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지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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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려운형선생을 잊지 못하시여

 

의리는 인간이 지니고있는 미덕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미덕의 하나이다. 하지만 의리를 지킨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우기 생을 마친 사람에 대한 의리를 변함없이 지켜 그 후대들의 삶까지 다 보살펴준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사이에서도 우정이 계속될수 있다고 하시면서 산 사람은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잊지 않을 때라야 그 우정이 공고하고 진실하고 영원한것으로 될수 있다, 만일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잊는다면 그 순간부터 우정은 사멸을 면치 못한다, 죽은 사람을 자주 추억하고 그들의 업적을 널리 소개하며 그들이 남기고 간 후대들을 잘 돌보고 그들이 남긴 유지를 잘 지키는것이 선대들과 선렬들, 먼저 간 혁명동지들에 대한 산 사람들의 의리라고 생각한다라고 쓰시였다.

인류력사에는 의리를 지켜 이름을 남긴 명인들이 적지 않지만 한번 맺은 동지적의리를 한생토록 잊지 않고 영생의 삶을 주시고 그 후대들의 운명까지 맡아안으시고 보살펴주신 위대한 수령님 같으신분은 이 세상에 없다.

하기에 통일애국의 길에서 싸우다 쓰러진 렬사들을 수십년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지 않으시고 그 후대들에게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신 그이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에 대한 이야기는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토록 잊지 못하시며 육친의 정으로 보살펴주신 통일애국렬사 유자녀들가운데는 몽양 려운형의 자녀들도 있다.

몽양 려운형의 딸 려연구가 서울에서 진행되는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토론회에 참가할 준비를 하고있던 주체80(1991)년 11월 16일이였다.

이날 려연구를 비롯한 려운형의 자녀들은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건강축원의 인사를 올리는 그들의 손을 한사람한사람 따뜻이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을 오래간만에 만나니 반갑다고, 내가 동무들을 1979년 설날에 만나고 오늘 이렇게 다시 만나는데 나는 동무들을 친자식처럼 생각한다고, 동무들도 나를 친아버지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몇달전부터 동무네 4형제를 다시 만나려고 하였으나 시간을 내지 못하였다고, 어제 저녁에 한 일군에게 려연구가 언제 서울로 나가는가고 물어보니 25일경에 나간다고 하기에 오늘 동무들을 오라고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바쁘신 속에서도 시간을 내여 자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신 그 사랑에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는 그들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연구와 려원구는 1946년에 나를 찾아왔는데 그때는 동무들의 아버지가 희생되기 전이였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가족관계와 생활형편에 대하여 자상히 알아보시였다.

다심하신 친어버이의 정에 이끌려 각기 자기의 자녀들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말씀드리는 그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되새겨지는것은 1979년 새해 첫날 아침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던 때의 일이였다.

그날 아침 려운형의 자녀들을 금수산의사당(당시)에서 진행되는 새해경축연회에 초청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년사를 하시기 전에 친히 그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그들이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 방문이 소리없이 열리며 《너희들이 왔구나!》 하는 우렁우렁한 음성이 울려오더니 위대한 수령님께서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두팔을 벌리시며 그들에게로 마주 오시는것이였다.

얼마나 뵙고싶던 위대한 수령님이신가. 그들형제는 순간 목이 꽉 메여 그 자리에 꿇어앉아 삼가 세배를 올리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설념도 못하고 흐느껴울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그들을 일으켜세워주시고는 감격에 흐느껴우는 그들모두를 자애로운 한품에 꼭 껴안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옆에 있는 일군들에게 《보시오. 얘들이요, 얘들이 려운형선생의 자녀들이요.》라고 소개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냥 흐느끼는 그들에게 그만 그치라고 하시며 왜 인제야 왔느냐, 왜 편지도 안하고 집에도 놀러 오지 않았느냐라고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간 그들의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이어 그들의 나이며 식구수 등을 하나하나 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희 아버지는 세번이나 38선을 넘어와서 나를 만났다. 너희 아버지는 남조선에 나가서 인민당을 세우고 잘 싸웠다. 너희 아버지는 용감하게 싸우다가 희생됐다. 내가 너희들을 더 잘 돌봐주어야 하겠는데…》라고 하시고는 말끝을 맺지 못하시고 한동안 방안을 거니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그들형제들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이제는 함께 모여서 살도록 하자고, 앞으로는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려운형의 두 딸을 댁에 데리고계시면서 친어버이의 정으로 보살펴주시던 그날의 사랑으로 이렇듯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것이였다.

