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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관동지의 육친적인 보살피심속에서
강 위 룡
장구하고 간고하였던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는 우리 유격대원들을 극진히 아끼고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높은 은덕에 대하여 가슴뜨겁게 느끼군 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끄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우리 유격대원들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고 보살펴주시였으며 참된 혁명가로 키워주시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어버이사랑과 지극한 보살피심속에서 그이의 혁명전사로 자라난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자신이 직접 체험한 잊을수 없는 사실을 더듬어보면서 여기에 몇가지 이야기만을 적으려 한다.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주력부대가 1939년 5월 무산지구 대홍단전투를 승리적으로 진행한후 그해 늦은가을까지 백두산동북부지대인 화룡현일대에서 활동하고있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장백지구의 조국광복회조직들과 국내의 혁명조직들에 대한 일제의 파괴책동이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는 조건에서 백두산동북부지대에로 유격활동의 중심을 옮기시고 항상 주도권을 튼튼히 틀어쥐고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령활한 대부대선회작전계획을 세우시였던것이다. 이때에 나는 사령부 기관총소대에 있으면서 그이를 직접 호위하는 무겁고도 영예로운 임무를 수행하고있었다. 그런데 나에게는 뜻밖의 일이 생겼다. 우리가 올기강 수림속에 있을 때인 1939년 초가을 어느날 8련대통신원이 고장난 싸창을 들고와서 수리해달라고 나에게 부탁하는것이였다. 나는 이전에 병기창에 있으면서 무기를 수리해본 경험이 있다는데로부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약통실에 탄알이 있는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무기를 고치다가 그만 손에 부상을 당하였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상처의 아픔보다도 조선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는 사령관동지께 이런 일로 하여 걱정을 끼치게 되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제 사령관동지께 무엇이라고 말씀을 올리겠는가?) 나는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께서 계시는 천막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손을 찬찬히 살펴보시면서 무슨 약으로 어떻게 치료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물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일제놈들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도 분한 일인데 무기를 수리하다가 손을 다쳤으니 얼마나 창피한 일이요. 동무가 그런 사고를 저질렀으니 몸이 아픈것은 물론이고 그 손을 치료할 때까지 혁명사업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되니 그만큼 혁명앞에 죄를 짓는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소. 혁명을 오래동안 했다거나 경험이 있다고 하여 경솔하게 행동한다면 실패를 면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알고 일거일동에서 심중한 태도를 취해야 하오. 나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서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일상적인 교양과 극진한 보살피심을 받으면서 자란 자신이 그이의 높은 신임과 배려에 보답하지 못하고 오히려 근심을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아팠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마음을 꿰뚫고계신듯 혁명가는 범한 과오를 대담하게 고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를 고무하여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천천히 일어서시더니 천막구석쪽에 걸려있는 새끼양가죽으로 만든 덧저고리를 벗기시는것이였다. 그것은 당시 보통대원들처럼 솜을 넣고 만든 수수한 외투를 입고계시는 사령관동지께 드리려고 대원들이 경제모연공작과정에 특별히 마련한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덧저고리를 나의 어깨에 씌워주시면서 《날씨가 몹시 쌀쌀해지기 시작하였는데 이걸 입소.》라고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추위나 세찬 눈보라속도 가리지 않으시고 조선혁명을 령도하시기에 분망하신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념려하여 마련해드린 그것을 내가 어찌 받을수 있으랴. 《저는 일없습니다.》 이렇게 사양하자 그이께서는 상처를 입었을 때에는 몸을 덥게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굳이 나에게 입혀주시는것이였다. 대원들을 이처럼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에 나는 감격하여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하였다. 좋은 옷이 생기거나 색다른 음식을 마련했을 때 먼저 자식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그이께서는 언제나 자신보다도 대원들을 먼저 생각하시고 육친적으로 보살피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 입혀주신 덧저고리의 따뜻한 온기를 느끼며 나는 그이의 두터운 사랑과 신임에 꼭 보답하리라 굳게 결의하였다. 그후 사령관동지의 극진한 보살피심과 동지들의 방조로 나의 상처는 차츰 나아져갔으나 아직도 오른손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나 나는 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그이의 보살피심만 받으면서 나날을 보낼수는 없었다. 