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순화강기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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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봉의 솔숲은 가을볕을 받아 푸른 빛이 한결 밝게 안겨왔다. 발밑으로는 대동강이 감돌아흐르고 앞으로는 가을걷이가 한창인 논밭이 시원하게 펼쳐져있었다. 하늘은 높이 들려 멀리로는 고방산과 대성산이 한눈에 안겨오고 뒤에는 가을빛이 곱게 물든 룡악산이 선명하게 비껴온다.

만경대가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왔는데 와보니 정말 일만경개가 한폭으로 잇달린 산수화병풍같다.

《과시 세기의 위인을 받들어올릴만 한 명소로구나!》

방금 만경봉마루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고난 정시명은 부지중 감개가 솟아나 나직이 부르짖었다. 그의 옆에는 맏아들이 아버지의 회색두루마기를 들고 서있었다.

오늘 새벽에 정시명이 습관대로 일찌기 깨여나 장군님의 말씀을 되새겨보며 서울에 나가 해야 할 일들을 궁리하는데 그이께서 침실로 들어오시였다.

《잠자리가 바뀌여서 잠들기가 어려울겁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얼른 침대에서 허리를 세우는 정시명을 만류하시며 걸상에 앉으시였다.

《아니, 푹 잤습니다. 정말 달게 잤습니다. 아마도 달포째 여러가지 시름에 시달리다가 장군님께서 다 가셔주신 덕인것 같습니다.》

정시명은 솔직한 심정을 말씀드리였다.

《그래 서울로 오늘 정히 떠나시렵니까?》

《예, 허락하여주십시오. 이번 일만 해놓고서는 장군님 분부대로 정말 허리띠를 풀어놓고 쉬고 가렵니다.》

《할수 없군요. 사실은 나도 정시명동지가 있고싶어해도 등을 밀어보내고싶지만 너무도 쇠약해진 동지를 또 사지판에 보내는게 너무 가슴아파 그럽니다. 나는 정시명동지에게 현상금 5백만원을 걸어놓고 수배령이 내려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거야 뭐 미국놈들에게 제가 고운 사람이 될수 없으니 마땅히 차례진게 아닙니까. 전 저에게 차례진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동무들도 경각성을 높이고있으니 너무 걱정마십시오.》

정시명은 다함없는 애정을 기울여주시는 장군님의 심려를 덜어드리고싶어 얼굴에 벙긋 웃음을 담았다. 하지만 속안은 뜨거운 격정과 고마움으로 하여 그냥 달아올랐다. 전생을 나라 위해 충정을 고여 허위단심 달려왔건만 그 어느 시절, 그 어느 누가 이토록 자신의 얼굴에 비낀 병색을 헤아려주고 자심한 정으로 보살펴준적 있었던가.

아, 이분의 마음속에 삶의 전부를 맡기고사는 수많은 전사들과 인민들의 충의가 새삼스레 짚이워진다.

《상이라고요?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나라앞에 지닌 사명감을 두고 자신을 잊고 사는 정시명의 속대를 다시한번 확인하시며 이 불같은 인간의 고집을 더는 꺾을수 없으시여 또다시 짧은 한숨을 내쉬시였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냅시다. 고급당학교에서 공부하고있는 맏이를 불렀습니다. 참, 내가 리민청위원장을 하는 그앨 고급당학교에 불러다 공부를 시킵니다. 장가도 보냈구요. 몇번 만났는데 맏이가 똑똑합니다. 그앨 데리고 먼저 우리 할아버지한테로 가십시오. 나도 아침에 협의회를 마치고 정숙동무와 함께 만경대로 나가겠습니다. 할아버지를 뵈온지도 퍼그나 됩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정시명은 장군님께서 자기의 가족들을 따뜻이 보살펴주시고 오늘은 또 자기를 위하여 금쪽같이 귀한 시간을 내주시는것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스럽기도 해서 축축히 젖어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렇게 되여 그들은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자동차를 타고 만경대에 나왔던것이다.

장군님의 고향집에 도착하니 김보현할아버님께서 서울에서 큰일 맡아보는분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하면서 극진히 맞아주시였다. 할아버님께서는 허물없이 장군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고향집의 이모저모를 다 보여주면서 그이의 어린 시절에 대한 감회깊은 추억담도 들려주시였다.

