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을 도와주시여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을 도와주시여

                                                 홍  범

 

항일혁명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성원하시여 중국인민의 항일전쟁승리에 불멸의 공헌을 하시였다.

그가운데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1차 북만원정을 단행하시여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에게 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시고 적극적인 공동투쟁으로 북만의 광활한 땅에 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리신 1934년 겨울의 일들을 나는 언제나 잊을수 없다.

 

 

팔도하자의 어느 한 산막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제1차 북만원정을 떠나실 때 주보중의 편지를 받으신 사연깊은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제휴와 공동투쟁을 위하여 팔도하자의 이름없는 산막에서 북만유격대 지휘관 주보중을 만나시고 북만에서의 혁명투쟁의 앞길을 밝혀주신 의의깊은 사실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것은 1차북만원정에 참가했던 사람들, 더우기는 사령부측근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의 태반이 희생되였기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그때 하모니카를 잘 분덕에 사령부가 직접 관할하는 정치공작조에서 활동하였으므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보중과 사업하신데 대하여 많은것을 알게 되였다.

우리 원정대가 횡도하자전투를 치르고 옥량하, 이도하자를 거쳐 팔도하자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녕안치고는 팔도하자가 그중 혁명화된 고장이기때문에 여기 어디에 주보중동무네가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빨리 그를 찾아야겠다고 하시였다.

그리하여 여러 방향으로 정찰조가 파견되게 되였다.

나도 정찰조에 망라되였는데 며칠 다녀보니 팔도하자골짜기가 보통 깊지 않았다.

주민들의 말이 골깊이가 80~100리 잘된다고 하였다. 그 골안에 크고작은 부락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우리는 그 골안 막바지의 어느 한 산막에서 주보중네를 찾았다.

주보중은 20~30명의 대원들을 데리고있으면서 병치료를 하고있었다.

주보중은 후날 항일련군 5군 군장을 거쳐 동북해방때는 동북민주련군 부총사령까지 하였지만 당시는 갓 조직된 녕안유격대의 한 지휘관으로서 고충이 많았다. 그는 만주성당 산하의 길동국에서 사업하다가 길동국이 해산되고 수녕중심현위가 조직되면서 군사부를 책임지고 북만에 파견된 견실한 혁명가였다.

그는 동만에서 북만으로 올 때 데리고 온 20명가량의 반일병사들을 밑천으로 무장대오를 늘이는 동시에 평남양부대와 통합하여 유격대를 조직하였다. 그는 평남양을 대장으로 선출하고 자기는 군사책임을 맡았으나 녕안유격대의 실제적인 지휘관은 주보중자신이였다.

그는 일찌기 동만에 있을 때 벌써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중국사람들은 예로부터 세상에서 뛰여난 사람들을 일러 건곤(우주를 말함)을 머리에 인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말의 참뜻이 이제야 리해되는듯싶었습니다. …그분은 세상에 둘도 없는 건곤, 영웅호걸이며 미남이라는 인상을 참으로 강하게 받았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 수령님을 무한히 흠모하였으며 그이께서 몸소 지휘하신 라자구전투에도 참가한 사람이였다.

주보중은 그 라자구전투때 적의 박격포탄파편에 입은 부상자리가 낫지 않아서 치료를 받고있는것이였다. 그러면서도 북만에서의 혁명투쟁과 녕안유격대의 장래가 걱정되여 위대한 수령님께 방조를 요청하는 서신을 띄웠던것이다.

이런 사연이 있어 북만에 오시는 길로 주보중을 찾으시다가 마침내 그의 거처를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그가 있는 곳으로 원정대를 이끄시였다.

그때가 1934년 11월상순이였다.

주보중은 지팽이를 짚고 대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밀영어귀에까지 나와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하였다.

그는 감격을 금치 못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두손을 잡고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 무척 기다렸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예까지 오느라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습니까.》

그리고는 지팽이를 쥔 손을 들었다놓으면서 보시다싶이 내 신세는 아직 이렇다고, 많이 도와달라고 허물없이 청을 드리였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여 정말 기쁘다고 한 말을 곱씹어하면서 인사말도 하고 또 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으면 저리도 기뻐하랴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뜨거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작이 자유스럽지 못한 주보중을 부축하여주시면서 라자구전투때 부상당한것이 아직 낫지 않았는가고, 그 몸으로 무장대오를 꾸리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따뜻하게 말씀하시였다.

