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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수행하여
지 병 학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의 영광스러운 로정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항상 우리를 승리와 영광의 길로 이끌어주시고 혁명전사로 키워주신 그이의 원대한 구상과 따뜻한 은정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이께서는 조국해방을 위한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수많은 우수한 간부들을 친히 교양육성하시여 국내는 물론 동만, 남만, 북만의 곳곳에 파견하여 그들로 하여금 항일무장대오의 확대강화와 전반적반일민족해방투쟁의 앙양에 크게 이바지하도록 지도하시였다. 나는 지금도 사령관동지의 육친적사랑속에서 자란 수많은 우수한 간부들과 같이 멀리 남만에 파견되여 사업하던 때의 일을 잊을수 없다. 장동무와 나를 포함한 여러명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몽강,무송현계의 어느 한 밀림속에서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고 새로운 혁명초소를 향하여 남만으로 떠나가게 된것은 1937년 11월 어느날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을 친히 만나시고 길떠날 차비는 되였는가, 몸은 아픈데 없는가, 식량과 탄알은 넉넉한가 등 실로 우리자신도 미처 생각을 하지 못한 작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알아보시고 관심하여주시였다. 그리고나서 먼길을 떠나보내는 친자식을 타이르듯이 우리들에게 앞으로의 활동임무에 대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에게 남북만 각 부대에 파견되여 활동하고있는 모든 동무들이 자기의 임무들을 훌륭히 수행하고있으며 부대안에서 골간적역할을 수행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책임진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강도일제를 몰아내고 조국강토를 찾아야 하며 자기의 힘으로 조국땅우에 살기 좋은 사회를 건설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위하여 항일유격대를 더욱 확대강화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우리가 해당 부대에 가면 골간적역할을 해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한마디한마디 심장속깊이 아로새겨들으면서 그이의 높은 신임에 눈시울이 뜨거워남을 금할수 없었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아직 모든 점에서 세련이 부족하지만 그이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기어코 완수하리라고 굳은 결의를 다지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께 인사를 올리고 그이께서 가르쳐주신 로정을 따라 험산준령을 넘으며 천고밀림속의 눈을 헤치고 목적지인 집안땅에 당도하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이곳 부대지휘관들은 사령관동지께서 유능한 동무들을 꼭 파견해주실줄 믿고 기다리고있던 참이라고 하면서 우리를 얼싸안고 오래동안 헤여졌던 형제나 만난듯 기뻐서 어찌할바를 몰라하는것이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뜨거운 손길이 멀리 남만에까지 잇닿아있음을 실지 눈으로 보았을 때 그이의 혁명전사된 영예와 긍지를 더욱 가슴깊이 느꼈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새로 조직된 중대에 배치받았다. 우리 일행중 나는 중대정치지도원으로, 장동무는 같은 중대의 후방일군으로 배치받았다. 당시 우리가 파견되여간 부대는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하여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배치된 중대의 형편은 더욱 말이 아니였다. 그러기에 이곳 부대의 한 지휘관은 우리가 중대로 배치되여갈 때 부대의 전반적실정을 이야기하면서 오자마자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아달라고 하기가 매우 미안스러운 일이지만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은 동지들만이 할수 있는 일이기에 대렬구성도 복잡한 중대의 관리를 부탁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가는 중대에는 아직 중대장도 소대장도 없고 신입대원들만 주인없는 집의 손님격으로 중대를 지키고있는데 그들은 모두 어제날까지 구국군, 산림대에 있다가 갓 넘어온 사람들이여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때가 있을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명하신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질것이라고 하면서 아직 혁명화되지 못한 이들중에서는 한두끼 굶어도 못견디겠다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동무는 지휘관도 동지도 안중에 없고 오직 자기만 아는 그런 락후한 사람도 있다는것을 솔직히 말해주는것이였다. 