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빨찌산 대장의 자녀들에게 베푸신 사랑

 

인생에는 끝이 있기마련이다. 세상에 이름떨치던 명장도, 비범한 재사도 세월이 흐르면 망각의 안개속에 자취없이 사라져버리기마련이다. 허나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의 품에 안겨 조국과 겨레를 위하여 용감히 싸운 애국자들의 인생에는 끝이란 없다. 그들은 오늘도 민족의 기억속에 영생의 삶을 누리며 후손들의 가슴에 삶의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주체81(1992)년 10월초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한 일군에게 통일애국투사 리현상의 사진을 가져오라고 이르시였다. 사진을 받아드신 그이께서는 안경을 끼시고 사진속의 주인공을 오래도록 보시였다.

중키에 다부진 몸매, 검은테안경을 끼고 총이 센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넘긴 40대의 전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전에 떠나간 그를 다시 보게 된것이 기쁘신듯 《리현상동무가 맞소. 광복직후 나를 만나러 평양에 찾아왔던 때의 모습이요.》라고 하시며 밝은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리현상의 유가족들의 행처와 안부를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그로부터 두달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하시기 위하여 만수대의사당을 찾으신 기회에 휴계실에서 리현상의 딸 리상진을 만나주시였다.

어푸러질듯 달려와 인사를 드리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시던 그이께서는 《지리산빨찌산 대장의 딸이 분명합니다.》라고 하신 다음 유복녀인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는 유복녀가 아니라고, 아버지가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손목시계와 모포를 선물로 받아안고 왔을 때 어머니가 너무 기뻐 눈물짓던 일이며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 끓여주신 토장국맛이 별맛이더라고 아버지가 외우시던 일이 기억된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잃었던 딸을 다시 찾으신듯 못내 기뻐하시면서 그의 팔을 다정히 끼시고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다.

리현상의 딸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과정에 리현상의 자식들 네 남매가 평양의 여러 기관들에서 일을 잘하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내가 리현상동무의 아들, 딸 4남매를 다 맡아 키우겠다고 그와 약속했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인차 리현상의 유자녀들을 다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시였다.

1993년 새해가 밝아 나흘째 되는 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해정초의 그 바쁘신 속에서도 그들 네 남매를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리현상의 자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정성담아 마련한 꽃바구니를 드리고 큰절을 올리고는 그이의 넓은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등을 다정히 쓸어주시며 기다렸다고, 너희들을 보니 리현상동무를 만난것처럼 반갑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이렇게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매 사람과 따로따로 사진을 찍으시고는 그들모두를 량옆에 거느리시고 다시 한장 찍으시였다.

잠시후 네 남매는 그이를 모시고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이윽토록 네 남매를 정겹게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내가 동무들을 오래전부터 만나려고 한것은 아버지에 대하여 동무들이 잘 모를것 같아 똑똑히 알려주려고 해서입니다.》라고 깊은 의미를 담아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들은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이어 좌중을 둘러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리현상의 아들을 가리키시며 아들이 아버지를 신통히 닮았다고 거듭 뇌이시였다.

리현상이 희생된지도 근 40년, 그 자식들의 머리에도 어느덧 백발이 내리고있었다. 그런데 그이께서는 아직 사랑하는 통일전사의 모습을 잊지 않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것이 1951년 초봄이였다고 하시며 감회깊은 추억을 하시였다.

오래전에 곁을 떠나간 자기 아버지를 뜨겁게 추억하시는 그이를 크나큰 격정속에 우러르던 리현상의 막내딸이 자기들의 한결같은 심정을 담아 《저의 아버지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웠기에 자기의 생을 빛내일수 있었습니다.》라고 말씀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는 추억깊은 눈길로 한곳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잠시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네 남매를 둘러보시며 그래도 아들 하나에 딸 셋이 있으니 괜찮다, 그래 지금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몇살이 되느냐라고 물으시였다.

맏딸이 일어나서 아흔살이라고, 어머니는 늘 위대한 수령님께서 1948년 아버지를 만나시였을 때 선물로 주신 모포를 보면서 수령님을 잘 받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군 하였다고 울먹이며 말씀드렸다.

리현상의 가족은 그때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받은 흰바탕에 연록색계수나무잎사귀무늬가 새겨진 모포를 가보로 정히 보관하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아버지가 언제 돌아갔는가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리현상의 최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는 그이이시였다. 하지만 이 물음속에는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영웅적최후에 대해 더 깊이 새겨주시려는 깊은 뜻이 깃들어있었다.

리현상의 아들이 1953년 9월 17일이라고 대답올리자 그이께서는 그래, 정전직후였지라고 하시고는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시였다.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 이젠 나와 식사나 같이하자라고 하시면서 그들을 식탁으로 이끄시였다. 그러시고는 몹시 어려워하는 유자녀들에게 어서 많이 들라고 하시며 음식그릇들을 그들의 앞으로 당겨주시였다.

그날 식탁에는 언감자국수도 올랐다. 수령님께서는 유자녀들에게 언감자국수는 우리가 빨찌산때 해먹던 음식인데 너희들이 빨찌산의 자식들이여서 이걸 만들도록 했다, 앞으로 나에게 자주 오너라, 그러면 언감자국수를 또 해주겠다라는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한아름 안겨주시며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하시였다.

정녕 떨어지고싶지 않은 어버이품, 안기면 안길수록 더욱 안기고싶은 위대한 수령님의 품이였다.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평양을 찾았던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은 만수대의사당을 참관하면서 지리산빨찌산 대장의 딸을 만나게 된것이 너무 놀라와 그의 손이라도 잡아보자고 하였으며 후날 그 사실을 남조선출판물들에서 크게 보도하였다. 남조선잡지 《말》에는 장군님품에서 복된 삶을 누리는 《지리산호랑이》의 유가족들에 대한 감동깊은 이야기가 실려 독자들의 가슴을 후덥게 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신문 《몽드》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출판물들이 이 사실을 널리 보도하였다.

이렇듯 통일애국에 뜻을 둔 모든 사람들을 자애로운 사랑의 한품에 안아 애국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시고 후대들의 운명까지도 맡아 돌보아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의리는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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