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성일대를 혁명의 거점으로 꾸리시던 나날에

  

온성일대를 혁명의 거점으로 꾸리시던 나날에

 

림춘추, 오백룡

 

력사적인 왕재산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어느덧 반세기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나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왕재산회의를 전후한 1930년대 전반기 온성, 종성, 경원(새별)을 비롯한 륙읍일대에 여러차례 진출하시여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를 혁명의 거점으로 꾸리시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벌리시던 그 시기를 우리는 잊을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혁명을 자주적발전의 한길로 현명하게 이끄시던 력사의 나날을 돌이켜볼 때마다 우리는 주체의 혁명적기치밑에 시대와 혁명의 앞길을 빛나게 개척하신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더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게 된다.

 

(1)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온성지구에 처음으로 나오신것은 1930년 가을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조선혁명의 대강을 높이 받들고 항일무장투쟁로선을 비롯한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지고있던 시기였다.
 하지만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우리 혁명은 엄혹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두만강연안 역섬(간도)지구에서 일으킨 좌경모험주의적인 5. 30폭동으로 혁명에 막대한 해독을 끼친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여기에서 응당한 교훈을 찾을 대신 이해 8월 1일 또다시 돈화지구에서 무모한 폭동을 일으켰다. 이리하여 동만의 넓은 지역에 삼엄한 검거선풍이 휘몰아치게 되였으며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다시금 심한 피해를 입게 되였다.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수습하시기 위하여 몸소 적들의 백색테로가 살판치는 속을 헤쳐나가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험난한 로정에 이어 온성지구를 향하여 력사적인 조국진출의 길에 오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혁명을 자체의 힘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온성, 종성, 경원을 비롯한 륙읍일대가 차지하게 될 전략적의의를 깊이 헤아리시고 이 지구를 포함한 두만강연안일대를 혁명의 기지로 꾸리실 웅대한 구상밑에 이미 1927~1928년경부터 김준, 채수항동무들을 비롯하여 몸소 키우신 청년공산주의자들을 이 지대에 파견하시였다.
 이리하여 이 지방에 파견된 청년공산주의자들과 오중화, 오중성, 오빈, 구봉운 등 청년전위들에 의하여 온성지구에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하부조직인 온성공청을 비롯하여 반제청년동맹, 반제동맹, 농민협회와 같은 여러가지 명칭을 가진 혁명조직들이 무어져 활동하게 되였다.
 급속히 전진하는 우리 혁명은 륙읍일대를 포함한 두만강연안일대를 혁명의 기지로 더욱 튼튼히 꾸릴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앞에 나선 이 중대한 과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몸소 온성지구에로 나오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던것이다.
 그것은 실로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책임지고 수행해야 한다는 확고한 주체적립장과 혁명적의지의 숭고한 발현이였다.
 조선혁명은 조선인민자신의 위업이며 조선을 떠나서는 조선혁명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는것은 오늘 누구에게나 자명한 사실로 되고있다. 하지만 《현단계에서 조선민족의 해방에 대하여 말하는것은 공산국제의 로선에 저항하는 행동》이라는 주장이 공개적으로 인정되고있던 당시 형편에서 조선혁명을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수행할데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었다.
 더우기 그 실현을 위해 조국으로 진출한다는것은 오직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주체의 기치밑에 조선혁명의 진로를 열어나가시는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용단이였다.
 연길일대에서 활동하면서 그후 이 소식에 접한 나(림춘추)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신 자주의 신념과 강철의 의지에 대하여 깊이 탄복하게 되였다.
 길림, 교하, 할빈, 돈화 등지에서 파괴된 조직들을 복구정비하시고 동지들과의 련계를 회복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지막까지 따라나선 몇명의 동지들마저 공작지로 떠나보내시고 화룡현 대립자(큰선바위-화룡현소재지)를 거쳐 왕청현 석재(석현)에 이르신것은 1930년 가을이였다.
 1930년 9월 27일밤, 적들의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뚫고 오중화동무와 함께 남양대안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성동무의 안내를 받으시며 어둠을 리용하여 나루배로 두만강을 건느시였다.
 남양상탄에 조국진출의 첫자욱을 찍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양동에서 그곳 혁명조직성원들을 통하여 륙읍일대의 형편을 다시금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 혁명조직성원들에게 이번에 온성지구로 나오게 된것은 이 지역에서 카륜회의로선과 방침을 철저히 관철할 대책을 세움으로써 전반적조선혁명을 힘있게 확대발전시키려는데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이 일대를 항일혁명전쟁의 강력한 전략적거점으로 꾸려야 하며 전반적혁명투쟁을 새롭게 앙양시킬 돌파구도 바로 이곳에서 열어놓아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아직은 그 깊은 뜻을 다는 헤아릴수 없었던 그들이였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접한 혁명조직성원들은 누구나가 크나큰 긍지와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였다.
 그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풍리동에 있는 오중성동무의 집을 찾으시였다.
 예로부터 삼이 잘되는 땅이라고 하여 리마토라고도 불리워온 이 고장은 60호가량의 농가가 모여앉은 크지 않은 마을이였다. 본시 석재에서 활동하던 오중성동무가 조직의 지시를 받고 여기에 나와 공청책임자로 활동하면서부터 이곳은 온성공청의 활동거점으로 되고있었다.