장군님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박우물과 학습터를 걸쳐 만경봉까지 안내하고는 장군님께서 부탁한 일이 있다며 먼저 돌아서시였다.

정시명은 만경봉에 올라 주변경치를 부감하면서 맏이로부터 평산의 고향마을소식도 들었다. 고향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고향사람들의 얼굴에 기름기가 돈다는 맏이의 소리에 정시명은 기쁨의 웃음을 터치며 눈굽에 행복의 눈물을 담았다.

얼마나 반갑고 흐뭇한 소식인가.

(아, 우리 고향도 주인을 잘 만났으니 복이로다!)

 

정오가 가까와올무렵에 고향집쪽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장군님께서 오신가부다. 어서 내려가자.》

정시명이 두루마기를 받아 걸치며 산마루를 내려서는데 푸른색갈의 자동차가 마주 달려왔다. 차에서는 이미 면목을 익힌 부관이 내리였다.

《어서 타십시오. 장군님께서 먼저 순화강가에 나가시였습니다.》

《김정숙녀사께서도 오셨습니까?》

《예, 할아버님댁에 들어가시였습니다.》

자동차는 이내 순화강의 양지바른 기슭에 도착하였다. 거기서는 장군님께서 김보현할아버님과 함께 여러대의 낚시대를 갖춰놓고 잔손질을 하고계시였다.

《아, 어서 오십시오. 낚시질에 무척 조예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낚시질은 나도 좋아합니다. 자, 어서 한틀 골라잡으십시오. 나는 어릴 때 할아버님과 함께 여기에 나와 반두로 고기를 잡군 하였습니다. 잘 잡으면 한다래끼 채웠는데 그거면 한끼 물고기국을 푸짐히 먹을수 있었지요. 자, 어서 지렁이를 꿰십시오. 지렁이는 할아버님이 준비해오셨습니다.》

《할아버님, 고맙습니다.》

《원, 고맙기는… 그럼 나는 가겠시다. 우리 손주며느리가 동자질하겠노라 소매를 걷고 나서던데 나는 우리 증손이 동무해줄랍니다. 그 영특한게 우리 집에 오면 집안에 웃음이 가득찬다우.》

할아버님께서는 증손이라는 소리를 흐뭇하게 외우시며 호함지게 미소를 담으신다.

할아버님을 바래우고난 정시명은 낚시대를 하나 골라잡으며 미안쩍은 어조로 말씀드렸다.

《장군님, 제가 이번 걸음에 너무 페를 끼칩니다.》

《하, 또 그 말씀이시군. 오늘은 일요일이 아닙니까. 어떤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주말휴가가 헌법에까지 규정되여있다는데 뭐 그 정도로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자, 오늘 하루는 우리 서로 평양과 서울에서 해방되여봅시다. 여기는 내 어린 시절에 소꿉친구들과 함께 물장구치며 놀던 곳입니다. 우리 오늘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서 태평스럽게 하루를 보냅시다. 허허…》

김일성동지께서는 호탕히 웃으시며 강복판을 향해 낚시를 던지시였다.

정시명은 장군님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저으기 속이 홀가분해져서 지렁이를 낚시에 물리고 허공에서 휘파람소리를 내며 낚시대를 휘둘렀다.

정오가 가까와오는 강반은 거울처럼 빛나고 사위는 고요속에 묻혀있었다. 어디선가 한쌍의 물촉새들이 포르릉 날아와 팥알같은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다가 낚시질에 방해를 놀세라 머리우를 몇번 선회하더니 강 저쪽으로 날아갔다. 맞은편 기슭에서는 살진 소 한마리가 가담가담 풀을 뜯는데 갓 난듯 한 애송아지 두마리가 늘어진 젖통에 대고 겨끔내기로 골받기를 하며 재롱을 부리고있었다.

평산의 고향마을과도 다를바 없는 정다운 농촌풍경이 정시명에게 더욱 흥취있게 안겨들었다. 그는 이따금 고개를 돌려 깜부기를 지켜보시는 장군님의 옆모습을 살피기도 하면서 점점 낚시에 눈길을 모아가기 시작하였다.

《이크, 마수거리가 괜찮은가보군.》

먼저 팔뚝만 한 숭어를 들어올리신 장군님께서는 즐겁게 웃으시였다. 정시명도 한뽐은 실히 되고도 남을 우레기를 낚아올리였다. 부관과 맏이는 고기가 낚시줄에 매달려 나올 때마다 환성을 올리군 하였다. 그들은 장군님과 정시명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들어올린 고기를 다래끼에 집어넣기도 하고 낚시에 지렁이도 물려주었다.

