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남적십자회담에 참가한 해외교포들을 만나시여

 

7.4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북과 남사이의 대화에서는 놀라운 전진이 이룩되고있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한 높은 책임감을 지니시고 조국통일을 자신의 둘도 없는 사명으로 여기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애국애족의 사상과 탁월한 령도에 의하여 마침내 조선반도에서는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의 새로운 막이 열렸던것이다.

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 북남적십자단체들의 본회담과 함께 북남조절위원회 회의들이 각각 평양과 서울을 오고가면서 진행되게 되였다.

굳게 막혀있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평양과 서울을 무대로 대화와 협상의 마당에 마주앉는 꿈같은 현실을 체험하면서 전체 조선민족은 북남대화의 개최를 한결같이 지지환영하였으며 그것이 하루빨리 통일에로 이어지기를 열렬히 희망하였다.

온 겨레의 이러한 희망과 기대속에 평양과 서울에서 두차례의 북남적십자회담이 진행된 직후인 주체61(1972)년 9월 21일이였다.

이날 북남적십자회담에 재일조선인들을 대표하여 공화국적십자대표단 자문위원으로 참가하였던 총련의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끝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기자단성원들과 함께 그이께로 달려가는 김병식제1부의장에게는 조국에 도착하여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옵던 때로부터 자기들이 받아안은 사랑과 은정이 가슴뜨겁게 돌이켜졌다.

그가 조국에 도착한 다음날인 1972년 8월 26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요한 회의를 지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승용차가 그이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였을 때 김병식제1부의장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현관에까지 나오시여 기다리고계시였던것이다.

그토록 안기고싶던 어버이의 따사로운 품에 달려가 안기며 그는 목메여 웨쳤다.

《수령님!》

두팔로 그를 꽉 그러안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잘 왔다고, 참으로 반갑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오래도록 그의 등을 쓰다듬으시는 그이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생의 소원이 다 풀린 기쁨과 행복으로 뜨거운 눈물만 흘리고있는 그를 곁에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시고 조국통일과 세계인민들과의 국제적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첫 순간부터 김병식제1부의장은 그이께 완전히 매혹되였다. 그이의 태양의 미소와 다정한 음성, 자애에 넘치는 말씀에서 육친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는 무상의 행복감에 휩싸였다.

그의 하루하루는 위인의 끝없는 사랑과 은정속에 흘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부모의 사랑도 따르지 못할 다심한 은정으로 매일매일의 생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보살펴주시였으며 그와 그의 자식들을 위해 저택에서 오찬도 차려주시였다. 또한 조국의 숨결을 페부로 느낄수 있도록 평양과 지방의 여러곳에 대한 참관과 예술공연관람도 조직해주시고 가는 곳마다에서 성대한 환영군중대회들도 마련해주시였으며 방문기간 진행된 각종 행사들의 주석단과 외국대표단과의 담화, 오찬회석상에도 내세워주시며 온갖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전날인 20일 저녁에는 만수대의사당에서 북남적십자회담과 조국방문일정을 마치고 돌아가게 된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을 환송하는 연회도 마련해주시고 몸소 축배잔까지 찧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그러시고도 오늘 또다시 자기들을 불러주시였다고 생각하니 김병식제1부의장의 가슴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에 어느덧 차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린 그들은 서둘러 그이께로 달려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신 미소를 지으시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시며 《동무들이 남북적십자회담에 참가하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니다.》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속에서 사소한 불편도 없이 북남적십자회담과 조국방문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게 된 자기들을 또다시 만나주신것만도 더없는 영광인데 오히려 자기들의 수고를 먼저 헤아려주시는 그이의 이 말씀에 김병식제1부의장과 기자단성원들은 너무도 송구스러워 아무 말씀도 올리지 못하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남적십자회담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제는 남조선측에서 적십자회담을 계속하려고 하겠는가 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은 적십자회담을 두번 하고나서 벌써부터 비명을 지르고있다고, 그들이 평양에 한번밖에 들어와보지 못했는데도 공화국북반부에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저들이 우리의 영향을 받을수 있다고 판단하고 겁나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적십자회담에 나왔던 남조선측의 한 자문위원이 방송으로 회담을 계속해야 얻을것이 없고 전망도 없다고 한 실례를 드시며 이런것을 보면 남조선측에는 적십자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향이 없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는것이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의 분렬주의적자세와 반통일적인 검은 속심을 적라라하게 발가놓으시는 그이의 이 말씀에 김병식제1부의장의 생각은 깊어졌다.

