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작곡가 윤이상을 만나주시여

 

격동속에 흘러간 1970년대의 마지막해인 주체68(1979)년 10월 11일이였다.

이날 해외동포작곡가 윤이상선생이 탄 차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로 달리고있었다.

얼마나 고대하여온 이날이였던가.

윤이상선생이 처음으로 조국을 방문한것은 16년전인 1963년이였다. 강서고분벽화참관차로 공화국을 방문하여 김일성광장에서 있은 5. 1절경축행사에 참가했던 그는 그때 멀리에서나마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뵈옵게 되였다. 그날부터 그이를 만나뵙고싶은 소원을 품게 되였지만 그것은 실현될수 없는 꿈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평생의 소원을 풀게 되였으니 윤이상선생의 감격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것이였다.

어느덧 차는 그이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였다.

마치 구면지기를 만나신듯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그의 손을 허물없이 잡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오늘 선생과 이렇게 만나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시며 말씀하시였다.

《나는 선생이 미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 다니면서 남조선사회의 민주화와 조국통일을 위하여 활동하고있는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합니다.》

그이의 높은 치하의 말씀에 윤이상선생은 너무도 황송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자기의 미력한 활동이 이렇듯 과분한 평가를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

어버이의 살뜰한 손길이 상처입은 넋을 따뜻이 어루만져주시자 윤이상선생의 두눈에는 맑은 눈물이 고여올랐다. 그것은 수난많은 인생행로를 걸어온 불우한 인간이 흘리는 행복의 눈물이였다.

돌이켜보면 그의 인생은 류랑민의 설음속에 흘러온 나날이였다.

1917년 경상남도 통영(당시)의 몰락해가는 봉건량반가문에서 태여난 윤이상선생은 어려서부터 뛰여난 음악적재능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자기의 희망을 꽃피울 청운의 꿈을 안고 고루한 봉건의 구속을 박차고 집을 뛰쳐나와 서울과 일본의 오사까, 도꾜로 방황하였다. 일제의 민족적멸시와 수모속에 흘러간 이 나날 그의 가슴에 삶의 희망을 안겨준것은 오로지 음악이였다.

8. 15해방후 남조선에서 음악교사로 일할 때에는 중병까지 겹쳐 쓰러지기도 했고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에는 징병기피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헤매이기도 하였다. 전후에 서유럽으로 간 그의 발걸음은 처음에는 프랑스로, 다음에는 서부도이췰란드(당시)로 이어져갔다. 궁핍속에서도 고심어린 탐구와 노력끝에 련이어 성공한 그는 드디여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으며 현대음악계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였다.

그러나 창작초기 그는 예술지상주의관념에서 순수 예술성만을 추구해왔다. 그러다보니 분렬된 조국의 현실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투쟁보다도 고대의 력사와 문화, 민속전통 같은 주제의 음악창작에만 몰두하고있었다. 그러던 윤이상선생은 남조선괴뢰들이 조작한 이른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의 주모자의 한사람으로 몰리게 되였다. 1967년 서울에 랍치되여가 2년 가까이 남산지하실과 서대문형무소에서 갖은 악착한 고문과 옥중고초를 당하며 남조선사회의 비인간적, 반민족적실체를 통감한 그는 드디여 예술지상주의에서 탈피하여 조국통일과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주제로 하는 음악작품창작을 벌려나가게 되였다.

윤이상선생의 지난날을 더듬어보시는듯 련민의 정을 안으시고 그를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로 담화의 서두를 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생도 알고있는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외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민족의 화합을 이룩하는 문제이라고, 조국통일문제를 깊이 파고들어보면 그것이 우리 겨레의 운명에 관한 문제이며 나라와 민족의 생명에 관한 문제이라는것을 알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사람이 허리가 동강나면 살수 없는것과 같이 나라와 민족이 둘로 갈라지면 제대로 유지될수 없고 발전할수도 없으며 여러가지 고통과 재난을 면할수 없다고, 그것은 34년동안 우리 민족이 가슴아프게 체험하고있는 력사적사실이라고 간곡한 어조로 이야기하시였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의 본질과 분렬로 인하여 우리 민족이 겪고있는 불행과 고통을 명백하게 밝혀주시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윤이상선생은 생각이 깊어졌다.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며 하나의 강토에서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조선민족이 외세에 의하여 분렬의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온지도 어느덧 34년!

이 기간 우리 민족이 겪은 불행과 고통은 얼마였으며 이 수난의 력사를 끝장내고저 민족의 장한 아들딸들이 흘린 피는 또 그 얼마였던가!

