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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아골밀영에서
김 철
만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아 붉은기폭에 싸여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뵈올 때마다 나는 끝없이 숭엄한 감정에 휩싸여 그이의 위대한 생애를 돌이켜보군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오로지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조국의 부강번영과 통일독립을 위하여 끊임없는 로고와 심혈을 다 바쳐오신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사색과 활동의 나날이였다.
오랜 세월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사업해오는 과정에 나는 이에 대하여 수없이 목격하였다.
그중에서도 항일혁명투쟁시기 물방아골밀영에서 받은 감동은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가 함경북도 연사군 삼하리 국사봉비밀근거지의 물방아골밀영을 향하여 처창즈를 떠난것은
주체29(1940)년 5월이였다.
그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적방침에 따라 백두산동북부와 우리 나라 북부국경일대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련대별로 지구를
담당하고 중대단위로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만강연안일대를 혁명의 보루로 튼튼히 꾸리실 원대한 구상밑에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소조들의 사업을 지도하시기 위하여 몸소 연사지구에로의 진출을 단행하시였던것이다.
그때 우리 대오에는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도 계시였다.
우리가 안도의 천고수림을 헤치며 삼도구와 홍기하, 대마록구부근을 거쳐 두만강연안에 이르니 8련대의 한 소부대를 책임지고 활동하던
김일동지가 위대한 수령님을 감격에 겨워 맞이하였다.
우리는 그곳에서 일찌기 저녁식사를 하고 두만강이 내려다보이는 매골등판에 이르러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물동을 건너 《갑무경비도로》를
횡단하였다. 대오가 삼하등판을 지나 떼목으로 서두수를 건는 다음 물곬을 따라 후인동이라고 부르는 골짜기에 이른것은 새날이
잡힐무렵이였다. 후인동골안 막치기에 국사봉비밀근거지의 물방아골밀영이 있었다.
이날 멀고도 긴장한 행군으로 하여 몹시 지치고 피곤하시였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겹쌓인 피로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대원들의 잠자리까지
일일이 돌아보시고서 맨 나중에 자리에 드시였다.
그러시고도 이튿날아침에는 선참으로 일어나시여 이곳 소부대책임자와 함께 밀영지를 돌아보시였다.
물방아골밀영은 군사지형학적으로 볼 때 매우 묘한 위치에 자리잡고있었다.
자그마한 실개천이 서두수로 흘러들고 그 좌우로는 칼날같은 절벽이 서있는데다가 크고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누구도 그안에
들어가보지 않고는 골짜기가 있는지 없는지 도저히 알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 좁은 실개천입구를 따라 들어가보면 골짜기가 점점 넓어지면서 그 막치기까지 거의 15리가 잘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틀집과 밀영지주변을 돌아보시고나서 아주 명당자리에 밀영을 잘 앉혔다고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방아골밀영이 우선 비밀을 철저히 보장할수 있어 좋고 또한 삼장, 연사지구에서 활동하는 소부대, 소조들의
근거지로서 그 중심위치에 밀영이 건설되여있기때문에 해당 지역의 어디에 나가 일을 보아도 그날로 돌아올수 있어 좋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밀영주변에 갖가지 산나물과 산열매, 약초들이 있고 감자같은것을 심어먹을 곳도 많으며 서두수에는 물고기도 많아서 소부대,
소조들이 장기간 주둔하여도 생활상 불편이 없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국내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는 소부대, 소조들이 의거해야 할 밀영이란 바로 이런 밀영입니다.
조성된 혁명정세의 요구에 맞게 소부대, 소조활동을 강화하는데서 우리가 바라는 밀영의 표본을 여기 물방아골에 실물로
만들어놓은셈입니다.