그날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보중의 산막에 함께 계시면서 원정기간 공동투쟁을 벌리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토의하시였다.

주보중이 먼저 위대한 수령님께 북만의 실정, 특히는 녕안일대의 형편을 상세하게 말씀드리였다.

그는 먼저 유격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확대하며 무장투쟁을 강화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난관과 애로에 대하여 말씀드리고 형편은 어려운데 자기마저 운신 못하는 몸이다보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고, 그래서 동만의 형편이 어려운줄 알면서도 김일성동지께 방조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였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동만의 형편이 어려운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중국인민들, 중국공산주의자들과의 단결을 귀중히 여기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에게는 북만이 생소한 고장이므로 앞으로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만의 실정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주보중은 자기는 김일성동지께 북만을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내고서도 김일성동지께서 지금쯤은 조선의 국경연안으로 나가시지나 않았겠는지 걱정되여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었다고 하면서 이렇게 와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의 말대로 동만의 형편이 어렵고 복잡했던것은 사실이였다.

당시 동만의 유격근거지들은 적들의 《위공》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하기공세앞에서 쓴맛을 본 일제는 이른바 《장기특별치안공작》이라는것을 내놓고 《보보점령》, 지구전의 방법으로 기어이 《위공》기도를 실현해보려고 꾀하며 발악적으로 책동하고있었다.

적의 《위공작전》에 못지 않게 위험한것은 간도전역에서 극좌적으로 벌어지고있던 반《민생단》투쟁이였다. 이 투쟁은 애초에 설정했던 과제와는 달리 그것이 야심가들과 탐위분자들, 민족배타주의자들,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불순한 정치적목적에 리용됨으로써 혁명대오를 내부로부터 분렬와해시키고 유격근거지의 존립을 위협하는 엄중한 결과를 빚어내고있었다.

더우기 엄중한것은 반《민생단》투쟁의 예봉이 조선사람, 그것도 당과 군대, 대중단체의 책임적지위에서 사업하던 핵심간부들과 정수분자들에게로 돌려지고있는 사실이였다.

이런 실정을 잘 아는 주보중이 부득이 방조를 요청하고서도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앞에서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 어쩔바를 몰라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환히 웃으시며 주보중동지의 생각이 아주 빗나간것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보중동지도 중국혁명에 대하여 잊은적이 없을것이지만 조선공산주의자들도 조선혁명에 대하여 한시도 잊은적이 없습니다. 자기 조국과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나라 혁명을 위해 투쟁하는것은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신성한 의무이며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미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을 내놓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고있습니다.

우리는 매개 나라 공산주의자들이 자기 나라 혁명을 잘하는것으로써 세계혁명에도 참답게 이바지하여야 한다는것을 시종일관 확고히 주장하고있습니다.

우리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우리 인민자신의 힘으로 조선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결심입니다.

이러한 립장은 절대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 배되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지난 시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충실할것이라고, 우리는 북만의 유격대들이 급속히 확대강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있으며 모든 힘을 다하여 힘껏 도울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만과 북만의 유격부대들이 앞으로 련합작전을 크게 벌려나간다면 적들의 그 어떤 책동도 쉽게 격파해버릴수 있을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주보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조선혁명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들을 절대지지찬성한다고 하면서 이번 기회에 녕안유격대를 많이 도와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사실 녕안유격대는 형편이 말이 아니였다.

녕안에 유격대가 처음 조직된것은 1932년이였지만 일제의 《토벌》공세로 몇번이나 곤경을 겪다나니 유격대의 존재자체를 일관하게 유지해오지 못하다가 그즈음에 다시 통합부대를 무은 관계로 째이지 못하고 무장도 빈약하였으며 대원들의 의식수준도 높지 못하였다.

