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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의 명령이라면 어떤 난관과 시련도
이겨내며 끝까지 관철하기에 힘썼다
(김주현동지를 회상하여)
강 위 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사령관동지의 참된 전사로 조국광복의 성스러운 위업을
위하여 영용하게 싸우다가 희생된 혁명동지들의 모습을 감회깊이 회상하군 한다.
그중에서도 나에게는 위대한 수령님의 육친적사랑과 직접적인 보살피심속에서 교양육성된 유격대지휘관의 한 사람이였던 김주현동지의
얼굴이 삼삼히 떠오른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일찍부터 혁명투쟁의 길에 나선 김주현동지는 그이께서 안겨주신 필승불패의
혁명사상을 심장속깊이 간직하고 자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피흘려싸운 열렬하고 강의한 공산주의투사였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였으며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추호의 동요없이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을 실현하는데 자기의 모든 지혜와 정력을 남김없이 바쳐싸웠다.
1
1936년부터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지휘관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용감성을 발휘하였을뿐만아니라 그이께서 주시는 명령을 받들고
적통치구역에서의 어렵고 복잡한 정치공작임무도 능숙하게 수행하였다.
나는 지금도 그가 력사적인 남호두회의와 동강회의에서 제시하신 사령관동지의 전략전술적방침을 심장으로 받들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온갖 난관과 위험을 뚫고나가며 정력적으로 활동하던 때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전반적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불러일으키시기 위하여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하며 그에 의거하여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더욱 추진하고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확대발전시키면서 유격투쟁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데 대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리하여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하는 문제는 당시 조선혁명발전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과업으로 제기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유격근거지창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위하여 김주현동지를 책임자로 하는 선발대를 백두산서남부일대에 파견하시였다.
1936년 5월 어느날,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동지를 부르시고 남호두회의와 동강회의에서 토의된 내용을 상세히 말씀하여주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선발대가 해야 할 임무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주요활동무대로 될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의 지형과 적정을 정찰하고
밀영을 설치할 위치들과 부대이동을 위한 통로들을 설정하며 장백지구의 주민들을 료해하고 그들속에 조국광복회강령을 침투시키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군용지도를 짚으시면서 그들의 행동로정과 임무수행과정에 부닥칠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그곳 주민들속에서 할 사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곳의 주민상태는 비교적 좋다고 볼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일제와 지주, 자본가들의 착취와 억압에 견디지 못하여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고 과거에 독립군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제를 미워하고 조선이 독립되기를 바라고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동만과는 지형, 기후풍토, 례의범절, 생활관습들이 모두 다릅니다.
주민들은 반일감정을 가지고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적들의 악선전을 계속 받아왔기때문에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우리
유격대에 대하여 옳은 리해를 가지고있지 못합니다. 그들을 각성시키고 혁명승리에로 이끄는 길은 이제부터 우리가 개척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속에 무엇보다도 조국광복회 강령과 선언내용을 광범히 선전하고 우리 유격대가 진정으로 조선의 독립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라는것을 옳게 인식시켜야 합니다.
김주현동지가 인솔한 선발대는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산발을 타고 여러날 행군한후에 되골령을 넘어 장백지구에 들어서게 되였다.
백두산지대에 나와 혁명의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는 이들앞에는 실로 수다한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도 난관앞에서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조국의 해방을 위한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구상을 실현한다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백두산의 천고의 밀림을 헤치고
험산준령을 오르내리면서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백두산록의 깊은 수림지대에 사령부와 밀영들을 설치할 장소들을 찾아내였다.
한편 그들은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마을의 형편과 주민들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
김주현동지자신도 농민옷을 입고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뚫고 토기점리와 주경동, 지양개 등 장백지구의 여러 마을에 들어가 주민들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였다. 그는 농촌의 기본군중들에 대해서는 물론 마을의 촌장, 구장들의 동향, 복잡한 계층들의 동태 등을
료해하였으며 천도교의 분포정형 등에 대한 자료들도 상세하게 장악하였다.
그리고 한편 조국광복회조직을 내오기 위하여 이미 료해한 대상들속에서 조국광복회강령을 해설침투하였으며 그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부대의
후방물자도 적지 않게 해결할수 있었다.
그들이 료해하고 장악한 자료들은 앞으로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조국광복회망을 광범히 조직함에 있어서 귀중한 밑천으로 되였다.
이처럼 김주현동지가 책임진 선발대는 사령관동지의 명령대로 온갖 난관과 애로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유격근거지창설을 위한 준비사업을 정력적으로
진행해나갔다.