오늘 동무들이 건설한 밀영을 보니 이런 믿음직한 밀영만 도처에 꾸려놓는다면 국내에서 소부대활동을 마음대로 벌릴수 있겠다는 신심이
생깁니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치하를 받은 이곳 소부대책임자는 기뻐서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우리도 그토록 만족해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면서 명당자리인 이곳 밀영에 오신 기회에 그이께서
다문 얼마동안이라도 편히 쉬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밀영에서의 첫날 새벽부터 밀영지를 꾸린 상태를
알아보시는것으로 사업을 시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침식사가 끝나자 이곳 밀영에서 활동하고있던 소부대동무들과 우리들을 모두 한자리에 부르시고 사령부가 물방아골밀영에 머무르는동안 해야
할 사업들에 대하여 알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두만강상류 북부조선일대를 튼튼히 꾸리는것은 당창건준비사업과 조국광복회운동을 전국적범위에로
확대발전시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런데 제기되는 자료들을 보면 무산, 연사지구의 일부 조직들에서는 그전에 비해
투쟁열의가 낮아지는 현상들이 나타나고있다, 이번에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우선 실태료해사업에 모든 동무들이 다
참가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이곳 동무들과 경위중대성원들을 배합하여 실태료해를 위한 3개 소조를 편성하여주시고 그들이 활동할 지역과 료해할 내용,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해 8월에 자신께서 무산, 연사일대를 돌아보신 후 어떤 혁명조직들이 새로 나왔고 어떻게 활동하고있는가를 잘
알아보라고 하시면서 전반적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소조가 해당 조직성원들과 토의하여 해결방도까지
연구해가지고 오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실태료해가 끝나면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하려고 한다고 하시면서 회의날자와 장소, 참가대상들을
알려주시는것이였다.
그러고보면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 물방아골밀영에서 하실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래도 실태료해소조들이 모두 떠나가면 시령부에 호위성원들만 남게 되므로
그사이만이라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좀 편히 쉬실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어느 정도 마음이 놓이였다.
그런데 그 기대마저 오래가지 못하였다. 소조들이 떠난후 얼마 있지 않아 물방아골밀영 주변일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소부대, 소조책임자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이 연줄연줄 찾아왔다. 그들은 여러가지 후방물자와 함께 출판물자료들을 한짐씩 지고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여기로
오시면서 이미 통신원들을 띄워 부르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일일이 만나 그사이 활동정형을 알아보시면서 강령적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들이 떠나간 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통나무로 만든 소박한 책상에 마주앉으시여 밤깊도록 각지의 소부대와 정치공작소조,
혁명조직들이 보내온 통신자료와 함께 여러가지 출판물과 일제의 비밀문건자료들을 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작은 수첩에 필요한 자료를 써넣기도 하시고 어떤것은 색연필로 밑줄도 그어놓으시였으며 때로는 한쪽귀를 접어 표시해두셨다가
다시 읽어보시면서 사색에 사색을 이어가시였다.
나는 이날밤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갔는데 그이의 책상우에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신문들과
잡지들 그리고 여러가지 문건자료들이 수북이 쌓여있는것을 보면서
수령님께서 저 많은것들을 언제 다 보시고 주무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병실에 들어와 잠자리에 누워서도 좀처럼 잠들수
없었다.
그래서 몇번이고 다시 들어가 떼질하다싶이 하면서 밤시간만이라도 쉬실것을 거듭 간청하였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시던것만 마저 보시고는 쉬겠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보시던 자료를 다 보시고는 또다시 새
자료를 보시면서 좀처럼 자리에 드시지 않으시였다.
우리는 안타까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그저 속만 바질바질 끓이였다.
결국은 이날밤도 우리들이 먼저 잠들고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위대한 수령님의 방에 가보니 그이께서는 어느새 벌써 일어나시여 밖에 나가시였는데 방 한쪽에 쌓여있던 자료들이
모두 건너편에 가서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밤도 꼬박 새우시며 그 많은 자료들을 다 보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료들도 다 보셨으니 이제는 좀 쉬실 시간이
있겠다고 생각한 우리들은 그이의 사색을 방해할가봐 먼발치에서 뒤따르다가 오늘은 푹 쉬셔야 하겠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렇게 하자고 대답하시였다.
