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의 품속에서 꽃펴난 사랑

  

그이의 품속에서 꽃펴난 사랑

강 위 룡

 

80이 넘은 내가 지금에 와서 젊은 시절 자기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것은 격에 맞지 않을수 있다.
 그러나 백두산시절에 있었던 김확실동무와 나와의 사랑이야기는 나의 일생에서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그를 처음 알게 된것은 처창즈유격구의 동남차수림에서였다.
 그때 나는 《민생단》혐의자로 몰리워 무장대오에서 제명되여 무기수리소에 와있었다.
 우리 무기수리소옆에는 재봉대가 있었는데 무기수리소와 재봉대성원 20여명의 식사를 김확실동무가 보장하였다.
 어느날 우리 무기수리소에서는 뜻하지 않았던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그날 나는 무기수리소안에서 보총탄알재생작업을 하고있었는데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 다급한 정황속에서 불길을 헤치고 수리소안에 뛰여들어온것은 작식대원 김확실동무였다.
 《동무, 정신차려요.》
 나는 그의 다급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나를 업어 밖으로 내왔다.
 이때 동무들이 달려왔다.
 나의 머리칼은 온통 불에 타고 얼굴은 화상을 입어 살가죽이 쭈그러붙었다. 얼굴의 살가죽이 죄여들어 아파서 견딜수가 없었다.
 동무들은 나를 급히 병원으로 업어갔다.
 그런데 군의는 화상당한 나의 얼굴에 소독수를 붓고 쭈그러붙은 얼굴가죽을 뜯어낸 다음 와셀린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는것으로 처치를 끝냈다.
 《민생단》혐의자에게는 그것도 과남하다는 심사인것 같았다.
 오발사고를 내여 《민생단》혐의를 받고있었는데 재차 폭발사고까지 일으켰으니 이제는 영낙없이 죽어야겠구나 하는 번민에 빠져 나는 밤잠조차 이룰수 없었다.
 다른곳에 가서 림시로 일하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박영순동무가 김확실동무를 데리고 병원에 달려왔다.
 그는 김확실동무에게 나를 간호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때 박영순동무는 무기수리소 책임자사업과 함께 수리소와 재봉대의 당세포비서사업을 하고있었다.
 김확실동무는 나의 간호병이 되였다.
 그는 매일 종이에다 밀을 녹여 나의 화상자리에 붙여주고 눈곱을 뜯어주고 발을 씻어주었다.
 간호를 받고 간호를 해주는 사이에 우리들사이에는 저도 모르게 사랑이 움터나 결국 처창즈인민혁명정부에 찾아가 결혼등록까지 하게 되였다.
 그런데 이 결혼이 문제시되였다.
 보름도 못되여 확실동무가 왕바버즈쪽으로 추방되였던것이다.
 숙반공작위원회에서는 《민생단》혐의자와의 결혼을 《민생단》의 수를 배가시켜주는 반혁명적인 리적행동으로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를 나의 곁에서 떼여냈던것이다.
 좌경분자들의 박해로 말미암아 그가 조직생활에서 제명당하였고 날마다 문초를 당하고있으며 사랑의 표적물로 간수하고있던 소지품들까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가슴이 아프고 분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결국 그처럼 혁명에 충실한 그가 나때문에 죄인취급을 당한다고 생각하니 그와 결혼한것이 얼마나 후회막심한지 몰랐다.
 그와 강제리별을 당한 때로부터 9개월이 지난 다음 무기수리소가 그가 있는 가까운곳으로 이동했을 때에도 나는 좌경분자들에게 맹종맹동하던 일부 지휘관들의 승인을 받지 못한탓으로 그와의 짧은 상봉마저 이루지 못하였다.
 누군가에게서 들은 소리에 의하면 확실동무가 너무도 안타깝고 고통스러워 끝내는 나와의 사랑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고까지 하여 나는 마음이 더욱 괴로왔다.
 《민생단》혐의자인것으로 하여 그의 마음속고백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절절하게 말하던 그의 속삭임소리가 그냥 귀전에서 울려왔다.