이 모든것을 우리는 이미 떠나올 때 예측한바이지만 막상 와서 직접 보고 들어보니 생각한것보다 더 어려운 형편이였다. 이런 현실앞에 부닥친 우리는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적들은 계속 집요하게 공격해오는데 탄알도 떨어지고 식량도 없어 난처한 때가 많았다. 곤난이 닥쳐오자 시련속에서 단련되지 못한 일부 대원들은 자기의 옛본성을 드러내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령도와 따뜻한 손길이 이곳까지 잇닿아있는 한 반드시 중대를 짧은 기간내에 훌륭한 전투대오로 꾸릴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우리는 첫날부터 부대조직생활과 하루의 일과를 사령관동지께서 가르쳐주신 그대로 하였다. 우리는 대원들에게 그이의 혁명사상을 가르쳐주었으며 전술훈련, 사격훈련을 진행하여 그들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단련시켰다. 그리고 개별담화와 일상생활을 통하여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령도와 전략전술에 대하여, 그이의 높은 덕성에 대하여 이야기해주군 하였다. 이와 함께 우리는 명사수에 대한 이야기이며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있는 유격대원들의 생활과 그들이 진행한 수많은 전투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대원들을 승리의 신심으로 교양하였다. 우리는 이렇게 정치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실천적모범으로 그들을 교양하였다. 옷차림으로부터 시작하여 무기를 다루는 법, 학습하는 방법과 숙영지를 꾸리고 생활하는 질서, 동지호상간에 주고받는 한마디한마디의 말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고 본받을수 있게 하였다. 대원들의 군복이 해지면 꿰매주기도 하고 신발이 헐면 자기것을 벗어주기도 하였다. 좋은것은 양보하고 음식도 적을 때에는 자기가 못먹어도 그들에게 권하였다. 전투나 행군시에는 자신들이 제일 무거운 짐을 지고다니며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의 앞장에 나섰다. 그들의 각성정도는 하루이틀 달라져갔다. 그러나 눈에 뜨일만큼 부대생활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가기만 하였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것은 아직 일부 대원들이 우리의 진정어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곁을 주지 않는것이였다. 이때마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따사로운 품이 한없이 그리웠다. 그러다가도 우리가 떠나올 때 사령관동지께서 간곡히 하시던 말씀을 생각하면 정신이 피뜩 들군 하였다. 그이께서는 그때 혁명가는 절해고도에 홀로 남아서도 싸워이길줄 알아야 한다, 그만한 곤난앞에서 동요하거나 주저앉는다면 떳떳한 혁명가라고 말할수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나의 귀에는 당장 그이의 이런 엄한 충고의 말씀이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우리는 그이의 가르치심에서 항상 새힘을 얻군 하였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자 우리는 대원들을 어루만지는 식으로 교양하지 않고 강한 요구성과 함께 비판도 주면서 그릇된 점을 바로잡아주는 방법으로 그들을 혁명화시켜나갔다. 이렇게 하는 과정에 우리는 일부 동무들이 아직 계급적각성은 부족하지만 모두가 혁명을 위해 치욕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 혁명의 편으로 넘어온 동무들이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중에는 한날한시에 입대한 ≪삼형제≫도 있었다. ≪삼형제≫는 각각 다른 소대에서 생활하고있었지만 중대안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있었다. 일찌기 부모를 잃은 ≪삼형제≫는 고아가 되여 부모가 진 빚값으로 지주놈의 집에 강제로 끌려가 노예로동을 강요당하다가 지주놈의 집에서 뛰쳐나와 마침내 투쟁의 길에 나섰던것이다. 우리는 ≪삼형제≫를 혁명적으로 각성시킨다면 중대를 단합시키고 혁명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중에서도 맏형을 확고한 길에 들어서게 하는것이 ≪둘째≫와 ≪셋째≫를 교양하는데서뿐만아니라 전중대를 단합시키는데서도 빠른 길이라는것을 타산하였다. 왜냐 하면 동생들은 형을 부모처럼 믿고 살아왔고 또 그만치 그들 형제간의 의리도 좋았다. 그렇기때문에 형의 말이라면 동생들이 잘 접수하였다. 어느날 나는 조용한 기회에 ≪첫째≫를 만나 개별담화를 진행하였다. 