주보중은 이런 실정을 말씀드리면서 군사에 생소한 자기로서는 아는것보다도 모르는것이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정말 많다고, 그러니 이번 기회에 조선인민혁명군의 건설경험, 투쟁경험과 전략전술에 대해서 많이 배워달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청을 기꺼이 받아주시면서 유격전의 기본원칙과 전략전술, 전투조법과 그 실천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북만은 동만과 실정이 다르다, 동만은 주민구성으로 볼 때 조선사람이 많고 그가운데서도 함경도출신들이 많다면 북만은 조선사람이 적고 함경도출신보다 경상도출신들이 많다, 또 북만은 동만보다 인민들의 혁명열의가 높지 못하다, 자연지리적으로 볼 때도 로야령을 분수령으로 하는 동만, 북만은 엄연히 구별된다, 로야령남쪽지대에는 산악이 병풍처럼 중중첩첩한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다면 로야령북쪽지대에는 조선의 호남지방에서나 볼수 있는 일망무제의 대평원들이 많다, 적아력량관계도 같지 않다고 강조하시면서 유격전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의 투쟁에서는 이러한 실정과 조건에 맞게 싸우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북만의 중국동지들이 이러한 현실적요구에 맞게 기병대를 적극 리용하면서 일행천리의 류동전, 기동전을 벌리는것은 지극히 당연한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경험에 의하면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렬세한 력량으로 우세한 적들과 싸워이겨야 하는 유격전에서는 그 형식이 어떻든간에 유인전, 매복전, 습격전과 같은 기본전법들을 잘 활용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시였다.

유격대는 또한 그 행동상 특성에 맞게 조우전, 척후전에 항상 준비되여있어야 하며 이쪽저쪽 동시에 타격하는 전술,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치는 전술, 적들끼리 싸우게 하는 전술 등 다양한 전술적수법들을 능란하게 활용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래야만 적을 피동에 몰아넣고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쥘수 있다고, 이번에 손잡고 같이 싸우면서 실천을 통하여 서로 많이 배우자고 말씀하시였다.

주보중은 김일성동지의 말씀을 들으니 앞이 환히 열린다고 하면서 전술, 전법이 다양하지 못하고 류동전, 기동전만 하면서 유인전, 매복전, 습격전과 같은 유격전의 기본전법들을 옳게 적용하지 못한것은 자기들의 큰 실책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팔도하자의 이름없는 산막에서 뜻깊은 담화가 계속되던 어느날 주보중은 반일부대문제를 화제에 올리였다.

당시 녕안유격대는 반일부대들과의 관계가 여의치 못했다.

그것은 통합부대의 대장으로 된 평남양이 주보중과 부대를 통합하기 이전에 일으킨 점중화사건때문이였다.

점중화사건은 왕청의 관부대사건과 비슷한것으로서 평남양이 반일부대인 점중화부대의 무장을 빼앗은 사건이였다.

평남양은 본시 이름이 리형박이였다. 그런데 일본놈들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여있던 녕안의 남쪽지역을 평정한다는 의미에서 자기 부대에 평남양이라는 별칭을 달았다. 그렇게 되여 그의 부대는 평남양부대로, 그자신도 리형박이라는 본명대신 평남양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이 평남양부대에서 반변자들이 생겨 그자들이 부대장 평남양과 그 심복들에게 술을 먹이고는 무장을 뺏아가지고 도주하였다.

빈털터리신세가 된 리형박은 점중화부대의 무장을 탈취하여 자기 부대를 무장시키고 얼마후에는 주보중의 유격대와 통합부대를 편성하였던것이다.

이렇게 되자 주변의 반일부대들이 평남양부대를 받아들인 녕안유격대를 적으로 선포하고 대결자세로 나왔다.

당시 녕안일대에는 채세영, 강애민 등을 대장으로 하는 군소반일부대들이 많았다. 이들이 유격대를 적대시하게 되니 녕안유격대는 손발을 묶인셈이 되였다.

