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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을 위하시는 마음
전 문
섭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새 없다고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대원들에 대한 걱정으로 언제 한번 편히 쉬실 새가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로고를 모두 달게 여기시며 우리
혁명전사들모두를 한품에 안으시고 혁명투쟁과 신변잡사에 이르기까지 늘 관심을 돌리시고 각근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육친적사랑과 보살피심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혁명에 뛰여든 대원이나 순탄하게 입대한 대원, 나처럼 어린시절에 집을
나선 대원들이나 모두 준엄한 항일대전의 불바다속에서 사상육체적으로 강한 투사로, 혁명가로 자라날수 있었던것이다.
《옷을 말리워야 하겠소》
주체27(1938)년 봄이였다.
이해 봄을 맞으며 동기군정훈련을 통하여 정치사상적으로, 군사기술적으로 더욱 튼튼히 단련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용기백배하여 압록강연안 장백일대로 행군하고있었다.
유격전을 벌리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있어서 봄은 활동하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라고 할수 있었다.
푸른 자연의 대수림은 모두 우리를 보호해주는 성벽으로 되여 적과의 싸움에 유리하였고 식량이 떨어져도 각종 산나물과 풀뿌리 등으로
이어댈수도 있었다.
그래서 《눈이 녹고 나무잎이 돋으면 적은 울고 항일유격대는 춤을 춘다.》는 말까지 생겼다.
18살에 유격대에 입대하여 처음으로 맞이한 그해 봄은 나에게도 희망과 포부로 가슴들먹이게 하였다.
소원대로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부대에 입대한데다가 그이를 보위하는 경위중대원으로까지 되였으니 나의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컸다.
그리하여 나는 혁명군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는 봄을 맞으며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본때를 보이리라고 단단히 속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나는 이해 봄의 첫 행군의 날부터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게 되였다. 마당거우밀영을 떠난 우리는 송화강을 건너
국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하여 강행군을 들이댔다.
조국땅이 바라보이는 백두산서남부일대에 진출하여 발악하는 원쑤들에게 보복의 철추를 내리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줄것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절로 빨라졌다.
우리는 한달음에 송화강기슭에 이르렀다.
송화강을 건느는 문제는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댔는데 막상 강기슭에 도착해보니 생각하던바와는 딴판이였다.
아직 얼음이 다 풀리지 않았는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눈녹은 물이 얼음우에 생긴 곬을 따라 갈기를 날리며 세찬 기세로
흐르는것이였다.
거기로 이따금 큰 얼음덩이까지 떠내려오면서 서로 부딪치며 부서지군 하는데 잘못 들어섰다가는 헤여나기가 어려울것 같았다.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강가에서 망설이고있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장을 살펴보시더니 곧 얼음우에다 나무다리를 놓으면서
강을 건느도록 하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긴 통나무를 찍어서 물곬에 나무다리를 놓으며 강을 건넜다.
아차 잘못하면 쏜살같이 흘러내리는 물살에 휘말려들수 있었다.
나는 나무다리에 올라 조심조심 발을 옮겨디디며 물곬을 건느기 시작하였다.
손에 땀을 쥐고 한발자욱한발자욱 건느는데 별안간 나무다리가 《쾅》하고 강한 충격을 받는 바람에 나는 그만 허궁 떨어져 물살에
말려들었다.
떠내려오던 커다란 얼음덩이가 다리를 쳤던것이다. 순간 세찬 물살이 나의 몸을 아래로 냅다 밀었다.
물살이 어찌나 센지 아무리 몸부림하며 헤염을 치려고 하여도 밀려내려가기만 하였다. 나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기슭으로 나오기
위해 힘을 모아 팔다리를 놀렸다.
일이 될 때라 이쪽저쪽 기슭을 치며 흐르던 물살에 실려 나는 겨우 기슭으로 밀려나왔다. 때를 같이하여 떠내려가는 나를 따라 기슭으로
따라내려오던 동무들이 저저마다 손을 내밀어 나를 끌어내였다.
그날 동무들의 방조가 없었다면 나는 강을 건느지 못했을것이다.
대안에 다달은 나는 동무들의 도움을 받으며 옷을 대강 짜입었다. 온몸이 얼어드는것만 같았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날씨가 여간만
차지 않아 나의 옷은 인차 소가죽처럼 꽛꽛하게 얼어서 걸을수가 없었다.
결심품고 유격대에 입대하면서 물론 고생을 겪을 각오를 안한것은 아니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것이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따뜻한 온돌이
그리웠고 고향생각도 났다. 하지만 대오에서 떨어질것이 두려워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내색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행군대렬을 따라섰다.
