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에 대한 극진한 사랑

 

                               한 태 룡

 

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상 우리 인민군장병들에게 인민군대가 인민들속에서 나와 인민을 위하여 싸우는 당의 혁명무력이라는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리익을 존중하며 그의 생명재산을 철저히 보호할데 대하여 간곡히 가르치고계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대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고 전체 인민은 인민군대를 사랑하고 원호하여야 하며 군민일치의 전통적기풍을 더욱 발양하여 일단 유사시에는 군인들과 인민들의 진정한 혁명동지로서 하나로 굳게 뭉쳐 일편단심 우리의 조국과 우리의 사회주의전취물을 보위하기 위하여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싸워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교시를 가슴에 깊이 새기면서 바로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생활하리라고 다시금 다짐하는 나에게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 그이께서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을 군민일치의 혁명정신으로 교양하시던 일이 삼삼히 떠오른다.
 그때 그이께서는 우리 대원들에게 어느때든지 인민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의 리익을 조금도 침해하지 말며 그들의 지지를 받고 그들에게 튼튼히 의거하여 싸워야만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가르치시였다. 특히 먹을것, 입을것이 떨어져서 곤난을 겪는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욱 인민의 재산에 조그마한 손해도 끼치지 않도록 혁명적군중규률을 엄격히 지킬것을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끊임없이 대원들을 교양하시였을뿐만아니라 항일무장투쟁의 전행정에 걸쳐 이와 같은 혁명가적품성의 모범을 몸소 보여주시였다. 그러한 이야기는 이루 다 헤아릴수 없다. 우리 항일유격대원들은 그이의 높은 덕성에서 끊임없이 감화되고 그이께서 요구하시는 엄격한 규률속에서 인민의 충복으로 자라났던것이다.
 그가운데서도 나는 1937년 3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국경일대에서 무송현쪽으로 행군하여가다가 어느 산속에서 숙영하던 때 있었던 일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
 이때 주력부대는 혁명력량을 보존하며 국내진출을 위한 유리한 조건을 마련할 목적으로 일시 국경지대를 떠나 무송현으로 이동하고있었던것이다.
 행군은 처음부터 어려웠었다. 되골령의 깊은 눈길을 헤치며 우리는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과 하루에도 수십차에 걸친 전투를 하여야 하였다. 거기에다 또 우리는 어려운 식량난까지 겪게 되였다. 비상용미시가루마저 떨어져 끼니를 건느면서 행군해나갔다. 우리들가운데는 허기증을 만나 어렵게 행군하는 동무들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신입대원들은 더 괴로와하였다.
 사령부의 식량사정도 각 부대의 형편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들은 어느 산골짜기에서 숙영하게 되였다. 그날 보초근무에 나갔던 신입대원인 기수동무가 뜻밖에 강냉이이삭을 한배낭 지고 들어왔다.
 허기진 우리들에게 이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였다. 그때 식량이 떨어져서 굶주리고있던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 강냉이는 더없이 귀한것이였으며 보기만해도 허기증이 멎는것 같았다.
 우리는 기수동무에게로 다가가서 강냉이를 어디서 어떻게 얻게 되였는가를 물어보았다.
 …신입대원인 기수동무는 이날 낮에 망원보초를 서게 되였다. 허기증을 참기가 어려웠지만 그는 정신을 똑똑히 차려 전방을 잘 감시하면서 보초를 섰다.
 별다른 적정은 없었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경각성을 높이면서 계속 사방을 감시하고있었는데 망원초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변에 널려있는 뙈기밭에 여러개의 강냉이짚무지가 있는것을 보았다.
 그런데 사방을 아무리 살펴보아야 험한 산뿐이고 인가라고는 한채도 눈에 뜨이지 않았다.
 허기를 가까스로 이겨내면서 보초를 서던 그는 생각에 잠겼다.
 (저 강냉이짚무지를 들추면 주인이 따다가 번져놓은 쭉정이이삭이라도 더러 있을지 모른다.
 전부대가 량식이 떨어져서 곤난을 겪고있는 때에 그런것이라도 얻어가면 동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
 얼마후 보초교대를 한 그는 강냉이짚무지가 있는곳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가 생각하던것과는 달리 많은 이삭이 그대로 달려있었다. 아직 이삭을 따지 않은 무지였던것이다.
 강냉이이삭을 보자 그는 몹시 허기진 동무들에게 어서 빨리 요기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더 다른 생각을 할새도 없이 강냉이를 한배낭 따가지고왔던것이다.
 기수동무에게서 강냉이를 얻게 된 사연을 듣고난 우리들도 식량사정이 너무도 어려운 형편에서 더 깊은 생각은 없이 어서 빨리 사령부에 올려보내자고 서둘렀다.
