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문도 두드리고 옆집문도 두드리라

 

온갖 꽃 만발하게 피여나는 주체81(1992)년 4월의 평양은 민족최대의 명절을 맞는 기쁨에 휩싸여있었다.

한평생 조국과 민족, 세계의 자주화를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탄생 80돐을 맞으며 온 겨레와 세계의 진보적인류는 그이께 가장 경건한 마음으로 최대의 영광과 축하를 드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탄생일에 즈음하여 평양을 방문한 해외동포들과 외국의 손님들을 만나주시며 분망한 나날을 보내고계시였다.

이역땅에서 달려온 해외동포인사들과 축하단, 대표단성원들은 자기들을 빠짐없이 만나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 참된 애국의 넋과 민족대단결의 심원한 사상을 받아안았다.

그러한 사람들속에는 재미동포 림창영선생과 그의 부인도 있었다.

4월 15일, 뜻깊은 이날 여러 해외동포인사들과 함께 림창영선생부부를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며칠후인 22일 또다시 그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마치 죽마고우를 만나신듯 림창영선생을 한품에 뜨겁게 안아주시며 반갑게 맞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박한 음식상으로 그들부부를 다정히 이끄시였다.

거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드시군 하던 언감자국수를 비롯한 별식들이 차려져있었다.

태양과도 같이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자기를 따뜻이 맞아주시고 뜨거운 사랑을 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림창영선생의 눈앞에는 지나온 인생길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는 식민지민족의 운명을 태줄처럼 감고 태여난 불우한 수난자의 첫 세대였다.

1909년 10월 황해남도 은률땅에 태를 묻은 그는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과 신학교를 나왔다. 림창영선생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는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도산 안창호의 주장에 동조하여 교회와 학계에 열정을 기울이기도 하고 큰 나라들에 독립청탁을 하는 일에도 관여하였다. 8. 15이후 남조선에서 미군정청 하지중장의 고문 서재필의 비서관으로 정계에도 참여했던 그는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는 리승만독재에 환멸을 느끼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리승만《정권》반대운동을 벌리였다.

4. 19이후 유엔주재 남조선대사였던 림창영선생은 남조선에서 5. 16쿠데타를 일으킨 쿠데타세력이 《군사정부의 정당성을 유엔에 알리라.》고 지시하였을 때 그것을 단연 거부하고 대사직을 사임하였다. 또한 미국무성과 국회에 《박정희쿠데타정권을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청원하였으며 《워싱톤 포스트》등 신문에 그와 같은 내용의 기고도 하고 백악관앞에서 시위도 벌렸다.

《유신》철페, 민주화를 부르짖던 림창영선생은 1970년대에 이르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3대원칙을 받아안고 동포들의 앞장에 서서 조국통일운동을 벌려나갔다.

이국땅에서 조국통일을 위해 적은 힘이나마 바치고있는 그의 소행을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림창영선생을 조국에 불러 여러차례 만나주시고 선생이 미국의 정계와 학계, 종교계, 언론계인사들과 친교관계를 가지고있는데 대하여 자신께서는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고, 조국통일의 지지세력을 늘이기 위하여 그들에게 영향을 주고있는것은 애국적인 활동으로 된다고 크나큰 믿음과 고무의 말씀도 하여주시였다. 그리고 여러차례 귀중한 선물도 안겨주시였다.

이때로부터 림창영선생의 가슴속에는 참된 애국의 넋이 자리잡게 되였으며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겨주신 조국통일상수상자의 영예를 안고 통일애국의 한길에서 인생의 보람을 찾게 되였다. …

지나온 자기의 곡절많은 인생길, 민족의 태양의 품에 안겨 보람차게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본 림창영선생은 흥분된 마음을 다잡고 탄생 80돐을 맞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건강축원의 인사를 정중히 올리면서 그이께서 국사로 다망하시지만 이처럼 시간을 내여 만나주시고 훌륭한 음식까지 차려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고 목메인 소리로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림창영선생의 건강을 위해 잔을 들자고 하시였다. 이윽고 잔을 비우신 후에는 그의 안색을 주의깊게 살피시며 아픈데가 있으면 꼭 말해야 한다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이 말씀에 림창영선생은 눈물이 앞을 가리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있다가 주석님께서 이번 4월명절에도 해외동포들과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만나시여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느라고 그토록 분망한 나날을 보내시였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는데 그러면 휴식은 언제 하시는가고 념려의 말씀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자하신 미소를 지으시며 감사하다고, 좀 피곤하더라도 그런 일을 미룰수 없다고 하시면서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조용히 하시는 그이의 말씀은 림창영선생의 가슴속에 천만근의 무게로 뜨겁게 울려왔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안으시고 수천수만리의 험난한 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우러르던 그는 이번에 조국에 와서 수령님의 회고록을 읽으면서도 수령님께서 10대의 어리신 시절부터 정치활동을 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는것을 잘 알게 되였다고 말씀드렸다.

