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음악가를 조국통일운동의 앞장에

 

한여름의 무더위가 대지를 뜨겁게 달구던 주체71(1982)년 7월 30일이였다.

조국에 체류하고있던 재도이췰란드교포음악가인 윤이상선생과 그의 가족들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게 되였다.

3년만에 조국을 다시 방문하여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게 된 윤이상선생은 벅찬 흥분에 싸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해외에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있는데 대하여 감사를 표하시고나서 조국통일문제를 놓고 담화를 시작하시였다.

《미국은 우리 나라가 자기의 대아세아전략을 실현하는데서 군사전략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기때문에 남조선을 좀처럼 내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머리를 떼신 그이께서는 미국이 왜 남조선을 계속 틀어쥐려 하는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까밝히시였다.

미국이 남조선을 계속 틀어쥐려 하는 중요한 목적의 하나는 쏘련함대의 태평양에로의 진출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려는데 있다는것, 미국은 쏘련함대가 남하하는것을 막기 위하여 남조선의 진해만과 일본의 쯔시마 같은 곳에 저들의 해군기지를 튼튼히 꾸려 조선해협으로 통과하는 쏘련함대를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제압하려는것이며 다른 하나의 목적은 남조선이 저들의 좋은 시장으로 되고있기때문에 결코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미국은 세계제패의 야망을 실현하는데서 앞으로 저들의 힘이 모자라면 일본을 내세워 남조선을 계속 틀어쥐려 할것이라고 전망하시며 일본이 남조선을 점차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아 저들이 통치할 준비를 다그치고있는데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이러한 분석에 기초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모든 사실은 남조선이 《한국》이라는 명칭을 가진 독립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철저한 식민지라는것을 말하여준다고 하시면서 그런데 일부 남조선사람들은 명목상 《한국정부》가 있다고 하여 남조선을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라 독립국가인듯이 잘못 생각하고있다고, 이것은 미국이 남조선에서 식민지통치를 지난날 일제놈들이 실시한 총독통치와 같은 방법으로가 아니라 괴뢰정권을 내세워 신식민주의적방법으로 하고있기때문이라고, 미국놈들은 음흉하기때문에 지난날 일제놈들처럼 총독통치를 하면 남조선인민들이 당장 들고일어날수 있다는것을 타산하고 교활한 신식민주의적통치수법을 적용하고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은 미국의 식민지이기때문에 남조선에서의 실제적인 권한은 남조선〈정권〉에 있는것이 아니라 미국에 있습니다. 남조선〈정권〉은 미국이 하라는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음악에서는 세계적인 거물로 인정받고있었지만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윤이상선생에게 있어서 수령님의 말씀은 위대한 스승의 가르치심으로 새겨지고있었다. 차츰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 그는 정의감이 솟구쳐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시며 말씀을 이어가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의 통치배들이 어떻게 미국의 허수아비노릇을 하여왔는가에 대하여 7. 4공동성명채택과 북남경제합작문제, 6. 23《특별성명》발표로 《두개 조선》정책을 세상에 공공연히 선포한 사실들을 실례로 들어가시며 상세히 설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력사적사실은 남조선이 미국의 예속밑에 있는 완전한 식민지라는것을 보여주고있다고 결론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이기때문에 〈대통령〉도 철저한 친미분자가 아니고서는 될수 없습니다. 남조선에서는 미국놈들이 남조선정객들의 목을 떼고싶으면 떼고 붙이고싶으면 붙이며 제마음대로 좌지우지하고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이에 대하여서도 구체적인 현실을 놓고 상세히 언급하시였다.

사실이 그러했다.

군사파쑈독재자가 죽은 후 남조선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대통령》자리에 독재를 하지 않는 사람이 들어앉을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회의 민주화가 실현될것이라는 기대를 가지였었다. 그러나 미국은 새로운 군사독재자를 그 자리에 들여앉히였다.

이자는 윁남전쟁시기 괴뢰군련대장으로서 악명을 떨친자로서 당시 그곳에 와있던 미군장교 윅캄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의 사환군노릇을 하였다. 그후 윅캄이 《한미련합군》 사령관으로 남조선에 부임되여오자 《대통령》후보자로 나섰고 결국은 《대통령》으로 되였다.

이것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친미분자를 물색하여 점찍어두고있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제때에 대응책을 세운다는것을 말해주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을 통하여 비로소 미국의 정보정치의 내막을 파악하게 된 윤이상선생은 격분을 금할수가 없었다.