김주현동지가 임무를 수행하고 사령부로 돌아온것은 그해 8월경이였다.
이때 부대는 만강일대에서 활동하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동지로부터 그동안의 사업보고를 들으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선발대의 임무가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것이였으나 사령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기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데 대하여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김주현동지의 소부대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다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사령관동지의 령솔밑에 곧
백두산일대에로 진출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두산서남부일대에 나오시여 대덕수, 소덕수전투를 비롯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한 수많은 전투들을 련속적으로
진행하시고 국내 백두산지구에 혁명의 사령부를 꾸리시였다. 한편 국내와 장백지구에 조국광복회를 조직하는 사업도 지도하시였다.
항상 어렵고 힘든 일이 제기될 때마다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군 하는 김주현동지는 이때에도 그이로부터 다시금 중요한 임무를 받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장백지구에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기 위하여 정치리론적으로 준비되고 군중정치사업에 능숙한 정치공작원들을 수많이
파견하시였는데 김주현동지도 이 임무를 받고 상강구일대로 파견되여가게 되였다.
그는 어렵고 복잡한 일이 제기될 때마다 자기를 그처럼 믿어주시고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시는 사령관동지의 깊은 신임에 기어이 보답하리라 마음다지면서 그이께서 주신 이 영예로운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정력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군중들속에서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침투하고 그들을 조직에 결속시킴에 있어서 언제나 각계각층 군중들의 특성에 맞게 사업할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지침으로 삼았다.
그는 17도구 토기점마을에 먼저 조국광복회 하부조직을 내오고 마을을 혁명화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미 료해한 자료에 기초하여 이
마을에서 천도교종리원장으로 있는 리로인과의 사업도 진행하였다. 그것은 이 로인이 민족적량심과 반일감정이 강할뿐만아니라 마을사람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천도교인들속에서 영향력이 컸기때문이였다.
그는 로인에게 과거 의병투쟁과 독립군운동의 실패원인을 설명해주면서
우리가 일제놈들을 쳐물리치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조국광복회의 기치밑에 힘을 합쳐 일제와 싸워야 한다는것을
해설하여주었다.
김주현동지의 수차에 걸치는 해설사업과 인내성있는 노력으로 말미암아 리로인은 조국광복회 회원으로 되였으며 그의 두 아들과 며느리까지도
조직에 망라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상강구일대에는 짧은 시일내에 조국광복회조직망들이 광범히 뿌리박게 되였다.
김주현동지는 백두산일대에 조국광복회조직들이 나온 이후에도 그 조직들을 더욱 튼튼히 꾸리고 사령관동지의 주위에
광범한 군중을 집결시키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꾸준히 진행하였다.
일제는 조국광복회를 비롯한 혁명조직들이 더욱 확대공고화되자 주민들속에 저들의 주구와 밀정들을 수많이 잠입시켜 조직을 내부로부터
파괴하려고 갖은 악랄한 책동을 다하였다. 적들의 이러한 음모를 분쇄하기 위한 단호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혁명조직들이 커다란 손실을
입을수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소부대를 인솔하고 조국광복회조직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적들이 파견한
주구들과 밀정들을 적발처단하기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리하여 장백지구에서는 김주현동지가 인솔하는 소부대에 의하여 적들이 파견한 수많은 주구들과 밀정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혹은
공개적으로 처단되였다.
악질주구인 김세보도 바로 이렇게 처단되였다.
이놈은 혜산을 본거지로 하여 장백땅을 넘나들면서 혁명조직의 비밀을 내탐하고있던 적의 악질주구였다.
지방혁명조직으로부터 김세보에 대한 자료를 통보받은 김주현동지는 즉시 대원들과 같이 그놈을 체포한 다음 이미 수많은 군중들이 모인
압록강벼랑턱에 끌어내왔다.
김주현동지는 주구놈을 꿇어앉히고 그의 반역적인 죄악상을 낱낱이 폭로하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인민의 원쑤를 단죄하는 선고는 추상과 같이 울렸다.
《일제의 악질주구 김세보는 인민앞에서 씻을수 없는 죄를 졌다. 그래서 인민의 이름으로 이놈을 사형에 처한다.
조선인민혁명군은 일본제국주의의 악질적인 주구들을 남김없이 이렇게 청산할것이다. 우리는 이미 장백현의 각 부락에 김세보와 같은
악질주구들이 적지 않게 숨어있다는것을 알고있다. 그자들은 모두 근일내에 김세보와 같이 인민의 처단을 받을것이다.》
선고가 끝나자 유격대원들이 군중들앞에서 주구놈을 처단하였다.
