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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인민의 정권 – 인민혁명정부를 세우시여
전 창 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애국적인민들의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빛나는 혁명전통을 이어받은 정권이며 우리 당의 령도밑에 우리 인민이 내외의 원쑤들을 반대하는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쟁취한 혁명의 위대한 전취물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교시를 가슴깊이 되새길 때마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그이께서 조선혁명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고 몸소 우리 인민의 첫 혁명적인 인민정권을 세우시던 일을 감회깊이 회상하게 된다. 그때 유격근거지-해방지구에 진정한 인민의 혁명정권을 세우는것은 유격근거지를 공고발전시키고 항일무장투쟁을 확대강화함에 있어서나 조선인민의 전반적인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앙양시킴에 있어서 가장 절박하게 제기되는 과업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청유격근거지에 오시기 전까지만 하여도 이 문제는 옳게 해결되지 못하였으며 그곳에는 아직 혁명적질서와 생활기풍이 확립되지 못하였었다. 이 시기는 두만강연안일대에 방금 유격근거지- 해방지구가 창설되였던 시기로서 일제의 유격근거지에 대한 《토벌》과 동만일대에서의 야수적인 학살만행은 전례없이 악랄하였다. 당시 나는 왕청유격근거지의 리수구골짜기에서 혁명적출판물을 발간하는 일을 맡아보고있었는데 왕청에서만 하더라도 영창동, 백초구, 석현 등지를 비롯한 각지에서 일제의 대중적인 학살만행이 날마다 벌어지고있었다. 악독한 일제놈들에게 부모처자를 학살당하고 놈들의 방화로 말미암아 집을 잃고 한지에 나앉게 된 수많은 사람들, 멀리 조선에서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때문에 더는 살길이 없어 정든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땅으로 건너온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날마다 유격근거지로 찾아들어왔다. 이러한 형편은 하루빨리 유격근거지에 진정한 혁명정권을 세울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정권이 있음으로써만 유격근거지에서 새로운 혁명적인 질서를 세우고 유격근거지에 모여온 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그들을 조직동원하여 적들의 공격과 반항을 물리치면서 혁명을 강력히 전진시켜나아갈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유격근거지에 조직된 혁명조직과 군중단체에 기여들었던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인하여 유격근거지안에서는 도리여 혼란과 무질서가 조성되고 혁명군중과 리탈하여 혁명력량을 분렬시키는 엄중한 사태가 벌어지고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소행이 혁명에 해롭다는것을 어느 정도 느끼고있었으나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왕청으로 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맞이한 우리들의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왕청유격근거지에 오신 그이께서는 이곳의 실정을 깊이 료해하시고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 기초우에서 우선 정권문제의 옳은 해결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당시 혁명의 성격과 당면한 임무, 해결방도 등을 옳게 보지 못하고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사로잡혀 좌경적오유를 범한 좌경기회주의자들의 과오를 비판하시고 유격근거지에 진정한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혁명의 객관적요구와 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세기적숙망을 가장 정확히 반영한 경애하는 수령님의 이 방침은 그이의 위대한 주체사상의 빛나는 구현이였다. 그이께서는 조선혁명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며 조선혁명의 당면임무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전복하고 민족해방을 실현하는데 있다는것을 밝히시고 이로부터 앞으로 세워야 할 정권은 그에 알맞게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하고 모든 광범한 반일력량을 망라하는 진정한 인민의 혁명정권으로 되여야 한다는것을 명철하게 밝히시였다. 