주보중은 이 반일부대문제가 제일 큰 골치거리인데 김일성동지께서 이 문제도 꼭 해결해주셔야겠다고 하면서 부대장인 평남양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그 믿음은 고맙지만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나는 우사령과 오사령을 설복한 김일성동지의 특출한 감화력을 믿을뿐이요.》

동경성 서쪽 북호두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대평, 사계호, 점중화, 인의협 등은 다 한때 평남양과 손을 잡았다가 갈라진 반일부대들이였다. 이 부대들이 공산주의자들에 대해 적의를 품고있는데다가 정안군이 귀순까지 권고하며 쐐기를 치고있어 그 장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형편이였다.

동경성 서북쪽에 있는 쌍산, 중양 등의 반일부대들중에서 그중 세력이 강한 강애민부대도 일본군 13려단의 《토벌》에 혼쌀난 다음부터는 동요하고있었다. 마창부근에 있는 채세영부대도 활동이 그전만 못하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는 주보중에게 반일부대와의 사업이 어려운것만은 사실이지만 마음먹고 달라붙으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반일부대와의 사업경험을 상세히 말씀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한 때로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반일부대와의 사업을 중요시해왔다, 그 과정에는 가슴아픈 희생도 많았지만 진지하게 노력한 결과 그들과의 반일련합전선을 끝끝내 실현하였다고 하시면서 반일부대와의 사업에서 견지한 원칙적문제들을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인민혁명군의 위력을 강화하는것을 선결조건으로 하면서 반일부대와의 사업을 진행하는 원칙, 하층통일전선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튼튼히 의거하여 상층통일전선을 실현하는 원칙, 부분적인 련합으로부터 전면적인 련합에로, 낮은 형태의 공동투쟁으로부터 높은 형태의 공동투쟁에로 발전시켜나가는 원칙, 반일부대들이 항일구국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며 인민의 생명, 재산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원칙 등 반일부대와의 사업에서 관건적고리로 되는 일련의 문제들을 실례를 드시며 생동하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이런 원칙에서 지난 기간 수많은 유능한 정치공작원들을 반일부대들에 파견하여 활동하게 함으로써 성과를 거두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북만의 실정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영향력있고 경향이 좋은 부대들부터 장악하고 전취하는 방법으로 한대상씩 련합을 실현해나간다면 능히 반일련합전선을 실현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전부터 련계가 있는 어느 한 반일부대를 지적하시면서 먼저 이 반일부대와 사업해보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주보중은 그이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문제는 그렇게 하기로 하되 이 사업을 이번의 공동투쟁에서 같이 해보는것이 어떤가고, 북만의 어느 부대를 이 사업에 인입하겠는가고 의견을 물으시였다.

주보중은 녕안유격대의 일부 력량을 뚝 떼서 맡기겠으니 유격전법도 배워주고 반일부대와의 사업방법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이렇게 합의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라자구에서 오의성과 사업하실 때 《반일부대련합판사처》를 조직하여 성과를 거둔 사실을 이야기하시면서 《동북반일련합군판사처》를 내오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주보중은 그이께서 내놓으신 이 제안도 적극 찬성하면서 김일성동지께서 반일부대와의 사업도 맡아주시였으니 큰 시름을 덜게 되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사업, 특히는 북만의 광범한 인민들을 혁명적으로 교양각성시키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에서 제기되는 애로를 말씀드리였다.

그는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동만사람들의 시점으로 보면 녕안은 혁명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무풍지대나 다름없소. 대중의 기세가 왜 이다지도 저조한지 모르겠소. 혁명에 궐기하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인민들이 곁을 주지 않는단말이요. 이 고장농민들의 동향이 어떤지 아시오? 지주가 못살게 굴어도 자기들은 얼마든지 살 도리가 있다는거요. 산중에 가면 흔한것이 땅이요, 그 땅을 일구면 생계도 유지할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피를 흘리며 고생하겠는가 하는거요. 국민의 관점으로 보면 땅이 넓은것이 흐뭇한 일이겠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이 계급의식을 무디게 하는 장애로 되고있으니 우리로서는 북만주에 토지가 많은것을 자랑해야 할지 한탄해야 할지 알수 없는 형편이요.》

그가 어찌나 바쁜소리를 하는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시였다.

