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내면서

 

장백현 15도구전투

 

                                김 철 만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돌이켜볼 때마다 나는 천재적인 군사전략가이시며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고난의 행군이 끝난 1939년 봄, 주도권을 계속 튼튼히 틀어쥐시고 적의 《토벌》거점들인 장백현 구가점, 15도구, 반절구 등을 련속적으로 들이쳐서 조국진군의 길을 마련하신 일들을 감회깊이 회상하게 된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남패자로부터 백두산일대에로의 100여일간의 행군시기 집중과 분산을 임의로 적용하는 신출귀몰한 전술로 《무적군》이라고 떠벌이던 놈들의 《동기대소탕전》을 여지없이 분쇄하시고 적들의 삼엄한 총검의 숲을 헤치시며 조국의 국경일대에로 진출하시였다.

이것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 날뛰던 일제침략자들에게 실로 커다란 타격이 아닐수 없었다.

수십만의 대군을 장백의 산속깊이까지 끌어넣고 겨울의 악조건을 리용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한다고 발악하던 일제침략자들은 주도권을 잃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강력한 타격앞에서 더는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수많은 두검을 남긴채 제 소굴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기《토벌》에서 참패를 당한 적들이 이처럼 혼란에 빠져 제 소굴에 처박혀있을 때 그 간고한 행군길에서의 피로도 푸실사이 없이 동기작전에서 적들의 발악적인 공세를 격파한 그 기세로 력량을 집중하여 새로운 공격전으로 이행함으로써 일제침략자들에게 정치, 군사적으로 심대한 타격을 주며 조국으로 진군하실 계획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9년 4월, 력사적인 북대정자회의에서 승리적인 고난의 행군로정을 총화하신 후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의 파탄, 그의 대외적지위 약화, 제국주의전반적위기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혁명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시고 새로운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적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말고 적극적인 반격전으로 넘어가 일제침략자들에게 련속 타격을 가하고 조국으로 또다시 진군하여야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방침의 실현을 위하여 사방에 흩어져 제 소굴에 처박혀있는 적들에게 숨돌리사이없이 련속적인 타격을 가하며 조국에로 진군할 준비를 다그치시였다.

그이께서 내놓으신 새로운 전략적방침은 전례없이 포악해진 일제의 파쑈통치와 애국자들에 대한 대검거선풍으로 말미암아 한때 위기에 빠졌던 조선혁명을 구원하고 그것을 다시금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가장 현명한 방침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진군을 앞두고 구가점, 15도구, 반절구 등의 적을 습격소탕할것을 결심하시였다.

그것은 지난 《동기작전》에서 기진맥진하여 제 소굴에 들어박힌 적들을 련속적으로 들이쳐서 일제놈들에게 커다란 공포와 혼란을 조성시키며 인민들에게 희망과 신심을 안겨주는 동시에 조국진군을 할수 있는 만단의 물질적준비를 갖추려는데 목적이 있었다.

사령관동지의 지휘밑에 1939년 4월 12일 구가점전투를 승리적으로 끝마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4월 26일 15도구전투를 진행하였다.

15도구는 압록강을 끼고있는 비교적 큰 집단부락이였다.

큰길을 따라 서북쪽으로 얼마동안 가면 14도구가 있었고 압록강을 건너 서쪽으로는 놈들이 《특별토벌대》를 편성하여 주둔시킨 신갈파가 있으며 동쪽에는 호인, 혜산 등이 나란히 있었다.

적들은 국경일대는 물론 조국과 련결하는데 군사적으로 주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이 15도구를 《토벌》거점의 하나로 정하고 여기에 많은 경찰들과 자위단놈들을 주둔시키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전투에 앞서 15도구거리에 정찰조를 파견하시였다.

정찰자료에 의하면 15도구거리 주위에는 견고한 토성이 쌓여있고 네귀에는 포대가 구축되였으며 동쪽포대와 북쪽포대에는 기관총이 배치되고 성안에는 수백호의 주민집들이 있다는것이였다. 그리고 며칠전에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경찰대와 위만군 장부대 등 적의 대병력이 주둔하고있던 구가점을 들이친 후부터 적들은 해가 떨어지기 바쁘게 성문을 닫고 경계를 강화한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적의 배치정형과 심리상태까지 손금보시듯 꿰뚫어보시고 전투에 경험이 있고 대담하며 행동에서 민활한 동무들을 7련대와 8련대, 경위중대에서 선발하시여 3개의 습격조를 편성하시였다.

