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의 위대한 감화력

 

 

그이의 위대한 감화력

 

                                                     오  백  룡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을 령도하시던 첫시기부터 적군와해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시고 그에 대한 정확한 방향과 방도를 가르쳐주시였으며 그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로동자, 농민, 인테리 및 기타 각계각층 인사들을 반일통일전선에 집결하여 항일구국운동에 총궐기시킬뿐만아니라 놈들의 기만과 강제에 의하여 징모된 적군내부 특히 위만군내 하층병사들에 대하여서도 대대적인 와해공작을 진행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적군와해사업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의를 똑똑히 밝혀주시였을뿐만아니라 이 어렵고 복잡한 사업을 잘해나갈수 있는 구체적인 방도와 방법에 대하여서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9. 18사변후 만주를 강점한 일제는 《만주국》이라는 허수아비《정권》을 꾸며내였으며 위만군을 만들어내여 반일력량을 탄압하는 길로 내몰았다.

교활한 일제놈들은 소위 지도관이란 명목으로 저들의 악질적인 장교들을 위만군내에 박아넣어 실권을 손아귀에 틀어쥐였다.

이렇게 조작된 위만군은 상하간의 모순과 갈등이 심했고 일본지도관놈들과 위만군 장교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더구나 위만군 하층병사들은 대부분이 빈고농출신이거나 그들의 자식들이였다.

그들속에는 일제와 그 앞잡이들에게 속히우거나 아니면 위협에 못이겨 총을 잡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때문에 그들은 일본지도관놈들과 위만군장교들에 대해서 이러저러한 반감들을 가지고있었다.

위만군의 중하층장교들은 말할것도 없고 일부 민족적량심을 가진 상층장교들도 일본지도관놈들에 대하여 아니꼽게 생각하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러한 적군내부의 형편을 깊이 분석하시고 적들의 민족적 및 계급적 모순을 옳게 리용하여 적군내부를 와해시킬 전술적원칙들을 밝혀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군와해사업의 기본을 위만군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을 쟁취하는데 두어야 하며 이와 함께 민족적량심을 가진 일부 상층장교들까지 포섭하고 악질적인 상층장교들만을 고립시키고 타격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구성이 좋고 경향이 좋은 부대는 적극적인 와해사업을 통하여 혁명의 편으로 쟁취하고 악질적인 부대는 추호의 용서도 없이 타격을 가하는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이 사업이 가지는 특성에 비추어 조급해하지 말고 인내성있게 먼 앞날을 내다보고 폭넓게 사업을 벌려야 하며 적군포로들을 관대하게 포섭하고 의거자들을 잘 대우하여 적에게 커다란 정치적영향을 주도록 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내놓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밖에 견결하고 용감하고 기략에 능한 동무들을 선발하여 대담하게 적군내부에 침투시켜 활동하게 하며 편지와 신문, 선전화, 혁명서적들을 통하여 혁명적영향을 주고 위만군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의 가족, 친척, 친우들을 통하여 선전사업을 강화할 구체적인 방법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위만군이라고 하더라도 악질적인 분자들과 다소라도 민족적량심을 가진 사람들을 갈라보시고 계급적립장에 확고히 서시여 타격과 교양을 능숙히 배합하시며 넓고넓으신 도량과 포옹력, 사리정연한 론리와 인내성있는 해설, 높으신 권위와 인품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감화시켜 자멸의 길에서 재생의 길로 돌려세우시고 적의 력량을 분산약화시켜 혁명의 승리를 마련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보여주신 이러한 위대한 실천적모범에 대하여 생각하게 될 때마다 나는 1936년을 전후한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게 된다.

1935년 5월경,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는 음력 정월대보름날 새벽 로흑산에 주둔한 악질적인 위만군부대인 정안군놈들이 사도구마을사람들을 무참히 학살했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러한 소식에 접하시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라자구를 거쳐 태평구로 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태평구에 도착하시자 곧 학살당한 사도구마을사람들을 위한 추도식을 가지게 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이 모임에서 추도사를 하시였다.

