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는 사람을 믿을줄 알아야 한다

  

혁명가는 사람을 믿을줄 알아야 한다

 

리  봉  록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은 새로운 국내진공작전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온갖 간난신고를 무릅쓰고 몽강현 남패자로부터 국경대안의 장백현 북대정자로 돌파해나온 피어린 항일대장정이였다.
 불과 대엿새 걸음이면 가닿을수 있는 거리를 《축지법》을 쓰며 《일행천리》하는 유격대가 100여일동안의 악전고투끝에야 마침내 가닿을수 있었던 고난의 행군의 엄혹성을 말과 글로는 다 표현할수 없을것이다.
 참으로 고난의 행군은 세계혁명전쟁사에 일찌기 없었던 간고한 투쟁으로서 결심품고 나선 사람이라 하여 누구나 다 해낼수 있는 그런것이 아니였다.
 나는 고난의 행군때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어서 그런 역경을 뚫고 끝까지 싸워이길수 있었던가 하는것이 지금도 놀랍게 생각된다.
 과연 그 승리의 비결이 무엇이였는가.
 그 비결의 하나가 바로 혁명동지들에 대한 그리고 인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믿음이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 경위중대가 부후물등판싸움을 치른 후였다.
 《토벌대》놈들을 대수림지대의 눈속에서 헤매이도록 따돌려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위중대로 하여금 적들이 도사리고있는 가재수집단부락의 턱밑에 들어앉아서 휴식도 하고 학습도 하면서 차후 행동준비를 갖추도록 하시였다.
 우리가 거처를 정한곳은 가재수부락이 빤히 바라보이는 자그마한 야산이였는데 동네에서 어찌나 가까운지 개짖는 소리까지 다 들리였다.
 하지만 등잔밑이 어둡다고 적들은 우리가 제놈들의《코앞》에 바싹 들어앉아서 여유작작하게 활동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하고있었다.
 우리는 남패자를 떠난 후 처음으로 밤에는 천막까지 치고 생활하면서 얼마간 피로를 풀수 있었다.
 그러나 식량이 문제였다.
 그래서 당시 경위중대 정치지도원이였던 내가 8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가재수마을로 내려가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량공작에 나갈 인원들이 확정되자 나를 부르시여 임무수행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식량공작을 잘하자면 지하조직을 찾아 련락선을 잇고 조직선을 타야 한다, 가재수부락에는 김일동무가 꾸려놓은 지하조직이 살아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먼저 물방아간주인을 만나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전에 가재수지하조직이 마을사람들의 원군활동을 잘 조직하였다고, 우리는 가재수마을에서 식량을 비롯하여 많은 원호물자들을 받았다고, 가재수마을의 지하조직이 물방아간을 장악하지 않고서는 그렇게 많은 량곡을 해결할수 없었을것이라고, 그러니 물방아간주인을 믿고 그를 통해서 지하조직을 찾고 식량을 해결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물방아간주인이 믿음직한 사람이면 그를 내세워 안가성을 가진 농민과도 련계를 가지라고 하시였다.
 그 농민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다른 인연을 맺고계신 지하조직원이였다.
 언제인가 그의 아버지가 산림대에 랍치되였었는데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림대두령에게 친히 편지를 써보내시여 그의 아버지를 구원해주시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사연을 알려주시면서 그 지하조직원을 직방 찾아가 만났으면 좋겠지만 그의 행방을 딱히 모르기때문에 아무래도 물방아간주인을 먼저 만나보는것이 상책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지금 많은 지하조직들이 피해를 입고 련락선이 끊어졌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사람들을 믿을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을 믿지 않고서는 지하조직을 복구할수 없고 식량문제를 해결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나는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인민들을 더욱 굳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민들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우리가 이 역경에서 살아남을수도 없고 혁명을 계속해나갈수도 없다,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유일한 출로가 바로 인민들을 믿고 인민의 힘에 의거하는것이라고 뜻깊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당시로 말하면 《혜산사건》과 그후 더욱 악랄하게 감행된 일제의 백색테로로 인하여 수많은 지하혁명조직들이 파괴되고 《열하원정》에 나섰던 항일련군부대들이 심대한 손실을 당하였으며 혁명의 사령부를 모해압살하려는 원쑤들의 간악한 책동이 극도에 이른 준엄한 시기였다.
 그렇다고 하여 의심을 앞세우면서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면 어디 가서 쌀 한알 구할수도 없고 물 한모금 마음놓고 마실수도 없을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나는 신심에 넘쳐 대원들과 함께 만단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한 대원이 왜놈군복을 한두어벌 가지고가자고 하였다. 물방아간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조건에서 적군으로 변장하고 검열해보자는것이였다.
 나는 좋은 의견이라고 하면서 그자리에서 찬성했다. 우리들의 활동이 사령부의 안전과 직접 련관되여있는것만큼 경각성을 높이는것은 응당한것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것은 인민을 믿지 못하는 편협한 생각이라고 엄하게 책망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동무들이 적들속으로 정찰을 나간다면 적들의 군복으로 변장할수 있다, 그러나 인민들을 믿고 인민들의 도움을 받으러 가는데야 왜 왜놈군복을 입고가겠는가, 그것은 항일유격대를 하늘처럼 믿고있는 인민들을 모욕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물론 정세가 정세니만큼 경각성을 높이는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우선 사람을 믿고 실천을 통하여 검열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후 물방아간주인과 사업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이 얼마나 정당한것인가를 페부로 절감하게 되였다.
