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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제시, 민족대통일전선형성의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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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대통일전선의 형성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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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로 불러주시며

 

이 땅에 민족분렬의 비극이 시작된 때로부터 서른다섯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1980년대가 다가왔다.

당시 미제식민지지배하의 남조선에서는 군사파쑈분자들의 책동으로 엄중한 사태가 조성되고있었다.

1979년 10월부터 남조선 각지에서 줄기차게 벌어진 민주항쟁의 불길속에 《유신》독재정권이 거꾸러진 이후 미제의 배후조종밑에 음모적방법으로 권력을 틀어쥔 군사파쑈분자들은 사회의 민주화와 조국의 통일을 방해하여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남조선 전지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비롯한 모든 정치활동은 완전히 금지되였다. 이러한 파쑈적탄압을 박차고 1980년 5월 광주시와 그 주변의 각계각층 인민들 100여만명은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다.

영웅적광주인민봉기는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 억압자들이 강요하는 파쑈통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실시하기 위한 가장 높은 형태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였으며 전제정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동방인민들의 투쟁사에 뚜렷이 새겨진 격렬한 대중적봉기였다.

활화산마냥 세차게 타번지는 반파쑈민주화투쟁의 불길에 질겁한 남조선군사파쑈도당은 《민주주의》허울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남조선인민들의 애국적투쟁을 야수적으로 탄압해나섰다.

한편 미국은 남조선괴뢰들의 파쑈적탄압만행을 적극 비호하면서 《두개 조선》조작책동과 새 전쟁도발에 더욱더 열을 올리였다.

그리하여 조선반도에는 민족의 영구분렬과 전쟁의 검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우게 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둘로 갈라지게 될것이며 남조선인민들은 식민지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것이라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련방제방식의 통일국가수립에 대한 독창적인 방안을 새롭게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전체 조선민족을 불러일으키시였다.

1980년 10월 평양에서는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에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서는 7. 4남북공동성명에서 북과 남이 공동으로 천명한 숭고한 리념과 원칙에 기초하여 그리고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로부터 출발하여 가장 빠르고 확신성있는 조국통일방도를 찾아야 하며 적극적인 노력으로써 그것을 실현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북과 남에 있는 사상과 제도를 그대로 두고 북과 남이 련합하여 하나의 련방국가를 창립할데 대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새롭게 천명하신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북과 남이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 정부를 그대로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우에서 서로 동등하게 참가하는 민족통일정부를 내오고 그밑에서 같은 권한과 의무를 지니고 각각 지역자치제를 실시하는 련방국가를 창립하여 조국을 통일하는것이다. 이것은 결국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개 제도, 두개 정부에 기초한 련방제방식의 통일국가를 창설하는것으로서 1960년이래 여러차례에 걸쳐 제시된 북남련방제안과는 달리 조국통일을 완전히 실현하는 방도로 제시된 새로운 조국통일방안이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은 나라의 통일을 하루빨리 실현하려는 우리 민족의 한결같은 지향과 북과 남에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조국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받아들일수 있는 공명정대한 조국통일의 대헌장으로서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북과 남, 해외에 살고있는 전체 조선민족과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기 위한 전제로서 민족공동의 요구와 리익을 옹호하는 민족대통일전선을 형성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시였다.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가 진행된 때로부터 한달남짓하게 지난 후인 1980년 11월 11일 평양에서 열린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공화국의 제 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에서는 본회의의 이름으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의 조속한 실현을 위한 일련의 대책적제안을 담은 편지를 남조선인민들과 해외동포들에게 보내였다.

편지를 받은 사람들속에는 당시 미국에 있던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이며 《한국인교회련합회》 고문인 김성락목사도 있었다.

김성락목사로 말하면 미국정객들속에서 친면이 넓은 사람으로서 당시 미국당국의 년봉을 받고있던 유일한 조선사람이였다.

1904년 평양의 두단리(당시)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여난 그는 숭실중학교에 다니다가 미국에 가서 류학을 하였으며 돌아와서는 보통강일대에서 교회목사를 하였다. 일제가 강요하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로스안젤스련합장로교회의 목사로 있으면서 재미동포들의 독립운동에도 관여하였다.

