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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족대단결로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마련하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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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외에서 온 동포들과의 뜻깊은 상봉

2

《미주지역에 조선사람이 많이 살고있습니다》

 

온 겨레를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위업의 길에 내세워주시려는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어버이손길은 멀리 아메리카주지역에 사는 동포들에게도 뜨겁게 미치였다.

조국강산에 1990년대가 밝아왔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통일조국의 새 력사를 안아올 희망을 안고 1990년대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조성된 안팎의 정세는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민족의 투쟁의 앞길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있었다.

당시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과 사회주의배신자들의 반사회주의적책동으로 말미암아 국제무대에서는 심각한 사태들이 벌어지고있었다. 1980년대말에 마쟈르, 뽈스까, 로므니아에서 정치적다당제가 도입되여 사회주의정권이 련이어 무너지고 자본주의가 복귀된데 이어 1990년에 들어와 벌가리아에서 자본주의정치방식이 도입되고 동부도이췰란드가 서부도이췰란드에 흡수통합되였다.

한편 지구상의 첫 사회주의국가로 출현하여 70여년간 붉은기를 휘날려온 쏘련에서도 사회주의배신자들이 당과 국가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사회주의전취물을 공개적으로 말살하는데로 나가 사회주의련방국가로서의 쏘련의 존재자체가 뒤흔들리고있었다.

세계정치정세의 이러한 극적인 변화를 기화로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반동들은 반제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변함없이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해나가고있는 조선을 압살하기 위한데로 공격의 화살을 돌리였다. 서부도이췰란드에 의한 동부도이췰란드의 흡수통일에 환상을 품게 된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미제의 반공화국압살소동에 편승하여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을 부르짖고있었다.

정세가 아무리 엄혹하고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이 극심하여도 온 민족의 대단결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고야말 철의 신념을 지니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79(1990)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북과 남사이의 장벽을 마스고 자유래왕을 실현하며 북과 남이 서로 전면개방할데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온 민족의 통일념원과 절박한 요구를 반영한 이 방안은 조국통일의 길우에 가로놓인 장애와 난관을 극복하고 통일문제해결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가장 옳바른 길을 밝힌 정당한 통일방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련이어 같은 해 5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에서 자주적평화통일의 장애요인들을 제거하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5개 조항의 조국통일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이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5개방침은 첫째로, 조선반도에서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는것이며 둘째로,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북과 남사이의 자유래왕과 전면개방을 실현하는것이며 셋째로, 북과 남이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는 원칙에서 대외관계를 발전시키는것이며 넷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대화를 발전시키는것이며 다섯째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형성하는것이였다.

1990년대의 첫아침에 평양에서 울려퍼진 자유래왕, 전면개방의 통일방안과 뒤이어 제시된 조국통일5개방침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의 통일기운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통일방안들에 접하여 북과 남, 해외에서 조국통일열의가 그 어느때보다도 고조되고있던 이무렵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평양을 찾아와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조국통일의지를 더욱 굳게 다지였다.

1990년 4월 16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방문하고있는 조국통일북아메리카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선우학원선생을 단장으로 하는 4. 15경축 재미조선인축하단과 재카나다조선인축하대표인 조국평화통일촉진협의회 카나다본부 회장 김정식선생을 만나주시였다.

오랜 지기들을 만나신듯 못내 기뻐하시며 《여러분들가운데 나이가 70고개에 들어선분들도 있고 조국을 위해 오래 사업한분들이 많은데 그동안 해외에서 수고를 많이 하였습니다.》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업상문제에 대하여서는 해당 부문 일군들과 토론하였기때문에 오늘은 오찬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며 그들을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재미조선인축하단 성원으로 온 최정렬녀사가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자료를 많이 가져온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그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자료는 미국보다 일본에 더 많다고 하시면서 녀사가 가져온 박달동무가 체포되여가는 장면을 찍은 사진과 그가 감옥에서 쓴 혈서 같은것은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사실들을 고증하는데서 중요한 자료로 된다고, 조국에서도 항일무장투쟁시기의 자료가 많이 발굴되고있다고,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는 국내의 여러 조직들과 련계를 가지고있었다고, 그때 련계가 제일 깊은 조직들가운데는 길주농조와 명천농조, 성진농조, 신흥탄광로조도 있었다고 회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과학원 함흥분원 연구사들이 만들어낸 시약을 가지고 국내의 여러곳에서 항일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이 나무에 써놓았던 구호를 발굴하고있는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그때 우리가 국내에 파견했던 소부대성원들과 정치공작원들 그리고 각지의 인민들이 조국광복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그런 훌륭한 구호를 많이 써놓았다고 말씀하시였다.