잠간사이에 크지 않은 다래끼가 절반은 찼다.

문득 김정숙녀사의 맑은 음성이 정시명의 등뒤에서 울렸다.

《정시명동지도 낚시질에 명수이십니다.》

《허허 뭘요.》

정시명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녀사께서 안고오신 커다란 함지박을 받아내리였다.

녀사께서 다심한 어조로 물으시였다.

《어죽을 좋아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산에서부터 어죽을 좋아하시였습니다.》

《예, 나도 좋아합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낚시대를 들어올리시고 그들에게로 다가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부관과 함께 김정숙녀사를 따라온 두명의 처녀들에게서 가마와 그릇들을 받아주시며 말씀하시였다.

《인사를 올려라. 이분은 너의 아버님과 함께 통일운동을 하시던 선생님이시다.

정시명동지, 이 애들이 려운형선생의 딸들입니다. 모스크바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이 돼서 왔는데 내가 조국의 때를 묻혀주느라 한주일째 지방출장길에 데리고 갔댔습니다. 외국에 가서 지식을 배우는건 필요하고 좋은것이지만 조국의 얼을 조금이라도 잃을가봐 늘 걱정입니다.》

《선생님, 문안드립니다.》

두 처녀가 잔디밭에 무릎을 붙이고 조선절을 나부시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음, 너희들이 몽양선생의 딸들이구나. 그분이 떠나기 전날에 나더러 장군님 모시고 오래오래 살겠다고 눈물이 글썽하더니… 눈이 억실억실한게 둘다 아버님의 모상을 신통히 닮았구나… 어서 일어나거라.》

정시명은 갈린 음성으로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처녀들의 손을 잡아일으켜주었다.

김일성동지께서도 려운형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계시다가 《자, 모두 솜씨들을 보여라. 오늘 점심은 어죽 한그릇이니 맛갈이 없어 배를 곯아도 누굴 탓할게 없다.》하시며 분위기를 바꾸어주시였다.

문득 장군님께서 처녀들을 지켜보시다가 물으시였다.

《연구는 흘레브만 봐도 목구멍이 꺽 멘다고 했지?》

《호호…》

《대사관동무들이 내게 어떤 고자질을 해왔는가 하면… 대줄가?》

김일성동지께서는 처녀들과 무랍없이 웃으시며 롱조로 말끝을 길게 이으시였다.

《예, 장군님…》

작은딸이 장군님의 옷섶을 잡으며 어서 대달라고 몸을 흔들었다.

《이 자리에선 안되겠다. 우리 정시명선생님이 서울 가시여 어머님께 그대로 여쭈면 너희들 서울에 갔다가 물볼기를 맞을수 있다.》

《그래도 좋습니다. 장군님…》

처녀들이 더욱 안달이 나서 엉석을 부리며 졸랐다.

《허, 물볼기를 맞을 각오도 돼있다면야… 다른게 아니구… 모스크바총각들이 너희들을 따라다닌다는거야. 연구가 뭐 곁눈질한다면서… 흘레브를 그렇게도 싫어하는 처녀가 모스크바총각과 짝을 무었다간 정말 야단이 아닐가. 대사관동무들이 고자질을 할만도 하지.》

《에― 장군님…》

《하하하…》

김일성동지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처녀들이 깔깔거리고 녀사께서는 빙그레 웃으시였다.

그런 일이 정 없었던것은 아닌지 큰 처녀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시명도 김일성동지께서 펼쳐놓으신 이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의 화폭속에 묻히여 즐겁게 웃었다. 몽양이 생전에 그리도 장군님의 품을 그리워하더니 그의 딸들이 이렇게 그이의 슬하에서 만복을 누려가지 않는가. 몽양이 살아서 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후더운 사랑의 향기가 차넘치는 화폭을 보았으면 얼마나 기뻐하랴. 그가 생전에 자기의 딸들이 밝은 세상에서 장군님의 품에 안겨 이렇듯 티없이 자라고 구김살없이 엉석도 부리는 광경을 생각이나 했으랴.

