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1절

제8장 문화의 접촉

교류와 언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세계에 다른 나라 말이 흘러들어오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그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고립적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접촉하면서 문화적교류를 하게 되는만큼 그 나라 말이 흘러들어오기 마련이다. 우리 나라에서 문화의 호상교류와 접촉과정에 생기게 되는 어휘부류가 바로 한자어와 외래어이다.

  

제1절 문화의 접촉교류와 리두 및 한자어

 

한자어는 한자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어휘이지만 우리 식의 한자음으로 읽히고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한어어휘와는 다른것으로 간주되고있다.  

한자어는 우리 나라에서 한자를 쓰게 되면서 생겨난것으로 하여 그 력사는 비교적 오래다고 할수 있다.

그런데 같은 한자로 조성되였어도 그것이 쓰인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리 리해되는 경우가 있다. 례를 들어서 《인간(人間)》은 옛문헌에서 자주 쓰이고있는데 그 의미는 현대와 달리 《세상》의 뜻으로서 《人生 世間》과 통하여 쓰이고 오늘 우리가 리해하고있는 《사람》의 뜻과는 다르게 쓰이였다. 그리하여 《삼국유사》에서는 단군과 관련한 《고기》의 기록을 소개하면서 《弘益人間(홍익인간)》이라는 말을 쓰고있는데 이것은 《세상에 큰 리익을 준다》는 뜻으로서 이 경우에 《人間》은 《사람》의 뜻으로 쓰인것이 아니다.

이러한 쓰임은 중세의 문학작품들에도 반영되여있다.

人生 世間(인생 세간)의 좋은 일 하건마는 어찌 한 江山을 가디록 나히 여겨 寂寞山中(적막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송강 《성산별곡》)

ㅇ 黃庭經(황정경)一字를 어찌 그릇 읽어 두고 人間에 내려 와서 우리를 따르는가(송강 《관동별곡》)

이 가사들에서 쓰고있는 《人生 世間》과 《人間》은 동의적인것으로서 《세상》의 뜻이다.

《人間》이 《세상》의 뜻으로가 아니라 《사람》의 뜻으로 쓰이게 된것은 근대문화가 들어온 이후의 일이다. 이것은 시대에 따르는 한자어의 의미적가변성을 말해주는것으로 된다.

한자문화와의 접촉은 일정한 력사를 가지고있다. 천년강국이였던 고구려는 이웃나라인 중국과의 접촉과정에 한자문화에 대하여 알게 되였으며 한자에 대한 지식을 소유하게 되였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대무신왕 11년 즉 A. D. 28년에 한의 료동태수에게 고구려의 위나암성에 있던 대무신왕이 한문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고구려본기, 제1, 대무신 11년) 이 편지가 류리왕이 지었다는 한시처럼 후세 력사가들에 의해서 한문으로 쓰이게 된것인지, 어떤것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문헌기록상으로는 한자문화를 그때 이미 접촉하여 일정하게 받아들인것으로 되여있다.

고구려가 한문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증거로서 현재까지 알려진 오랜것으로는 A. D. 414년에 축성한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문이 있고 그 비문의 첫부분을 새긴 그릇이 경주의 신라고분에서 발견된것이 있다.

그리고 불교의 전파가 한문의 보급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대해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불교가 A. D. 372년에 중국으로부터 고구려에 들어오고 백제에는 A. D. 384년에 따로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고 한다. 중국을 통한 불교의 전파는 자연히 한문의 보급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것은 불교에 관한 모든 서적이 한문으로 씌여져있기때문이다.

이렇듯 세나라시기에 한자문화는 여러 통로를 통하여 접촉하게 되였는데 그 과정에는 일련의 독자성이 발현되기도 하고 또한 변형과 변화의 양상도 나타나게 되였다.

  

1. 리두문화

 

세나라시기 우리 조상들은 한자문화를 피동적으로만 받아들인것이 아니였다. 우리 말과는 구조적으로 다른 한문을 사용하면서도 한자라는 표기수단을 리용하여 우리 말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적어보려는 노력이 기울어져 드디여 리두식표기방법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비문에 반영되여있는 120여개의 인명, 지명, 관직명이 바로 리두식표기로서 당시 고구려의 말을 적어놓은것이며 6세기 중엽 신라 진홍왕순수비에 나오는 리두식표기 역시 신라의 인명, 지명, 관직명을 적어놓은것이다.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서 적어놓은 이러한 인명, 지명, 관직명은 한자로 표기되여있으나 한자어가 아니다.

《삼국유사》에서는 《가슬갑(嘉瑟岬)》이라는 말에 다음과 같은 주를 달아놓았다.

《혹은 加西(가서)라고도 하고 嘉栖(가사)라고도 하니 다 우리 말이다. 岬(갑)을 세속말로 古尸(고시)라고 하기때문에 혹은 古尸寺(고시사)라고 하니 岬寺(갑사)라는 말과 같다. 지금 운문사(雲門寺) 동쪽으로 이천여보쯤 되는 곳에 가서현(加西峴)이 있는데 혹은 가슬현(嘉瑟峴)이라고도 한다. 그 고개북쪽 골안에 절터가 있는것이 바로 그것이다.》(권4, 《원광서학》)

여기서는 《岬》의 뜻이 일찌기 《古尸, 加西, 嘉栖, 嘉瑟》 등으로 표기되여왔음을 밝히고있는데 우리 말을 적은 이러한 리두식표기는 한자로 표기되여있어도 한자어의 범주에는 들지 않는것이다. 그것은 한자어란 한자의 의미에 기초하여 한문의 문법적규칙에 맞게 만들어진것이여야 하기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든 리두식표기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어서 우리 말을 표기하는데 그것을 리용하고있을뿐인것이다.

혹 뜻옮김에 의한 리두식표기에서 《누리실》을 《世谷(세곡)》, 《님실》을 《主谷(주곡)》으로 쓸수 있고 소리옮김과 뜻옮김을 배합하여 《구름틔》를 《屈雲峙(굴운치)》, 《구름내》를 《窟雲川(굴운천)》으로 쓸수 있으나 이러한것들은 우리 말 표기라는 공통성으로 하여 역시 한자어로 인정되지 않는것이다.

이러한 리두식표기의 발생은 한자문화를 우리 식으로 받아들인것과 관련되여있어 궁극에 가서는 독특한 리두문화를 창조하는데로 나가게 되였다.

