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이의 슬하에서 공청사업을 배웠다

  

나는 그이의 슬하에서 공청사업을 배웠다

 

조  동  욱           

 

내 나이 어느덧 80고개를 넘어섰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자꾸 먹어가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으며 공청사업을 하던 나날들이다.
 내가 위대한 수령님을 가까이 모시고 공청사업을 시작한것은 주체21(1932)년 가을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내가 북만에서 공청사업을 하다가 40여명에 달하는 구국군무장인원을 이끌고 갓 왕청으로 나왔을 때였다.
 나는 14살때 좌경모험주의자들이 일으킨 5.30폭동에 참가했다가 장학량군벌에게 체포되여 할빈감옥에서 1년반동안 옥중생활을 할 때 동지들의 보증으로 공청에 가맹하였다.
 출옥후 녕안현에서 공청생활을 하였으며 그후에는 구국군부대에 파견되여 공청사업을 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나를 불러주시여 리광별동대의 공청간사로 임명해주시고 녕안에서 나온 무장인원들을 그 별동대에 소속시켜주시였으며 대원들을 북만에 파견하여 가족들까지 데려오게 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신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사랑에 보답해나갈 결심을 안고 나는 공청사업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런데 공청사업을 심화시켜나가자니 걸리는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그것은 우선 유능한 공청일군이 부족한것이였다.
 그 당시 유격구안의 공청원들 거의 전부가 문맹자가 아니면 국문해득 정도였다.
 소학교나 중학공부를 좀 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으나 다양한 환경에서 청년들과의 사업을 능숙히 조직하고 처리할만한 능력을 가진 공청간부는 별로 없었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청년사업경험이 어리고 제기된 문제를 분석하고 처리할만한 정치적식견도 부족하였다. 지어는 우리 청년들이 왜 자기 조직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똑똑한 개념도 없이 일하고있는 형편이였다.
 그런데다가 현의 책임적인 자리에 틀고앉은 일부 종파분자들이 공청사업을 이모저모로 방해하고있는 실정에서 나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겠는지 옳바른 목표와 방향이 없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던 주체22(1933) 년 2월하순 어느날이였다.
 나는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다시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된 나는 그이께서 류숙하고계시는 리로인의 집으로 달려갔다.
 내가 리로인의 집 마당에 들어서니 기다리고있은듯 친솔부대의 한 지휘성원이 반갑게 맞아주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정중히 인사를 올리였다.
 하시던 일을 미루시고 자리에서 일어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애에 넘치신 음성으로 기다렸습니다. 어서 오시오. 내 동무를 벌써 만나본다는것이 좀처럼 시간을 낼수 없어 오늘에야 이렇게 불렀습니다. 몇달만에 동무를 다시 만나니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시며 나의 손을 굳게 잡고 흔들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나에게 앉을 자리까지 잡아주시며 그동안 앓지는 않았는가, 북만에서 함께 나온 동무들은 다 잘있는가, 북만에서 가족들은 다 데려왔는가를 일일이 물어주시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가슴후더워옴을 금치 못하면서 북만에서 나온 40여명의 동무들이 모두 건강한 몸으로 유격대생활을 잘하고있다는것과 우리의 가족들모두가 수령님께서 취해주신 조치에 감격을 금치 못해하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이때 소왕청유격구 쏘베트회장을 비롯한 여러명의 사람들이 들어섰다.
 그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을 오라고 한것은 소왕청유격구안의 구체적인 형편에 대하여 들어보기 위해서였다고 하시면서 먼저 나에게 형편이 어떤가고 물어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물으심에 나는 유격구안의 형편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공청사업에서 애로로 느끼고있었던 문제들까지도 죄다 말씀드리였다.
