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랑을 헤치시며 조선혁명을 새로운 전환에로
이끄시여
림 춘 추
1930년대초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의 일대 전환기였다.
황혼기에 처해있던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이 파쟁의 탁류와 조락의 진통속에 더욱 가속도적으로 쇠퇴몰락해가고있는 반면에 진정한
혁명가들,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의 혁명투쟁은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솟아오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세련된 령도밑에 력사의
새 아침을 소리높이 구가하면서 보다 높은 단계에로 비약적인 전환을 이룩하고있었다.
력사의 땅 카륜에서 주체의 목소리가 힘있게 울려퍼지고 조선혁명의 대강이 펼쳐졌으며 그 위대한 기치따라 우리 혁명은 승리적인 전진을
거듭하고있었다.
사대와 교조에 물젖은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일으킨 좌경모험주의적인 5. 30폭동과 8. 1폭동으로 하여 우리 혁명의 앞길에는 일시적인
난관이 조성되였으나 그 어떤 시련과 난관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두리에 굳게 뭉쳐 나아가는 우리 인민의 혁명투쟁을 가로막을수
없었다.
우리 혁명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나던 1930년의 하반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좌경모험주의적인 5. 30폭동과 8.
1폭동으로 하여 일시적으로 조성된 조선혁명의 난국을 수습하시고 혁명을 보다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길림, 해룡, 청원, 교하, 할빈, 돈화, 안도, 연길, 화룡, 왕청, 국내의 온성 등 연연 수천리의 험한 로정을 이어가시며 우리
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어나가시였다.
나는 시련많고 풍랑사납던 그 잊을수 없는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우리들, 역섬지구의 새 세대 공산주의자들을 찾아주시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하나의 감격적인 사실을 전하려 한다.
1930년 봄과 여름 공명과 출세에 눈이 어두운 종파사대주의자들은 좌경모험주의적인 5. 30폭동과 그의 연장인 돈화지구 8.
1폭동을 일으켜 우리 혁명의 앞길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일제와 중국반동군벌의 발광적인 검거선풍과 야수적인 학살만행이 온 동만을 사납게 휩쓸었다. 룡정총령사관과 그 산하의 5개 분관에
배치된 경찰놈들과 헌병대놈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일제의 교활한 민족리간술책에 속아넘어간 중국국민당반동군벌의 돈화주둔 제7련대장
왕수당같은자들이 《토벌사령관》으로 되여 동만각지를 돌아치면서 조선사람이라면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게다가 조선사람의 탈을 쓴
《한족련합회》의 권수정, 남대관과 같은 극악한 민족반역의 무리들도 일제와 국민당반동군벌의 학살만행에 적극 동조해나섰다.
놈들의 극악한 학살만행과 검거선풍으로 아직도 맹아기에 있던 적지 않은 혁명조직들이 파괴되고 혁명의 지도핵심들을 비롯한 조국의 수많은
우수한 아들딸들이 무참히 피살되였다.
밤을 자고나기만 하면 놈들이 어데를 치고 누구를 학살했다는 가슴아픈 소식이 날아들군 하였다.
한때는 폭동마당으로 되였던 도시와 마을들이 피바다에 잠기고 사람들은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혁명조직성원들은 극도로 위축되고
동요하였으며 각성되지 못한 군중은 《공산당때문에 망한다.》고 아우성쳤다.
나는 그때 조직의 지시에 따라 연길현 조양천에서 《봉춘당약방 의사 림춘봉》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의사노릇을 하면서 역섬지구 당 및
공청비서처로부터 각 현에 대한 련락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그때 조양천에는 역섬지구 당 및 공청비서처 성원들인 마득한동무와 라일동무, 김영환 (별명 곱은돌이)동무와 그의 처 김영숙동무들이
적들의 검거선풍속에서 비밀리에 혁명활동을 하고있었다.