 온성일대는 본래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직지도하신 조선국민회의 영향밑에 일찌기 혁명운동이 발전한 곳이였다. 특히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전환시킬데 대한 김형직선생님의 가르치심이 계신 후부터는 이 일대에서 사회주의계몽운동이 비교적 활발하게 벌어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시는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산하조직이 이곳에 뿌리박은것은 온성지구를 비롯한 두만강연안일대를 항일혁명전쟁의 거점으로 꾸림에 있어서 유리한 조건으로 되였으나 공청조직이 청소하다나니 그 역할이 높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태를 헤아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온성공청이 처한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하루빨리 공청조직을 청년들의 힘있고 튼튼한 전위조직으로 꾸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이 커야 그늘도 큰 법인데 지금처럼 몇사람의 공청원들만 가지고 어떻게 청년대중을 이끌어나갈수 있겠는가고 하시면서 공청대렬을 확대하여 청년들속에 깊이 뿌리박으며 그들이 핵심이 되여 각계각층 청년들을 망라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혁명조직을 내와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온성청년동맹이나 신간회지휘조직들에 관계했던 청년들에 대해서도 멀리하거나 따돌릴것이 아니라 기성운동의 제한성을 깨우쳐주고 우리의 혁명로선과 방침을 잘 알려주어 투쟁의 길로 나서도록 하며 혁명의 요구에 맞게 이런 조직들의 합법적활동도 신축성있게 리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우리의 혁명활동이 비합법적으로 진행되며 매 지방의 특성에 맞게 자기의 사업을 거의 독자적으로 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에서 혁명적지도핵심을 꾸리는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급적각오와 혁명적열의가 높고 조직력이 있는 준비된 동무들을 선발하여 혁명의 지도핵심으로 키우며 그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대중을 혁명화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려나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온성지구에 나오시여 벌리신 혁명활동이 얼마나 거창한 사업이였는가를 나는 그후 온성에 와서 얼마간 있으면서 더 잘 알게 되였다.
 1930년말 적들에게 체포되여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생활을 하던 나는 이듬해 초봄에 석방되여 돌아오던 도중 온성반제동맹의 책임자인 최동무의 집에 들린 일이 있었다. 그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조직지도하신 조선국민회 성원으로서 무장활동에 참가하였다가 감옥생활까지 한 사람이였다. 그때 적들의 눈을 피해 그의 집에 보름가량 묵어있던 나는 그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온성지구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간 들을수 있었다.
 풍리, 세선, 룡남, 상화 등 이르는 곳마다에서 혁명조직을 지도하시고 대중을 혁명화하는 정력적인 혁명활동에 이어 월파동철도부설공사장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철도로동자들과 작업도 같이하시고 최춘국, 최봉송동무들을 비롯한 이곳 혁명조직성원들을 교양도 하시면서 월파로동청년회와 월파반제청년동맹사업을 지도하시였다.
 원쑤들의 검은 그림자가 항시적으로 뒤따르는 위험속을 휴식도 주무심도 잊으시고 헤쳐나가시는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현실을 더욱 깊이 체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혁명운동을 급속히 발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각지에서 활동하는 혁명조직들을 통일적으로 이끌어나갈 당조직을 내와야 한다는것을 깊이 통찰하시고 이 사업을 정력적으로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독창적인 당창건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자주적으로 당을 창건하며 당을 창건함에 있어서는 먼저 기층당조직을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할데 대한 독창적인 당창건방침에 따라 1930년 7월 3일, 카륜에서는 첫 당조직이 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로 무으신 이 첫 당조직을 모체로 하여 각지에 당조직을 확대해나가시였다.
 바로 이런 성과에 기초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에서 당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낮에는 혁명조직성원들이 사업하는 일터에서 그들의 가슴속에 혁명가의 억센 신념과 의지를 키워주시고 밤에는 이름없는 농촌집의 랭기찬 웃방에서 입당대상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들에게 주체형의 첫 당조직의 당원들인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등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숭고한 정신과 눈부신 투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시면서 국내에서의 당조직결성을 위한 준비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이처럼 당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여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0월 1일 온성군 월파리 두루봉에서 열린 당조직결성을 위한 모임을 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국내에서 당조직을 뭇기 위한 모임을 가지는것은 우리 혁명발전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라고 말씀하시고나서 조선공산주의운동의 쓰라린 교훈과 결부하여 국내에서 당조직을 내와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리고 당창건사업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이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립장을 다시금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성, 전장원동무들을 비롯하여 온성지구 혁명조직의 핵심들로 온성당조직을 무어주시였다.
 온성당조직의 결성은 주체적인 당건설사상에 기초하여 우리 나라에서 주체형의 첫 당조직을 내오시고 그것을 모체로 기층당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온갖 심혈과 로고를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정력적인 투쟁과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이것은 일제의 탄압과 악랄한 음모를 짓부시고 국내 혁명운동발전의 새로운 앞길을 열어놓은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을 무으신데 이어 이날 오후에는 륙읍일대를 비롯하여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고있는 혁명조직책임자들과 공작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먼저 조성된 국내외의 혁명정세와 지난 시기 우리 나라 혁명운동의 실태를 분석하시고나서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립장을 다시금 엄숙히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새 세대 청년공산주의자들이 자기앞에 나선 중대한 사명을 다하려면 무엇보다도 조선혁명은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입니다.
 조선혁명앞에 나서는 모든 문제는 어디까지나 조선인민이 책임지고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것, 이것이 우리가 혁명투쟁에서 시종일관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근본립장이며 태도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로선과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과업과 수행방도를 밝혀주시면서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를 무장투쟁의 전략적거점으로 꾸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전쟁을 주동적으로 준비하며 무장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자면 국내에 반드시 혁명의 전략적거점을 꾸려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이러한 혁명의 전략적거점을 동만지방과 두만강연안의 륙읍일대의 광활한 지대에 꾸리는것이 가장 적합하다고 인정합니다.
 이 일대는 앞으로 무장투쟁을 벌리는데서 매우 유리한 지리적조건을 갖추고있을뿐아니라 주민구성도 좋고 인민들의 민족적 및 계급적각성도 높으며 혁명투쟁을 물심량면으로 적극 지원할수 있는 잠재력도 가지고있습니다.