 한사람한사람 다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일일이 의견을 주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일찌기 길림에서 공청사업을 지도하실 때 얻으신 자신의 귀중한 경험을 재미있게 들려주시면서 공청사업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공청일군들자신이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로선과 방침으로 튼튼히 무장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일제침략자들의 군사정치적공세가 날로 강화되고 혁명대오안에 기여든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의 반혁명적책동이 로골화되고있는 조건에서 공청일군들이 먼저 우리 혁명의 지도리론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사업에서 혁명적원칙을 철저히 지킬수 있고 공청사업을 우리의 의도에 맞게 발전시켜나갈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현시기 공청사업에서 결함들이 나타나고있는것도 결국은 공청일군들이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으로 철저히 무장하지 못한데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유격대와 유격구안의 청년들가운데서 검열되고 단련된 좋은 청년들을 공청조직에 적극 받아들이고 조직생활과정을 통하여 교양할데 대한 문제, 공청원들과 청년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에 주신 가르치심을 들으며 나는 많은것을 느끼게 되였다.
 유능한 공청일군이란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것이 아니라 우리 혁명의 지도사상과 지도리론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실천활동에 구현해나갈 때 비로소 공청사업을 탈선없이 이끌어나갈수 있다는것, 그리고 정치실무적자질이 낮게 되면 좌경관문주의를 일삼는 종파사대주의자들의《지시》도 옳게 가려보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받아물게 된다는것을 심각하게 깨닫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청을 비롯한 여러 현들에서 반일인민유격대에 대대를 내오고 그에 따라 대대당위원회와 대대공청위원회를 조직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왕청유격대에도 대대당위원회와 대대공청위원회가 조직되여 자기 사업을 진행하게 되였는데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에 의해 내가 대대공청비서로 선거되여 일하게 되였다.
 나는 공청일군의 자질을 갖추어나가도록 따뜻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또다시 높은 정치적신임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믿음을 가슴에 안고 우리 혁명의 지도리론으로 튼튼히 무장하기 위한 사업에 힘을 넣으면서 종파분자들의 책동이 우리 공청사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벌려나갔다.
 이 시기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유격구의 각급 공청단체들에서는 공청대렬을 확대하는데서 좌우경적편향이 우심하게 나타나고있었다.
 이자들은 나이가 어리거나 출신이 걸린다고 하면서 공청에 들고싶어하는 사람들을 따돌리였고 소박한 로농청년들은 무식하다고 외면하였으며 농민협회, 반제동맹, 혁명호제회, 소년선봉대에서 조직생활을 충실하게 해온 청년들까지도 공청조직에 잘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왕청의 한 청년은 쏘베트정부의 좌경적시책으로 자기 집 부림소가 몰수당한것이 원인으로 되여 공청가맹이 거절되는 형편이였다. 그리하여 어떤 지역들에서는 100여명을 망라한 군중단체에 공청원이 고작 3~4명밖에 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와 반대로 어떤 공청조직들에서는 공청조직을 확대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파악도 없고 준비도 되지 않은 청년들을 무원칙하게 받아들이고있었다. 그리하여 동향, 동창, 친척, 친우 등의 안면정실관계를 타고 이색분자들과 불순분자들, 우연분자들, 동요분자들이 대렬내에 망탕 끼여드는 등 우경적편향이 심하게 나타났다.
 이런 좌우경적편향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적들의 발악적책동에 대처하여 항일무장투쟁을 더욱 확대발전시켜나갈것을 요구하는 당시의 정세에 맞게 공청사업을 빨리 발전시킬수 없다고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3월말 소왕청 마촌에서 공청일군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사업을 개선강화하기 위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3일간 진행된 회의의 마감날에 하신 이 력사적인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청사업에서 발로되고있는 좌우경적편향들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시고 각급 공청단체들이 청년들속에서 사상교양사업을 개선강화할데 대한 문제, 공청단체들이 아동단사업을 책임적으로 지도할데 대한 문제, 공청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사업태도를 결정적으로 개선할데 대한 문제 등 공청일군들이 지침으로 삼아야 할 활동방향과 방도를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왕청에서 진행된 공청일군회의후 비로소 우리 왕청유격대 공청사업도 옳바른 목표를 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고 의도하시는대로 진행될수 있게 되였다.