비서처는 라일동무의 아버지네집 뒤고방에 자리잡고있었는데 우리는 은밀히 거기에 모여앉아 사업을 토의하군하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력사적인 카륜회의에서 제시하신 로선과 방침들을 하루빨리 관철해나가야 하였으나 적들의 계속되는
백색테로에 혁명조직들이 무참히 파괴당하고 수많은 혁명의 지도핵심들을 잃고보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앞길이 묘연해지고 막막하기만 하였다.
안타까운 모대김속에 세월은 살같이 흘러 어느덧 여름도 지나고 가을이 깊어져갔다.
추석이 지난지 며칠이 되는 그해 10월 1l일이였다.
그날밤 비서처로 찾아간 나는 방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류달리 숭엄한 분위기가 온 방안에 차넘치는것을 느꼈다.
희미한 등잔불이 비치는 방 한가운데는 중국옷인 다부산자를 입은 웬 청년 한분이 앉아있었는데 처음으로 대하는 낯선분이시였다.
그분께서는 능란한 중국말로 마득한동무와 이야기하고있었다.
(중국인간부인가?)
나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면서 낯선 그 손님을 찬찬히 눈여겨 보았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름름하신 젊은분이시였는데 온몸에 활기와 정열이 넘쳐나는듯싶었다. 준수하고 환한 얼굴과 각별히 영채가 도는 안광,
활달하고 세련된 동작 등이 첫눈에도 어딘가 보통분이 아니라는 인상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분께 정중히 인사를 드리였다.
그분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나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동무에 대한 이야기는 마득한동무를 통하여 이미 들었습니다. 저는 김성주라고 합니다.》
그 순간 나는 너무도 뜻밖에 당하는 일로 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아, 바로 이분이 온 민족이 우러르는 위대한 령도자 한별동지이시란 말인가!)
나는 그처럼 오매불망 그리던 귀중한분을 뵈옵게 된 끝없는 감격으로 하여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뵈옵는 순간 나에게는 불현듯 류길학우회 회원으로 있던 동무들이 그이에 대한 가지가지의 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에 내가 살던 연길지방에는 길림에 가서 공부를 하면서 류길학우회 회원으로 있던 동무들이 몇명 있었는데 그들은 방학때 집에
돌아오면 마을청년들속에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성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때문에 우리 지방 청년들은 그 당시 벌써 그이의
혁명활동내용에 대하여 잘 알고있었다.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고 우리 혁명의 새벽길우에 력사의 첫 닻을 올리신 절세의 위인, 그 젊으신 시절에
벌써 길림과 그 일대의 청소년들을 각이한 혁명조직에 묶어세우시고 국내와 국외를 진감시킨 길회선철도부설반대투쟁과 일본상품배척투쟁을
조직령도하시였다는 조선혁명의 탁월한 령도자, 파쟁과 사대에 눈이 어두운 종파사대주의자들의 탁류속에서 주체의 기치를 높이 드시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환하게 밝히신 바로 그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시고 우리를 찾아오신것이다.
그때 방안에는 희미한 등잔불이 비치고있었을뿐이였다. 그러나 그이의 환하신 모습과 활달하신 말씀으로 하여 방안은 한결 더 밝아지고
활기에 넘친듯하였다.
나는 그이께 방금전에 마득한동무와 중국말을 하시는것을 보고 그저 중국인간부로 알았노라고 솔직히 말씀올렸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리내여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때가 때이니만치 부득이하여 그런 변장술을 쓰게 되였노라고 하시였다. 그때만
하여도 중국청년들에 대해서는 일제놈들이나 국민당군벌들도 그다지 주의를 돌리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이곳 비서처동무들을 만나보자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이께서는 입가에 시원한 미소를 지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마득한동무와 김영환동무들이 번갈아가며 그이께 역섬지구의 혁명조직들의 형편이며 군중들의 동향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드리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제의 탄압만행이 심하고 혁명조직들이 혹심하게 파괴되다보니 무엇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종 주의깊이 듣고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영채도는 시선으로 좌중을 돌아보시며 그렇다고 민족의 운명을 걸머진 우리
젊은이들이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앉아있어서야 되겠는가, 우리 혁명가들에게 패배주의처럼 위험한 사상은 없다, 우리는 놈들이 내려누르면
내려누를수록 불굴의 기백과 투지를 가다듬고 더욱 억세게 분발해나서야 한다, 조성된 혁명정세와 2천만 우리 겨레가 그것을
요구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의 후과를 시급히 청산하고 혁명력량을 더욱
확대강화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우리 혁명에 끼친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의 후과에 대하여 분석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지금 적들은 동만일대의 혁명조직들과 혁명가들에 대한 탄압을 더욱 광란적으로 감행하고있습니다. 적들의 이러한 책동은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일으킨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의 후과와 관련되여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종파사대주의자들이 일으킨 좌경모험주의적폭동들의 발생근원과 본질, 그 후과와 교훈에 대하여 상세히
지적하시였다.
