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군대의 규률은 자각적규률이다》

 

 

《혁명군대의 규률은 자각적규률이다》

 

                                                     김  철  만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이 발톱까지 무장한 일제와 싸워이긴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강한 규률을 가진데 있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군대의 규률은 강압적규률이였지만 우리 항일유격대의 규률은 혁명적이며 자각적인 규률이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조선혁명의 전반을 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나날에도 조선인민혁명군의 모든 대원들이 규률을 자각적으로 지키며 부대를 규률성있고 전투력있는 강철의 대오로 꾸리는데 항상 큰 힘을 넣으시고 몸소 이 사업을 세심하게 지도하여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지휘관들에게 《혁명군대의 규률은 자각적규률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규률은 말로써가 아니라 실지행동에서 자각적으로 지킬 때만이 확립될수 있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생활과정에 자각성이 부족한데로부터 나타나는 사소한 무규률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동지호상간, 상하간은 물론하고 묵과함이 없이 강한 사상투쟁을 벌려야만 부대안에 강철같은 자각적규률을 확립할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이 가르치심은 조선인민혁명군안에서 강철같은 자각적규률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의 지침이였다.

우리들은 입대한 첫날부터 사령관동지의 이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유격대생활을 진행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의 혁명적규률을 세우는데서 무엇보다도먼저 인민혁명군의 모든 성원들이 상급의 명령, 지시를 무조건 집행하며 상하에 관계없이 하나의 규률과 질서에 복종하도록 교양하시였고 또 강하게 요구하시였다.

마당거우밀영에서 학습할 때에도 몸소 규률강화를 위한 노래까지 보급시키시였다.

서른다섯해도 넘은 오늘에도 나의 머리속에는 그때 배운 노래가사의 한절이 기억에 생생하다.

 

정확한 혁명로선 굳게 잡으니

장관병사 모든 대우 평등이다

강철같은 군기풍습 지키여가며

혁명적철군으로 단련들하자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배워주신 노래의 한절을 통하여서도 조선인민혁명군안에서는 지휘관이나 대원이나 할것없이 모두 조선혁명을 위해 나선 혁명가들인것만큼 혁명적규률을 자각적으로 지켰다는것을 알수 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안에서 2중규률을 허용하지 않으시였으며 지휘관들이 규률생활에서 이신작칙하도록 하시였다.

내가 입대하여 유격대생활의 첫걸음을 뗀 7련대 4중대의 중대장이였으며 후에 련대장으로 있은 오중흡동지는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심장으로 접수하고 규률생활에서 언제 어디서나 모범을 보인 지휘관의 한사람이였다.

그는 사령관동지의 명령, 지시라면 무조건 접수하고 어떤 조건하에서도 어김없이 집행관철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안에 설정된 제도와 질서를 누구보다 모범적으로 엄격히 준수하였다.

그는 조선인민혁명군에서 싸운 전기간 사령관동지로부터 받은 전투임무를 지정된 기일안에 수행하지 못한적이 없었으며 사령부와의 련락시간도 어느 한번 어기지 않았고 제정된 생활규칙을 위반한 일이 없었다.

특히 그는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부대안에서 2중적인 규률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생활에서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무기검열, 복장과 장구류 등의 검열을 진행할 때에 오중흡중대장은 우선 자기의것부터 상급에게나 동지들에게 먼저 검열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대원들을 검열하였다.

이렇게 그는 자기자신이 조직성과 규률성이 강했던만큼 대원들에 대한 요구성도 매우 높았다.

마당거우밀영에 도착하여 중대에서 첫 대렬검열을 진행할 때였다.

우리 분대에 있던 김동무는 묘령전투에 적탄이 모자를 뚫고나간것을 미처 꿰매지 못한채 대렬검열에 참가하였다.

매개 대원 한사람한사람을 검열하던 오중흡중대장은 김동무앞에 와서 모자에 콩알만하게 구멍이 뚫린것을 보고 엄격히 지적하였다.

《동무에게는 모자 하나 기울 시간이 없었소? 대렬검열이 끝난 후 즉시 깁고 보고하시오.》

그의 이 원칙적인 요구는 자기자신이 먼저 대원들앞에서 모범을 보이고 요구하는것이였기때문에 김동무는 계속되는 행군과정에서도 시간을 짜내여 모자를 기우려고 노력하지 않은 자기 결함을 스스로 깊이 뉘우치고 즉시 고치였다.