 사실 물방아간주인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철하게 예언하신것처럼 가재수마을 조국광복회조직의 한 성원으로서 원군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한 좋은 사람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고록에서 상세히 언급하시였지만 물방아간주인과의 첫 대면은 매우 인상적이였다.
 가재수물방아간은 우리가 있는 야산에서 멀지 않았다.
 그러나 숙영지를 로출시키지 않기 위해 가재수물곬을 따라 20~30리 내려갔다가 다시 거슬러오르다나니 눈길에 숱한 고생을 하게 되였다. 그렇게 하고서도 물방아간으로 직접 가지 않고 독산에 거처를 정하고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독산은 가재수마을을 가운데 두고 우리가 숙영하고있는 야산과 마주서있는 산이였다. 우리는 거기서 적정을 확인하고 깊은 밤에 물방아간에 내려가 주인을 만났다.
 나는 산에서 싸우다가 적들의 《토벌》이 심한데다 식량까지 떨어져서 이렇게 인가를 찾아왔다고 자기 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물방아간주인은 눈살이 꼿꼿해서 그래 귀순하러 왔는가고 하였다.
 내가 미처 대답을 못하고 서있는데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나를 지켜보다가 산에서 고생이야 막심하겠지만 그렇다고 귀순해서야 되겠는가, 나라를 찾자고 일단 총을 잡았으면 끝까지 싸워서 끝장을 보아야지 중도에 주저앉아서야 되겠는가, 고생스럽더라도 귀순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의 말을 들으니 가슴속에서 불뭉치가 올리미는것만 같았다.
 그는 왜놈들이 유격대가 다 죽었다고 말같지 않는 소리를 하지만 자기는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 위대한 수령님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장군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는 잘 알수 없지만 지금도 인민혁명군을 령솔하시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며 왜놈들을 족치고계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물방아간주인은 기세가 올라서 장군님께서 건재하시여 혁명군을 이끄시는데 그래 당신이 귀순한다는게 말이 되는가고 하면서 귀순하지 말라고 거듭 권고하는것이였다.
 나는 그를 와락 부둥켜안고 고맙다고, 장군님만 믿고 따르는 그 마음에 꼭 보답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식량공작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게 되였으며 안동무를 비롯한 지하조직성원들을 찾아 조직선도 다시 살리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임무수행정형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만족해하시면서 그것 보라, 우리 인민은 그렇게 좋은 인민이다, 그런 인민을 믿지 않는 사람은 혁명가로 될수 없다, 그런 인민의 지지를 받기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은 인민에 대한 믿음이 혁명가들이 지녀야 할 신념과 립장으로 되여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높은 뜻을 가슴깊이 새기지 못한데로부터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였다.
 가재수마을에서 식량공작을 계속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나는 하나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였다.
 나와 함께 식량공작을 다니던 리호림이 변절한것이였다.
 그것은 설명절전야에 있은 일이였다.
 가재수마을사람들은 설명절을 맞으면서 원군물자들을 마련해놓고 련락을 보내왔다.
 나는 그 사실을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을 데리고가서 원군물자들을 받아오라고 하시면서 그곳 인민들에게 설인사를 전하라고 당부하시였다.
 나는 3명의 대원들과 함께 지체없이 길을 떠나 독산의 련락지점에서 마을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예상외로 물자가 많아서 우리 힘으로는 다 운반할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령부에 필요한 물자들을 따로 골라 두 대원에게 지워보내면서 인원을 더 보내달라고 련락을 띄웠다.
 나는 리호림을 데리고 남아서 운반해갈 물자들을 지키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나는 마을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련락지점으로 내려가면서 그에게 산우로 올라가 경계근무를 서라고 하였다.
 그때 사달이 났다. 리호림은 경계근무를 서러 가는척하면서 내가 보지 못하게 산뒤경사면으로 넘어가 곧장 내빼고말았던것이다.
 사람들을 만나고와서 뒤늦게야 이것을 알게 된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만 같았다. 사령부의 안전이 걱정되여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어찌하여 그 더러운 놈의 도주를 미연에 막지 못하였는가.)
 죄책감으로 몸부림치는 나의 가슴은 막 터져나가는것 같았다.
 나는 허리치는 눈길을 헤치며 사령부로 달려갔다. 빨리 이 비상사태를 알려서 대책을 취하게 해야 한다는 오직 그 하나의 생각으로 달리고 달리였다.
 달린다고 해야 생각뿐이지 생눈길에 걸음발이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그때의 황급하던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리호림의 도주사건으로 사령부의 안전이 위태롭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가재수뒤산을 떠나 가재수의 적들이 포대우에서 빤히 내려다보는 개활지대를 대낮에 강행군으로 돌파하도록 명령을 내리시였다.
 포대의 적들은 력량상 렬세한데다 우리의 기세에 압도되여 감히 어쩌지를 못하였다.
 이렇게 일단 위기를 한고비 넘기였지만 그때부터 나는 저도 모르게 사람들을 잘 믿지 못하는 나쁜 습성이 생기게 되였다.
 도주한 리호림이 자꾸 생각나면서 또 그런 일이 생길가봐 우려를 금할수 없었다.