리두문화에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초기리두, 리찰, 향찰 등 리두서사체계이며 그 서사체계를 완성하는데 필요되는 여러가지 구성요소의 갖춤새에 대한 문제이다. 여기서도 특히 주목되는것이 리두자와 리두어이다.

  

1) 리두자

우리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만들어쓰게 된것이 리두자이다. 중국의 한자는 음도 있고 뜻도 있지만 조선의 리두자는 그 소용되는 경우에 따라 그 어느 한편만으로도 충분하였으며 어떤 리두자는 다른 한자와 섞이게 됨에 따라 한자어의 구조속에 참여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리두자는 그 특징에 따라 몇가지 류형으로 나눌수 있다.

첫째 류형은 음과 뜻이 일치하는 리두자이다. 이런 자는 흔히 보통 한자와 혼동되기 쉬우며 이 글자로 기록된 우리 말까지 한자어로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이 글자는 중국고전에 쓰이지 않고 한자자전에도 올라있지 않는 점에서 한자와 구별된다고 할수 있다.

羘(음, 뜻)양

《아언각비》에서는 《우리 습속으로 소의 위를 羘이라고 한다》고 하고 그 아래에 이것은 우리 나라에서 만든 글자라고 밝혀놓았다.

  (음, 뜻)탈

《주영편》에서는 《무슨 일을 핑게로 면하는것을   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그 음은 《탈》이라고 하였다.

  (음, 뜻)선

《주영편》에서는 《옷가장자리를   이라고 한다》고 하면서 그 음은 《션》이라고 하였다. 입말에서 지금까지 《선》이라고 하는것은 단순한 옷가장자리가 아니라 거기에 헝겊으로 두른것을 의미한다. 《문헌비고》에서 《션》이 재료 즉 비단을 파는 전방을 《  廛(전)》이라고 한것은 이와 관련되여있다.

  (음, 뜻)벌

《대전회통》에 나오는 《海  》은 《바다벌》이다. 바다가에서 물에는 해초, 해변에는 풀 등이 난 곳을 함께 《바다벌》이라고 한다.

  (음, 뜻)박

평양의 《돌박산》을 《石  山》으로 표기하는데 현대어에서 다듬은 돌을 《  石(박석)》이라고 한다.

  (음, 뜻)비

《선당하기》에 《縷  》라고 썼으니 곧 《누비옷》이라는 뜻의 《누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음, 뜻)엄

엄나무를 가리키는 글자이다.

둘째 류형은 음과 뜻이 서로 다른 리두자이다. 이런 글자는 보통 한자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만큼 간혹 순수한 한문문체에서까지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글자들은 중국고전에 나오지 않고 자전에도 올라있지 않는 점에서 보통 한자와 구별된다고 할수 있다.

畓(음)답 (뜻)논

《송계만록》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水田을 畓이라고 하는데 그 음은 畓(답)과 같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서는 가락국의 첫왕인 수로가 《新畓坪(신답평)》이라는 곳에 간 일이 있다고 기록하고 그 아래 《畓은 세속에서 쓰는 글자》라고 주를 달아놓았다. 이로 미루어 이 리두자는 쓰인 력사가 오래임을 알수 있다.

  (음)두 (뜻)마무리 즉 섬이 다 차지 못한 곡식

《주영편》에서는 《곡식이 섬에 다 차지 않는것을   라고 한다》고 하면서 그 음은 《두》라고 하였다.

垈(음)대 (뜻)터

《경세유표》에서는 우리 나라에서 따로 《垈》자를 만들어 터전을 이루고있는 사실을 밝히고있다.

垈(음)대 (뜻)옷감

《경국대전》에서는 《옷감》의 뜻으로 《衣垈》란 말을 쓰고있다.

襨(음)비 (뜻)사다리

《앙엽기》에서는 《이 글자를 자전에서 찾으니 없는데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鐥(음)선 (뜻)술잔으로 쓰던 대야

《아언각비》에서 《鐥은 술을 되는 그릇이니 우리 나라에서 만든 글자이다. 지금 각 고을에서 술 다섯잔을 대접하거나 선사하면서 한 鐥이라고 하는데(중국에는 이런 글자가 없다.) 우리 말로 〈대야〉라고 한다. 세수그릇도 역시 〈대야〉라고 하지마는 단지 크기가 같지 않다.》고 하였다.

  (음)수 (뜻)창고

《주영편》에서 창고를 《  》라고 하는데 그 음은 《수》라고 하였다.

셋째 류형은 음만 있는 리두자이다. 이런 글자는 흔히 인명이나 지명에 쓰이고있다.

芿(음)늣

《주영편》에서는 음만 있고 뜻이 없는 글자의 하나로 이것을 들고 그 음을 《늣》이라고 하였다. 《월인석보》 2권의 끝에 《芿叱山(늣뫼), 芿叱之(늣지), 芿叱達(늣달)》 등의 인명표기가 나오고있다.

亇(음)마

《주영편》에서 음만 있고 뜻이 없는 글자의 하나로 이것을 들고 그 음을 《마》라고 하였다. 《고려사》에서는 북원 사신의 이름으로 《豆亇達(두마달)》을 썼으며 《용재총화》에서 음악가의 이름으로 《李亇知(리마지)》를 소개하고있다.

岾(음)점

금강산에 있는 절이름으로 《楡岾寺(유점사)》가 있다.

旀(음)며

리두토로 쓰인 글자이다.

厼(음)금

리두토로 쓰인 글자이다.

음만 있는 리두자가운데는 우리 말의 받침소리를 표음하기 위하여 합성자형식으로 만든것이 있다.

① 《ㄱ》받침의 표음자

     (둑), 巪(걱)

② 《ㄴ》받침의 표음자

     (  ),   (난),   (간)

③ 《ㄹ》받침의 표음자

   乫(늘), 乫(갈), 乲(잘)

   乬(걸), 乤(할), 乺(솔)

   乶(볼), 乭(돌)

④ 《ㅅ》받침의 표음자

   旕(엇),   (곳), 夞(욋), 巼(팟)

넷째 류형은 뜻만 있는 리두자이다. 우리 말을 표기하기 위하여 만든 글자인데 다른것은 음을 가지게 되였으나 이것들은 음이 없이 뜻만 전해왔다.