오중흡동지의 원칙적인 요구성과 이신작칙의 모범은 중대의 규률을 강화하는데서 큰 작용을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들뿐아니라 대원들에게도 규률과 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도록 원칙적으로 교양하시였다.

1938년초에 있은 일이다. 작식대원 두명이 샘물가에서 쌀을 씻다가 흘린 쌀알 몇알을 보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작식대원들을 엄하게 비판하시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쌀알 몇알 흘린것이 사소한 일 같지만 혁명적생활기풍이 없고 규률이 없는 표현이라고 하시면서 동무들은 부대의 식생활을 책임진 동무들이 아닌가, 그런데 동무들이 동지들의 피로 바꾸어온 식량을 그렇게 흘려서야 되겠는가, 이것은 혁명군대에서는 용납할수 없는 행동이다, 동시에 이것은 혁명적규률이 없는 표현이다, 만일 적들이 동무들이 흘린 쌀알을 발견하고 불의에 습격하게 된다면 부대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면 동무들은 혁명앞에 씻을수 없는 죄를 짓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한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들은 그들은 자기들이 범한 과오의 엄중성을 심장으로 뉘우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들이 자신의 결함에 대하여 각 중대로 돌아다니면서 비판을 하게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을 계기로 모든 대원들이 규률생활에서의 자기 결함을 스스로 찾도록 하시려는것이였다.

두 작식대원은 각 중대로 돌아다니면서 사령관동지께서 타일러주시던 말씀 그대로 자기들이 범한 과오가 혁명군대원으로서 매우 엄중하다는데 대하여 심각히 비판하였다.

작식대원들이 우물가에 흘린 쌀알 몇알을 놓고 그것이 식량을 피로 바꾸어온 혁명동지에 대한 도리를 저버린것이며 적들에게 부대의 흔적을 탐지할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는 행동이였다고 울먹거리며 하는 솔직하고 심각한 자기비판은 모든 대원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행동과 규률생활을 깊이 돌이켜보게 하였다.

그들의 자기비판을 들으면서 나도 자신의 생활에서 저런 현상이 없었는가를 더듬어보았다.

나에게는 그들이 범한 결함보다 더 엄중한것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날 행군을 한 후 보초근무에 나갔다가 깜빡 존것이였다.

결함을 찾은 나의 마음은 후더워났다.

(어떻게 할것인가. 작식대원들이 범한 규률위반보다 더 큰것이 아닌가. 더 숨겨두지 말고 대담하게 동지들앞에 솔직하게 비판하고 고쳐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그날 저녁에 있은 중대청년단지부회의때에 보초근무에 나가 존 문제를 솔직히 내놓고 자기비판을 하였다.

나의 비판을 듣는 동지들의 눈은 둥그래졌다. 이날 회의에서 나는 동지들로부터 많은 조언을 받았다.

청년단지부회의에서 서기는 그 누구도 모르고있었던 결함을 스스로 내놓고 자기비판하는것으로 보아 다시는 규률을 위반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진실하게 조직생활을 하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며칠후에 안 일이지만 사령관동지께서는 청년단지부서기를 통하여 내가 자기비판한 내용을 보고받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청년단원들이 그 누구도 모르고있는 결함을 솔직하게 내놓고 자기비판하는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아무리 사소한 규률위반이라도 제때에 비판하여 고치지 않고 한번, 두번, 반복한다면 나중에는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는것이다, 그렇기때문에 매개 청년단원들은 일상적으로 조직생활을 잘하여 사소한 규률위반도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전해들은 나는 그이의 가르치심을 가슴깊이 새기고 혁명군대에 있어어 생명인 규률을 자각적으로 지켜 그이의 충직한 혁명전사가 될것을 다시금 굳게 결의하였다.

이런 결의는 나 혼자만의 결의가 아니였다. 중대안의 모든 대원들은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제정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지켜 한건의 규률위반도 내지 않을것을 굳게 결의하여나섰다.

이리하여 부대의 규률은 날을 따라 째여져갔다. 규률이 강한 우리 부대는 적과의 싸움에서 언제나 승리하였다.

