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에 고무되여

 

                                                       공 정 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당원들과 근로자들에게 혁명의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과 혁명적락관주의를 심어주는것이 증요하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우리 위업의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며 혁명의 전도를 락관하는 정신이 없다면 혁명투쟁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부닥치게 될 곤난을 이겨낼수 없습니다.

사회발전의 법칙과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승리의 필연성을 명백히 인식하지 않고서는 승리에 대한 신심이 나올수 없으며 어떠한 난관앞서도 굴하지 않는 고상한 정신과 투지가 나올수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교시를 가슴깊이 새기며 학습하느라면 나에게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들이 새롭게 떠오른다. 특히 1938년 여름 내가 했던 부대가 2천리의 간고한 행군을 할 때 겪은 일을 나는 감명깊이 회상하지 않을수 없다.

그때 우리 부대가 의란으로부터 오상까지, 오상으로부터 또다시 의란까지 행군한 그 과정이란 말그대로 형언할수 없이 중첩되는 난관과의 투쟁이였으며 가장 간고하고도 준엄한 시련을 이겨내는 로정이였다.

이 간고한 행군에서 온갖 가시덤불을 용감히 뚫고 영웅적으로 싸워 승리할수 있도록 우리를 이끈것은 오직 경애하는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이였다.

나는 이때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의 불패의 힘을 다시금 가슴깊이 느끼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해 여름에 일제가 일으킨 하싼호사건과 관련하여 우리 항일유격대들이 보다 광활한 지역에서 배후교란작전을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이 전략적방침에 따라 그이께서 친솔하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들은 도처에서 종횡무진으로 일제군경들에게 섬멸적인 타격을 가하면서 광범한 인민대중을 혁명투쟁에로 힘차게 불러일으키고있었다.

이때 오상현일대까지 진출하여 활동하고있던 우리 부대앞에는 또다시 의란현에 들어가서 활동할 긴급한 전투임무가 제기되였다. 우리 부대는 하루속히 의란현까지 가닿기 위하여 될수록 과의 전투를 피하면서 밤낮으로 산속을 행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일제는 자기의 정예부대까지 동원하여 우리 부대에 대한 대규모적인 추격작전을 감행하여나섰다.

이러한 적들의 대공세로 말미암아 우리 부대의 행군은 더욱더 간고해졌다.

우리 부대가 온갖 곤난을 극복하면서 오상현 일면파부근의 수림속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적토벌대와 불의에 조우하게 된 우리는 불가피하게 전투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부대를 인솔하고있었던 강건동지는 이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당황함이 없이 침착하게 주도권을 틀어쥐고 부대를 지휘하여 놈들을 수많이 소멸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우리 부대에서도 몇몇 동무들이 부상당하였으며 나도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우리는 담가를 만들어 중상당한 동무들을 메고 행군을 계속하였다. 이것은 머나먼 행군길을 앞에 두고 부대의 기동성을 보장함에 있어서 하나의 난관이 아닐수 없었다. 적과 불의에 조우하여 전투를 자주 하게 되는 조건에서 더욱 그러했다.

일면파전투에서 단단히 얻어맞은 적들은 병력을 보충하여가지고 우리를 뒤따르기 시작하였다. 일제침략군, 위만군 등 1 000여명으로 구성된 적병놈들은 우리 부대의 행군길을 앞질러 포위하면서 악착스럽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우리 부대는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놈들을 쳐물리치면서 잠시도 행군을 늦추지 않았다.

우리앞을 가로막는 난관은 이것뿐이 아니였다.

우리의 옷과 신발은 말이 아니였다.

여기에다 우리는 모두 굶주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여 심한 허기증과 모진 피곤때문에 자기 한몸도 지탱해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 낟알구경을 한지도 퍽 오래되였다. 닥지나물을 비롯한 산나물, 아직 설익은 산열매가 우리의 유일한 식량이였다. 소금마저 떨어져서 맨풀만 먹다나니 몸이 부었고 앞이 잘 내다보이지 않았다.

더는 이대로 행군을 계속할수 없게 되자 지휘부에서는 한줌씩 남겨두었던 비상미로 죽을 쑤어먹을것을 지시하였다. 그런데 물이 한방울도 없었다.

