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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대사하, 대장강전투 최 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첫 시기부터 세계혁명력량과의 단결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항상 항일유격대원들을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정신으로 교양하시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라는 구호밑에 일제의 《토벌》이 혹심하던 어려운 시기에도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해 적배후교란작전을 진행할데 대한 작전적방침을 내놓으시고 그 관철에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을 불러일으키시였다. 적배후교란작전을 벌릴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서를 받아안은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수많은 전투들을 벌려 일제의 쏘련침공을 저지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대표적인 전투가 바로 1939년 8월에 있은 안도현 대사하, 대장강전투였다. 1939년 5월부터 일제침략자들은 쏘련, 몽골, 《만주국》국경지대에서 몽골에 대한 대규모적인 도발사건을 일으켰다. 몽골에 대한 일제의 침공은 몽골을 강점하고 나아가서는 쏘련령토에 침입하여 씨비리간선철도를 절단함으로써 쏘련으로부터 원동을 떼여내려는 흉악한 책동에서 출발한것이였다. 그러므로 이 책동은 1938년 7~8월에 일제가 쏘련 연해주남단 하싼호를 침공한 사건의 연장이기도 하였다. 쏘련군대와 몽골군은 일제침략자들의 이와 같은 강도적인 침공에 대하여 섬멸적인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일제는 참패를 당하면서도 계속 《정예》부대들을 동원하여 몽골국경에로 내몰았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쏘련에 대한 일제의 이와 같은 침공을 결코 무관심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기 위한 적배후교란작전을 벌리도록 하심으로써 조선인민혁명군이 당시 일제의 후방이였던 조선과 중국동북지방에서 유격전쟁을 더욱 확대하여 적의 후방을 대대적으로 들이쳐 놈들의 력량을 대량 섬멸할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군사지휘관들이 적정을 정확히 분석하고 조성된 정황을 구체적으로 판단한 기초우에서 매복전, 야간습격전, 유인전, 공격전 등 여러가지 유격전술을 능란하게 배합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제3방면군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에 따라 안도현성과 명월구의 적들을 유인섬멸할데 대한 작전계획을 세웠다. 안도현성은 안도현의 소재지로서 현안의 정치, 경제, 군사적중심지였다. 그리고 명월구 역시 놈들의 군사적요충지대의 하나였다. 일제는 이 성시들에 수백명의 일만군대를 항상 주둔시키고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대토벌》을 감행하군 하였다. 아군은 이 두개 성시에 배치된 적들을 소멸함으로써 일제의 중요한 군사적후방에 심대한 혼란을 조성시키며 놈들의 쏘련침공작전을 견제할 계획이였다. 그리하여 아군부대들은 1939년 8월에 돈화현으로부터 안도현 대사하와 대장강(현재는 류수촌)일대에로 진출하였다. 이때 아군지휘부에서는 조성된 정황에 비추어 위성타원전술을 쓰기로 하였다. 위성타원전술이란 성을 포위하고 그속에 든 적을 구원하기 위하여 달려오는 증원군을 치는 전술이다. 즉 우리의 한 부대가 적의 작은 성을 포위하면 포위속에 든 놈들은 《큰 집》에 증원을 청하게 된다. 이때 우리의 주력은 사전에 적증원대가 올 유리한 지점에 매복하였다가 그놈들을 일격에 소탕해버린다. 