내가 참가한 수많은 전투가운데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것은 고난의 행군을 거쳐 1939년 5월에 진행한 무산지구전투이다.

이때의 조국진군은 두말할것도 없이 일제에게 큰 타격을 주고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크나큰 신심을 안겨준 거대한 정치군사적의의를 가지는 빛나는 행로였고 동시에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불패의 힘의 원천을 보여주는 높은 사상성과 함께 강한 조직성, 규률성의 일대 시위였었다.

사령관동지의 친솔하에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국내로 진출하였을 때 적정은 매우 삼엄하였다.

압록강대안에 있는 《히가시채목공사》가 습격당했다는 련락을 받은 적들은 각처에 비상동원령을 내리는 한편 혜산, 갑산, 신갈파, 호인 등 각지에 있는 경찰서에서 300여명의 경찰들을 선발하여 《특별토벌대》를 편성하여가지고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아보려고 발악하여나섰다.

그러나 놈들의 그 어떤 발악도 사령관동지께서 이끄시는 규률있고 전투력이 있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주력부대의 신출귀몰한 행동을 알아낼수도 막을수도 없었다.

밀림이 우거져 하늘을 볼수 없는 수림지대로 부대를 감쪽같이 빼여 5호물동으로 압록강을 건느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청봉에 이르시여 부대에 숙영할것을 명령하시였다.

우리들은 하루밤을 자고간다는것을 알았지만 유격대생활이 요구하는대로 병실과 취사장 등을 규모있게 설비하였다.

그때 우리는 사령부천막을 중심으로 15개의 병실과 10여개의 취사장 등을 정하고 제정된 규격대로 도리풍과 천막을 쳤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이 천막을 치고 주위환경을 깨끗이 정리하고있을 때 병실과 취사장 등을 일일이 돌아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숙영지를 더 잘 꾸릴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병실과 취사장은 설정된 규격대로 잘 설비하였다, 그런데 동무들이 칼도마는 잘 만들지 못했다고 하시며 칼도마는 통나무를 잘라서 한쪽 끝을 땅에 박아놓아야 아무리 세차게 칼장단을 쳐도 그 소리가 땅속으로 잦아들어 멀리 가지 않는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동무들은 조국에 나와서 숙영을 하는것만큼 이러한 부분에까지 깊은 주의를 돌려가지고 숙영지에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빈틈없이 그리고 규모있게 갖추고 우리 혁명군의 규률성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 우리들은 숙영지생활에서 꼭 있어야 할 우물과 세면장, 변소 등을 일정한 장소에 규모있게 설비하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칼도마로는 통나무를 잘라다가 한쪽 끝을 땅에 박아놓았다.

그날 저녁 작식대원들은 두릅나물, 참나물 등 여러가지 산나물을 뜯어다가 대원들의 구미에 맞는 국과 찬을 마련하느라고 여느때없이 칼도마를 많이 썼으나 도마소리가 땅에 잦아들었기에 경계근무에 나갔던 동무들도 들을수 없었다.

이날밤 나는 중대직일근무에 동원되였다.

내가 보초소에 나가 섰을 때 숙영지 매 천막들에서는 일제히 피리와 하모니카소리, 노래소리가 조용히 새여나오기 시작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하루생활에서는 이런 락천적인 저녁시간이 일과에 규정되여있었다.

우리는 적과 맞다들어 전투를 진행하지 않는 한 어디 가서 숙영하든지 제정된 일과를 꼭 지켰던것이다.

그리운 조국에 나와서 동무들이 부는 피리소리와 하모니카소리에는 어서빨리 일제를 때려눕히고 조국을 해방하여 헐벗고 굶주리고있는 인민들에게 새 희망을 안겨주려는 절절한 념원이 담겨있었다.

얼마후 취침을 알리는 신호소리가 울리자 숙영지는 물뿌린듯 고요해졌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사령부천막안에서 나오시였다. 쪼각달은 이깔나무꼭대기에 걸려있었고 밤하늘에 박힌 총총한 별들은 류달리 빛났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시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다.