나의 머리에는 폭동의 전후과정이 통일적인 론리적련계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실상 그이의 말씀을 듣기전까지 우리는 폭동의 개별적현상들만 알고있었고 또 그것이 잘못된 폭동이였다는것만 깨달았지 그것이 어떤
근원에서 어떻게 발생하였고 또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찾아야 할지 잘 알지 못하고있었다.
하지만 그이의 말씀을 듣고보니 모든것이 하나의 완벽한 론리적련계속에 환하게 안겨오는것이였다.
5. 30폭동과 8. 1폭동은 무엇보다도 종파사대주의자들의 교조주의와 소부르죠아영웅주의에 그 근원을 두고있었다.
파벌싸움만을 일삼던 종파주의자들의 죄행에 의하여 1925년에 조직되였던 조선공산당은 겨우 3년도 넘기지 못하고 1928년에 자기의
비참한 종말을 고하고말았다.
공산주의를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이 가슴아픈 사실에서 심각한 교훈을 찾았어야 할것이였다.
그러나 파쟁에 이골이 난 종파주의자들은 여기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에 만주에 건너와서까지 《조선공산당재건》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자파세력확장에 몰두하였다.
그러다가 저들의 종파행동이 국제당의 비판을 받게 되자 이번에는 《투쟁》을 통하여 신용을 얻어 1국1당제의 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에
들어가겠다는 허황한 생각을 품고 모험적인 5. 30폭동을 일으켰던것이다.
그러면 《폭동지도부》에 기여들었던 종파분자들의 진짜본심은 무엇이였던가?
그것은 혁명이야 어떻게 되든 대중이야 죽든살든 오직 대중을 무모한 폭동에로 내몲으로써 자파세력의 명성을 떨치고 국제당의 신용을 얻어
자기 파가 지도적지위를 차지하자는것이였다.
더우기 그자들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대중의 의식화와 조직적준비정도는 따져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대중을 폭동에로 내몰았다.
그리하여 역섬지구에서만도 룡정, 두도구, 2도구, 남양평, 걸만동, 연길, 동불사 등 주요지역들에서 일시에 폭동이 터졌다.
폭동조직자들은 조선혁명의 반제반봉건민주주의적성격에 대하여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농쏘베트정권을 건설하자》, 《정의부, 신간회,
근우회, 지회들을 타도하자》라는 극좌적인 구호를 내걸고 산업과 교육기관에 이르기까지 닥치는대로 파괴했으며 친일, 반일을 가리지 않고
모든 지주, 자본가들을 때려부시는 망동을 부렸다.
지어 일부 지방에서는 지주나 부농이라는 명색만 가져도 덮어놓고 그들의 낟가리에 불을 지르고 가산을 몰수했으며 능히 쟁취할수 있는
동요분자들까지도 일제의 주구로 몰아 처단하였다.
아무런 준비와 타산도 없이 진행된 폭동은 결국 실패를 면할수 없었다.
폭동마당은 일제와 국민당반동군벌의 란무장으로 변했고 수많은 폭동군중들이 피를 흘리였다.
간악한 종파분자들은 이러한 참담한 실패를 빚어내고도 모자라 8월 1일에는 또다시 돈화지구에서 폭동을 일으키였다.
무모한 폭동의 후과는 너무도 심했다.
