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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으로 진군하는 길에서
오 백 룡
(1)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하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조국진군의 길에 오른것은 1937년 6월초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미 이해 봄에 진행된 서강회의에서 조국으로 진군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대부대로써 국내에 진출하여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어야 하겠습니다. 조선인민의 아들딸들인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위풍당당히 국내에 나타나기만 하여도 그것은 인민들에 대한 큰 고무로 될것이며 우리가 총을 몇방 쏘아도 인민들은 거기에서 큰 힘을 얻게 될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으로 일제침략자들을 족치고 원쑤들의 아성에 불을 지름으로써 인민들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은 건재하여 조국의 광복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서 계속 승리하고있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하며 우리 혁명군이 존재하는 한 조선은 반드시 독립된다는것을 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말씀은 우리 인민혁명군 지휘성원들과 모든 대원들의 가슴을 감격과 흥분으로 휩싸이게 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조국진군의 길에 오르게 된 모든 대원들은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싸운다는 긍지와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우리는 조국땅으로 진군해나간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기쁜 나날을 보내면서 총을 닦고 새 군복을 손질하고 몸단장을 알뜰히 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지양개를 떠난 우리는 23도구방향으로 압록강을 거슬러 행군하여갔다. 당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국경 제일선에는 5리 혹은 10리마다 주재소 일개소씩 두고 포대를 쌓고 토굴을 파놓고 국경수호에 만전을 다하였다.》고 신문지상에 떠들던 때였던만큼 놈들의 국경경비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삼엄하였다. 그때 놈들은 국경경비진을 2선, 3선, 4선까지 겹겹이 치고 《철옹성의 국경선》이라고 자랑하였다. 이러한 경비진을 뚫고 국내에 진출한다는것은 실로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사령관동지의 령도를 따라 전진하는 한 언제나 승리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행군해나아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23도구부락에 이르러 하루를 묵으시면서 그날 밤 전체 부대에 저녁을 해먹고 다음날 아침과 점심에 식사할 밥은 미리 해서 각자가 건사하라고 명령하시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으로 진군하는 전투과업을 밝히시고 다시금 조국진군의 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조선에 나가서 동포들을 만나면 언제나 그러했던것처럼 례절이 밝아야 하며 규률있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고 대원들은 부풀어오르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을 들먹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운신동무를 비롯한 4중대의 일부 동무들에게 부대가 압록강을 무사히 건늘수 있도록 도하준비를 갖추게 하시였다. 오중흡동지는 도하준비를 책임지고 떠나는 자기 중대원들에게 재삼 임무의 중요성을 알려주며 실수없이 하라고 당부하였다. 그날 밤 전부대는 김운신동무의 소조가 놓은 떼목다리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조국땅에 들어섰다. 