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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첫 녀성상
 

3. 영원한 생의 보금자리

 

3) 그 사랑 대를 이어

 

□ 조선의 첫 녀성상

 

조선인민은 결코 일제의 침략을 숙명적인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정의감과 애국의 피를 끓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투쟁을 벌렸다. 어떤 사람은 일제의 민족말살책동에 복종하지 않는것으로 반항하였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개인테로의 길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백두산에서 울려퍼지는 항일대전의 총성에 이끌려 유격대를 찾아 헤매이다 남의 나라 혁명에 발을 잠그고 그에 온 넋을 바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아버지가 가는 길이 다르고 자식이 걷는 길이 다르기도 하였다.

민족재생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해 일제가 격멸되고 나라가 해방되자 각이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 어버이의 품에 안겨들듯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하나의 작은 물방울과도 같은 애국심을 새 조선건설의 밑천으로 소중히 여기시며 한품에 안아 그것을 푸른 숲이 되게 가꾸어주시였다.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의 가까이에는 이러한 각이한 인생행로를 걸어 민족주의자가 된 허헌선생과 혁명가가 된 허정숙선생이 있었다. 허헌선생은 남쪽에서 들어왔고 그의 딸 허정숙선생은 중국에서 찾아왔다. 서로가 평양에서 만나자고 약속한것도 없었지만 각자 운명의 선택을 하고보니 서울에서 헤여진지 10년만의 뜻깊은 상봉이 되였다.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그들부녀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받는것을 시비해나서기도 하였지만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운 혁명동지로 존중하고 아끼며 크나큰 사랑과 은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허헌선생이 조국해방전쟁시기 적들의 폭격에 잘못된 후에는 그에게 못다 주신 사랑을 허정숙선생에게 그대로 돌려주시며 보람찬 삶을 누리도록 해주시였다.

전쟁의 포화가 멎자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의 《강대성》의 신화를 산산이 깨뜨려버렸으며 미제국주의자들에게 내리막길의 시초를 열어놓으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을 앞을 다투어 자기 나라에 초청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수락하시고 먼저 이전 쏘련을 방문하기로 하시였다. 이 정부대표단에 당시 문화선전성을 책임지고있던 허정숙선생도 포함되여있었다.

 

허정숙(1908. 7. 16-1991. 6. 5) 정치활동가

주체37(1948)년 9월부터 문화선전상, 주체46(1957)년 11월부터 사법상, 주체61(1972)년 7월부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주체70(1981)년 11월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주체37(1948)년 9월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1972. 12-1982. 2),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1978. 8-1991. 6),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1980-1989) 등의 직책에서 사업. 《김일성훈장》수훈자, 조국통일상수상자.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정부대표단이 이전 쏘련에 도착한것은 정전된 때로부터 아직 두달이 채 못된 9월 어느날이였다.

대표단을 맞이한 모스크바비행장은 환영일색으로 단장되여있었고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만세!》, 《승리한 조선인민 만세!》의 환호성으로 들끓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환영하여 이전 쏘련내각수상이 크레믈리에서 성대한 만찬회를 차리였다.

만찬회가 시종일관 화기에 넘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는 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연설을 마치신데 이어 대표단성원들을 한사람한사람 소개하시였다.

이름과 직책을 하나하나 소개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정숙선생의 차례가 되자 미소를 지어보이시며 좌중을 향해 말씀을 하시였다.

《문화선전상입니다. 조선의 녀성상입니다.》

순간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놀라와하는 기색이 력연하게 떠오르는것이였다. 그때까지 이전 쏘련도 그렇고 다른 사회주의나라들에도 녀성이 상의 직무를 맡고있는 나라가 없었던것이다.

그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여러분들은 녀자가 어떻게 국가사업의 한 부문을 맡아 지도하겠는가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이 동무는 제대로 잘하고있습니다.》

그러자 이전 쏘련의 당과 정부의 지도일군들은 모두 녀성상을 바라보며 열렬한 박수를 보내였다.

순간 허정숙선생은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머리를 숙였다.