아니, 그는 그려보았을것이다. 그런 믿음, 그런 확신이 있었기에 자기 혈붙이들을 서슴없이 장군님의 품으로 떠밀어보낸게 아닌가. 장군님의 품속에 안겨 한점의 그늘도 없이 밝고 맑게 웃고 떠드는 처녀들의 모습이 더욱 새삼스럽게 려운형의 모습과 더불어 눈부리가 뜨겁게 새겨진다.

처녀들은 아직도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 김정숙녀사를 도와 물고기들을 손질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우린 가마나 걸어봅시다.》

김일성동지께서 웃동을 벗어 금잔디우에 놓으시자 정시명도 성수가 나서 팔소매를 걷어올렸다.

그이께서는 정시명과 함께 큼직한 돌들을 맞들어 잠간사이에 가마를 걸수 있도록 부뚜막을 만들어놓으시였다. 부관과 맏이는 강변에서 가을볕에 바싹 마른 나무가지들을 한아름씩 주어왔다.

김정숙녀사께서 손수 끓이신 어죽은 참말로 빛갈도 좋고 맛도 있었다. 누렇게 색이 바래가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그우에 장군님을 가운데 모시고 둘러앉아 녀사로부터 뜨거운 어죽을 한그릇씩 받아들었다. 권커니들거니 하면서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죽을 너나없이 맛스럽게 드는 모습은 말그대로 장군님을 어버이로 모신 인민의 행복의 축도였다.

정시명은 그 정경이 눈물겹도록 이채로와 숟가락을 들다말고 둘러보고 한숟가락 들고는 또 둘러보는데 어느결에 장군님께서 그의 젖어드는 심중을 알아차리시고 무르팍을 가벼이 흔들어주시였다.

《우리 처녀들이 어죽맛에 귀한 손님대접을 잊고있구나. 이 어죽이 사실 공짜가 아니다.》

장군님의 롱조어린 말씀에 처녀들은 기다리기나 한듯 활발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서너발자국앞에 나서더니 둘중에서 쾌활해보이는 둘째가 먼저 소개말을 하였다.

《우리 장군님께서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 〈사향가〉!》

《아, 그 노랜 안되겠다. 그 노랜 어머니의 몫이다.》

김일성동지께서 손을 저으시자 김정숙녀사까지 상냥하게 미소를 담으시는데 처녀들은 곱게 눈을 빨더니 모로 돌아서서 저희들끼리 소곤거리였다. 노래를 고르는 모양이였다.

정시명은 처녀들의 그 가벼운 눈빛에서도 또 가슴에 후더운것이 목메도록 치밀어올랐다. 저런 눈빛은 친아버지앞에서만 보일수 있는 딸들의 티없는 모습그대로이다. 몽양이 자기 딸들을 미국에 꼬여가려고 추파를 던지던 미군사령관 하지의 꾀임을 단호히 일축해버린 심중이 다시금 절절하게 짚이운다. 장군님의 품에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사는 이 나라의 민심을 몽양도 따라선것이 아닌가.

잠시후 처녀들의 씩씩하고 고운 노래소리가 순화강변에 울려퍼지였다. 광복후 녀성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고있는 노래《내 고향》이였다. 백두산말기에 뻐꾹새가 뻐꾹뻐꾹 우짖고 옥야천리에는 밭 갈고 씨뿌리며 세세년년 만풍년을 가꾸어가는 농민들의 흥겨운 노래가 울려퍼지고있는 고향의 변천된 모습이 맑고 청높은 선률에 실려 펼쳐지는듯싶다.

처녀들은 노래를 마치자 녀사의 팔을 잡고 노래판에 불러냈다,

《선생님, 저의 목소리가 곱지 못합니다.》

김정숙녀사는 이렇게 정시명에게 량해를 구하시고는 청중의 박수속에 《사향가》를 부르시였다. 맑고 은은한 노래가 청명한 가을하늘에 부드럽게 울려갔다. 밀림속에서 만경대의 푸른 숲을 그려보시던 그 시절을 펼쳐놓으시듯 녀사께서는 뜨거운 감회에 잠겨 가사의 구절구절을 청아한 선률에 담으신다.

녀사의 노래가 끝나자 정시명이 일어났다.

《평양에 왔다가 이런 향연이 저에게 차례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동지들이 서울에서 부르고싶어도 못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 동지들이 그렇게도 그리워 쓰러지면서도 심장을 터치고싶어하던 인민의 찬가를 부르겠습니다.》

정시명이 이렇게 다소 흥분된 어조로 소개를 하고나서 엄숙한 감정에 휘말려들어 입을 떼려고 하는데 김일성동지께서 우렁우렁하신 목소리로 그를 제어하시였다.