그리고 이 정권은 로동자, 농민뿐아니라 반일적인 사상감정을 가진 모든 계층의 리해관계를 정확히 반영한 민주주의적시책을 실시해야 한다는것을 가르쳐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권문제의 해결에서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모대기고있던 우리들에게 진로를 환히 열어주시였을뿐아니라 도처에서 책동하는 좌경기회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을 사상리론적으로 분쇄하고 광범한 인민들속에 옳은 방침을 침투시키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1933년 봄, 인민혁명정부를 세우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회의가 왕청에서 소집되였다. 나는 직접 이 회의에 참가하지는 못하였지만 다른 동무들을 통하여 이 회의에 대한 소식을 자세히 들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쏘베트로선을 고집하는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오유를 분석비판하시고 그들의 책동을 완전히 분쇄하여버리시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은 유격근거지- 해방지구가 창설되자 당시 혁명의 실정에 맞지도 않는 다른 나라의 경험을 기계적으로 본따서 그대로 실천에 옮기려고 하였다. 사대주의와 교조주의에 물젖은 이들은 《쏘베트정권》형태의 구정부들을 각 곳에 세워가지고 당장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떠들어대였다. 이들은 사회주의적시책을 실시한다고 하면서 조선혁명의 성격과 주객관적조건들은 타산하지도 않고 일체 사적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지어는 중농의 토지까지도 몰수하는 극좌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고 감행하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이러한 좌경적망동으로 하여 일제를 증오하며 놈들과 싸우려고 결심하고 근거지에 찾아왔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저으기 실망하게 되였고 혁명적영향을 주고 꾸준히 교양만 한다면 혁명의 편에 능히 쟁취할수 있는 적지 않은 군중들이 근거지에서 떠나가는 현상까지 나타나게 되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의 망동은 이것뿐이 아니였다. 그들은 주민지대를 인위적으로 《적색구역》과 《백색구역》으로 갈라놓고 유격구역은 《적색구역》이고 일제통치구역은 《백색구역》이라고 하면서 적통치구역안의 마을들은 《주구촌》이라고 부르며 이 지역에 살고있는 군중들을 근거없이 일률적으로 배척하는 극좌적인 행동을 감행하였다. 한편 그들은 반유격구역인민들에 대해서는 무턱대고 《량면파》라고 하면서 의심하고 따돌리였다. 좌경기회주의자들은 이렇게 해서 혁명을 지지하는 사람이나 동정심을 가지고 대하던 사람들이 혁명의 길에서 외면하거나 멀어져가게 하였으며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혁명을 하겠다고 따라오는 사람들까지도 따돌리면서 마치 자기들만이 《혁명성》이 강한것처럼 행세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과 그 해독성을 철저히 폭로비판하시고 진정한 인민의 정권인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한다는것을 밝히시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전개하여 모든 반일력량을 묶어세울것을 강조하시면서 혁명의 성격과 당면한 임무에 비추어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하고 반일을 지향하는 모든 계급과 계층을 참가시키는 인민혁명정부를 세워야 하며 그길만이 혁명을 객관적요구에 알맞게 정확히 발전시키는 유일하게 옳은 길임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또한 그이께서는 인민혁명정부앞에 나서는 기본과업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겠는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의 세기적숙망인 토지문제의 정확한 해결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토지개혁이라 하여 일률적으로 토지를 몰수할것이 아니라 일제와 친일주구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철저하게 혁명적인 원칙을 제시하시였다. 자본주의소유에 대해서도 역시 철저한 혁명적원칙에서 일제와 예속자본가들의 소유만을 몰수할것을 그이께서는 규정하시였다. 이것은 반일력량을 최대한으로 결속하여 주되는 적인 일제의 타도에 힘을 집중할수 있게 하는 가장 현명한 조치였다. 또한 이것은 일제가 일부 중소지주와 민족자본가들에 대하여서까지 학살과 략탈정책을 일삼고있는것만큼 그들에게도 반일감정이 있다는 실정과 유격근거지안의 주민구성의 특수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취하신 가장 정당한 방침이였다. 