8. 15후에는 재미독립운동자의 한사람으로 미국의 힘을 빌어 권력의 정점에 올라보려다 배신의 쓴맛만 보았으며 1950년대말과 1960년대초에는 남조선의 숭실대학 초대학장을 지내다가 날로 파쑈화되는 정국에 실망하여 다시 미국으로 가고말았다. 해외에서 《유신》독재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려오던 그는 1970년대 후반기부터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으로 통일운동에 참여하게 되였다.

김성락목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리운 고국땅을 밟아보고싶은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편지에 접한 그는 그에 호응해서라기보다는 고향땅도 밟아보고 북의 통일립장도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조국방문의 길을 결심하게 되였다.

하기에 그는 조국에 와서도 통일문제에서 북의 방안에 동조하거나 말려들지 않는다는 도고한 립장을 취하였으며 모든것을 자기 눈으로 직접 보고 자체로 결론을 내린다는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한생을 거의나 반공, 반북일변도의 사회현실속에 살아왔던것만큼 공화국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하루이틀사이에 쉽게 전환될수 없었던것이였다.

그러나 공화국의 발전하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그의 완고한 립장과 그릇된 편견에 금이 가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는 국제친선전람관참관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세계 수많은 나라 국가수반들과 사회활동가들, 각계 인사들의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심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공화국의 높은 국제적권위앞에 커다란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느끼였다.

공화국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는 과정에 그는 북을 《세계혁명》이나 부르짖는 그런 사회로 리해하고있었던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깨닫게 되였다. 그는 북의 사회제도야말로 민족과 겨레를 위한 숭고한 애국의 사상으로 건설한 행복한 제도라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으며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만나뵙고싶은 간절한 소망을 품게 되였다. 조국땅에 자기가 바라던 천당, 리상사회를 건설해놓으신 그이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었던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와 같은 그리스도교목사가 그이를 만나뵙겠다는것이 언어도단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주체70(1981)년 7월 3일 김성락목사는 드디여 자기의 간절한 소망을 이룰수 있게 되였다. 국사에 그토록 다망하신 속에서도 김성락목사의 소원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던것이다.

김성락목사가 한달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에 당도했을 때 그이께서는 친히 현관문밖에까지 나오시여 기다리고계시였다.

성급히 차에서 내린 목사는 황황히 그이께로 다가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멀리에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다고, 정말 반갑다고 하시며 따뜻이 포옹해주시였다.

이어 김성락목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신 그이께서는 응접실에서 자리를 같이하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나는 선생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찾아 먼길을 온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며 선생의 조국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나는 오늘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주석님! 말씀을 낮추십시오. 주석님께서 저같은 사람을 이처럼 환대하여주시니 정말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해외에서 통일운동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똑똑한 통일방도와 주견도 가지지 못하고 별로 해놓은 일도 없는 자신을 이렇듯 애국지사로 불러주시는 그이의 과분한 평가의 말씀에 김성락목사는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다가 선생이 조국을 떠난지 몇해만에 평양에 왔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김성락목사는 1936년에 고향을 떠나 곧장 미국으로 갔다가 45년만에 조국에 왔다고 말씀올리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시며 1936년에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갔으면 조국에 있을 때 우리가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소식을 많이 들었으리라고 본다고 하시면서 지금 미국에 선생과 같은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이 있다고 하는데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가운데 애국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아버님께서도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을 묶어세워가지고 애국활동을 시작하시였다고, 그때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이 반일운동에 많이 참가하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김성락목사는 숭실중학교출신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그토록 높은 평가에 머리가 숙어졌다.

그는 숭실중학교의 선배분이였던 김형직선생님께서 미국선교사의 조선학생들에 대한 착취를 반대하여 동맹휴학을 조직지도하신것이 학교의 자랑으로 이야기되던 일이 지금도 생각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부친이 다니던 숭실중학교에서 공부한 선생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제를 돌리시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침략자들이 무차별적인 포격과 폭격을 가하여 혹심히 파괴하여놓고는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떠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이였던 평양이 페허를 박차고 오늘 이처럼 세계에 대고 당당히 자랑할만 한 웅장화려한 도시로 건설된데 대해서 이야기하시였다.