미국의 식민지로서의 남조선의 실상을 파헤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에서 실제적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주인행세를 하며 식민지통치를 실시하고있는 미국을 몰아내기 위하여서는 남조선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그들이 반미투쟁에 일떠서게 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란혁명세력이 사원들에서 진행되는 기도회를 통하여 인민들을 교양하고 정치적으로 각성시켜 반미감정을 높임으로써 마침내 들고일어나 파흐라비독재정권을 꺼꾸러뜨리고 미국놈들을 쫓아버린데 대하여 이야기하시며 남조선에서도 인민들이 정치적으로 각성하여 반미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기 전에는 미국놈들이 물러가지 않는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난날에는 남조선인민들속에 숭미공미사상이 많았는데 광주인민봉기후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각계층 인민들속에서 미국을 숭배하고 무서워하던 사상이 점차 없어지기 시작하고 그대신 반미자주사상이 높아지고있다고, 미국놈들은 부산에서 미국문화원방화사건이 일어나자 그것을 남조선인민들속에서 반미감정이 높아지고있는 하나의 대표적실례로 보고 몹시 두려워하고있으며 그것을 무마하기 위하여 언론계를 발동하여 교활하게 회유기만책동을 벌리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의 남조선에 대한 재침야망에 대하여 언급하시고나서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의 애국세력은 조성된 정세와 인민들속에서 날로 높아가고있는 반미감정에 맞게 남조선이 미제국주의자들과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을 적극 벌려야 합니다. 남조선에서 민족해방투쟁, 반미자주화투쟁을 적극 벌리지 않고서는 남조선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반미자주화투쟁을 적극적으로 벌리기 위하여서는 남조선인민들을 반미자주의식으로 무장시키며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묶어세워 민족대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밝히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은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민족해방혁명을 잘하여야 한다는것이였으며 그러자면 반미자주화의 기치밑에 남조선의 각계각층 애국력량을 묶어세워 민족대단결을 이룩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윤이상선생은 마치도 현대정치의 학문을 한순간에 터득한것만 같은 심정이였다.

민족의 통일에 보탬이 되는 큰일을 하고싶은 열의가 윤이상선생의 가슴속에 북받쳐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때로부터 두해후인 1984년 9월 11일 또다시 조국을 방문한 윤이상선생을 만나주시였다.

밤나무 우거진 정원에서 윤이상선생부부를 기다리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도착하자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마주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주석님!》 하고 부르며 달려와 품에 안기는 윤이상선생을 두팔로 꽉 그러안으시고 잘 왔다고, 참으로 반갑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 자리에 앉히시고 얼마전 동부도이췰란드를 방문하실 때 그가 보낸 축하전문을 받아보신 사실을 상기하시면서 그에 대해 사의를 표시하시고 방문일정이 긴장하여 그곳에서 그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태전에 그가 조국에 가지고 온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들어보았는데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그런 작품을 세계에 알리는것은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매우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 작품을 록음으로 3번이나 들어보았는데 곡이 매우 좋고 사람들에게 투쟁의 용기를 북돋아주고 감동적인 충격을 안겨주는 곡이라고 치하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창작한 교향시곡 《광주여 영원히》를 가지고 예술영화를 만들면 좋은 영화가 될것이고 해외동포들이 보면 다 눈물을 흘릴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자기의 작품에 대하여 이렇듯 높이 평가를 주시는 그이의 말씀에 윤이상선생은 몸둘바를 모르고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이날 그가 조국에 민족음악연구소를 내왔으면 하는 소청을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음악연구소를 내와가지고 그것을 잘 운영하는것은 민족의 장래발전을 위하여 매우 좋은 일이라고 만족해하시면서 선생과 같은분들이 민족을 위하여 자기의 재능을 발휘한다면 남조선청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수 있을뿐아니라 우리 민족의 슬기를 세계인민들앞에 시위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모든 사색의 출발점도 민족으로부터 시작하시고 모든 론리의 귀결도 민족에로 이끌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민족중시의 관점과 립장에 감복한 윤이상선생은 자신이 오래동안 해외에서 작곡가로 활동하였지만 민족을 위한 참다운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의 재능으로 보아 남조선청년학생들의 애국적투쟁을 비롯하여 우리 민족을 위한 다양한 주제의 곡을 더 많이 창작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해마다 여름 한철에는 조국에 와서 3~4개월씩 휴식도 하면서 조국의 예술인들과 만나 그들의 예술활동도 고무해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한가슴에 받아안기에는 너무도 큰 신임이고 은정이였다.

돌이켜보면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도 떨치였고 여러차례의 음악축전들에서 최고상들도 받았으며 명예칭호들과 훈장들도 받았지만 이 모든것을 다 합친다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값높은 평가와 믿음에는 정녕 비길수 없는것이였다.

자기 한생의 가치와 음악의 생명력이 자기의 재능으로보다는 그 믿음을 지켜가는 길에 담보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몸은 비록 유럽땅에 있어도 내 나라, 내 민족을 위해 재능과 열정을 힘껏 바쳐가리라.)