이제 더는 민족의 분렬을 지속시켜서는 안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절절한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라와 민족의 분렬은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최대의 민족적비극입니다. 민족의 분렬은 반드시 종식되여야 하고 조국통일은 하루빨리 이룩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성업을 반드시 이룩하실 확고부동한 의지와 결심이 담겨진 그이의 말씀은 윤이상선생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하여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조국통일의 앞길에는 의연히 엄중한 난관이 가로놓여있다고 하시면서 나라의 통일을 가로막고있는 미국과 남조선괴뢰들의 책동에 대하여 까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미제는 우리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이고 통일을 가로막고있는 기본장애물이라고 하시면서 미국은 우리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려고 집요하게 책동해왔으며 오늘도 분렬책동을 계속하고있다고 준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몇달전에 있은 미국대통령 카터의 남조선행각을 실례로 드시였다.

1976년 2월 남조선에서의 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였던 카터는 1979년 6월말 남조선에 와서 박정희괴뢰정권과 공모하여 그 무슨 공동성명이라는것까지 발표하고 돌아가서는 남조선강점 미군철수계획을 동결시키겠다고 하였으며 미국정부는 남조선으로부터의 미지상군철수계획을 1981년까지 동결시킨다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우리 민족과 세계여론을 기만하면서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수를 떠들어대던 미제의 침략자적본색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국지배층은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두고있는 리유를 북과 남의 세력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것은 미군의 남조선강점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으며 실지로는 전략상 쏘련의 태평양진출과 중국,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것이라는데 대하여 명백하게 발가놓으시였다.

이어 우리 나라의 통일은 북과 남의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방법으로 실현하여야 하며 그러자면 남조선당국자들이 속에 품고있는 칼을 버려야 한다고 하신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3대원칙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7. 4공동성명과 조국통일5대방침이 발표되게 된 력사적경위, 북남사이의 합의를 뒤집어엎고 우리 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만들기 위하여 분렬주의적책동을 악랄하게 벌리고있는 남조선괴뢰도당의 반민족적죄행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나라의 영구분렬을 추구하고있는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검은 속심과 악랄한 《두개 조선》조작책동에 대하여 까밝혀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은 5천년의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하나의 민족이기때문에 반드시 통일되여야 한다고, 우리 나라는 절대로 강대국들의 희생물이 되여 두개 나라로 갈라질수 없다고 또다시 강조하시였다.

조국과 민족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숭고한 책임감이 맥맥히 흘러넘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윤이상선생은 이분이시야말로 조국통일과 민족의 륭성번영을 안아오실 통일의 구성, 절세의 위인이시라는것을 절감하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께서 평양에 온 외국의 여러 고위인사들과 손님들에게 설명해주신 조국통일에 관한 공화국의 정책과 로선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그는 조국통일운동의 지지자, 동정자대렬을 더욱 늘이고 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그이의 정력적인 활동과 로고에 가슴뜨거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이께서는 평양에 왔던 어느 한 국제기구의 고위급대표가 왜 남조선당국자들과 대화를 하지 않는가고 문의하였을 때 대화는 통일을 위한 대화를 하여야지 분렬을 위한 대화를 해서는 필요없다,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것처럼 남조선당국자들이 아래폭이 10m, 웃폭이 3m나 되는 콩크리트장벽을 분계선전역에 쌓고있는데 이것은 우리 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영원히 갈라놓자는것이다, 이런 형편에서 그들과 대화를 하여야 아무런 의의가 없지 않는가고 말씀해주시였었다. 그리고 도이췰란드사회통일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왔을 때에는 지금 유럽나라들이 동서도이췰란드가 통일되면 또다시 다른 나라들을 침략할수 있다고 하면서 영원히 두개 나라로 분렬되여있을것을 바라고있지만 우리 나라는 도이췰란드와 사정이 다르다는것, 우리 나라가 통일된다고 하여도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위협하는 일이 없을것이며 결코 중국, 쏘련이나 미국, 일본 같은 큰 나라들을 위협할수 없다는데 대하여 말씀해주시였다.

이러한 사실들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금은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해외동포들을 만나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통일된 후에 실시할 정책에 대하여 말해주고있는데 앞으로 적당한 시기에 가서는 그것을 통일강령으로 만들어 세상에 공포하려고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는 통일강령에서 남조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우리는 《남침》하지 않는다는것, 우리 나라는 통일된 후 완전히 자주적이고 중립적인 나라로서 그 어느 나라의 위성국으로도 되지 않을것이라는것, 우리 나라가 통일되여도 남조선의 현 사회제도를 그대로 두고 남조선에 투자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리권을 철저히 보호하여줄것이라는것, 통일된 우리 나라는 지난날 우리에 대하여 오해를 가지고 적대시정책을 실시하던 나라들과도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좋은 관계를 가질것이라는것을 밝히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또한 일본이 우리 나라와의 관계에서 과거문제를 옳게 처리하고 일방적인 봉쇄정책을 쓰지 않으며 평등과 호혜의 립장에 선다면 일본과 좋은 관계를 가질것이며 일본뿐아니라 미국과도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관계를 가지려고 한다는데 대하여서도 밝히시였다.