그이의 절절한 추도사는 참가한 마을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뜨거운 눈물을 자아내게 하였다.

우리는 원쑤 일제놈들때문에 정든 고향산천을 등지고 낯선 이국땅에까지 쫓겨왔다가 2중3중의 착취와 압박, 천대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던 끝에 놈들에게 참살까지 당하게 된 마을사람들을 대신하여 반드시 원쑤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여 그들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줄것을 다짐하였다.

이 모임이 있은 후 6월 중순 사령관동지의 명령에 의하여 우리는 로흑산에 있는 적들을 소멸하는 전투를 진행하였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전법으로 하여 이 로흑산전투에서 우리는 일제가 《철군》이라고 자랑하던 《정안군》을 거의 전부 소탕하여 인민들의 피맺힌 원한을 풀어주었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위만군의 일부 병사들을 포로하였다. 이들을 보는 우리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한 놈들의 만행을 생각할 때 이가 갈리고 치가 떨렸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이 빈고농출신으로서 일제놈들의 강요에 못이겨 총을 잡게 되였다는것을 아시자 몸소 그들과 만나시고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여 싸우는 진정한 인민의 군대입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과 만주를 강점하고 조선인민들을 식민지노예로 만들었을뿐만아니라 전 중국을 강점하고 중국인민들을 모두 노예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누구를 위해 총을 들고있으며 누구의 가슴팍에 총을 겨누고있습니까?

지금 당신들이 걷고있는 길은 자기 나라를 팔아먹고 자기 부모처자를 반대하는 매국노의 길입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며 천추에 용서못할 죄악입니까?

당신들이 옳은 길을 찾아 떳떳하게 살자면 지금부터 총부리를 일제놈들의 가슴팍을 향해 돌려야 합니다.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 용감히 싸운다면 인민들도 당신들이 지은 죄를 관대히 용서할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계속 일제의 앞잡이노릇을 한다면 인민의 심판을 면치 못할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 말씀을 마치시자 위만군병사들은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어떤 병사들은 자기들이 우매한 탓으로 큰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다시는 매국배족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것을 다짐하는것이였다.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에게 돈까지 나누어주어 돌려보낼것을 지시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이처럼 위만군병사들을 관대히 용서하시는것을 보고 우리는 많은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보여주신것처럼 혁명적립장을 튼튼히 견지한다면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정황속에서도 모든 문제를 혁명의 리익에 맞게 처리할수 있다는 굳은 신심이 우리의 가슴속에 꽉 차고넘치였다.

이처럼 사령관동지께서 포로들을 잘 교양하여 돌려보낸것이 위만군들에게 얼마나 큰 정치적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후에 잘 알게 되였다.

《공산군》에게 잡힌 동료들이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만군병사들은 큰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그런데 포로되였다가 돌아온 동료들을 통하여 자기들에게 떳떳이 살아갈 길을 밝혀주신 사령관동지의 말씀과 그이께서 돈까지 마련해주시였다는 사연을 전해듣고 위만군병사들은 크게 감동하였고 또 동요하였다.

그리하여 로흑산에서 포로가 되였던 병사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위만군병사들이 한사람 두사람씩 또는 집단적으로 탈주하여 집으로 돌아가거나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와 투항하는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이런 일이 있은 몇달후인 1936년초, 우리 부대가 북만원정도중 액목일대에서 활동하다가 돈화쪽으로 이동하던 때에 있은 일이다.

이때 우리의 행군은 매우 간고하였다.

그해따라 눈이 많이 와서 우리는 허리를 치는 생눈길을 헤치며 미친듯이 달려드는 적들을 물리치면서 행군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우리 부대가 로야령을 넘어선 얼마후까지만 해도 우리의 종적을 찾지 못하여 눈이 뒤집혀서 날뛰던 적들은 우리 부대가 녕안일대에서 눈부신 군사정치활동을 전개하자 이 일대에 대병력을 들이밀었다.