 일제의 파쑈적광란이 절정에 이르고 온 나라가 하나의 감옥으로 전변된 엄혹한 환경에서 무장투쟁문제를 일정에 제기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이렇듯 대담한 구상을 펼쳐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강령적인 말씀을 받아안게 된 회의참가자들은 누구나가 수령님께서 지니신 비범한 예지와 담력에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혁명의 전략적거점!
 그것은 실로 제국주의의 완전한 식민지로 온 강토가 강점된 조건에서도 혁명을 보위하고 투쟁에 필요한 인적 및 물적수요를 보장할수 있는 혁명의 믿음직한 보루를 마련함으로써 우리 인민자체의 힘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비롯한 전반적조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방침이였으며 아직 그 누구도 내놓은적이 없는 식민지민족해방투쟁의 탁월한 전략전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일찌기 길림에서 활동하던 때부터 온성지구를 비롯한 륙읍일대에 청년공산주의자들을 파견한것도 이것을 예견하고 취한 조치였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온성지구의 여러곳을 돌아보면서 혁명의 거점문제에 대하여 더욱 굳은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강조하시였다.
 우리는 그후 무장투쟁의 나날 두만강연안의 유격구와 특히는 력사적인 왕재산회의를 계기로 륙읍일대에 꾸려진 반유격구의 위력을 통하여 이 회의에서 제시된 전략적방침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참가자들에게 혁명적당건설사업에서 튼튼히 틀어쥐고나가야 할 강령적지침을 다시금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참으로 조국땅 두루봉에서 있은 이날 회의는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제시된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전략전술적방침을 철저히 관철해나가는데서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회의로서 우리 혁명발전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어두운 조국땅을 주체의 해발로 밝히시며 국내혁명가들의 가슴속에 혁명의 불씨를 뜨겁게 심어주신 후 두만강을 건느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역섬지구의 어느 한 마을에 들리시여 추석을 지내시고 그해 늦은 가을에 오가자로 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진출에서 이룩하신 성과에 기초하시여 1930년 12월 오가자에서 조선혁명군지휘성원 및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급변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투쟁무대를 두만강연안일대에로 옮기여 항일무장투쟁준비를 더욱 다그칠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리하여 두만강연안의 륙읍지대와 역섬지구에서는 혁명의 불길이 더욱 거세차게 타오르게 되였다.

