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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생겨난 봉분
백 학
림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전령병들중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생존시에
그토록 못잊어 늘 외우시군 하던 최금산동무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옛모습그대로 서있는 그의 반신상을 찾을 때면 무송원정때에 있은 가슴뜨거운 일이 떠오르군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력사적인 무송원정의 길에 있던 주체26(1937)년 3월 어느날이였다.
부대가 두도령이라는 곳에서 숙영을 하고있던 어느날 새벽 갑자기 불의의 정황이 발생하였다.
적들이 우리의 숙영지를 포위하고 막 총질을 하며 달려들었던것이였다.
부대가 이런 정황에 놓이게 된것은 만강으로 식량공작을 떠났던 신입대원들의 자유주의적인 행동때문이였다.
부대가 식량난을 겪고있을 때 마침 이 고장 출신인 몇명의 신입대원들이 자원하여 마을로 식량구입하러 갔었다.
그들은 얼마간의 감자를 구해가지고 오다가 그만 시장기를 참지 못해 새벽에 숙영지가까이에 와서 우등불을 피워놓고 감자구이를 했는데 그
우등불을 발견한 적들이 그들의 뒤를 몰래 뒤따랐던것이다.
이렇게 된 경우 적들을 발견하면 보초소에 신호를 먼저 보내든가 적들을 다른데로 따돌려야 하겠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 그 신입대원들은
무작정 숙영지로 뛰여들어오고말았다.
아직 취침중에 있던 부대는 미처 준비도 하지 못하고 전투에 진입하였다.
그때 사령부전령병이였던 나는 달콤한 새벽잠에 취해있다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흔들어 깨워서야 후닥닥 일어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부대들에 정황이 발생하였다는것을 알리고 빨리 빠져나갈데 대한 명령을 전달하라고 이르시였다.
나는 비발치듯 날아오는 적탄을 피해가며 각 부대들에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전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대담하고 령활한 지휘에 따라 주동적이고 신속한 기동을 전개함으로써 부대는 매우 불리한 정황속에서도 적들을 제압하고
성공적으로 탈출하였다.
그런데 이날 전투에서 사령부전령병 최금산동무가 그만 희생되였다.
이날도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차후임무를 기다리며 그이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있던 금산동무는 적탄알이 위대한 수령님께로 날아오자
순간도 주저함이 없이 자기의 한몸으로 그이를 막아나섰다.
그리고 적들을 향하여 맹사격을 가했다.
그러던 그는 여러발의 적탄에 치명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탄알이 다 나갈 때까지 엄호사격을 그치지 않다가 그만 눈우에 쓰러졌다.
한 소대장동무가 눈속에서 그를 안아일으켜 등에 업고 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싸창을 빼드시고 그들을 뒤에서 엄호하시였다.
소대장동무가 힘들어할 때면 그이께서 몸소 금산동무를 업으시였다.
그런데 적들의 포위를 돌파한 다음에 내리워보니 그는 이미 숨이 진 몸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의 어깨를 흔드시며 《금산이, 금산이!》 하고 부르시였으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도 억이 막히시여 피로 흠뻑 젖어든 그의 군복앞섶을 급히 헤치시며 《금산동무, 금산동무!》 하고
다시 부르시였다.
최금산동무의 희생은 온 부대가 커다란 슬픔에 잠기게 하였다.
그로 말하면 이국땅에서 태여나 철모르던 시절에 부모를 잃고 의지할데 없이 외롭게 자라난 고아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그는 비로소 제이름 석자도 쓸줄 알게 되였고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전령병으로까지 성장하게 되였다.
그는 남달리 꿈이 많았고 공상이 많았다.
그는 조국이 광복된 다음에 기차를 몰고 다니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우군 하였다.
그의 가슴속에 간직된 가장 큰 소원은 조국땅을 밟아보는것이였다.
하기에 한해전에 남호두에서 백두산으로 나올 때에도 그는 매일과 같이 위대한 수령님께 묻군 하였다.
《사령관동지! 이제 얼마나 더 가면 조국땅을 볼수 있습니까?》
《서간도땅에 가면 조선사과를 먹어볼수 있습니까?》
《동해바다가 기막히게 멋있다는데 장군님께서는 가보셨습니까?》
이러한 그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끔찍이도 사랑해주시였다.