 《나는 동무가 일하는것을 볼 때마다 <민생단
>이 아니라는것을 확신했어요. 그리고 동무를 무기수리소에 보낸것을 보아도 조직이 동무를 믿고있다는것을 알수 있어요.》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때에 나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었던 애인까지 이제는 나에게서 멀어져간다고 생각하니 외롭고 서글픈 마음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의 심정이 리해되기도 하였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참기가 어려웠으면 그가 그렇게까지 마음먹었겠는가.
 며칠동안의 고민끝에 나도 새로운 결심을 내리였다.
 (사랑이야 못한들 무슨 대수이랴.
 그저 혁명만 계속 할수 있다면 그만이다.
 나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피해를 보게 할수야 없지 않는가.)
 마음은 이렇듯 모질게 먹었지만 깨여진 사랑은 나에게 영원히 아물지 못할 상처로 남아있었다.
 가슴속상처를 안은채 얼마후 나는 2련대를 따라 교하원정을 떠났다. 원정대에 무기수리기술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끼워있어야 한다는 사정이 《민생단》혐의자인 나를 원정대에 속하게 하였던것이다.
 원정기간 사랑의 상처는 줄곧 나를 괴롭히였다. 아무리 잊어버리자고 해도 어째서인지 확실동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혁명을 위해서 모든것을 참고 견디자는 생각으로 자신의 마음을 달래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새 사단을 조직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2련대와 함께 원정길에서 돌아오면서도 나는 이렇게 되뇌이군 하였다.
 (비록 사랑은 깨여졌지만 《민생단》혐의자의 억울한 루명만 벗어버리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곰의골밀영에 도착한 이튿날 뜻밖에도 나는 전장에서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생단》혐의자인 나를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는것이 꿈같고 황송하여 나는 그이앞에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그러는 나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동안 나의 생활에 대하여 물어주시였다.
 나는 친어버이에게 아뢰는 심정으로 내가 《민생단》혐의에 걸리게 된 사연과 그것때문에 당생활정지처분까지 받은 억울한 사연을 죄다 말씀드렸다.
 심중한 안색으로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무를 《민생단》으로 몰아서 당생활을 정지시킨것은 아무런 타당성도 없다고, 오늘부터 동무의 당생활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던것으로 치고 《민생단》혐의는 완전히 무효라고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그 순간 나는 너무도 기쁘고 감격하여 그만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이제부터는 모진 박해와 불신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혁명을 할수 있게 되였다는 생각이 나의 가슴을 울렸던것이다.
 격정에 들먹이는 나를 진정시켜주시며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동무의 애인이 김확실동무라지?》라고 물으시는것이였다.
 나는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에게 애인이 있다는것까지 알고계실줄은 상상도 못했기때문이였다. 그리고 혁명을 위해 총을 잡은 몸으로 애인까지 있다는 사실을 그이앞에서 터놓기가 여간만 쑥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뜻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시였다.
 《확실동무는 여기 있지 않고 몇십리 떨어진 횡산쪽의 후방밀영재봉대에 가있소. 거기 가서 확실동무를 만나보시오.》
 그러시더니 이제 곧 길잡이할 사람까지 달아주겠다고 하시는것이였다.
 나는 너무도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하는수 없이 후에 천천히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확실동무에게 련락을 띄워서 이리로 오게 하면 상봉시간이 두배쯤 늦어질수 있기때문에 동무가 직발 그리로 가는것이 좋겠다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사실 그때 나는 한달음에 확실동무에게 달려가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래서 떳떳치 못한 남편때문에 괴로움을 겪고있는 그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싶었다.
 그러나 재생의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도전에 애인부터 만난다는것은 당치도 않은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마음 한구석에는 확실동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있겠는지 하는 위구심도 없지 않았던것이다.
 이런 생각속에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또다시 《우린 천천히 만나도 됩니다. 일없습니다.》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섭섭하신 어조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는 천천히 만나도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동무때문에 김확실동무의 살이 내리는걸 보고만 있을수 없소. 두말 말고 곧 떠나도록 하시오.》
 (확실동무가 지금도 나때문에 애타하고있단 말인가?…)
 우리의 사랑이 이미 끝났다고 제나름대로 생각하고있던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속에 한가닥 희망의 기쁨이 차넘침을 느끼였다.
 그럴수록 자기의 도리를 다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가다듬은 나는 머리를 수굿하고만 있다가 눈물이 글썽해서 말씀드리였다.