폭동은 혁명조직과 대중과의 련계를 끊어버리게 하고 혁명조직으로부터 대중을 리탈시켰다.
또한 폭동은 겨우 맹아기에 있던 수많은 혁명조직들을 파괴당하게 하고 각 지방의 혁명적지도핵심들을 상실하게 하였다.
그리고 원쑤들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악선전과 야만적탄압의 구실을 주었으며 일제의 민족리간정책에 도움을 주어 조중인민관계를 악화시켰다.
일제놈들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살인방화자들이다.》 ,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중국인의 곡식낟가리에 방화하는 강도들이다.》라고 악랄하게
비방중상하였으며 놈들의 악선전에 속아넘어간 중국국민당반동군벌놈들은 조선사람을 일제의 앞잡이라고 하면서 우리 동포들에 대한 야수적인
학살만행을 일삼았다.
폭동을 계기로 만주에 있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일제의 만주파병책동이 로골화되고있는것도 사실이였다.
이러한 사태로 미루어보아 우리는 좌경모험맹동적인 5. 30폭동과 8. 1폭동의 후과가 얼마나 큰것인가 하는것을 알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사리정연한 말씀을 들으며 폭동의 전과정을 돌이켜보는 나의 가슴에는 출세와 공명에 눈이 어두워 혁명의 앞길에 엄중한
손실만 주는 종파사대주의자들에 대한 끝없는 증오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사실 우리 역섬지구에만도 지난 기간 화요파요, 엠엘파요, 북풍회파요 하는 종파나부랭이들이 얼마나 많이 싸다니며 《공산당재건》과
자파의 《정통》에 대하여 목에 피대를 돋구어 떠벌이였던가. 그놈들때문에 얼마나 많은 혁명동지들이 우롱당했고 또 헛된 피를
뿌렸던것인가.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는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의 후과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분석해주신 다음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의 쓰라린 교훈은 당 및 공청조직과 군중단체조직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시켜 혁명력량을 하루빨리 확대강화할것을 요구하고있다고 하시면서 특히 두만강연안 역섬지구에서
혁명력량을 급속히 확대강화해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역섬지구에 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리는것은 북부조선일대와 간도지방을 우리 혁명의 전략적거점으로 꾸리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연길지방을 비롯한 역섬지구는 지리적으로 보나 주민구성으로 보나 무장투쟁의 전략적거점으로 꾸리는데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역섬지구는 지리적으로 북부조선과 린접해있을뿐아니라 조선사람이 주민의 8할을 차지하고있으며 그들의 대다수는 고국을 떠나 살길을 찾아온
가난한 이주민들로서 민족적 및 계급적각성이 매우 높습니다.
간도와 북부조선일대는 일찍부터 반일의병들과 독립군들의 활동무대로 되여있었으며 다른 지역보다 로씨야사회주의10월혁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공산주의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있는 곳입니다. 물론 역섬지구에서의 공산주의운동은 그 지도자들속에서 나타난 소부르죠아적조급성으로
하여 많은 곡절을 겪었으나 인민대중의 혁명적진출은 계속 앙양되고있습니다. 그런것만큼 역섬지구는 앞으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해나가는데서 좋은 전략적거점의 하나로 될수 있습니다. 간도지방의 이러한 특성을 잘 알고있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룡정에
총령사관을 내오고 주요지점들에 령사분관과 경찰서를 비롯한 폭압기구를 설치하였으며 <조선인거류민회>와 같은 주구단체까지
조작하여놓았습니다.》
계속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길현안의 각곳에 있는 당 및 공청단체들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의 분포정형과 피해정형을 다시금
료해하시였다.
그러신 다음 그이께서는 동무들이 혁명의 전략적거점으로서의 간도일대가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 일대에서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하며 혁명력량을 장성시키는데 심중한 주의를 돌려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력량을 장성시키는데서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는 문제는 지도핵심을 튼튼히 꾸리는것입니다.
