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강한 의지만 가지면 어떤 난관도 뚫고나갈수 있소

 

                                                          남 봉 수

 

15성상의 장구한 항일무장투쟁의 전행정에서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이 온갖 곤난과 시련을 이겨내며 싸워 승리할수 있은것은 오직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일제식민지통치의 암담한 나날에도 조국광복의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시였으며 오늘도 우리 인민들 승리와 영광에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항일무장투쟁시기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필승불패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그이의 육친적인 사랑과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불굴의 혁명전사로 자랐으며 영원히 죽지 않는 불사조와 같이 싸웠던것이다.

언제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그이의 혁명전사라는 높은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투쟁했기때문에 항일유격대원들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굴함없이 싸워이길수 있었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 모든 유격대원들이 다 겪은 이러한 이야기중에서 내자신이 직접 체험한 한가지 사실만을 여기에 적으려 한다.

내가 무산지구 대홍단전투에서 다리에 심한 중상을 입고 기본부대와 떨어져 올기강 고등골에서 병치료를 하기 시작한것은 1940년 2월이였다.

올기강고등골은 엇비슷한 산봉우리들이 겹겹이 늘어서있었기때문에 골짜기로 들어갈 때 표적을 해놓지 않으면 헤여나오지 못할 정도로 묘하게 생긴곳이였다.

특히 내가 있은곳은 샘물도 가까이에 있고 다른곳으로 드나들기에 편리하면서도 적《토벌대》놈들이 쉽사리 발견할수 없는 음달진쪽이였다.

이런곳에 자리를 잡은것은 일제놈들이 《토벌》하러 와도 유격대의 밀영이나 후방병원이 응당 해가 잘 들고 생활하기에 편리한 양지쪽에만 있는줄 알고 음달진쪽에는 주의를 적게 돌리기때문이였다.

이와 같이 안전한 지대에 자리를 잡고있었지만 병치료에서 제기되는 곤난은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병치료를 위한 약품으로는 동무들이 구해다준 검은 고약 몇봉지가 있었고 집게 대신으로 쓰군 하는 쇠로 만든 뜨개바늘 하나가 있었을뿐이였다.

나의 병치료를 위하여 산림대에서 넘어온 늙은이 한사람이 남아서 돌보아주고있었다.

우리는 곤난한 형편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부닥친 난관을 뚫고나가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지만 엄혹한 시련은 련이어 겹쳐들었다.

나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나아질 대신에 더 심해져갔으며 이곳으로 처음 올 때 부대에서 가져다준 언감자도 거의 떨어졌다.

나는 다리가 몹시 쑤실 때에는 솜을 뜨개바늘끝에 감아가지고 상처를 씻어내면서 아픔을 참군 하였다.

곤난이 더해갈수록 병간호를 위해 남은 늙은이의 입에서는 한숨소리가 더 잦아졌을뿐아니라 때로는 나의 부탁을 귀찮게 여기면서 《잔소리만 한다》고 짜증까지 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안타까운 심정에서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그의 행동을 심상히 여겼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는 쇠가마만 남겨놓고 내가 입던 옷과 가죽혁띠 기타 생활도구들을 몽땅 걷어가지고 도망쳐갔다.

산림대에서 생활할 때 가지고있던 낡은 사상잔재를 채 버리지 못한 이자는 난관앞에서 주저하고 동요하던 나머지 혁명의 길에서 리탈하여 변절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고말았던것이다.

변절자가 도망친 날은 바로 동무들이 찾아오기로 약속한 날을 보름 앞둔 3월 1일 새벽이였다.

나는 변절자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안고 동무들이 찾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동무들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3월이 지나 4월에 잡아들어서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사이에 다리의 상처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였을뿐만아니라 낟알구경도 못한채 마른 버섯 몇개씩 먹고 하루하루를 지냈다.

끝까지 참고 견디려고 하였으나 인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눈만 감으면 온몸이 허공에 둥둥 떠있다가 몇천길 땅속으로 잦아들어가는것 같았다.

이대로만 있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생을 혁명을 위해 바칠것을 결심하고 투쟁의 길에 나선 내가 일제놈들과의 전투마당에 다시 나가지 못하고 병마와 싸우다가 죽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하니 통분한감이 솟구쳐올라와 못견딜 지경이였다.

나는 덮고있는 모포를 꽉 끌어안았다.

이 모포로 말하면 내가 이곳으로 올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손수 덮어주신것이였다.

모포의 따뜻한 온기는 그이의 뜨거운 손길인양 나의 온몸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그려보면서 조용히 생각해보았다.

(죽어서는 안된다. 곤난앞에 굴복하고 죽는다는것이 변절자가 간 과 무엇이 다른가. 나에게는 무모하게 죽을 권리가 없으며 오직 살아서 사령관동지께서 이끄시는 혁명대오에 다시 돌아갈 의무가 있을뿐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일상적인 교양과 육친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지나온 나날들이 눈앞에 선히 안겨왔다.