이해는 례년에 없이 몹시 가물어서 골짜기로 흐르던 개울물마저 죄다 말라버리였다.

굶주린 몸에 목이 타고 입술이 말라드는 갈증을 참기란 정말 보통일이 아니였다.

이러한 형편에서 남아있는 한줌의 쌀마저 익혀먹을수 없었다. 우리는 여러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가마도 없고 물도 없이 쌀을 익혀먹을 방법을 생각해냈다. 음달진곳의 흙을 파다가 넙적한 돌우에 쌓아놓고 그 흙속에 쌀이 들어있는 조그마한 주머니를 파묻은 다음 그 돌밑에 불을 땠다. 돌이 달아오르면서 흙속에 남아있던 습기가 김이 되여 쌀을 적시고 익혔다. 물론 가마에 물을 두고 해낸 밥 같지는 못하였으나 제법 밥냄새가 구수하게 코를 찔렀다. 소금 한알 없고 물 한모금 없이 마른 황좁쌀밥을 한술씩 뜨고 우리는 또다시 행군을 하였다.

이렇게 간난신고를 이겨내며 주하부근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령을 넘을 때 또 적들이 사방에서 불의에 달려들었다.

실로 위급한 정황이였다. 이때 강건동지는 기관총수들을 데리고 집중사격으로 놈들의 포위망을 뚫고 부대의 행군로를 열어놓았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지휘성원자리에 잠입해있던 왕가란놈이 도주하여 적들에게로 넘어갔다. 이자는 적들의 포위속에 들자 비겁하게도 자기 한목숨을 살리겠다고 투항변절했던것이다.

그놈은 원래 산림대에 있다가 혁명군의 영향을 받아 반변하여 우리 부대에 편입된자로서 혁명성도 미약하고 계급적립장도 확고하지 못한자였다.

그때 우리 부대에는 산림대에서 반변하여 편입된 대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무되지 못하였고 간고한 혁명적시련을 통하여 단련되지 못하였던것이다.

토벌대놈들은 변절투항한 왕가놈을 앞세우고 우리를 더욱 집요하게 추격하여왔다. 왕가놈은 자기와 함께 반변했던 대원들의 이름까지 불러가며 투항해오라고 소리치는것이였다.

이때 부대지휘부에서는 조성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하여 적들을 유인하여 외딴곳에 따돌리고 비교적 안전한 수림속에 들어가 부대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키우시여 우리 부대에 파견하여주신 군사정치간부들에 의하여 부대앞에 조성된 난국을 타개할 대책이 강구되였다.

일찌기 조선혁명을 구상하시고 령도하여오신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활동을 시작하시던 그 초기부터 벌써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꾸리시기 위하여  수많은 지휘간부들을 키우시여 북만과 남만에 이르는 무든 지역에서 활동하는 유격대와 반일부대에 파견하시였으며 국내에도 수많은 지하공작원들을 보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군사정치간부들을 각 부대들에 파견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고 한다.

막상 갈라지려면 동지애 보나 인정상으로 보나 애석한 마을 금수 없을것입니다.

각 군에 파견하기로 선발된 동지들은 영예감을 가져야 하며 중대한 혁명임무를 지니였다는것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 우리 부대에 파견되여온 박락권동지를 비롯한 지휘관들은 그이께서 제시하신 혁명선과 방침을 관철하는데 자기의 모든 힘을 기울였다.

우리는 바로 그들을 통하여 그이께서 제시하신 조선혁명의 로선과 방침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으며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국광복회10대강령》등을 학습함으로써 조선혁명수행에서 우리들이 지닌 임무의 중요성을 똑똑히 알고 혁명승리의 신심을 더욱 굳게 가질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회의에서 우리 부대에 파견된 한 지휘관은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받고있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면서 북만원정 할 때에 하신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전달해주었다.

혁명이란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쟁입니다. 혁명은 피와 땀을 흘리지 않고 순조롭게 될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혁명을 하여 나라를 찾고 전체 인민이 행복하게 살도록 하자는데 있습니다. 동무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죽음도 각오하고 총을 잡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빼앗긴 조국, 원쑤들의 발밑에 짓밟힌 고향산천, 헐벗고 굶주리는 부모처자를 생각합시다. 혁명을 먼저 생각합시다. 전체 인민이 잘먹고 잘입고 잘살게 될 자유롭고 행복할 미래를 생각합시다.