이것은 야간에 은밀히 접근하여 정면불의습격과 함께 익측과 후면습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령관동지의 친솔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15도구거리에서 좀 떨어진 산릉선에 도착한것은 밤 9시 30분경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 적정을 확인하신 다음 8련대의 습격조를 먼저 진출시키시고 지휘처를 15도구거리 옆으로 흐르는 강뚝에 정하시였다.

이것은 빨리 변하는 정황속에서도 주도권을 계속 튼튼히 틀어쥐고 전투를 지휘하시기 위해서였다.

사령관동지의 백전백승하는 전법에 의하여 수십, 수백번의 전투에서 승리한 우리들은 이번의 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리라는 신심을 굳게 가지였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8련대습격조에 정문을 열어제낄 임무를 주시였다.

8련대습격조는 은밀히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문은 닫겨있었다. 정문안에 섰던 적보초놈은 습격조가 제놈의 코앞에까지 접근하는것도 모르고있었다.

정문앞에 바싹 다가선 습격조는 만단의 사격준비를 갖추고 성안으로 들어갈 기회를 노리였다.

15도구시가에서는 이따금 개짖는 소리가 날뿐 조용하였다.

얼마후 소를 몰고오는 농민이 나타났다. 습격조원중 한명이 농민에게 접근하여 정문을 열어제끼는데 방조를 줄것을 토의하고 그와 함께 정문으로 갔다.

정문앞에 이른 농민은 보초놈에게 자기 이름을 대며 문을 열어달라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정문보초놈이 총창을 꽂은 총을 쥐고 문앞으로 나오며 《뭘하다가 이제야 오는가?》고 호통을 쳤다.

농민은 《산에 매였던 소가 끈을 끊고 달아난것을 잡아가지고 돌아오다나니 좀 늦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보초놈은 그럴듯 한 농민의 말을 곧이 듣고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습격조원이 농민에게 다음행동을 어떻게 할데 대하여 가만히 귀띔해주는 말소리를 그만 보초놈이 듣고 소리쳤다.

《옆에서 말하는 사람은 누구냐?》

농민이 인차 대답을 하지 못하자 보초놈은 이상한 눈치를 채고 총을 한방 쏘았다. 정황이 나타났다는것을 각 포대에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자 적의 일체화력이 정문으로 쏠리였다.

정문앞에서 만단의 사격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있던 8련대습격조는 집중사격으로 적보초놈을 쏴눕혔다. 그러나 습격조는 더 전진하지 못하고 적들과 맹렬한 화력전을 벌리였다.

8련대습격조의 행동을 주시하고계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후면과 익측으로 다른 습격조를 들여보내여 적병실과 포대를 습격할것을 결심하시였다.

그이께서는 7련대습격조 하여금 성뒤로 돌아가 성을 뛰여넘어 동쪽포대를 까부시고 적병실을 점령하게 하시였고 경위중대성원으로 조직된 습격조에는 익측으로 우회하여 성안으로 들어가 북쪽포대를 깔것을 명령하시였다.

사령관동지의 명령에 따라 두개의 습격조성원들은 각기 지적된 방향으로 진출하였다.

습격조에 망라되지 않은 동무들은 지휘처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7련대장 오흡동지는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 자신이 습격조를 데리고 강변쪽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정문쪽에서는 계속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오중흡동지는 성 가까이에 가서 습격조를 멈춰세우고 앞을 바라보았다. 강변쪽에 쌓은 성은 다른데보다 높게 쌓아서 그냥 뛰여넘어갈수가 없었다.

잠시 성벽을 바라보던 오중흡동지는 모래부리우에 큰 돌로 쌓은 성벽의 밑을 파서 돌을 몇개 뽑아내며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갈 자기의 결심을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직접 습격조원 세동무를 데리고 성밑으로 접근하여갔다. 나머지습격조원들은 우리들의 행동을 화력으로 엄호할 준비를 하였다.

성벽에 다가가 붙은 우리들은 성밑의 땅을 파헤쳤다. 얼마후 우리들의 손끝은 닳아져 피가 났다.

그러나 우리는 15도구의 적을 들이침으로써 일제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고 놈들의 탄압밑에서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며 조국에로 진군할 물질적준비를 갖출데 대한 사령관동지의 전략적방침을 관철하려는 하나의 마음을 안고 파고 또 팠다.