서부도이췰란드로 돌아간 그는 서울올림픽에 음악가로 협조해줄데 대한 남조선당국의 청탁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기 량심의 곡, 민족에게 바치는 곡을 창작하는데 달라붙었다. 그것이 바로 60여일간의 고심어린 사색끝에 완성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였다.

교성곡에는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의 뜨거운 열망과 그것을 기어이 성취하려는 강렬한 의지가 폭넓고 깊이있게 반영되여있었다.

수십년동안 해외에서 창작한 모든 음악작품들의 첫 연주를 도이췰란드를 비롯한 이역땅에서 했던 그는 자신의 조국애와 민족애가 집대성되여있는 이 새 교성곡만은 꼭 조국에서 첫 공연을 하고싶었다. 하여 그는 작품이 완성되자 서둘러 서부도이췰란드를 떠났다.

그가 교성곡을 조국에 가지고 온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1987년 10월 5일 만수대예술극장에 나오시여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의 첫 공연을 친히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성곡이 가사도 좋고 곡도 좋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수 있는 아주 훌륭한 노래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으며 윤이상선생을 접견하신 석상에서도 작품을 아주 잘 썼다고 거듭 치하해주시면서 새로운 형식의 교성곡창작을 위한 탐구에 깃든 그의 수고를 널리 헤아려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 45돐이 되는 1990년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를 가질데 대한 윤이상선생의 발기를 적극 지지해주시면서 음악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리하여 북과 남, 해외의 음악예술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그들은 음악회를 계기로 민족의 고유한 음악예술전통과 유산을 매우 귀중히 여기며 그것을 우리 인민의 현대적생활미감에 맞게 개화발전시켜나가고있는 공화국의 현실을 더 잘 알게 되였으며 서로의 교류를 활발히 벌릴수 있게 되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음악예술전통을 훌륭히 계승발전시킬뿐아니라 민족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인 문화의 공통성이 점차 사멸되여가는것을 방지하고 조국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성과적으로 끝난 다음날인 1990년 10월 24일 윤이상선생을 접견해주시고 그가 건강이 좋지 못한데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발기하고 그 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음악회가 큰 성과를 거둘수 있도록 적극 힘쓴데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며 그의 수고를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범민족통일음악회가 거둔 성과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민족의 우수한 전통과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옳게 계승발전시켜나가려면 북과 남의 인민들이 자주 모여 여러가지 형식과 방법으로 실속있는 협력과 교류를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것이 조국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북과 남의 인민들이 자주 모여앉으면 서로 의사가 소통되고 민족적인 화해와 단합이 이루어질것입니다. 이것은 민족의 대단결과 통일에도 좋을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음악예술분야에서 지니고있는 높은 권위를 리용하여 해내외동포들의 음악예술교류를 직접 조직할수 있고 선생이 직접 참가하지 못한다 해도 선생의 이름으로 해내외음악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앉는 계기를 마련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무한히 고무된 윤이상선생은 앞으로 조국통일을 위하여 자기의 있는 힘과 재능을 다 바칠것을 결의다졌다.

그의 결의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나는 선생이 이 사업에서 큰 성과를 거두리라고 믿는다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앞으로 민족의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는 방향에서 북과 남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더욱 활발히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윤이상선생을 위하여 오찬을 베푸시였다.

오찬석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윤이상선생은 우리 민족이 아끼는 재간둥이이며 선생처럼 예술분야에서 귀한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하시면서 건강관리를 잘하여 민족을 위하여 좋은 일을 더 많이 하여야 한다고 따뜻한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윤이상선생은 그이의 이렇듯 크나큰 믿음과 기대에 꼭 보답하리라 마음속으로 몇번이고 되뇌이였다.

다음해인 1991년부터 윤이상선생은 조국통일범민족련합 해외본부 의장의 중책을 맡게 되였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음악작품창작과 함께 조국통일운동에 자기의 심혼을 다 바치였다.

그의 이러한 애국활동을 귀중히 여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에도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거듭 베풀어주시였다.

대동강반의 경치좋은 곳에 고급주택을 마련하여주시고 그의 생일 75돐을 맞으며 평양의 중심부에 윤이상음악당을 새로 건립하도록 하신것을 비롯하여 윤이상선생에게 돌려주신 그이의 사랑과 은정은 끝이 없었다.

이렇듯 평생을 두고도 갚지 못할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과 사랑이 있어 그는 로당익장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의로운 활동을 계속 벌려나갈수 있었다.

참으로 한 해외동포음악가의 재능과 애국의 넋을 귀중히 여기시고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그것을 빛내여나가도록 사랑을 주시고 믿음을 안겨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넓고 크나큰 품이 있었기에 윤이상선생은 세계적인 음악가로,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헌신한 애국지사로 우리 겨레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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