 

 (2)

 

1931년 봄, 혁명활동의 중심지를 두만강연안으로 옮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삼엄한 국경경비진을 뚫고 또다시 국내에로 진출하시였다.
 나는 당시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국내에 나왔던 채수항, 오빈동무들을 통하여 수령님께서 종성, 온성 일대에서 벌리신 혁명활동의 일단을 알수 있었다.
 그들은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에 따라 고향인 종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있었다.
 화룡현 대립자를 떠나시여 조국땅 종성이 마주 바라보이는 선구노루골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채수항동무의 안내를 받으시며 1931년 5월 14일 새벽, 두만강을 건느시였다. 이날 종성지구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성반제청년동맹과 종성반제동맹사업을 지도하신 후 풍계지방으로 향하시였다.
 풍계동 공수덕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륙읍일대의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회의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모든 반일대중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우며 두만강연안일대에서 무장투쟁준비를 더욱 다그칠데 대한 방침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좌경모험주의적인 책동의 후과로 빚어진 엄중한 사태를 시급히 가시고 전민족적인 단합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력량을 충분히 준비하는것은 혁명승리의 근본조건입니다. 아무리 좋은 혁명정세가 조성되고 혁명에 대한 인민대중의 요구가 높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준비된 력량이 없이는 혁명이 승리할수 없습니다.

현시기 혁명력량을 준비하는데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무장력량을 꾸리는것입니다. 무장력량을 꾸리기 위하여서는 조선혁명군대오와 반군사조직들을 확대강화하는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합니다.

...

무장력량을 꾸리는데서 무장을 갖추는것이 중요합니다.

...