이 전술에 근거하여 아군지휘부는 우선 대사하의 집단부락을 포위공격하고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안도현성에서 달려올 적증원대를 대사하 남쪽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사하고개에서 소탕할 계획이였다. 그리고 대사하를 포위공격하면 비단 안도현성의 적들만이 아니라 연길현 명월구에 주둔하고있는 적들도 증원대를 파견할것이며 이때 그 적은 대장강 남쪽에 있는 남구골짜기에서 소멸하기로 하였다. 안길, 전동규 그리고 내가 지휘하는 13련대, 15련대, 경위려단 제3련대의 일부 력량 300여명의 아군부대들은 23일 새벽 남구에 이르렀다. 전부대는 대장강으로 통하는 큰길 남쪽 강냉이밭과 북쪽고지에 매복하였다. 한편 량형우, 리룡운동지들이 지휘하는 제14련대와 경위려단 제3련대 일부와 제13련대의 일부 력량 300여명은 같은 날 새벽에 대사하부락근처에 도착하였다. 일제는 대사하부락주위에 토성을 높이 쌓고 사방에는 포대를 구축하였다. 부락에는 경찰서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2개의 포대가 있었고 경기관총 2자루와 보병총 등으로 무장한 30여명의 경찰놈들이 있었다. 그리고 위만군 한개 중대력량이 이 부락을 드나들었고 수십명의 무장자위단이 욱실거리고있었다. 우리는 전투행동에 앞서 이전부터 우리와 련계가 있는 대사하부락콩기름공장의 한 로동자를 통하여 부락안의 정형을 알아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놈들은 해가 뜰 때 성문을 열며 보초를 철수한다는것과 그때에는 많은 부락민들이 물을 길으려고 밖으로 나온다는것이였다. 성안에는 우물이 없었던것이다. 지휘부에서는 우선 날이 밝기 전에 토성을 포위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편의대를 조직하여 물을 길러 나온 인민들의 물지게를 바꾸어 메고 성안으로 들어가 적경찰서의 포대를 감쪽같이 점령하고 나머지 적을 소멸한 다음 소사하고개에로 달려가 적증원부대를 섬멸할 계획이였다. 그리하여 아군지휘부는 일부 병력을 안도와 무송방향에 방차대로 파견하고 전체 부대는 북문과 서문으로 진입할 작정으로 토성밖의 남새밭주변에 매복하여 날밝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런데 해가 뜨기 얼마전이였다. 한놈이 북문으로 하여 남새밭으로 나왔다가 아군을 발견하자 급히 성안으로 뛰여들어가려고 하였다. 우리의 전투계획은 틀어지게 되였다. 그러자 지휘부에서는 불의에 대병력을 성안에 돌입시켜 경찰서를 점령할것을 결심하였다. 돌격명령이 내렸다. 우리는 성안으로 뛰여들어가는 그놈을 쏘아눕히고 북문으로 성안에 돌입하였다. 총소리를 들은 적경찰과 자위단놈들은 포대에 의지하여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아군은 집들에 의지하면서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적의 저항은 예상외로 강했다. 그리고 2개의 포대는 매우 견고하므로 저격무기로써는 파괴할수 없었다. 이때 우리는 경찰서근방에서 지주의 집을 발견하였다. 민감한 우리 대원들은 적들이 그 집에 대해서는 주의를 덜 돌릴것임을 포착하고 그 집에 접근하였다. 지주집을 리용하여 우리는 《관통전술》을 썼다. 즉 지주집에 뛰여들어 벽을 뚫고 포대에로 접근했던것이다. 포대에 접근한 우리 동무들은 수류탄을 던졌다. 그러나 포대는 파괴되지 않았으며 그 화구들에서는 여전히 적기관총이 불을 뿜어댔다. 그리고 경찰서안에서는 급해맞은 경찰 한놈이 안도현성에다 빨리 증원부대를 보내달라고 전화통이 터지게 소리를 치고있었다. 우리의 타산은 맞아떨어졌다. 그런데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되였다. 한시바삐 부락의 적을 소멸하고 부대주력은 소사하고개에로 출동하여야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결사대는 우박치듯 퍼붓는 탄우속을 뚫고 수류탄묶음을 적포대의 화구에 집어넣었다. 저주로운 적화구는 아가리를 다물었다. 그러자 아군은 만세소리 높이 경찰서를 점령하였다. 전투는 예정한것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더 지체할 사이가 없었다. 부대는 대사하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급히 소사하고개에로 달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대사하로부터 급보를 받은 안도현성의 일제놈들은 9대의 자동차에 나누어타고 아군이 매복하려던 소사하고개를 넘어오고있지 않는가. 