혁명의 지도핵심이 있어야 광범한 인민대중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조직적으로 결속시킬수 있습니다. 지도핵심문제는 종파사대주의자들의
좌경모험주의적책동과 적들의 야수적탄압책동으로 인하여 혁명조직들이 큰 손실을 입은 조건에서 더욱 중대한 문제로 제기되고있습니다.
동무들은 지방인민들속에서 신망이 높고 혁명성이 강하며 정치적으로 준비되고 조직력과 전개력이 있는 사람들을 료해장악하여 그 지방의
지도핵심으로 꾸려야 합니다. 특히 투쟁과정에서 부닥친 시련을 이겨내고 검열된 견실한 동무들로 지도핵심을 꾸려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장성시키는데서 중요한것은 또한 기층당조직을 부단히 확대강화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거기에서
나서는 제반 원칙적문제들에 대하여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지난 시기 대중의 폭력적진출이 실패하게 된 주되는 원인이 그에 대한 당조직의 조직적지도가 결여된데 있었다는 사정에
비추어볼 때 기층당조직을 확대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는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난 7월초 카륜에서 첫 당조직을 결성한 후 그것을 모체로 하여 각지에 기층당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적극 추진시켰습니다.
우리는 이번에 국내의 온성에 나가서 그곳에도 당조직을 내왔습니다.
지금 우리앞에 나선 중요한 과업은 각지의 구체적형편에 적응하게 기층당조직들을 내오는 사업을 적극 추진시키는것입니다.
우리는 선행공산주의운동자들처럼 아무런 준비와 기초도 없이 명색만 가진 <당중앙>을 만들어놓고 국제당의 승인을 받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할수는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조선공산당의 해산에서 찾은 교훈과 세차례의 좌경모험주의적폭동이 실패한 교훈 그리고 로동계급의 대렬이 청소하고 준비된
공산주의자들이 많지 못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부단히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군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고 건전한 토대우에서 당을 창건할수 있게 하는 가장 정당한 방침입니다. 이 방침을
틀어쥐고나가야만 당생활과 실천투쟁을 통하여 로동자, 농민출신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빨리 육성하고 공산주의대오의 사상의지 및 행동의
통일과 순결성을 보장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맑스-레닌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종파주의에 오염되지 않았으며 일제를 반대하는 혁명투쟁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새 세대의
참신한 력량으로 지방마다 기층당조직을 내오는 사업을 강력히 추진시켜야 하겠습니다.
새형의 당조직들이 확대되고있는 이때에 그에 대한 정연한 조직지도체계를 확립하는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연한 조직지도체계를
확립하여야 당조직과 혁명조직들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를 보장할수 있으며 인민대중의 혁명투쟁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갈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조직들에 대한 정연한 지도체계를 확립하고 모든 혁명조직들을 정확히 이끌어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공청조직을 늘이고 그 대렬을 확대강화하는데서 나서는 제반 과업들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지금 반일대중가운데서 적극분자들의 대부분은 청년들이며 청년들속에서 선발된 공청원들이 반일투쟁의 선봉에 나서고있다고
하시면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은 우리 나라 청년공산주의자들의 전위조직으로서 사실상 지금까지 당적역할을 수행하여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로부터 공청대렬을 확대강화하는 사업은 결국 당조직을 확대하는 사업과 같은것이라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원쑤들과의 투쟁에서 견결하고 진취적인 우수한 청년열성자들을 선발하여 공청조직에 인입함으로써 핵심육성문제도 해결하고
공산주의운동도 추진시켜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으로 당원들과 공청원들을 발동하여 광범한 대중을 반일단체들에 망라시켜 그들이 반일투쟁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할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광범한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가하에서만 혁명이 승리할수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남녀로소, 재산과 지식정도, 정견과
신앙에 관계없이 일제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것없이 교양각성시켜 반일조직에 인입하는 원칙에서 각계각층의 군중을 조직적으로
결속하여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여야 하겠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리는것과 함께 일제를 반대하는 실천투쟁을 통하여 혁명조직과 반일군중을 적극적으로 단련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혁명투쟁을 통해서만 혁명의 핵심이 육성되고 혁명력량이 장성강화될수 있으며 혁명정세를 성숙시켜나갈수 있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조성된 주객관적정세와 대중의 의식수준에 맞게 투쟁형태를 옳게 정하고 그들을 반일투쟁에 조직동원하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작은 규모의 투쟁으로부터 점차 큰 규모의 투쟁에로, 생활상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부터 점차 정치적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로 발전시키고 합법적투쟁과 비합법적투쟁을 능숙하게 배합해나가며 그 과정에 혁명조직들을 끊임없이
단련시켜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밤은 어느덧 자정이 훨씬 넘었다.