그이께서 해방후 보통강개수공사를 하여 토성랑을 인민의 유원지로 전변시킨데 대하여 이야기하실 때 김성락목사의 머리속에는 조국을 방문하여 보통강일대를 돌아보던 때의 일이 피끗 떠올랐다. 평양출신이라 이곳의 지형은 자기가 잘 안다고 자부하던 그는 여기는 토성랑자리가 아니라고 우기였었다. 그러나 보통문우에 올라 주변 땅생김새와 강줄기를 살펴보고 다시 모란봉에 올라 보통강주위를 관망하고나서야 비로소 여기가 한겻만 비가 와도 온통 물천지가 되군 하던 토성랑이 틀림없다고 수긍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을 돌이켜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오늘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조국을 통일하는것입니다.》라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에 대한 문제로 화제를 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나라의 독립을 조국의 절반땅에서밖에 실현하지 못하였다고, 남조선은 이름이 《대한민국》이지 실지에 있어서는 미국의 식민지라고 하시면서 조선은 다른 나라의 예속국으로 되여서는 안되며 반드시 통일되여야 한다고, 우리는 하루빨리 나라의 절반땅에서 민족적자주권을 마저 회복하고 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이룩하여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은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조선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면 사대주의를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적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사대주의의 해독성과 지난 시기 공화국에서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온데 대하여 상세히 이야기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조선 전체 인민들이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고 굳게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남조선에서 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국을 통일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에서 물러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것입니다. 력사는 제국주의자들이 남의 나라를 영원히 식민지예속밑에 둘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 반드시 변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문제는 남조선인민들이 숭미공미사상을 버리고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는가 못 가지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며 김성락목사는 얼굴이 붉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실 지난날 《미국에 대하여 욕하는것을 들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숭미사대주의에 푹 젖어있었던 그였다.

그의 속마음을 헤아려보신 수령님께서는 지난날에는 남조선인민들속에 숭미공미사상이 많았는데 점차 없어져가고있다고, 남조선인민들은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하였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빨리 각성되여 모두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기를 바라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믿음이 어린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미국사람들과 재미교포들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의 립장과 방안을 잘 해설해주는것이 좋겠습니다.》

아직 반공의 울타리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한 자기에게 이렇듯 믿음을 안겨주시는 그이의 이 말씀에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의 이러한 심중을 헤아려보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조선인민은 한피줄을 이어받으면서 몇천년동안 한강토우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이러한 우리 민족을 어떻게 둘로 갈라놓을수 있겠는가, 미국사람들이 아무리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으려고 하여도 우리 민족은 결코 갈라지지 않을것이다, 조선인민은 절대로 미국사람들의 노예로 되지 않을것이며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로 되지 않을것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김성락목사는 자기의 머리속에 남아있던 사대의식이 밑뿌리채 뒤흔들리는것을 어찌할수 없었으며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진 이 나라 강토를 둘로 갈라놓고 저들의 침략정책실현의 디딤돌로 써먹으려는 미국의 음흉한 속심을 간파하지 못하고 숭미사대에 물젖어 한생을 살아온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가슴에 차올랐다.

그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국사람들이 《남침위협》에 대하여 떠드는것은 남조선을 계속 강점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조선의 북과 남이 련합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통일된 조선은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으로도 되지 않고 그 어떤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완전히 중립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될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미국사람들과 재미교포들에게 우리에게는 《남침》할 의사가 없으며 조선은 통일된 다음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노력할것이라는것과 그렇기때문에 미국이 남조선을 군사기지로 가지고있을 필요가 없다는것, 그리고 앞으로 조선이 통일되여도 우리가 남조선에 사회주의제도를 강요하지 않을것이며 남조선에 있는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을것이라는것도 잘 해설해주어야 하겠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이어 앞으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한 다음 통일정부의 수반을 누가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수 있는데 그것은 북과 남에서 륜번제로 할수 있을것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국사람들에게 조선이 통일되여도 우리가 다른 나라들이 남조선에 투자한 자본을 다치지 않을것이라는것도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의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신경을 많이 쓰는것이 바로 이 문제이라고,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보고에서 명백히 밝힌바와 같이 우리는 조국이 통일된 다음 남조선에 투자한 다른 나라의 자본을 다치지 않을것이며 그 리권에 손해를 주는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것이라고 언급하시였다.

김성락목사는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의 뜻을 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차를 권하시며 말씀을 이으시였다.

그이께서는 북남대화에 대하여 이야기하시며 우리는 수천명의 광주시민들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남조선의 현 당국자와 마주앉아 회담할수 없다고 언명하시고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남조선당국자와 회담할수 없다면 누구와 회담할수 있겠는가고 물어볼수 있는데 우리는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 해외에 있는 민주인사들과 조국통일문제를 가지고 협상하려고 한다고, 이렇게 하는것이 가장 좋은 협상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앞으로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분자들이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민주인사가 정권의 자리에 올라앉으면 그와 회담할수 있을것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시였다.