조국땅을 밟는 순간 대원들은 말할수 없는 감격에 휩싸였다. 대원들은 지체없이 가파로운 벼랑을 톺아올라 곤장덕등판에 올랐다. 곤장덕의 우묵한곳을 골라 휴식하면서 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대원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구수한 흙냄새와 향기로운 꽃냄새가 풍기는데 못내 감흥되여 《조국땅의 흙냄새는 얼마나 향기로운가!》라고들 말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낮에도 쉬지 않으시였다. 정찰임무를 맡은 대원들을 보천보장거리에 내려보내시고 또 작전계획을 짜시기에 여념이 없으시였다. 이날 마동희동지와 김확실동지가 보천보로 정찰을 나갔었다. 마동희, 김확실동지들은 모두 오중흡동지의 중대에 속해있었다. 오중흡동지는 출발준비를 갖추는 두 동무에게 적구행동에서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하면서 변장한 그들의 옷차림을 돌보아주며 직접 거들어주었다. 이리하여 마동희동지는 농민으로, 김확실동지는 닭알장사군으로 가장하고 보천보거리를 향하여 내려갔다. 대원들은 그들이 정찰임무를 무사히 수행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은 사령관동지께서 당부하신대로 정찰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돌아왔다. 우리는 김확실동지가 닭알장사를 하며 경찰관주재소안에 들어가서 정찰하던 이야기를 듣고는 한바탕 통쾌하게 웃었다. 대원들은 이미 준비해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후에 사령부에서는 지휘성원들의 모임이 있었다. 보천보전투에 앞서 전투임무가 하달되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오중흡동지는 이때에도 중요한 전투임무를 담당하였다. 그는 혜산에서 오는 적의 응원부대를 막는 방어대의 임무를 받았다. 회의에서 돌아온 오중흡동지는 중대 대원들에게 전투임무를 알려주었다. 혜산방향은 가장 빨리 또 가장 강한 적의 응원대가 나타날수 있는 중요한 모퉁이였다. 그렇기때문에 오중흡동지는 전체 대원들이 만단의 전투태세와 든든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것을 강조하였다. 명령을 전달한 다음 오중흡동지는 임무를 성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회의를 소집하였다. 전투명령을 전달받은 대원들은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진행되는 보람찬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울것을 한결같이 맹세하였다. 어둠이 깃들자 부대는 곤장덕을 내리여 보천보시가로 향하였다. 무산방향에서 오는 적을 막을 임무를 받은 7련대 3중대동무들은 가림천을 건너 시가에서 2키로메터 떨어진 지점으로 가고 전투부대는 좀 뒤에 떨어져서 시가지로 들어섰다. 오중흡동지는 4중대의 대원들을 데리고 먼저 떠나서 시가지를 은밀히 우회하여 혜산방향으로 통하는 대도로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그는 놈들의 전화선부터 끊어놓았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톱을 배낭뒤에다 휘여달아매고 갔지만 그것으로 전선대를 벨 필요까지는 없었다. 든든한 줄에 돌을 달아가지고 팔매질을 하여 그 줄이 전화선우에 걸쳐지게 한 다음 그 줄을 나꾸어채니 전화선은 단번에 끊어지고말았던것이다. 이런 때 전선대를 베면 오히려 더딜수도 있었다. 전화선을 끊어버리고 전투준비를 완전히 갖춘지 얼마 안되여 사령관동지의 신호총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헤가르며 올라갔다. 뒤따라 요란한 총소리가 울리고 보천보의 밤하늘에 불길이 삼단같이 활활 타올랐다. 보천보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부대가 철수하게 되자 오중흡동지는 자기 대원들로 경계를 강화하면서 맨 나중에 서서히 철수하였다. 시가에서는 면사무소, 산림보호구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주재소는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인민들은 철수하는 방어대원들을 환호로 바래주었다. 방어대원들은 손저어주며 환호하는 인민들과 헤여져 시가를 벗어나 다시 곤장덕에 올랐다. 그들은 적들이 추격하면 또 한바탕 인민혁명군의 본때를 보여줄 작정을 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나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부대가 압록강가에 이르자 그곳에서는 김운신동무를 비롯한 대원들이 떼목다리를 지키고있었다. 