최정렬녀사는 감사하기 그지없었다. 김일성주석께서 자기가 가져온 단편적인 사적자료들을 그렇듯 귀중한 보물로 받아들이실줄은 미처 생각지 못하였었다. 아득히 흘러간 옛시절 보천보전투의 목격자로서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항일혁명투쟁과 인연을 맺게 되여 항일빨찌산투쟁과 관련한 사료라면 크든작든 모아오는것을 백성의 도리로 여겨온 그였다. 그런데 그것이 내 나라, 내 조국의 근본을 지키는 중대한 사업에 기여하게 될줄을 미처 몰랐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늘 보천보전투이야기부터 펼쳐놓는다고 하여 《보천보할머니》로 불리워온 그는 그것이 얼마나 긍지로운것인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는듯싶었다.

최정렬녀사가 감개무량함을 금치 못해하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와 일행에게 음식을 권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언감자떡을 맛보는것이 좋겠습니다. 언감자떡은 량강도특산인데 여러분들은 잘 모를것입니다. 여러분들가운데 언감자떡을 처음 먹어보는분들도 있을것입니다. 언감자떡을 처음 먹어보면 오늘이 기념이 될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좌석에 앉은 해외동포들에게 고향이 어디인가를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재카나다조선인축하대표 김정식선생은 고향이 정주라고, 최정렬녀사는 해방전에 혜산에서 살았다고 말씀올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카나다조선인축하대표선생도 고향이 정주이면 언감자떡을 처음 맛볼것이고 재미조선인축하단 성원으로 온 녀사는 그전에 혜산에서 살았기때문에 언감자떡에 대하여 잘 알것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도 오래간만에 언감자떡을 먹어보는데 별맛입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는 언감자떡을 많이 먹었습니다. 항일유격대의 군사적공세에 겁을 먹은 일제는 이르는 곳마다 집단부락을 만들어놓고 인민들이 유격대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지 못하게 갖은 발악을 다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인민들은 그 어려운 속에서도 유격대를 성심성의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유격대에 식량을 지원하는데서 제일 헐한것은 감자였습니다. 인민들은 밭에 있는 감자를 캘 때가 되면 감자넝쿨만 뽑아버리고 경찰에는 감자가 좀 될가 하였는데 망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유격대에는 어느 감자밭에 감자가 그냥 있으니 밤에 와서 캐가라고 련락하군 하였습니다. 그러면 유격대원들이 밤에 가서 감자를 한배낭씩 캐오군 하였습니다. 감자는 얼어도 먹습니다. 밭에 있는 감자를 다 캐지 못하면 그냥 한해 겨울을 나게 되는데 밭에서 겨울난 감자는 그 이듬해 봄에 캐서 말리워 가루를 내면 언감자가루가 됩니다. 그 가루로 떡을 만들면 언감자떡이 되고 국수를 누르면 언감자국수가 됩니다.》

감자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있었다.

도이췰란드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의 하나로 하지만 언감자로 여러가지 음식을 만들어먹는 방법을 모르는것 같다. 서부도이췰란드 녀류작가 루이저 린저는 나를 만나러 해마다 우리 나라에 오는데 그는 나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다. 그는 처음에 나에게 감자가 사람의 몸에 아주 좋고 먹기도 좋다고 하면서 감자에 대한 자랑을 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나한테 감자에 대한 자랑을 하지 말라, 감자에 대하여서는 내가 잘 안다고 말해주고 어느날 그에게 언감자국수와 언감자떡을 비롯한 감자음식을 푸짐히 만들어먹이고 방금 먹은 떡이 무엇으로 만든것인지 알아맞춰보라고 하였더니 그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에게 그것이 바로 당신이 자랑하던 감자로 만든 떡이라고 하였더니 그는 자기가 확실히 감자에 대하여 나보다 모르고있었다고 하였다. 쏘련사람들도 감자를 많이 먹지만 언감자떡에 대하여서는 모르는것 같다. 노비첸꼬도 감자를 많이 심는 곳에서 살지만 감자에 대하여 잘 모른다. 어느해 여름에 내가 량강도를 현지지도할 때 그를 거기에 데려오게 하고 언감자떡을 해주었더니 그는 매우 희귀한 음식이라고 하면서 이런 음식은 난생처음 먹어본다, 감자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줄 모르고있었다고 하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그들에게 들쭉과 들쭉술에 대하여 설명해주시였다.