여러가지로 궁리하던 나의 머리속에는 재봉대에 가서 일을 도와줄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올기강밀림속에 자리잡고있은 재봉대에서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고 긴급하게 필요되는 동복을 만들고있었던것이다. 유격대에 입대하여 옷을 재단하는 일을 해본 경험도 있기때문에 나는 그곳에 가서 능히 일할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천막안으로 들어갔을 때 그이께서는 마주나오시여 나에게 상처는 어떠하며 음식맛은 제대로 나는가고 친절하게 물으시였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있으니 음식맛도 나지 않습니다. 재봉대의 일이라도 맡겨주십시오.》 나는 마음속에 품고있던 생각을 그대로 말씀올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웃으시면서 한참이나 나의 상처를 살펴보시다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강동무성미에 그렇게 생각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요. 그러지 않아도 나는 동무에게 그 중요한 임무를 주려고 생각했소. 지금 재봉대동무들이 동복을 만들고있는데 재단이 딸려 몹시 힘들어한다고 하오. 동복을 만드는 그 일은 우리 부대의 동기활동을 보장함에 있어서 긴급하게 제기되는 혁명과업이요. 그렇기때문에 재단기술을 가진 동무가 가서 도와주어야겠소. 아픈 손을 가지고 직접 재단하느라고 하지 말고 그 동무들에게 가르쳐주기만 하면 되오. 새 임무를 받고 기뻐하는 나를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아픈 손을 가지고 직접 재단하다가 상처가 더해지면 《책벌》로서 소환시키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서는 나에게 지시한대로 하겠느냐고 다짐을 받으신 다음에야 재봉대에 가서 일하라고 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천막에서 나오는 길로 나는 재봉대가 있는곳을 향하여 떠났다. 재봉대는 사령부가 있는 골짜기에서 퍼그나 올라가서야 있었다. 큼직하게 쳐놓은 천막안에는 천들과 솜퉁구리들이 가득 쌓여있었으며 최희숙동무를 비롯한 10여명의 녀대원들이 일하고있었다. 광목천을 염색하기 위하여 도토리나무와 황경피나무껍질을 벗겨다가 초롱에 끓이는 동무들, 염색한 천을 해볕에 말리우는 동무들, 천을 재단해서 동복을 만드는 동무들, 말그대로 이곳은 전투장이나 다름없었다. 사령관동지의 지시를 받고 내가 재봉대일을 도우러왔다고 말하자 녀대원들은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도착하자바람으로 일에 달라붙었다. 오른손을 쓰지 못하니 재단하는 방법을 다른 동무에게 말해주면 그가 가위로 베여내군 하였다. 내가 재봉대에 도착한 이튿날이였다. 한낮쯤 되여 사령관동지의 전령병인 정덕동무와 작식대에 있던 한 동무가 찾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정성스레 말리운 20여마리의 산천어가 쥐여져있었다. (웬일인가? 무슨 정황이라도 생긴것이 아닌가?) 나의 눈치를 알아차린 정덕동무는 히죽이 웃으면서 전후사연을 이야기하는것이였다. …아침식사때였다고 한다. 작식대동무들이 오래간만에 사령관동지께 대접하려고 만두국을 정히 끓여 들여갔었다. 전령병들과 함께 식사하시던 그이께서는 《강동무가 이런 만두국을 좋아하는데 이 자리에 없구만.》라고 말씀하시였다는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식사하시고나서 잠시 무엇을 생각하시더니 정덕동무를 부르시여 작식대의 한 동무와 함께 재봉대밀영에 가서 방조해주라고 지시하시면서 산천어를 들려주시였다고 한다. … 나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이 뜨거워남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높이 추켜드신 항일무장투쟁의 불멸의 기치를 따라 혁명의 길에 나선 첫날부터 그이의 따뜻한 보살피심을 받아온 나였지만 그 어렵고 간고한 나날에도 한 대원의 식성까지 아시고 그에 맞는 음식을 먹이려고 그토록 심려하시는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사랑앞에서 어찌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수 있겠는가. 정덕동무가 가져온 산천어는 사령관동지께서 손수 잡으신것이였다. 사령부의 행처를 찾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는 일제놈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고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불러일으키실 위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면서 낚으신 산천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산천어를 잡아오시면 작식대동무들이 그이께 대접하려고 정성스럽게 해볕에 말리우군 하였다. 그런데 자신께서는 그것을 하나도 들지 않으시고 우리들에게 보내주시였던것이다. 우리는 산천어를 받아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잠시후 나는 정덕동무만은 도로 사령부로 보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령관동지를 호위해야 할 전령병이 우리를 방조해주기 위하여 와있다는것을 생각하니 정덕동무를 잠시라도 지체시킬수 없었다. 나는 정덕동무에게 내 속심을 말하였다. 《정덕동무, 동무만은 도로 사령부로 가야 하겠소.》 《안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내가 다시 가면 몹시 나무라실겁니다. 우리가 올 때 그이께서 얼마나 간곡히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정덕동무는 오히려 나를 설복하려 하였다. 나는 다시 정덕동무를 어떻게 하나 잘 설득시키려고 애썼다. 나는 그에게 《지금 적들이 병력을 총동원해가지고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혁명의 사령부를 찾아내려고 미친개처럼 싸다니는데 사령관동지를 호위해야 할 동무가 여기에 와있어서야 되겠는가.》고 하면서 어서 돌아가 그이께서 이곳 일을 걱정하시지 않게 잘 말씀을 올려달라고 간청하다싶이했다. 그리고 그의 소지품이 들어있는 배낭까지 지워주면서 돌아가라고 재촉하자 정덕동무는 사령관동지의 심정을 왜 모르느냐고 나무라면서 안타까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나도 강동무의 마음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우리는 아직도 사령관동지의 깊은 심중을 다 헤아리지 못하고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우리가 여기로 올 때 어떻게 말씀하시였는지 아십니까? 