내가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고 장백으로 나온것은 1936년 늦가을이였다.

우리는 그때 되골령을 새벽에 오르기 시작하여 밤이 되여서야 넘었다.

이해따라 눈이 어찌나 많이 오고 눈보라가 세찼던지 앞선 동무가 발을 옮겨놓으면 그자리는 인차 메워졌다.

그러난 우리는 이 험한 길도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게 된다는 기쁨으로 하여 힘든줄 모르고 뚫고나갔다.

우리는 무송현 동강에 와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파견하신 통신원동무를 만났다.

그는 자기가 떠날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 전달하여주었다.

동무들이 이곳까지 오자면 고생할터인데 빨리 가서 데려와야겠소.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진행될 때 나쁜놈들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하던 동무들이니 잘 돌봐주어야겠소.

그이께서는 통신원동무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후 행군해오다가 깊은 눈속에 빠졌을 때는 두팔을 쭉 벌리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지 당황하여 눈속에서 나오겠다고 허우적거리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는것까지 일러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전해듣는 우리는 한없이 가슴뜨거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특히 나에게 있어서 그 감격은 남달리 컸다.

그전까지 좌경기회주의자들과 그에 아부아첨한 종파분자들이 빚어낸 반《민생단》투쟁의 좌경적후과로 말미암아 나는 말할수 없는 많은 고초를 겪어오다가 진정한 삶의 기쁨을 간직하게 되였기때문이다.

놈들은 나에게 《민생단》이라는 터무니없는 루명을 씌우고 온갖 박해를 가했으며 지어 적통치구역으로 내보냄으로써 혁명의 길에서 떼내려고 책동하였다.

그러나 나는 혁명을 위해 몸바쳐나선 이상 놈들이 무엇이라고 떠벌이든 혁명의 길외에 다른 길로는 갈수 없다고 굳게 결심하였다. 그때 우리는 조선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드시 이 험악한 난국을 바로잡으시리라고 굳게 믿으며 시련을 이겨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앞에 조성되였던 이 난국을 타개하시고 조선혁명을 일대 앙양에로 추켜세우시였다.

항상 마음속에 그리며 우러러 존경하는 위대한 수령님을 멀지 않아 만나뵙게 된다고 생각하니 용기와 투지가 하늘을 찌를듯 솟아올랐다.

우리 일행은 간고한 행군을 성과적으로 끝내고 드디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곰의골밀영에 도착하였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틀집밖으로 나오시여 우리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면서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겠다고 위로해주시였다.

우리는 도착한 즉시로 새 군복과 신발을 받았다.

유격대에 입대한 후 처음으로 입어보는 새 군복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도착하면 군복을 인차 입히시려고 오래전에 소부대성원들에게 과업을 주시여 동복을 해결하도록 하시였던것이다.

새 군복을 입으니 금시에 날아갈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후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설명절까지 잘 쇠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을 위하여 몸바쳐 싸우리라 다시금 굳게 결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첫날부터 나는 그이의 어버이사랑과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혁명전사로 자라날수 있었다.

이 과정에 나는 진정 혁명투쟁의 길에 나선 보람을 느꼈고 혁명전사에게 있어서 참다운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진행된 보천보전투, 무산지구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였으며 그이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수행하는 보람찬 나날을 보내였다.

그러던중 나는 무산지구 대홍단전투에서 다리에 중상을 당하여 부득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와 떨어져 병치료를 하게 되였던것이다.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 그이께서는 나의 상처에 처맨 붕대를 손수 푸시고 근심어린 표정으로 상처를 유심히 살펴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몹시 다친것 같은데 빨리 치료를 해야겠소. 단단히 결심하고 치료하면 인차 회복되여 다시 대오에 돌아와서 총을 잡을수 있소. 지금부터 동무의 혁명과업은 총을 잡고 적과 싸우는것이 아니라 병과 싸우는것이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후 전령병들에게 환자가 안전한 곳까지 가자면 원기를 잃지 말아야 하기때문에 조용한 천막으로 옮긴 다음 미음을 쑤어주라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전투를 계속 지휘하시는 바쁘신가운데서도 내가 대오를 떠나는 날 아침에 또다시 나를 만나주시였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는것을 보시자 그이께서는 두손으로 나의 어깨를 받쳐 도로 눕혀주시면서 얼굴이 몹시 수척해졌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때 부상당한 상처가 몹시 아픈데다가 날씨까지 추웠기때문에 나의 몸은 매우 쇠약한 상태에 있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대원들의 심정까지 깊이 헤아려보시는 그이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의 상처를 만져보시면서 어디가 제일 아픈가, 깔고있는 솜포단은 얇지 않은가고 물어보신 후 전령병들에게 모포를 가져다가 나에게 덮어주라고 지시하시였다.