《허허, 땅이 많은것이야 4억이나 되는 중화민족을 위해서 다행한 일이지.》

그러시면서 당, 대중정치사업에서 어떤 문제를 풀어야 북만인민들을 빨리 교양각성시킬수 있겠는가, 그 방도가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였다.

당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튼튼히 꾸리고 광범한 대중을 조직에 인입시켜 혁명적으로 교양단련하는 문제, 대중정치사업을 계층별 특성에 맞게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는 문제, 특히 반일대중교양사업을 힘있게 벌리며 적들의 반공악선전을 짓부시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는 문제, 유격대와 혁명가들이 인민적사업방법을 확립하는 문제 등…

그제서야 주보중도 유쾌하게 웃으면서 혁명의 만리앞길이 이제야 환히 내다보이는것 같다고 격정을 토로하였다.

주보중은 이날의 감격스럽던 일을 잊지 못해하면서 후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과연 이런 사람을 일러 〈한번 웃어 세상을 감동시키고 한번 호령하여 세상악을 일소한다.〉고 하는것이 아니랴!

만주에서의 항일혁명은 실로 김일성장군의 존함과 떼여놓고 말할수 없다.》

주보중의 산막에 와있다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 국제공산당 만주특파원 오평도 우리 수령님의 예지와 선견지명에 경탄을 금치 못하면서 북만혁명이 은인을 만나 새출발을 하게 되였다고 기뻐하였다.

이렇듯 팔도하자의 이름없는 산막에 여러날 계시면서 무장투쟁과 반일련합전선사업, 당, 대중정치사업 등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이 안고있던 어렵고 복잡한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정대와 북만유격대의 한 대오를 거느리시고 산막을 떠나실 때에도 주보중에게 다시금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각성시키고 동원시키는것만이 북만혁명을 침체상태에서 건져낼수 있다, 그러자면 인민들속에 들어가서 정치사업을 해야 하며 동시에 유격대의 군사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무장대오란 투쟁속에서 커가는 법이며 혁명도 싸움속에서만 성장해갈수 있는것이다, 싸움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군사활동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반일부대들과의 관계도 적대관계로부터 동맹관계로 전환시킬수 없고 점중화사건으로 하여 저락된 평남양의 영상도 개선할수 없다고 조언을 주시였다.

주보중은 김일성동지께서 주신 고견을 잊지 않겠다고 하면서 지팽이를 짚고 멀리까지 따라나와 그이를 바래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력사적인 제1차 북만원정을 단행하시고 주보중을 비롯한 중국공산주의자들과 상봉하신것은 조중인민공동의 항일전쟁사에서 새로운 장을 장식하는 하나의 사변이였다.

이 상봉을 시발점으로 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은 중국공산주의자들이 령솔하는 유격부대들과의 전면적인 공동투쟁의 길에 들어섰다.

 

경박호반전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팔도하자에서의 사업을 마치신 후 원정대와 북만유격부대의 일부 대오를 거느리시고 녕안, 액목의 넓은 지역으로 진출하시여 대중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시는 동시에 소구보위단습격전투, 경박호반전투 등 여러차례의 련합작전을 현명하게 조직령도하심으로써 북만의 광활한 지역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북만의 유격부대들에 혁명적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채세영부대를 비롯한 여러 반일부대들과 련합하여 진행한 삼도하자전투, 마창전투 등 수많은 전투들을 빛나는 승리에로 이끄시여 북만땅에서 반일련합전선을 확고히 실현하시였다.

나는 그 많은 전투들가운데서 내가 직접 체험하였던 경박호반전투에 대하여 여기에 적는다.

경박호반전투는 조중공산주의자들이 힘을 합쳐 진행한 북만에서의 첫 전투로서 북만의 중국공산주의자들을 고무하고 북만의 광활한 지역에 혁명의 씨앗을 뿌리기 위한 원정의 목적을 달성하는데서 돌파구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전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북만의 녕안땅 팔도하자의 어느 한 산막에서 녕안유격대의 조직자이며 통솔자인 주보중을 만나신 후 원정대와 함께 녕안유격대의 일부 력량을 거느리시고 경박호반의 석두하마을로 진출하신 1934년 l1월중순 어느날이였다.