오중흡동지는 대원들을 먼저 건너보내고 자기는 맨 나중에 압록강을 건는 다음 김운신동무와 함께 떼목을 띄워버리였다. 조국땅의 캄캄한 어둠속에는 환한 불빛이 계속 비치였다. 우리 인민을 반일투쟁에로 힘차게 불러일으킨 보천보의 홰불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구시골에서 방어대원들을 기다리고계시였다. 대원들은 보천보에서 로획한 기관총과 여러가지 물품들을 놓고 전투승리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있었다. 이윽고 아침식사를 하고나니 날이 훤히 밝아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들이 반드시 추격해오리라는것을 예견하시고 구시등판에 오르시며 전호를 파고 전투준비를 갖출것을 명령하시였다. 오중흡동지는 중대원들을 인솔하고 등판에 올라 곧 유리한 지점을 차지한 다음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사령관동지께서 명철하게 예견하신대로 적들은 우리 인민혁명군의 발자국을 따라 헐레벌떡거리며 기여오르고있었다. 국경특설경비대장 오가와란 놈이 인솔한 《토벌대》놈들은 기관총을 여러정 가지고 살기등등해서 달려들고있었다. 유격대원들은 산등판에서 좀 내려와서 우묵한곳에 자리잡고 조용조용 전호를 팠다. 돌로 된 산이라 전호파기가 아주 힘들었다. 적들은 산아래까지 와서는 선뜻 올라오지 못하고 두리번거리고있었다. 이윽고 놈들은 우리가 차지한 고지로 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적들이 턱밑까지 다가붙었을때에 사령관동지께서는 멸적의 신호총소리를 울리시였다. 대원들은 바로 코앞에 기여든 놈들에게 명중탄을 퍼부었다. 순식간에 맨앞에서 기여오르던 놈들이 꺼꾸러졌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황황히 뒤걸음질을 하며 돌바위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허공에 대고 눈먼 총질을 하는것이였다. 어찌나 급했던지 적기관총수놈은 기관총을 내던진채 자기 몸만 바위뒤에 숨기는것이였다. 주인없이 나딩구는 기관총을 보자 오중흡동지는 기관총 있는데로 뛰여갔다. 그가 기관총가까이까지 접근하자 적들은 기관총을 빼앗기지 않자고 오중흡동지에게 집중사격을 하였다. 위급한 순간에 오중흡동지는 날랜 동작으로 기관총을 틀어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날쌔게 적들에게 돌려대고 련발로 쏘았다. 적들이 또다시 머리를 처박는것을 보자 오중흡동지는 나는듯이 전호로 돌아왔다. 오중흡동지는 조국에 나가서 방어대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돌아온 서운함을 여기서 시원히 풀었던것 같다. 오중흡동지는 언제나 전투에서 이렇게 용맹무쌍하였다. 그는 대담하게 행동하면서도 결코 무모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는 언제나 전투정황을 재빨리 가려보고 결정적순간에 대담무쌍하고 민첩하게 행동하였다. 그러기에 그와 함께 싸울 때는 대원들이 누구나 마음을 놓을수 있다고들 하였다. 이것은 그가 바로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신 강철의 령장 김일성동지의 뛰여난 령군술을 본받아 싸웠기때문이였다. 전투는 잠시 뜸해진듯 하였다. 놈들이 모두 바위틈에 박혀있었기때문에 총을 쏴도 잘 맞지 않고 수류탄도 효과가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전투가 오랠수 있었다. 대원들은 마음이 조급해났다. 바로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놈들에게 돌벼락을 들씌우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동무들, 돌을 굴리라!》 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전법의 묘리를 인차 알아차릴수 있었다. 대원들은 큰 돌을 뽑아서 놈들이 숨어있는 바위짬으로 내리굴리였다. 돌은 굴러내려가며 바위틈에 엎딘 놈들을 짓이겨놓았다. 사정없이 들씌워지는 돌벼락에 놈들은 질겁해하였다. 공포에 질린 놈들은 일어서서 비명을 지르며 이리뛰고 저리뛰다가는 돌에 치여죽고 우리의 총탄에 맞아 너부러지군하였다. 돌벼락은 놈들의 머리우에 계속 세차게 들씌워졌다. 급해맞은 놈들은 참다못해 내리뛰기 시작하였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오중흡동지는 돌격하는 대원들의 앞장에 서서 나갔다. 대원들은 오중흡동지를 따라내려가며 도망치는 적들을 이리족치고 저리때려눕히며 모조리 섬멸하였다. 