크나큰 격동속에 시간은 흘러 어느새 그이께서 신년사를 하실 9시가 다되여갔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시간이 흐르는것도 잊으신듯 좀처럼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으시였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설날에 너희들을 만났는데 기념사진이나 찍자고 하시며 그들을 자신의 량옆에 세워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사진을 찍은 다음에도 그들이 그냥 우는것을 보시고 사진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수 있다고 하시며 그들을 방 한가운데로 이끄시여 또다시 사진을 찍도록 하시였다.

흔히 사람들은 슬플 때만이 아니라 기쁨이 너무 클 때에도 눈물을 흘리군 한다. 하지만 이 시각 그들이 흘린 눈물은 단순히 기쁨의 눈물이 아니였다. 오래전에 아버지를 잃은 자기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친어버이사랑으로 보살펴주시고 오늘은 이렇듯 몸가까이 불러주신 자애로운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눈물이 되여 흐르고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의 유자녀들을 만나시느라 예정되였던 시간보다 5분을 초과하여 경축연회장으로 들어서시였다.

사람들은 그때까지만 하여도 온 나라가, 아니 온 세계가 손꼽아 기다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가 5분간이나 지체된 사연을 알수 없었다.

5분이나 늦어진 신년사, 후날 사람들은 이 5분에 깃든 사연속에서 떠나간 남조선의 애국인사와 그의 유자녀들에 대한 그이의 한없이 고결한 사랑과 의리에 대하여 새겨보며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후 려운형의 자녀들이 한데 모여살수 있도록 살림집들까지 마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직업문제까지 일일이 관심을 돌려주시고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려연구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으로, 국제의회동맹 제72차 총회때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회대표단 단장으로 내세워주시면서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이렇듯 그들형제들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은정깊은 사랑을 안겨주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시아의 평화와 녀성의 역할》에 관한 제2차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곧 서울에 나가게 된 려연구에게 서울에 나가면 아버지묘소에 가보아야 하겠다고, 려운형선생의 묘가 서울 우이동에 있다고 한다고, 내가 려운형선생의 묘에 나의 이름으로 화환을 보내려고 한다고, 화환댕기에는 내 이름과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여》라고 쓰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려연구가 서울에 나가 아버지의 묘를 찾아보겠다고 한데 대하여 남측에서 동의한것만큼 자기 아버지의 묘에 화환을 가져다놓는다고 하여 어쩌지 못할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자신께서는 동무들을 볼 때마다 려운형선생의 생각이 더 난다고 하시면서 해방직후 려운형선생이 보낸 편지들을 받으시던 일이며 그를 처음 만나던 때의 일을 담담한 어조로 회고하시였다.

《려운형선생이 나를 만나고 서울에 나가 서울대학교 학생들앞에서 내가 평양에 가서 만나본 김일성장군은 당년 34살의 청년장군이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거기에 모였던 수많은 청년들과 대학생들이 너무 좋아 만세를 부르고 모자를 벗어 올려던지면서 굉장히 환호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내가 왜 김일성장군을 존경하고 사랑하며 아끼고 따르는가, 그것은 김일성장군이 백두산이 낳은 조선의 명장이시고 일제놈들의 무기를 빼앗아 무장투쟁을 벌려 조국을 광복한 민족의 영웅이시기때문이다, 지난날 우리 나라에 의병이나 독립군이 있었지만 김일성장군이 거느린 군대처럼 무장투쟁으로 왜적을 무찌르고 나라를 해방한 그런 군대가 어디 있었는가, 진수성찬을 차려 장군님께 대접하고 그분을 높이 받들어모셔야 하겠는데 우리 3천만백성들이 자기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있는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기성세대가 못다한 일을 당신들, 청년들이 맡아해달라고 하면서 김일장군이 내놓으신 건국로선이야말로 자기의 신념이며 오직 김일성장군님을 따르는 길만이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이고 조국이 나아갈 진로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이의 마음속에 간직된 려운형, 그는 열렬한 통일애국자였다.