이런 형편에서 깊은 눈에 쌓인 생소한 곳에서 대낮에 행군을 계속한다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였다. 그런데 이곳은 번번한 야산지대이므로 우리 부대가 자취를 감추고 휴식하기에 적당한곳도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척후임무를 수행하고있던 대원들에게 이 지방의 형편에 대하여 자세히 물으시였다.

척후대원들은 얼마쯤 더 가면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는 큰 지주집 한채와 얼마간의 농호가 있다고 하면서 지주집 네귀에는 포대도 있다는 사정을 말씀드리였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에게 그 지주집에 가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얼마후에 도착하는데 하루동안 쉬여갈수 있도록 편의를 보아달라고 요구하되 만약 이 요구를 거절한다면 재미없으며 보다 큰 후환이 미친다는것을 암시하라고 지시하시였다.

사령관동지로부터 이러한 임무를 받은 나는 그 즉시 지주집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나는 그이의 명령대로 지주을 만나서 내가 김일성장군님께서 친솔하시는 부대의 련락원이라고 말하면서 그이께서 일러주신대로 우리의 요구조건을 말하였다. 그러자 지주는 두말없이 응하면서 속히 부대를 안내해오라고 하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우리 부대가 도착하자 지주는 문앞에 나와서 허리를 굽히며 정중히 집안으로 맞아들이였다.

우리는 지주에게 미리 제일 크고 좋은 방을 깨끗이 거두어놓게 하고 사령관동지를 모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가 대낮에 마을안에서 휴식하게 되는것만큼 경계근무를 물샐틈없이 하고 그어떤 정황에도 대처할수 있는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 휴식할것을 명령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주집 포대를 차지하고 사방을 감시하였고 대원들에게 사복을 입혀 지주의 머슴군처럼 가장시킨 후 요소마다에 배치하여 경계근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우리 부대가 도착하자마자 지주는 자기의 머슴군들을 시켜 돼지도 잡고 떡도 치면서 우리를 환대하기에 바삐 돌아치는것이였다. 한편 우리의 뒤를 따르던 적들은 우리 부대가 대낮에 지주집에서 쉬고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딴 방향으로 가버렸다.

사령관동지의 신출귀몰하고 령활한 지략에 대하여 생각할수록 우리는 어떠한 적이라도 능히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는 신심과 온몸에 새로운 힘이 용솟음치는것을 느끼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하루낮동안을 아무일없이 푹 쉬였다.

어느덧 짧은 겨울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우리 부대는 다시 행군할 준비를 갖추었다. 그런데 이때 액목쪽에서 한대의 말파리가 눈보라를 일구며 달려왔다. 그 말파리의 뒤를 따라 10여명의 위만군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것이 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사실을 보고받으시자 그들을 놀래우지 말고 감시를 강화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이윽고 말파리는 지주집앞에 가까이 오자 갑자기 멈추어섰다. 그리고 말파리속에서 한 녀인이 내려서더니 위만군병사들과 함께 아무 거리낌도 없이 지주집으로 걸어오는것이였다.

그 녀인은 화려한 옷차림에다 목에는 여우목도리까지 두르고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고위급 관리의 부인이나 매우 부유한 계층의 녀인이라는것이 알렸다.

우리 대원들이 만단의 태세를 갖추고 그들을 주시하고있는데 지주집앞에 이른 그 녀인은 위만군병사를 시켜 좀 쉬여가자고 요청하는것이였다.

위만군병사의 말에 의하면 그 녀인은 근처에 주둔하고있는 위만군 련대장의 처인데 친정집으로 가던 길에 날씨가 차서 쉬여가자고 들린것이였다.