이날 전투에서 《토벌대》놈들중 살아 도망친 놈은 불과 몇놈밖에 되지 않았다. 이 섬멸전에서 얼마나 겁을 먹었던지 뒤미처 달려온 300여명의 적들은 감히 달려들 생각도 못하고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우리 인민혁명군은 전장을 수색한 후 유유히 철수하였다. 인민혁명군부대는 이렇게 뒤따르는 적을 완전히 떼여버리고 다시금 백두산서남쪽으로 돌아갔다. 어마어마한 경계망을 뚫고 국내로 들어가 조국광복의 홰불을 높이 추켜올리였을뿐만아니라 따라오는 적들까지 몽땅 쓸어눕혔으니 대원들의 사기는 여간만 충천하지 않았다. 이때 보천보에 올린 조국광복의 홰불은 조선혁명의 앞길을 찬란히 비치며 영원히 꺼질줄 모르는 등대와도 같이 조국의 방방곡곡을 비쳐주었다.
(2)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승리는 조선인민의 심장을 벅찬 감격과 환희속에 들끓게 하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더욱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 보천보전투가 있은 얼마후인 6월 8일부 《동아일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태풍일과후의 보천보, 보천면사무소, 우편국, 산림보호구, …소방회관 이런 중요한 건물이 전부 하루밤사이에 재가 되였다.…면사무소 그 자리에는 지금도 연기가 무럭무럭 나고 기둥과 들보가 탄 시커먼 숯덩이만 앙상하게 쌓였고 문서더미가 그대로 타버려서 바람에 재가 날린다.…》 그때 진상을 마음대로 쓸수 없었던 조건에서도 이에 대한 보도가 출판물에까지 게재되였은즉 보천보에 있던 적의 소굴이 얼마나 한심한 꼴이였겠는가를 능히 짐작할수 있다. 《무적의 황군》이라고 떠들고 《철벽의 방진》을 쳤다고 하던 적들이 얼마나 혼비백산했는가 하는것은 벌거벗은채로 10리나 뛰였다는 경찰놈의 추태가 잘 말해주고있다. 놈들은 공포에 질려 얼마동안 수습책을 세울 념도 못내였다. 더구나 추격하던 경찰대놈들마저 구시산에서 멸살을 당하자 놈들은 더욱 공포에 떨었다. 놈들은 구시산에서 꺼꾸러진 저들의 시체를 처리하는것도 소문이 날가봐 벌벌 떨며 풀이 죽어 돌아갔다. 그리하여 놈들은 구시산에서 죽은 시체를 가림주재소에 가져다 감장을 해서 비밀리에 친척들에게 보내주었는데 시체가 어찌나 피투성이가 되고 몰골없이 되였던지 그것을 씻지 않으면 안되였다는것이다. 그런데 인민들에게 씻기면 소문이 나겠고 하여 궁여지책으로 놈들은 근방에 있는 한 로인을 불러다가 시체 하나 씻는데 10원씩 줄터이니 소문을 내지 말라고 회유하여 그 일을 시키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시체가 내려오는데 아무리 엄격히 단속한다고 해도 말이 안날수 없었다. 어느덧 구시산에서 놈들의 주검이 수없이 내려왔다는 사실이 인민들속에 널리 퍼지게 되였다. 이렇게 되자 놈들은 그 로인을 잡아다 매를 치며 준 돈을 도로 빼앗는 추태를 부린 끝에 로인을 류치장에 가두어넣기까지 하였다 한다. 그때 놈들은 보천보전투소식을 비밀에 붙이느라고 무진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어떠한 발악으로써도 조국광복의 서광을 본 인민들의 환희와 감격을 억누룰수 없었으며 높아가는 인민대중의 반일투쟁의 혁명적기세를 막을수 없었던것이다. 오중흡동지는 그후에도 늘 환호하며 바래주던 보천보인민들의 희망에 넘친 얼굴들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말하군 하였다. 일제식민지통치자들의 압박과 착취에 몰리고몰리다못해 화전을 찾아 삼수, 갑산 두메로 온 조선의 북부산지대농민들은 호당 78원이라는 큰 빚을 걸머지고 허덕이였었다. 그때의 조선인민들의 형편은 바로 이러하였다. 황소 한짝값이 30~40원이던 그때에 황소 두짝값이 넘는 빚을 지였으니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수 있었겠는가. 조선민족의 머리우에 검은 구름이 무겁게 드리웠을 때 보천보에서 타오른 불길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조선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북돋아주는 혁명의 서광을 비쳐준것이였다. 조선인민은 이 혁명의 서광속에서 밝은 앞날을 내다보았던것이다. 먹장구름이 드리웠던 조선민족의 머리우에 밝은 빛이 비치고 답답하던 인민들의 가슴속에서는 희망과 끌수 없는 불길이 타번지기 시작하였다. 유격대원들은 보천보전투승리를 환영하는 지양개인민들의 얼굴마다에서도 그 기쁨과 희망의 빛을 볼수 있었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맞는 지양개인민들의 환영은 그야말로 감격과 환희의 도가니와도 같았다. 남녀로소가 달려나와 대원들을 얼싸안고 기쁨에 목메이는것이였다. 무산지구에 진출하였던 부대도 도착하였고 림강부근에서 활동하던 부대도 찾아왔다. 