얼마후 우리는 돌 한개를 뽑아내는데 성공하였다. 우리들이 구멍난것을 리용하여 몇개의 돌을 더 뽑아내자 성은 와르르 무너졌다.

오중흡동지는 성안의 동정을 살피였다.

성을 높이 쌓은 적들은 뒤로는 유격대가 들어올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경계를 강화하지 않고있었다.

오중흡동지는 무너진 곳으로 습격조를 데리고 들어갔다. 성안으로 들어간 습격조는 동쪽포대에로 다가갔다.

동쪽포대의 적들은 그때까지도 정문쪽에 대고 기관총을 미친듯이 쏘아대고있었다.

동쪽포대밑에 가붙은 오중흡동지는 불뿜는 기관총을 쏘아보더니 은밀히 포대에 들어가 포대를 점령할 결심을 하고 나와 습격조원 두명을 데리고 포대안으로 들어갔다.

적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정문안으로 유격대를 들여놓지 말라는 경찰서장놈의 《엄명》도 있고 해서 정문쪽에만 주의를 돌리고 총알이 나가는대로 쏘고있었다.

오중흡동지가 정신없이 기관총을 쏘고있는 놈에게로 올라가 가슴에 권총을 들이대고 《우리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똑똑히 보아라!》고 소리치자 기관총을 쏘던 놈은 중풍을 만난것같이 벌벌 떨었다. 련대장의 뒤를 따라 들어간 우리들은 포대안에 있는 놈들의 무기를 빼앗고 모두 사로잡았다.

우리는 총 한방 쏘지 않고 동쪽포대를 점령하고 병실쪽으로 갔다. 이때 익측으로 우회하여 들어간 경위중대습격조는 북문포대에 들어박힌 경찰놈들과 싸움을 계속하고있었다.

적들은 좀처럼 항복하려 하지 않았다. 놈들은 14도구에 요구한 증원부대가 올것을 기다리면서 장시간 버텨볼  심산이였다.

경위중대습격조는 기관총을 적포대에 대고 사격했다. 원래 견고하게 구축된 포대여서 그것으로는 효과를 볼수 없었다.

일시 아군의 공격이 저지되자 적들은 더욱 맹렬한 사격을 가해왔다.

급변하는 정황에 대처하여 부대를 령활하게 지휘하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대담하고 결단성있는 총공격으로 이전하여 전투의 판국을 결정적으로 전환시킬 결심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나팔수에게 돌격나팔을 불것을 지시하시였다. 류창한 나팔소리가 15도구거리에 울려퍼졌다.

지휘처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그이의 명령을 기다리던 동무들은 8련대습격조와 함께 단숨에 정문을 지나 검질기게 발악하는 북쪽포대에로 함성을 울리면서 육박해들어갔다.

부대의 총공격이 시작되자 적들은 더욱 필사적으로 발악하여나섰다.

적들의 어떠한 저항도 사령관동지의 명령을 받고 돌격하는 유격대원들의 전진을 가로막을수는 없었다.

적들은 돌격나팔을 분 곳이 지휘처라는것을 알아차리고 그쪽에 대고 맹사격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그이의 신변이 몹시 걱정되였다.

유격대원들에게 있어서 조선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사령관동지를 보위하는것은 첫째가는 혁명임무였다. 그러니만큼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지휘처쪽으로 적의 기관총탄이 집중되는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은 미여지는것만 같았다. 우리는 한시바삐 그 증오스러운 포대를 까부시는것이 곧 사령부를 믿음직하게 보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한치한치 앞으로 기여나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강뚝에 서시여 계속 정황을 살피시였다.

적의 기관총탄은 강뚝 여기저기에 날아와 들이박혔다.

사령관동지의 신변이 위급하였다. 옆에서 사령관동지를 호위하고있던 리권행동무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이께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 위험하십니다. 자리를 옮셔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전부대의 공격을 한눈에 장악할수 있는 그자리를 뜨려고 하시지 않았다.

사령관동지의 품에서 자라 그이의 탁월한 령도를 심장으로 받들고 나감으로써만 조선혁명의 승리를 달성할수 있다는것을 깊이 확신하고있던 리권행동무는 한순간도 그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적탄이 계속 날아오는 속에서 한몸의 위험은 생각지 않으시고 최후단계의 전투를 지휘하시는 사령관동지를 바라보며 그는 마음을 죄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짓밟힌 조국, 노예화된 3천만 인민을 해방하기 위하여 항상 싸움의 진두에 서시여 부대를 지휘하고계시지 않는가.