대원들의 보고를 통하여 이런 사실을 아시게 된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녀인을 따뜻한 방에서 쉬게 하고 그에게 잘 타일러서 남편에게 정치적영향을 주도록 할것을 지시하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동무들은 위만군 련대장의 처를 따뜻한 방에 안내하고 차도 권하면서 해설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것을 알게 된 그 녀인과 위만군병사들은 몹시 놀라는것이였다.

처음에는 머슴군차림을 한 우리 동무들을 보고 거드름을 피우며 반말질을 하던 그들이였지만 이렇게 되자 겁에 질려 어쩔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이때 변소에 가는척하고 밖으로 나갔던 위만군병사 한명이 도주하였다.

우리는 즉시 그를 추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가 곧 떠나게 되는것만큼 내버려두라고 하시면서 련락병에게 나머지 위만군병사들과 그 녀인을 불러오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안내되여가는 위만군병사들과 그 녀인은 겁에 질려 눈치만 살피면서 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였다.

그들은 일제놈들의 악선전을 자주 들어왔기때문에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던데다가 탈주병까지 생겼으니 이제는 살아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걱정과 불안으로 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주시였다.

그래도 그들은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연신 몸을 떨기만 하였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계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웃으시면서 날씨가 찬데 불도 쪼이고 더운물도 마시라고 하시면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은 절대로 사람을 해치는 법이 없으니 마음을 푹 놓으라고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아량있고 소탈하신 태도와 부드러우신 말씀에 저으기 마음이 놓이는지 그들의 태도는 한결 침착해졌으나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얼굴에서는 공포와 불안,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가셔지지 않았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위만군병사들에게 고향은 어디며 부모들은 무슨 일을 하고있는가, 위만군에는 어떻게 되여 들어가게 되였으며 위만군에 들어간 후 어떻게 지내고있는가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위만군병사들도 사령관동지의 너그러운 인품에 끌리여 부모들이 겪고있는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위만군안에서의 자기들의 설음에 찬 처지에 대해서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에게 그들이 겪고있는 불행과 고통이 바로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의 주구인 지주, 자본가들의 착취와 압박때문이라는것을 깨우쳐주시면서 부모처자와 함께 마음놓고 잘살기 위해서는 우리와 손잡고 공동의 원쑤 일제를 때려부셔야 한다는것을 알기 쉽게 말씀하여주시였다.

그리고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은 조국의 해방과 인민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진정한 군대이기때문에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으며 인민을 위해서는 목숨도 서슴지 않고 싸운다는것과 또 위만군내에서도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옳은 길로 나가려는 사람은 그들이 나아가야 할 밝은 길로 이끌어준다는것을 차근차근 해설해주시였다.

위만군병사들은 너무도 뜻밖인듯이 어리둥절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이윽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위만군병사들과 함께 앉아있는 위만군 련대장 처를 향하여 말씀을 이으시였다.

《부인이 남편에게 좋은 영향을 주어 그가 혁명군을 〈토벌〉하지 않게만 하여도 그것은 곧 항일을 위해 공헌하는것으로 됩니다.》

그렇듯 너그럽고 인자하신분이 바로 몇해전에 자기도 참가했던 길회선철도부설을 반대하는 학생시위를 지도하신분이라는것을 알게 된 녀인의 눈에서는 심한 량심의 가책으로 하여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위만군병사들과 그 녀인에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치욕스러운 매국노의 생활에서 벗어나 남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시면서 이제 돌아가면 동료인 위만군병사들과 남편인 련대장을 잘 타일러 옳은 길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자기들을 관대히 돌려보내주시겠다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그들은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도 의아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그들에게 총을 다시 내주라고 하시며 련대장의 처가 친정집에 가지고가려던 물건들을 잘 건사해가지고 가게 하라는 그이의 말씀이 계시자 모두가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손수 이름을 쓰신 명함장을 그 녀인에게 내여주시면서 남편에게 이것을 전하고 잘 타이르라고 말씀하시였다.