그때 지양개마을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인민들로써 명절처럼 들끓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중흡동지의 소부대가 장만해두었던 새 군복을 각 부대 대원들에게 일제히 나누어주게 하시였다. 그들은 새 군복을 갈아입고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인민들은 혁명군을 대접하기 위하여 국수를 누르고 떡을 치며 분주히 돌아갔다. 그것은 정녕 대경사를 치르는것 같았다. 이튿날 이곳에서는 성대한 군민련환대회가 열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군민련환대회에서 연설하시면서 국제국내정세를 분석하시고 국내외의 혁명을 일층 더욱 발전시키며 무장투쟁을 더한층 확대강화할 과업에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일제를 타도하고 조국을 해방하는것은 오늘 우리 민족의 지상념원입니다. 우리는 이 념원을 실현하기 위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고된 전투를 진행하는 속에서도 조국을 생각하고 거기서 힘과 용기를 얻고있습니다. 우리는 오매불망 그립던 조국진군의 길에 올라 가는 곳마다에서 원쑤들을 족치고 승전고를 울리였으며 오늘은 승리한 무한한 기쁨을 안고 이처럼 한자리에 모이게 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임이야말로 승리자들의 기쁨을 나누는 모임이며 앞으로 더 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결의를 다지는 모임입니다.》 그러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서강회의이후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여러 부대로 나뉘여 국내와 만주의 광활한 지역에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전개함으로써 서강회의에서 제시한 방침을 훌륭히 관철한데 대하여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먼저 백두산동북부에 진출한 부대가 안도와 화룡일대의 광활한 지역에서 적들에게 큰 타격을 주어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준데 대하여 말씀하시고나서 백두산서남부에 진출한 부대들을 여러개의 소부대로 편성하여 무송, 림강, 장백일대에서 적들을 련속타격함으로써 주력부대의 국내진공작전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데 대하여 높이 치하하시였다. 그리고 주력부대는 《철벽의 요새》로 자랑하는 적들의 국경경비진을 일격에 돌파하고 그리운 조국땅에 진출하여 일제놈들을 족쳐버림으로써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서광을 안겨주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국내진공작전에서 무비의 희생성과 영웅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강도 일제군경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고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준 긍지와 자랑을 안고 이 자리에 모인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과 병사동무들을 열렬히 축하합니다.》 대원들은 감격에 벅차올라 그이의 연설에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드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계속하여 국내원정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일제침략자들의 〈토벌〉공세는 더욱 우심해지고있습니다. 그러나 놈들의 그 어떤 발악적책동도 반일성전에 일떠선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할것이며 우리의 단합된 력량을 깨뜨리지 못할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일제침략자들의 발악적책동을 짓부셔버리고 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야 하겠습니다. 모두다 일치단합하여 반일성전에 총매진함으로써 조국광복의 위업을 앞당겨나아갑시다.》 원정에 참가했던 전체 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이 말씀을 들으며 압록강을 건너올 때 조국앞에 다진 엄숙한 맹세를 다시금 마음속에 다지였다. 