사실 분렬사상 처음으로 진행되는 북과 남의 적십자단체들의 회담은 북과 남사이의 접촉과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의 넓은 길을 열어나가기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와 지략에 의하여 마련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71년 력사적인 8월6일연설에서 북과 남사이의 폭넓은 접촉과 협상을 실현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심으로써 말로만 《평화통일》을 운운하던 남조선당국자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으시였으며 남조선인민들속에서 평화통일기운이 더욱 고조되도록 하시였다.

결과 더는 빠져나갈 출로를 찾지 못한 남조선당국자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폭넓은 북남협상방침이 제시된지 한주일도 못되여 적십자회담의 형식으로 대화마당에 나오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1971년 8월 20일부터 북과 남의 적십자단체 파견원들의 5차례의 접촉이 진행되고 그후 9월 20일부터 판문점에서 쌍방 적십자단체들의 예비회담이 시작되게 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북남적십자단체들의 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저들의 분렬주의적본색을 드러내며 걸음걸음 장애와 난관을 조성하였다.

북측이 북과 남으로 갈라진 겨레들의 고통을 폭넓게 덜어주려는 숭고한 념원으로부터 출발하여 본회담의 의제를 남조선당국이 주장하는 가족찾기운동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그 폭을 친척, 친우들의 문제에까지 넓힐것을 주장한 반면에 남측은 본회담의 의정을 어떻게 하나 가족찾기 하나에만 국한시키려고 시도하였다. 그나마 여러가지 통제와 제한속에서 진행할것을 주장하였고 그 무슨 단계론까지 들고나와 회담의 전진을 저애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날로 높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평화통일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남북접촉과 대화에 기대를 걸지 말라.》느니, 《너무 흥분하지 말라.》느니, 《성급한 통일론의는 경계되여야 한다.》느니 하면서 《감상적통일론의 해독성》이라는것을 들고나와 북남접촉과 조국통일을 요구하는 인민들의 통일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며 탄압해나섰다. 또한 《북으로부터의 남침위협》의 미명하에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도발과 전쟁준비에 광분하였다. 특히 1971년 12월초 비상사태의 선포와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과 같은 류례없는 파쑈적악법의 조작은 온 남조선땅에 파쑈의 칼바람을 일으켰다. 이것은 조선반도의 정세를 극도로 격화시켜 쌍방 적십자단체회담의 전진을 방해하고 통일위업에 새로운 난관을 조성하였다.

이러한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당국의 회담지연책동을 짓부시고 북남적십자회담을 계속 밀고나가도록 하시였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72년 5월초 북남고위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하여 평양에 온 남측대표를 만나시고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을 제시하시였으며 그것을 골자로 하는 북남공동성명을 발표하도록 하심으로써 막혔던 북남대화의 문을 열어놓으시였다.

그리하여 25차의 예비회담과 16차의 실무자회의를 거치면서 근 1년동안이나 끌어오던 북남적십자단체들의 접촉은 드디여 결실을 맺어 본회담이 개최되게 되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7. 4공동성명발표이후 처음으로 진행되는 북남대화인 북남적십자회담을 크나큰 기대와 관심속에 주시하였다.

하지만 남조선당국자들의 분렬주의적본색과 불성실한 태도는 본회담을 시작한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어쩌는수없이 적십자회담마당에 나선 남조선당국자들은 처음에는 평양과 서울을 오고가면서 진행되는 북남적십자회담을 통하여 공화국에 남쪽의 자유화바람을 불어넣으려고 어리석게 책동하였다.

그러나 제1차 북남적십자회담때에 평양에 들어왔던 남측성원들과 기자들은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짓이였는가를 깨닫게 되였다.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전체 인민이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일심단결되여있었으며 자신들이 선택한 사회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간직하고있었던것이다.

저들의 음흉한 술책이 통하지 않게 되자 남조선당국자들은 황당무계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회담에 고의적인 난관을 조성하고 대화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행위를 감행해나섰다. 특히 1972년 9월에 진행된 제2차 북남적십자회담을 계기로 남조선당국은 공화국을 반대하는 선전깜빠니야를 벌리였다. 그들은 어용선전수단을 통해 북이 《겉으로는 적십자정신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정치선전에만 급급》하고있다느니, 《공산주의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를 체험했다.》느니 하고 비방중상하는 한편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있는 대결에서 승리할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야 된다.》, 《온 국민이 국력안보를 위해 앞장서라.》, 《북녘에도 자유의 물결이 일게 될것》이라고 떠들면서 반북대결분위기를 고취하였다.