다음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인민혁명정부가 수행해야 할 제반 과업들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잔재와 봉건잔재를 철저히 청산하고 인민들의 민주주의적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며 8시간로동제와 남녀평등권, 민주주의적이며 선진적인 교육제도의 실시 등 실로 우리 인민의 력사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력사적인 개혁들을 실시할 과업을 명시하시였다. 특히 그이께서는 초《혁명적》인 구호를 들고 군중을 멸시하며 자기의 《혁명리론》과 《총명》을 앞세우려는 좌경기회주의자들의 그릇된 행동을 신랄히 비판하시면서 우리가 바라는 인민혁명정부는 몇몇 사람들의 무모한 주장이나 《총명》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라 광범한 인민들의 의사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그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가밑에서만 정권을 수립할수 있고 공고화할수 있다는것을 강조하시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모든 혁명가들은 정권의 주인인 인민대중속에 깊이 들어가야 하며 그들속에서 정치사업을 강화하는것을 언제나 잊어서는 안된다고 그이께서는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비로소 유격근거지에 어떤 정권을 세워햐 하며 그것이 혁명에 어떻게 리로운가에 대해서 똑똑히 알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언제 어떠한 정황속에서도 조선혁명의 리익을 잊지 말아야 하며 조선혁명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주체적립장을 견지해야 한다는것을 깊이 깨닫게 되였다. 이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유격근거지안에 진정한 인민의 혁명정권을 세우시기 위하여 매우 분망한 나날들을 보내시였다. 그러시면서도 그이께서는 유격대는 물론 유격근거지의 혁명조직들을 지도하시면서 정력적으로 정치사업을 전개하시였다. 그이께서 그해 여름에 몸소 자그마한 대방자부락에까지 찾아가시여 당회의를 몸소 지도하시면서 혁명가들의 눈을 틔어주신것은 그 하나의 실례이다. 이 회의는 대방자부락의 복판에 있는 나무밑에서 진행되였는데 여기에는 10여명의 당원들과 혁명조직의 책임자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회의에서 쏘베트로선의 좌경적오유와 광범한 반일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할 필요성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깨우쳐주시였다. 이때 그이께서 얼마나 알기 쉽게 말씀하시였던지 이 회의에 참가했던 쏘베트 회장과 서기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자리에서 눈앞이 환해진다고 하면서 《쏘베트》를 내온것이 혁명에 얼마나 해로왔는가를 뼈에 사무치게 느끼게 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밑에 유격근거지- 해방지구에는 쏘베트대신에 인민혁명정부가 수립되였다. 왕청유격근거지에서는 가야허에 처음으로 인민혁명정부 구위원회가 창설되였다. 정부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사수평마을에서 진행되였다. 난생처음으로 자기의 주권을 가지게 되였고 여기에서 일할 일군들을 자기의 손으로 선출하게 된 근거지인민들의 감격과 기쁨은 말할수 없이 컸다. 이 회의에 참석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쏘베트를 왜 인민혁명정부로 개편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알기 쉽게 해설하여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혁명정부는 어느 임금이 다스리는 정권이 아니라 인민이 정권의 주인으로서 인민자신이 관리운영하는 정권입니다. 이 정부는 지주나 자본가나 어느 개인의 리익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 인민의 권리와 자유를 옹호하고 조국의 독립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인민의 정권입니다. 이 정권은 농민들에게 땅을 주고 녀자들에게 남자와 꼭같은 권리를 주며 누구나 배우고 일하며 누구나 다 잘살수 있게 하는 정권입니다. …인민혁명정부는 로동자, 농민, 병사 대중은 물론, 청년학생, 지식인, 량심적인 자본가, 종교인을 비롯한 광범한 반일력량을 망라하고 그들의 리익을 대표하는 가장 인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새형의 정권입니다.》 유격근거지에 수립된 인민혁명정부는 수천년의 력사에서 조선인민이 비로소 처음으로 가지게 된 진정한 인민의 주권이였으며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마련해준 혁명정권이였다. 인민혁명정부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실현하는 제반 민주주의적시책들을 련이어 실시하였다. 