들쭉술은 백두산일대에 있는 들쭉을 따다 보리길금을 넣어 만든 술인데 주정도 좀 있고 좋다. 지난날 일제는 라남에 술공장을 차려놓고 백두산일대에서 나는 들쭉을 가져다 술을 만들어 일본에 가져갔다. 해방전에 일본천황은 우리 나라에서 가져간 들쭉술만 먹었다고 한다. 내가 잘 아는 일본정계인사인 우쯔노미야 도꾸마도 들쭉술을 좋아한다. 어느해인가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총련 한덕수의장에게 들쭉술을 주면서 일본사람들에게 널리 선전하라고 한 일이 있었다. 한덕수의장이 그 들쭉술을 가지고 가서 일본정계의 고위인사들을 만나거나 연회를 차릴 때에만 썼다고 한다. 나는 우리 인민들에게 들쭉단묵, 들쭉단물, 들쭉술을 비롯한 들쭉가공품을 많이 먹이기 위하여 삼지연에 청량음료공장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들쭉밭도 한 500정보 조성하도록 하였다. 들쭉밭을 조성하기 전에는 여기저기에 분산되여 자라는 야생들쭉나무들에서 들쭉을 얼마 따지 못하였지만 들쭉밭을 조성하여놓은 다음부터는 많이 따고있다. …

화제는 인삼에로 옮겨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삼은 고려약재로서 아주 좋다고 하시며 인삼과 엮어진 세계 여러 나라 국가수반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이시였다.

지난 3월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에게도 인삼은 사람의 건강에 대단히 좋은 약재라고 말하였다. 그전에 유고슬라비아대통령 찌또는 인삼을 먹은 다음부터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 하였다. 그는 우리가 보내준 인삼을 먹고 한 10년은 더 살았다고 한다. 그가 85살에 우리 나라에 왔댔는데 아주 정정하였다. 그는 88살에 사망하였다. 그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병을 앓았는데 고려의학적방법으로 치료를 하였더라면 아마 몇해는 더 살수 있었을것이다. 강량욱부주석도 찌또와 같은 병에 걸렸는데 우리 의사들이 수술을 하지 않고 우리 식대로 고려치료를 하였기때문에 한 7년 더 살았다. 그러나 찌또는 서유럽의 여러 나라 의사들을 불러다 치료를 받았지만 효과를 보지 못하였다. 서유럽나라 의사들은 찌또가 걸린 병 같은것은 수술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88살난 찌또의 다리를 자르다보니 그가 견디지 못하고 인차 사망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유럽의술을 숭배하지 않는다. …

수령님께서는 이번에는 식탁우에 있는 수박을 보시며 그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였다.

이 수박은 온천물을 리용하여 키운것이다. 우리는 온천물을 리용하여 여러가지 남새를 생산하고있다. 옹진에도 좋은 온천이 있다. 그곳에 있는 군인들은 온천물을 리용하여 온실을 지어놓고 여러가지 남새를 생산하고있다. 온천물을 리용하여 온실을 운영하면 원가도 적게 들고 온도도 충분히 보장할수 있다. 옹진에 있는 온천물의 온도는 100℃ 되기때문에 온실을 거쳐 나온 물을 가지고도 목욕을 할수 있다. 사람이 목욕을 하는데는 물온도가 40~60℃이면 된다. 평양온실농장 같은데서는 중유를 때기때문에 거기서 생산하는 남새는 원가가 많이 든다. 그래서 평양온실농장에서 수박 같은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팔아주기 위하여 조금씩 심고있다. …

모두가 넋을 잃고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잠시후 아메리카지역의 해외동포지인들에 대하여 회고하시였다.

