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수 없는 성장의 나날에

 

 

잊을수 없는 성장의 나날에

                                                 리 오 송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혁명의 1세로 높이 내세워주시며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로세대혁명가들속에는 어제날의 소년중대원들도 있다.

소년중대출신의 10대애숭이들로서 《꼬마》로, 《막내》로 불리우던 그들도 이제는 머리에 흰서리가 내리였다. 어린 나이에 총을 메고 광복성전에 떨쳐나섰던 그들은 혁명의 산아, 시대의 총아였다.

준엄한 항일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그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시였는가 하는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께서는 소년중대원들을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어 키우듯이 품에 안아 키우시였다고 감회깊은 회고의 말씀을 여러차례나 하시였다.

그 뜨거운 육친의 사랑은 가장 혁명적이며 원칙적인 동지적사랑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년중대출신의 나어린 대원들이라 하여 무원칙하게 두둔하거나 어루만지는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시였으며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고 엄격하게 통제하시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교양하고 이끄시여 혁명가로 키워주시였다.

그 가운데서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학습을 게을리하고 군중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던 나를 깨우쳐주시던 일이다.

아마도 륙과송, 쟈신즈전투후에 진행된 경축오락회때였다고 생각된다.

오락회가 한창 고조에 이르렀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는 지명하는 방법으로 노래를 부르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어서 그렇게 하자고,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호명하시면 좋겠다고 청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다면 자신께서 이름을 찍겠다고 하시면서 친히 한 대원을 호명하시였다.

호명당한 대원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친히 이름불러주신것이 기뻐서 제꺽 일어나더니 민요 《아리랑》을 건드러지게 불렀다.

제법 춤가락까지 섞어가면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하고 4절까지 구성지게 불러대는데 솜씨가 여간 아니였다.

대원들은 그런줄 몰랐더니 명창이라거니, 다시 보게 된다느니 하면서 재청을 하였다.

재청을 받은 대원은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님 날 보러 오시고도 안본척 하나》하는 경상도아리랑을 능청스레 불러서 요란한 박수를 받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함께 웃으시며 박수를 치시다가 이번에는 나도 재청한다고 하시면서 노래대신 승전경축연설을 한번 해보라고 하시였다.

그러자 그 대원은 금시 기가 죽어서 울상을 하더니《사령관동지, 연설대신에 아리랑을 한곡조 더 불러드리겠습니다.》하고는 《신재령처녀는 일솜씨 좋구요 봉산 큰애긴 마음곱네》하는 《서도아리랑》을 흥겹게 불러댔다. 양산도장단의 노래가락에 맞추어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놀아대는것이 얼마나 우습던지 폭소가 터졌다.

그러거나말거나 그 능청스러운 친구는 《단천아리랑》, 《진도아리랑》에 이어 《긴아리랑》, 《영천아리랑》, 《밀양아리랑》을 연거퍼 불러 더욱 절찬을 받았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두아리랑명창》에 이어 다른 대원들도 지명을 하였는데 알고보니 신통히도 연설을 잘하지 못하는 《쭐난이》들이였다.

그제서야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선동연설을 잘하지 못해서 《실적》이 낮은 대원들만 골라서 지명하신다는것을 알고 가슴을 조이였다.

전투가 끝난 후 입대선동을 잘해서 《실적》을 낸 대원들은 한사람도 지명당하지 않았던것이다. 그렇게 되니 은근히 나도 한번 이름을 불리웠으면 하던 소망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사령관동지께서 내 이름을 부르시면 어쩌나 하는 근심만 커졌다. 나도 《실적》이 《령》이였던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이번에는 오송이의 노래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으나 용기를 내여 《유격대행진곡》을 씩씩하게 불렀다.

그날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몸가까이 불러앉히시고 오늘 노래를 부른 소감이 어떤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자책감을 금할수 없어 고개를 숙이였다.

그러는 나를 이윽토록 지켜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따뜻한 어조로 타일러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보라. 선전사업을 잘할줄 모르면 이래저래 손해를 본다. 입대선동을 잘한 동무들은 표창을 받았는데 오송이는 지명당해서 노래를 부르는 《벌》을 받았으니 이게 손해가 아닌가.

그러시면서 호탕하게 웃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왜 이런 손해를 보는가, 몰라서 손해를 본다, 학습을 하찮은 일로 여기면서 공부를 하지 않으니 그럴수밖에 없다, 알지 못하고서는 말을 잘할수 없으며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연설을 할수 없다, 제코도 씻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코를 씻어주겠는가, 소경이라는게 눈이 멀어서만 소경인것이 아니다. 눈을 떠도 보지 못하면 눈뜬 소경이라고 하지 않는가, 공부를 하지 않고 알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눈뜬 소경이요, 청맹과니이다라고 하시면서 때문에 아무리 어려운 환경과 조건에서도 아는게 힘이요, 광명이며 모르는게 수치고 암흑이라는것을 잊지 말고 부지런히 배워야 한다, 그래야 선동연설도 잘할수 있고 훌륭한 혁명가로 자라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뜨거운 사랑을 안으시고 한마디한마디 절절하게 깨우쳐주시는 그이의 말씀에 나는 자책의 눈물을 흘리였다.

나는 자신을 꾸준히 수양하여 다시는 그이께 걱정과 부담을 끼쳐드리지 않으리라 맹세도 새롭게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어린 대원들이 이처럼 스스로 잘못된 점을 깨닫고 고치도록 자극을 주시고 타일러주시였을뿐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엄하게 책망도 하시였다.

언제인가 사령부에 위증민이 손님으로 다녀간 후였다.