우리의 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난국에 처한 조선혁명을 추켜세우시려고 살판치는 적들의 백색테로를 헤치시며 중부만주와 동만, 두만강건너 온성지방까지 돌아오시느라
그이께서는 얼마나 멀고 험한 길을 걸으시였으며 일신상에 쌓이신 피곤인들 오죽하시랴!
다문 얼마라도 쉬여주시였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에서 우리는 오늘은 이만하고 어서 좀 쉬여달라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일없습니다. 밤과 혁명가는 둘도 없이 친근한 벗이랍니다. 혁명가에게는 동지들을 만나도
낮보다도 밤에 만나는것이 더 좋고 길을 걸어도 낮길보다 밤길이 더 좋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비서처동무들을 만났는데 이야기를 더
나누어봅시다. 나는 이런 일이라면 몇밤을 밝혀도 괜찮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조직과 공청조직, 각종 반일대중단체들에 대한 사업을 성과적으로 밀고나가기 위하여 혁명조직구들을
개편신설하는 사업을 벌릴데 대해서도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미부터 동만에 있던 혁명조직구들이 5. 30폭동과 8. 1폭동의 후과로 적지 않게 파괴된 조건에서 혁명조직구들을 새로
복구정비, 개편하거나 신설하는 사업은 각별히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역섬지구와 같은 실정에서는 매개 현에 5개 정도의 혁명조직구들을
두는것이 적당할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혁명의 제반 원칙적문제들과 실천적문제들을 자신께서 몸소 쌓아올리신 풍부한 지하정치조직사업경험과 밀접히
결부시켜 알기 쉽게 가르쳐주시였다.
참으로 그이의 강령적말씀을 듣고보니 우리는 안타깝던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는것을 느꼈고 하루속히 혁명조직들을 복구하고 추켜세울
신심이 불길처럼 타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야기를 마치시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말씀하시였다.
혁명의 앞길은 멀고 험하며 결코 순풍에 돛단 배처럼 순조로이 전진할수 없습니다. 때로는 암초에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거센 폭풍과도
맞다들릴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절불굴의 투지를 지닌 여러 동무들이 원쑤들의 그 어떤 백색테로에도 굴함이 없이 이 투쟁과업을 능히
해결하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과업을 원만히 해결함으로써만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꾸릴수 있고 우리 혁명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이끌어올릴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굴함없이 자신들에게 부과된 숭고한 과업을 기어이 수행할
결의에 충만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밤 거의 샐녘까지 우리와 함께 보내시였다.
하루밤새에 정치대학을 나온듯 한 가슴을 안고 환희에 넘쳐 밖에 나오니 끝모를 밤하늘에 은모래를 뿌린듯 크고작은 별들이 유난히 빛을
뿌리고있었다.
(정녕 그이는 민족의 태양이시다. 그리고 우리모두는 그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저 하늘의 뭇별들이다.)
이런 생각이 가슴에 파고들었다.
이튿날 10월 12일 저녁 그이께서는 다시금 멀고먼 중부 만주에로의 천여리 험한 로정을 이어나가시였다.
우리들은 이불 한채 변변한것이 없는 찬방에서 잡곡밥과 시래기국으로 끼니를 에우시며 끊임없이 멀고 험한 길을 헤쳐가시는 그이의
불면불휴의 로고를 생각할 때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어쩔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다녀가신 후 우리들의 사업에서는 커다란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우리들은 그이께서 가르쳐주신대로 파괴된 혁명조직을 복구하기 위한 혁명적조직로선관철에 모든 정력을 바쳤다.