 이리하여 우리는 강냉이이삭을 배낭에 넣은채로 곧 사령부에 올려갔다.
 한홉의 낟알이 생겨도 우선 사령부에 올려보내는것이 우리 대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였고 혁명적도리로 되여있었던것이다.
 그런데 다른 일로 사령부에 갔던 소대장지무가 조용히 들어와서 하는 말이 사령관동지께서 기수동무를 찾으신다는것이였다.
 이때에야 우리는 일이 잘못되였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소대장동지의 이야기를 통하여 이 지방에서 몇십리 떨어진곳에 있는 집단부락의 농민들은 일제와 지주놈들이 못살게 구는통에 이런저런 조건으로 해서 눈이 내린 지금까지도 가을한 곡식을 밭에 세워둔채 날라가지 못하는 례가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항상 인민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시고 그들의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깊이 념려하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기수동무가 따온 강냉이이삭을 보시자 인차 그것이 어떤 강냉이라는것을 아시고 기수동무를 부르시였던것이다.
 얼마후 사령부에서 돌아온 기수동무는 심각한 얼굴로 우리들앞에서 자기가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자기비판하는것이였다. 그리고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데 대하여 말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기수동무를 보시자 가까이에 앉게 하시고 강냉이를 따오게 된 경위를 들으시고 몹시 가슴아파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기수동무에게 항일유격대의 인민과의 관계에 대한 구호를 외워보게 하시고 인민의 군대가 좀 어렵다고 하여 인민의 재산에 함부로 손을 댄것은 아주 잘못한 일이라고 엄하게 지적하시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것처럼 유격대가 인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 구호를 외우는데만 그치지 말고 우리가 어려울 때일수록 인민들은 더 어렵다는것을 알고 매사에서 먼저 인민의 리익을 생각해야 한다고 간곡히 타이르시였다.
 우리는 이때 다시한번 사령관동지의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시는 그 어려운 나날에도 언제나 인민들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시고 존중하시는 그이, 이렇게 강냉이이삭을 놓고도 인민들부터 생각하시는 그이, 그이시야말로 얼마나 위대하신 인민의 수령이신가.
 나는 이때 그 강냉이이삭을 앞에 놓으시고 깊은 생각에 잠기셨을 사령관동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평소에 그이께서 우리들에게 강조하시던 말씀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항일유격대는 인민들속에서 나온 군대이며 조국과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 싸우는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언제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인민의 군대이라는것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되며 인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히 하고 보호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아직까지도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그이의 사상과 의지대로 철저히 살아오지 못했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끼였다.
 사실 이때까지만 하여도 나는 혹한속에서 행군이 계속된다든가, 어려운 식량난을 겪을 때면 인민들의 신세를 좀 졌으면 하는 생각도 들군 했었다. 신입대원인 기수동무가 강냉이이삭을 가져왔을 때 그것이 인민의것이라는 생각은 앞서지 않고 그저 기뻐하기만한 무원칙한 태도도 바로 이런데서 출발한것이였다.
 더우기 이날 사령관동지께서 소대장동지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듣고 우리들이 범한 과오가 얼마나 엄중한가 하는것을 더욱 똑똑히 깨닫고 뉘우치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기수동무와 소대동무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혁명하는 사람들은 강냉이 한이삭을 놓고도 혁명을 생각하고 인민을 생각할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오를 범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어렵다고 하여 기수동무처럼 농민들이 밭에 세워둔 강냉이짚무지에 함부로 손을 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강냉이임자는 다시는 우리를 믿으려 하지 않을것이며 결국 우리는 우리를 지지하던 군중을 잃게 될것입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군중 한사람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혁명가들에게 있어서 한사람의 군중은 강냉이 한배낭이 아니라 몇천말과도 비길수 없이 귀중한것입니다.