이 모든것을 돌이켜보며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은 남조선당국자들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인 행위에 격분을 금치 못해하였다.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절절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북적십자회담이 전체 조선인민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서 진행되고있는것만큼 우리는 어떻게 하나 회담을 끝까지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그러자면 남조선측이 회담을 파탄시킬수 있는 구실을 찾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하려는 온 민족의 열망을 안고 회담을 인내성있게 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의 숭고한 뜻이 어린 이 말씀을 받아안는 김병식제1부의장과 기자단성원들의 가슴마다에는 한없이 넓으신 도량을 지니시고 온 민족을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이 더욱 뜨겁게 불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남조선측은 세계여론에 못이겨 다음번 회담에도 나올것이라고 하시면서 지금 세계여론은 우리가 내놓은 조국통일방안을 지지하고있다, 내가 며칠전에 일본 《마이니찌신붕》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조국통일문제도 말하고 일본이 우리 나라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버리고 조일 두 나라사이의 관계를 개선할데 대해서도 말하였는데 그것을 일본 《마이니찌신붕》도 실었고 미국 《뉴욕 타임스》지도 받아물었다, 앞으로 일본정치리론잡지 《세까이》편집국장이 우리 나라에 오면 그도 만나주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은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해주시기 위해 바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로고에 대하여 되새겨보며 다음번 북남적십자회담을 잘 치르어 조국통일과 민족의 대단합실현에 이바지할 마음속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 일본으로 돌아간 김병식제1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은 재일동포들을 7. 4공동성명에서 제시된 내용들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으며 북남적십자회담을 조국통일에 실지 이바지하는 대화로 만들기 위해 자신들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북남적십자회담들에 참가한 총련일군들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을 여러차례 접견해주시면서 뜨거운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북남적십자회담을 성과적으로 이어나가도록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73년 3월 19일 제5차 북남적십자회담에 북측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게 된 총련의 박재로부의장과 재일조선인기자단 성원들을 접견하실 때에도 적십자회담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십자회담에서 남측이 내놓는 협소한 문제에 말려들어 원칙을 양보하는 일이 없도록 할데 대하여 밝혀주신데 이어 며칠전 평양에서 진행된 북남조절위원회 제2차회의에서 북측이 북과 남사이에 군비경쟁을 하지 말고 북과 남이 군대를 다같이 축소하며 외국으로부터의 무기반입을 중지하고 미군을 철거시키며 평화협정을 체결할데 대한 다섯가지 조항을 담은 안을 내놓은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남조선당국자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결국 통일을 하지 않겠다는것이라고, 박정희가 《유신》이요 뭐요 하면서 실력배양에 대하여 떠드는것을 보아도 평화통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것을 알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이번 적십자회담에서도 북과 남사이에 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해결할수 없다고 문제를 원칙적으로 강하게 세워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때 자리에서 일어난 박재로부의장은 격한 목소리로 우리는 어떻게 하나 통일하자는 립장에서 문제를 끌고나가는데 남측은 그와 정반대로 대결자세를 취한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긍정한다는 뜻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남조선괴뢰들이 〈대화있는 대결〉, 〈대화있는 경쟁〉, 〈대화있는 공존〉에 대하여 떠들고있는데 우리가 같은 민족으로서 무엇때문에 계속 대결하겠습니까. 우리는 〈대화있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있는 단결, 〈대화있는 경쟁〉이 아니라 대화있는 합작, 〈대화있는 공존〉이 아니라 대화있는 통일을 주장합니다. 북과 남사이에 합작도 하지 않고 통일도 하지 않으려는 대화는 사실상 필요없습니다. 북과 남사이에 대결과 경쟁, 분렬을 추구하는것은 통일을 하지 않으려는 목적에서 나온것입니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는 박재로부의장과 기자단성원들모두의 가슴가슴은 자기들이 애국과 매국간의 투쟁, 통일과 반통일간의 투쟁의 전초선에 서있다는 자각으로 높뛰였다.

그러한 그들의 모습을 이윽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담에서 남측이 들고나온 흩어진 가족들의 그 무슨 카드교환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무엇때문에 카드를 만들어 교환하는 놀음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겠는가고, 흩어진 가족들이 직접 북과 남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가족들을 찾아 만나면 될것이라고 하시며 카드교환을 주장하는것은 결국 회담을 지연시키다가 그만두자는것이라고, 그들의 속심은 어떻게 하나 시간을 얻어 실력배양을 하자는것이며 우리 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만들자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의 진속을 까밝히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북과 남사이에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어떻게 해서든지 대화를 계속하려고 한다고 하시며 북남대화를 더욱 확대발전시키실 의지를 표명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자애로운 손길아래 북남적십자회담을 비롯한 대화와 협상의 마당에 나선 해외동포들은 분렬주의자들의 방해를 물리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해나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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