이 소식은 장백현일대에 잠입하고있던 적주구들과 밀정놈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으며 놈들로 하여금 이곳에서 더는 배겨내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어버리게 하였다.
김주현동지의 소부대에 의한 주구처단사업은 혁명조직들을 파괴하려던 적들의 준동을 좌절시켰을뿐만아니라 놈들을 인민들로부터 더욱 철저히
고립시켜놓았다. 그들의 추악한 죄상과 더러운 말로는 인민들로 하여금 일제의 음흉한 책동과 그들의 멸망의 불가피성을 똑똑히 알게
하였다.
인민들은
사령관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진정한 인민의 혁명군대로 더 믿게 되고 조국광복회주위에 더욱 굳게 결속되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근거지에서 유격활동을 강화하는 기간 김주현동지는 유격대와
혁명조직들간의 부단한 련계를 보장하는 사업에서 매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은 일제가 소위 《도문회담》이후 유격대와 인민들간의 련계를 끊어버리기 위하여 발광적으로 날뛰고있는 형편에서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있었다. 그는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새로운 방침과 과업들을 조국광복회의 하부조직들과 정치공작원들에게 전달하였으며
지방조직의 사업정형과 제기되는 문제들을 신속히 사령부에 보고하였다.
지방조직들은 김주현동지를 통하여 사령관동지의 의도와 방침을 제때에 전달받고 기동적으로 움직일수 있었으며 사령부는 그를 통하여
지방조직으로부터 올라오는 각종 통보자료들에 의거하여 군사활동을 전면적으로 확대할수 있었다.
이리하여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그 주변의 넓은 지대에 수많은 밀영들이 설치되고 그와 밀접히 련결된 지하혁명조직들로 강력한 혁명의
근거지가 창설되였다.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전략적방침에 의하여 창설된 새로운 유격근거지는 조선혁명의 기지로서 항일무장투쟁을 확대발전시키고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불러일으킴에 있어서 거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을 받들고 새로운 유격근거지를 창설하고 그를 공고화하기 위한 투쟁에서 그이의
참된 전사답게 자기의 모든 지혜와 정력을 남김없이 바쳤으며 조국광복에 대한 그이의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의 명령과 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충실히 집행하였으며 그 어떤 어렵고 불리한 정황에 부딪쳤을 때에도 자신의 희생적모범으로 대원들을 승리에로 능숙하게
이끄는 대담하고 유능한 군사지휘관이였다.
그는 군사지휘관으로서 보천보전투를 비롯하여 대소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였으며 항상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명백히 파악하고 그이께서
주시는 명령과 지시라면 어떤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고 이악하게 관철하였다.
1938년 1월 무송현 정안툰전투때의 일이다.
정안툰은 높이 3m나 되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여있었는데 네귀에는 포대가 있고 성벽밖으로는 너비 약 4m, 깊이 3m가량의
물홈이 둘러있었으며 성안에는 200여명의 적들이 주둔하고있었다.
전투를 앞두고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로부터 1개 소대의 력량으로 돌격조를 조직하여 은밀히 성벽을 넘어들어가서 안으로부터 성문을
열어제껴 부대의 진공로를 개척할데 대한 임무를 받았다.
김주현동지는 전부대의 전투행동을 좌우하는 이 중요한 전투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기 위하여 전투준비를 면밀하게 갖추었다. 그는 성벽을
넘는 사다리를 만드는데도 사방에 눈이 깔린것을 타산하여 나무껍질을 벗겨 희게 하고 삐꺽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름대밑에 천을 대게
하였다. 그리고 돌격조성원들에게 현지와 류사한 지형에서 은밀히 성밑에 접근하여 사다리를 놓는 방법과 감쪽같이 성벽을 넘는 동작들을
미리 련습시켰다.
이와 같이 면밀한 준비를 갖추었으나 실제 전투가 개시되였을 때에는 불의의 정황이 조성되게 되였다.
돌격조는 어둠을 리용하여 성밑에 은밀히 접근하여 사다리를 놓고 한 대원이 먼저 성벽을 넘어갔다. 두번째대원이 성벽을 넘으려고 할
때에 성안에서 자지러진 총소리가 터져나왔다. 적들의 순찰병에게 발견된것이였다. 놈들은 우리 돌격조성원들을 발견하자 맹렬한 사격을
가하여왔던것이다. 순찰병들이 사격을 시작한것과 때를 같이하여 포대에서도 기관총이 짖어대였다.