그런데 어느새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바쁜 걸음으로 나에게로 다가오시였다. 그러시고는 꽛꽛해진 내옷을 만져보시며 어디
다친데는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춘기공세에 들어선 행군의 첫날부터 위대한 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린것이 창피하게 생각되여 머리를 들지 못하고 상한데가 없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친데가 없다니 다행이라고, 정말 큰일날번 했다고 걱정을 하시더니 옷을 말리워 입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때문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더 마음을 쓰시지 않게 하려고 나는 춥지 않다고 하면서 얼마든지 대오를 따라설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니오, 그대로 가다가는 동상을 입을수 있소. 옷을 말리워야 하겠소.》라고 말씀하시며 대오에
휴식명령을 내리시는것이였다. 그러시고는 주위에 있던 동무들에게 빨리 우등불을 피우라고 지시하시였다.
나는 몹시 당황하였다. 순수 나의 젖은 옷을 말리우기 위하여 전부대가 그처럼 바쁜 행군길을 멈추어섰으니 놀랍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이 불을 피우는 사이 송구스러워 어쩔줄 몰라하는 나에게 어서 옷을 벗으라고 하시였다. 나는 옷을 벗어서
말리우자면 시간이 더 지체될것 같아서 그대로 말리우겠다고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화상을 입을수 있다고 하시며 끝내 내옷을 벗겨주시고 모포로 감싸주시였다. 동상을 입을세라 걱정하시고
화상을 입을세라 마음쓰시며 추울세라 모포로 감싸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느라니 어린시절 나를 따뜻이 안아 보살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히 떠오르면서 그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친어머니와도 같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보살피심이 있는 한 유격대생활과정에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얼마든지 이겨내고 끝까지 혁명을 할수 있다는 신심이 솟구쳐났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말리워주신 군복을 입은 나는 온몸에 넘쳐나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안고 행군에 참가하였다.
나는 80고령이 다 되여오는 오늘에도 그때에 가슴속에 차오르던 뜨거운 충격을 그대로 안고 산다. 이 세상 력사를 다 뒤져보아도
사령관이 한 대원의 젖은 옷을 념려하여 계획에 없던 휴식명령을 내리고 우등불까지 피우게 한 사실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모두를 그렇게 다심한 어머니의 심정으로 걱정해주시며 보살펴주시였다.
산천어튀기
주체28(1939)년 가을이였다.
그해 가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새로운 대규모《토벌》공세를 짓부시기 위하여 백두산동북부의 넓은 지역에서 대부대선회작전을 전개할
구상밑에 그 준비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원래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가을은 조선인민혁명군에게 있어서 아주 바쁜 계절이였다. 지금처럼 공고한 국가적인 후방공급기지를 가지고있지
못한 조건에서 겨울나이준비를 잘하지 않으면 겨울에 숱한 고생을 하게 되는것이다.
더우기 그해 겨울에 일제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히 《소멸》하겠다고 벼르며 기를 쓰고 달려들려고 하기때문에 단단히 차비를 하여야만
하였다.
그런데 대부대가 온 겨울 활동하자면 식량이나 피복 등 후방물자의 량이 간단치 않았고 구입과 저장을 모두 비밀리에 해야 하는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접어들면서부터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에 따라 전체 부대가 겨울나이준비에 떨쳐나섰다.
7련대와 8련대는 물론 경위중대까지 식량공작에 나가군 하였으며 사령부가 자리잡은 올기강밀영에 남아있던 재봉대와 기타 보장성원들은
겨울용군복제작에 달라붙었다. 식량공작도 물론 힘든 일이지만 한두벌도 아니고 전체 대원들의 군복을 만드는 일도 결코 헐치 않았다.
그 많은 천을 구해들이는것으로부터 보위색으로 물을 들이고 몇대 안되는 재봉기로 군복을 만드는 일들은 말처럼 쉬운것이 아니였다.
하지만 대원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과업을 기한내에 수행할 결심을 안고 모두가 뛰고 또 뛰였다.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은 밤낮이 따로없이 군복제작전투를 벌리였다. 얼마나 긴장히 일하였던지 모두가 입술이
부르트고 입맛을 다 잃었으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두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였지만 그들은 피로를 무릅쓰고 재봉기를 돌리고 또 돌리였다.