그의 눈앞에는 첫 내각성원들을 발표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던 주체37(1948)년 9월 9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된 공화국의 첫 내각성원들을 발표하시였다. 수령님께서 문화선전성을 책임지도록 자기 이름을 부르실 때 허정숙선생은 잘못 듣지 않았나하여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해방전 반일지하투쟁에 참가하였다가 감옥살이도 하였고 나중에는 가정부인의 몸으로 다른 나라에 가서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 해방된 조국땅을 찾아온 자기를 탓할 대신 귀중한 인재인양 가까이에 두시고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국사업을 맡겨주시더니 이렇게 초대내각의 상이라는 무거운 직무를 맡겨주시니 참으로 꿈같은 일이였다.

아직은 자기가 어떻게 되여 그렇듯 커다란 중임을 맡게 되였는지 허정숙선생은 다는 모르고있었다.

첫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내각성원들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허정숙선생을 문화선전상으로 임명하는 문제가 제기되자 일부 일군들은 난색을 표시하였다.

어떤 일군은 녀성이 그와 같이 큰일을 담당할수 있는지 하는 우려를 표시하였고 또 다른 일군은 우리 나라보다 먼저 혁명을 한 형제나라에도 아직은 그런 전례가 없다고 하였다.

일군들의 이러한 의견을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사색을 더듬으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모든 문제를 일면적으로 보고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야기된 문제를 놓고보아도 그렇게 말할수 있습니다.

단순히 녀자라는것으로 하여 한 부문을 책임지고 지도할수 있겠는가 의문에 붙여서는 안되며 다른 형제나라에도 그런 실례가 없으니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겠는가 하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당과 혁명에 대한 립장이 투철하고 사업능력과 경험, 군중의 신망이 있는 일군이면 비록 녀성이라 하더라도 책임적인 직무를 능히 감당해낼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없으니 우리 나라에도 녀자상이 있어서 안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허정숙선생을 문화선전상으로 추천하시면서 그가 이 사업을 맡아하면 잘할것이라고 크나큰 믿음과 기대를 표시하시였다.

허정숙선생이 이 모든 사연을 알게 된것은 얼마후였다. 아버지 허헌선생이 초대내각부수상으로 임명된 김책항일투사로부터 그러한 사연을 전해듣고 딸에게 이야기해주었던것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아버지나 딸은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눈굽을 적시였다.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곡절많은 방황의 길을 걸어온 자기들부녀를 한품에 안아 새 조국건설의 앞장에 세워주신 믿음과 은덕이 너무도 고맙고 아름차서였다.

허정숙선생이 상으로 임명된 날 저녁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저택으로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에서 함께 일하게 되여 기쁘다고 하시면서 본래 선전사업을 하였으니 문화선전성사업이 그렇게 힘들지 않을것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가 맡은 문화선전사업은 범위가 넓고 복잡합니다. 그만큼 맡은 책임이 더 무겁습니다.

일을 더 잘하여 인민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하겠습니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사업할것인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때부터 허정숙선생은 날개라도 돋친것처럼 맡은 책임을 다하느라 뛰여다녔다. 사람들은 점차 그가 연약한 녀성이라는 생각을 잊게 되였으며 대장부취급을 하면서 자랑으로 여기게 되였다.

이 모든 생각에 그가 잠시 만찬회장의 분위기를 잊고있는데 이전 쏘련의 내각수상이 잔을 높이 추켜들며 자기 나라 말로 흥분된 어조를 담아 말하고 련이어 통역이 그의 말을 받아 큰소리로 웨쳤다.

《사회주의나라에서 첫 녀성상을 키우신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이시며 국제공산주의운동과 로동운동의 탁월한 활동가이신 김일성동지를 위하여, 조선동지들의 사업성과를 축하하여 축배를 들것을 제의합니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축배잔을 높이 들었다. 잔을 든 허정숙선생의 손은 격정으로 떨렸다.

잔을 가득 채우고 찰랑이는것은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바다이런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업에서도 생활에서도 대바르고 결단성이 있으며 강직한 허정숙선생을 이렇듯 건국의 초행길에서부터 곁에 두시고 일을 배워주고 운명을 지켜주시며 나라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허헌선생이 서거한 후로는 그에게 못다 주신 사랑과 은정까지도 다 합치여 허정숙선생이 사법상, 최고재판소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 당중앙위원회 비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부의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책임적인 직무에서 사업하도록 하시였으며 《김일성훈장》을 비롯한 국가최고표창을 다 안겨주시였고 생을 마치였을 때에는 애국렬사릉에 아버지 허헌선생과 나란히 세워주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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