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강현 쌍산자전투

  

림강현 쌍산자전투

조 명 선

 

1938년 4월 26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중국본토침략에 광분하는 일제의 배후를 공격하는 작전의 하나로 림강현 6도구의 적을 소탕하고 쌍산자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쌍산자는 6도구에서 15리가량 떨어져있는 림강과 장백사이의 도로옆에 있다.
 6도구를 떠난 조선인민혁명군부대는 소남구골을 지나 람의탕부락옆으로 하여 쌍산자부근 라즈거우강이라고 하는 산우에 올랐다. 이곳에 도착한것은 4월 27일 새벽이였다.
 이 산우에 오르면 동쪽으로 7도구강과 험준한 산발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6도구뒤산이 보이며 앞에는 림강과 장백으로 통하는 도로가 보인다.
 우리가 차지한 고지릉선우에는 나무가 없고 쑥대만이 무성했으며 릉선앞은 무연한 산발이 뻗어내려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있었다.
 6도구전투에서 적경찰과 위만군, 자위단놈들을 소탕한 우리는 사기충천하여 피곤한줄도 모르고 행군해왔다.
 우리가 이 고지에 도착했을 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적이 반드시 따라오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전투준비를 할것과 날밝기전에 식사를 끝마칠것을 명령하시였다.

그리하여 6도구방향으로 뻗은 고지앞면에 전투경계를 배치하고 주력은 고지뒤면에서 휴식하고있었다.
 그런데 물은 벼랑아래까지 내려가야 길어올수 있었으므로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에 벌써 날이 밝았다.
 새벽에는 바람 한점 없는 맑은 날씨였는데 조금후부터는 바람이 사납게 불기 시작하였다. 어떤 중대에서는 식사를 채 끝내지 못했을 때였다. 망원초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련락이 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 부대들을 신속히 전투위치에 배치하시였다. 사령부가 차지한 고지에는 경위중대와 기관총소대가 배치되고 그 우측고지에는 8련대, 사령부가 차지한 고지의 좌측에는 7련대, 그 다음고지에는 반일부대인 문명군부대가 각각 서북릉선을 향하여 배치되였다.
 아군의 력량은 도합 400명가량 되였다.

우리는 신변기재로 전호까지 파고 위장을 한 다음 적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고지는 아무 변동이 없는듯 다만 바람소리가 들려올뿐이였다.

모두 지난 밤을 꼬박 새웠건만 날카로운 눈초리로 적이 나타날 도로방향을 쏘아보고있었다.
 긴장된 시간이 한초한초 흘렀다.

얼마후 1개 소대가량의 적기마대가 나타났다. 그놈들이 그냥 큰길로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지나가자 뒤미처 대부대의 적보병들이 누렇게 밀려왔다. 놈들은 고지를 향하여 한걸음한걸음 기여올라왔다.
 적들이 사격권내에 완전히 들어왔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격명령을 내리셨다.
 우리는 놈들을 향하여 기관총, 보병총 등 일체 화력을 퍼부었다.
 고요하던 산중은 요란한 총성으로 갑자기 뒤집히는듯 하였다.
 첫 타격에 넋을 잃은 적들은 산릉선에 시체를 너저분히 남기고 도로아래로 밀려내려갔다. 그러자 뒤에 섰던 장교놈이 권총을 빼들고 도망치는 졸병들을 향하여 총질을 하며 올리몰았다. 놈들은 허둥지둥 다시 산으로 기여올라왔으나 모두 제정신이 아니였다. 아군은 또다시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거듭되는 타격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계속 병력을 증강하면서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전투는 점점 가렬해졌다.
 적의 화력이 심하여지자 맨 좌측고지에 배치되였던 반일부대병사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에 8련대를 그곳에 진출시켜 적을 물리치게 하시였다. 그리고 반일부대는 8련대가 차지하였던 고지에로 이동시키시였다.
 벌써 한낮이 되였건만 싸움은 계속되였다.
 그래도 아군은 여유있게 일부는 고지뒤의 은페지에서 휴식을 하면서 교대로 나와 싸웠다.
 적들은 력량을 더욱 증강하면서 풀숲을 리용하여 기여올라왔다. 우리들은 기여오르는 놈들을 연달아 쓸어눕혔으나 그래도 적들은 계속 발악적으로 기여올라왔다.
 우리는 개인전호에 의지하여 싸우기도 하였고 릉선의 지형과 나무그루, 바위 등에 의지하여 싸우기도 하였다. 온종일 물도 변변히 마시지 못하고 우리는 싸우고 또 싸웠다.
 적의 병력은 오후에 이르러 1 000여명이나 되였는데 이때 동원된 놈들은 여러곳에서 모여든 경찰들과 일만혼합군이였다.
 전투가 가렬해짐에 따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고지뒤에서 휴식시키던 예비병력까지 전투에 진입시키시였다. 그런데 오후에 증강된 적의 일부 병력은 아군의 익측 뒤면을 위협하며 달려들었다.
 이 방향에는 7~8명의 대원밖에 없었는데 사태는 위급했다.