김성락목사는 정중한 자세로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통일문제와 관련한 주석님의 가르치심을 미국국회의원들과 부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인차 해외에 있는 교포인사들과 조국통일문제를 가지고 협의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생이 그런 사업을 많이 하는것이 좋다고 거듭 고무하여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선생은 이번에 조국래왕의 길을 열어놓은것만큼 앞으로 자주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겠다고, 다음부터는 부인과 아들딸들을 데리고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한다고, 앞으로 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많이 노력하리라고 믿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성락목사를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극진한 환대에 감격을 금치 못하는 그를 식탁으로 초청하신 수령님께서는 문득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먼저 선생이 식전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서 기도를 드리십시오.》

순간 그는 마음속에 커다란 충격을 느끼였다.

사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오찬회석상에서만은 평생 지켜온 신자의 법도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식전기도를 그만두려고 작정하였었다. 오랜 성직자인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과의 오랜 시간에 걸친 대화과정에 받아안은 충격이 너무도 컸기때문이였다. 그는 시종 공산주의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가 하루빨리 통일되여 중립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되겠는가 하는 애국애족의 일념에 넘친 말씀을 하시는 김일성주석님을 우러르며 이분이시야말로 겨레의 통일념원을 한몸에 지니신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만고의 위인이시라고 확신하게 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종교인의 신앙심에 대해서까지 헤아려보시며 존중해주실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였다.

그이의 크나큰 도량과 포옹력에 무한히 감동된 김성락목사는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일어나 두손을 마주잡고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그것은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이 아니라 위대한 김일성주석에 대한 진심으로부터의 기도였다.

후날 김성락목사는 미국에 돌아가 그리스도교신자들을 비롯하여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김일성주석님께서 함께 식사를 나누시기에 앞서 기도를 드리라고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주석님의 고마운 말씀을 접하는 순간 오래동안 나의 마음속에 맺혀있던 모든 위구심, 회의심은 일시에 사라졌습니다. 나는 충심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라고 말하였다.

하기에 자신의 평양방문소식을 일체 보도하지 말아달라던 도착할 때의 립장을 스스로 바꾼 그는 평양을 떠나는 날 기자회견을 가지고 출발성명을 발표하였다.

성명에서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조국의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모든 오해를 깨끗이 풀었다고 하면서 《민족도 강산도 그 민족, 그 강산이되 오늘과 같은 놀라운 현실을 국토우에 가꾸어놓게 된것은 위대한 령도자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김일성주석님은 하늘이 낸 위인이십니다.》라고 자신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였다.

참으로 온 겨레를 따뜻이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의 품은 숭미사상에 물젖어 방황하여온 로목사에게 밝은 희망을 안겨준 따뜻한 품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그로부터 1년후인 1982년 10월 13일 부인과 함께 조국을 방문한 김성락목사를 또다시 접견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지난해에 조국을 방문하고 돌아가서 나라와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한데 대하여 평가하시고 미국에 사는 동포들이 조국에 올수 있으면 다 와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을 알고 조국의 현실을 직접 보고 가는것이 좋다고, 재미동포들은 조국을 래왕하면서 우리의 조국통일방침을 잘 알고 그것을 미국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는 지난번 상봉때처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주시였으며 은정어린 선물도 안겨주시고 만찬까지 베풀어주시였다.

만찬석상에서도 그이께서는 선생은 오래 앉아있어야 한다고, 우리는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들이 오래 앉아있으면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좋은 일을 많이 할것을 기대하고있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모습을 우러르는 김성락목사의 두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여올랐다.

숭미사대와 반공으로 인한 오해와 편견, 의문과 고집으로 얼룩진 그의 마음속에 그래도 한가닥 간직되여있는 우국지심을 귀중히 여기시여 애국지사로 불러주시고 오래오래 살아야 한다고 극진한 믿음과 은정을 안겨주시는 위대한 수령님!

실로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해외의 한 로목사에게 베푸신 믿음과 은정은 그 깊이와 넓이를 잴수 없는 무한한것이였다.

진정 주의주장을 초월하여 민족적량심을 지닌 이 나라 모든 겨레를 크나큰 포옹력으로 한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계시여 우리 겨레는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과 락관을 안고 거족적인 통일운동의 길에 과감히 떨쳐나설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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