사령부천막을 정돈하던 나는 고급담배 몇가치가 떨어져있는것을 보고 호주머니에 넣었다. 나어린 대원들은 담배를 피우지 않게 되여있었지만 담배에 은근히 호기심이 동하여 몇모금 피워본적이 있던 나는 고급담배를 보자 그냥 두게 되지 않았던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으로 되는가 하는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는 《횡재》를 한 《기쁨》을 안고 쪽잠까지 들었다.

저도모르게 단잠이 들었던 나는 인기척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령부천막에 들어서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힘든 모양이라고 하시며 좀더 쉬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던 그이께서는 문득 나를 엄하게 바라보시며 그렇게도 담배를 피우고싶은가, 정 피우고싶으면 어서 피우라고 하시였다.

《전… 담배를 피울줄 모릅니다.》

《그런것 같지도 않더구만. 내가 다 아는데…》

그 말씀에 군복 웃주머니를 내려다보니 담배가치들이 삐죽이 내밀려있었다. 나는 기가 질려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가슴이 활랑거리면서 숨이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려 서있기도 힘들었다.

내가 장난삼아 담배를 피워본것도 다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였던것이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얼굴색이 꺼멓게 된 나를 이윽토록 지켜보시다가 조용하나 엄한 어조로 담배를 피울수도 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지 않도록 결정한 조직의 규률을 위반하는것은 매우 옳지 못하다, 더구나 동무는 사령부의 전령병이 아닌가, 사령관과 한가마밥을 먹으면서 사령관도 모르게 뭘 하려고 해서야 되겠는가. 혁명가가 되자면 규률을 지킬줄 알아야 하며 동지들앞에서 솔직해야 한다, 마음속에 동지들 모르게 딴 주머니를 차고있으면 그런 사람은 혁명가가 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무는 이번에 자기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조직앞에서 자기비판을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규률을 지키는데서 중요한것은 규률이 왜 필요한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고 규률을 자각적으로 지키는것이다, 규률이 왜 필요한가, 규률은 혁명군대의 생사존망을 좌우하는 관건적문제이며 동지적단결의 담보로 된다, 규률이 없이 혁명군대를 유지할수 없고 동지적단결을 이룩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하늘에 나는 기러기떼를 생각해보라고 하시면서 기러기떼는 언제나 일정한 대형을 지어서 질서있게 날아간다, 그래야 서로 도움을 받으면서 먼곳까지 헐하게 날아갈수 있기때문이다, 날짐승들도 그렇게 대형을 짓고 질서있게 날아다니는데 하물며 혁명군대에 규률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강철같은 규률이 없이는 혁명군대가 존재할수 없고 원쑤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수도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깨우쳐주시면서 자기비판준비를 잘해야겠다고 거듭 이르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나는 회의에서 자기 비판을 하고 규률생활을 잘하기 위하여 이악하게 노력하였다.

이렇듯 은혜로운 품속에서 다심한 가르치심을 받고 때로는 꾸지람도 들으면서 성장하던 그 잊을수 없는 나날에는 《비판없는 비판》을 받고 모대기다가 그이께 비판해주실것을 청드리러 찾아갔던 유난스러운 일도 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꼬마》들을 어엿한 혁명가로 키우시기 위하여 얼마나 깊이 마음쓰시였는가, 그 사랑이 얼마나 다심하고 자애깊은것이였는가를 보여주는 사연깊은 이야기이다.

…언제인가 내가 새로 이동하여간 10련대에 사령부의 통신을 전달할데 대한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되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부르시여 친히 임무를 주시면서 갈 때는 어느 길로 어떻게 가고 돌아올 때는 어디로 해서 어떻게 오라고 구체적으로 일러주시였다.

그런데 나는 얼마 멀지 않은 곳이고 또 이전에 한번 가본 곳이라 해서 제멋대로 지름길에 들어섰다가 길을 잃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헤덤비다가 늦어지게 되였다.

나는 이 일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단단히 책망하시리라 생각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였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나도 그이께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쁘시여서 그러시는것이 아닐가, 혹시 잊으신것이나 아닐가 하는 생각도 하였지만 그럴수는 없는 일이였다. 이래저래 나는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자꾸만 실책을 범하니 그이께서 노하시여 이제는 나를 아예 구실못할 철부지로 생각하시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였다.

그때 얼마나 서운했던지 모른다. 한편 나는 그때에 동지적비판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가슴저리게 체험하게 되였다.

나는 더 참을수가 없어 그이를 찾아뵈옵고 나의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사령관동지, 과오를 범하고도 비판을 못받으니 정말 괴롭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씀드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웃으시면서 그래, 그렇단말이지 하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나는 오송이가 이렇게 찾아올줄 알았다, 그래서 일부러 비판을 하지 않았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것도 비판의 한가지 방법이라고 하시면서 이번에 동무는 스스로 자기를 검토하면서 동지들의 비판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가슴깊이 느꼈을것이다, 그렇다, 혁명동지들사이에서 비판은 곧 사랑이고 믿음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매가 사랑이라고 하면서 귀한 자식일수록 매로 키우라고 하였다. 혁명대오에서는 부모들의 그 매를 대신하는것이 동지적비판이다, 동지적비판을 떠난 동지적사랑이란 있을수 없다, 동무가 이번에 이것을 깨닫고 비판해달라고 스스로 찾아온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혁명가는 그래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나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비판을 받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앞으로 생활을 잘해서 모범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며 또 동지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비판해줄줄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동지를 도와주고 위해주는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나니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구쳐올랐다.…

《소년중대원》들은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뜨겁고도 원칙적인 사랑속에서 그이의 참된 혁명전사로 자라났고 오늘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혁명의 1세로, 로혁명가로 떠받들리며 크나큰 행복과 영광을 누리게 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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