광범한 인민대중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단합시키는것은 혁명력량을 준비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민족을 하나의 강력한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우는데서 나서는 과업들도 제시하시였다.
 야학과 사립학교를 혁명적으로 개편하고 그것을 거점으로 대중혁명화를 밀고나갈데 대한 문제, 각계각층군중을 혁명조직에 적극 받아들여 조직화할데 대한 문제, 조직이 없는 미개척지들에 대담하게 뚫고들어가 계층별 특성에 맞는 각종 조직을 내오며 합법적단체들을 혁명적인 조직으로 개편할데 대한 문제, 혁명실천을 통하여 각계각층 군중을 단련시킬데 대한 문제 등 구체적방도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은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들에게 커다란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마감에 이르러 농촌혁명화가 무장투쟁준비단계에서 해결하여야 할 대중적지반축성의 주되는 내용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천명하시고 두만강연안의 농촌지역들을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튼튼한 기지로 꾸릴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계각층 군중과의 사업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혁명가들의 앞길에는 수많은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이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어떤 역경과 시련에 부닥쳐도 용감히 뚫고나가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져나가자고 힘있게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후 당시 종성군 풍곡면의 소재지였던 풍계마을에 들리시여 풍계반제동맹사업을 지도하시면서 몸소 농촌혁명화의 시범을 보여주시였다.
 증산기슭을 따라 10개의 자연부락으로 흩어져있는 이 마을은 리조봉건통치시기 정배살이군들이 개척한 마을로서 그 시초로부터 세상과 등지고 사는곳이였다. 따라서 이 고장은 원래 봉건유습이 심한데다가 일제강점후에는 의병들과 독립군운동에 관계하였던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기에 천도교까지 깊이 뿌리박아 시대사조와는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천도교도들인 이곳 농민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는 남녀로소, 신앙과 정견을 가리지 말고 모두가 떨쳐나서야 한다고 하시면서 《보국안민》이 천도교의 주장인데 왜놈들을 이 땅에 두고서야 어떻게 우리 백성들이 단 하루인들 편안할수 있겠는가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그때 이 마을의 천도교인들은 자기 가정과 마을이 화를 입지 않게 하는것이 상책이라고 하면서 왜놈들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게 해야 편안히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봉준이 《보국안민》의 구호와 함께 《척양척왜》의 구호를 동시에 들고 농민들을 이끌어 싸움에 떨쳐나선것도 바로 외적을 물리치고 봉건통치배들을 때려부셔야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들이 잘살수 있다는것을 믿었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가슴속에 투쟁의 불씨를 안겨주시였다.
 사리정연하고 세상물정에 정통하실뿐아니라 지어 천도교의 교리까지 결부하면서 깨우쳐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에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마을에서는 채로인이 좌상으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다. 마을을 혁명화하자면 이 로인을 장악해야 했는데 원래 완고하고 고집불통이여서 이곳 혁명조직에서는 그를 교양할데 대해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신구학문에 대한 식견도 있고 독립운동에 관계한 경력도 있어서 마을의 대소사를 장죽 하나로 좌지우지하는 그 로인을 만나시고 그의 가슴속에서 아직도 꺼지지 않은 애국심에 불을 달아 풍계마을의 완고한 장벽을 무너뜨리고 농촌혁명화의 대문이 활짝 열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뒤이어 종성군 창평반제동맹과 온성군 세선동에서 고작골반일청년회와 풍서반제동맹사업을 지도하시면서 온성지구를 비롯한 두만강연안 북부국경일대에서 대중혁명화사업을 적극 다그쳐나갈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후일 이곳 인민들이 온성지구의 여러 지방에서 모아온 물자를 100여필의 말과 여러척의 배로 유격구에 운반하는것과 같은 대규모적인 원호사업을 벌린 사실도 천리혜안으로 먼 앞날을 내다보신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선을 헤치시며 정력적인 활동을 벌리신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에는 그후 광명청년회와 신해반일청년회, 연사반일청년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이 새로 나오고 이 일대에서 혁명운동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였다.
 국내 공수덕에서 있은 회의와 뒤이어 열린 1931년 5월 명월구회의 이후 륙읍지방을 포함한 두만강연안일대에서는 5. 30폭동의 후과가 가셔지고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이 튼튼히 마련되게 되였으며 조선혁명의 새로운 단계, 조직적인 무장투쟁에로 이행할수 있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게 되였다.
 일제가 도발한 만주침략과 전 동만에 걸친 조선농민들의 대규모적인 추수투쟁 등 급변하는 정세속에 무장투쟁의 기운은 급속히 무르익어갔다.
 한창 고조되는 추수투쟁을 조직령도하시면서 항일무장투쟁을 위하여 새롭게 해결하여야 할 문제를 놓고 사색과 탐구의 나날을 보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조국땅을 밟아보시고 무장투쟁의 전략전술적방침을 더욱 무르익히실 결심을 품으시고 193l년 10월 18일 또다시 두만강을 건느시였다.
 종성대안인 석건평나루로 해서 동관진(오늘의 온성군 강안리) 도선장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채수항, 오빈동무들과 함께 이곳 두량조합로동자들속에 들어가시여 정치사업을 벌리신 후 광명촌에 있는 최성훈동무의 집에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여시였다. 최성훈동무는 1931년 봄에 조직의 조치에 따라 광명촌에 나와 생활하면서 광명청년회 책임자로 사업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먼저 조성된 정세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력사적교훈을 상세히 분석하신 다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성된 긴박한 정세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력사적교훈은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벌릴것을 더는 미를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제기하고있습니다. 무장에는 무장으로! 반혁명적무력에는 혁명적무력으로! 이것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확고히 견지하여야 할 전략적방침이며 높이 들어야 할 전투적기치입니다.
 무장투쟁을 벌려야만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이룩할수 있습니다.