적들은 아군방차대의 사격을 받으면서도 발악적으로 전진하였다. 적들은 드디여 고개우의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였다. 아군은 불리한 지형에서 적을 대항하여 싸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적들은 경기관총, 중기관총, 박격포, 적탄통 등으로 발악적인 사격을 가해왔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정황은 우리에게 점점 불리해졌다. 이때 14련대의 정치위원인 량형우동지가 소리높이 이렇게 웨쳤다. 《일제놈들은 우리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다. 놈들은 지금 쏘련을 침공하고있다. 저 원쑤들을 한놈도 남김없이 쳐부시자. 쏘련을 피로써 옹호하자.》 그의 구호는 우리 용사들을 영웅적투쟁에로 불러일으켰다. 우리 용사들은 노도와 같이 일제히 함성을 올리며 언덕진 고개우로 돌진하였다. 적탄은 비발치듯 날아왔다. 그러나 적개심에 불타오른 우리 동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끝내 고개우로 톺아올라가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아군은 마침내 소사하고개를 점령하였으며 적련대장이하 지휘관놈들과 수많은 적병을 살상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전투에서 우수한 지휘관이며 공산당원인 량형우동지를 잃게 되였다. 그는 동지들의 품에 안겨 마지막숨을 거두면서 북쪽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유언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것입니다.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쏘련을 옹호하여 끝까지 싸웁시다. 조선혁명승리 만세!》 한편 남구에 매복하였던 아군부대들은 명월구의 적증원대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놈들을 다시금 유인할 목적으로 그 일대의 집단부락들을 습격하기로 하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부대는 명월구에서 대사하쪽으로 이동하는 적증원대를 감시하기 위하여 4명의 대원들을 남겨두고 대장강집단부락과 그 주변부락들을 습격하기 위하여 남구를 떠났다. 경위중대와 안길, 전동규동지들이 지휘한 15련대는 대장강집단부락을 습격하여 마을을 해방시켰다. 이날밤 나는 한개 중대병력을 데리고 대장강부락에서 동쪽으로 10리가량 떨어진 안도와 명월구사이의 자동차도로주변에 위치한 동양툰부락으로 갔다. 나는 여기서 적의 경비전화를 리용하여 안도현성, 명월구 등 각처의 경찰서와 주재소들에 《대사하를 해방시킨 인민혁명군부대가 지금 대장강, 동양툰 기타 수많은 부락들을 점령하고있으니 한바탕 싸워보려면 오라.》하고 위협조로 통고하였다. 내가 이렇게 한것은 적을 유인하기 위해서였고 또한 적에게 우리의 위력을 시위하며 놈들속에 미리부터 혼란과 공포를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밤이 어지간히 깊었을 때 명월구로부터 6대의 자동차에 탄 적증원대가 나타났다. 우리 매복조원들은 때를 기다려 불의사격을 개시하였다.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돌아치다가 자동차에서 뛰여내려 허겁지겁 대항하였다. 우리는 그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고는 일단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적들은 우리가 자취를 감추어버린 후에도 오래동안 눈먼사격을 하다가 나중에는 대사하, 안도현성방향으로 도망쳐버렸다. 대사하쪽으로 간 적들이 다음날에는 틀림없이 돌아올것이라고 짐작한 우리는 그놈들을 매복전으로 섬멸할 계획밑에 그 이튿날 새벽에 다시 남구에 가서 매복하기로 하였다. 지휘부의 명령으로 전체 부대는 마치 먼길을 떠나는것처럼 행군준비를 갖추고 부락을 출발하였다. 그것은 이 근방에 아군이 없다는 인상을 적들에게 줌으로써 놈들의 전투태세를 늦추게 하기 위한것이였다. 