 《그렇지만 대렬편성도 받기전에 어찌 애인부터 찾아가겠습니까. 혁명을 하자고 총을 잡았는데 혁명사업부터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듯 고집을 쓰는 나를 바라보시며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그러시더니 정색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에게 한가지 과업을 주겠소. 2련대와 함께 온 녀성동무들을 데리고 재봉대에 들어가서 동기용솜군복을 만드시오. 그걸 다 만들기전에 돌아오면 처벌을 내리겠소.》
 이렇게 되여 나는 길잡이 전령병과 그리고 교하에서 돌아온 녀대원 2명과 함께 횡산밀영으로 가게 되였다.
 밀영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은 끝없이 설레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나와 확실동무와의 관계를 어떻게 알고계실가.
 확실동무가 그 기간 나때문에 마음고생을 말할수 없이 겪었겠는데 이제 만나면 어떻게 대해줄가.)
 그런데 나의 이 생각은 괜한것이였다.
 우리의 상봉은 너무도 반갑고 눈물겨운것이였다.
 평시에 남자처럼 성미가 서글서글하던 확실동무는 나를 보자마자 너무도 반갑고 기쁜 나머지 나의 손을 잡고 흐느끼기만 할뿐 말 한마디 번지지 못하였다.
 나 역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말귀가 미처 떠오르지 않았다.
 《확실동무,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들을 만나게 해주셨소.》
 이 말만이 부지중 터져나왔을뿐이였다.
 그날 우리들은 달밝은 밀영지의 산비탈을 걸으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하고 또 하였다.
 나는 그에게 그동안 내가 겪은 마음속고충에 대하여 그리고 그곳으로 오게 되기까지의 사연을 말해주었다.
 나의 말을 들으며 연신 눈귀만 닦고있던 그는 《사령관동지!》하고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운채 어린애처럼 오래도록 흐느껴울었다.
 그리고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씻을념도 안하고 자기도 장군님의 품속에서 새 인간으로 되였노라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확실동무는 나와 결혼한것이 죄로 되여 좌경분자들의 온갖 박해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절망과 번민으로 모대기며 살아가고있었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혁명을 더 잘해나가자고 사랑을 맺은것인데 그것이 죄로 된단 말인가.) 

그는 날마다 이렇게 되뇌이며 고민하였다.
 어떤 때에는 은연중 이렇게 된바치고는 서로 갈라지는것이 어떨가, 그러면 서로 마음이 더 편할수 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군 하였다.
 모순에 빠진 그의 마음은 안타깝고 괴롭기만 하였다.
 그런 나날이 흘러가던중 그는 마안산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되였다.
 그때 조선인민혁명군의 새 사단을 편성하기 위하여 무송에 나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안산밀영에 100여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이 있다는것을 아시고 그들을 만나러 오신것이였다.
 어느날 그는 수림속을 거니시다가 귀틀집으로 들어오시는 그이앞에 버릇도 없이 불쑥 나타나 울면서 말씀드리였다.
 《장군님, 저는 <민생단
>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념도 안하고 자기가 《민생단》혐의자로 몰리게 된 사연에 대하여, 자기 남편도 《민생단》이 아니라는데 대하여 죄다 털어놓았다.
 뿐만아니라 마음속고충을 견디여낼수 없어서 사랑을 포기해버릴 생각을 했었다는것까지 깡그리 말씀드리였다.
 그의 말을 마지막까지 다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동지를 믿고 사랑을 약속했으면 그것을 끝까지 지켜야지 고충을 겪는다고 하여 쉽사리 저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참된 사랑이겠는가고 하시며 혁명가들은 어느때이든 우선 인간을 믿어야 한다고, 나는 강동무도 확실동무도 다 《민생단》이 아니라는것을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100여명의 《민생단》혐의자들의 문서보따리와 함께 그의 문서도 불살라버리시였으며 그후 그를 새로 조직된 조선인민혁명군의 녀성중대에 받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무송현성전투에서 적을 여섯놈이나 찔러눕혔을 때에 그의 전투공로를 높이 평가하시여 금반지를 표창으로 수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금반지표창을 수여받은날밤 확실동무는 잠들래야 잠들수 없었다.