마득한동무와 라일, 김영환동무들은 주로 연길현 혁명구들에 나가 혁명적지도핵심을 꾸리고 당 및 공청조직들을 복구정비하는 사업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합법적, 비합법적활동을 결합하면서 지하정치공작을 능숙하게 벌려나갔다.
나는 여전히 《봉춘당약방》의사로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고 공청사업을 하는 한편 역섬지구 각 현 혁명조직들사이에 련계를 지어주는
비밀련락사업을 벌려나갔다.
그리하여 우리 약국은 자연히 합법적련락장소로 되였다.
모두가 약화제를 써가지고 오거나 병보이러 오는 형식을 띠고 찾아오군 하였다. 우리가 마득한동무와 1929년부터 새로 혁명조직들을
개척한 팔도구 광산마을, 룡수평, 석인구, 부암동에서는 물론 룡암동, 봉림동, 대모록구, 소모록구, 연길시 등에서 당원들과 공청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군 하였다.
나는 이러한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찾아오는 당원들과 공청원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전달해주군 하였다.
마득한, 라일, 김영환동무를 비롯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현내의 중요지구마다에 불과 한두달사이에 적지 않은 우수한
혁명적핵심들로 당 및 공청조직들이 새로 조직되거나 확대되였다.
비록 어렵고 간고한 일이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참으로 세상에 더없이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우리의 투쟁에는 때로 뜻하지 않은 희생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직접 받은 마득한동무는 혁명적조직로선관철에 일신의 모든 정력을 바쳐 투쟁하던중 왕청현 석재(석현)에서
오중화동지와 함께 원쑤놈들에게 체포되여 25살의 꽃다운 청춘을 조선혁명에 바치였다.
김영환동무도 체포되여 서울서대문형무소에 압송된 후 조직의 비밀을 사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손으로 목을 찔러 자결함으로써 혁명가의 고결한
지조를 끝까지 지켰다.
라일, 구봉운, 림춘익 등 수많은 청년공산주의자들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혁명의 한길우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그러나 원쑤들의 그 어떠한 검거선풍과 백색테로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떨쳐나선 젊은 투사들의 백절불굴의
투지를 꺾을수 없었다.
1931년 5월에 있은 봄명월구회의에서와 그해 여름 연길현 태평구의 당 및 공청일군들에게 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전동만에 추수, 춘황투쟁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졌을 때에도 역섬지구의 모든 당원들과 공청원들이 투쟁의 선두대오에서 용감히 싸웠다.
항일무장투쟁의 무장적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원쑤들의 무기탈취공작이 벌어졌을 때에도, 유격구를 창설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당원들과 공청원들은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언제나 투쟁의 앞장에 섰다.
그리하여 1932년 봄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역섬지구 각 현에 드디여 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잊을수 없는 그 10월의 밤에 몸소 조양천에 찾아오시여 주신 귀중한 가르치심은 역섬지구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보다 적극적인 활동에로 불러일으키는 고무적기치로 되였으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투쟁과 공산주의운동을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키는데서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그때로부터 우리들의 가슴속에는 위대한 수령님의 세련된 령도와 자애로운 보살피심이 있는 한 그 어떤 폭풍과 격랑도 헤쳐나갈수 있고 그
언제 어디서나 빛나는 승리와 영광을 이룩할수 있다는 철석같은 의지와 신념이 뿌리깊이 자리잡게 되였다.
바로 그 의지, 그 신념을 지녔기에 우리는 항일의 불길만리, 눈보라만리를 헤치고 조국의 해방과 자유독립을 이룩할수 있었으며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의 언덕을 넘고넘어 오늘은 사회주의의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되였다.
우리는 자신들이 걸어온 반세기가 넘는 생활체험에 기초하여 온 세상 사람들에게 소리높이 웨치는바이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혁명하는 조선의 혁명가들과 인민들처럼 행복한 세대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고.
그리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를 받는 한 우리의 혁명위업은 필승불패이며 그 앞길에는 언제나 승리와 영광만이 빛나리라는것을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