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시절의 지우를 잊지 못하시여

 

주체80(1991)년 5월이였다.

평양을 향해 날고있는 비행기에는 여든살을 가까이 하는 백발의 한 해외동포가 타고있었다. 그는 미국의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라는 한적한 곳에서 거의 반생을 병리학연구에 바쳐오는 의학자이며 독실한 감리교목사인 손원태선생이였다.

그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기 위해 조국으로 오고있었다.

조국이 가까와올수록 그의 마음은 착잡해졌다.

김일성주석께서 헤여진지 벌써 반세기가 넘도록 자기를 찾고계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조국으로 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홍안의 길림시절에 헤여진 자기를 그이께서 과연 알아보실가, 또 60년세월을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시면 어떻게 대답올릴가 하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있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자기는 겨레와 민족을 위해 해놓은 일이 없는 인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백두광야에서 풍찬로숙하시며 강도 일제와 싸우실 때 일본, 미국 등지로 떠돌아다닌것밖에 무엇이 있던가.

이 모든 위구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뵈옵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가 부인 리유신과 함께 5월 1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갔을 때였다.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음지으시고 활달한 걸음으로 마주 나오시였다.

순간 손원태선생은 지금까지의 착잡하였던 생각이 가뭇없이 뒤로 사라지는것을 느끼며 《주석님!》 하고 한마디 하고는 그이의 넓은 품에 와락 안기였다. 자기가 흘리는 눈물이 위대한 수령님의 옷자락을 적시는것도 모르고 그는 넓은 그 품에 안겨 쌓이고쌓인 그리움을 터뜨리였다.

그를 한품에 꼭 껴안으시고 《아, 원태가 틀림없구만! 어디에 가있다가 이제야 왔소.》라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도 젖어있었다.

그이께서는 백발의 그에게서 어린시절의 모습을 찾으시려는듯 이윽토록 살펴보시고나서 이제는 여든을 바라보는 고령이지만 어렸을 때의 모습이 좀 남아있어 알아보겠다고, 선생을 만나 감회깊은 회포를 나누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곁에 앉히시였다. 그러시고는 다시금 그의 얼굴을 점도록 바라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대 홍안의 시절에 헤여졌던 그와 백발이 다되여서야 상봉하시게 된것이 가슴아프신듯 어떻게 되여 머리가 그렇게 세였는가고 갈리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손원태선생은 주석님을 뵙고싶어 마음쓰다보니 그렇게 되였다고 스스럼없이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 역시 선생이 보고싶었다고, 그래서 여러곳에 수소문하여보았으나 선생을 찾을수 없었다고 하시면서 해방직후부터 그의 일가의 소식을 알기 위해 몹시 애쓰신데 대하여, 미국에 살고있는 그를 찾기 위해 김성락목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도 보고 부탁도 많이 하신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손원태선생은 평생 그리움으로 속만 태우면서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지 못한 자기의 소행이 얼마나 불민하였는가를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오랜 세월 그의 일가를 잊지 않고계신 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에 젖어드는 눈굽을 찍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선생과 이렇게 만나고보니 선생의 아버지인 손정도목사에 대한 생각이 더 나고 길림시절에 있었던 여러가지 일들이 감회깊이 추억된다고 하시며 흘러간 옛시절을 그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손목사는 내가 길림에서 활동할 때 나를 각별히 대해주고 물심량면으로 적극 도와주었다고 하시면서 해방직후부터 오늘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손목사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군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일찌기 김형직선생님과 친교를 맺고있던 그의 아버지는 위대한 수령님의 반일청년운동을 적극 지지하였고 중국반동군벌에 체포되여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시는 그이를 석방하기 위해 길림독군서와 길림성정부의 실권자들과 교섭도 하고 그들에게 돈도 먹이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였다.

손원태선생은 민족주의자인 자기 아버지의 자그마한 소행을 오랜 세월이 흐른 이날까지도 잊지 않고 추억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숭고한 의리심에 깊은 감동을 금치 못하며 눈굽을 적시였다.