16살이상 남녀공민들에게는 선거할 권리와 선거받을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극소수의 반동지주와 예속자본가, 친일주구, 민족반역자들에게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였다. 그들에게서는 모든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박탈하였을뿐아니라 그들의 경제적지반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한편 유격근거지에 기여드는 반혁명분자들과 반동들의 반항과 암해책동을 철저히 분쇄하고 진압하였다. 인민혁명정부는 일제와 매국적인 친일지주,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토지가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주었고 8시간로동제와 최저임금제의 실시, 가렴잡세의 페지, 일제와 그 주구들의 채권의 무효를 선포하였다. 남녀평등권과 무료의무교육제의 실시, 군사 및 생산과 결부된 인민교육제의 확립, 인민생활안정을 위한 대책 등 실로 인민혁명정부의 모든 시책을 통하여 유격근거지인민들은 난생 처음으로 정치적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마음껏 일하고 마음껏 배울수 있는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세우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무장하고 그이의 혁명적사업방법과 인민적사업작풍을 체득한 인민혁명정부 일군들의 노력에 의하여 인민혁명정부는 자기의 사명과 경제조직자적, 문화교양자적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날마다 악랄한 일제의 《토벌》을 겪게 되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인민혁명정부는 유격근거지인민들을 반일자위대를 비롯한 반군사조직에 망라시켜 전인민적방위체계를 형성하여 적을 격파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고수하기 위한 투쟁에로 줄기차게 조직동원하였다. 또한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기 위한 영농사업을 비롯하여 물자 류통과 공급사업을 조직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제반대책을 세우는 한편 병기창과 재봉소 등을 꾸려 유격대와 근거지인민들이 간고한 환경속에서도 서로 돕고 이끌며 한덩어리가 되여 원쑤와 싸울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유격근거지에서는 필승의 신념과 혁명적락관주의정신이 넘치는 혁명적인 연극과 가요, 무용 등 군중문화사업이 활발히 진행되였고 수많은 혁명적출판물들이 발간되여 원쑤를 무찌르는 강력한 사상적무기로, 혁명화를 위한 귀중한 사상적량식으로 되였다. 당시에 간행된 많은 출판물들은 유격근거지는 물론 적통치구역안에까지도 배포되였다. 인민혁명정부를 세우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근거지인민들의 생활을 보살피시고 뜨거운 사랑을 돌려주시며 진정한 인민의 정권이 인민들의 생활을 어떻게 책임지고 조직지도하며 인민들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가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시였다. 그 간고하고도 처절한 싸움의 나날에 유격근거지인민들을 위하여 베풀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넓고도 깊은 사랑과 은정에 대하여서는 말과 글로 이루 다 표현할수 없다. 이미 회상기들을 통하여 알려진바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후방깊이 들어가 싸우시는 간고한 속에서 마련하신 사과를 두고서도 조국의 사과맛을 모르는 근거지의 어린이들을 생각하시여 보내주시였고 추운 겨울에 자신은 엷은 옷을 입고 지내시면서도 그이께 드리려고 지성담아 지은 솜옷과 신발마저 근거지의 늙은이들에게 돌려주군 하시였다. 근거지인민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보고 가슴아파하시던 그이께서는 삼차구의 적들을 치고 수많은 천들을 로획하여 근거지인민들에게 옷을 한벌씩 해입히도록 배려하여주시였으며 멀리 적통치구역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천을 보내주시였다. 근거지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그이께서 뜨거운 어버이사랑으로 보살펴주신 그 수많은 사실들가운데서 나는 다만 뒤틀라즈인민들에 대한 깊은 배려에 대해서만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제1차 북만원정을 끝내고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뒤틀라즈에 있는 김관세로인의 집에 계시면서 원정도중에 만난 병환을 치료하시였다. 김로인은 원래 함북에 살다가 땅을 떼우고 두만강을 건너온 가난한 농민으로서 생경리에서 소작도 부치고 물고기잡이도 하면서 근근히 살아오다가 유격근거지로 들어온 로인이였다. 뒤틀라즈의 김로인의 집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병환속에 계시면서도 김로인을 비롯한 근처의 인민들과 자주 담화를 하시며 그곳 농민들의 생활형편과 그들의 요구를 낱낱이 료해하시였다. 