지방공작이나 단독임무수행에 필요한 인원들을 선발할 때면 이사람저사람 자꾸 저울질하게 되였다.
 오백룡중대장이 그러지 말라고 충고를 주었으나 나는 오히려 그에게 경각성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하군 하였다.
 경위중대정치지도원의 사업에서 나타난 이런 편향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르실수 없었다.
 그이께서는 나를 부르시여 요즘 동무의 사업에 대해서 의견들이 제기되는데 어찌된 일인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내가 생각하고있던 문제들을 솔직하게 아뢰여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말을 들으시고 리호림은 국내에서 왔다고 해서 우리가 남달리 사랑하고 믿어주었는데도 난관을 이겨내지 못하고 우리를 배반하였다, 그런자들이 대오에서 없어진것은 몸에 붙었던 군더더기가 떨어져나간것이나 같다, 아까울것도 없고 두려울것도 없다, 물론 경위중대에서 도주자가 생긴것은 일찌기 없었던 일로서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구데기 무서워서 장을 못담그겠는가, 우리는 투쟁을 계속해야 하며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가는 사람을 믿을줄 알아야 합니다. 혁명은 사람을 위한것이고 사람이 하는것입니다. 사람을 믿지 않는 사람은 혁명을 할수 없으며 난관을 이겨낼수 없습니다.
 그러시고는 물레방아간주인한테서 《교양》받던 일을 잊었는가, 아무렴 물레방아간주인처럼 좋은 사람이 많지 리호림같은 너절한 인간이 더 많겠는가, 믿으라구, 동지들을 믿고 인민들을 믿으라구, 혁명가에겐 믿음이 무기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확 열리고 온몸에 새힘이 용솟음침을 느끼였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행동하였으며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가 하는것이 깊이 깨우쳐지면서 자책감을 금할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한때는 자기를 믿어주는가, 안믿어주는가 하는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이면서 곡절도 겪은적이 있었다.
 《민생단》혐의를 받고 소대장에서 강직되여 남모르게 한숨쉬며 고민하던것이 먼 옛날의 일이 아니였다.
 나는 사령부친솔부대에 와서야 비로소 억울한 루명을 벗고 새 출발을 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민생단》혐의를 받았던 나의 지난날을 백지화하시고 나에게 경위중대정치지도원의 책임적인 사업을 맡겨주시였던것이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이 너무도 고마와서 흐느껴우는 나를 달래이시면서 그이께서는 나는 동무에게 《민생단》인가 아닌가를 묻지 않았다, 그러나 동무는 실천으로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하였다, 나는 동무를 믿는다, 믿기때문에 경위중대정치지도원의 사업을 맡긴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혁명하는 우리에게는 제일 귀중한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없으면 동지도 없고 동지가 없으면 혁명도 없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날에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망각하고 대오안에 불신의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는 편협한 행동을 한 자신을 용서할수 없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당조직앞에서 자기비판을 하고 잘못을 고치며 동지들에게 잘못을 빌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동지를 믿지 못하는것은 사령관을 믿지 못하는 행동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고난의 행군》의 간고하고 준엄한 나날에 우리 인민과 혁명전사들을 이렇게 믿어주시였다.
 이 위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사나운 칼바람, 눈보라속에서도 추위를 이겨냈고 며칠씩 낟알구경을 못하면서도 배고픔을 참아냈으며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호의호식을 바라지 않았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원쑤들의 유혹에 미련을 가지지 않았으며 한발자욱만 내짚으면 《안식》이 차례지는 배신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는 한몸이 그대로 육탄이 되여 사령부를 결사옹위하고 혁명적지조와 의리를 목숨으로 지켰으며 《고난의 행군》에서 영예의 승리자로 될수 있었다.
 오늘 우리 인민은 일찌기 항일의 준엄한 나날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시였던 한없이 숭고한 믿음을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은혜로운 품속에서 그대로 받아안고있다.
 이것은 대를 이어 수령복을 누리는 우리 인민만이 받아안을수 있는 행복이며 영광이다.
 우리는 이 숭고한 믿음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위대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따라 주체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더욱 억세게 싸워나가야 할것이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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