 우리모두는 사령관동지의 넓고 깊으신 뜻을 그렇듯 받들지 못한것을 진실로 통탄하며 머리를 수그린채 자책에 모대기였다.
 사령관동지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그것은 강냉이임자 모르게 가져왔다고 하는 단순한 도덕적문제, 가난한 한 농민의 리익과 관련되는 문제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항일유격대의 힘의 원천이며 거기에 발을 든든히 붙여야만 우리가 혁명에서 승리할수 있는 지반-군중지반에 금이 가게 하는 심중한 문제였다. 기수동무가 범했고 우리가 공명한 이 군중규률위반은 가난한 농민의 리익을 침해하는 행위일뿐아니라 결국은 혁명군인 항일유격대를 군중과 떨어지게 함으로써 혁명의 리익에 해를 끼치고 혁명을 망치게 할수 있는 행동이였던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을 뉘우치며 바로 그이의 이 뜻, 이 진리를 똑똑히 깨달았다.
 그 이튿날 나는 몇명의 동무들과 같이 망원초근무에 나갔었다. 그때 우리는 한 로인을 데리고 사령부로 찾아오는 두 대원을 통하여 사령관동지께서 이미 이곳에 따지 않은 강냉이무지가 있다는것을 료해하시고 부대를 이곳으로 진출시키시였다는것과 강냉이를 사기 위하여 전번 숙영지를 떠나실 때 두 대원을 집단부락에 파견하시여 강냉이임자를 찾아오게 하시였다는것을 알았다. 두 대원이 데리고 온 로인이 바로 강냉이임자였던것이다.
 그리고 그날 밭으로 강냉이를 따러 간다고 나온 동무들에게서 강냉이임자인 로인에게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우리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사과하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두 대원이 강냉이임자인 로인을 데리고 사령부천막에 도착하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친히 그 로인에게로 마주나오시여 그의 메마른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나이 많으신 로인님을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라고 하여서 대단히 죄송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친절히 천막안으로 모셔들어가시였다.
 그러시고는 기수동무가 따온 강냉이를 내놓으시면서 친히 사과의 말씀부터 하시였던것이다.
 《로인님, 로인님 모르게 밭에 세워둔 강냉이무지에서 이렇게 이삭을 따온 우리의 잘못를 용서해주십시오. 인민을 위해 싸운다는 우리들이 로인님 모르게 낟알에 손을 대였으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대오를 책임진 제가 잘 살피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부디 노여워마시고 널리 용서해주십시오.》
 그 로인은 일제놈들을 쥐락펴락하시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놈들을 족치고계시는 그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생을 갖은 천대와 멸시속에서 사람다운 대접도 못받고 살아오는 한갖 농군인 자기에게 머리숙여 사과하시니 너무도 당황하고 황송하여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이렇게 말씀드렸다.
 《장군님, 아니올시다, 아니올시다.… 그런 말씀은 아예 하시지 마십시오.》