남구는 대장강에서 약 5리쯤 떨어진 남쪽에 있는 골짜기였는데 안도현성과 명월구간의 자동차도로가 바로 이 골짜기를 통과하고있었다. 부대들은 골짜기와 개울의 지형지물을 잘 리용하여 유리한 지대에 매복하였다. 아군의 매복지점으로부터 도로까지는 60m가량 되였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날 12시가 되도록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날씨는 매우 무더워 매복하고있기가 힘들었으나 12시경부터는 잠시 소낙비가 내려 더위를 좀 덜어주었다. 우리들은 초조해하지 않고 적들을 본때있게 쏴눕힐 통쾌한 전투를 생각하면서 무기에 이상이 없는가를 다시금 살펴보았다. 이윽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안도현성쪽으로부터 적들을 만재한 군용자동차 6대가 약 50m간격을 두고 달려오고있었다. 선두차에는 중기관총, 경기관총 등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언덕으로 올라오던 선두차가 진창에 멈춰섰다. 운전수가 황급히 뛰여내려 자동차기관부뚜껑을 열어제꼈다. 뒤따르던 자동차들이 한줄로 멈춰섰다. 예상치 않게 놈들은 우리의 매복권내에 모두 들어선것이였다. 우리 동무들은 이제나저제나 하고 마음을 조이면서 사격신호를 기다리였다. 자동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여 선두차가 방금 다리를 건너서려고 하였다. 바로 이때 사격개시를 알리는 총소리가 골짜기에 울려퍼졌다. 아군의 기관총들과 보병총들은 적자동차들을 향하여 일제히 명중탄을 퍼부었다. 놈들은 저항할 사이도 없이 자동차우에 앉은채로 혹은 자동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무리로 쓰러졌다. 행렬가운데 끼워있던 자동차 1대는 앞차들때문에 갈길이 막혔으므로 당황한 나머지 길옆에 있는 강냉이밭으로 냅다 달리더니 개울홈에다 육중한 차체를 처박았다. 아군의 집중사격을 받으면서도 적들은 자동차우와 밑에서 저항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때 나는 《수류탄을 던져라.》하고 웨치면서 나자신도 여러개의 수류탄을 던졌다. 수류탄과 기관총의 불벼락을 얻어맞은 적들은 견디여내지 못하고 무리로 쓰러졌다. 그러나 워낙 적들은 수량상 많았으므로 살아남은 놈들은 자동차밑과 도로주변의 기복들에 의지하여 완강하게 저항하기 시작하였다. 적아간에 가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때 대장강쪽으로 통하는 길 우측고지에 집결하였던 경위 3련대 2중대는 남구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따라 적에게 접근하여 13련대와 15련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2중대는 즉시에 박원규동지의 지휘하에 고지에서 내려 개울물둔덕에 의지하면서 적에게 접근하였다. 적의 화력은 세찼었다. 우리 동무들은 머리를 들수 없어 포복전진을 하였다. 적들은 여러정의 경기관총과 중기관총으로 발악적으로 저항하고있었다.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는 동무들도 있었다. 그것을 목격하는 우리 용사들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였고 가슴은 복수심으로 끓어번지였다. 사방에서 구호를 불렀다. 안길동지는 《조선인민과 쏘련인민의 철천지원쑤인 일제놈들을 소탕하라.》하고 웨쳤다. 2중대의 증원화력이 주력부대의 화력에 합류하기 시작하였다. 우리 용사들이 틀어잡은 15정이상의 경기관총과 수백정의 보병총들은 적진을 향해 련속 멸적의 불벼락을 퍼부었다. 그러나 우리의 화력이 세찰수록 놈들의 발악도 집요하였다. 선두차에 탔던 놈들은 물웅뎅이와 새밭에 숨어서 경기관총으로 완강히 저항하는것이였다. 그런데 그놈의 경기관총위치를 정확히 포착할수 없어 적지 않게 애를 먹었다. 적기관총수놈은 우거진 새밭속에 숨어있었으므로 쉽게 발견되지 않았던것이다. 마침내 김자린동무가 새밭에서 풀대가 흔들리는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보병총사격으로 단방에 새밭에 숨은 적기관총수놈을 쏴눕혔다. 적들의 화력은 잦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군의 돌격나팔소리가 울렸다. 