숙영의 밤마다 자신의 몸가까이에 불러앉히시고 조국에 대하여, 혁명에 대하여 하나하나 일깨워주시였으며 잠자리에 드실 때에도 늘 그와
모포를 함께 덮고 주무시군 하였다.
그토록 애지중지하시던 사랑하는 전령병을 졸지에 잃으시였으니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아프셨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슬픔을 안으신채 금산동무의 배낭을 헤치시여 소지품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으시였다.
그의 배낭안에서는 고이 간수되여있는 미투리 한컬레와 미시가루 한봉지가 나왔다.
거기에 깃든 사연을 알고있는 나는 그만 눈물이 쏟아져내려 견딜수가 없었다.
우리 부대가 조국진출을 하게 된다는것을 알고 원군물자를 진 인민들이 밀영에 찾아온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갑산사람들은 좁쌀과
귀밀미시가루, 미투리를 잔뜩 짊어지고왔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미투리는 200여컬레나 되였는데 삼오리를 꼬아 신총을 만들고 신바닥에도 삼오리에 느릅곁을 섞어 정성스럽게
삼은것이여서 하나같이 맵시가 있고 탐탁한것들이였다.
엄혹한 설한풍속을 헤쳐야 하는 원정길에서 다른 동무들이 다 미투리를 신을 때에도 금산동무는 자기에게 차례진 미투리를 신지 않고
배낭속에 넣어 지고다니기만 하였다.
내가 왜 미투리를 신지 않는가고 물으니 조국진군의 날에 신겠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런데 사령관동지를 모시고 조국땅을 밟고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한컬레의 미투리에 남긴채 그는 가버리고만것이였다.
한봉지의 미시가루를 보면서도 나는 사령부전령병으로서의 그의 남다른 충성심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는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발벗고 나서군 하였다.
언제인가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건뎅이젓을 받친 삶은 통강냉이를 좋아하신다는것을 알고 수십리 떨어진곳까지 달려가서 건뎅이젓을 구해온
일도 있었다.
이러한 그였기에 원정의 나날 모진 굶주림과 추위속에서도 자기는 생눈을 움켜쥐고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면서도 위대한 수령님께 드릴
비상용미시가루를 남몰래 간수하고있은것이였다.
그의 시체앞에 헤쳐진채 놓여있는 배낭을 보며 온 부대가 울음을 터뜨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얼굴을 돌리시고 손수건을 눈가에 가져가시였다.
사랑하는 전령병은 가고 사연깊은 미투리 한컬레와 미시가루 한봉지만이
남았으니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은 찢어지는것만 같으시였다.
우리는 금산동무를 안장하려고 하였으나 모질게도 얼어붙은 두도령의 땅거죽을 뚜져낼수가 없었다.
도끼로 찍어보기도 하고 총창을 박아보기도 하였으나 한쪼각의 흙덩이도 뜯어낼수가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생각에 잠겨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더러 소나무가지들을 찍어오라고 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찍어온 소나무가지들에서 솔잎들을 따서 땅바닥에 두툼히 깔아놓게 하시고 그우에 금산동무를 눕혀놓으시였다.
그리고 나머지 소나무가지들을 그우에 덮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점의 눈가루라도 그의 시체에 떨어지지 않게 소나무가지들이 두텁게 씌워진것을 보시고야 그우에 눈을 덮도록
하시였다.
대원들과 함께 흙대신 차디찬 생눈을 손에 쥐시고 한줌두줌 뿌리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눈무지가 둥그렇게 솟아오르도록 마지막까지 눈을 뿌려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윽하여 말씀하시였다.
《후날에 금산동무를 꼭 다시 묻어줍시다.》
그러시면서 표적을 해두라고 이르시였다.
그후 우리는 하루에도 적들과 수십번 조우하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느라니 나의 마음속에서는 금산동무를 잃고 목놓아울던 그날의 비분이 어느덧 가라앉게 되였다.
1개월간의 집중적인 군정학습이 끝나고 부대가 국내진공작전을 위하여 동강밀영을 떠나던 때였다.
국내진공을 앞두고 온 부대가 희열과 랑만으로 들끓었다.
(어서 빨리 조국으로 가자. 한시바삐 가자!)
조국으로! 라는 하나의 웨침만이 너나 할것없이 모두의 가슴속에서 터져나오던 때였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대의 행군방향을 부대가 지나온 쪽으로 다시 정하시는것이였다.