나는 그와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에 들어오기전에 겪은 피맺힌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하였다. 피눈물나는 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며 그후 사령관동지의 품속에서 자라 그이의 친솔밑에 북만원정에 올랐던 자랑찬 이야기 그리고 일시 사령관동지의 곁을 떠나 북만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그이의 부름을 받고 이곳에까지 오게 된 경위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무심중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뜻밖에도 그의 량볼에는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10살도 못된 나어린 소년으로서 부모를 잃고 살길을 찾아 온 동만땅을 헤매다가 사령관동지의 넓은 품에 안겨 자랐다는 나의 지나온 생활의 이야기에 그는 자기의 피눈물나는 과거생활이 떠올랐던 모양이였다. 그러기에 그는 나의 손을 굳게 잡고 ≪지도원동무의 과거처지가 어쩌면 그렇게 신통히도 나와 같소.≫하고는 더욱 울먹거리였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기와 같은 사람도 사령관동지의 혁명전사로 될수 있는가고 묻는것이였다. 나는 그에게 일제의 군화밑에 짓밟힌 땅에서 사는 사람치고 돈있고 권세있는놈을 빼놓고야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어찌 동무와 나뿐이겠는가, 지금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있는 우리 혁명군 대원들만 보아도 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고 자라난 사람들이라는것을 이야기하여주었다. 그리고나서 나는 그의 손을 굳게 잡으며 우리 함께 혁명을 위해 힘껏 싸워보자고 말하였더니 그는 마음속을 털어놓고 내심에 있는 말을 하는것이였다. 나는 그 말을 혁명의 한길을 따라나가려는 그의 확고한 결의의 표시라고 믿었다. 그후 그는 참말로 어떤 역경속에서도 굴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모범으로 동생들과 대원들을 혁명의 길로 이끌어나갔다. 아렇게 대오가 점차 간고한 시련을 이겨내며 단합되여갔으나 우리는 또다시 대원들의 동복과 식량이 부족하여 곤난에 부닥치게 되였다. 이런 형편에서 속수무책으로 그대로 앉아있을수는 없었다. 생각하던 끝에 우리는 두가지 목적을 가지고 집안현 관지습격전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피복과 식량을 해결하는 동시에 전투를 통하여 신대원들을 정치사상적으로, 군사적으로 단련시키고 그들을 필승의 신념으로 교양하자는것이였다. 중대가 조직된후 진행하는 첫전투인것만큼 전투의 승패는 대원들에게 큰 영향을 줄수 있었다. 우리는 첫전투의 승리가 신입대원들을 승리의 신심으로 교양하는데 백마디의 말보다도 더 큰 위력을 가진다는것을 이미 체험을 통하여 잘 알고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습격전을 앞두고 대원들에게 전투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서와 적들의 죄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다. 그러자 대원들은 자신만만하게 싸울 기세에 휩싸였다. 당시 시내에 도사리고있은 적들은 헌병, 경찰, 자위단 등 수십명에 달하였다. 적을 감쪽같이 소탕하는 유일한 방도는 은밀히 접근하여 불의에 습격하는것이였다. 우리는 만일의 경우까지 타산하고 물샐틈없는 경계조직을 하고 중대를 인솔하여 밤중에 시내에로 들어갔다. 중대가 원쑤들이 도사리고있는 건물에 접근하여 포위망을 좁히고있을 때였다. 그 부근 한곳에서는 왜놈들의 음탕한 노래소리가 울려나오고있었다. (마침 잘 되였다. 실컷 처먹고 두드려라.) 우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그 노래소리에 구역질이 날 지경이였지만 더 큰놈을 잡기 위해서 참고 그대로 지나기로 결심하였다. 밤은 깊어 인기척도 없고 시내는 조용하였다. 나는 때를 놓칠세라 급히 습격조의 력량을 배치하였다. 그리고는 긴장된 마음으로 적의 동태를 살피고있었다. 바로 이때였다. 나의 뒤에 있던 ≪셋째≫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살펴보니 그는 벌써 노래소리가 나는 집 현관앞에 가있었다. 일은 난처하게 되였다. 공격시간은 아직 좀 이른데 소리를 내여 부를수도 없고 그대로 둘수도 없었다. 우리가 잠시 망설이고있는 사이에 벌써 저쪽에서 ≪누구냐? 누구냐?≫하는 심상치 않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 하여 ≪개자식들, 무엇이 어찌고 어째?≫ 하는 ≪셋째≫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공산군이다.≫하는 적의 고함소리가 또 울렸다. 순간 나의 머리에는 ≪셋째≫가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예감이 번개같이 떠올라 그쪽으로 달려가보니 참으로 아슬아슬한 장면이 벌어지고있었다. 적 두놈이 ≪셋째≫의 총을 잡고 빼앗으려는 위기일발의 순간이였다. 