김성락목사가 지난해에 사망하였으면 86살에 돌아갔다고,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본것이 1982년이라고, 그때 그의 나이가 79살이였다고, 손정도목사의 맏딸이 미국에서 살았는데 그가 아직도 살아있을것이라고, 그는 해방전에 서울에 있는 돈많은 자본가의 집에 시집을 갔다고, 남조선에서 국방부 장관을 한 손정도목사의 아들 손원일은 사망하였을것이라고, 림창영선생이 80살이 넘었지만 아직도 정정하다고 하니 기쁘다고, 그도 조국에 오고싶어할것이라고, 그는 해방후에 미군정청에서 고문으로 있던 서재필의 서기를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최덕신선생은 불치의 병으로 돌아갔다고 하시며 그가 다른 나라에 있을 때 병에 걸려가지고 조국에 왔던것 같다고, 그가 조국에 온지 한 3년 되나마나한데 그렇게 빨리 병을 만날수 없다고, 그는 분명히 다른 나라에서 병을 길러가지고 조국에 온것 같다고, 자본주의나라에서는 돈밖에 모르다보니 검진을 되는대로 하여 그의 병을 발견하지 못하였던것 같다고, 우리 의사들이 그의 병을 좀더 일찍 발견하였더라면 더 살수 있게 하였겠는데 좀 늦게야 발견하였다고, 참 아까운 사람을 잃었다고 뇌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미주지역에 조선사람이 많이 살고있습니다. 해방전에는 미국에서 사는 조선사람이 몇천명 된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사람이 많이 사는 나라는 중국 다음에 미국입니다. 미국에 있는 조선사람들가운데는 해방후에 북반부에서 살다가 남반부로 나갔다가 거기서 살아가기 곤난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적지 않을것입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조국땅과 멀리 떨어져 사는 동포들의 처지와 운명을 두고 걱정하시는 민족의 어버이의 숭고한 동포애가 뜨겁게 흘러넘쳤다. 제 나라, 제 고장에서 살지 못하고 이역만리에 흩어져 민족적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고있는 해외동포들에 대한 무한한 동정과 책임감이 짙게 어린 그이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며 동포들의 눈굽은 쩌릿이 젖어들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미국에서 살기때문에 잘 알겠지만 미국은 사람이 마음놓고 살수 없는 나라이라고, 미국이 살기 좋은 나라이고 미국식민주주의와 자유가 좋다고 선전하지만 그것은 허튼소리이라고, 미국식민주주의와 자유는 얼마 안되는 자본가들을 위한것이지 돈이 없는 절대다수의 인민대중을 위한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우리 식으로 일떠세운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가 제일이라는데 대하여 설명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조국통일북아메리카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선우학원선생에게 시선을 보내시며 그가 쓴 책 《북한의 동구라파변화에 대한 시각》을 읽어보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책에서 우리 나라는 절대로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처럼 되지 않을것이라고 하였는데 잘 썼다고, 위원장선생이 함께 온 선생과 같이 《주체사상과 기독교》라는 책도 썼다고 하는데 아주 좋은 일이라고, 앞으로 그런 책을 더 많이 써서 출판하는것이 좋겠다고 고무하여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최근 남조선청년학생들과 로동자, 농민, 인테리들속에서 주체사상을 따라배우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벌어지고있는데 여러분들이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에 대한 책을 많이 써내면 그런 책들이 남조선에 들어가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수 있을것입니다. 주체사상과 조국통일에 대한 책이 다른 나라에서 출판된것은 남조선으로 들어가기 힘들지만 미국에서 출판된것은 들어갈수 있을것입니다.》

참으로 고무적인 가르치심이였다. 인간의 자주적운명개척의 길을 밝힌 주체사상에 이끌려 공화국을 알게 되고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 나서게 된 그들이기에 주체사상에 대해 선전하는 글을 쓰는것을 지성인의 량심에 따른것이라고 생각하여왔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을 조국통일에 기여하는 중요한 사업으로 보시고 적극 장려하여주시는것이였다.