《아, 아, 정시명동지!》

그이께서는 정시명이 무슨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지 벌써 헤아리시였던것이다.

《정시명동지, 난 정시명동지보다 나이도 적고 아직 인민의 송가를 받을만 한 일도 해놓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정시명동지의 날입니다.》

정시명이 머뭇거리다가 그냥 마음이 움직인대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데 김정숙녀사께서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정선생님, 장군님의 노래는 아드님께 돌리십시오. 장군님께서는 기쁘게 웃으시는 정시명동지의 모습을 보고싶어하십니다.》

정시명은 그 인자한 말씀들에 또다시 눈굽에 핑하니 물기가 어렸다. 자기의 속을 가볍게 해주고 지겨운 모든것을 이 아름다운 강물에 깨끗이 씻어주시려는 그분들의 웅심깊은 심중에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던것이다.

정시명은 정말 자기를 위하여 그렇게도 각별한 정을 부어주시는 장군님의 심려를 덜어드려야 되겠다고 생각을 고쳐하였다. 그래서 잠시 알고있는 노래들을 더듬어보는데 장군님을 즐겁게 해드릴 노래가 인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알고있는 노래들이란 대체로 해방전에 불리우던 애수에 젖은 류행가들과 중국에 건너가 배운 혁명가요들과 중국노래였다. 장군님께서 마련하신 이 행복하고 즐거운 흥취에는 다 어울리지 않을듯싶다.

잠시 생각을 굴리던 그는 마침내 어린 시절에 부르던 동요 한수를 골라냈다. 가사만 생각하여도 저절로 웃음이 앞서는 노래였다. 가사가 신통치 못한 생각이 들기는 했으나 정시명은 그 생각도 지워버렸다. 자기를 위하여 마음쓰시는 장군님과 녀사를 편하게 해드릴수만 있다면 가사에 흠이 있다한들 어떠랴. 장군님께서도 물장구치던 소꿉시절로 되돌아가자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니 그 시절을 떠올릴수 있는 노래를 불러드리는것도 좋을듯싶다.

정시명은 목청을 뽑기 시작하였다.

 

        옛날에도 아득한 먼 옛날

        살구꽃 피는 어느 봄날에

        지렁이색시와 설설이총각

        백년가약 맺고서 잔치를 했다네

 

        잔치상에 나앉은 설설이총각

        허리가 미끈한 색시를 맞아

        너무 좋아 어쩔줄 몰라하는데

        지렁이색시는 울상이 되였네

 

        신랑의 발 세여보니 서른넷이라

        저 많은 발에다 어떻게 해야

        꼭 맞는 신발을 맞추어줄가

        아이참 속상해 너무 속상해

 

        지렁이색시는 생각다 못해

        중매군개미에게 말하였다네

        그 말을 들은 개미 곁눈질해보니

        정말이지 총각의 발 서른넷이라

 

        어이쿠나 그것을 생각못했지

        중매군개미는 어이가 없어

        웃다가 웃다가 너무 웃어서

        그만에야 허리가 잘룩해졌네

 

정시명이 노래를 끝내자 아까부터 입을 싸쥐고 얼굴을 김정숙녀사의 등에 숨기고 캐득거리기 시작하던 처녀들이 종시 까르르 웃고말았다.

김일성동지께서도 호탕하게 웃으시고 김정숙녀사께서도 맑은 소리로 즐겁게 웃으시였다. 부관도 맏이도 배를 그러쥐고 돌아갔다. 순화강반에 폭소가 터져올랐다.

《하하하… 걸작입니다. 걸작… 아, 세상에 유명짜한 배짱군인 정시명동지에게 그런 익살이 있다니요. 음― 그러니 개미가 중매를 섰다가 잘룩허리가 됐군. 허허…》

김일성동지께서 걸걸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시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웃음소리는 순화강기슭을 흔들며 오래동안 그치지 않았다. 처녀들은 너무 웃어 배가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면서도 웃음을 거둘줄 몰랐다.