그런데 이날 아침식사가 끝나기 바쁘게 민봉비밀근거지에 나가있던 소부대책임자가 물방아골밀영에 도착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로부터 민봉비밀근거지의 형편과 군중조직정치사업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밀영건설과 운영에서 제기되는 문제와
비밀보장문제를 두고 그와 오래동안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민봉비밀근거지의 소부대책임자가 돌아가자 이번에는 8련대 정치위원인 김일동지가 몇명의 지휘성원들을 데리고 찾아왔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사봉비밀근거지로 오시는길에 들리시여 주신 가르치심대로 삼장면 삼수평과 원사동쪽에 소부대를 파견하여 그곳
적들을 치고 인민들에게 정치사업을 진행한데 대하여서와 동경평과 산동툰집단부락습격전투도 진행하여 큰 성과를 거둔데 대하여 상세히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련대의 군사정치활동성과를 높이 평가하시고나서 삼장대안인 화룡현 승천촌집단부락 습격전투를 잘 조직진행하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줄데 대한 새로운 임무를 주시면서 친히 작전계획까지 다 짜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물방아골밀영에서 전반적인 소부대활동의 전략적구상을 무르익히시면서 각지에 실태료해소조를 파견하시고
자신께서는 몸소 부근에서 활동하고있는 여러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소조들, 혁명조직성원들을 만나시여 실태료해를 하시고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김일동지가 떠나간 후 인차 무산과 연사, 삼장지구에 나갔던 공작조들이 돌아왔다.
맨 선참으로 도착한것은 백두의 녀장군 김정숙동지께서 인솔하신 소조였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연사읍에 가시여 연사지구당조직책임자의 집에 거처하시면서 이틀동안에 그곳 지구 당조직과 조국광복회
연사지구위원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의 활동정형을 전반적으로 상세히 료해하시였다. 그리고 적들의 탄압이 날로 우심해지고있는 형편에서
생산유격대와 로동자돌격대의 역할을 더욱 높여 조직을 보호하며 전민항쟁준비를 갖추는것이 중요하다는 해결책까지 찾아가지고 위대한 수령님께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적후에 들어가 진행하는 소부대, 소조활동은 그렇게 대담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면서도 실속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삼장지구에 나갔던 소조가 돌아오고 무산지구에 나갔던 소조도
돌아왔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도 도착하는 차제로 일일이 만나시여 구체적인 보고를 받으시였다.
이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미 포치하신 일들은 기본적으로 결속하시였으므로 얼마동안이라도 쉬실 시간을 내실수 있게 되였다고 우리는
제나름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우리 생각과는 달리 이날저녁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느때보다 더 분망한 시간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사이 사령부에 남아있던 전령병들까지 다 망라하여 2인조들을 조직하여 근거지주변지역 마을들에 파견하시여 인민들을
각성시켜 혁명화하기 위한 정치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는 한편 자신께서는 종합된 실태료해자료를 하나하나 분석하시면서 소부대, 소조,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를 준비하시였다.
그러다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야말로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분과 초를 쪼개가시면서 잠도 휴식도 잊으시고 정력적으로 사업하시였다.
나는 지금도 어제일처럼 선히 떠오르는 한가지 이야기만을 더 적으려고 한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휴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회의준비를 기본적으로 끝내신 어느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시더니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모두 산에 올라가 휴식하자고 하시는것이였다.
우리는 너무도 기뻐서 환성을 올리며 서로 얼싸안고 돌아갔다.
이날따라 하늘은 유난히 맑고 푸르렀다.
해빛이 부채살처럼 숲속에 비쳐들고 어디선가 풍겨오는 꽃향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더더욱 부풀어오르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령병에게 가방과 쌍안경을 가져오게 하시더니 곧 우리들을 데리고 밀영지뒤산의 등대봉으로 오르시였다.
산을 한 절반가량 올라갔을 때 우리앞에는 기묘한 바위들이 나타났다.
바위옆에는 아름드리소나무가 몇그루 서있고 그 주변에는 소담한 진달래꽃들이 군데군데 무지를 이루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기서 잠간 쉬여가자고 하시면서 옆에 있는 넙적한 바위돌우에 걸터앉으시였다.
우리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둘러앉아 이마에 돋은 땀방울을 훔치며 조국산천의 아름다운 황홀경에 심취되여 넋없이 주위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우리들을 보시며 누구에게라없이 이렇게 물으시였다.