선잠에서 깨여난놈들로 하여 적병영은
쑤셔놓은 벌둥지처럼 되였다. 사태를 타개하지 않는다면 정황은 더욱 불리하게 조성될것은 물론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을 집행하지 못하게
될것이였다. 이것은 잠시도 허용될수 없는 일이였다. 김주현동지는 머리를 번쩍 들고 성벽우를 쏘아보더니 비호와 같이 성벽을 타고넘어
적탄이 비발치는 속을 뚫고 성문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시시각각으로 생명을 노리는 위급한 정황도 오직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관철하려는
그의 불같은 투지를 꺾을수는 없었다.
그는 돌격조의 선두에서 성문에로 돌진하여 삽시간에 저항하는 적보초놈들을 쏘아눕히고 성문을 열어제꼈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에 돌격명령을 내리시였다.
김주현동지는 7련대동무들과 함께 서북쪽 포대에 육박하여 순식간에 포대를 제압해버렸다. 아군의 질풍같은 돌격으로 다른 포대들도 녹아나고
병영의 적들도 대부분 살상되였다. 이리하여 정안툰전투는 불과 한시간동안에 아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이처럼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의 명령과 지시라면 물과 불속이라도 서슴없이 뛰여들었으며 정황이 아무리 위급하고 어렵다
하더라도 자기희생적모범으로 그이의 명령과 지시를 무조건 집행함으로써 대원들을 사령관동지에 대한 무한한 충실성으로 교양하였다.
김주현동지는 부대의 한 군사지휘관이였을뿐만아니라 또한 성실하고 책임적인 후방일군이기도 하였다.
그는 한때 사령관동지의 지시에 의하여 부대의 후방사업을 책임지고 사업하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그 간고하고 어려운 조건에서 식량과 피복으로부터 무기기름과 출판소의 등사용지에 이르기까지 부대생활에 필요한 일체
후방물자를 구해오고 부대의 휴식조건을 원만히 보장한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그러나 김주현동지는 《후방사업은 곧
정치사업입니다.》라고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항상 명심하고 이 어렵고도 힘든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지방인민들과 깊은 련계를 가지고 항상 예견성있게 앞일을 타산하여 여름에는 겨울식량을, 겨울에는 여름옷을 준비하면서 대원들이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피어린 투쟁을 하였다.
다음의 사실 한가지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부대의 후방사업을 예견성있게 보장하기 위하여 노력했는가를 잘 알수 있다.
보천보전투가 있은 직후의 일이였다.
김주현동지는 보천보전투에 참가하고나서 권영벽동지와 함께 곧바로 주경동으로 넘어왔다.
그것은 일제가 보천보에서 당한 심대한
군사정치적패배로 하여 혁명조직들을 탄압하고 유격대와 인민들간의 련계를 끊기 위한 발광적인 소동을 일으킬것을 타산하여 그에 대처한
부대후방공급사업을 예견성있게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주경동을 중심으로 한 부근일대의 조국광복회조직을 책임진 일군들과의 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적들의 감시를 피하기 위하여 주경동등판에서 운동회를 열기로 하였다. 이날 운동회구경을 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경동으로 모여들게 되였다.
조국광복회 지부일군들도 이날 구경군들속에 끼여서 주경동에 모였다.
김주현동지는 이날 회의에서 사령관동지의 전략적방침에 의하여 또 그이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진행된 보천보전투의 소식을 전하고 적들이
《집단부락》정책을 발광적으로 감행할수 있는 조건에서 지금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의 겨울용식량을 마련할데 대한 몇가지 대책안을 내놓았다.
그는 유격대에서 자금을 보장하여줄터이니 조국광복회 녀성회원들이 중심이 되여 장백과 혜산에 드나들면서 식량을 부지런히 사들여서 일정한
지점에 저장해두며 생산유격대원들은 농사를 잘 지어서 낟알을 일정한 지점에 저장해두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장백지구 혁명조직들에서는
일제의 발악적책동이 더욱 극심해진 조건에서도 조선인민혁명군의 겨울용식량을 마련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였다.
이처럼 김주현동지는 항상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치신대로 부대의 후방사업을 보장함에 있어서 언제나 정치사업을 진행하여
군중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의거하였으며 당시의 간고한 조건에서도 부대의 충실한 후방일군으로서 대원들을 더 잘 입히고, 더 잘 먹이고 충분히
휴식하도록 하기 위하여 항상 앞일을 타산하면서 후방사업을 계획적으로 원만히 보장하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이러한 성실하고 책임적인 사업작풍에 대하여 한두번만 치하하시지 않으셨으며 대원들도 그의 숨은
노력에 대하여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였다. 부대안에서 《김주현동무가 후방책임자로 있는 한 굶을 념려는 없다.》는 말까지 하게 된것도
사령관동지와 혁명에 대한 그의 무한한 충실성과 높은 책임성에서 흘러나온것이였다.