정시명도 자기의 엉터리없는 노래를 장군님께서와 김정숙녀사께서 무랍없이 받아주시며 즐겁게 웃으시는것이 너무 기뻐 소리내여 웃었다. 참으로 일생토록 이렇게 만시름을 잊고 즐겁게 웃어본 일이 있었던가싶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웃음소리가 잦아지자 《오늘 노래에 점수를 매길것 같으면 정시명동지의 노래가 단연 1등입니다. 우리의 성의를 기쁘게 받아주어 정말 다행입니다.》 하시며 흡족해하시였다.

《장군님!》

정시명은 더는 끓어오르는 고마움과 행복감을 주체 못하고 격동된 어조로 부르며 장군님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제 평생 이런 기쁘고 행복한 무아경에 취해보기는 처음입니다. 정말이지만 병이 뚝 떨어졌습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아침녘까지도 쑤시던 어깨아픔도 가신듯이 나았습니다. 천리만리라도 단숨에 날아갈것만 같습니다.》

《하, 그건 정말 듣던중 제일 반가운 소리입니다. 정시명동지가 기쁘고 즐거워하니 나도 한시름이 풀립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장군님, 저는 오늘 저녁중으로 떠나겠습니다. 이 순화강가에서 저는 백배의 힘과 용기와 담을 받아가지고 떠납니다. 순화강기슭을 제 평생 잊지 않으렵니다.》

《정시명동지, 우리의 크지 않은 성의에 너무 큰뜻을 붙이지 마십시오. 나는 서울에서 만단시름을 안고 들어온 정시명동지가 한토막시간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보내주기를 바랬을뿐인데 우리 소원도 풀린셈입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만족하신 어조로 답례를 하시며 그의 팔을 끼시고 강기슭을 따라 걸음을 옮기시였다.

《정시명동지, 나는 솔직한 말로 정시명동지를 다시 싸움판에 떠나보내자니 괴롭습니다. 놈들이 전국적인 수배령에 특별수사본부까지 만들어놓고 뒤를 쫓고있다니 그야말로 살벌한 사지판이지요. 이번 일이나 치르면 곧 평양으로 오십시오. 나는 남쪽에서 려운형선생이나 김구선생이나 여러 뜻있는 지사들이 비명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정시명동지의 생각때문에 가슴이 저려들군 합니다.

지금이라도 대리인에게 조직을 인계하고 평양에 눌러앉는게 어떻겠습니까. 나는 오늘 아침 협의회뒤끝에 김책동무와도 이 문제를 놓고 깊이 상론해보았습니다.》

《장군님, 부디 제 걱정은 거두어주십시오. 뭐 제가 없다고 우리 〈흥국상회〉가 당장 기울어지기야 하겠습니까. 저와 함께 싸우는 동무들이 다 하나같이 끌끌한 애국충신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장군님의 애국위업에 한몸을 바치기로 자기 운명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그 길에서 장군님의 전사된 보람을 가지고 살도록 해주십시오. 제 싸우다가 정 힘에 부치면 들어오겠습니다.》

《백범도 내앞에서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가더니 영영 돌아오지 못한 불귀의 객이 되고말았습니다. 내 그때 그 어른을 붙잡아두어야 하는건데… 때늦은 후회지요. 후… 모두들 이런다니까. 나라 위한 길에서 벗으로, 친구로 사귀였던 가까운 지기들이 내곁을 영 떠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아파 자신을 다잡지 못하군 합니다. 정말 걱정이 됩니다. 서울에 가시면 내가 평양에서 기다리고있다는걸 잊지 말아주십시오.》

《장군님! 제 평생 장군님생각을 하며 살렵니다. 저도 장군님을 이렇게 뵙고나면 정말 평양을 떠나기 싫고 떠나는 걸음이 무거워지군 합니다. 장군님슬하에 여생을 맡기고 장군님을 아침저녁으로 뵈오면서 살아갔으면 10년, 20년 젊어가지고 열배, 백배로 일을 제낄것 같습니다.

장군님! 조선의 만백성이 우러러받드는 귀한 몸을 부디 돌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석별의 정에 목이 메여하는 정시명의 심중의 토로에 가슴이 달아오르시여 뜨겁게 부르시였다.

《정시명동지!》

김일성장군님!》

김일성동지께서는 한번 다진 맹세를 버리지 않고 층암절벽에 뿌리박은 로송처럼 오가는 폭풍과 세월의 부대낌에도 휘여들지 않는 이 불덩이같이 뜨겁고 강직한 열혈충신을 꽉 끌어안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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