그이께서는 재봉대에 보낸 우리들을 도로 보내려고 할터인데 절대로 돌아와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특히 강동무는 손을 잘 쓰지 못하니 방조를 받아야 할 일이 얼마나 많겠느냐고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강동무는 세수하는것도 다른 사람이 시켜줘야 할 처지인데 녀성동무들의 방조를 받자면 다소 말하기 힘든것도 있을것이다, 그러니 동무가 그에게 사소한 불편도 없게 잘 방조해주어야겠다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이께서 하신 말씀을 어기고 내가 어떻게 도로 갈수 있겠습니까?》 나는 더는 다른 말을 할수가 없었다. 사령관동지의 깊고깊은 사랑과 배려에 목이 메여 그저 《사령관동지!…》하고 입속으로 몆번이고 외웠을뿐이였다. 나는 이날밤 오래도록 잠들수가 없었다. 지난날 좌경기회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에 의하여 반《민생단》투쟁이 좌경적으로 벌어진 후과로 말미암아 《민생단원》이라는 루명을 쓰고 참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던 자신이 사령관동지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다시 투쟁의 길에 떳떳이 나서던 일,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밀영에 도착하여 그이께서 주신 새 군복을 갈아입던 일, 그후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자라나 보천보전투와 무산지구 대홍단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던 일들이 눈앞에 삼삼히 떠올랐다. 나는 더 누워있을수 없어 자리를 차고 일어나서 동무들이 깨여날세라 조심스럽게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벌써 재봉대를 책임지고있던 최희숙동무를 비롯한 몇동무들이 나와 일하고있었다. 나도 그 동무들에게 뒤질세라 가위를 잡고 일에 달라붙었다. 왼손으로 재단하다가도 마음먹었던대로 되지 않으면 오른손에 부상을 당하였다는것도 잊어버리고 가위를 잡군 하였다. 우리는 오직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혁명과업을 기어코 제기일에 완수함으로써 그이의 높은 신임과 따뜻한 배려에 보답하겠다는 일념으로 피곤과 애로를 극복하여나갔다. 이러던 어느날 경애하는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우리를 찾아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우리가 만들어놓은 동복을 살펴보시면서 잘 만들었다고 치하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수척해진 재봉대원들의 얼굴을 걱정스러이 바라보시면서 일이란 서둔다고 빨리 되는것도 아니므로 력량을 잘 타산하여 구체적으로 짜고들어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녀성동무들의 손끝이 바늘에 찔리여 피가 진것을 보시고는 골무를 만들어주라는것까지 가르쳐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손을 보시자 안색을 흐리시였다. 나는 그때 아픈 손도 생각하지 않고 직접 재단했기때문에 손등이 부어있었다. 나는 그이의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상처가 아프지 않다고 말씀을 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왜 아프지 않겠소. 눈앞에 제기된 일만 생각하고 상처입은 손을 무리하게 쓰면 영영 잘못될수도 있소. 그때에는 무엇으로 적과 싸우겠소?》라고 나무라시면서 인차 치료해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여러 시간동안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동복을 만드는데서 제기되는 난관들을 극복할 구체적인 방도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그이께서 다녀가신 다음날 재봉대밀영에는 산천어를 비롯한 여러가지 부식물과 약품이 도착하였다. 또다시 그이의 따뜻한 사랑을 받아안은 우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듯 했다. 동복을 만드는 전투적과업은 낮과 밤을 이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다. 재봉대동무들은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여 얼굴이 몹시 부었으나 누구 하나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들은 끝내 600여벌의 동복을 단 20일동안에 만듦으로써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명령을 영예롭게 집행하였을뿐만아니라 그이의 따뜻한 사랑과 극진한 배려에 조금이나마 보답할수 있었던것이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생사를 가르는 어렵고 위험한 고비는 언제나 자신께서 몸소 맡아나서시면서 대원들에게는 사소한 불편이라도 있을세라 심려하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오늘도 우리 인민들에게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여주시기 위하여 밤잠을 잊으시고 어버이심정으로 인민들의 살림살이를 따뜻이 보살피고계신다. 실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고있는 우리 조선인민들처럼 행복한 인민은 이 세상에 없다. 우리는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장구하고 고난에 찬 혁명투쟁과정에서 이것을 심장으로 체험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고있는 긍지와 자부심, 무한한 행복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그이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며 그이의 두리에 더욱 굳게 단결하여 조선혁명의 전국적승리를 위하여 전진, 전진, 투쟁 또 전진하는 기세로 힘차게 싸워나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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