오래전부터 흠모해오던 그이를 한자리에 모시게 된 그곳 인민들의 기쁨은 한량없이 컸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의 가혹한 착취와 억압속에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수도 없는 모진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살아온 그들은 유격근거지에서의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이 바로 누구에 의해서 이루어질수 있었는가를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고마운 세상에서 살수 있게 하여주신 김일성장군님의 높은 은덕, 특히는 조상때부터 목숨처럼 중하게 여기며 피타게 바라던 땅을 무상으로 나누어주신데 대하여 그이께 거듭 뜨거운 감사를 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도 많은 조선농민들이 일제와 지주, 자본가놈들에게 땅을 빼앗기고 가난과 학대속에서 신음하고있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헐벗고 굶주리고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습니다. 우리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이 땅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땀과 피눈물을 흘리였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땅에 대한 그들의 맺히고 맺힌 소원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일제를 우리 강토에서 몰아내고 온 조선땅우에 착취와 억압이 없는 인민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인민의 정부가 서고 모든 인민이 새생활의 길에 들어서게 될 때에 우리의 정부는 무엇보다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 농민들의 숙원을 먼저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날을 반드시 오고야말것입니다. 장차 해방된 조국에서는 농민이 땅의 주인으로 될것이며 대를 이어 시달려오던 가난과 몽매를 털어버리고 새 사회의 농촌에서 살게 될것이라는 그이의 말씀을 들은 김로인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그이께서 얼마나 인민의 념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시며 조국과 민족의 먼 앞날을 내다보고계시는가를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다고 두고두고 이야기하였다. 이때 김로인일가는 위대한 수령님께 약 한첩 제대로 마련하여드리지 못하여 여간 안타까와하지 않았다. 김로인일가는 조선혁명과 모든 조선사람을 위해서 가장 존귀하신 그이의 건강을 하루속히 회복시킬수 있도록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하지만 워낙 가난속에서 살아온데다가 유격근거지의 깊은 산골짜기에 있다나니 고작해야 파뿌리에 메밀싸래기를 섞어서 달인 미음을 드리는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병환보다 김로인의 집안형편에 대하여 더 걱정하시였다. 김로인의 안해는 원래 몸이 불편하였다. 언젠가 산길에서 선불에 맞은 곰에게 핥이여 한팔이 상하였고 얼굴에도 심한 상처를 입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곰에게 다치고도 이렇다할 치료도 받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여간만 가슴아파하지 않으시였다.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에게 아무리 드리고싶어도 약 한첩 드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다 일제놈들이 우리 나라를 빼앗았기때문입니다. 어머니, 우리가 자기 나라를 다시 찾을 그날까지 꼭 오래오래 사십시오. 그때에는 아무리 병들어도 근심걱정을 모르는 그런 세상이 올것입니다.》 김로인의 집에 계시면서 그 일가뿐만아니라 뒤틀라즈사람들모두가 식량이 딸려서 고생하며 종곡과 부림소가 없어서 농사를 지을 근심이 크다는것을 아신 그이께서는 아직 병이 다 낫지 않으신 몸으로 그곳을 떠나시였다. 얼마후 이곳 사람들은 10여필의 부림소와 량식을 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뒤틀라즈사람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영농준비를 충분히 갖출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몸소 유격대 4중대, 5중대, 청년의용군을 파견하시고 유격대원들이 일제놈들이 경영하는 소리수구목재소를 쳐서 로획한 수많은 식량과 부림소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였던것이다. 그리고 얼마후에 그이께서는 또다시 요영구구정부를 통하여 그곳 농민들에게 새해 영농자금까지 보내주시였다. 그때 그이의 지시로 아동단구위와 공청지부서기로 있던 동무들이 적들의 포위속을 결사적으로 뚫으며 이 자금을 뒤틀라즈인민들에게 전하였다. 