전령병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면서 어떻게 행동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그 모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쓰시는것이였기때문에 그럴수밖에 없었다.

그이께서는 전령병들이 어물거리고 서있는것을 보시자 손수 모포를 가지고 나오시여 나에게 덮어주시였다.

(밤잠도 제대로 주무시지 않고 혁명의 전략전술적문제를 구상하시다가 잠시나마 주무실 때 덮으시는 사령관동지의 모포를 어떻게 내가 덮겠는가, 그이께서 건강하신 몸으로 계셔야 우리의 보람찬 투쟁도 가능하고 혁명의 종국적승리도 이룩될수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눈물이 글썽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쓰시는 모포를 다시 전령병들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이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덮어주신 모포끝을 꽁꽁 여며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수동무, 그러면 안되오. 우리는 다시 모포를 얻을수 있지 않소. 동무가 모포를 나에게 돌려줄 생각이 있으면 치료를 끝내고 다시 부대에 돌아와서 돌려주오. 걱정말고 이 모포를 덮고 병이나 잘 치료하오.》

나는 감격에 북받쳐 흐르는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그후 부대와 떨어져 다리의 상처를 치료하는 기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일남동무를 내가 있는 곳으로 보내시면서 동수동무는 절대로 죽지 않소. 강한 의지만 가지면 어떤 난관도 뚫고나갈수 있소라고 말씀하여주시였다.

강한 의지만 가지면 어떤 난관도 뚫고나갈수 있다 .

나는 그이의 이 말씀을 몇번이고 입속으로 외워보았다.

다리의 상처가 회복되지 않는데다가 혼자 남아서 고초를 겪으면서 나약한 마음까지 먹게 되군 하던 그런 엄혹한 순간에 나를 다시 일으켜세워주신 사령관동지의 이 말씀.

여기까지 회상하다가 조용히 눈을 떴을 때 사위는 고요하고 잔잔한 물소리만이 들려왔다.

나는 그이께서 안겨주신 불굴의 혁명적투지와 필승의 신념으로 다시 일어섰다.

(어떻게 하나 살아서 사령관동지께로 가자.)

나는 기여서 풍막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쌀쌀한 바람은 불고있으나 봄기운이 완연했다.

우등불자리에서는 피나무숯덩이가 빠직빠직 소리를 내면서 마지막불찌를 튕기고있었다.

불만 살아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나는 불덩이를 신기한 보물처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재속에 묻어놓았다.

그런 다음 우선 무엇이든지 먹고 힘을 얻어야 했기때문에 먹을것을 구하러 산등성이를 기다싶이 하여 넘어섰다.

양지쪽에는 벌써 군데군데 파란 풀잎들이 돋아났다.

나는 제일 일찍 돋아나는 무수해나물을 한웅큼 뜯어가지고와서 쇠가마에 집어넣고 삶았다.

그날저녁 맹물에 나물을 삶았지만 그 물을 마시고나니 몸이 한결 풀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좀 있으면 산에 많은 풀이 돋아날것이다. 풀만 먹어도 죽지 않는다. 유격구에서도 한때 풀만 먹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나는 동무들이 찾아올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것이 아니라 빨리 몸을 회복해가지고 대오를 다시 찾아 떠날것을 결심하였다.

이때부터 나의 생활은 병과의 치렬한 투쟁속에서 흘러갔다.

날이 푸름하게 밝아오면 전날저녁에 해놓은 나물국을 먹고 뒤산에 기여올라가 뾰족뾰족 돋아나기 시작하는 무수해나물을 뜯어온 다음 깨끗한 샘물로 상처를 씻었다.

그리고는 키에 알맞춤한 나무아지에 매여놓은 줄을 쥐고 하나 둘 속으로 외우면서 발자국 떼는 련습도 하였다.

넘어졌다가는 다시 일어서고 일어섰다가는 또 넘어지면서도 계속 노력한 보람이 있어 나는 얼마후 몇발자국씩 걷게 되였다.

이러던 어느날 나는 불을 죽이지 않기 위하여 마른 나무를 구하려고 풍막을 나섰다.

그런데 먹장같은 구름이 떠도는것이 금방 한소나기 퍼부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나무하러 간 사이에  불이 죽을것 같아서 떡갈나무등걸이에 불을 달아 풍막속에 집어넣고 풍에서 300m떨어진 언덕우에 죽은 소나무가 서있는데로 올라갔다.

나무아지에 매여달려 몇번 흔들어보았으나 곁뿌리가 붙어있어 빠지지 않았다.

나는 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나꾸어챘다.

이바람에 나무아지가 뭉텅 내려앉으면서 나의 몸을 공중에 들었다놓았다. 나는 정신을 잃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낙비가 이미 멎은 때였다. 살펴보니 나의 몸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였다.