사태는 불가피하게 습격시간을 앞당겨 총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나는 생각할 사이도 없이 급히 싸창을 뽑아 두놈의 원쑤를 제껴치웠다. 그놈들은 일본헌병놈들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나의 뒤에 있던 ≪셋째≫는 노래소리가 울려나오는 술집 현관앞에서 술에 만취된 두놈의 원쑤가 딩구는것을 발견하고 호기심에 끌려 그곳으로 달려갔던것이다. 그런데 놈들은 ≪셋째≫를 저의 동료인줄로만 알고 저희들끼리 골을 맞대고 혀꼬부라진 소리로 지껄이고있었다. 이 꼴을 본 ≪셋째≫는 총구로 놈들의 옆구리를 힘껏 찔러놓았다. 총구를 본 놈들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사시나무떨듯 하면서도 살 구멍수를 찾기에 급급했다. 뛰려고 기회만 노리고있던 그중 한놈이 불시에 일어서면서 ≪셋째≫의 총을 나꾸챘다. 이렇게 되자 또 한놈이 소리를 치며 일어나 그에게 접어드는바람에 결국 ≪셋째≫는 두놈을 상대로 블리한 조건에서 결사전을 벌리게 되였던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여 결국 원쑤놈을 쏴눕힌 두발의 총성을 신호로 우리의 습격전은 앞당겨 시작되였다. 불의에 불벼락을 맞은놈들은 미처 손쓸사이도 없이 갈팡질팡하다가 총한방 쏘아보지도 못하고 녹아났다. 참으로 통쾌한 전투였다. 우리는 여기서 수십명의 적을 쓸어눕히고 무기와 탄약, 식량과 피복 등 많은 물자를 로획해가지고 승리의 기세드높이 집결장소로 돌아왔다. 관지습격전투의 목적은 성과적으로 달성되였다. 이 전투를 계기로 대원들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그들은 원쑤들의 취약성을 더욱 똑똑히 알게 되였고 필승의 신념을 가지게 되였다. 일시적난관앞에서 동요하던 일부 대원들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후부터 동지호상간의 신뢰도 두터워지고 지휘관들이 애쓰는 일을 도와주려고 하는 기색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이날 나는 전투를 총화하고 ≪셋째≫를 조용히 불렀다. 나는 이번 전투에서 원쑤를 미워하고 용감하게 싸운 그의 공적에 대하여 높이 찬양해주고 부족점에 대하여도 차근차근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고개를 숙이면서 자기가 규률을 위반했으니 응당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것이였다. 그리고 울먹거리면서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노라고 결의를 다지고나서 뜻밖에도 손목시계 한개를 내놓는것이였다. 그것은 너부러진 헌병놈의 손목에서 풀어온것이였다. 나는 그렇게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나어린 그가 당황함이 없이 그와 같이 담찬 일을 하였을뿐만아니라 그 시계를 조직에 바치는 그의 소행이 너무나 기특하여 그를 치하하고 와락 그러안아주었다. 그후 우리는 집안, 통화일대에서 전투를 계속 진행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이였다. 우리는 눈덮인 송화강가를 따라 행군하다가 불의에 적과 조우하게 되였다. 불가피하게 조성된 전투정황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나는 곧 대원들에게 산으로 오를것을 명령하고 장동무를 비롯한 몇동무들만 데리고 달려드는 적을 견제하면서 유리한 지형으로 빠졌다. 적들은 주린 승냥이떼처럼 계속 달려들었다. 나는 대원들이 산에 거의다 올라갔을무렵에 장동무에게 나머지 대원들을 데리고 철수하라고 지시하고는 뒤에서 적들과 싸우면서 그들을 엄호하며 따랐다. 적들은 공포에 떨면서도 추격을 단념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놈들과 싸우면서 중대가 철수해간 길을 따라 산으로 올랐다. 그런데 나의 뒤에서 난데없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나는 곧 그곳으로 달려가보았다. 뜻밖에도 그곳에는 ≪셋째≫가 적의 흉탄에 맞아 쓰러져있었다. 그는 나의 뒤에서 계속 나를 엄호해주느라고 혼자 떨어져 필사적으로 싸우다가 부상을 입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그를 업고 달리였다. 우리를 발견한 적들은 미친듯이 따라오며 총탄을 퍼붓는것이였다. 이때 산에 오른 대원들이 추격하는 놈들에게 복수의 불벼락을 안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자 적들은 더는 따라오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눈먼 총질만 하는것이였다. 나의 다리는 천근무게의 납덩이를 달아맨듯 좀처럼 옮겨놓을수가 없었다. 가다가는 쓰러지고 쓰러졌다가는 다시 일어났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가까스로 고지에 오른후 ≪셋째≫를 조심스레 대원들앞에 내려놓았다. 그를 내려놓자 나는 안도감에 사로잡혀 그만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고말았다. 이때 ≪셋째≫의 두형이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나를 와락 그러안고 목메인 소리로 ≪지도원동지!