후날 그는 그때의 일을 회고하면서 어찌보면 늙은이의 헤퍼진 눈물이라고 할수 있겠지만 이날처럼 마음놓고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이와 길림시절의 잊을수 없는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손원태선생은 어느덧 길림시절 성주형님의 하숙집을 뻔질나게 찾아다니던 소학생 원태로 되여 어려움을 잊고 신이 나서 이야기도 하고 큰소리로 웃기도 하였다.

이윽고 그의 안해에게로 화제를 돌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안해와 결혼하게 된 사연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그는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안해를 슬쩍 바라보고나서 안해와는 이름도 나이도 모르고 결혼하였다고 말씀올렸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그것은 아마 어머니가 배필을 무어주었을것이라고, 어머니가 정해준 녀자와 결혼하였으니 복을 많이 받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가정이 화목하여야 행복하다고, 그래서 나는 젊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화만사성》이라고 말하여주군 한다고, 《가화만사성》이라는것은 가정이 화목하여야 만가지 일이 다 잘된다는 뜻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손원태선생과 그의 부인은 동생의 가정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친형님의 진정이 어려있는 그 말씀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안았다.

장장 반세기가 지난 그때까지도 그의 일가와 인연을 맺으시였던 길림시절을 잊지 못하시고 절절하게 추억하시는 수령님께 손원태선생은 주석님께서는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니실 때 다른 사람들보다 키도 더 크고 인물도 잘 생겨 사람들의 눈에 인차 띄였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에 웃으시면서 나는 체격이 남달리 컸기때문에 지하혁명투쟁을 할 때 위장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중국반동군벌들은 나를 잡으려고 체격이 큰 사람들은 다 단속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멀리 흘러간 길림시절을 회상하시며 만가지 시름을 잊으신듯 환한 미소를 지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던 그는 불현듯 그이의 손을 끌어당겨 손금을 들여다보는것이였다.

그러던 그는 탄성을 올리며 주석님께서 퍼그나 정정하시다고 하면서 명금이 이토록 좋으시니 필시 만년장수하시겠다고, 대통령금까지 이렇게 뚜렷하니 나라의 수령으로 높은 존경을 받으시는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때의 일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쓰시였다.

《나는 나의 손금을 보아주는 사람도 난생처음 보았고 사람의 손금가운데 대통령금이 있다는 말도 처음으로 들었다. 손원태가 나의 손금을 보아주면서 명금이 길다고 한것은 나의 장수를 축수하는 심정의 표현일것이며 그가 대통령금이 뚜렷하다고 한것은 우리의 사업에 대한 지지의 표시일것이다.》

손원태선생은 친형님에게 응석을 부리듯 60여년전 그이께서 생일을 맞는 자기에게 중국음식인 쨩즈궈즈를 사주시던 때의 일을 떠올리며 《주석님, 언제 나에게 쨩즈궈즈를 사주시겠습니까? 길림에 있을 때 주석님과 함께 들던 빙땅훌루도 먹고싶습니다.》 하고 무랍없이 청을 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청을 길림시절을 잊지 못해하는 소중한 마음으로 여기시고 지금 우리 사람들은 그 음식을 만들줄 잘 모른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음식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어 꼭 보내주겠다고 약속까지 하시였다.

응석에 가까운 자기의 청도 기꺼이 받아주시는 그이의 소탈하신 풍모에 손원태선생은 감동을 금치 못해하였다.

손원태선생부부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지 이틀이 지난 후 그들의 아침식탁에는 그이께서 보내주신 쨩즈궈즈가 올랐다.