수백명의 적들이 북호두쪽에서 밀려오고있다는 적정자료가 사령부에 보고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정찰조를 파견하시여 적들의 기동방향을 확정하도록 하시였다.

정찰조의 보고에 의하면 일제침략군 200여명이 원정대의 앞길을 차단하기 위하여 원정대가 차지한 반대쪽 경박호대안을 따라 기동하고있으며 석두하로 진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가 림박한 정황을 통찰하시고 원정대의 중대장들과 북만유격대의 지휘관을 부르시였다.

그때 우리 원정대에는 왕청, 연길, 훈춘 련대들에서 선발된 3개 중대 력량에 북만유격대 1개 소대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보중과 담화하실 때 우리는 북만의 유격부대들이 급속히 확대강화되기를 바라고있다고, 동만과 북만의 유격부대들이 힘을 합쳐 련합작전을 벌려나간다면 적들의 그 어떤 책동도 쉽게 격파해버릴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었다.

이제 석두하의 경박호반에서 있게 될 전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조중공산주의자들의 형제적우의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위력을 시위하는 의의깊은 공동투쟁으로 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휘관회의에서 원정대의 중대장들과 북만유격부대의 지휘관에게 적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고 각자가 조성된 정황에 맞게 결심을 채택하고 작전안을 내놓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북만유격대 지휘관에게 생각하고있는것을 말해보라고 하시였다. 북만유격대의 자립성을 키워주고 유격전법을 익혀주시려는 의도에서 하시는 말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며칠전에 소구라는 곳에서 있은 보위단놈들과의 싸움때에 북만의 유격부대성원들을 기본으로 습격대를 무어주신것도 바로 그러한 의도로부터 취하신 조치였다.

북만유격부대 지휘관은 그이의 이렇듯 다심한 처사에 감동을 금치 못하면서 자기 생각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린 안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일본놈들인것만큼 신속히 빠져나가자는것이였다. 그것은 일본놈들이나 정안군만 만나면 싸움을 회피하던 종래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피동적인 안이였다.

다른 하나의 안은 적들이 경박호를 건너오기 전에 맞받아나가 치자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만유격대 지휘관이 제기한 의견들을 다 들으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가 제기된 의견들이 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첫째안은 우리의 공동의 투쟁목적과 전략전술적원칙에 맞지 않는다, 또 공격해오는 적을 멀리까지 맞받아나가 치자고 하면 우리의 행동이 먼저 로출될수도 있고 시간상 여유도 없으므로 둘째안도 적합치 않다, 내 생각에는 적들의 기도와 경박호일대의 지형조건으로 보아 적들을 경박호의 얼음판에서 소멸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방안은 참으로 명안이였다. 경박호기슭의 고지에 매복해있다가 얼음판우에 나타난 적들을 불의에 타격한다면 적들은 몸을 숨길 곳도 없는 곳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녹아나고말것이였다.

지휘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작전안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구체적인 전투조직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원정대의 주력과 북만유격대원들이 경박호기슭의 무명고지 서쪽돌출부에 매복진을 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적의 증원부대가 올수 있는 동경성-남호두도로방향에 방차대를 배치하시였다.

이렇게 면밀한 전투조직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가 벌어질 경박호얼음판과 부대들의 매복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무명고지 서쪽 높은 릉선에 지휘처를 정하시였다.

거기는 적의 집중사격을 받을수 있는 위험한 곳이였다. 우리는 물론 북만유격대 지휘관도 위대한 수령님께 지휘처를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고 한결같이 청을 드렸으나 그이께서는 결심을 철회하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지휘관들을 거느리시고 현지로 나가시여 진지굴설작업을 친히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땅을 까내느라 안깐힘을 쓰는 대원들을 보시고 얼어붙은 땅을 어떻게 파제끼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런 때는 얼음포대와 눈전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얼음포대?!》

영문을 몰라 마주 바라보고있는 북만의 지휘관과 대원들을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추운날에는 땅을 파는것보다 얼음포대를 쌓는것이 빠르기도 하고 실용성도 있다고 하시면서 그 방법을 알려주시였다.