  (뜻)다지

《전률통보》와 《고금석림》에서는 《  音》을 《다딤》으로, 《유서필지》와 《어록변중》에서는 《다짐》으로 읽고있다.

迲(뜻)쟈라

《순오지》에서는 《  ,   》와 함께 《迲》을 소개하면서 《땔나무가 단에 차지 않는것》을 이른다고 하였다.

  (뜻)배미

근세까지 토지대장과 같은 서류에서 전답의 구획을 가리키는 글자로 써왔다.

이상의 리두자는 우리 나라에서 새로 만든것들인데 이것들은 리두로 된 문서에 쓰이거나 인명이나 지명에 주로 쓰이고있었다.

 

2) 리두어

우리 나라에서 입말을 반영하여 독특하게 만들어쓴 한자표기로 된 어휘가 리두어이다. 리두어는 일반용어 이외에 물건의 이름, 관직의 이름, 봉건시대의 특수한 관습용어 등 명사류만 하여도 많은 량에 달하고있으며 부사류나 용언류까지 합치면 대단히 방대한 량이라고 할수 있다.

리두어는 간혹 리두자를 섞어쓴것도 있으나 그 대부분은 널리 쓰이는 한자를 리용하여 그 뜻과 음을 빌어서 만들어 쓰고있다.  

(1) 명사류

명사로 쓰이는 리두어는 몇개 류형으로 나눌수 있다.

첫째 류형은 한자의 뜻과 음을 다 빌어서 만들어낸 리두어이다. 대체로 앞의 글자는 뜻으로 뒤의 글자는 음으로 읽도록 만들어져 반뜻반소리옮김이라고 할수 있다.

長音 길음

《만기요람》에는 《菉豆長音, 長音菉豆》가 나오는데 이것은 《록두길음, 길음록두》의 표기로 된다. 현대어에서는 흔히 《길금》이라고 하여 기름류로서의 《기름》과 구별하고있다. 사실상 《길금》이 본래 말이고 《ㄹ》아래서 《ㄱ》가 빠져나간것이 《길음》이니 《長》은 《길》의 뜻옮김이고 《音》은 《음》의 소리옮김이다.

夜味 바미

토지문서에서 자주 쓰이던것으로서 논의 구획을 가리키는 말이다. 리두자 《  》로도 쓸수 있다.

舍音 말음

《전률통보》와 《유서필지》에서는 《말음》이라고 한데 대해서 《어록변중》에서는 《마름》이라고 하였다. 《舍音》은 뜻옮김에 다시 소리옮김을 덧붙인것이라고 할수 있다. 《고금석림》에서는 《농장(農莊)》을 주관하는 사람을 《마름》이라고 하였으니 근래까지 지주대신에 토지를 관리하는자를 가리키는 말로 이것이 씌여왔다.

尺文   문

《어록변중》에서는 《  문》이라고 읽는다고 하면서 수표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고 하였다.

白等   든

《전률통보》에서는 《 든》으로 읽는다고 하였는데 죄인의 고백을 기록할 때 서두를 시작하는 말로서 현대어로는 《말씀을 올리자면》의 뜻이다.

  音 다짐

《어록변중》과 《유서필지》에서는 《다짐》으로 읽는다고 하였다. 죄수의 문초 또는 자백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囚 갋슈

《유서필지》에서는 《갋슈》로 읽었다. 함께 범죄를 범한 공범이나 같이 갇혀있는 죄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갋》은 《  방》에서 유래된 말로서 현대어로는 《가로》에 해당된다. 그러니 《  》은 《갋》의 뜻옮김이고 《囚》는 음으로 읽은것으로 된다.

題音 저김

《전률통보》에서는 《저김》으로, 《유서필지》에서는 《제김》으로 읽고있다. 백성들이 제출한 소송장에다가 판결내용을 써주거나 신청서에다가 지시내용을 써주는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둘째 류형은 한자의 뜻을 빌어서 만든 리두어이다. 한자어와 구별되는것은 우리 말의 고유어를 표기하기 위하여 한자의 뜻을 빌어서 만들었다는 점이다.

斗落 마지기

논의 면적을 계산하는데서 파종에 필요한 종자의 분량을 가지고 그 면적계산을 하는데 쓰는 말이다. 지난날 토지매매문서에 많이 쓰이였다.

   날가리

밭의 면적을 계산하는 단위로 쓰이던 말이다. 이 말도 지난날 토지매매문서와 같은데서 많이 쓰이였다.

斗尺 말자이

곡식을 되는 도구를 가리키는 말인데 《대명률직해》에서 많이 쓰이였다.

進賜 나으리

《고금석림》에서 《나으리》, 《유서필지》에서 《나아리》라고 하였다. 《훈몽자회》에서 《進》을 《나  》, 《賜》는 《줄》로 새긴것으로 미루어 두자의 뜻을 합해서 만든 말로 추측된다. 즉 《나  줄》에 사람을 가리키는 뒤붙이 《이》가 붙어서 《나  줄이》로 되였다가 중간의 《△》와 《ㅈ》가 빠져나가 《나으리》로 되였는데 근래에 와서는 《으》까지 빠져서 《나리》로 되였다.

水賜 무수리

《리두편람》에서는 《水賜伊》라고 쓰고 그 음을 《무수리》로 달아놓았다. 《경국대전》에서 《水賜》라고 쓴것은 리조때 왕궁에서 심부름하던 녀종을 《무수리》라고 부르던것이니 이것은 《水賜伊》와 같은 말이다.

水鐵 무쇠

《경국대전》에 나오는데 《무쇠》로 읽는다. 《훈몽자회》에서는 《鐵》자 아래 《生鐵은 무쇠요 熱鐵은 시우쇠》라고 설명하고있다. 여기서 말하는 《生鐵》이 곧 《무쇠》이다.

斜是 빗기

《대명률직해》에 나오는데 《빗기》로 읽었다. 《빗기》는 관청의 증명을 받는다는 뜻이니 어떠한 서류를 관청에서 증명해줄 때에는 반드시 그 끝에 증명한다는 문구를 비스듬히 써주는 까닭에 그 말이 생겨나게 되였다.

上項 운목

《어록변중》에서 《운목》으로 읽었는데 그것은 《웃목》의 변화음을 쓴것으로 인정된다. 이 말은 상기항목의 뜻으로 쓰이였다.