정치활동이라고 할것은 못된다고 겸허하게 말씀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혁명활동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시고 손정도목사와 여러 반일애국운동자들, 애국적인 종교인들의 이름을 꼽으시면서 림선생을 비롯하여 숭실학교를 나온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고 하시며 그들의 활동을 애국활동으로 크게 내세워주시였다.

사상과 정견,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고 재산의 유무에 관계없이 애국애족의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면 모두 뜨겁게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품, 참으로 그 품에 안기고보니 자신만이 아닌 온 겨레를 한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품이라는 생각으로 림창영선생은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자신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이번에 조국에 올수 있은것을 하느님덕으로 알았는데 조국에 와서 보니 김일성주석님의 덕망때문이였다고, 김일성주석님 슬하에서 온 겨레가 꼭 통일을 보게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이때 그의 부인 리보배녀성은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는 동유럽에서 란이 일어났을 때 너무도 걱정스러워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들에게 평양은 어떻게 될것인가고 물어보았었다고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들어주시자 그는 그때 아들은 동유럽나라들과 평양은 서로 뿌리가 다르기때문에 일없을것이라고 대답하더라고 하면서 이번에 조국에 와서 보니 그 말이 충분히 리해된다고 자기의 마음속생각을 말씀드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공화국은 주체사상의 뿌리가 있어서 든든하다, 그 누구도 어쩔수 없다, 남조선이 련방제통일제안을 받아무는것이 좋다, 북과 남이 서로 물어뜯을내기를 하지 말고 전쟁을 할내기도 하지 않고 련방제방식으로 통일하면 북의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대로 있고 남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대로 있으면서 함께 살수 있다, 나는 남조선에서 왔던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그는 나에게 그후에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그 다음의 문제는 후손들이 다 결정하라고 하면 되지 않겠는가고 하였다는 내용의 말씀을 하시면서 조국통일의 실현방도에 대하여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였다.

진정으로 조국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접수될수 있는 통일방안을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며 림창영선생과 그의 부인은 눈앞이 확 트이는것 같았고 사상과 제도의 차이보다 먼저 분렬의 고통을 겪고있는 조국과 겨레의 아픔을 생각하시는 그이의 뜨거운 조국애, 민족애를 더더욱 절감하게 되였다.

림창영선생은 위대한 주석님은 저 하늘의 하느님과 같이 전지전능한분이시오니 앞으로 주석님께서 제시하신 련방제통일방안실현에 전심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 우리 민족이 하느님이라고 하시며 온 겨레를 단합시키면 통일이 백번 가능하다고, 그래서 림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앞집문도 두드리고 옆집문도 두드리면서 동포들모두가 단합하여 조국통일운동에 떨쳐나서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는 또다시 세찬 충격으로 하여 가슴이 설레이였다.

우리 인민, 우리 민족을 하느님으로 여기시며 겨레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해나가실 의지로 통일의 앞길을 밝혀주시는 김일성주석, 그이는 정녕 우리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조국통일의 구성이시라는 생각으로 그는 가슴후더워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어느덧 시간도 퍼그나 흘렀다.

위대한 수령님을 어버이로 모신 한식솔과도 같은 지금의 이 모습이 통일조국의 모습으로 될 그날이 반드시 오리라는 확신을 가다듬으며 림창영선생은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알고계시겠지만 서양에는 <라이프 비긴즈 애트 에이티>라는 격언이 있는데 인생은 80살부터 시작된다는것입니다. 민족을 위해서 장장 80평생 고생만 하신 주석님께서 통일조국에서 락을 보시며 무궁장생하셔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포지성인부부의 진정을 받아주시며 림선생은 83살이고 리녀사의 나이도 적지 않은데 우리모두 건강해서 통일에 전심하자고 굳은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부부와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어주시였다.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겨 기념사진을 찍는 그 시각 림창영선생의 눈앞에는 련방제통일방안실현을 위하여 투쟁에 떨쳐나선 북과 남, 해외의 7천만겨레의 장한 모습 그리고 통일조국만세를 목청껏 부르는 인민들에게 손저어 답례하시며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김일성주석의 거룩한 영상이 어려왔다.

민족의 어버이의 이처럼 크나큰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림창영선생은 이날에 굳게 다진 신념의 맹세를 지켜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길에서 통일애국인사로서의 값높은 삶을 빛내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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