녀인은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이 씌여진 명함장을 두손으로 정히 받아들고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김일성장군님, 장군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으니 저희들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걷고있는가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게 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하면 갚을수 있겠습니까.》

눈물을 머금고 말하는 그 녀인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그 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몇번이고 절을 거듭하면서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옳은 길에 들어서도록 타이를뿐아니라 자기도 새 출발을 하겠으니 아무 일이라도 꼭 맡겨달라고 간청하는것이였다.

그 녀인의 모습을 자세히 굽어보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련락병에게 선전문묶음을 가져다가 그 녀인에게 주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주신 명함과 선전문묶음을 품속에 간직한 그 녀인은 장군님의 높으신 은덕을 뼈가 땅에 묻히도록 잊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면서 돌아갔다.

재생의 길을 걸으려는 결의를 다지며 돌아가는 그 녀인을 보면서 우리는 참으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되였다.

사람들의 심장에 량심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더구나 적들에게 복무하던 사람들의 경우에 그것은 얼마나 오랜 기간과 인내성을 요구하는 어렵고 복잡한 일인가!

그러나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감화력과 높으신 덕성,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은  낡은 생활에 물젖었을뿐만아니라 일제의 비방과 중상, 악선전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질데로 가졌던 사람들을 그처럼 짧은 시간에 각성시키고 옳은 길로 돌아서게 하였던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우리 부대는 돈화쪽을 향하여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후 여러날이 지났다.

우리 부대에서는 식량공작을 위하여 한 대원을 적들이 욱실거리는곳에 파견하였다. 그런데 어찌된일인지 예정된 날자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서 우리는 매우 걱정하고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달구지 한채에 쌀가마니를 가득싣고 돌아온 식량공작원은 한장의 명함장을 사령관동지께 드리면서 다음과 같은 사연을 보고하였다.

…식량공작원은 액목근처에서 식량공작을 하다가 사복차림을 한 경찰놈에게 체포되였다.

그런데 식량공작원이 한참 심한 고문을 당하고있을 때에 웬 낯모를 위만군 고급장교 한사람이 취조실에 쑥 들어서더니 다짜고짜로 경찰놈들을 욱박지르며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인데 당장 내놓으라고하였다.

그러자 경찰놈들은 그만 기가 질려 찍소리도 못하고 그를 석방하였다.

이렇게 식량공작원을 빼낸 그 장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가더니 공손히 대하면서 어느 부대에서 왔는가고 조용히 물었다.

식량공작원은 혹시 이것이 놈들의 교활한 계책이나 아닌가 의심이 들어 어느 부대에서 왔다고는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매우 난처해하면서 속시원히 우리 식량공작원의 소속을 알았으면 하는 기미를 보였다.

그 장교의 거동이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는듯하여 식량공작원은 그의 동정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위만군 장교의 얼굴에는 거짓으로는 도저히 꾸며낼수 없는 진정의 빛이 넘치고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함부로 정체를 밝힐수도 없어서 여러가지로 궁리하고있는데 그 위만군장교는 《당신이 김일성장군부대의 대원이 아닌가? 정말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할수 있는 증거를 내놓으라! 》고 간청하다싶이 말하였다.

그래도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그 장교는 하두 답답하였던지 제편에서 먼저 김일성장군부대가 어느때 어느 지점에서 위만군 련대장의 안해와 위만군병사들을 체포했다가 석방한 사실을 아는가고 하였다.

그제서야 식량공작원은 짚이는바가 있어서 그날에 있은 일을 자초지종 다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그 장교는 황급히 옆방으로 달려가더니 한 녀인을 데리고 들어와서 자기의 안해라고 인사를 시키였다.

그 녀인은 지주집에서 만난적이 있는 련대장의 처가 틀림없었다.

그들부부는 매우 반가와하며 음식을 잘 차려놓고 식량공작원을 대접하였다.