우리가 이것을 생각할 때 어찌 난관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이께서 하신 이 말씀을 전해듣는 순간 나에게는 지난날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9살때에 평북 의주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일제놈들에게 빼앗긴 후 지주집의 종이 되여 그놈의 집에서 심한 구박을 받다 못하여 도망쳐나와 찾아간 곳이 북만땅이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들씌우는 고통은 그 어데를 가나 매한가지였다. 나는 산설고 물설은 북만땅을 정처없이 헤매다가 강건동지를 만나 1936년 5월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때 나는 빼앗긴 나라를 찾으며 다시는 착취자들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죽어도 살아도 이 길, 혁명의 길을 지켜싸우리라고 굳게 맹세하였던것이다.

(과연 그이의 말씀대로 빼앗긴 조국, 놈들의 발밑에 짓밟힌 고향산천과 헐벗고 굶주리는 부모처자와 동포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찌 난관을 두려워하겠는가. 목숨이 붙어있는 한 이를 악물고 난관을 뚫고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동무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난관앞에서 주저하고 동요하던 일부 신입대원들은 옷깃을 여미고 자세를 바로하며 정중한 태도를 취하는것이였다. 그들의 마음속에서도 분명 그 어떤 파문이 일어나 자책으로 하여 모대기고있는것이였다.

담가에 누워있던 부상병들도 아픔을 잊은듯 경건한 마음으로 일어나 앉는것이였다.

이처럼 사령관동지의 말씀은 실로 엄혹한 시련앞에서 주저하고 동요하던 대원들을 오직 혁명의 한길로 끝까지 달려나아가도록 힘있게 이끌어주었다.

지휘관은 사령관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로 끝까지 혁명의 길로 나아갈 동무들은 그이앞에 다지는 맹세문을 쓰자고 제의하였다.

그의 제의는 대원들의 열렬한 찬동을 받았다.

그는 그 즉시로 맹세문초안을 작성하여 대원들앞에서 그것을 읽었다.

나에게는 지금도 그 맹세문의 기본내용이 잊혀지지 않고 회상된다.

《오늘 우리는 심히 어려운 난관에 처했다. 그러나 난관에 굴복하여 혁명대오에서 리탈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굴복, 투항, 변절 이것은 조국과 민족의 원쑤로서 천추에 씻지 못할 치욕과 범죄의 길이다.

위대한 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우리의 혁명투쟁은 필승불패이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오직 한길, 혁명의 길로 전진할것이며 억천만번 죽더라도 원쑤를 치자는 구호대로 끝까지 혁명에 목숨바쳐 싸울것을 엄숙히 맹세한다.》

지휘관은 자신이 먼저 맹세문에 수표를 한 후 박락권동지에게 넘겼다. 맹세문은 이손에서 저손으로 넘어갔다. 나는 옆에 선 김만익동무의 손에서 맹세문을 정중히 넘겨받았다.

그 맹세문에는 조국해방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사령관동지께 충직한 혁명전사가 되려는 우리의 혁명적량심과 절개, 불굴의 의지와 필승의 신념이 담겨져있었다.

부대회의가 끝난 후 우리는 다시 행군을 시작하였다. 한사람의 락오자도 없이 활기를 띠고 행군을 계속하던 어느날, 우리는 행군도중 적과 또 불의에 조우하게 되였다. 이때 나는 부대의 행군을 보장하기 위해 적을 유인하여 끌고 다른 골짜기로 빠졌다.

그바람에 나는 그만 본대오에서 떨어졌다. 나는 모이기로 약속된 곳에 가보았으나 아무도 없으므로 부대의 행처를 찾아 홀로 산속에서 헤매기 시작하였다.

부대와 떨어져 이틀째 되는 날 밤이였다. 어느 골짜기에 이른 나는 기진맥진하여 그만 쓰러지고말았다. 이틀동안을 굶고 잠 한잠 제대로 자지 못한데다가 왼팔에 입은 상처가 몹시 아파났다. 진대나무에 기대여쓰러진 나는 온몸이 땅속에 잦아드는것 같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었다.