뒤틀라즈시람들은 그때에 낟알이란 구경해본지도 오래고 둥굴레싹만 먹고있었다. 간혹 라자구에 가서 겨를 사다가 둥굴레싹에 섞어서 먹으면 좀 나았지만 돈이 없는 그들에게는 겨조차 사기 어려웠다. 그래서 남녀로소 할것없이 모두가 심한 굶주림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였다. 이러한 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자금과 량곡, 부림소 등을 받게 된 뒤틀라즈사람들은 너무나 감격하여 말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가지고 간 동무들의 손목을 잡고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장군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이처럼 돈을 보내주시다니… 어떻게 하면 이 은덕에 보답할수 있겠소.》 백발이 성성한 로인들은 이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였다. 부녀들과 젊은이들은 《날마다 일제놈들과 싸우시면서도 농사일을 걱정하시는 장군님의 배려를 생각하며 비록 놈들의 〈토벌〉에 열백번 고쳐 씨를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기어코 한치의 땅도 묵이지 맙시다.》라고 하면서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뒤틀라즈사람들은 그이께서 보내주신 영농자금으로 낟알을 사다가 풀과 섞어서 식량도 해결하고 종곡도 마련하여 끝내 이해에 한치의 땅도 묵이지 않았다. 이해에 이들이 이렇게 농사를 짓는데는 그이께서 보내주신 부림소들이 크게 힘을 썼다. 유격근거지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간고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적들의 《토벌》을 겪어야 했고 학살과 방화를 일삼는 놈들의 행패를 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식량이 떨어져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근근히 목숨을 이어가는 일도 드물지 않았고 추운 겨울에 집을 불태우고 한지에 나서게 되는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유격근거지인민들은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원쑤들이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집을 불사르면 다시 그자리에 집을 지었고 사랑하는 부모처자를 놈들에게 빼앗기고도 이를 악물고 슬픔을 이겨냈으며 그들을 대신하여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 그들은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일제침략자들의 만행이 아무리 간악하여도 유격근거지에서 한걸음도 발길을 떼놓으려 하지 않았다. 그 어떤 힘이 유격근거지인민들로 하여금 그처럼 넘기 어렵고 뚫기 어려운 난관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떳떳이 싸워나갈수 있게 하였으며 그처럼 유격근거지에 깊은 애착을 가지게 하고 그것과 떨어져서는 한시도 살아나갈수 없게 하였던가. 그것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 인민혁명정부의 시책으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장 고귀한 자유와 행복, 정권의 주인으로서의 당당한 권리를 가지게 되였고 그이의 육친적인 사랑속에서 난생처음으로 착취와 억압을 모르며 누구나 다같이 일하고 다같이 배우는 새로운 생활을 체험하였기때문이였다. 유격근거지인민들은 이와 같은 행복이 오직 위대한 수령님의 탁월한 령도에 의해서만 이루어질수 있었다는것을 깊이 깨닫고있었으며 이에 대하여 한시도 잊은적이 없었다. 실로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주체사상과 탁월한 령도가 있음으로써만 일제와의 가렬한 싸움과 좌경기회주의자들의 책동을 분쇄하는 복잡다단한 환경속에서도 유격근거지에 장차 해방된 조국땅우에 수립할 진정한 인민정권의 원형으로 되는 인민혁명정부를 확고하게 세우고 유격근거지를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투쟁을 줄기차게 이끌고나가는 혁명의 책원지로 되게 하였다. 이 모든 투쟁과정을 통하여 그이께서는 혁명의 기본문제인 정권문제에 관한 로동계급의 혁명리론을 더욱 풍부화시키고 발전시켜 국제혁명운동에 커다란 기여를 하시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유격근거지인민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위에 굳게 뭉쳐 유격근거지안에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몸바쳐 싸웠으며 상상을 초월하는 그 모든 시련을 용감하게 뚫고나가면서 고귀한 혁명의 전취물-인민혁명정권을 고수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하나로 뭉친 유격근거지인민들이 유격대와 한마음한몸이 되여 강도 일제의 발악적인 대규모적포위공격을 매일과 같이 겪어야 하던 그 간고한 환경속에서 4~5년간이나 유격근거지를 빛나게 고수한 불굴의 투쟁은 곧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 인민혁명정권을 옹호하고 사수하기 위한 투쟁이였으며 생명보다도 귀중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내기 위한 투쟁이였다. 