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대원들

 

재봉대원들

 

김 명 숙

 

나는 1933년 5월에 항일유격대에 입대한후 계속 재봉대에서 공작하였다.

그때의 간고한 투쟁의 나날을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의 한토막 그것도 주로 나의 전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938년 음력 3월에 있은 일이다. 조선인민혁명군 제5사 4련대 후방부는 목단강부근 사도령자밀림속에 자리잡고있었다. 여기에서는 리봉수동무가 책임진 환자들이 치료를 받고있었고 안순화동무를 비롯한 3명의 재봉대원들이 군복을 만들고있었다.

음력 3월이라면 조선에서는 진달래가 피고 살구꽃이 한창일 때였으나 여기 사도령자밀림속에는 아직도 허리를 넘는 깊은 눈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이 눈때문에 적지않게 애를 먹고있었다. 그것은 눈우에 나는 발자국때문이였다.

기본부대와 멀리 떨어져있는 형편에서 후방부위치가 적들에게 발각당한다는것은 퍽 위험한 일이였다. 그러기에 유격대원들은 어떠한 흔적도 눈우에 남길세라 조심스럽게 행동하고있었다.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명령을 받고 우리가 남만으로 떠날 차비를 다그치고있던 때였다.

간악한 원쑤들은 어디서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방어력이 약한 이 후방부를 불의에 습격해왔다.

리봉수동무는 환자들을 급히 대피시키는 한편 후방물자들을 숨기라고 명령하였다. 조용하던 밀림속은 바삐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2대의 재봉기와 군복들을 눈속에 파묻고 그 자리를 지워버린 안순화동무는 전우들보다 늦어서 산릉선을 향해 눈속을 헤치고나아갔다.

적들은 벌써 우리가 숙영하고있던 초막부근으로 다가들고있었다. 그런데 환자들을 부축한 전우들은 눈속에서 안타까이 허우적거릴뿐 초막을 얼마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사태는 위급하였다. 전우들을 한시바삐 안전한 지대로 보내야 하였다.

미친듯이 총질을 하면서 달려드는 적들을 쏘아보고있던 안순화동무는 눈우에 엎드리자 적들을 향해 맞불질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눈속을 뚫고 전우들과는 반대방향으로 내뛰였다.

적들은 안순화동무를 발견하자 화력을 그에게로 집중하면서 뒤쫓아갔다. 나무가지에서 눈가루를 흩날리면서 무수한 총탄이 안순화동무의 귀뿌리를 울리며 지나갔다. 적들은 기관총까지 쏘아대고있었다.

(전우들아 빨리 피하라. 이제 나도 저놈들을 끌고다니다가 그곳으로 가마.)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으면서 안순화동무가 몇발의 탄알을 더 쏘고난후 앞으로 내뛰려고 할 때였다. 적탄이 그의 왼쪽허벅다리를 뚫고지나갔다. 안순화동무는 그만 눈속에 쓰러졌다. 흰눈은 삽시간에 붉게 물들여졌다.

까무라쳤던 안순화동무는 정신을 차리자 다시 앞으로 내기였다. 허벅다리는 뼈가 부서지는듯 저려났다. 눈우에는 붉은 띠를 늘여놓은듯 피자국이 길게 뻗어나갔다. 안순화동무는 몽롱해지는 의식을 가다듬어가면서 기고 또 기였다. 오직 그의 마음속에는 적을 더 멀리 끌고감으로써 전우들을 구출해야겠다는 일념이 불타고있을뿐이였다.

그러나 심한 출혈로하여 그는 얼마 못가고 또다시 쓰러졌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악에 받친 적들의 상판대기들이 눈앞에 안겨왔다. 그는 다급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탄알이 나가지 않았다. 탄알은 이미 떨어졌던것이다. 안순화동무는 총가목으로 적을 때려눕히려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적 한놈이 그의 뒤에서 달려들었다. 이것을 기회로 많은 적들이 쓸어들었다. 안순화동무는 적에게 체포되고말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적들은 재봉대가 놓여있던 초막앞에서 안순화동무를 문초하기 시작하였다.

《너는 무슨 일을 맡아하느냐?》

얼굴이 표독스럽게 생긴 《토벌대》대장인듯한 놈이 눈에 피발을 세워가면서 따져물었다.

《눈깔로 보고도 모르겠느냐. 나는 항일유격대의 재봉대원이다.》

안순화동무는 증오에 타는 눈길로 적을 쏘아보았다.

《흠! 항일유격대? 그래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갔느냐?》

《난 모른다!》

안순화동무의 두리에 모여섰던 적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놈들은 더 참지 못하여 총가목을 쳐들었다. 그러나 안순화동무는 태연하였다. 전우들이 멀리 빠져나갔다는것을 확인하게 된 그는 오히려 기쁘기만 하였다.

《바로만 말하면 다리도 고쳐준다. 그러나 감춰만 봐라. 네 목숨도 오래는 못간다.》

대장놈은 갑자기 말소리를 낮추면서 절반은 달래며 절반은 위협하는 어조로 말했다.