선우학원선생이 미국과 남조선과의 밀착관계를 리용하여 남조선인민들속에 주체사상을 보급하는 선전자적역할을 할 결심을 굳히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전날 저녁에 미국에서 온 어느 동포가 지은 시를 들어보신데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시며 시를 잘 썼다고 평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고 우리는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의 《두개 조선》조작책동을 짓부시고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미제와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 나라를 영원히 〈두개 조선〉으로 갈라놓기 위하여 별의별짓을 다하고있는데 우리는 절대로 그것을 허용할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 나라가 〈두개 조선〉으로 갈라지게 되면 조국의 절반땅인 남녘땅을 영원히 잃어버릴수 있습니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지금까지 미제는 쏘련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조선을 내놓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최근에 가장 큰 적대국인 쏘련과의 관계가 가까와지고있다고 하시면서 부쉬는 《개편》정책을 실시하고있는 쏘련에 대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파를 던지고있다, 미국사람들이 아시아에서 제일 큰 나라인 중국과도 좋게 지내려 하는것 같다, 그러니 미군이 남조선에 계속 남아있을 명분이 없다고 언명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일본군국주의가 되살아나고있는데 대하여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남조선에서 인민들이 미군철거를 요구하여 미제와 당국자들을 반대하여 들고일어나면 일본반동들이 지난날 리조시기에 일본거류민들을 보호한다고 하면서 군대를 들이민것처럼 남조선에 있는 일본사람들과 저들의 리권을 보호한다는 구실을 대고 무력을 들이밀수 있다고, 이렇게 되면 남조선이 또다시 일본의 식민지로 될수 있다고, 우리는 일본군국주의를 매우 위험한 적으로 보고 그에 대하여 언제나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일본군국주의가 되살아나게 하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시였다.

잠시 신중한 기색으로 앉아있는 교포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은 《1 000mile해상교통로방위》라는것을 내놓고 싱가포르까지 저들의 《보호권》안에 넣으려고 책동하고있으며 미군의 주관하에 진행되는 《림팩 90》군사연습에도 참가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일본군국주의는 군국주의가운데서도 가장 지독하고 파렴치하며 퇴매하고 호전적인 군국주의이라고 지탄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화국이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들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있는데 대하여서도 언급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는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하여 해방직후부터 지금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가지 합리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았다고 하시며 우리는 남침할 의사가 없다는것을 밝히고 북과 남이 불가침선언을 채택할데 대한 문제와 군대를 각각 10만아래로 줄일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는 북과 남에 있는 정치, 경제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하나의 통일국가를 창설하되 련방국가는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으로도 되지 않고 스위스나 오스트리아와 같은 중립국으로 되게 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련방국가가 된 다음에도 북과 남의 정치, 경제제도를 그대로 둬두면 남조선자본가들과 남조선에 자본을 투자한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자본가들도 손해볼것이 없을것이다, 지금 남조선이 지고있는 빚도 앞으로 련방국가가 서로 잘살게 되면 다 물어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여러가지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을 내놓았지만 남조선당국자들은 어느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고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미국에 매여 미국사람들이 시키는대로 하기때문이라고 그들의 사대굴종적인 정책에 대하여 발가놓으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북과 남에 있는 정치, 경제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통일한다고 하여 그것을 두려워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의 이웃나라들인 쏘련이나 중국, 일본은 다 우리 나라보다 큰 나라들이기때문에 우리 나라가 통일되여도 무서워하지 않을것이며 우리가 중립정책을 실시하는데 대하여서도 반대하지 않을것이라는것, 우리 나라가 통일되고 중립정책을 실시하는데 대하여 발전도상나라들과 그밖의 다른 나라들은 지지할것이라는것, 지금 론의되고있는 동서도이췰란드의 통일문제는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는것, 동서도이췰란드의 통일문제는 유럽나라들에 큰 걱정거리라고 말할수 있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멀리 아메리카주에서 자신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교포들에게 오늘은 함께 식사나 나누자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식탁앞에서 모든것을 잊으신채 통일문제를 두고 오래도록 이야기하시였다. 그이의 모든 사색은 오로지 통일에 잇닿아있는것 같았다.

후날 교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들 한사람한사람에게 친히 음식을 권하시며 음식과 관련한 상식의 세계를 펼쳐보이신것도 언제나 분렬된 조국을 잊지 말고 부디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라는 무언의 당부였음을 가슴뜨겁게 되새기였다.

참으로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한생은 오찬의 한순간마저도 오로지 조국의 통일과 겨레의 운명을 위해 사색과 로고를 바쳐가신 민족의 어버이의 거룩한 한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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