일제강도놈들의 폭압밑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2중3중으로 겹싼 적의 포위환을 뚫고 무산지구로 진출할 작전을 구상하시는지…

전령병은 그이의 뒤를 따랐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 천막마다에 들리시여 배낭을 머리맡에 깨끗이 정돈하여놓고 자고있는 대원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모포깃을 당겨 바로 덮어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지막천막까지 돌아보시고 사령부천막으로 돌아오시여 전령병에게 어서 자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주무시지 않겠습니까?》

전령병이 이렇게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이제 자지…》라고 하시고는 통나무를 갈라서 만들어놓은 책상앞에 앉으시는것이였다.

아마 작전지도를 들여다보시며 무산지구로 진출할 작전을 구상하시는것이 틀림없었다.

사령부의 불빛은 내가 근무를 교대하고 들어갈 때까지 꺼지지 않았으며 그후도 밤늦게까지 오래 켜져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사령관동지께서는 밤잠을 잊으시고 구상하신 작전계획에 따라 부대를 청봉숙영지에서 출발시켜 건창, 베개봉을 거쳐 5월 21일에는 놈들이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로 대낮에 행군을 조직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놈들이 산지대에만 주의를 돌리고 요소마다에 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하고있는 조건에서 산을 타고 간다면 적들의 포위속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것을 포착하시였다.

이러한 정황을 명철하게 판단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일행천리전술로 적들이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로 그것도 대낮에 대담하게 행군하게 하시였던것이다.

우리의 주력부대가 적들이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토벌》하는데 리용하려고 닦은 《갑무경비도로》로 대낮에 보무당당히 행군을 진행할수 있은것은 그이의 신출귀몰하는 전략전술의 천재성과 함께 그이께서 대오안에 강철같은 규률을 확립하신데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시 우리 인민혁명군안에는 정연한 지휘체계가 수립되여있었기때문에 밤도 아닌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로 행군하다가 적들과 조우한다 하더라도 우물거리지 않고 신속히 결심을 채택하고 행동에서 과단성과 주도성을 발휘하여 능히 적들을 소멸하고 목적지에 도달할수 있는 전투력과 높은 조직성, 규률성을 가지고있었다.

이날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조직하시여 파견하신 전방척후와 후방척후들은 이미 설정한 1km 내외에서 주력중대와 부단히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행군을 보장하였다.

주력중대에서 행군하던 우리들은 출발에 앞서 사령관동지께서 행군서렬을 편성하신대로 3렬종대를 짓고 앞뒤사람과의 거리간격을 설정된대로 정확히 보장하며 행군질서를 자각적으로 지키면서 행군하였다.

이와 같이 부대는 정연한 지휘체계와 높은 조직성과 규률성을 가지고있었기때문에 대낮에 대도로행군을 신심드높이 단행할수 있었고 계획된 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무포에 도착하였던것이다.

산을 뒤지던 적들은 주력부대가 무포에 도착하였을 때에야 청봉숙영지를 발견했는데 규모있고 째인 숙영지자리를 보고는 벌벌 떨었다고 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포에서 지휘관회의를 소집하시고 추격해오는 적들을 유인매복전술로 소멸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투명령을 내리시였으며 이튿날 대홍단벌에서 일제《토벌대》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가하시고 승리의 개가를 올리시였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몸소 조직지휘하신 무산지구전투승리는 조선혁명은 조선의 혁명가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수행하여야 한다는 그이의 주체사상의 열매였으며 우리 인민을 반일민족해방투쟁에로 다시금 힘차게 불러일으킨 기치였다.

또한 이 전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이 고도의 조직성과 규률성을 가진 강철의 혁명대오라는것을 온 세상에 시위함으로써 적들로 하여금 더욱더 공포에 떨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간 오늘에도 손에서 총을 놓지 않고 그이께서 령도하시는 혁명적무장대오에 서있는 나는 예나 다름없이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무력건설방침의 하나인 자각적인 혁명적군사규률을 확립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하고있다.

인민군장병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오늘 혁명적대사변의 시기에 들어선 조건에서 더욱더 긴장하게 혁명적으로 생활하며 적들의 전쟁도발책동에 대처하여 인민군대의 전투준비와 전투력을 백방으로 강화할것이며 군대의 생명인 강철같은 군사규률을 확립하는데 모든 정력을 다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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