이러는 동안에 나머지 적들은 초막에 불을 질러놓았다. 불길은 삽시에 초막을 삼켜버렸다. 타오르는 초막을 바라보는 안순화동무의 머리속에는 전우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아침까지만 하여도 그들과 함께 그 초막에서 군복을 만들던 생각을 하자 안순화동무의 가슴은 터지는듯 하였다. 그러나 전우들만 무사하다면 자기 한목숨이 떨어진들 무엇이 두려우랴.

《이년, 입이 붙었느냐? 빨리빨리 말못해? 재봉기와 군복은 어디다 감췄느냐?》

대장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개대가리 같은 그놈의 상판은 악에 치받쳐 푸들거렸다.

《우리에겐 그런것이 없다.》

안순화동무는 한마디로 딱 잘라맸다. 그러나 대장놈의 등뒤 20m도 못되는 눈속에 재봉기와 군복이 감춰져있다는것을 안순화동무는 잘 알고있었다.

적들은 드디여 야수의 본성을 드러내놓았다. 놈들은 안순화동무에게 고문을 들이댔다. 불로 머리를 태우고 총창으로 온몸을 찌르면서 적들은 안순화동무에게서 비밀을 알아내려고 발광했다. 그러나 고문이 심하면 심할수록 안순화동무의 입은 더욱더 굳게 다물어졌을뿐이였다.

적들은 끝끝내 안순화동무에게서 아무런 비밀도 알아내지 못하고말았다.

발악하는 적들을 섬멸해치우면서 우리 부대가 초막부근으로 당도했을 때는 이미 안순화동무가 숨을 거둔후였다.

안순화동무는 자기 목숨으로 전우들과 군수물자를 구출했다.

안순화동무의 최후에 대한 소식은 삽시간에 온 부대내에 퍼졌다. 이 용감한 재봉대원의 이야기를 듣는 유격대원들치고 그 누가 격분하지 않았으랴.

《원쑤들아, 네놈들에게 어떤 무서운 불벼락이 안겨질지 아느냐? 우리는 귀중한 혁명동지를 잃었으나 네놈들에게 천백배 복수의 죽음을 주리라!》

우리는 그후 원쑤격멸의 한길에서 더욱 용맹스럽고 무자비하게 싸웠다.

 

*                  *

 

우리 재봉대원들은 명령수행에 있어서도 희생성과 영웅성을 발휘하였다. 다른 모든 사업에서도 그러하지만 재봉대사업에서도 명령받은 시간내에 일을 끝내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게 제기된다. 만약 이 시간을 준수하지 못하면 부대의 전투행동에 직접적인 지장을 줄뿐만아니라 만들어낸 군복도 부대에 전달되지 못할 경우까지 있을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재봉대원들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명령에서 제정된 시간을 어기지 않았다.

1937년 초봄의 일이다. 김성옥동무를 비롯한 4명의 재봉대원들은 련사흘동안 소금물로 간신히 목을 추겨가면서 낮에 밤을 이어 군복을 만들고있었다. 그들이 자리잡은곳은 부대와 멀리 떨어진 밀림속 초막이였다. 허기증과 졸음이 시시각각으로 조여들었으나 재봉대원들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점심녘이 훨씬 지난 밀림속 초막안에는 한줄기의 해빛이 흘러들고있었다. 이제 저녁녘이 되면 부대에서 군복을 가지러올것이다. 그러나 재봉대원들은 마음이 든든하였다. 이제 얼마안있으면 군복제작작업이 끝나기때문이였다. 힘에 겨운 임무를 완수해낸다는 기쁨으로하여 재봉대원들은 괴로움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군복을 마르고있는 민숙동무는 코노래까지 부르고있었다. 사흘을 먹지도 자지도 못한 그들이라고는 볼수 없으리만큼 모두 사기왕성하였다.

그런데 이때 초막아래 골짜기에서 총소리가 울려왔다. 재봉대원들은 일시에 재봉기를 멈춰세웠다. 초막안은 불시에 긴장해졌다.

성옥동무가 총을 쥐고 막 초막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선바위에서 망을 보고있던 전봉동무가 다급히 뛰여들어왔다.

《적이요. 한개소대가량 되는 적들이 골짜기로 올라오고있소.》

전봉동무는 숨이 차서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그는 중국출신의 녀대원이였다.

이러는데 또 한방의 총소리가 울려왔다. 뒤이어 여러방의 총소리가 무질서하게 났다.

《아무리봐도 우리 유격대원들이 적을 유인해가지고 밀림속으로 들어오는것이 틀림없어요.》

전봉동무는 숨을 돌리자 자기 의견을 말했다.

재봉대원들은 말없이 골짜기쪽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총성은 점점 가까와졌다. 몇방의 총소리가 나면 뒤이어 여러방의 총소리가 나군 하였다. 분명 얼마안되는 유격대원들이 많은 적과 싸우고있는것이 틀림없었다.

재봉대원들은 잠시 머뭇거렸다.