그들은 기어이 조국과 인민을 해방하고야말리라는 굳은 결의와 함께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가슴깊이 새기였다. 련환대회가 끝나자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은 한데 어울리여 경사스러운 이 날을 마음껏 즐기면서 기념사진도 찍었다. 경기관총사수들은 기관총을 앞으로 내들고 돌격해들어가는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다. 련환대회가 끝난 후에도 인민들은 유격대원들로부터 전투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여념이 없었다. 감격과 기쁨은 온 마을에 끓어번졌다. 오중흡동지는 마을사람들에게 보천보전투이야기를 비롯하여 유격대생활을 흥미있게 이야기하여주면서 우스개말도 잘하였다. 그는 우스개말을 하면서도 마을사람들을 반일사상으로 교양하고 각성시키는것을 잊지 않았다. 마을인민들이 정성을 다하여 차린 저녁식사를 한 후에 각 중대에서는 연예공연들을 벌리였다. 마을의 이곳저곳의 넓은 마당에는 가설무대가 마련되고 즐거운 공연이 시작되였다. 각 중대에서는 있는 재간을 다하여 공연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모든 일에서 이신작칙하는 오중흡동지는 4중대가 연예공연에서도 앞장서야 한다고 하면서 팔을 걷고 나서서 지휘를 하였다. 그들은 마을중심의 넓은 마당에다 가설무대를 만들고 풍으로 무대막까지 쳤다. 마을의 남녀로소가 한마당 가득히 모여서 공연의 막이 오를 때를 기다렸다. 연예공연은 처음에 씩씩한 혁명가요의 합창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참가하는 4중대의 락천적인 합창은 관중들에게 유격대에 대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 련이어 독창, 하모니카독주, 춤, 만담 등 다채로운 종목이 계속 상연되였다. 인민들은 매개 종목이 끝날 때마다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특히 4중대 녀성대원들의 독창과 춤은 관중들의 인기를 집중하였다. 치마에 행전을 치고 재치있게 무대를 구르며 돌아가는 녀대원들의 모습은 그들이 사시장철 무서운 곤난과 싸우며 원쑤를 치는 사람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률동이 아름다왔을뿐아니라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이 넘쳐있었다. 그러기에 인민들은 《춤추고 노래부르는것을 보니 마치 선녀들이 노는것 같다.》고 저마다 감탄하여마지않았다. 물론 다른 중대의 연예공연장소에서도 인민들의 환희와 감격이 넘쳐흘렀다. 공연은 밤이 깊도록 계속되였다. 유격대의 공연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날밤에도 마감에는 대원들과 인민들이 한데 어울려 노래하고 춤을 추는 련환모임을 이루었다. 녀대원들이 노래를 부르자 오중흡동지는 앞으로 나서며 팔을 벌리고 춤을 덩실덩실 추며 말했다. 《자 이런 때 춤을 안추면 언제 추겠소. 어서 마음껏 노래하고 춤춥시다.》 중대장이 이렇게 선두에 나서니 대원들이 안나설수 없었다. 4중대원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나서서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대원들의 춤판이 벌어지자 오중흡동지는 마을청년들의 손을 잡아 춤판에 끌어들이고는 로인들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아도 흥에 취해 어깨를 들먹이던 로인들은 《아무렴, 어서들 춤을 추세》 하며 어깨춤을 추며 타령조를 멋지게 넘기는것이였다. 그것은 참으로 흥겨운 군민련환대회였다. 로소동락이란 바로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오중흡동지는 로인들과 어울려서 타령도 잘하였고 춤도 제법 격에 맞게 잘 추어 사람들의 신명을 돋구었다. 군민련환대회는 그야말로 모든 대원들과 마을사람들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찼다. 그것은 조선혁명의 승리를 경축하는 시위대회였고 조국광복의 확고한 신심에 넘친 승리자들의 축하모임이였다.
