게서 고대하는 코소리가 아니라 끝없는 넉두리가 흘러나오는게 짜증스러웠으나 프란체스까는 이렇게 교태가 어린 어조로 물었다.

《응?… 허… 별게 아니야. 지금 노불서기관이 있겠지?》

《건?… 글쎄요.…》

프란체스까는 령감의 엉큼한 속내가 짚이우는 물음에 순식간에 얼굴이 새빨개졌으나 이내 천연스럽게 대답하였다.

《아마 각하에게 따로 말씀드릴 얘기가 있는가 봅니다.》

《그래?… 밤도 깊었는데 가서 전하게. 난 심기가 불편해서 쉬자고 하니 뒤날에 만나자고 하게. 그리고 한마디만 귀띔해주게.

거사를 앞당기도록 중앙정보국 통로를 통해 트루맨을 움직이도록 해달라구 말일세. 음… 뭐가 다 제대로 되지 않고 삐걱거리거던…》

《알겠습니다.》

리승만은 흔들이걸상에서 일어나 옆방에 있는 자기 침대에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프란체스까가 응접실에 나가 밀회시간을 기다리고있는 노불에게 잠시후에 나오겠노라 말해놓고는 리승만의 머리맡으로 돌아왔다. 그 녀자는 요즘 리승만이 잠들기 전에 읽어주군 하던 《나뽈레옹전》을 랑랑한 목소리로 읽어주다가 그가 코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껐다.

그는 침실을 나서다가 《북벌이야, 북벌》하는 역증스러운 소리에 발을 세웠다. 벌써 잠꼬대를 시작한 모양이다. 두상의 로망기가 점점 심해지는것 같다. 그것이 룡상을 지켜내는 심리전이 심화됨에 따라 더해지고있다.

지금도 리승만은 꿈자리에서 권력다툼에 말려들어 기운을 뽑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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