정황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그곳 진지로 나가시여 몸소 기관총을 잡으시고 백발백중의 명중탄으로 적을 소멸하시고 대원들을 고무하심으로써 적들의 배후공격기도를 완전히 분쇄하시였다.
 전투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가렬해갔다. 정황이 긴장하게 되자 일부 반일부대지휘관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퇴각하자고 제의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겁한 이들의 행동을 지적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 형편에서 퇴각하여서는 결코 안됩니다. 뒤는 벼랑이고 그 밑에는 강과 모래불이 있습니다. 그런데 적은 사방에서 달려들고있습니다. 이런 정황하에서 퇴각한다는것은 적에게 우리를 쳐달라고 내여맡기는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여기서 끝까지 싸워야만 이길수 있습니다. 한걸음도 퇴각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그들을 설복하고 명령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목소리는 매우 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전체 대원들에게 일보도 퇴각하지 말고 고지를 사수하며 적에게 더욱 무서운 타격을 가할데 대하여 명령하시였다.
 사실 이때의 정황은 매우 위급하였다. 우리가 차지한 고지뒤면은 험한 벼랑이라 피할 길이 없는데다가 벼랑아래에는 7도구강이 흐르고 강변은 모래불이였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대낮에 진지를 이동한다는것은 아군에게 극히 불리할뿐만아니라 6도구전투에서 로획한 많은 군수물자도 미처 운반하지 못할수 있었다. 그러므로 어쨌든 여기서 적을 물리쳐야 했다.
 긴장된 전투환경에서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하시였다. 그이의 태연하시고 락관적인 모습을 보는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힘이 솟구쳐올랐다.
 우리들은 모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한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확신하고 용기백배하여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전술과 명철한 통찰력은 이 전투행정에서도 여실히 실증되였다. 아군이 가하는 타격이 더욱 맹렬하여지자 적들은 점차 기진맥진하여져 더는 기여오르지 못하고 이미 차지한 계선에 엎드려있었다. 오후부터는 그 기세가 현저히 약화되여갔다.
 이렇게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에 어느덧 오후 5시경이 되였다.
 오후부터 흐리던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이 기회를 리용하여 살아남은 놈들을 몽땅 그러모아가지고 최후발악적으로 공격해왔다.
 이 엄숙한 시각에 사령부가 위치한 고지와 그 일대에서 힘있는 혁명가요와 함성들이 산에 메아리치며 울렸다. 우리도 그 노래를 함께 부르며 기세충천하여 적을 족치고 또 족쳤다.
 이날 전투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낸데다가 소나기까지 맞아 지칠대로 지친 놈들은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황겁히 도망치고말았다.
 우리는 이날 적병 200여명을 살상하였다.
 이날 전투는 유격투쟁에서 보기 드문 장시간에 걸친 간고한 주간방어전투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지휘에 의하여 이 어려운 전투도 승리적으로 끝났다.
 쌍산자에서 승리한 우리는 그날밤 다시 행군을 개시하였다.

부대는 세차게 퍼붓는 비속을 뚫고 7도구골짜기로 이동했다.
 유격투쟁의 나날은 이와 같이 전투가 끝나면 행군이요, 행군이 끝나면 또 전투였다. 그후 우리는 림강현 가가영에 있는 적을 소멸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6도구, 쌍산자에서 올린 승리의 개가는 압록강을 넘어 국내동포들을 크게 고무추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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