3
나는 이 짧은 글에서 김주현동지의
혁명가적품성의 모든 측면을 다 이야기할수는 없다. 나는 다만 여기에서 그가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 혁명가로서 위대한 수령님과 혁명앞에
충실했던 고결하고 강의한 품성과 기질에 대해서만 더 이야기하려고 한다.
혁명의 길은 간고한 시련과 역경으로 잇닿아있다.
특히 강도 일제와의 치렬한 싸움에서 지휘성원이나 대원들은 누구나 혁명을 위하여 피를 흘리고 생명까지도 바쳐야 했으며 끊임없는
기아와 추위, 질병의 위험을 참고 견디여야 하며 어렵고 복잡한 정세속에서도 사령관동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을 어김없이
관철하여야 했다.
이 간고하고 어려운 환경속에서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들은 과오를 범할수도 있는것이다. 그것은 혁명투쟁에 참가한 사람이라고 하여
처음부터 모두가 완성된 혁명가일수는 없기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투쟁의 간고한 시련과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부단히 단련하고 혁명화하는것은 혁명자체의
필연적인 요구인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어려운 때일수록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더욱 튼튼히 무장하고 그 어떤 시련에 부딪쳐도 그이의 령도밑에 조선혁명을 끝까지 수행하려는 강철같은 신념과 각오를 굳게 가지는것이다.
이것을 소유할 때에야만 사람들은 온갖 난관과 시련을 이겨내고 위대한 수령님께 더욱 충직하고 굳세고 세련된
혁명가로 될수 있는것이다.
혁명의 이 명백하고도 엄연한 진리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나는 김주현동지가 한때 혁명사업을 하는 과정에 과오를 범하였던 일과 그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육친적사랑과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자기 과오를 시정하기 위하여 얼마나 진실하고 이악하게 노력했는가 하는것을
회상하지 않을수 없다.
그것은 1937년 가을에 있은 일이였다.
이 시기 전반적조선혁명운동은 비상히 앙양되고있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국경일대에 이미 새로운 유격근거지가 창설되였고 전국각지에는
조국광복회조직망이 뿌리깊이 뻗어나가고있었다.
특히 보천보전투와 간삼봉전투에서의 빛나는 승리는 전국적범위에서 반일민족해방투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게 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로부터 국내에 깊이 들어가서 분산되여있는 혁명가들을 집결하며 혁명활동의 기지를 마련할데
대한 중대한 임무를 받고 별동대책임자로 파견되였다.
그러나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로부터 받은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였다.
그들이 국내조직의 선을 타고 중평광산근방에 이르렀을 때 지방조직으로부터 일제놈들이 광산에서 캐낸 금을 실어내간다는 통보를 받았다.
일제놈들이 활개치는 조국에 들어서서 보는것마다가 눈에 불이 일게 하는데다가 조선인민의 피땀으로 캐낸 금덩이를 놈들이 략탈해간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그들은 터져나오는 격분을 터 참아낼수 없었다. 김주현동지는 이때 사령관동지의 명령집행에 대하여 깊이 생각지 못하고
별동대성원들을 인솔하고 광산을 들이쳤다. 이것은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과는 어긋나는 행동이였으며 그들로서는 응당 하지 말아야 할
일이였다.
광산습격전투가 있은후 일제놈들은 부근일대에 제놈들의 무력을 총동원하여 삼엄한 경계망을 펼쳐놓고 별동대를 《토벌》하기 위한 발악적인
소동을 일으켰다. 적들의 준동이 심해지자 김주현동지는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부대로 되돌아오게 되였다.
그들이 돌아오자 사령부에서는 곧 긴급당회의가 소집되였다.
이날 회의에서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은 비단 김주현동지를 비롯한 별동대성원들에게 있어서뿐만아니라 우리 전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에게 심각한 교훈을 주었다.
우리가 김주현동무에게 별동대를 책임지워 국내에 파견한것은 광산이나 혹은 경찰서 몇개를 치기 위한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과 중일전쟁발발이후 조성된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국내에 분산되여있는 공산주의자들을 조직적으로 결속하고
그들에게 통일적인 행동방침을 제시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과업의 절박성은 지난 8월병사대회에서와 9월호소문에서 명백히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주현동무는 사령부가 준 임무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시키지도 않은 광산을 치다가 부상자까지 냈으며 자기의 혁명과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리하여 분산되여 우리의 조직적지도를 기다리는 국내공산주의자들에게 통일적인 투쟁방침을 제시해주는 사업이 지연되게
되였습니다.