그러나 부대가 나를 기다리고 동무들이 나를 찾을것을 생각하니 잠시라도 지체할수가 없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목숨이 살아있는 한 자신이 맹세다진대로 김일성장군님께서 가리키시는 길, 혁명의 길로 끝까지 싸워나가기 위해 한시바삐 부대를 찾아가자.)

이렇게 결심한 나는 두주먹을 틀어쥐고 다시 발길을 옮겨놓기 시작하였다.

부대를 찾기 시작하여 사흘째 되던 날 저녁녘이였다. 나는 동무들이 있음직한 곳을 향하여 령마루로 기여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르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일어나 다시 기여서 령마루에 올랐다. 그리고는 막대기로 나무를 힘껏 두드렸다. 이것은 동무들을 찾는 신호였던것이다.

바로 그때 온 산속을 헤매며 나를 찾던 동무들이 나무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그들은 《야, 살았구나! 우리는 동무가 꼭 살아있을것을 믿었소.》라고 기뻐하면서 나를 덥석 그러안는것이였다.

나 역시 기쁨을 금치 못하여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나도 동무들이 나를 꼭 찾으리라고 굳게 믿었소.》

부대에서는 나를 찾아오라고 몇명의 대원들을 파견하였었다. 그들은 모이기로 약속된 곳에서 나를 찾다가 없으니까 적들과 조우하던 곳으로부터 이곳까지 온 산을 뒤지였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다시 부대를 만나게 되였으며 우리는 부대회의에서 채택하고 서명한 맹세문 그대로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러 하나의 신념, 하나의 사상의지로 굳게 뭉쳐 시련에 찬 난국을 헤쳐나아갔다.

우리는 서로 부축하고 의지하여 이끌면서 행군을 다그쳤다. 필승의 신념에 넘쳐 더욱 활기를 띤 대렬에서는 혁명가요가 울려퍼졌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우리는 이 노래를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목청껏 불렀다. 부르면 부를수록 용기와 신심이 북받쳐오르는 심장의 노래였다. 그것은 정녕 만난을 극복하고 전진하는 승리자들의 노래였다.

부대는 강건동지의 지휘밑에 실로 중첩한 간난신고를 물리치면서 드디여 목적지인 의란땅에 들어섰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부대지휘부에서는 우선 따라러미목재소를 습격할 작전을 계획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원정에서 간난신고와 시련을 이겨낸 우리 부대가 인차 견고한 방어진을 치고있는 적들의 소굴을 친다는것은 사실상 대담한 작전이였다.

따라러미목재소에는 일본지도관놈의 지휘밑에 수십명의 자위단이 여러정의 기관총까지 가지고있었다.

1938년 10월 어느날 밤 10시경 보초를 감쪽같이 제끼고 불의에 목재소를 포위한 우리 부대는 반항하는 놈들만 처단하고 나머지는 모두 포로하였다. 그리고 20여필의 말과 10여포대의 밀가루와 피복, 신발 등 많은 후방물자를 로획하여가지고 그밤으로 철수하였다.

이때 우리의 기세는 대단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 우리는 목재소를 습격당하고 대병력을 동원하여 따라오는 놈들을 골안에 몰아넣고 통쾌하게 소멸해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실로 간고한 2천리행군을 이겨내고 전투에서도 승리하였다.

우리가 간고한 2천리행군에서 승리할수 있은 힘의 원천은 무엇이였는가.

그것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이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하여 간고한 행군도상에 조성되였던 난국을 타개하였으며 부대의 전투력을 급속히 강화하여 가는 곳마다에서 원쑤들을 무리로 소멸해버렸던것이다.

오늘 우리 전체 근로자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다그치며 조국통일의 위업을 앞당기기 위한 투쟁에서 전진, 전진, 투쟁 또 전진하면서 혁명적대고조를 계속 일으키고있다.

이 혁명적대고조를 더욱 앙양시키기 위하여 우리 전체 인민들은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당중앙위원회주위에 더욱 철석같이 단결하여야 하며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혁명의 길에서 그 어떠한 난관에 부닥치고 그 어떤 역경에 처하여도 불굴의 혁명정신을 발휘하여 싸워이길수 있으며 모두다 혁명의 승리자가 될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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