 무장에는 무장으로!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로선이 제시된 그때로부터 1년 남짓한 세월, 위대한 수령님께서 두루봉과 공수덕, 명월구에서 내놓으신 방침을 높이 받들고 간고한 지하투쟁을 벌리던 나날에 얼마나 기다리고기다리던 이 시각이였던가!
 격동과 흥분으로 끝없이 설레이는 회의참가자들의 모습을 미덥게 둘러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에 모인 동무들은 앞으로 조직하게 될 혁명무력의 기둥감들이라고 하시면서 다같이 총을 메고 원쑤와의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서자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조직적인 무장투쟁이 일정에 오른 오늘 우리앞에 나서는 과업은 발톱까지 무장한 강도 일제원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수 있도록 군사적준비를 빈틈없이 갖추며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는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사적준비를 갖추는데서 중요하게 나서는 무장투쟁방법을 옳게 선택하는 문제, 상비적혁명무력을 조직할수 있는 골간을 준비하는 문제 그리고 무장을 해결하는 방도에 대해서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도는 원쑤들의 무장을 빼앗아 자신을 무장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종성군만 해도 도선장들에 순사놈들이 있고 주재소들에도 순사놈들이 있는데 결심품고 나서면 불의의 습격으로 무기를 얼마든지 빼앗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장투쟁을 위하여 당면하게 국내혁명조직들앞에 나서는 구체적인 과업들에 대해서도 강조하시였다.
 돌이켜보면 유구한 력사에 명장으로, 영웅으로, 군사가로 떠받들리운 사람들이 그 얼마였던가.
 그러나 그 누구도 위대한 수령님과 같이 젊으신 나이에 비범한 예지와 강철의 담력을 지니시고 적수공권으로 방대한 무력을 가진 침략군대를 상대로 단호히 선전포고를 내리시고 기성리론에 구애됨이 없이 투쟁의 앞길을 그렇게도 명백히, 그렇게도 대담하고 독창적으로 밝혀준 례가 그 언제 있었던가.
 산촌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으나 회의참가자들은 온 세상, 온 우주를 한가슴에 안은듯한 세찬 감격으로 하여 잠들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혁명전쟁개시를 위한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시여 193l년 12월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참가자들중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내공작의 나날에 몸소 키워주신 오중화, 구봉운, 오중성, 오빈동무들을 비롯하여 온성, 종성 지구에서 활동하던 동무들도 있었다.
 력사적인 명월구회의후 두만강연안일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당 및 공청 지도핵심성원들과 정치공작원들, 혁명조직성원들에 의해 유격대대오를 뭇기 위한 준비사업과 함께 무장을 갖추기 위한 투쟁이 더욱 활발히 벌어졌다.
 이 준엄한 나날을 거쳐 마침내 우리 인민은 항일혁명투쟁사에 길이 빛날 1932년 4월 25일, 참다운 혁명무력이 창건되는 력사의 새 아침을 맞이하게 되였다.

 

(3)

 