셋째 류형은 한자의 비슷한 음을 취하여 만들어낸 리두어이다. 우리 말 고유어를 표기하는데서 한자의 뜻과는 무관계하게 그 음을 비슷하게 따서 만든 말이다.

冬音 둘음

《만기요람》에 나오는데 물고기를 계산하는 단위로 쓰이는 말이다. 한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음을 따서 만들었다. 《冬》을 《둘》의 표기로 리용한것은 《不冬》을 《안들》로 읽어온 리두의 전통과 관련되여있다.

白活 발괄

《유서필지》와 《고금석림》에서 《발괄》이라 하였다. 관청에 청원 또는 신소를 하는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還上 환자

《고금석림》에서 《還上, 捧上, 外上의 上은 모두 자라고 한다》고 하였다. 리조때 관청에서 백성들에게 봄철에 낟알을 꾸어주었다가 가을에 리자를 붙여 받아들이는 곡식을 말한다.

外上 외자

한쪽에서만 지는 의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외》는 하나만으로 됨을 나타내는 우리 말이다. 돈을 내지 않고 물건을 사는것을 《외상》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리두어인 《外上》을 한자음으로 읽은것이라고 할수 있다.

城上 졍자

《경국대전》에 나오는데 고려때는 성우에서 감시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리조때에 와서는 왕궁안의 일종의 하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였다.

別乎 벼름

《유서필지》에서 《벼름》이라 하고 《고금석림》에서 《별오》라고 하였다. 일정한 비률로 여기저기에 배정하는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甲折 갑절

《대명률》에 나오는데 현대어의 《배》라는 뜻으로 쓰이는 《갑절》에 해당한다.  

(2) 부사 및 용언류

리두어에서 부사류와 용언류를 가르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부사가 용언에서 나왔고 또 적지 않은 용언들이 부사처럼 쓰이기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첫글자나 끝글자를 기준으로 하여 분류하는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不~》

不冬 안들

《전률통보》나 《유서필지》에서 《안들》로 읽는다고 하였는데 부정부사 《아니》에 해당한다.

不喩 아닌지

《고금석림》, 《유서필지》에서 다 《아닌지》로 읽었으나 이것은 《아닌디》의 변화로 인정된다. 《안들》의 《不冬》과 꼭 같은 부정부사로서 그 쓰임이 다를뿐이다. 《不冬》이 주로 용언술어와 관련하여 쓰이는것이라면 《不愉》는 《무엇무엇이 아니라》의 《아니라》와 같이 쓰인다.

不得 모질

《유서필지》에서는 《모질》로 읽고 《전률통보》에서는 《모딜》로 읽었다. 현대어의 《못》에 해당하는 부정부사로 쓰인다.

《~亦》

更亦   의여

《유서필지》에서 《  의여》라고 읽고 《어록변중》에서 《문득》이라고 했다. 현대어의 《문득》에 해당하는 부사이다.

使亦     여

《고금석림》에서 《    여》라고 읽었는데 《대명률직해》에 나오는 용례로 미루어보아 《억지로》의 뜻으로 리해된다.

專亦 전혀

모든 리두문헌에서 《전혀》 또는 《전여》로 읽고있는데 현대어의 부사 《전혀》와 같다.

易亦 아  혀

《유서필지》, 《어록변중》에서 《아  혀》로 읽고있는데 현대어의 《이내》가 이에 대응된다.

初亦 처음

《어록변중》에서 《처음》이라고 읽었다.

無亦 어오어여

《유서필지》에서는 《어오어여》라고 읽고 흔치 않지만 《업스로견이여》로도 읽는다고 하였다. 현대어로는 《없이》에 해당한 말이다.

有亦 이신이여

《유서필지》에서는 《이신이여》로 읽었는데 현대어로는 《있어서》, 《있음으로》에 해당한다.

耳亦   녀

《유서필지》에서 《  녀》로 읽었다. 《훈민정음언해》에서는 《耳       미라》라고 하였으니 이 말은 현대어의 《따름이다》에 해당한 뜻이다.

《~良》

更良 가  야

대부분의 리두문헌에서 《가  야》로 읽었고 오직 《어록변중》에서만 《다시》로 읽었다. 현대어로는 《다시》에 해당한 말이다.

右良 임의여

《전률통보》에서는 《임의여》라고 읽었는데 현대어의 《이상과 같이》에 해당한 말로서 《이미》라는 부사와 련계되는 뜻이라고 생각된다.

餘良 남아

《전률통보》에서 《남아》로 읽었다. 현대어에서는 《무엇이나마》의 《나마》에 해당되는 말이다.

除良 더러

모든 리두문헌에서 다 《더러》로 읽었다. 현대어로는 《제하고》, 《빼고》 등의 의미로 된다.

導良 드듸어

《전률통보》에서 《드듸어》로 읽었다. 현대어에 《드듸어》하는 부사가 있으나 리두어의 《導良》은 아직 오늘의 《드듸어》의 뜻으로 쓰인것이 아니라 《쫓아》, 《따라》의 뜻으로 쓰이였다.

及良 미쳐

《전률통보》와 《유서필지》에서 《미쳐》로 읽었는데 현대어와 다를바가 없다.

爲良   야

모든 리두문헌에서 《  야》로 읽었는데 현대어의 《하여》에 해당된다.

用良   아

《전률통보》에서는 《  아》, 《씨아》로 읽었다. 《훈민정음언해》에 《用    씨라》라고 한것으로 미루어 《  아》가 옳다고 본다. 이 말은 현대어의 《써》에 해당한다.

《~如》

初如 초여

《고금석림》에서 《초여》로 읽었는데 《처음》이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초여》로 읽었다면 소리옮김으로 되겠는데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처  》이라는 고유어에서 유래한것으로 보인다.

   如 가르혀

《유서필지》에서 《가르혀》로 읽고 《어록변중》에서 《갈여》로 읽었다. 그 뜻은 이것과 저것을 교체한다는 말이다.

   等如 가르트려

《전률통보》에서 《가르트려》로 읽었다. 현대어로는 《갈아들여》의 뜻으로서 《교체해가면서》의 말이다.

絃如 시우려

《전률통보》와 《어록변중》에서 《시우려》로 읽었다. 대체로 이 말의 뜻은 《어떠어떠해서》, 《무엇무엇때문에》 등으로 쓰이였다.