≫하고는 말을 잇지 못한채 그만 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오래오래 고개를 들줄 몰랐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대원들도 말없이 고개만 떨구고 묵묵히 서있었다. 그러나 나는 말없이 서있는 그들의 심장속에서 울려나오는 뜨거운 목소리를 듣는것만 같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대원들의 심장과 심장은 굳센 혁명적의리로 련결되고 한마음한뜻으로 단합되여갔다. 이것을 애타게 바라며 일해온 나는 자기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게 되였으며 사령관동지의 높은 신임에 천분의 일, 만분의 일이나마 보답하였다는 긍지로 하여 무한히 기뻤다. 이 일을 계기로 중대대원들의 생활에서는 획기적인 전변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한두끼 굶고도 못견디겠다고 하던 대원들이 이제는 며칠씩 낟알구경을 못해도 혁명을 위함이라면 그를 꿋꿋이 이겨나갔다. 이렇게 중대는 첫걸음부터 간고한 시련속에서 전투와 행군, 사상교양과 자체수양을 통해서 한걸음한걸음 전진하여 단합된 전투대오로 자라났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간고한 혁명투쟁속에서의 하루하루가 혁명전사를 키워내는데서 얼마나 귀중한 시간인가 하는것을 똑똑히 알게 되였다. 그간 대원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단련되였고 사령관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로 자랐다. 특히 그중에서도 ≪삼형제≫는 전투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중대의 모범으로 되였다. 그들은 대원들속에서 사소한 결함이라도 나타나면 타일러주고 때로는 엄격히 충고도 해주었다. ≪만일 사령관동지께서 우수한 지휘관들을 파견해주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벌써 녹아났든가 아니면 혁명을 포기하고 인민들의 증오의 대상이 되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이께서 파견하신 지휘관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괴롭히겠는가?≫ ≪삼형제≫는 중대에서 규률을 위반하는 대원이 있으면 이런 말로 충고하였다. 그들은 크고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큰 관심을 가지고 우리와 의논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중대는 피로를 풀기 위하여 자그마한 어느 한 부락에 며칠간 머물러있은 일이 있었다. 이때 한 대원이 혼자 사는 녀성의 집에서 도끼를 빌려왔다. 그는 자기 부주의로 하여 도끼를 쓰다가 자루를 꺾어뜨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만 자루가 꺾어져나가면서 도끼날이 돌에 부딪쳐 날까지 무디게 되였다. 그는 꺾어진 도끼를 그대로 들고 가서 집주인에게 사죄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그를 위만군이나 구국군인줄로만 알고 시답지 않은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자 그 대원은 자기의 자존심이 꺾이운것만 같아서 도끼를 도로 들고나와버렸다.그리고는 고쳐줄 대신 혁명군에 대한 태도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도끼를 슬그머니 남의 집 마루밑에 감추어버렸다. 이때 병을 치료하느라고 떨어져있던 ≪셋째≫가 우연히 이것을 발견하였다. ≪셋째≫는 그를 타일러보았으나 그는 그런 사람에게는 도끼를 돌려줄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였다. 그러자 ≪셋째≫는 그길로 나를 찾아와 전후사연을 이야기하고 자기가 도끼를 고쳐주겠노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심중히 토의하고 ≪셋째≫와 함께 그 대원이 모르게 도끼자루를 새로 맞추고 날을 세웠다. 우리는 곧 도끼를 가지고 집주인을 찾아갔다. ≪주인님, 참 미안하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원들입니다. 이 도끼를 받아주십시오.≫ ≪김일성장군님 혁명군의 어른들이라구요?!≫ 주인은 깜짝 놀라는 기색으로 이런 고마운 군대를 몰라보았다고 하면서 오히려 미안해서 어찌할바를 몰라하는것이였다. 그후 하루이틀이 지나 중대가 방금 부락을 떠나려고 할 때였다. 도끼를 빌려주었던 집주인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내 정성입니다. 보잘것 없는것이지만 이것이나마 도끼를 빌려갔던 어른에게 주십시오.≫하고 정성들여 만든 손수건을 내놓았다. 어느사이에 집주인은 고운 색실로 손수건에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라는 글을 새기고 꽃수까지 놓아가지고 왔던것이다. 우리는 손수건을 받아 ≪셋째≫를 시켜 그 도끼를 빌려썼던 대원에게 주게 하였다. 그러나 그 대원은 아직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리둥절해있을뿐이였다. ≪도끼를 빌려준 집주인이 동무에게 주는 선물이요.