방법은 아주 단순했는데 눈을 다져 흉벽을 쌓고 그우에 물을 뿌리면 되였다.

얼마 안되여 견고한 얼음포대들이 줄지어 생겨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으로 전호를 만들면 능히 총탄을 막을수 있다고 하시며 얼음포대와 얼음포대사이를 눈전호로 련결하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런 방법은 시간이 급할 때 눈이 많은 지역에서 효과적이라고 하시면서 북만유격부대 지휘관에게 앞으로 널리 활용할수 있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기묘하고 튼튼한 진지를 만들고 감쪽같이 매복한 우리들은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추고 적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직 새벽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무연한 경박호의 얼음판우로 눈보라가 갈기를 날리며 휘몰아쳤다. 중국 동북지방의 흑룡강성 남부와 길림성간의 경계지방에 있는 경박호는 바다처럼 넓어 맞은켠기슭이 겨우 보이는가 하면 강처럼 길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길이가 50km나 되고 넓은 곳은 너비가 10리도 더 된다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 드넓은 얼음판을 한눈으로 굽어보며 북호두쪽에서 나타나게 될 적들을 일격에 소멸할 통쾌한 섬멸전을 그려보는 우리의 가슴은 멸적의 투지로 세차게 들먹였다.

어느덧 날이 밝아 해가 솟아올랐다. 그러나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북만유격대원들은 지루한 나머지 놈들을 욕질하며 술렁대기 시작하였다.

북만의 강추위속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장시간 기다린다는것은 매복전에 익숙된 우리로서도 쉽지 않았다. 하물며 많은 경우 말을 타고 수백리씩 류동하면서 장거리기동전을 기본으로 해온 북만의 유격대원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복전에서는 전투조직도 중요하지만 강의한 인내력을 발휘하며 최대의 은밀성을 보장하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고무하시였다.

해가 퍼그나 떠올라서야 어디서 뜨뜻하게 잠을 잔듯한 놈들의 대렬이 어기적어기적 경박호대안에 나타났다. 놈들은 몇개 종대로 나뉘여 얼음을 타고 경박호를 건느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음판인지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어물거리더니 종대가 흐트러지고 밀집되여 대렬은 몇개 덩어리로 갈라지고말았다. 그 혼란된 몰골이 총을 겨누지 않고도 모조리 잡을수 있으리만큼 한눈에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점을 타산하시고 령활한 전투계획을 세우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목표가 명백히 드러나고 직접 조준사격을 할수 있는 거리에까지 적들이 접근하였을 때 총성으로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순간 멸적의 총탄이 얼음판의 적들에게 우박처럼 들씌워졌다. 수백정의 보총과 여러정의 기관총으로 조겨대는 몰사격에 적들은 총 한번 변변히 쏘아보지 못하고 얼음판에서 삼대처럼 쓰러졌다. 가관인것은 얼음판에 총탄이 들어박힐 때마다 크고작은 얼음파편들이 튀여나며 해빛에 번쩍이는 예리한 비수가 되여 적들의 상판에 날아가 박히는것이였다.

얼음판우에는 비발치듯하는 총탄과 얼음파편으로 물갈기가 날리는듯 뽀얗게 안개가 피여올랐다.

그 경황없는 틈에도 앞에 있던 놈들은 기슭에 올라붙었으나 우리가 다져놓은 얼음비탈에 미끄러져 허우적거리며 나자빠졌다. 얼음판의 황소마냥 허겁지겁하면서도 자빠진 제놈들의 시체에 의지하여 저항하는 놈들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이 쏘아대는 총알은 눈전호, 얼음포대때문에 맥을 추지 못했다. 우리는 맹렬한 집중사격을 련속 들이대여 놈들을 한놈도 기슭에 올려놓지 않고 모조리 소멸하였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북만출격소식을 듣고 북호두를 떠나 달려온 200여명의 일제《토벌대》놈들을 석두하의 경박호얼음판우에서 모조리 소멸하고 3정의 기관총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를 로획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경박호반전투의 승리는 조중인민의 항일공동투쟁의 빛나는 승리입니다.