창건된지 얼마 안되는 항일유격대를 이끄시고 남북만에 진출하셨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왕청유격구에 혁명의 사령부를 정하신것은 1933년 2월이였다.
 왕청1중대 대원이였던 나(오백룡)는 이 시기부터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사업하게 되였다.
 소왕청 마촌부락에 있는 새초로 이영을 이은 자그마한 귀틀집에 사령부를 정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인민유격대창건후 1년 가까운 기간 항일무장투쟁에서 이룩한 빛나는 성과에 기초하여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 전략적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거창한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계시였다.
 당시 어린 대원에 불과했던 나는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였다. 다만 자나깨나 흠모하여마지 않던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싸우게 된 행복감에 젖어 노상 기쁜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몇명의 지휘관들과 함께 우리는 사령부에서 부른다는 련락을 받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왕청유격구역에 주둔하고있는 중대들에서 선발된 지휘관들과 정치일군들, 유격대원들이 모여있었다.
 우리들은 여기에 와서야 비로소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국내에로 진출하게 된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이무렵 일제놈들은 국내혁명조직에 대한 폭압을 전례없이 강화하였다.
 한편 유격구안에서 일부 책임적자리를 차지하고있던 좌경분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은 만주에 있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조선혁명을 위해 싸우는것은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에 위반되니 조선혁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터무니없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는것을 음으로양으로 방해해나섰다.
 이로 말미암아 국내의 혁명조직들은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되고 인민들은 더욱더 암담한 처지에서 고통을 겪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앞에 조성된 난관을 타개하기 위하여 주체의 기치밑에 무장투쟁의 불길을 국내에로 넓혀나가실것을 결심하시고 남북만진출의 험난한 로정에서 겪으신 피로도 푸실사이 없이 또다시 난국을 맞받아 국내 온성지구에로 진출하실 용단을 내리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새 군복을 갈아입은 50여명의 대오가 마촌사람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국내진출의 길에 오른것은 3월초순이였다.
 셋째섬을 거쳐 크고작은 몇개의 령을 넘어 솔골에 이른 우리는 여기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국내진출준비를 다그쳤다. 이때 몇몇 동무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지시를 받고 아직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있는 두만강을 건너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온성일대에 대한 적정정찰과 그곳에 파견된 정치공작원들과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을 왕재산으로 집결시킬데 대한 임무를 받고 떠난것이였다.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그때 그들의 모습이 강건너숲속에 사라질 때까지 찬바람 스산한 강가에 오래도록 서계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근엄하신 모습이 선히 밟혀온다.
 솔골에서 조국진출의 날을 기다리던 나날에 잊혀지지 않는 인상으로 나의 뇌리에 새겨진것은 이것뿐이 아니였다.
 밤마다 가물거리는 등잔불밑에서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넓혀나가실 전략을 무르익히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이며 그이께서 주인집의 물을 길어주시기 위하여 두만강의 얼음을 까시다가 도끼를 빠뜨리시고 철사갈구리를 맨 바지랑대로 두만강밑을 샅샅이 훑으시던 류달리 춥던 그날의 일도 50년이 지난 오늘까지 나의 기억속에 불멸의 화폭으로 아로새겨져있다.
 국내에 파견된 정찰조가 돌아온 후 력사적인 조국진출의 날은 3월 11일로 결정되였다.
 력사의 날 3월 1l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단의 전투준비를 갖춘 대오에 력사적인 조국진출명령을 내리시였다.
 출발명령을 받은 대오는 순식간에 강을 건너 오매에도 그리던 조국땅 왕재산기슭에 이르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미 전날밤 강을 건너와 회의준비를 갖추고 거기서 기다리고있던 최춘국동무와 박태화소대장으로부터 정황보고를 들으시고 그들의 안내를 받으시며 타막골이라고 불리우던 골짜기로 대오를 이끄시였다.
 흰눈이 깔린 오솔길을 지나 이깔나무숲을 누비며 왕재산의 릉선에 접어들었을 때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달려나왔다.
 《장군님.》
 격정에 사로잡혀 더는 말을 잇지 못하는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한순간이라도 더 빨리 만나뵈올 생각으로 회의장소를 떠나 마주내려오던 국내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당시를 회상하시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이깔나무수림속에 숨어있다가 회의에 참가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산릉선에 숨어있다가 회의에 참가하였습니다. 왕재산회의에는 온성지구 사람들도 참가하였고 다른 지방 사람들도 참가하였습니다.
 이날 왕재산마루에 오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눈에 안겨오는 조국의 산과 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두만강연안의 북부국경일대에 조선혁명의 전략적거점을 꾸리시기 위하여 사선을 헤치시고 넘나드시던 온성땅에 오늘은 무장투쟁의 불길이 국내에 널리 타번지게 하시기 위하여 다시 서시였으니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이 어떠하시였으랴!
 나는 이날 원군물자를 접수할데 대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다나니 왕재산회의에 대한 이야기는 그 이튿날에야 듣게 되였다.
 이날 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건후 1년동안에 반일인민유격대가 거둔 성과와 당시의 혁명정세, 일제놈들의 발악적인 책동 등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시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킬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유격대가 국내에로 진출함으로써 이미 이룩한 성과를 공고히 하면서 아름다운 우리 조국을 강점하고 우리 인민에게 온갖 불행을 강요하고있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만회할수 없는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으며 국내인민들에게 항일무장투쟁의 혁명적영향을 강하게 주고 그들이 반일성전에 힘차게 떨쳐나서게 하며 나아가서 일제식민지통치의 아성을 종국적으로 청산할수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원쑤들의 책동이 악랄하고 정세가 아무리 어려워도 항일무장투쟁을 반드시 국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바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보다먼저 이미 창설한 두만강연안의 유격근거지와 잇닿아있는 국내의 넓은 지역에 반유격구를 더 많이 창설하고 공고화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구체적인 실현방도들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전민족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튼튼히 묶어세우기 위하여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힘있게 벌릴데 대한 방침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국내인민들의 대중운동과 밀접히 결합시키는 문제 등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수행을 앞당기기 위한 탁월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의 끝부분에서 우리앞에 나선 어렵고 복잡한 혁명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참모부가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창건준비사업을 적극 밀고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회의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조국광복의 력사적위업수행에서 강령적의의를 가지는 탁월한 방침에 접한 회의참가자들의 감격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컸다.