 나는 회의에서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관철하기 위한 공청일군들의 실무강습을 즉시 조직하고 여기서 대책적문제들을 토론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말공부와 문서놀음으로 세월을 보내던 종래의 낡은 습성을 버리고 아래에 내려가 공청원들도 자주 만나보고 모임이나 회의 같은것도 열고 사업계획도 세워주면서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근기있게 밀고나갔다.
 언제나 공청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공청일군들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늘 료해하시면서 나타나는 편향들을 제때에 바로잡아주군하시였다.
 그때 공청일군들은 젊은 혈기에 무슨 일에서나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내밀기만 하다나니 본의아니게 이러저러한 결함들을 발로시키군하였다.
 나 역시 공청일군회의에 참가한 이후부터는 공청사업을 한번 본때있게 해보겠다는 욕망을 앞세우던 나머지 방법상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였다.
 이해 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일부 부대를 친솔하시고 적구에 나가계시는동안에 나는 어떤 조건에서도 공청원들을 믿고 부족점들을 해설과 설복의 방법으로 고쳐줄 생각은 못하고 원칙일면만을 내두르면서 청년들을 무턱대고 의심하고 욕설추궁하는 식으로 사업을 거칠게 하였다.
 유격대안의 공청원들속에서 전투에 나가 비겁성이 좀 표현되여도 그렇고 보초를 서다가 졸거나 무기관리를 잘하지 못해도 그렇고 그 과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들의 준비정도도 고려함이 없이 중대공청지부회의를 열고 날카롭게 비판하게 하였다. 어떤 때에는 결함이 엄중하다고 하여 《민생단》작용이라고 을러대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면 공청조직안에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서로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대오의 통일단결에 지장을 줄수 있다는것을 나는 그때까지도 깊이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 7월 어느날 적구에 나가셨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령부로 돌아오시였다.
 유격구의 한 일군을 통하여 그동안의 유격대사업실태를 하나하나 료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사업에서 발로되고있는 이런 결함들을 아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날 나를 불러주시였다. 내가 사령부로 가니 그이께서는 나를 반가이 맞아주시며 그동안의 사업정형을 알아보자고 불렀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그이께 내가 그동안에 한 사업에 대하여 빠짐없이 보고드리였다.
 나의 보고를 끝까지 다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요사이 왕청유격대 공청단체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있다고, 그러나 동무의 사업에서는 한가지 시정하지 않으면 안될 결함이 있는데 그것을 시정하면 더 큰 성과를 거두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공청사업을 잘하자면 비판사업도 강화해야 하지만 공청원들에 대한 교양사업을 청년들의 심리와 특성에 맞게 잘하는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청년들은 새것에 민감하고 용감할뿐아니라 가르치면 배운대로 행동하는 솔직하고 아름다운 특성을 가지고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공청생활자체를 청년들의 학교로 되게 전개할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내가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는데 친자식을 타이르시듯 나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음성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이께서는 교양사업은 하지 않고 공청원들이 일을 하다가 과오를 좀 범했다고 하여 《민생단》감투부터 씌워놓고 몰아대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하면 공청원들이 조직을 멀리하게 될것이며 동지호상간의 단결에도 유해롭게 될것이다, 좋은 어머니에게는 나쁜 자식이 따로 없다, 좋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사전교양을 잘한다, 그런 어머니는 자식들을 밖에 내보내면서 어데는 개울이 있으니 들어가 놀지 말아라, 가꾸어놓은 꽃을 꺾지 말아라, 어른들을 존경하여라, 동무들과 싸우지 말고 재미있게 지내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하나 잘 타일러주어 내보내군 한다, 그래도 잘못을 범할 때에는 이러이러한것은 잘하였는데 저러저러한것은 어떻게 잘못하였으니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득력있게 깨우쳐준다. 한번에 안되면 열번, 스무번이고 자식이 들을 때까지 인내성있게 교양하여 시정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잘 가르치지는 않고 잘못을 범하면 매채를 들고 두드리기부터 하며 그 자식들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매맞는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게 된다, 결국 이러한 가정에는 건전한 생활기풍이 설수 없다고 알기 쉽게 말씀해주시였다.
 나는 지난날 자신의 공청사업진행과정을 다시한번 돌이켜보았다.