《~只》

故只 짐즛

《대명률직해》에 쓰이고있는데 현대어로는 《고의로》의 뜻인 《짐짓》이 대응된다.

戈只 과글리

《전률통보》와 《유서필지》에서 《과글리》로 읽고있다. 현대어로는 《급하게》, 《심하게》 등이 말에 해당한다.

  只 다모기

《고금석림》에서 《다모기》로 읽고 《어록변중》에서 《아울우지》로 읽고있다. 《 只》의 《다모기》는 《다 》과 같은 어원의 말로서 《어우르다》의 뜻이다. 《아울우지》로 읽게 된것은 입말에서의 변화를 반영한것으로 보인다.

須只 모롬지기

《대명률직해》에 많이 쓰이였다. 이 말은 《반드시》의 뜻으로 후세까지 쓰이고있다.

惟只 아기

《유서필지》에서는 《아기》로 읽었다. 《박통사언해》 단자해에서 《只》를 《오직》, 《且》를 《안직》으로 설명하였다. 이 말의 옛 형태는 《오지기, 안지기》로 추정되는만큼 《아기》는 그 변화형으로 보아야 할것이다.

唯只 아즉

《유서필지》에서는 《아즉》으로 읽었다. 《惟只》와 《唯只》는 같은 뜻의 리두어인데 그 리두음은 《아기, 안즉》으로 되여있으니 그 옛 형태는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아지기》로 보인다. 그 뜻은 현대어로 《오직》이다.

《~于》

加于 더욱

《고금석림》과 《유서필지》에서 《더욱》으로 읽었고 《어록변중》에서는 《더우여》로 읽었다. 현대어의 《더욱》과 같다.

必于 비록

《유서필지》에서 《비록》으로 읽었는데 《必》은 뜻옮김이 아니라 소리옮김으로 쓰인것이 명백하다.

追于 조초

리두문헌에서 모두 《조초》로 읽었는데 《뒤따르다》의 뜻이다.

伋于 지즈로

《유서필지》에서 《지즈로》로 읽었다. 현대어로는 《인하여》나 《그대로》 등의 뜻으로 쓰이였다.

이러한 리두어는 비록 한자로 표기되여있지만 한자어가 아니다. 이것은 오랜 기간 우리 조상들이 리두서사어를 써오는 과정에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것이 축적되면서 전승되여온것으로서 귀중한 언어문화유산의 하나로 된다.

 

2. 한자어의 쓰임과 제약성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에는 일찌기 《류기(留記)》 백권이 있었다고 하며 백제에서는 375년에 《서기(書記)》를 썼고 신라에서도 545년에 《국사(国史)》를 편찬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문헌들이 한문으로 씌여진것으로 인정되는것만큼 당시 우리 조상들의 한문소유정도는 상당한것이였다고 할수 있다. 이것을 뒤받침해주는 자료로서는 고구려의 태학이나 신라의 국학들에서 중국의 경서와 력사문헌을 널리 학습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한문학습은 고려때 와서 실시하게 된 과거제도에 의해서 한층 강화되였다. 즉 고려에서는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958년에 과거제도를 실시하였으며 960년에 제2차, 그 이듬해인 961년에 제3차로 계속되여왔다.

이 과정에 한문학습의 세가지규범이 세워지게 되였는데 그것은 첫째로, 매개 한자가 가지는 뜻, 둘째로, 매개 한자가 가지는 음, 셋째로 그 문장전체의 읽기를 어떻게 통일짓겠는가 하는 규범을 세우는 문제이다. 한자는 한가지 뜻만 가지지 않고 전의에 의해서 여러 뜻으로 쓰일수 있다. 례를 들어서 《玄》의 새김을 《가믈》이라고 하는것은 그 기본뜻인 《가맣다》는 뜻을 취한것인데 이 글자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새김을 일정하게 정해놓음으로써 한자의 뜻의 규범을 세우려고 한것이다.

다음으로 한자의 음에 대한 규범을 세우는 문제는 보다 심각하다고 할수 있다. 조선한자음의 체계는 일단 수립된 이후 그것은 독자적인 발달의 길을 걸어왔기때문에 중국음의 변천으로부터는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고려에서 과거제도가 실시된 다음 한자음규범이 일층 강화되고 유지되여온 사정과 관련되여있다. 일본한자음에는 한음(漢音)과 오음(吳音)의 두 체계가 공존하고 윁남한자음에도 《한월어(漢越語)》와 《한어월화(漢語越化)》의 서로 다른 체계가 뒤섞이여 쓰이고있다. 이것은 중국음의 지방적차이 또는 시대적차이를 반영하고있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조선한자음은 그러한 영향과는 무관계하게 일단 세워진 규범을 줄곧 유지해옴으로써 한자음에서 통일성을 기하고있는것이다.  

끝으로 제기되는것은 한문읽기의 규범성문제이다. 즉 한문을 읽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읽는것을 규범으로 정하겠는가 하는 문제이다. 《대명률직해》나 《양잠경험촬요》와 같이 한문원전을 리찰로 번역한 일이 있었으며 《구역인왕경》에서 보는바와 같이 한문원전의 자순을 바꾸어 읽으며 원전의 한자를 우리 말로 새겨서 읽는 새겨읽기의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겨읽기의 방법은 점차 쇠퇴하고 원전의 구절마다 그결을 달고 한문원전을 소리읽기하는 방법이 성행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한문의 읽기는 새겨읽기로부터 소리읽기로 이행하여 굳어지면서 그 규범이 세워지게 되였다고 할수 있다.

10세기 중엽에 과거제도가 확립된 후 몇백년동안 한문학습의 규범이 유지되여옴에 따라 한자어는 그 음이나 뜻에서 일정한 규범성을 띠고 전승되여왔다. 례컨대 일본어의 경우 《人界》는 [ニンカイ]와 [ジンカイ]의 두가지발음을 가지고있으며 《人生》은 [ジンセイ]로, 《人相》은 [ニンサウ]로 읽어 같은 《人》자가 경우에 따라 달리 읽히고있다. 그러나 우리 말의 경우에는 그러한 혼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한자어를 정음자로 표기하는 경우에 일정하게 규범화가 되여있어 비록 한자를 쓰지 않더라도 혼동될 우려가 없는것이다.