 어떤 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온성지구에 나오실 때마다 하나의 산발, 하나의 골짜기도 무심히 대하지 않으시더니 바로 반유격구를 꾸리실 원대한 구상에서였다는것을 오늘에야 깊이 깨닫게 되였다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또 어떤 동무들은 지난날 군중과의 사업을 협애하게 진행해온 사실을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고 하면서 광범한 군중을 결속하지 못하고있는 《로농동맹》같은 조직의 명칭도 고려해보고 고쳐야 한다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돌아가면 곧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이제는 눈앞이 환하다고 기쁨에 넘쳐 결의를 다지는것이였다.
 회의에 참가했던 동무들은 이구동성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연설을 듣고보니 자기가 바로 조선혁명의 주인이라는것을 깨닫게 되고 자기의 힘을 믿고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며 또 풀어나갈수 있다는 신심에 넘치게 된다고 힘주어 말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투쟁의 옳은 진로를 찾은 감격과 기쁨으로 밝게 빛나는 회의참가자들의 얼굴을 믿음에 찬 눈길로 돌아보시고나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연설을 끝맺으시였다.
 《나는 동무들이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고 조국광복의 날을 앞당기는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온성지구 진출과 왕재산회의는 조선혁명에서 주체를 튼튼히 세워나가는데서 획기적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재산회의에서 하신 연설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는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에게 조선혁명의 주인된 자각을 안겨주고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할수 있도록 힘있게 떠밀어주는 고무적기치로 되였으며 안팎의 원쑤들의 악랄한 책동을 짓부시고 무장투쟁을 국내에로 넓혀나가며 전반적조선혁명을 줄기차게 발전시켜나갈수 있게 하는 위대한 투쟁의 무기로 되였다.
 나는 여기서 원군물자를 인수하면서 느꼈던 사실을 한가지만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가 인수한 수많은 원군물자가운데는 회의참가자들이 별도로 정히 마련해가지고 온것들도 있었다. 그것은 이 지방인민들이 김일성장군님을 믿고 살아가는 백성된 도리를 다소나마 하자고 생각해서 보낸것이니 꼭 장군님께 드려달라고 신신당부한 지성어린 물자들이였다.
 이런 지성어린 선물들을 보고 그 선물이 마련된 사연들을 들으며 우리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우러러 받드는 겨레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게 되였으며 2천만 동포가 그처럼 높이 우러러 받드는 위대한 수령님을 진두에 모시고 혁명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슴뿌듯이 느끼였다.
 우리가 왕재산기슭에서 국내혁명조직들에서 보내온 광목과 신발, 의약품과 등사기, 종이 등의 원군물자들을 배낭에도 넣고 짐바리에도 실었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내정치공작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의 뜨거운 바래움을 받으시며 산을 내려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작별의 인사를 올리고도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회의참가자들의 손을 다시금 굳게 잡아주시면서 《동무들, 몸성히 잘 싸우시오. 또다시 만납시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고 어둠이 깃든 두만강가로 나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우리는 자취를 감추기 위해 눈우에 난 자욱에 가랑잎도 덮고 꺾어진 쑥대도 일으켜세우며 그밤으로 강을 건너 다음날에는 마촌으로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왕재산회의직후인 3월 20일에는 항일유격대의 큰 대오를 이끄시고 조국땅을 10리길이나 행군하시여 경원군 류다섬에 진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 머무르시며 두만강하류연안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지하혁명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회의를 지도하시였다.
 이 회의에서는 두만강하류연안일대에 반유격구를 더 많이 창설하고 공고화할데 대한 문제가 중요하게 강조되였으며 왕재산회의방침관철을 위한 구체적인 과업들이 제시되였다.
 그해 5월 또다시 종성군 신흥촌에 진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금산봉에서 이 지구 혁명조직책임자들과 정치공작원들의 회의를 마련하시고 북부조선국경일대에 반유격구를 튼튼히 꾸리기 위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지하혁명조직성원으로 또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으로 여러해동안 두만강연안일대에서 활동한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초기혁명활동시기부터 시종일관 견지하여오신 전략적방침의 정당성으로 하여 륙읍일대에 농민상조회, 반제동맹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조직들이 꾸려지고 대규모적인 원호사업이 벌어지는것을 경탄속에 목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재산회의에서 제시하신 현명한 방침에 의하여 두만강연안북부국경일대의 넓은 지역에 혁명의 보루, 반유격구가 확대공고화되였으며 무장투쟁의 불길은 국내에로 거세차게 타번져갔다.
 1930년대 전반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땅 륙읍일대에서 벌리신 혁명활동은 항일무장투쟁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조선혁명을 자주적으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위대한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뜻깊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우리가 여기에 적은 이야기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왕재산회의를 전후한 시기에 륙읍일대에서 벌리신 혁명활동의 일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사실을 놓고서도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탁월하고 세련된 령도로 조선혁명을 주체의 한길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더욱 가슴뜨겁게 되새기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음으로 하여 조국과 민족의 영예와 존엄이 있고 우리 혁명의 휘황찬란한 미래가 약속되여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지난 50여년간에 걸쳐 투쟁하여온 우리들의 철석같은 신념이며 의지이다.
 우리는 이 신념을 안고 지난날도 그러했던것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높이 받들어모시고 당의 령도따라 백두밀림에서 개척된 주체의 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끝까지 싸워나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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