(3)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지양개에서 며칠 묵는 동안 사령관동지께서는 각 부대 지휘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장차 진행할 대규모적인 국내진공계획을 제시하시면서 신갈파를 비롯한 국내의 중요지점들을 계속 습격하여 적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 한편 그곳들에 조국광복회조직망을 늘여 국내 깊숙이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범위를 확대할 웅대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실 방도를 밝혀주시였다. 대원들속에서는 대부대가 모인 기회에 조선의 큰 도시 하나를 본때있게 치리라는 말이 돌아갔고 신갈파를 치고 그곳에 조직을 박을것이라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정녕 그들의 말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이 나게 하였다. 특히 뒤늦게 이곳에 도착하여 보천보전투에 참가하지 못한 일부 대원들은 이번에야 조국에 진군해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잠도 오지 않는다고들 하였다. 이러던 때에 지방의 혁명조직들로부터 일제의 주구 김석원이 거느린 함흥련대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추격하기 위하여 혜산에 밀려들었다는 정보를 보내왔다. 보천보와 구시산에서 여지없이 녹아난 원쑤들은 제놈들이 당한 참패를 조금이라도 만회해보려고 저들의 병력을 사처에서 긁어모아 기어코 유격대를 《소멸》하자는 어리석은 망상을 꿈꾸고있었던것이다. 일제의 충실한 주구인 김석원이라는자는 주제넘게도 《김일성부대를 소탕하겠다.》고 호언장담하여나섰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지양개를 떠나 간삼봉으로 행군하여갔다. 부대는 간삼봉의 두번째 고개에서 풍을 치고 숙영하였다. 이튿날 아침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지휘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이윽고 보초소에서 적이 나타났다는 신호가 왔다. 그날아침은 안개가 끼였었는데 적들은 안개를 리용하여 바투 기여들고있었다. 김석원이 인솔한 함흥련대 2,000명과 위만군 500명의 대병력이였다. 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를 불의에 치자고 얕은 꾀를 쓰고있는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기도였다. 사령관동지의 령활한 지휘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첫고지와 둘째고지, 셋째고지를 각각 차지하고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사령관동지지의 지도밑에 오중흡동지는 중대를 아주 정확하게 지휘하였다. 그는 민활한 동작으로서 전투태세를 빨리 갖추었을뿐만아니라 유리한 지형을 재빨리 포착하고 리용하였다. 그가 얼마나 빨리 중대를 인솔하고 산으로 치달아올랐던지 대원들도 미처 따를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는 이렇게 빠르면서도 덤비는 일이란 없었다. 그는 묵밭고지의 개암나무밭속에 중대를 배치하였다. 그곳은 적을 족치기엔 더없이 좋은 지형이였다. 이윽고 위만군놈들이 4중대앞으로 기여오르는것이 보였다. 오중흡동지는 놈들이 묵밭에 들어서는 순간에 사격명령을 내리였다. 《오늘은 전투가 좀 끌수 있으니 탄알을 아껴야 하오!》 오중흡동지는 이렇게 말하며 정확히 묘준해서 명중사격을 하라고 대원들에게 명령하였다. 4중대대원들은 근거리에 접근한 놈들부터 정확히 조준하여 쓸어눕히기 시작하였다. 번번한 묵밭에 들어섰던 적들은 명중사격에 맞아 수많은 시체를 남기고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오중흡동지는 벌떡 일어나서 비호같이 적을 추격하기 시작하였다. 대원들도 그뒤를 따랐다. 그런데 위만군의 뒤에서 기여오르던 철갑모를 쓴 적들은 물러서지 않고 바싹바싹 기여드는것이였다. 오중흡동지는 다시 중대를 개암나무숲에 배치하였다. 위만군과는 싸우는 식부터 다른것으로 보아 그것은 일제침략군놈들임에 틀림없었다. 이놈들은 허리도 굽히지 않고 뻣뻣이 서서 들어오면서 총을 쏘는것이였다. 놈들의 총탄은 겨냥을 지나치게 높이였기때문에 중대원들의 뒤에 선 저수리나무잎만 우수수 떨어지군 하였다. 이놈들은 위만군과는 달리 만만치 않게 달려들면서 앞의 놈들이 연거퍼 쓰러져도 계속 뻣뻣이 서서 들어오는것이였다. 이놈들의 전법이란 마치 죽기내기를 하는듯 그저 내밀기만 하였다. 오중흡동지는 전투의 첫 순간에 벌써 놈들과 어떻게 싸워야 하겠는가를 판단하고 침착하게 중대를 지휘하였다. 《머리를 들지 말고 한 20보까지 바싹 접근시켜놓고 쏘라!》 오중흡동지의 이런 구령을 들으며 대원들은 자기들을 더 잘 은페하고 명중사격을 계속 퍼부었다. 그놈들이 조선에서 건너온 강도 일제침략군놈들이라고 생각한 대원들은 이를 갈며 쳐갈기였다. 《이놈의 악종들 한번 죽어보아라!》 