나는 끊어진 나무토막을 포승줄로 얽어매고 그 한끝을 허리에 동여맨 다음 앞으로 끌었다.

나는 샘물이 흐르는 길섶으로 해서 등판에 올랐다.

등판코숭이에 넙적바위가 있었는데 그우에서 번쩍거리는것이 보였다.

찬찬히 보니 엄청나게 큰 뱀이였다.

나는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는 이 뱀을 보는 순간 피할 생각보다 그것을 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뱀이 대가리를 쳐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지팽이 두짝을 모두어쥐고 그놈을 내리쳤다.

지팽이 한짝이 부러져나갔다.

뱀은 바위 한복판에 뾰족하게 솟아나온 돌을 중심으로 똬리를 틀고있었는데 대가리가 면바로 그 돌에 짓이겨졌다.

지팽이로 대가리를 몇번 다시 쳐서야 뱀은 완전히 죽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환성을 올렸다.

풍막에 내려오니 모든것이 비에 젖어 볼품없이 되였으나 떠날 대 풍막안에 넣어든 떡갈나무등걸이에서만은 연기가 몰몰 나고있었다.

나는 뱀껍질을 벗기고 잘게 토막을 친 다음 불에 구웠다.

그것을 한점 먹어보니 별맛이였다.

이것은 이날 나에게 있어서 끼니를 에우는 좋은 량식으로 되였다.

나는 이곳에서 있었던 그후의 이야기는 더 말하지 않고 다만 풍막에 혼자 있은지 110일째 되는 1940년 6월 10일에 있은 한가지 일을 더 적으려 한다.

이날도 나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끌고 뒤산에 올라갔다가 나무그루에 걸채여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어느때나 되였는지 아득히 먼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것 같았다.

《동수… 동수동무!》

소리나는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벌렸으나 말소리는 모기소리만큼도 안나갔다.

이러는사이에 그 소리는 점점 가까와오더니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동수동무, 이게 웬일이요!》

《야, 살았구나, 살았어.》

중대정치지도원을 비롯하여 장백에서 입대한 동무까지 모두 셋이였다.

우리는 막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를 잊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동무들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나는 동무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나때문에 얼마나 걱정하고계시였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똑똑히 알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일제놈들이 두만강접경지대와 안도현, 화룡현 등지에 수천수만의 군경놈들을 동원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의 종적을 찾으려고 악착하게 발악하고있는 삼엄한 환경속에서도 한 대원을 걱정하시여 두번씩이나 이렇게 소부대성원들을 파견하시였던것이다.

소부대동무들은 내가 있던 곳에 처음 오는 동무들이여서 갖은 애를 다 썼으나 나를 끝내 찾지 못하였었다.

그래서 세사람은 각각 지역을 맡아가지고 식량도 마련하면서 나를 찾기 시작하였다는것이다.

이런 과정에 장백에서 입대한 동무가 세 개울물이 합쳐지는곳에서 나무에 씌여있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동수는 살아있다.》는 글을 발견하게 되였다.

이 글은 내가 걸음련습을 할 때 동무들이 찾아오면 보라고 쓴것이였다.

장백에서 입대한 동무는 내가 살아있다는것을 알고 계속 찾기 시작하여 결국 풍막까지 왔었다.

그는 풍막에 내가 없음을 알고 그 주변을 찾아다니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나를 발견하였던것이다.

나는 동무들을 만난 날 저녁 그들이 가지고 온 식량으로 오래간만에 배불리 먹고 그 사이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이튿날 새벽에 풍막을 떠났다.

110일간이나 내가 지내던 풍막, 샘물터, 그옆에 변함없이 서있는 한그루의 구름나무 이 모든것들이 정답게 나를 바래주는듯 했다.

나는 다리가 채 낫지 못하였으나 동무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목적지를 향하여 힘있게 걸어나갔다.

항일무장투쟁의 전과정에 걸쳐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유격대원들을 위대한 혁명사상과 필승의 신념으로 교양하시여 우리들을 어떠한 곤난도 뚫고나가는 혁명전사로 키워주시였다.

나는 지금도 어렵고 복잡한 일이 제기될 때마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면서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군 한다.

오늘 우리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앞에는 조선혁명의 전국적승리를 달성하여야 할 복잡하고 어려운 혁명과업이 남아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간고한 시련이 우리앞에 가로놓여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를 받으며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따라배우면서 전진하는 우리 인민은 필승불패할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그이께 무한히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는것보다 더 큰 영광과 행복은 없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외에는 그 어떤 사상도 모르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워야 한다.

오늘 미제침략자들과 남조선괴뢰도당들은 긴장상태를 더욱 조성하면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려고 미쳐날뛰고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 우리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고 사회주의건설에서 계속 혁명적대고조를 일으킴으로써 조선혁명의 전국적승리를 달성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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