≫ ≪셋째≫의 말이였다. 그제야 그는 모든것을 짐작한듯 우리를 찾아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는것이였다. 나는 이때 그에게 사령관동지께서는 항상 우리들에게 어느때 어데를 가나 인민을 위한 혁명군대라는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가르치시였다는것을 말해주면서 어디서나 군중규률을 잘 지켜야 한다고 타일러주었다. 그후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전략적방침에 따라 맹가툰집단부락습격전투를 비롯하여 장강전투 등 많은 전투를 진행하여 수많은 적을 쓸어눕히였으며 중대는 그 과정을 통하여 세련된 혁명대오로 자라났다. 특히 ≪삼형제≫를 비롯한 많은 대원들이 준엄한 시련속에서 믿음직한 혁명전사로 자랐다. 우리 중대가 얼마나 믿음직한 혁명대오로 발전하였는가 하는것은 그후의 간고한 행군과 전투에서 여실히 검열되였다. 1938년 초가을에 우리 부대는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몽강현 남패자를 향하여 간고한 행군을 시작하였다. 날씨가 점점 추워오지만 대원들은 여름옷을 입은채로 행군하였으며 또 식량마저 떨어져 맨풀로 끼니를 에우면서 하루에도 몇차례씩 전투를 거듭하다나니 지칠대로 지쳤다. 적들은 이리떼마냥 사방에서 우리의 행군길을 가로막아나섰다. 원쑤들은 심지어 비행기까지 동원하여 삐라를 뿌리면서 어리석게도 우리의 사기를 꺾어보려고 발악적으로 날뛰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그이를 찾아가는 우리의 기세를 꺾을수는 없었다. 대원들은 굶어서 얼굴이 팅팅 부었어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일어나서는 싸우면서 서로 고무하고 부축하여주며 이를 악물고 힘차게 전진하였다. 간고한 행군에 지쳐 쓰러지는 대원이 있으면 우리는 ≪사령관동지께서 우리를 기다리고계신다. 기운을 내자.≫고 고무하면서 일으켜세우군 하였다. 적들의 그 어떠한 간악한 술책도, 부닥치는 그 어떠한 곤난도 이와 같이 굳은 신념을 안고 전진하는 우리의 앞길을 결코 가로막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계속 난관을 용감히 뚫고나가며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남패자로, 남패자로 힘찬 발걸음을 다그쳤다. 모든 대원들은 사령관동지를 뵙게 될 그날을 눈앞에 그리면서 그이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며 용기를 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만나시면 무엇부터 물어보실가?≫ ≪이제 며칠만 더 가면 그이를 만나뵙게 될가?≫ 대원들은 이렇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며 목적지를 향하여 전진하였다. 2중3중의 적포위망을 뚫고 험산준령을 넘어 외차구까지 이른 우리는 여기에서 적의 대병력과 결사전을 벌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때마침 우리는 이곳에서 남패자로 행군하던 다른 린접부대를 만나서 그와 협동하여 영웅적으로 싸움으로써 수많은 적을 소멸하고 포위망을 뚫고나갈수 있게 되였다. 수십일간의 간고한 행군과 전투끝에 우리는 드디여 1938년 10월하순 한사람의 락오자도 없이 전중대가 몽강현 남패자의 울창한 수림속에 도착하여 사령관동지를 만나뵙게 되는 영광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그처럼 마음속에 흠모하고 그리워하던 그이의 넓고 따뜻한 품에 다시 안긴 나의 기쁨과 감격은 그 무엇에도 비길수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사령관동지께서 우리의 보고를 들으시고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잊을수 없다. 혁명의 승리를 믿고 그처럼 모진 고생을 겪으면서도 끝끝내 이곳까지 찾아온 동무들이야말로 공산주의자들이며 불사조들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필승의 신념으로 살며 싸워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수행하고 다시 그이를 만나뵈옵게 된것은 오직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과 가르치심을 심장에 새기고 온갖 난관과 시련을 극복해나감으로써만 가능하였던것이다. 오늘도 나는 그때처럼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하고 그이께서 가리키시는 길을 따라 전진할 때 그 어떤 어려운 혁명임무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으며 어떤 역경에 처하더라도 수령님의 혁명전사답게 당과 인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싸워나갈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더욱 굳게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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