대원들은 이렇게 벼르며 놈들의 가슴팍에 복수의 불벼락을 안겼다. 흐렸던 하늘에서는 비가 퍼붓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기여드는 놈들을 한창 족쳐대고있을 때 첫 고지에 있던 한개 중대가 폭풍우속에서 적들과 혼전을 하고있었다. 비가 계속 퍼붓는 속에서 백병전이 벌어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7련대와 경위중대에게 그들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리시였다. 오중흡동지는 중대를 이끌고 7련대의 선두에 서서 일본군을 족치며 첫 고지쪽으로 돌진하였다. 적아가 막 한데 뒤섞여서 어느 사람이 제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혼잡판이 벌어졌다. 그런데 《철갑모 쓴놈만 제끼라!》 하는 오중흡동지의 힘있는 목소리가 대원들을 깨우쳐주었다. 일본놈들은 모두 철갑모를 쓰고있었던것이다. 이런 때는 지휘관의 재빠른 판단과 구령이 결정적역할을 하는것이다. 대원들은 오중흡동지의 구령에 따라 철갑모 쓴놈들을 보는족족 총창으로 제끼며 나아갔다. 오중흡동지는 마치 성난 사자처럼 왼쪽놈을 치고 바른쪽놈을 찌르며 총창을 번개같이 휘둘렀다. 적들은 공포에 넋을 잃고 뿔뿔이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적진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적들은 우리 인민혁명군부대들에 의하여 역포위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들에 대한 포위진을 조이며 결정적인 섬멸전에로 넘어갈것을 명령하시였다. 오중흡동지는 여전히 7련대의 앞장에서 4중대를 이끌고 나가면서 적을 족치였다. 급해맞은 적들은 뒤쪽으로 빠지려 하였으나 그쪽에서도 우리 유격대가 맞받아나오며 족쳐대였다. 이리하여 포위속에 든 적들은 독안에 든 쥐처럼 갈팡질팡하다가 무리로 쓰러지고 마침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망치고말았다. 김석원이라는 놈은 인민혁명군의 명중탄에 의해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기겁하여 벌벌 떨다가 패잔병들의 부축을 받아 황급히 압록강을 건너 병원으로 줄달음치고말았다 한다. 만일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피를 간삼봉골에서 씻어내지 못하였을것이다. 간삼봉전투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의 국내진출에 따르는 적들의 추격을 최종적으로 꺾어놓은 전투였다. 이 전투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다시한번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간삼봉에서 김석원부대가 녹아난 후로 적들은 여러날동안 우리 인민혁명군부대를 감히 더 추격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우리 인민혁명군 부대는 그날 밤으로 지정된 집결장소로 떠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각 부대 지휘관들의 회의를 소집하시고 차후행동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놈들이 대병력을 긁어모아 추격해올수 있는 조건에서 민활한 분산활동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린 다음 다시금 력량을 집중하여 적에게 타격을 줄 계획을 세우시였다. 그리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장백현 가재수방향으로, 기타 부대들은 림강현방향으로 각각 진출하여 활동하기로 되였다. 이것은 적들의 력량을 분산혼란시키고 장백지구와 국내에서 혁명조직들의 활동을 보장하며 앞으로 더 대대적인 국내진공작전을 진행할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전략전술적방침이였다.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백두산쪽으로 다시 돌아나오는 날 그때는 보천보나 혜산에만 그칠것이 아니였다. 국내의 더 넓은 지역에서 적의 아성이 무너질것이고 혁명의 불길은 더 세차게 타오를것이였다. 그날을 믿으며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안겨주신 혁명사상과 조국광복의 기치를 높이 받들고 반일투쟁에 더욱 견결히 나섰으며 인민혁명군부대를 물심량면으로 적극 지지성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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