김일성장군님은 우리 일가의 큰 은인이올시다. 장군님의 은덕으로 늦게나마 저도 량심의 가책을 받고 재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였습니다.》

위만군 련대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 식량공작원에게 자기 안해가 그 지주집에서 떠난 후에 있은 일들을 자세히 들려주더라는것이였다.

도주해온 병사로부터 자기 안해가 《공산군》에게 《체포》되였다는 소식을 들은 위만군 련대장은 눈이 뒤집혀서 전련대를 동원하였다. 기병대를 몽땅 풀어가지고 자신이 직접 선두에 서서 지휘하며 달려오던 도중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기 안해의 말파리와 마주치게 되였다.

말파리를 모는 위만군병사를 보자마자 위만군 련대장은 《공산군이 어데 있는가? 빨리 대라!》고 을러댔다.

자기 안해가 살아서 돌아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만큼 그는 노기등등해서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해뿐만아니라 친정집으로 싣고 떠났던 값진 물건들도 하나 다친데 없이 그대로 있는것을 보게 된 위만군 련대장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으니 어서 돌아갑시다. 우리가 지금까지 잘못 생각했어요. 돌아가서 조용히 이야기나 합시다.》

안해는 침착하고 태연하게 그를 만류하며 되돌려세웠다.

안해의 태도에서 기가 꺾이우고 그 어떤 위압을 느낀 위만군 련대장은 억지로 분을 참고 말머리를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안해는 자기가 직접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기까지 하였다고 하면서 그이께서 보내주신 명함장을 내보이며 그이께서 하시던 말씀을 빠짐없이 전하였다고 한다.

위만군 련대장의 안해는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진정으로 인민을 사랑하시며 먼 앞날까지도 환히 내다보시는 위대한분이시며 참으로 진정한 애국자이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례절이 밝으시고 덕망이 높으시며 끝없이 너그러운분이시라고 하면서 잠시나마 그이를 뵈옵고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많은것을 깨달았고 몹시 감동되였다고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그이께서 거느리신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매우 규률이 있고 고상한 품성을 지니고있다는것을 짧은 시간을 통해서도 느낄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 녀인은 김일성장군님께서 거느리신 부대와 싸울것이 아니라 그들과 손을 잡고 일제놈들과 싸워야 하지 않겠는가고 남편에게 타일렀다고 한다.

위만군 련대장은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덕성에 몹시 감동되여 그분께서 보내주신 명함장과 선전문들을 앞에 놓고 지나온 일들을 돌이켜보며 앞날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는것이였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되였고 량심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한 길을 걸을것을 마음속깊이 다진 후 우리 부대와 련계를 가지려고 애쓰던차에 부대의 식량공작원을 만나게 되였다고 하면서 자기 안해가 가져온 선전문을 꺼내여 보이더라는것이였다.

위만군 련대장은 이야기를 마치면서 식량공작원에게 부대에 돌아가면 김일성장군님께 감사의 뜻을 꼭 전해달라고 하면서 그이께서 맡기시는 일이라면 서슴없이 할 용의가 있으니 구체적인 과업을 주시기 바란다는것을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우리 식량공작원이 떠날 때에는 앞으로 련계를 맺을 방도까지 약속한 후 식량을 장만해주고 무사히 돌아갈수 있도록 힘껏 도와주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 문제를 여러가지로 검토하시고나서 곧 정치지도원과 함께 그 대원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신 후 위만군 련대장에게로 다시 파견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을 떠나보내시면서 위만군 련대장이 재생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은 하였지만 여러가지로 주저하고 동요할수도 있으니 그것을 대담하게 극복하고 소극적인 투쟁이 아니라 적극적인 반일투쟁에로 과감하게 나서도록 인내성있게 교양할 대책과 이 사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들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리하여 동요성이 많던 위만군 련대장은 우리 부대의 대표를 만나 담화하는 과정에 일제를 타도하지 않고서는 자기뿐만아니라 가족의 전도도 바라볼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닫게 되였고 마침내 적극적인 반일투쟁에로 나서겠다는 결의를 다지는 편지를 사령관동지앞으로 보내게 되였다.