우리는 이번 전투를 통하여 공동투쟁의 위력을 시위하고 《정예》를 자랑하던 일제침략군에게 만회할수 없는 참패를 안겨주었으며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몸소 전투총화를 지으시면서 북만부대의 지휘관들에게 매복전투의 전법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복전투에서 승리를 이룩하자면 먼저 적의 력량과 무장장비상태, 작전시간과 기동정형 등 놈들의 움직임을 손금보듯 환히 알고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적정을 장악한 다음 반드시 재확인하여야 한다, 적정을 구체적으로 장악한 다음에는 적의 행동성격과 지형조건에 맞게 매복장소를 옳게 선정하며 적의 증원을 막기 위한 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번 전투에서도 이러한 원칙에서 전투조직을 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지휘처를 전장을 한눈에 바라볼수 있는 곳에 선정하며 은밀성을 보장할데 대하여, 적에 대한 타격에서 신속성과 불의성을 보장할데 대하여 강조하시고 이렇게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적들을 소멸할 때 적의 대형전개상태와 력량배치특성을 잘 고려하여야 합니다.

바로 오늘 전투에서처럼 적장교놈들과 기관총을 비롯한 중무기사수들을 먼저 소멸하여 놈들의 지휘체계를 혼란시키고 저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전투의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북만유격대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술상착오와 부족점 그리고 지난 시기의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전투조법들을 심각히 분석해보면서 신묘한 전술과 령활한 전법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한 대원은 이번에 놈들을 얼음판우에 올려놓고 집중사격을 퍼부으니 옴짝달싹 못하더라고 하면서 김일성장군님의 령솔하에 이번 전투를 치르고보니 자신심이 생긴다고 하였고 한 지휘관은 얼음포대와 눈전호가 꽤 은을 낼가 했는데 놀랍게도 하나도 마사지지 않고 놈들의 기관총탄을 모두 막아냈다고, 한명의 부상자도 내지 않은 신기한 전투였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무쌍한 전법을 격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하시면서 앞으로 함께 손잡고 더 큰 승리를 이룩해나가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전투에서 로획한 3정의 기관총과 100여정의 보병총을 모두 북만유격대에 넘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석두하의 경박호반전투에 이어 방신구근방에서 일제침략군놈들에게 다시금 된매를 안기시였다. 그리하여 북만주의 광활한 대지를 타고앉아 거들먹거리던 《무적황군》의 신화가 깨여지게 되였고 인민들은《고려홍군》에 대한 소문을 널리 전하며 쾌재를 불렀다.

이러한 때에 녕안반일유격대 대장 평남양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왔다.

그는 미처 인사말을 나눌새도 없이 두손을 맞잡고 중국식으로 례의를 표하면서 《수고하십니다, 수고하십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연방 탄성을 터뜨리는것이였다. 그러더니 둘러서있는 유격대원들모두에게 사방 절까지 하였다. 모두들 영문을 몰라하는데 주보중의 련락병이 그가 바로 평남양이라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진정하기를 기다리셨다가 이렇게 만나게 되여 기쁘다고 하시면서 휴식명령을 내리시고 그와 담화를 하시였다.

그자리에서 평남양은 경박호반전투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고 하면서 자기의 심정을 절절히 토로하였다.

《지금 온 북만땅에 김일성부대소문이 자자합니다. 우리 부대 병사들이 여간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자기는 직접 부대를 이끌고 김사령수하에서 활동하면서 많이 배우겠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같이 싸워보자고, 힘을 합치면 우리 힘이 몇배로 강해지는데 두려울것이 무엇인가고 하시면서 그의 소청을 기꺼이 받아주시였다.

그후 원정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평남양부대와 함께 다께우찌중좌놈이 지휘하는 2개 대대의 정안군을 소탕하여 다시한번 공동투쟁의 위력을 시위하였다.

경박호반전투와 그에 잇달아 진행된 북만에서의 여러 전투들은 우리 수령님의 백전백승의 령활한 전법과 불멸의 업적, 수령님의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리를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는 력사적인 전투로서 조중 두 나라 인민들의 반제공동투쟁사에 찬연히 빛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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