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군중규률을 유격대의 철칙으로 세우시고

  

혁명적군중규률을 유격대의 철칙으로 세우시고

 

고  현  숙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혁명투쟁시기에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라는 혁명적구호를 제시하시고 군민일치의 고귀한 전통을 마련해주시였다.
 그 나날에 꽃피여난 군민일치의 미풍에 대한 가슴뜨거운 무수한 이야기들은 아무런 국가적후방도 정규군의 지원도 없는 간고한 조건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의 100만대군과 맞서 싸워이길수 있은 중요한 비결의 하나가 무엇인가를 생동한 사실로 보여주고있다.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 내가 소왕청유격구에서 직접 목격한 사실도 바로 그러한 이야기들중의 하나이다.
 주체22(1933)년초에 유격대에 입대한 나는 왕청2중대에서 작식대원으로 공작하게 되였다.
 험난하고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의 나날 언제나 그러하였지만 그때에도 식량문제는 유격대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들중의 하나였다.
 유격구창설초기만 해도 식량문제는 유격구와 적통치구역사이에 있는 중간지대들에서 농사를 지어 적지않게 해결하였다.
 그리고 적의 후방물자수송대를 치거나 식량창고를 털어 해결하기도 했고 반유격구의 혁명조직들을 통하여 식량을 사들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와서 일제는 갓 창설된 유격구를 그 요람기에 압살하려고 봉쇄정책을 쓰면서 한알의 식량도 유격구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악착하게 단속하였다.
 그리하여 미리 장만하였던 겨울나이식량을 다 소비한 다음에는 많은 유격대원들이 적통치구역에까지 나가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공작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식량난은 누구나 다 겪는 일이였지만 그중에서도 우리 작식대원들의 고충이 더하였다.
 더우기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왕청 셋째섬에 자리잡고있는 우리 중대에 자주 내려오시였는데 오실 때마다 그이께 풀죽밖에 쑤어드릴수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럴 때면 우리 작식대원들은 속이 한줌만 해서 얼굴조차 쳐들지 못하고 한쪽구석에 가앉아 눈굽을 적시였으며 중대지휘관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가고 가슴을 두드리며 호소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또 유격대원들이 다문 얼마간의 낟알이라도 얻어오기 위해 수십리길을 다녀오군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그날도 중대에서는 두명의 대원을 적통치구역에 식량공작을 내보냈다.
 당장 가마에 맹물을 끓여야 되였던 나는 다문 얼마의 낟알이라도 꼭 구해오라고 떠나는 그들을 붙잡고 신신당부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적들의 경계가 하도 심하여 좀처럼 식량을 구할수 없었다.
 (어떻게 할것인가, 중대에서는 지금쯤 우리가 식량을 구해가지고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있겠는데…)
 하지만 임무를 받고 떠나올 때 언제까지 돌아오라는 정해준 날자가 있어 그들은 하는수없이 그대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돌아오는 두대원의 발걸음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자기들을 보고 실망할 동무들을 생각하니 그들은 눈앞이 다 아뜩해졌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오는 길에 가을한 감자밭을 하나 보게 되였다.
 산비탈 나지막한 언덕받이에 남의 눈을 피해 심어놓은 감자밭인데 때가 때인지라 겨울을 난 밭에서 이삭주이를 할 감자 한알 찾아볼수 없었다.
 그렇지만 걱정을 안고 돌아오던 그들에게 그것은 한가닥 희망을 안겨주었다.
 (여기서 언감자 몇알이라도 주어가지고 가자.)
 그들은 아직도 녹지 않은 언땅을 뚜지며 한알두알 언감자를 캐나갔다.
 그러다가 그들은 감자밭 한 모퉁이에서 우연히 감자움을 발견하였다.
 이 일대의 농민들이 추위가 닥치기전에 서둘러 감자를 캐서는 밭머리에 묻어놓았다가 후에 가져가려고 만들어놓은 감자움인데 미처 다 실어못가고 아직도 적지 않은 량의 감자가 남아있었다.
 뜻밖의 《횡재》에 그들은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다가 서둘러 감자임자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사방 둘러봐야 인가는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길손들도 없는 무인지경에서 감자임자를 찾는다는것은 막연하였다.
 언제 나타날지도 모를 그 임자를 무한정 기다리고 있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하는수없이 두 대원은 감자를 한짐씩 걸머지고 중대로 돌아오고말았다.
 그들이 빈손으로 돌아오면 어쩌나 하고 속이 한줌만해서 기다리던 우리 작식대원들은 감자배낭을 받아안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때마침 우리 중대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와계시였는데 그이께 감자라도 대접해드릴수 있었기때문이였다.
 그런데 그들의 식량공작이 위대한 수령님께 커다란 걱정을 끼쳐드릴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날 중대사업을 지도하시다가 중대장을 통하여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 식량공작을 나갔다온 두 대원을 부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에게 감자를 구해가지고 오게 된 경위에 대해 다시금 구체적으로 물어보시였다.
 대원들은 식량공작에서 실패하고 돌아오다가 감자를 지고 오게 된 자초지종을 그대로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더니 따뜻하면서도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물론 굶고있을 중대성원들을 생각하여 그리고 감자움의 주인을 찾아갈 형편이 못되여 감자를 거저 가져오게 된 동무들의 심중을 충분히 리해할만합니다. 그러나 우리 유격대에는 어떤 역경과 환경속에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하나의 엄격한 규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혁명적군중규률입니다.