이것은 명령에 대한 위반이며 혁명앞에서의 범죄행동입니다. 중요한 혁명임무를 금 몇근과 바꿀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우리는 김주현동무의 과오를 통하여 순간적인 격분을 억제하지 못하고 진행한 모험적이며 자유주의적인 행동이 혁명사업을 어떻게 망치게
하는가를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혁명대오내에서 이와 같이 그릇된 관점과 행동들이 그대로 용허되고 묵과된다면 우리는 자신을 더는 공산주의자라고 부를수
없게 될것입니다.
사령관동지의 이 말씀은 그 한마디한마디가 우리모두의 가슴을 찔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시던 김주현동지를 후방부책임자의 직위에서 강직시켜 작식대원으로 사업하게 하시였다.
이튿날 아침부터 김주현동지는 8련대 1중대의 작식대원으로 가마와 천막을 지고 대렬의 맨뒤에 서서 행군하게 되였다.
당시 부대는 림강계선에서 몽강방향으로 행군하고있었다. 이 행군은 원쑤들과의 치렬한 격전들로 련속된 간고한 로정이였다.
어제까지만 하여도 부대의 일체 살림살이를 도맡아 조직지휘하던 지휘관의 한사람이였던 그가 이제는 대렬의 맨뒤에서 가마와 천막을 지고
따라다니게 되고 녀성대원들이 보는 앞에서 작식대일을 하게 되니 어찌 그인들 어색한 감이 전혀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이러한 사소한 감정에 결코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강의하고도 꿋꿋하게 그리고 락관적으로 모든 시련을 뚫고나갔다.
김주현동지는 처벌을 받았다고 하여 비관하거나 락망하지 않았다. 그는 범한 과오를 대담하게 시정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자기가 맡은
새로운 임무수행에 충실하였으며 언제 어떤 환경에서도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을 받들고 그이의 의지와 신념대로 살며 행동하는 참된
혁명가가 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그는 숙영장소에 도착하면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 바쁘게 샘물터를 찾아낸다, 가마를 건다, 쌀을 씻고 나무를 해오는 등 분주히
서둘렀다. 그래서 그가 속한 중대의 대원들은 어느 중대보다 먼저 더운국과 더운밥을 먹을수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뒤거둠까지 하고나면 다른 대원들은 이미 깊이 잠들군 하였다. 그러나 그는 쉬지 않고 아침준비를 해놓기도 하고
중대안의 환자들을 찾아가서 무엇이건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바쁜중에서도 틈만 있으면 품에서 손때가 묻고 보풀이 인 소책자를 꺼내서 읽군 하였다. 그것은 사령관동지께서
친필하신 불후의 고전적로작이였다.
나의 머리속에는 지금도 숙영지의 우등불곁에서
사령관동지의 로작을 읽으며 밤깊도록
앉아있던 김주현동지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
사령관동지의 주체적인 혁명사상이 담겨진 문헌의 한구절한구절을 심장으로 새겨읽으면서 그는 자기가 범한 과오의 본질과 그 원인을
똑똑히 인식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그것을 시정하기 위한 방도를 진지하게 찾았다.
그러므로 김주현동지는 자기가 받은 책벌에 대하여 아무런 의견도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자기가 맡은 새로운 혁명초소에서 맡겨진 혁명임무를
원만히 수행하는데 온 정력을 다 기울였다. 그는 이것이 곧 자기의 과오를 시정하고 자신을 혁명적으로 수양하는 옳바른 길이라고
생각하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행군을 지휘하시기 위하여 언제나 대렬의 맨 앞사람과 뒤사람이 한눈에 안겨오는 위치에 서시군 하시였다.
특히 밤에 벼랑이나 도랑을 지날 때에는 그곳에 서시여 매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시면서 맨 뒤사람이 통과하는것을 보시고서야 그 자리를
뜨시군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언제나 맨뒤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따라오는 김주현동지를 자주 살피시였다. 그러실 때마다 그이의 눈길에는 자기 잘못을
고치기 위하여 애쓰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버이의 사랑과 자애로운 심려의 빛이 넘쳐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난날 지휘성원의 한사람으로서 큰일 작은일을 맡아하던 김주현동지가 무거운 짐을 지고 대렬의 뒤에서 수걱수걱
따라오는것을 보시며 고무하여주시였다.