류례없이 간고했던 항일무장투쟁의 준엄한 시련속에서 그들이 모든 난관을 이겨내며 유격근거지를 지켜낸 사실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위대한 생활력과 탁월한 수령의 령도밑에 주권을 자기의 수중에 틀어쥔 인민의 불패의 힘을 과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0년대 전반기에 인민혁명정부를 세우시고 각계각층 인민들을 혁명의 붉은 기치아래 굳게 묶어세워 조선혁명을 힘있게 추진시킨 고귀한 업적과 경험에 기초하시여 1936년에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작성하시였다. 그 첫조항에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을 실현함으로써 강도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할것.》을 밝히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위대한 강령의 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조선인민을 힘있게 조직동원하시여 마침내 조국해방의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였다. 해방직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제시하신 주체적인민정권건설로선과 풍부한 사업경험에 기초하시여 복잡다단한 환경속에서도 각급 인민위원회를 세우시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직접적계승이며 그 빛나는 구현인 《20개조정강》을 발표하시여 전체 인민들에게 조선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였으며 조선인민의 진정한 인민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이룩하여놓으신 깊은 뿌리에서 솟아났으며 그이의 현명한 령도밑에 공고발전된 우리의 영광스러운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우리 인민의 자유와 독립의 기치이며 사회주의건설의 강력한 무기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조선혁명의 강력한 무기인 이 정권이 있음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하는 력사적승리를 달성할수 있었으며 이렇듯 빠른 기간에 세기적락후성과 빈궁을 청산하고 가장 선진적인 사회주의제도를 세우고 강력한 자립적민족경제를 건설할수 있었고 위력한 전인민적방위체계를 가질수 있게 되였으며 민족문화와 예술, 고상한 도덕이 개화만발하는 위대한 민족적번영과 륭성의 시대를 열어놓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정치에서 자주, 경제에서 자립, 국방에서 자위의 원칙을 확고히 견지하고 전진, 전진, 투쟁 또 전진하고있는 우리 나라는 온 세상사람들로부터 《천리마의 나라》, 《주체의 조국》으로 불리우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의 인민정권을 더욱 공고발전시킬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당과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그 두리에 로동계급과 농민을 비롯한 전체 인민을 하나로 묶어세워 우리의 혁명력량을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튼튼히 꾸려야 하며 원쑤들의 어떠한 불의의 침략도 용감히 물리치고 우리의 인민주권과 사회주의전취물을 믿음직하게 지켜내며 남조선인민들이 요구할 때에는 어느때나 그들을 지원할수 있는 강한 힘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인민정권을 더욱 공고발전시킴으로써 혁명적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정치사상적준비와 물질적준비를 더욱 튼튼히 갖추어야 한다. 이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며 언제 어디에서나 그이를 옹호하고 그이의 명령과 지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것을 무조건 끝까지 관철하고야마는 혁명적기풍을 세우는것이다. 혁명의 길에 나서신 그때로부터 오로지 조국과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하여, 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그이를 천세만세 높이 우러러 모시고 전진하는 우리 인민은 공화국기치밑에 반드시 조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야말것이며 북과 남의 전체 인민이 참다운 자유와 행복을 누리게 될 그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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