그후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요구를 참작하시여 조선인민혁명군과의 련계밑에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고있다는 내용의 보증서까지 손수 쓰시여 그에게 보내주시였다.

그것은 그가 전도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는 사람이며 우리를 도울것을 결심하고서도 한구석으로는 항상 자기의 앞날이 어떻게 될것인가에 대하여 확신을 못가지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 그에게 신심을 주시기 위해서였다.

사령관동지의 존함까지 있는 이러한 보증서를 받게 되자 위만군 련대장은 매우 기뻐하면서 더욱 신심을 가지고 우리 부대와의 련계밑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자주 우리 부대에 적들의 동태에 관한 귀중한 정보자료들을 보내주었고 수많은 군수물자와 식량, 피복을 제공하였으며 부대의 활동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우리는 그를 통해서 그가 속한 련대뿐만아니라 그외의 많은 위만군부대들속에서도 와해사업을 광범히 벌리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위만군부대들에서 반일기세가 높아지고 우리와의 전투를 되도록 피하려고 하였으며 전투하러 떠날 때에는 우리에게 미리 알리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멀리서부터 총소리를 내면서 일제놈들의 위치를 폭로시키군하였다.

이처럼 사령관동지의 지도와 교양을 받아 재생의 결의를 다지고 반일투쟁의 길에 나서게 된 위만군 련대장은 그후 투쟁과정에서 더욱 혁명적으로 각성되여갔다.

나는 이 사실을 통하여 그를 교양개조하신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감화력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들의 내부모순을 제때에 정확히 포착하시고 그를 백방으로 리용하여 사소한 민족적량심이라도 가진 사람들, 지어는 적들에게 복무하던 위만군 장교까지도 교양개조하여 혁명의 편에 돌려세움으로써 적들의 력량을 약화시키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의 현명한 방침과 정확한 령도, 위대한 감화력으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삶의 길을 찾고 참다운 새생활의 길에 들어설수 있었으며 적들의 력량을 약화시키고 일제의 멸망을 앞당길수 있었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이러한 사실들을 회상할 때마다 오늘 남조선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강요와 기만에 못이겨 미제의 침략전쟁의 값싼 대포밥으로서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반역의 길로 내몰리우고있는 남조선군 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남조선에서는 60여만에 달하는 청장년들이 〈국군〉에 복무하고있습니다. 남조선〈국군〉 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의 절대다수는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출신입니다. 그러나 〈국군〉은 미국의 식민지통치의 도구로서 인민과 민족을 반대하여 총을 겨눌것을 강요당하고있으며 식민지고용군대로서 침략전쟁에 끌려다니고있습니다. 〈국군〉은 이러한 수치스러운 운명에서 벗어나 인민의 군대, 민족의 군대로 되여야 할것입니다.

〈국군〉 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은 미제와 그 주구들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원쑤는 동포들과 부모형제들이 아니라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입니다. 그들은 동족을 살해하고 인민을 탄압하는데 리용될것이 아니라 외래침략자들과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자기의 부모형제들과 함께, 인민들과 함께 나아가야 할것입니다. 〈국군〉 병사들과 장교들은 총부리를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에게 돌려야 합니다.》

남조선군 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은 치욕스러운 《국군》살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하며 더는 민족반역의 길을 걷지 말고 인민의 편에 서서 총부리를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가슴팍으로 돌려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이 그들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찾을수 있으며 광명한 앞날을 향하여 떳떳이 살아나갈수 있다.

남조선군 병사들과 중하층장교들은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을 쓸어버리기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성스러운 반미구국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서야 하며 기아와 빈궁, 정치적무권리와 갖은 사회악속에서 신음하고있는 남조선인민들이 공화국의 품속에서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될 그날을 하루빨리 앞당기도록 적극 투쟁함으로써 민족의 앞길과 함께 자신의 앞길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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