ㅇ 댱가(丈家)(《석보상절》 6권, 21장)

   방셕(方席)(우와 같음)

   롱담(弄談)(우와 같은 책, 24장)

     조(才操)(우와 같은 책, 35장)

   분별(分別)(《석보상절》 8권, 24장)

   남편(男便)(우와 같은 책, 93장)

우리 나라에는 한문을 통하여 불교와 유교가 들어왔다. 한문으로 된 불교와 유교의 경전들이 들어와 퍼지게 되자 거기에 나오는 한자어와 한자성구들이 점차 우리 말에도 쓰이게 되였다.

《삼국유사》향가의 경우에 매편에 한두마디의 한자어휘가 나오는데 그 대부분은 불교용어로서 당시 봉건통치계급이 불교를 끌어들이게 됨에 따라 끼여 들어오게 된 말들이였다.

千手觀音(천수관음), 慈悲(자비)(관음가)

功德(공덕)(오라가)

破戒主(파계주)(도적가)

乾達婆(건달파)(혜섬가)

無量壽佛(무량수불), 願往生(원왕생), 四十八大願(사십팔대원)(달하가)

이러한 불교용어들가운데는 《乾達婆》와 같이 싼스크리트어의 《Gandharva》를 한자로 소리옮김한것이 있으며 《無量壽佛》과 같이 아미타불의 수명이 헤아릴수없이 오래다고 하여 상징적으로 표현한것도 있고 《功德》과 같이 불교에서 말하는 착한 일을 많이 한것을 가리켜 만든 한자어도 있다. 그리하여 이 향가들에 나오는 한자어들은 그 조성의 기초가 한결같지 않으며 실지 언어생활에서 쓰이는 정도도 같다고 할수 없다.

《균여전》향가는 불교용어인 한자어와 한자성구를 쓰는데서 《삼국유사》향가보다 한걸음 더 나가고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곧 우리 말에서 한자어의 증가상황을 판정할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특정한 사람에 의한 저술이나 창작에 쓰인 어휘가 곧 당시의 어휘상태를 그대로 반영하는것이라고 할수는 없기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계림류사》나 《조선관역어》의 어휘자료는 의의가 크다고 할수 있다. 《계림류사》에는 《東(동), 西(서), 南(남), 北(북)》 등 방위어와 여러 분야에 쓰이는 한자어가 반영되여있는데 그 수는 전체 어휘량의 10%정도밖에 안된다.

그런데 《조선관역어》의 경우에는 그 수가 훨씬 늘어나 전체의 약 30%정도에 이르고있으며 그 범위도 더 넓어지고 다양해지고있다. 《書狀(서장), 通事(통사), 珊瑚(산호), 水晶(수정), 文書(문서)》 등 《계림류사》에는 나오지 않던 한자어가 소개되여있다. 이것은 확실히 한자어의 쓰임이 늘어났음을 말해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한자어가 실지 어느만큼 우리 말에 침투되여 쓰이고있는가 하는것은 한문원본의 우리 말 번역본을 기준으로 하여 측정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례컨대 《두시언해》는 당나라시인 두보의 시를 우리 말로 번역한것인데 거기에는 일정한 량의 한자어가 반영되여있다. 그 한자어들에는 원문에 있는 지명, 인명 또는 특수한 표현 등 실지 우리 말에는 쓰이지 않는 한자어도 있으나 일상적으로 쓰이는 한자어들이 적지 않게 반영되여있다.

ㅇ 天下(천하), 先生(선생), 左右(좌우), 杜鵑(두견), 手巾(수건), 風俗(풍속), 時節(시절), 神妙(신묘), 寂寞(적막), 眞實(진실), 疑心(의심), 鬼神(귀신), 相對(상대)

그러나 그 비률은 고유어에 비하여 훨씬 낮아 20~30%계선에 머물고있다.

《백련초해》와 같은 경우에는 번역문이 국문으로 일관되여있어서 모든 한자어가 정음자로 표기되여있으며 심지어 한자어나 토의 결합을 하철, 상철하는 현상, 입말에서의 동화(닮기)현상을 그대로 표기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있다.

ㅇ 우사니오(雨傘이오), 오기오(玉이오), 남지니(男人이), 방튜긔(防築의), 준네(樽에), 심니(十里), 쳘리(千里)

이것은 한자어가 입말에까지 침투하여 마치 고유어처럼 인식되여 쓰이고있었음을 보여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사실상 옛문헌에 반영되여있는 한자어라고 하여도 그것이 곧 우리 언어생활에 널리 쓰인것이라고는 할수 없으며 개중에는 입말에까지 침투하지 못하고 글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것이 있는것이다.

이것은 쓰임의 각도에서 볼 때 한자어가 가지는 하나의 제약성이라고 할수 있다.

한자어가 입말에 들어와 쓰이게 될 때에는 고유어에 작용하는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을수 없다. 앞에서 례로 든 《심니》나 《쳘리》는 바로 입말에서 나타나는 동화현상을 그대로 적어놓은것이여서 한자와의 대응에서는 《십리>심니》, 《천리>쳘리》와 같이 1대1로 대응되지 않는다.

이와 류사한것으로는 모음조화법칙의 작용을 들수 있다. 즉 입말에서 자주 쓰이게 되는 한자어는 입말에 작용하는 모음조화법칙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고마는것이다.

  한      모 샤(《룡비어천가》 19장)

ㅇ 도  도 盜(《훈몽자회》중, 4장)

《도  》은 《盜賊(도적)》이라는 한자어가 모음조화법칙에 따라 변형된것이다. 그것은 모음조화법칙과 무관계하게 조성된 한자어가 우리 말에 들어와 쓰이게 되면서 입게 된 응당한 변화이다.

한자어의 변형을 가져온 모음조화의 작용은 한자어의 첫 머리를 기준으로 하는 순행동화(내리닮기)가 지배적이였다.족

ㅇ 天動(텬동) 텬둥

   舞童(무동) 무둥

   扶助(부조) 부주

   科擧(과거) 과가

   土蓮(토련) 토란

   罷漏(파루) 바라

   軍號(군호) 군후

그러나 반대로 역행동화(올리닮기)에 의한 변형도 없지 않다.