싸울것인가? 피할것인가?

적들이 올라오기전에 선바위를 차지하고 그놈들과 맞불질을 하면 모든것이 유리할것 같았다. 그러면 초막은 싸움판으로 변할터인데 나머지군복은 언제 만들어낸단 말인가.

(어떤 일이 있어도 명령은 제시간내에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성옥동무는 대원들에게 짤막하게 말했다.

《재봉기와 군복을 가지고 갈밭으로 내려가기요.》

적들이 수림속으로 들어온 조건에서 수림밖인 갈밭으로 내려가는것이 오히려 안전하다고 성옥동무는 생각했다.

재봉대원들은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옥동무는 총을 어깨에 메자 군복꾸레미를 머리에 이고 재봉기를 가슴에 안았다. 순간 눈앞이 아찔하고 머리가 핑 돌았다. 몸에서 진땀이 내솟기 시작하였다.

성옥동무는 이를 악물고 초막밖으로 뛰여나갔다. 전우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초막왼쪽 숲속으로 들어가자 산을 내리기 시작했다. 초막에서 한 500m가량 내려가면 진펄이 있었다. 진펄에는 갈이 무성하였다. 갈밭으로 잇닿은 내리막은 맨몸으로도 오르내리기 힘들 정도로 가파로왔다.

재봉대원들이 진펄 갈밭속에 들어섰을 때였다. 초막쪽에서 요란한 총성이 울리더니 앙칼진 쇠소리를 내면서 탄알이 갈밭속에도 와박혔다. 재봉대원들은 얼결에 진펄에 들어앉았다. 흙탕물이 그들의 하반신을 적셨다. 물은 뼈가 저릴 정도로 차거웠다. 겨울을 갓 지난 마른 갈대들은 더러는 부러지고 자빠졌으나 그래도 재봉대원들의 몸을 감추기에는 충분할만큼 무성하였다.

재봉대원들은 곧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들은 무릎우에 재봉기를 올려놓고돌렸다. 전봉동무는 총을 들고 갈밭속에 숨어서 망을 보고있었다.

탄알은 무시로 그들의 머리우를 지나갔다. 그러나 누구도 얼굴을 쳐드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재봉기를 돌리는데만 정신을 집중하고있었다.

얼마안되여 재봉대원들은 자기들의 몸이 점점 흙탕물속으로 끌려들어간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얼마안가서 흙탕물은 또다시 그들의 하반신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다시 자리를 옮겼다.

작업은 실로 어려운 가운데서 진행되였다. 그러나 살을 에이는듯한 차거운 흙탕물도, 무릎을 짓누르는 재봉기의 무게도 명령수행에 일떠선 재봉대원들의 투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저녁녘이 거의 되여갈무렵에야 작업은 끝났다. 재봉대원들은 산기슭 으슥진곳에 재봉기들과 군복꾸레미를 감춘 다음 총을 쥐고 초막쪽으로 올라왔다.

(만약 적들이 남아있다면 그냥 돌려보내지는 않으리라.)

재봉대원들은 울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경사지를 톺아올라갔다. 그들이 선바위에 이르렀을 때였다. 초막부근에서 귀에 익은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재봉대원들은 나무뒤에 숨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우리 유격대원들이였다. 그들은 로획한 무기들을 정리하고있는중이였다.

재봉대원들은 막 환성을 올리면서 그들에게로 뛰여갔다.

유격대원들은 자기들이 밀림속으로 오게 된 경위를 재봉대원들에게 이야기해주었다.

한개분대도 못되는 그들은 행군도중에 한개 소대가 훨씬 넘는 적들로부터 불의습격을 당했다.

그들은 부득불 적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적들은 자기의 우세한 력량을 믿고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유격대원들은 바위와 나무그루에 의지하여 싸우면서 적들을 밀림속으로 끌고들어왔다.

어느새에 그들은 재봉대원들이 자리잡고있던 초막부근에 이르렀다. 유격대원들은 초막을 발견하자 가슴이 뜨끔했다. 재봉대원들에게 피해가 미쳐서는 안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반나마 열려진 문을 통하여 초막이 비였다는것을 알았을 때 그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들은 선바위의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자 적들에게 치명적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적들은 더는 대항하지 못하고 많은 시체를 산속에 내버린채 도망쳐버렸던것이다.

그날저녁 식량을 짊어진 유격대원들이 초막으로 찾아왔다.

《참 장하오. 그 많은 군복을 제시간내에 만들어냈으니 인젠 부대는 안심하고 떠나게 됐소. 오늘 밤중으로 부대는 새로운 밀영지를 향해 떠나오. 자 어서 식사들 하우. 그리고 떠날 차비를 합시다.》

대원들을 책임지고 온 박동무가 이렇게 말했을 때 재봉대원들은 갈밭속에 들어가 작업을 계속한것이 그 얼마나 옳았는가를 재삼 느끼게 되였다. 그들의 가슴마다에는 재봉대원으로서의 영예와 긍지가 전에없이 세차게 파도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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