어느날 부대가 숙영지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8련대를 돌아보시다가 1중대에 들리시였다. 이때 그이께서는 뜻밖의 현상을
보시게 되였다.
그때 사령부에서는 절대로 연기를 피우지 말고 식사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각 중대들에 주었다. 그러자면 잘 마른 싸리나무를 얻어야
했는데 근방에는 그런것이 없었다. 그래서 김주현동지는 멀찍한곳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밥을 하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고있었다. 그런데
중대의 일부 대원들은 이것을 뻔히 보면서도 도울념은 하지 않고 그대로 손을 털고 나앉아서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들은 지난날 반일부대에 있다가 조선인민혁명군에 갓 넘어온 대원들이여서 정치사상적으로 락후하고 혁명적으로 단련되지 못한 어린 동무들이였다.
그들은 김주현동지가 작식대원으로 내려올 때부터 그를 도와주기는 고사하고 《책벌받고 떨어진 사람》이라고 깔보며 멸시까지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중대안의 이러한 그릇된 분위기를 간파하시고 대단히 노하시여 중대장동무를 부르시였다.
그리고 대원들을 시켜 김주현동지가 하고있는 작식대일을 도와주게 하시고나서 중대간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에게는 도대체 혁명동지에 대한 의리도 혁명가적량심도 없습니까.
혁명동지를 부려먹거나 떼버리기 위해서 처벌을 주는것이 아니다. 우리가 과오를 범한 사람을 랭혹하게 비판하고 처벌주는것은 그를
떼버리자는것이 아니라 그를 사상적으로 교양하여 더 훌륭한 혁명가로 만들자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적들이 욱실거리는 이 산중에서 같이
혁명하는 동무를 떼여버리면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과오를 범했다고 떼여버리기는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를 떼여버리기전에 우리가 혁명동지 한사람을 얻기 위하여 얼마나 피어린
투쟁을 했는가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부처님》처럼 앉아만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혁명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다 과오를 범할수 있습니다. 과오를 범했다고 모조리
떼여버리기만 한다면 우리 대오에 남을 사람은 누구며, 도대체 혁명을 누가 하겠습니까.
과오를 범한 사람을 떼버리는것으로 자기가 혁명에서 제일 원칙성이 있는것처럼 자처하는것은 진실한 혁명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또 다른
구석에서 혁명을 말아먹는 하나의 종파행위입니다.
동무들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과오를 범하고 일시 낮은 직위나 대원으로 내려왔다고 하여 지옥에나 떨어진것처럼 생각하는것은
잘못입니다. 과오를 범했을 때 처벌을 적용하는것은 혁명대오내에서의 하나의 혁명규률이며 응당한 질서입니다. 혁명초소에는 좋고 나쁜곳이란
있을수 없으며 새로운 초소에는 새로운 혁명임무가 있습니다. 그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과정에 지난날 자기가 범한 과오를 대담하게 씻을줄
알아야 합니다.
애초부터 완성된 혁명가란 없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혁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혁명투쟁의 세찬 폭풍속에서 자신을 더욱 단련하고
혁명화하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혁명투쟁과정에 일시적으로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뜨거운 혁명적동지애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사회를 개조하고
자연을 개조할뿐만아니라 인간을 개조할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인간을 교양하고 개조하는것-이것은 하나의 혁명이며 가장 어렵고 복잡한
혁명투쟁입니다.
혁명의 길에 나선 혁명동지들을 도와줄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와 자연을 개조할수 있겠습니까.
진실한 혁명가가 되고 자신을 혁명화할뿐만아니라 같이 혁명투쟁을 하는 동지를 도와줄줄 알아야 하며 특히 과오를 범한 동지들을 잘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자들의 진실한 의무이며 혁명가들이 지켜야 할 혁명적의리입니다.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전달받은 대원들은 모두 머리를 수그리고 자기들의 잘못을 깊이 뉘우쳤으며 혁명동지에 대한 그이의 뜨거운 사랑과
두터운 신임에 깊이 감동되지 않을수 없었다.
부대가 다시 행군을 계속하게 되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김주현동지와 함께 걸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주현동지가 어깨에 멘 짐이 너무 큰것을
보시고 힘든 일에 혼자서 애만 쓰지 말고 동무들한테 방조를 받을줄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짐을 덜어 다른 대원들이 나누어 지게
하시였다. 그리고 천막꾸레미우에 가마가 불편하게 놓인것을 보시고 천막이 좀 어지러워져도 좋으니 천막으로 가마를 싸서 편리하게 지라고
하시였다.