 원래 그에게는 은반지가 있었다.
 그것은 처창즈유격구에서 함께 생활할 때 내가 그에게 만들어준것이였다.
 그가 은반지를 끼고다니는 녀성들을 하도 부러워하길래 나는 내가 건사하고있던 은전을 조금 잘라서 그의 반지를 만들었다.
 반지의 한가운데에는 적동으로 오각별까지 쪼아박아주었다.
 혁명의 한길에서 별처럼 빛나게 살자는 그와 나의 마음을 반지에 새기고싶어서였다.
 그 은반지를 손에 쥐고 확실동무는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강동무, 난 강동무가 준 이 은반지를 나의 몸에서 한시도 떼놓지 않고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억세게 싸우겠어요.》
 그런데 좌경분자들은 그가 그처럼 귀중히 건사하고있던 은반지를 강제로 빼앗아냈다.
 《민생단》혐의자가 준것이기때문에 가지고있을수 없다는것이였다.
 좌경분자들은 은반지와 함께 가슴속에 소중히 간직된 그의 사랑도 빼앗아버리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마음속상처를 안고있는 확실동무에게 하많은 표창품들중에서 금반지를 골라 수여하여주시였다.
 그 금반지속에는 금처럼 순결하고 굳센 마음으로 혁명을 하고 사랑도 지켜갈것을 바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웅심깊은 당부가 깃들어있는것이였다.
 하기에 그는 그 금반지에 혁명의 한길에서 맺은 귀중한 사랑을 비추어보며 언제나 참되고 보람있게 살것을 맹세다지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나서 확실동무는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강동무, 정말 사령관동지의 품에 안기지 못했더라면 우리의 사랑은 이미 시들어버리고말았을거예요.
 저는 이제 더 한이 없어요.
 사령관동지의 품에서 잃어버릴번 한 사랑도 되찾고 혁명도 마음껏 할수 있게 되였으니 바랄게 더 무엇이겠어요!》
 나의 생각 역시 그와 다를바 없었다.
 그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크나큰 믿음과 은정을 잊지 말고 한생토록 혁명에 더욱 충실할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이렇게 되여 우리들의 사랑은 다시 꽃피여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스러져가던 사랑을 다시 꽃피워주시였을뿐아니라 그후에도 늘 지켜주고 보살펴주시였다.
 우리들의 상봉을 마련해주신 얼마후에는 대원들이 사령부로 리용하시라고 성의껏 지어올린 귀틀집에서 우리들이 생활하도록 하는 더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으며 숙영의 밤 오락회가 벌어질 때면 몸소 그와 나를 지명하시여 2중창을 부르도록 해주시였고 보천보전투가 끝난 직후에 있은 군민련환모임때에는 두손 맞잡고 춤을 추는 김확실동무와 나를 마을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하여주시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관총을 다루고싶어하는 확실동무의 소원을 헤아리시여 그가 나에게서 기관총 다루는 법도 배우게 해주시였고 어려운 척후임무도 함께 수행하도록 해주시고 크고작은 전투에 함께 참가하여 큰 공을 세우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은혜로운 그 품이 있었기에 우리는 참으로 보람찬 삶을 누리였고 김확실동무는 주체27(1938)년 4월 최후를 마치는 순간까지 혁명에 충실할수 있었다.
 어찌 우리들뿐이겠는가.
 위대한 수령님의 그 품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많은 남녀대원들이 사랑도 참되게 할수 있었다.
 하기에 일제놈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마치 인간성도 없고 인간다운 생활도 없는듯이 광고했지만 우리들은 백두밀림의 설한풍을 헤치며 하루에도 수십번 적들과 조우해야 하는 그 간고한 투쟁의 나날에도 조국광복에 대한 승리의 신심과 생활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안고 사랑을 했으며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혁명에 대한 끝없는 헌신성, 동지에 대한 믿음으로 충만된 우리들의 사랑은 흰눈처럼 깨끗했고 강쇠처럼 굳셌으며 불길처럼 뜨거웠다.
 정녕 우리 혁명전사들의 사랑을 참되게 꽃피워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그 품은 내 죽어서도 잊지 못할 영원한 사랑과 믿음의 품이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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