우리는 조선혁명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혁명을 승리의 한길로 이끌고나가시는 사령관동지를 보위해야 한다.

사령관동지를 위해서라면 나의 청춘도 생명도 다 바쳐 싸우리라.)

적의 기관총탄은 계속 그이께서 서계시는 주변에 집중되여 마구 날아와 박혔다. 1분 1초도 지체할수 없는 순간이였다.

리권행동무는 《사령관동지!》하며 달려나가 그이를 막아나섰다.

그 순간 리권행동무는 앞으로 쓰러졌다. 그는 날아든 적탄에 중상을 당했던것이다.

언제나 대원들을 친어버이심정으로 아끼고 보살피시는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긴박한 정황속에서도 쓰러진 리권행동무를 그러안으시고 가슴아파하시면서 그를 빨리 안전한 곳으로 후송하도록 지시하시고는 계속 전투를 지휘하시였다.

그것을 보는 대원들의 가슴에서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싸움은 계속되였다. 포대밖으로 나와서 발악하던 놈들은 거의 쓰러졌으나 포대안에 들어박힌 놈들은 계속 기관총을 쏘아댔다.

8련대습격조와 경위중대습격조, 습격조에 망라되지 않았던 동무들까지 모두가 북쪽포대를 3면으로 포위하여 들어갔다. 최후돌격전에 들어선 아군의 함성소리, 기관총소리, 사방에서 쓰러지는 적들의 비명, 이 모든것이 15도구거리를 들었다놓는듯 하였다.

오중흡동지가 인솔한 7련대습격조가 적의 병실을 점령하고 북쪽포대에로 갔을 때는 이미 북쪽포대도 점령되여있었다.

오중흡동지는 습격조를 데리고 되돌아서 사령관동지께로 숨가삐 달려갔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사하신지)

우리는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령관동지께서 계시는 지휘처쪽으로 달려갔다. 맨 앞에서 달리던 오중흡동지는 사령부 전령병에게서 사령관동지께서 무사하시다는 말을 듣자 그를 덥석 그러안고 기뻐하였다.

어찌 이것이 오중흡동지 혼자만의 심정이였겠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모두의 심정이였다.

전령병동무는 자기를 둘러싼 우리들을 한번 둘러보고나서 리권행동무가 사령관동지의 신변이 위급한 순간에 자기 몸으로 그이를 막아선데 대하여 감격에 차서 말해주었다.

우리들은 한몸바쳐 사령관동지의 안전을 보장한 리권행동무의 무한한 충실성에 몹시 감동되였으며 그의 모범을 본받아 그 어떤 역경속에서라도 조선혁명의 사령부를 목숨으로 보위하리라는 결의를 다시금 굳게 다지였다.

15도구전투는  승리적으로 끝났다. 15도구인민들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달려나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손을 높이 드시여 답례하시였다.

15도구전투에서의 빛나는 승리는 사령관동지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령활한 령군술, 완강한 혁명적전개력을 다시금 시위하였다.

그이께서 적의 배치상태와 심리상태까지 손금보듯이 꿰뚫으시고 전투발전을 과학적으로 예견하시면서 그에 적응하게 전투서렬을 편셩하시였고 몸소 대오의 진두에서 조성되는 정황에 대처하여 전투를 령활하게 조직지휘하심으로써 견고한 포대에 의거하여 발악적으로 저항하는 적을 섬멸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북대정자회의후 사령관동지께서 친히 조직전개하신 승리적인 춘기공세는 군사, 정치적으로 거대한 의의를 가지였다.

구가점, 15도구, 반절구전투승리를 통하여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일제침략자들에게 만회할수 없는 심대한 타격을 주고 조선인민혁명군의 전투적위력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그리하여 1937년 가을부터 1938년에 걸쳐 일제의 포악한 파쑈적탄압으로 인하여 파괴되고 위축되였던 혁명조직들에 생기를 불어넣었고 인민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더욱 굳게 안겨주었다.

뿐만아니라 대륙침략에 피눈이 되여 날뛰던 일제침략자들의 뒤통수를 련속적으로 후려갈김으로써 린접국가인민들의 정의의 투쟁을 무장으로 지원한데도 의의가 있었다.

우리는 조국으로 진군할수 있는 만단의 물질적준비를 갖추고 우리 인민에게 광복의 서광을 하루빨리 비쳐줄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을 실현하기 위하여 이해 5월에 조국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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