또한 사령관동지께서는 대렬 맨뒤에 선 그가 적들에게 먼저 발견될수 있으니 위장을 잘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손수 나무가지를 꺾으시여 그의
등짐에 꽂아주시였으며 앞에 나무가지가 드리운것을 보시면 그것을 머리우로 들어올려 그가 쉬이 지나가도록 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어버이심정은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에 비할바없이 더 뜨거웠다.
부모들은 자식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기때문에 그 자식의 잘못을 엄하게 꾸짖는것이며 그 자식이 잘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기때문에
언제나 쓰리고 아픈 이야기도 하고 꾸지람도 하는것이다.
우리는 바로 아래일군의 잘못을 엄하게 탓하시면서도 그가 옳은 길로 나서도록 이처럼 극진히 보살피고 이끌어주시는 사령관동지의 따뜻한
손길에서 친부모의 사랑보다 비할수 없이 더 크고 위대한 사랑을 느꼈다. 그이의 그토록 한량없이 높고 깊은 사랑에 우리는 눈시울을
적시였다.
그러니 김주현동지자신의 마음이야 오죽하였겠는가.
김주현동지는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사령관동지께 더욱 충실하며 자신을 혁명적으로 수양하고 혁명화하는데 백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혁명투쟁에 나선 자신에게 있어서 어려운 시련의 시기에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더욱 굳세게 살며 싸우려는 김주현동지의
꾸준하고도 진지한 노력은 대원들을 깊이 감동시켰으며 그들에게 혁명가란 자신의 과오와 결함을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이리하여 김주현동지는 책벌받은지 6개월만에 지휘관으로 다시 임명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를 부대의 지휘간부로 제발하신 이후에도 그가 다시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항상
일깨워주고 가르쳐주시였다.
부대가 마당거우밀영에서 집중적인 동기군정학습을 진행할 때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중대정치지도원급이상의 간부들을 위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한 해설제강을 짜시고 여러날동안
몸소
시범강의를 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강의가 끝난후 많은 동무들이 토론에 참가하였는데 그때 김주현동지는 자기가 범한 과오를 사상리론적으로 분석하고 체계화하여
내놓았다.
그는 자기가 과오를 범하게 된것은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확고히 무장하고 그것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들지 못한데 있으며
혁명의 전반적견지에서보다 일시적인 흥분과 감정에 사로잡혀 행동하였기때문이라는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의 토론을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자기가 범한 과오의 본질과 그 후과의 엄중성에 대하여 사상적으로나 리론적으로 똑똑히 인식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똑똑히 알아야만
과오를 빨리 시정할수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고 혁명사업을 옳게 수행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혁명하는 사람은 누구나 할것없이 학습을 첫째가는 혁명임무로 여기고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세계관을 소유하며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들을 깊이 체득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어렵고 복잡한 시련의 시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견지할수 있으며 진실로 혁명에 충직한 공산주의자로 될수 있습니다.
김주현동지는 그후에도 언제나 조선혁명의 사령관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더욱 튼튼히 무장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으며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의지대로 살며 싸우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다 바쳤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사령관동지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을 철저히 옹호관철하였으며 조국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서
자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그이께 무한히 충직하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참된 전사로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선혁명을
끝까지 수행할 철석같은 각오와 혁명적지조를 지니고 온갖 시련과 풍파를 헤치며 굳세게 싸운 김주현동지를 언제나 잊을수 없다.
오늘 우리 인민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자신을 더욱 혁명화, 로동계급화함으로써
그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있다. 이것은 우리의
혁명력량을 튼튼히 꾸리고 천리마대고조의 기세드높이 나라의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다그치며 혁명의 전국적승리를 하루빨리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승리의 결정적인 담보이다.
혁명의 간고한 시기에 온갖 시련과 풍파를 굳세게 이겨내고 자신을 혁명적으로 수양함으로써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더욱 충직한 혁명전사로 된 김주현동지의 모범은 오늘 우리 당의 유일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과 수령께 무한히 충직하기 위하여
노력하고있는 우리의 사업과 생활에서 생동한 귀감으로 되고있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혁명투쟁의 폭풍속에서 자신을 혁명적으로 단련하고 혁명화함으로써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 무한히 충직하였던것처럼 우리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튼튼히 무장하고 그것을 자기의 뼈와 살로 만듦으로써 혁명과 건설의 모든 초소에서 수령님께 충직한 참된 혁명전사가 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하여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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