ㅇ 誣陷(무함) 모함

   網席(망셕) 멍셕

   庖  (포쥬) 푸쥬

이러한 변형은 사용력사가 오래인 한자어의 경우에 한하며 한자어가 점차 늘어나서 고유어와는 다른 하나의 어휘집단을 이루게 된 다음부터는 한자어는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는것이다. 다시말하여 우에서 언급한 모음조화법칙이 한자어가 생겨나는데 작용하지 않는만큼 숱한 한자어에서 그 법칙에 어긋나는것이 나오겠는데 그 많은것을 다 변형시킬수는 없는것이다. 그리하여 한자어휘집단에는 모음조화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자체의 고유한 법칙이 지배하게 된다고 할수 있다. 이로부터 앞에서 례로 든 《도  》도 후기문헌에 와서는 본래한자음에 맞추어 《도적》으로 쓰게 된것이다.

도적이 와 핍박하면(《동국신속삼강행실》 렬녀 4:9)

도적도 盜(《류합》 하, 21)

또한 일부 경우에는 이미 변형된것에 맞추어서 본래 한자를 다른 한자로 바꾸어 쓰는것도 있으니 《誣陷》이 《모함》으로 변형됨에 따라 거기에 맞게 《謀陷》으로 한자를 바꾸어 쓴것이 그 례로 된다.

그러나 이미 변형된것이 우리 말로 굳어져서 본래의 한자로 되돌려놓기 어렵게 된것도 적지 않다. 례컨대 변형된 《토란》이나 《멍석》은 이미 우리 말처럼 굳어져서 본래의 한자로 되돌려놓기 어렵게 되였는데 그러한 경우에는 그 생성의 기초만 한자어일따름이지 사람들은 그것을 한자어로는 인식하지 않게 되는것이다.

그러한 부류에는 《山行, 衆生, 艱難, 天翼》 등 적지 않은 한자어가 속한다.

《山行》은 《산  》인데 어중의 《ㅎ》가 빠져 《산영》으로 되였다가 《사냥》으로 되였고 《衆生》은 《즁 》인데 《즘 》을 거쳐 《짐승》으로 되였다. 그리고 《艱難》은 《간난》으로서 《곤난》의 뜻이였는데 《ㄴ》가 겹친데서 《ㄴ》를 빼버리고 《가난》으로 되면서 《빈한》의 뜻으로 쓰이게 되였다. 《天翼》의 《련익》은 닮기에 의해서 《철릭》으로 바뀌고 그것은 옛날 무관복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였는데 고려가요인 《정석가》에 그 말이 반영되여있는것으로 보아 그러한 변화는 퍼그나 이른 시기부터 있었던것으로 인정된다.  

한자어는 우리 말에 들어와서 일종의 모음전환에 의하여 뜻빛갈을 달리하면서 쓰이는 경우가 있다.

ㅇ 病虫 병충~뱅충

   處身 처신~치신, 채신

   廉恥 염치~얌치

   變德 변덕~밴덕

   人情 인정~얀정, 얜정

   生生 생생하다~싱싱하다

   淡淡 담담하다~덤덤하다.

이것은 고유어의 경우에 《파랗다~퍼렇다~푸르다》와 같이 단어의 뜻빛갈이 달리 되는 모음전환의 수법이 한자어에 적용된것이라고 할수 있다.

한자어는 고유어요소와의 결합과정에 한자어의 범주에서 벗어나게 된것도 적지 않다. 다시말하여 한자어의 일부는 우리 말 단어조성수법에 따라 고유어요소와 결합됨으로써 한자어로서의 흔적을 남기지 않게 된것이다.

ㅇ 缸+아리>항아리

   針+쟁이>침쟁이

   心+보>심보

   地龍+이>지렁이

   虎狼+이>호랑이

   밑+錢>밑천

   甲+옷>갑옷

이처럼 한자어는 우리 말에 들어와 쓰이게 되면서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서 한자말의 본래모습에서 벗어나게 된것이 적지 않다. 이것은 한자어를 쓰면서 그것을 자기 모습으로 개조해나가려는 우리 말의 강한 민족적견인성의 일단을 보여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 사실은 우리 말에서 한자어가 만들어지는데 일정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우리가 쓰는 한자어의 고유한 특징은 같은 한자어라고 하여도 그 의미파생에서 차이가 있는데서도 나타나고있다.

례를 들어서 《白丁》은 일반적으로 《신분이 낮은 사람, 평민, 잡인》 등의 뜻으로 쓰이는 한자어인데 이 말은 우리 말에서 《소, 돼지, 개따위를 잡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또는 《고리백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말하자면 《평민, 잡인》이라는 본래뜻에서 파생된 새로운 뜻은 우리 말에서 생겨난것이라고 할수 있다.

《백정》이 집짐승잡는 일을 한다는데로부터 《백정도 올가미가 있어야지》와 같은 속담이 나왔는데 이것은 무슨 일이나 필요한 기재가 미리 마련되여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있다. 그리고 《고리백정》은 《키나 고리짝을 만드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는데로부터 《백정이 버들잎을 물고 죽는다》라는 속담이 나왔는데 이것은 죽는 마당에서도 자기 근본은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이고있다.

《백정》과 결부된 이러한 속담은 우리 말 《백정》이 가지는 독특한 뜻에 기초하여 만들어진것이다.

한자어의 본래의미와 다르게 우리 말에서 달리 쓰이고있는것은 이밖에도 많다.

례를 들어서 《明堂(명당)》의 본래뜻은 《왕이 정사를 보는 곳》으로서 《朝廷(조정)》과도 통하여 쓰이는것으로 되여있다. 그런데 우리 말에서는 《명당》이 본래 뜻으로 쓰이는것이 아니라 《무덤아래 있는 평지》를 가리키며 《명당자리》라고 하면 《그곳에 묘를 쓰면 자손들이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자리》 또는 《썩 좋은 장소, 지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있다. 이것은 본래뜻에서 비유적으로 파생된 뜻이 오히려 본래뜻을 밀어내고있는 현상이라고 할수 있는데 이것 역시 한자어의 쓰임에서 발현되는 특징의 하나로 된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독자적으로 한자어를 만들어 쓰는 경우도 있다. 례를 들어서 《放良(방량)》은 《노비를 놓아 량인이 되게 하는것》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조성은 조선식이며 그 쓰임 역시 우리 나라에 국한되여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미 널리 쓰이고있는 한자어를 우리가 다른 뜻으로 쓰고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한자어와 리두어의 구분이 명백하지 않다고 할수 있다.