그는 비록 손에 무장을 잡고 항일혈전에 뛰여들지는 못했지만 위대한 수령님을 따르는 길에 통일애국이 있다는것을 확신한 정치인이였고 남아대장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려운형선생을 처음 만나시였을 때부터 벌써 그의 이러한 기질을 알아보시고 새 조국건설의 역군으로 손잡고 일해나가실 생각을 품고계시였다. 그런데 그는 너무도 일찌기 반동들의 흉탄에 쓰러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의 말씀을 계속 이어가시였다.

해방직후 려운형선생이 나를 몇번 찾아왔댔는데 사진 한장 찍어두지 못하였다. 그때 사진을 찍어두었더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려운형선생은 당과 국가건설에 대한 나의 구상과 로선을 받들고 남조선에서 활동하다가 반동들에게 테로를 당하여 애석하게도 희생되였다. 려운형선생이 나를 만나고 돌아가면서 자기가 남조선에 나가면 언제 잘못될지 모르겠는데 딸들을 북에 들여보내겠으니 공부를 시켜달라고 부탁하였다. …

이윽고 화제를 돌리시여 려운형의 자녀들의 직업문제를 론의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아버지처럼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생명도 서슴없이 바쳐싸울줄 아는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고나서 지금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시련을 겪고있다고 하시면서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이 다 망한 기회를 리용하여 우리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책동이 악랄하게 감행되고있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려연구와 그의 동생들은 수령님의 가르치심의 의미를 천만근의 무게로 자자구구 깊이 새기였다. 그들의 가슴속깊이에서는 아버지와 같은 통일애국자가 될 신념의 맹세가 흘러넘치였다.

그때로부터 며칠후인 11월 25일 서울의 수유리 우이동에 있는 려운형선생의 묘소앞에는 많은 사람들속에 둘러싸인 가운데 한 녀성이 눈물에 젖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머리를 숙이고 서있었다.

그가 바로 40여년만에 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려운형선생의 딸 려연구였다.

묘소앞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친히 보내신 화환이 놓여있었다. 화환에 드리운 댕기에는 《고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여 김일성이라는 글발이 새겨져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숭엄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날 려연구는 사랑하는 아버지가 반동들의 테로에 희생된 후에도 령전에 달려올수 없었던 이 딸이 40여년이 지나서야 이렇게 아버지의 묘소에 섰다고 하면서 아버지는 참된 뜻이 있어 우리의 김일성장군님과 같으신 절세의 애국자를 민족의 영웅으로, 스승으로 모시였고 그 길에서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으셨기에 영생하고계신다는 참으로 감동적인 추모사를 랑독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보내신 화환과 려연구의 말을 통하여 참가자들은 려운형선생과 그 후대들이 안긴 위대한 품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새겨안게 되였다.

하기에 그날 남조선의 려운형추모회 회장은 《묘소에 따님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준비를 하였지만 이렇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직접 보내주신 화환이, 그것도 생화가 와닿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김일성주석님께서 어떻게 50년 가까이 정사를 보시게 되였는가 하는 의문이 단번에 풀립니다.》라고 감동어린 어조로 말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덕과 인간애는 의리속에 더욱 돋보이는 가장 숭고한 덕이며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이 없는 사랑중의 사랑이다.

무릇 오랜 세월이 지나면 아무리 가까왔던 사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이 엷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는것이 상례이라고 하지만 근 반세기전에 세상을 떠난 남조선의 통일애국인사를 그토록 잊지 못해하시며 그의 후대들의 친어버이가 되시여 따뜻이 보살펴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정녕 사랑과 의리의 최고화신이시며 통일조국의 영원한 태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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