그이의 말씀들을 통하여 애국애족의 평화통일리념과 통일된 이후 우리 나라에서 실시할 정책을 알게 된 윤이상선생은 통일되고 부강한 우리 조국, 자주로 존엄높고 평화애호적인 통일조선의 찬란한 미래가 눈앞에 다가오는것만 같은 환희와 흥분으로 가슴이 세차게 설레이였다.

잠시 말씀을 끊으시고 흥분으로 상기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로선과 정책이 정당하기때문에 우리 나라에 왔다간 사람들은 한결같이 우리를 적극 지지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얼마전에 공화국을 방문하였던 타이왕국친선촉진대표단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였다.

이 대표단은 타이의 각당, 각파를 대표하는 당지도자들과 국회의원들로 무어진 큰 대표단이였다.

원래 타이는 지난 조선전쟁때 미제국주의자들에게 추종하면서 고용병을 파견하였던 나라로서 타이사람들은 미국반동들과 남조선괴뢰들의 일방적인 악선전만 듣다보니 공화국에 대한 옳바른 리해가 없었다.

그러나 공화국북반부땅에 발을 들여놓은 그들은 여러곳을 참관하는 과정에 대단히 감동되여 자기들은 아시아사람으로서 아시아에 조선과 같은 훌륭한 나라가 있는것을 커다란 긍지로 여긴다고 하였으며 얼마후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까지 받게 되였다.

타이의 대표단성원들을 몸소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네가 지난날 조선전쟁에 참가한것은 그때 형편에서 불가피한것이였고 또 그것은 과거의 일이기때문에 지금에 와서 그에 대하여 캐물으려 하지 않는다, 그대신 당신들은 우리 나라에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깊이 감동된 타이사람들은 자기네는 남조선에도 여러번 가보았는데 북조선과 비교하면 정말 대조적이라고 하면서 첫째로 북조선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주적인데 비하여 남조선은 외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있는 예속경제이며 둘째로 북조선은 모든것이 조직적으로 잘 째여있는데 비해 남조선은 서양풍이 들어오는통에 란장판이 되여 구역질이 날 지경이라고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하고 느낀 자기들의 소감을 말씀드리였다.

그러면서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들이 미국사람들을 설복하여 남조선에서 미군이 나가게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해설사업을 하여 조선을 통일하는데 도움을 주도록 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실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이 물론 어렵고 간고하지만 우리가 좀더 투쟁을 잘하면 얼마든지 통일위업을 실현할수 있다는것을 보여준다고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정력에 넘치신 모습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그이를 우러르며 윤이상선생은 온 세상 사람들이 열렬히 흠모하며 우러러따르는 탁월한 수령을 모신 조선민족의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뿌듯이 느끼였으며 민족의 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 자신의 한생을 다 바쳐나갈 불타는 결의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윤이상선생이 제기한 민족의 단결과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북남동포회의소집문제에 대하여서도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선생의 제의가 매우 좋은 발기라고 생각하면서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하시며 회의소집방법과 시기 등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도 주시였다.

자기의 미숙한 소견을 그처럼 중히 여기시고 그 방향과 방도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그는 기쁨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이러한 모습을 미더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은 간고하고 어렵지만 우리가 투쟁을 잘하면 얼마든지 실현할수 있다고 다시금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선생과 같이 민족분렬을 끝장내고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애국지사들이 있기때문에 조국통일위업은 반드시 앞당겨지리라고 확신합니다.》

또다시 받아안은 너무도 분에 넘치는 믿음과 치하에 윤이상선생의 가슴은 커다란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애국지사!

자신에게 안겨주신 이 고귀한 칭호에는 해외에 사는 조선사람으로서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한시도 잊지 말고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기를 바라시는 그이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담겨져있었다.

그는 자기에게 통일의 밝은 길을 가르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그 믿음을 영원히 간직하고 통일성업에 적은 힘이나마 다 바쳐갈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담화를 결속하시면서 우리모두가 힘을 합쳐 하루빨리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고 온 민족이 통일된 조국강토우에서 남부럽지 않게 잘살도록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후 서부도이췰란드로 돌아간 윤이상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사상과 방안들을 동포들속에 널리 선전하는 한편 음악가로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참답게 이바지하는 음악작품창작활동에 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나갔다.

그의 불타는 열정, 뜨거운 애국의 넋은 그대로 선률에 옮겨졌으며 분렬된 조국의 현실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을 주제로 한 음악작품들은 세계인민들속에서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지지하는 국제적련대성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나가는데 이바지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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