그 길은 조국땅으로 곧추 나가는 길이 아니였다.
(한시가 바쁜 조국진군의 길을 왜 지체하시는것일가!)
(혹시 계획이 달라진것일가…)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위대한 수령님의 뒤를 따랐다.
나는 그때까지 부대가 두도령으로 다시 가고있다는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의 행군을 멈춰세우신 곳은 바로 격전이 벌어졌던 두도령이였다.
금산동무의 시체가 누워있는 산기슭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푸른 소나무가지들을 들추시고 그의 시체를 오래도록 바라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지에 누워있는 금산동무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더니 나에게 건사한 군복을 꺼내라고 이르시는것이였다.
내가 배낭에서 꺼낸 군복을 받아드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주름발을 펴시며 군복을 주의깊게 살펴보시더니 금산동무에게 어서 이
군복을 입히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나는 가슴이 뭉클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군정학습이 진행되던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보라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실 때마다 안색을 흐리시며 금산동무에게 덮어준 눈이 다
날아가버리지나 않겠는가 그처럼 걱정하시였고 어쩌다가 생긴 색다른 음식이나 물건을 앞에 놓으시고도 금산이가 좋아하던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군정학습이 거의 끝나가고있던 때에 후방사업을 책임진 지휘관에게 새 군복을 한벌 따로 마련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는 그 군복을
나의 배낭속에 고이 간수하도록 이르시는것이였다.
그런데 그 군복이 희생된 전령병의 군복일줄 어떻게 알았으랴.
나는 금산동무의 새 군복에 볼을 비비고 목놓아울며 이렇게 되뇌이였다.
《금산동무, 사령관동지께서 피에 젖은 동무의 군복을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새 군복을 마련하셨소.》
사랑의 새 군복을 갈아입은 전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온 대오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양지바른 곳을 몸소 정하시여 금산동무를 다시 안장하도록 하시였고 그우에는 정히 떠온 잔디를 입히도록 하시였다.
이리하여 두도령의 양지바른 풀밭에는 파란 봉분이 새로 생겨나게 되였다.
금산동무를 다시 안장해주고나니 우리들은 한겨울에 눈무덤을 만들어주던 그때처럼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도 이제는 마음을 놓으시고 떠나실수 있게 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금산동무의 묘지에 눈길을 보내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덤만 만들어주고 떠나자니 왜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금산동무의 무덤앞에 진달래라도 몇그루 떠옮겨줍시다.》
우리는 곧 진달래들을 떠다심었다.
한껏 물이 오른 진달래나무속에 솟아있는 전우의 무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며 나는 생각하였다.
돌이켜보면 전장에서 희생된 부하의 무덤앞을 지나갈 때 가볍게 목례를 한 어느 장군의 선행도 높이 찬양되여 력사에 기록되여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시가 새로운 시간을 짜내시여 전사의 시체를 다시 안장해주시고
외롭게 남아있을 그를 생각하시여 급히 떠나셔야 할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며 진달래나무까지 떠옮겨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과 의리를 과연 무슨 말과 글로 표현할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사랑하는 전우의 무덤을 떠나면서 마치 살아있는 금산동무에게 이야기하듯 이렇게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금산동무, 동무는 결코 죽은것이 아니요. 해마다 봄철이면 어김없이 피여나 향기풍길 진달래와 함께 동무의 넋은 영원히
살아있을것이요.
조국이 광복된 그날에는 사령관동지께서 동무를 조국땅의 제일 높은곳으로 데려가실거요.
금산동무, 그날까지 기다려주오.)
그날 전우의 령전앞에서 그와 한 우리들의 그 약속은 헛된것이 아니였다.
떠나간 전우를 잊지 말라고 자신의 고귀한 실천적모범으로 우리를 깨우쳐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전사들에 대한 사랑과 의리에 의하여
두도령의 산기슭에 새로 생겨났던 봉분의 주인공 최금산동무가 오늘 대성산 주작봉마루에 영생의 모습으로 서있는것이다.
금산동무뿐아니라 간고한 싸움의 나날에 이국의 산야에 묻히였던 전우들이
모두 어버이수령님의 품, 사랑하는 조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지니셨던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의리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천년만년 후대들의 가슴마다에
전해주며 그들은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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