어느날 경위중대장을 통하여 군복제작정형을 료해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봉대원들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시면서 지휘관들이 조직사업을
잘해서 그들의 잠시간을 충분히 보장해주며 식사질도 높여 입맛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사실 그때 제일 바쁘고 피로하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낮에는 낮대로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시느라고 휴식할 틈이 없으시였고 밤에는 또한 새로운 작전을 구상하시느라고
지도를 마주하시고 새날을 맞군 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전령병들은 물론 사령부에 들리는 지휘관들과 대원들모두가 위대한 수령님께 건강에 주의를 돌리셔야겠다고 간절히 말씀드리군
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전혀 돌보지 않으시면서 부대의 겨울나이준비를 하는 대원들에 대해 그토록 각근히
마음쓰시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 뜻밖에도 우리 전령병들에게 올기강으로 낚시질하러 나가자고
하시는것이였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다른 동무와 함께 인차 낚시도구들을 준비한 다음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올기강으로 나갔다.
강가에 이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슭을 이윽히 둘러보시다가 한곳에 자리를 정하고 낚시를 드리우시였다.
낚시를 강물에 던져넣기 바쁘게 깜부기가 오르내리였다.
미소어린 안색으로 깜부기를 주시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깜부기가 한쪽으로 움직이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낚시대를 드시였다.
순간 손바닥만 한 산천어가 해빛에 비늘을 번쩍이며 공중에 올랐다가 풀숲에 떨어졌다.
나는 환성을 지르며 펄떡거리는 고기를 떼내여 그릇에 담았다. 첫마리에 이어 고기가 연방 물려나왔는데 미처 미끼를 이어대기가 바쁠
정도였다. 미끼는 풀메뚜기로 하였는데 잠간사이에 주변의것은 다 잡아치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 대원들을 휴식시키신 다음 올기강에 나가시여 적들의 동기《대토벌》작전을 분쇄할 새로운 작전적방침을
구상하시였으며 산천어도 많이 잡으시였다.
낚시질을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뜨시면서 산천어는 입맛을 돋구고 피곤을 푸는데도 좋다고 하시면서 군복제작에 동원된
동무들에게 주라고 하시였다.
산천어가 입맛을 돋구고 피곤을 푸는데 좋다는 말씀에 나는 귀가 번쩍
트이여 무엇보다먼저 위대한 수령님께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달음으로 작식대로 달려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작식대원들은 산천어를 정성껏 손질하여 가루를 묻힌 다음 한마리두마리 기름에 튀여냈다.
산천어튀기는 보기만 하여도 먹음직스럽고 군침이 돌았다.
산천어튀기가 다되여 저녁식사를 하려고 할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부르시더니 산천어를 다 가공했다면 모두 재봉대원들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시였다.
나는 모처럼 마련한 산천어튀기를 위대한 수령님께 다문 얼마만이라도 꼭 대접하고싶어 선뜻 움직이지 못하였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봉대동무들이 요즘 밤을 새우며 일하느라고 입맛을 잃었을게요. 그 동무들이
식사하기전에 빨리 갖다주도록 하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거듭 재촉하시는 바람에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알았습니다.》라고 대답을 올리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대접하게 되였다고 그처럼 기뻐하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산천어튀기는 모두 경위중대동무들과 재봉대녀대원들에게
차례졌다.
뜻밖의 산천어튀기를 받아안은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은 그 사연을 알고서는 모두 눈물을 머금으며 그날밤도
쉬지 않고 재봉기를 돌리였다.
이렇듯 사랑의 산천어튀기는 그대로 경위중대동무들과 재봉대녀대원들의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여 겨울군복제작을 다그쳐끝낼수 있게 되였다.
《혁명주사약》
주체29(1940)년 2월말에 우리 부대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하에 백석탄밀영을 떠나 두만강연안에로
행군하였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에 있어서 아주 불리한 계절인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대부대선회작전의 1단계에서 놈들을 보기 좋게
족친데다가 백석탄밀영에서 진행된 군정학습을 통하여 정치군사적으로 더욱 튼튼히 준비된 부대는 사기가 왕성하여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그러나 부대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식량난을 겪게 되였다. 처음에는 하루에 두끼를 먹고 다음에는 하루 한두끼 강냉이 몇알로 에우다가
나중에는 그것마저 떨어져 눈을 녹여서 마시며 행군하였다.
지도에도 표시되여있지 않은 지대이라 아무리 가고 또 가도 인가 한채 눈에 뜨이지 않으니 도무지 식량을 얻을 길이 없었다.
시간이 가고 날이 갈수록 대오에는 한명두명 환자가 생겨나기 시작하였고 점차 지칠대로 지친 부대가 모두 쓰러질 형편에 처하였다.