친어버이의 사랑과 은정이 어린 음식을 받은 그는 주석님덕분에 어린시절에 즐겨먹던 쨩즈궈즈를 먹게 되였다고 하면서 눈물을 삼키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5월 15일에 이어 5월 31일과 6월 2일에도 손원태선생부부를 접견해주시면서 1930년대초 길림시절부터 1990년대초에 이르기까지의 장구한 혁명활동과정에 인연을 맺은 잊을수 없는 사람들에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손원태선생의 아버지 손정도목사, 김성락목사와 그의 아버지, 김형직선생님의 친구들인 강기락, 오동진, 량세봉, 장철호, 김시우, 강제하를 비롯하여 강제하의 아들 강병선, 강병선의 안해, 화의숙 숙장 최동오, 최동오의 아들 최덕신, 최덕신의 부인 류미영, 류미영의 아버지 류동열, 육문중학교 영어교원 김강, 육문중학교 교장 리광한, 손원태의 형 손원일, 손원태의 누이 손진실과 손인실, 손원태의 어머니, 황군관학교출신 박훈, 조선인길림소년회 회원들인 김온순, 최진무, 안신영, 박일파, 길림시절의 친우들인 고재림과 고재봉, 현묵관과 그의 안해, 현묵관의 딸 현숙자, 손진실의 시아버지 윤치호와 그의 동생 윤치창, 독립운동자 고원암, 김사헌, 오상헌, 길림독군서관리 오인화, 길림감옥의 악질간수장을 혼내운 황수전, 길림제5중학교의 상월선생과 그의 두 딸, 초기혁명활동시기의 동지들인 차광수, 박소심, 한영애, 한일광, 독립군부대장 량세봉과 그의 안해와 아들, 독립군사령 김활석과 그후의 최윤구, 독립군부대출신 김명준, 조선인길림소년회 성원이였던 황귀헌과 곽연봉, 손원태의 부인의 오빠 리유성, 리유성의 딸과 사위…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차례에 걸치는 손원태선생과의 담화에서 100여명의 각이한 인물들에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그에게 공화국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민족의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고있다고, 우리는 지난날 광범한 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조국해방을 이룩한것처럼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을 통일하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공화국북반부인민들과 남조선인민들, 해외동포들이 다같이 조국통일을 바라고있지만 남조선당국자들은 조국통일을 한사코 반대하고있다고 준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 전해인 1990년부터 진행되고있는 북남고위급회담을 그 실례로 드시였다.

북남고위급회담에서 북측이 남측에 북과 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자고 제기하였지만 남측은 그 제의를 한사코 반대하면서 화해와 협력에 관한 기본관계합의서나 채택하자고 고집하고있는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과 남사이에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미군이 남조선에 더이상 주둔해있을 구실이 없어지게 된다고, 그러므로 미국은 《남침》을 막는다는 구실밑에 남조선에 계속 머물러있으려고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지 못하게 방해하고있다고, 미국이 반대하면 남조선당국은 어쩌지 못한다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방해하는 미국의 검은 속심과 남조선당국자들의 매국배족적인 외세의존정책을 까밝히시였다. 그러시고는 지금 남조선청년학생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잘 싸우고있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나 조국통일을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젊은 시절의 동지들이 그립다고, 차광수를 비롯하여 혁명투쟁을 같이하다가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게 난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손원태선생의 마음을 한없이 뜨겁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존함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손수 손원태선생의 손목에 채워주시였다. 60여년전 자기를 친동생처럼 사랑해주시던 그이의 따뜻한 손길에 자기의 넋도 육체도 다 맡긴 손원태선생의 얼굴로는 행복의 눈물, 격정의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관심과 은정에 의하여 손원태선생은 그후 여러차례 조국을 방문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주시고 오래동안 집을 떠나있은 동생에게 집안일을 알려주시듯 날로 번영해가는 조국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도 해주시고 때로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함께 동행하시며 그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시였다.

언제인가 손원태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는 자리에서 주석님, 남조선에는 자산가들이 많습니다, 이제 통일이 되면 그 많은 자산가들을 어찌하겠습니까 하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외세에 붙어서 민족을 팔아먹는 극반동이 아닌 이상 그가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 손을 잡으려고 한다고,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은 우리의 이런 립장을 집대성한것이라고 말씀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후에도 공화국의 시종일관한 통일정책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면서 그가 생의 말년을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길에서 값높이 빛내이도록 따뜻이 이끌어주시였다.

정녕 손원태선생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인정은 친혈육의 정 그대로였고 시들어가던 그의 몸에 생의 활력을 부어주는 참으로 웅심깊은 사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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