우리 용사들은 함성을 울리며 적진에 달려들어 원쑤놈들을 족치였다. 이 전투가 끝날무렵에 안도현성방향에서 적증원부대가 자동차로 달려왔다. 그러나 놈들은 아군방차대에 의하여 많은 시체를 남기고 도주하고말았다. 전투는 약 2시간 계속되였다. 전투가 끝나고 전장수색을 하였는데 15련대 전연에서 수상한 놈을 발견하였다. 그놈은 부상당한데도 없이 죽은체 하고 쓰러져있었다. 그래 우리 대원이 그놈의 몸뚱이를 다치자 후닥닥 일어나 뛰기 시작하였다. 우리 동무들은 《네놈이 얼마나 뛰나 보자.》하고 그놈을 내버려두었다. 그놈은 자동차길을 따라 대사하쪽 고개를 향해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올리뛰다가 흠칫 놀래며 못에 박힌듯이 서버렸다. 고개우에 있던 우리 방차대동무들이 그놈을 맞받아 내려오고있었던것이다. 그놈은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두손을 머리우에 쳐들고 싹싹 비비며 《오, 신이여 도와주오.》하고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발버둥을 치면서 량손에 돌을 쥐고 자기 대가리를 짓쫏는것이였다. 악귀의 최후발악이였다. 잠시후 그놈은 죽어버렸다. 이날 전멸된 적의 부대는 우리가 늘 벼르고있던 가장 악질적인 미야모도《토벌대》였다. 그속에는 일제놈 150여놈과 조선인특무, 악질지주, 자본가의 자식들로 조직된 특설부대성원이 20여놈이나 있었다. 이 미야모도부대는 유격대를 《전멸》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우리의 뒤만 따라다니던 악질적인 《토벌》부대였다. 이놈들은 자기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기만 하면 《통비분자》라고 하며 인민들을 무참히 학살하는 극악한 놈들이였다. 이처럼 악독한 일제놈들의 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수천수만번의 전투에서 단련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의하여 완전히 섬멸되였다. 특설부대에서 한놈, 자동차운전수 한놈만 남고 두목 미야모도를 비롯한 적들은 전멸되였던것이다. 우리들은 이날 전투에서 경기관총 5정과 보병총 150여정, 적탄통 2문을 로획하였다. 2일간의 전투에서 적군살상포로(자위단까지 포함하여)는 500여놈에 달하였으며 경기관총 7정과 근 300정의 보병총, 여러문의 적탄통 그리고 많은 군수품을 로획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애석하게도 량형우동지 등 5명의 전사자와 9명의 부상자를 내였다. 이 전투가 있은 후 우리 부대들은 화전현쪽으로 이동하였다. 그후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화전현 대포시하일대에서 《쏘련을 무장으로 옹호하자!》는 구호를 더욱 높이 들고 요차전투(일명 한총구전투)를 비롯하여 계속 대규모적인 적배후교란작전을 진행하였다. 아군부대는 대포시하주변의 10여개의 집단부락을 해방시키였다. 그리고 이 지방의 인민들속에서 일제가 쏘련의 동부국경과 몽골국경에서 도발사건을 일으킨 그 침략적본질을 폭로하는 정치선전사업을 광범히 진행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들은 적들의 《토벌》이 우심했던 어려운 시기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쏘련에 대한 침공에 열을 올리며 발악하는 일제의 후방을 교란하여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던것이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이처럼 어렵고 가렬처절한 전투를 벌리는 준엄한 환경속에서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공동의 원쑤를 반대하는 투쟁의 한길에서 쏘련 및 중국인민들을 비롯한 국제혁명력량과의 련대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힘차게 싸워왔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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