 녕안현에서 공청사업을 할 때에도 일제를 반대하는 요란한 말이나 하면서 청년들의 심리와 특성은 고려하지 않고 마구 내미는 식으로 공청사업을 하던 일, 또 북만에서 구국군부대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할 때에도 병사대중속에 들어가 담화도 해보고 그들의 성격과 취미에 맞게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딱딱한 연설만 길게 하던 일…
 내가 자책속에 자신을 돌이켜보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정치일군들은 공청원들의 좋은 어머니가 되여야 합니다.
 공청원들의 좋은 어머니!
 이 얼마나 뜻깊은 말씀이신가.
 나는 대번에 막혔던 가슴이 확 열리는것만 같았다.
 나는 하나의 혁명대학을 나온것만 같은 심정을 안고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그러는 나를 정겹게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좋은 어머니가 자기 아이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사전교양을 잘하듯이 공청일군들도 청년들이 과오를 저지르지 않도록 사전에 교양을 잘하여야 하며 만약 과오를 범하였으면 과오가 무엇인지, 그것을 시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깨우쳐주어 자기 결함을 똑똑히 알고 빨리 시정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도 자기 과오를 뉘우치지 못할 때에는 두번이고 세번이고 열번이고 그가 알아들을 때까지 설복을 해야 합니다. 만일 이와 같은 개별적인 동지적충고나 교양이 효과를 발생하지 못할 때에는 공청회의에서 집체적으로 방조를 주어 시정시킬수 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은 공청일군으로서 내가 서야 할 위치를 정해주고 어떤 관점과 립장에서 공청원들을 이끌어나가야 하는가를 다시금 명백히 깨우쳐준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나는 새 출발을 하는 공청일군의 마음을 안고 위대한 수령님께 말씀드렸다.
 《장군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는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서시여 어깨우에 다정히 손을 얹으시고 동무는 왕청유격대의 공청사업을 책임지고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사업이 잘되고 못되는것은 간부들의 사업방법과 사업작풍에 달려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손잡고 함께 일해나가자고 고무격려해주시였다.
 그순간 나는 눈물이 핑 어렸다.
 공청일군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한 나를 다시 굳게 믿어주시고 함께 일해나가자고 고무의 말씀을 하시니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산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은 믿음과 사랑은 끝없는 젖줄기가 되여 온몸에 흘러드는것만 같았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후 나의 사업에서는 결정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이튿날 나는 왕청유격대 대대공청위원회를 열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청일군들의 사업방법과 사업작풍을 개선할데 대하여 주신 말씀을 관철하기 위한 문제를 가지고 토의사업을 진행하였다.
 이 회의에서 우리 공청일군들은 그이의 말씀을 명심하고 공청사업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나는 공청일군들을 발동시켜 일상적으로 청년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심중을 깊이 료해하고 그들의 심리와 특성에 맞게 조직정치사업을 벌려나가도록 요구하는 한편 실천적모범으로 이 사업에 앞장섰다.
 우리는 회의를 하나 해도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높이 받들고 유격구사수에서 공청원들이 앞장설데 대한 문제를 가지고 목적지향성있게 진행하였으며 전투가 끝나면 공청원들을 모여놓고 《이번 전투에서 우리는 유리한 조건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원쑤를 더 많이 소멸하지 못하였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토론을 벌리게 하였다.
 우리는 청년들의 특성에 맞게 긍정적인 모범으로 공청원들을 교양하는 사업도 근기있게 밀고나갔다.
 례하면 《김동무의 학습과 생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박동무와 같이 무기를 자기의 생명과 같이 귀중히 여기자》라는 문제들을 가지고 경험토론도 시키고 동지호상간의 우애심을 높이기 위한 회의도 자주 열어 공청원들을 꾸준히 교양해나감으로써 공청원들속에서는 동지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생각하고 동지의 성과를 자기의 성과처럼 기뻐하는 고상한 미풍이 더욱 높이 발양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우리 공청조직은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가르치심대로 그 언제나 생기발랄하고 전투력과 조직력이 강한 청년들의 대오로 공청사업을 자기 궤도에 올려세우게 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진행된 소왕청유격구 방위전투들에서 있은 몇가지 사실만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주체22(1933)년 11월중순 일제침략자들은 오래동안 《토벌》준비를 다그쳐오던끝에 소왕청유격구에 대한 대규모적인 《토벌》을 개시하였다.