白文(백문)

《대전회통》 등에 쓰이고있는데 관청의 증명을 경유하지 않는 문서를 말한다. 한자어로서는 구두점과 주석이 없는 한문을 가리킨다.

分揀(분간)

《고금석림》에서는 죄를 용서하는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였다. 한자어로는 사물의 대소, 선악, 시비를 가려서 아는것을 가리킨다.

私通(사통)

《고금석림》에서는 아전들사이에 오고가는 문건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즉 리두어로는 지방관청 또는 책임자의 이름을 빌리지 않고 아전들끼리 사사로이 문의 또는 회답하는 문서를 말하는데 한자어로는 이 말이 남녀가 몰래 정을 나누는것을 가리키는것으로 된다.

이런 말들은 외형상 한자어이지만 그 뜻과 쓰임은 리두적이라고 할수 있다. 그리하여 한자어의 한계를 긋는 문제는 매우 힘들게 되여있다. 례를 들어서 《六注比廛(륙주비전)》은 리조때 서울의 백각전(百各廛)가운데서 으뜸이 되는 여섯개전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의 구성을 보면 《六, 廛》은 한자의 본래뜻대로 쓰인것이고 《注比》는 《부류, 부문》의 뜻을 가진 고유어인 《주비》를 소리옮김하여 놓은것이다. 그러니 이 경우에 이 말을 완전한 한자어로 보기는 어려운것이다.

또한 우리가 만들어 쓴 한자성구의 경우에도 이런 문제가 제기될수 있다. 《鼠子無面(서자무면)》은 《쥐새끼가 없앤 곡식》을 의미하는데 《無面》은 본래 《면목이 없다》는 뜻의 말이지만 《面》의 뜻인 《 》과 《穀》의 뜻인 《낟》이 동음이의적관계에 있다는데 기초하여 만들어낸 말이다. 그리하여 저장할 당시보다 재고량이 감소된 경우에 쓰게 되였다. 이것 역시 우리 나라에서만 쓰이는것으로서 본래의 한자성구와는 다른것이다.

이처럼 한자어가 생겨나고 그 쓰임이 활발해졌으나 그 과정에 우리 말의 영향을 받아 변형되기도 하고 또 독자적인 쓰임에 의해서 한자어의 범위를 넘어서기도 하였는데 이 모든것은 우리 말에서 한자어는 일정한 제약성을 가지고있음을 말해주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19세기 후반기에 개화사상이 대두하고 사회정치적개혁을 요구하는 부르죠아개혁운동에 발맞추어 근대적인 문명과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지향이 점차 높아갔다. 이것은 언어에도 반영되여 어휘구성에서는 붕괴되여가는 봉건사회와 운명을 같이하는 낡은 어휘가 소극화되여가는 반면에 근대사회에 와서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반영하는 어휘들이 적극화되여갔다.

근대문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어휘가 생겨나는데서는 한자어가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리하여 근대사회에 와서 한자어사용의 비률이 일정하게 높아지게 되였다.

지난 봉건사회에서 량반통치계급에 의해서 한자어와 한문식표현이 거의 제한없이 사용되였지만 그것은 인민들의 언어생활과는 무관계한것이기때문에 그것으로 하여 우리 말이 그 어떤 큰 손상을 입게 되였다고 할수는 없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와서는 교육제도가 일정하게 개선되고 대중공보수단이 발달한 조건에서 새로 생겨난 한자어의 보급은 봉건사회의 경우와 다르다고 할수 있다. 즉 새로운 사회경제용어와 과학기술용어가 생겨나면 그것은 교육과 통신보도를 통하여 대중속에 전파되여가고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일정하게 자리를 잡게 되기때문이다. [1909년에 나온 《언문(言文)》에는 한자어가 생겨난 정형이 반영되여있다.]

ㅇ 개인, 자유, 인권, 법률, 교육, 산업, 상업, 공업, 기업, 국민, 약물학, 화학, 의학, 과학

이 한자어들은 인민들의 언어생활에서 일정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새로운 단어합성의 기초로 널리 리용되였다.

ㅇ 교육-가정교육, 사회교육, 산업교육

   사회-봉건사회, 노예사회, 법치사회

   국민-국민운동, 국민교육, 국민은행

또한 이 시기에는 앞붙이와 뒤붙이에 의한 새로운 파생어도 많이 생겨났다.

ㅇ 무-무권리, 무보수, 무책임

   전-전국민, 전세계, 전사회

   적-독립적, 세계적, 국가적

   성-예술성, 식물성, 자립성

이처럼 한자어는 더욱 다양해지는 사회생활을 반영하여 합성법, 파생법 등 여러 단어조성수법에 의해서 늘어가고있었다.

한자어는 해당 시대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 쓰이다가 새 시대에 와서는 력사어로 되여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새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만든 한자어가 이미 력사어로 되여버린 한자어와 우연히 일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이는것이다. 례를 들어서 《발명(發明)》은 《죄인이 자기자신의 무죄를 변명하는것》으로 봉건시대에 써왔는데 근대에 들어와서 새롭게 등장한 《발명》은 《새로운것을 생각해내다》의 뜻으로 쓰이는것과 같다.

이와 류사한것으로는 《방송(放送)》을 들수 있다. 리조때 이 말은 《죄인을 석방함》의 뜻이였는데 오늘 우리가 쓰고있는 《방송》은 그와 전혀 무관계하게 《전파로 보도, 음악, 문예물을 내보내는것》을 의미하고있다.

또 한자어의 여러가지 뜻에서 일부는 시대가 바뀌면서 전혀 생활력을 잃고마는 경우도 있다. 례를 들어서 《인정(人情)》은 《① 세상인심, ② 사람의 정, ③ 남에게 주는 선물》의 뜻을 가지고있어 봉건시대에는 《선물》을 흔히 《인정》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근대이후 《선물》의 뜻으로는 《인정》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있다.

근대이후에 생겨난 한자어가운데는 고전에 있는 한자성구를 줄여서 만든것이 적지 않은데 이 경우에 새로 생겨난 한자어는 본래와는 다른 새로운 뜻을 가지게 된다.

이것은 한자어가 한자문화와 접촉하는 과정에 만들어진것이라 하더라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그 조성과 의미에서는 일정한 특징을 가지고있음을 말해주는것으로서 한자어가 지니는 시대적제약성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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