어려운 행군길에 대원들의 형편을 두고 제일로 걱정하신분은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이 행군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눈길을 헤치고
앞뒤로 오가시며 힘들어하고 병을 만난 대원들을 일일이 보살펴주시였다. 매개 대원들은 자기 한몸을 생각하면 되였고 또 지휘관들도 자기가
맡은 대원들을 돌보면 그만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만은 전체 대원들을 다 보살피고 걱정하셔야 하였다.
병들고 지친 대원들을 걱정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도중에 지휘관들을 부르시여 이대로 가다가는 부대가 다 쓰러질수 있겠다고
하시면서 아무래도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나 그때의 정황에서 그 누구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내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도를 펼치시고 가까이에 있는 대마록구를 습격하여 부대의 식량과 의약품을 해결하실것을 결심하시고 몸소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그리하여 부대는 대마록구의 적을 치고 많은 량의 식량과 피복, 신발, 의약품을 로획할수 있게 되였다.
대마록구전투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의 원기를 회복시키도록 하시기 위하여 즉시 부대를 이끄시고 화라즈쪽의 깊은 수림속으로 들어가
한 보름동안 충분히 휴식을 하도록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환자들을 위하여 숙영지에 림시병원 비슷한 천막을 치고 집중적인 치료까지
조직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추위와 굶주림, 계속되는 강행군에 지쳐 몸이 쫄아드는 병에 걸린 대원들, 살가죽이 트고 벗겨지는 병에 걸린 대원들을
비롯하여 부대안의 모든 환자들이 로획해온 여러가지 약과 주사로 치료를 받았다.
식량도 해결되고 환자들도 회복되였지만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끝이 없었다.
어느날 부대군의를 부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포도당과 비타민주사약이 얼마나 있는가를 알아보시더니 그것을 전체 대원들에게
놓아주라고 지시하시는것이였다.
군의는 눈이 둥그래지며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그건 요긴할 때 쓰려고 보관한 비상약입니다. 그 귀한 약을 모든 대원들에게 다 맞힌단 말입니까?》
사실 대마록구전투에서 로획한 의약품들중에는 치료용약품들과 함께 일정한 량의 포도당, 비타민주사약과 같은 몸보신용에 쓰는 주사약들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대선회작전을 진두지휘하시느라 고생이란 고생을 다 겪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건강회복에 쓰려고 소중히 보관하고있던 참이였다.
그의 이런 심중을 리해하신듯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때 쓰는것이 비상약이라고 하시며 우리 대원들의 건강보다 더 귀중한것은 없다고,
어서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다 놓아주도록 하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더 무슨 말을 하지 못하게 그의 등을 떠밀어보내시였다.
이리하여 군의는 녀대원들의 도움을 받으며 각 중대천막으로 돌아다니면서 주사를 놓게 되였는데 대원들속에는 난생 주사라는것을 처음
맞아보는 동무들이 대부분이였다.
그들은 혈관에 바늘을 찌르는것이 으쓸하여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며 주사를 맞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러는 그들에게 군의는 젖어든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장군님께서 몸이 약한 동무들이 몸보신을 해서 혁명을 잘하라고 하여 놓아주도록 하신 혁명주사약이요.》
그제서야 그들은 뜨거운것을 삼키며 주사를 맞았다. 어떤 대원은 량팔을 걷어올리며 혁명을 잘하자는 주사약이면 한대 더 맞겠다고 하는
바람에 모두 웃음판이 터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웃음대신 심각한 표정을 짓고 먼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동무들도 있었다.
지주놈의 채찍아래 고역에 시달리다 골병이 들어 약한첩 써보지 못한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부모형제들에 대한 생각이 그 시각 못견디게
가슴을 허비며 떠올랐던것이다.
주사를 맞은 날 자기들의 건강을 위하여 그처럼 극진하고 다심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은정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전 부대가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화라즈밀영에서 원기를 회복한 부대는 홍기하전투에서 마에다《토벌대》를 통쾌하게 족쳤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이 깃든 그 주사약은 결국 우리 부대가 더욱 분발하여 대부대선회작전을 빛나는 승리에로 결속하게 한 말그대로
《혁명주사약》으로 되였던것이다.
이렇듯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보살피심과 사랑속에 우리 혁명군대원들은 눈보라속에서도 추운줄 몰랐고 굶주림속에서도 배고픈줄 몰랐으며
강행군길에서도 힘든줄을 모르고 일제와 싸워이길수 있었다.
오늘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꼭같이 혁명전사들의 신상을 일일이
보살펴주고계시기에 우리 인민은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긍지높이 사회주의기치를 변함없이 고수해나가고있다.
주체87(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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