로인의 두눈에서는 황송함과 감격의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한참후에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고난 로인은 겨우 말을 계속하였다.
 《나라를 찾고 우리같은 농군들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고생을 하고계시는데 그까짓 강냉이 몇이삭이 무엇입니까. 제발 짚무지의 강냉이를 다 가져다 량식에 보탬해주십시오.》
 그이께서는 로인의 손을 꼭 잡으시고 그의 지성을 거듭 치하하시였다. 그러시고 로인에게 사실은 이 밭의 강냉이를 얼마간 식량으로 마련하려고 로인을 찾으셨다는것을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로인은 제발 념려마시고 강냉이를 군량으로 보탬하시라고 하면서도 값을 받으라는데 대해서는 굳이 사양하며 《장군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면 조금이나마 유격대어른들을 도와드리지 못한 이 늙은것의 마음이 평생을 두고 괴롭지 않겠습니까.》하고 몹시 서운해하는것이였다.
 그러나 로인의 어려운 살림형편을 헤아리고계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로인에게 끝내 강냉이값을 후하게 치르어 보내시였던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우리모두의 눈에도 눈물이 핑 돌았다.
 사령관동지께서 지니신 인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어찌 이뿐이랴.
 두만강연안에서 활동하실 때 량수천자에서는 잠자는 주인을 깨우지 않으시려고 밖에서 주무시였으며 아침에는 나무도 패주시고 또 물을 길어주기 위하여 도끼로 얼음을 까시다가 자루가 부러지면서 물속에 도끼를 떨군것을 기어코 찾으려고 애를 쓰시였고 나중에는 도끼값을 치르어주시였다는 사령관동지이시였다. 또한 이번 행군이 있기 직전만 하여도 약수동인민들이 유격대의 부식물로 하라고 떠밀다싶이 보낸 소를 그들에게 돌려보내시고야 마음을 놓으신 그분이시였다.
 인민에 대하여 혈육과 같이 사랑하시며 아끼시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는 그이께서 들리신 마을마다, 지나가신 길마다에 얼마나 많이 깃들어있는가 .
 우리들의 가슴마다에는 그이의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더욱 세차게 파도쳐 안겨왔으며 우리는 다시한번 위대한 수령을 모시고있는 크나큰 행복과 긍지감에 휩싸였다.
 기수동무는 자기대로 사령관동지께서 그처럼 인민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지극한 마음에 목메여 또한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깊은 자책으로 하여 그저 눈물만 흘릴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우리 전체 소대원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굳게 맹세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전사된 영예와 긍지를 안고 어떤 시련과 풍파속에서도 그이의 가르치심대로 인민을 아끼고 사랑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인민의 리익을 존중히 하리라고…

물론 이것은 우리들이 한번이자 마지막으로 범한 군중규률위반이였으며 영원히 잊을수 없는 심각한 교훈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부대가 동강밀영에 도착한후 소집하신 간부회의에서 행군과정에 있은 이 사실을 놓고 심각한 교훈을 찾을데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였다.
 인민혁명군은 이름 그대로 인민을 위해 싸우는 군대입니다. 바로 우리는 인민의 리익과 행복을 위하여 이 설한풍속에서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몇해째 싸우고있으며 자기의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고있습니다. 인민의 리익과 행복을 위하여 투쟁하는 바로 그것이 유격대의 모든 활동에서의 출발점으로 되며 혁명군의 철석같은 규률의 바탕을 이루고있습니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긴 우리 소대에서는 그후 인민의 리익과 재산에 손해를 주거나 어려운 조건이라고 하여 인민들에게 페를 끼치는 등 군중규률의 요구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현상이 조금도 없었다.
 특히 기수동무는 군중규률준수에서 모범적인 대원으로 자라났으며 수령과 인민의 전사답게 전투에서 용감하고 대담하게 싸웠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우리 모든 유격대원들은 어떤 역경에서도 인민을 생각하고 인민을 위해 싸우는 참다운 혁명가로 자라났으며 그대신 원쑤들과는 성난 사자와 같이 싸우는 투사로 자라났다.
 그렇기때문에 아무리 삼엄한 적의 경계망도 뚫고 항일유격대는 인민들속에 깊이 뿌리박고 싸울수 있었으며 언제나 인민들의 지지와 원호속에서, 또 군민이 단합된 힘으로 일제와 싸워이길수 있었다.
 경애하는 수령님에 의하여 이루어진 군민일치의 위대한 사상은 오늘 우리 인민군대에 의하여 계승발전되고있다.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의 어려운 시기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투쟁하였으며 사회주의전취물을 철옹성같이 보위하고있는 오늘도 군민일치의 전통적기풍을 높이 발양하고있다.
 우리 인민군군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키워주신 군민일치의 전통적기풍을 더욱 높이 발양하기 위하여 우선 자신이 당의 유일사상체계로 철저히 무장함으로써 수령님의 교시를 뼈와 살로 만들고 그를 철저히 집행관철하여야 할것이다.

그리하여 당을 수호하고 정권을 옹호하며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튼튼히 보위하는 인민군대의 신성한 의무를 더욱 영예롭게 수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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