 일제는 5,000여명의 대병력을 투입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를 없애버리려고 어리석게 망상하면서 낮과 밤이 따로없이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소왕청골짜기로 밀려드는 적을 저지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위치는 쑥밭골초소였다. 거기에는 10여명의 나어린 유격대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공청원들이였다.
 아군의 력량이 얼마 안된다는것을 알게 된 놈들은 정면과 후면, 우측의 3면에서 수백명의 력량으로 덤벼들었다.
 포위진을 치고 달려드는 적들과의 전투에서 유격대원들이 의거하여 싸우던 귀틀집은 벌둥지처럼 되였으며 전투원들도 거의다 부상을 당하였다. 그들중에는 온몸에 13발의 적탄을 맞은 대원도 있었다.
 정황은 시간이 갈수록 아군에게 불리하게 조성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공청원답게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용감하게 싸워 김일성장군님께서 이끄시는 반일인민유격대의 이름을 더욱 빛내이자!》라는 힘찬 구호를 웨치면서 굴하지 않고 싸웠다.
 이때 마촌뒤산에 지휘처를 정하시고 전투를 지휘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사전을 벌리고있는 쑥밭골전투정황을 보고받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쑥밭골동무들이 지금까지 그곳을 견지한것만 해도 기적입니다라고 하시며 몸소 사령부가 차지한 계선의 일부 력량을 이끄시고 쑥밭골로 진출하시여 적전투서렬의 배후를 불의에 들이침으로써 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이렇게 몸소 위험한 초소에까지 나오시여 적들을 물리치시고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대원들을 한사람한사람 품에 안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이 참 잘 싸웠소. 동무들이야말로 참된 공청원들입니다.
 동무들은 조선청년의 불굴의 투지와 무비의 용감성을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동무들은 모두가 영웅들입니다.

 이렇듯 공청원들은 혁명의 사령부를 지켜 자기의 목숨을 서슴없이 바쳐싸웠으며 그이께서 주신 임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수행하군하였다.
 이러한 나날속에 수많은 우수한 공청원들이 공산당에 입당하는 영예를 지니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의 골간을 이루는 혁명의 지휘성원으로 위대한 수령님을 받들어 조국광복의 그날을 위해 굴함없이 싸워나갔다.
 지금도 감회깊이 그때를 돌이켜보느라면 공청일군이 갖추어야 할 자질과 품성을 키워주시고 사업에서 자그마한 성과도 우리들에게 돌려주시며 크나큰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들을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자애로운 영상이 눈앞에 안겨온다.
 물론 소왕청에서의 나의 공청사업기간은 그리 오래지는 않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을 가까이 모시고 그이의 강령적가르치심을 받으며 공청사업을 해온 나날은 내가 공청일군으로서의 자질을 갖추어온 나날이였다.
 나는 진정 그이의 슬하에서 공청사업을 배웠다.
 나만이 아니라 항일무장투쟁시기 우리의 모든 공청일군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방법론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 힘을 주시고 지혜의 날개를 달아주시며 손잡아 이끌어주심으로써 공청일군으로서의 자기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해나갈수 있었다.
 영광스러운 항일혁명의 나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슬하에서 개척되고 발전해온 우리의 청년운동이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따라 더욱 활기있게 전진해가고있다.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기발을 힘있게 휘날리며 나아가는 우리 청년들의 자랑찬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슬하에서 다시금 청년사업을 해보고싶은 심정을 금할수 없다.
 나는 확신한다.
 우리 당에서 《청년들을 사랑하라!》라는 구호를 내놓고 청년중시사상으로 청년들을 아끼고 위해주는 우리 사회주의의 미래는 보다 휘황찬란할것이며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진 우리의 수백만 청년들이 있는 한 이 세상에 두려울것이 없고 못해낼 일이란 없을것이라고.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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