 그러시고는 우리가 식량을 해결하는데서 적군의 후방물자들을 빼앗거나 친일지주들의 식량은 몰수해야 하지만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인민들의 재산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 물론 인민들로부터 식량을 구입할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반드시 그 값을 후하게 치러주어야 한다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고 유격대안에 세워진 이러한 혁명적규률은 나나 동무들이나 그 누구를 물론하고 추호도 어길 권리가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제서야 자기들이 실책을 범했다는것을 느끼게 된 대원들은 머리를 떨구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식량사정이 좀 어렵다고 하여 인민들의 재산에 손을 댄다면 우리가 무슨 인민을 위한 군대이고 혁명을 위한 군대라고 하겠습니까.
 우리가 만약 인민들의 리익을 조금이라도 침해하는것을 허용한다면 유격대는 인민대중의 지지성원을 받을수 없게 되며 그렇게 되면 결국 군중적지반을 잃고 혁명투쟁에서 승리할수 없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할 때 어느 한순간도 인민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유격대의 명칭속에 《인민》이라는 고귀한 두 글자를 반영한것이며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혁명적구호를 내건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굶어죽고 얼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인민들의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인민의 아들딸들로 구성되여있고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싸우는 우리 유격대의 철칙입니다.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엄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심중한 결함을 범했는가를 뼈저리게 뉘우치며 눈물을 머금고 말씀드렸다.
 《장군님의 뜻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군중규률을 위반한 저희들은 유격대원의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를 처벌해주십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결함을 진심으로 깨달았으면 됐다고 하시면서 그들에게 감자움의 주인을 꼭 찾아서 감자값을 후하게 치러준 다음 깊이 사과하고 돌아오라고 과오를 시정하기 위한 방도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나온 그들에게서 이 사실을 전해듣고 나는 실로 생각되는것이 많았다.
 설사 굶어죽고 얼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인민의 재산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뜻이고 진정한 인민의 군대로서의 항일유격대의 철칙임을 다시금 가슴깊이 새겨넣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유격대의 군중규률이 얼마나 커다란 생활력을 나타내는가를 나는 감자값을 치러주고 돌아온 동무들을 통하여 잘 알게 되였다.
 두 대원은 감자움의 주인을 찾아 다시 떠났다.
 적《토벌》대와 밀정들이 곳곳에서 싸다니고 놈들의 경계가 이만저만 아니였지만 그들은 감자움부근의 숲속에 몸을 숨기고 감자임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하루가 지나고 또 다음날 어둠이 깃들도록 감자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수없이 그들은 그전에 련계가 있던 부근마을의 반일회조직성원을 찾아가 전후사연을 이야기하면서 그 감자밭임자를 꼭 찾아줄것을 간절히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반일회조직을 통하여 끝내 그 감자움주인을 만나게 되였다.
 감자움주인은 감자값을 내놓으며 자기들의 잘못을 깊이 사죄하는 두 대원을 보고 펄쩍 뛰였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도 농민협회 성원인데 유격대를 도와야 할 의무가 있지 않는가, 산에서 고생하는 유격대원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도리여 감자값을 받다니 그게 어디 될말인가고 하면서 그는 한사코 감자값을 사양하였다.
 두 대원 역시 인민의 재산을 털끝만치도 다쳐서는 안된다는것은 장군님께서 세우신 우리 항일유격대의 규률이라고 하면서 양보하지 않았다.
 끝내 감자값을 받게 된 주인은 떠나는 대원들에게 감동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정말 자네들이야말로 우리 백성들을 위한 인민의 군대일세. 김일성장군님유격대를 위해서라면 내 무엇을 아끼겠나. 부디 고맙다는 인사를 장군님께 전하여주게.》
 유격대에서 감자값을 보내여왔다는 소식은 삽시에 그 일대 인민들속에 퍼졌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우리 중대에서는 군중규률을 위반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으며 항일유격대의 모든 부대들에서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지키는것을 어길수 없는 철칙으로 삼게 되였다.
 혁명적군중규률이 철저히 세워짐으로써 우리 유격대는 인민들의 적극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으며 일제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속에서도 유격구를 몇년동안이나 사수할수 있었으며 불패의 력량으로 자라날수 있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첫 시기에 유격대오안에 세워주신 혁명적군중규률의 고귀한 전통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군민일치의 화원으로 더욱 활짝 꽃피고있다.
 군대와 인민이 혈연적관계로 한마음한뜻이 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과 군대를 당할 힘은 이 세상에 없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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