《동무들은 아름다운 조국의 산발을 타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소?》
뜻밖의 물으심에 우리는 서로 마주볼뿐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혁명가는 그 어디에 가서나 조국을 사랑할줄 알아야 하며 귀중한 조국을 위하여 그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과 포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이 아름다운 조국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해방된 조국땅우에
인민의 락원을 건설할 생각을 했다고, 이 산에만 하여도 얼마나 많은 나무가 자라고있는가, 이 자원을 우리 손으로 개발하여 인민들의
생활에 리용한다면 우리 인민은 참으로 잘살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혁명가나 애국자의 마음은 언제나 조국과 인민에 대한 생각으로 불타야 하며 휴식하는 경우에조차 조국과 인민에 대한 생각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가슴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며 우리들은 아무 생각없이 산천구경이나 하려고 하던 자신들이 부끄러워 머리를 들수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안을 두셨다가 물론 사람에게 있어서 휴식도 필요한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휴식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손에서 일을 놓고 휴식하면 그만큼 도탄에 빠진 조국은 우리를 원망할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부모처자와 형제들, 전체 인민을
하루빨리 도탄속에서 구원하며 삼천리조국땅우에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워야 할 무거운 임무가 지워져있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한몸의 안락을
바라기전에 투쟁으로 조국을 찾을 생각을 해야 하며 투쟁속에서 참된 삶과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에게는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그 무엇인가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좋은 궁냥이 떠오를 때가 제일 기쁜 때이고 또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제일 즐거운 휴식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그만 쉬고 또 오르자고 하시면서 앞장서 산으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산마루에 오르니 앞이 탁 트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들은 산등성이에 곧게 자란 아름드리소나무곁에 자라처럼 생긴 큰 바위우에 올라갔다.
이때 누군가가 《백두산이 보인다!》하고 웨쳤다.
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백두산쪽으로 쏠렸다.
조국의 높고낮은 산발들을 한품에 거느리고 천리수해우에 거연히 솟은 백두산이 우렷이 안겨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쌍안경을 드시고 백두령봉의 굽이굽이마다를 이윽토록 바라보시고나서 백두산은 언제 봐도 신심과 힘이 솟게 하고
희망이 넘치게 하는 조선의 명산이며 혁명의 성산이요라고 열정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바위우에 군용지도를 펴놓으시고 쌍안경을 드시여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는 두만강상류 북부국경지대의 여러 지점들을 둘러보시며
지도우에 붉은색연필로 무엇인가 표식해나가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산, 연사, 삼장을 비롯한 두만강연안 북부조선일대를 혁명의 강력한 보루로 꾸려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고나서 확신에 넘치신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조종의 산인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가 온 삼천리강토우에 혈맥처럼 뻗어있듯이 백두산에서 타오른 혁명의 불길이 온 나라에
해살처럼 퍼지게 될것이며 그 불길속에서 멀지 않아 조국광복의 새날이 밝아오게 될것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두산이 보이는 이 산마루를 지방혁명조직성원들과의 사업장소나 회의장소로 쓰면 여러모로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번
회의도 이자리에서 하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때에야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산에 오르신것이 휴식이나 산천유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회의장소를 현지에서
확정하시려는것이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였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제껏 진행해오신 회의준비의 계속이였던것이다.
그로부터 이틀후 등대봉의 자라바위기슭에서는 무산, 연사, 삼장지구에서 활동하는 소부대, 소조들과 혁명조직책임자들의 회의가 있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날 회의에서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두만강연안 북부국경일대를 더욱
튼튼히 꾸리기 위한 과업과 방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께서 국사봉비밀근거지 물방아골밀영에서 보내신 하루하루는 문자그대로 정력적인 사색과 열정으로 이어진 벅찬
나날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내내 우리들에게 나라가 해방된 다음에 푹 쉬자고 하시며 20성상 항일혁명투쟁의 전기간을
그렇게 보내시였다. 그리고 조국을 해방하신 후에는 전쟁을 이긴 다음에 푹 쉬자고, 조국이 통일된 다음에 푹 쉬자고, 우리 인민이 모두
잘살게 된 다음에 푹 쉬자고 하시며 위대한 생애를 마치시는 마지막순간까지 한평생을 바로 그렇게 보내시였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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