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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을 혁명위업에 바치여
류 경 희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정치사상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인민들로 하여금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자각성을 높이도록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누구나 다 자기가 주인이라는것을 알 때에는 열성을 발휘하는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혁명활동을 할 때 돈을 주고 시켜서야 누가 그런 일을 하였겠습니까. 혁명을 해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뿐아니라 조국을 구원할수 있다는것을 자각하였기때문에 우리는 잠도 자지 않고 배고픈것도 잊어버리고 투쟁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교시를 심오히 연구하느라면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체험한 잊을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회상하게 된다. 특히 내가 1934년 봄부터 출판소에서 사업하던 때의 일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출판소는 요하현 쓰허정자 우인발골짜기에 자리잡고있었는데 그 성원은 김택동무를 책임자로 하여 모두 3명이였다. 출판소에서는 유격대는 물론 요하, 밀산, 보청, 무원, 호림현 등지에 분포되여있는 혁명조직들과 광범한 군중들을 대상으로 하여 소책자, 격문, 선동문, 구호 등을 발행하였다. 이렇게 발행한 출판물들은 우리 유격대들과 광범한 인민대중속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혁명로선과 방침들을 해설선전하며 그 관철에로 그들을 조직동원함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때 우리의 출판사업은 거듭되는 난관과의 투쟁속에서 진행되였다. 우선 출판소의 설비가 출판물의 수요에 비하여 너무나도 빈약하였고 출판소성원들도 매우 적었다. 등사기는 낡아서 자주 고장이 났으며 강필 하나 온전한것이 없었다. 여기에다 등사원지와 등사잉크, 종이 등 물자가 늘 모자랐다. 인쇄자재를 구하는 일은 말그대로 피어린 투쟁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을 해야 자신을 포함한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수 있으며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는 일념으로 그리고 출판소의 주인은 우리들자신이라는 자각으로 하여 만난을 극복하고 자체의 힘으로 제기되는 모든 일을 해결하여나갔다. 나는 이때 자기의 모든것을 혁명위업실현에 바쳐나갈 때 실로 극복 못할 난관이란 없으며 못해낼 일이란 없다는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등사원지가 떨어졌을 때의 일이였다. 우리의 유일한 출판설비는 등사기였다. 그런데 등사원지가 떨어졌으니 출판물을 찍어낼수가 없었다. 당시 일제는 우리 혁명조직이나 유격대에 등사원지는 고사하고 종이 한장 들어가지 못하게 통제를 강화하고있었다. 이러한 형편에서 갑자기 등사원지를 구해올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우리는 등사원지를 누가 구해다줄 때까지 기다리고 앉아있을수도 없었다. 우리는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서라도 혁명이 준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여야만 하였다. (난관앞에 굴복하여 혁명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서야 어찌 자기의 모든것을 혁명에 바쳐 싸우는 혁명가라고 말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한자리에 모여앉아 해결방도를 진지하게 토론하였다. 토론에서는 고무도장 새기듯 넙적한 고무판에 글자를 새겨서 찍어보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고무판도 적통치구역에 들어가야 구해올수 있으므로 쉽게 해결할수는 없었다. 될수 있는 한 물자를 자체로 해결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야만 하였다. 이때 출판소의 책임자인 김택동무는 손재간이 좀 있는 성배동무에게 고무판대신에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 찍어낼수는 없겠는가 하는 의견을 말했다. 성배동무는 이미 돗바늘을 리용하여 등사원지에 글을 쓰는 강필을 만든 경험도 있었고 목공재간도 좀 가지고있었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있던 성배동무는 무릎을 탁 치며 능히 할수 있다고 힘있게 대답하는것이였다. 《거 참 좋겠소. 목판감으로는 피나무가 좋을게요. 뒤산에 피나무가 많으니 자재가 모자랄 걱정도 없고 참 좋은 생각이요. 자 어서 해봅시다.》 그는 소뿔은 단김에 뽑아야 한다고 하면서 당장 해보자고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우리가 한 목판인쇄는 바로 이렇게 시작되였다. 우리는 뒤산에 올라가 피나무를 베여다 자르고 켜서 대패질까지 했다. 그리고 목판이 트고 휘여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모서리에 종이를 발라 말리였다. 목판은 이렇게 해결하였으나 거기에 글자를 새길 도장칼이 없었다. 목판인쇄를 처음 해보는것만큼 모든 공정이 생소하였으며 하나에서 열까지 필요한 모든것을 다 자체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였다. 출판소성원들은 도장칼도 자체의 힘으로 만들것을 결심하고 달라붙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장칼을 만들만 한 쇠쪼각 하나 없었고 더구나 그것을 만들수 있는 공구 하나 온전한것이 없었다. 말그대로 빈손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일을 서로 나누어 맡아하기로 했다. 쇠쪼각을 구해올것을 책임진 성배동무는 야밤을 타서 농촌부락으로 내려갔고 쇠를 달굴것을 책임진 김택동무와 나는 참나무불을 피워서 숯을 구워냈다. 이튿날 우리는 성배동무가 구해온 쇠쪼각을 숯불에 달궈 도장칼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풍구가 없어서 바람을 불어넣어주지 못하니 불길이 약해서 쇠가 잘 달지 않았다. 나는 풍구대신 숯불에 부채질도 하고 입바람도 불어서 불길을 일으키기에 무진 애를 썼다. 숯불을 한참 불고나면 머리가 뗑하고 어지럼증이 났다. 그러나 나는 머리를 싸매고 부채질과 입바람으로 숯불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렇게 아무리 애를 써도 불길이 약하여 쇠가 잘 달지 않았다. 우리는 악전고투끝에 칼끝이 서로 다른 도장칼 세개를 만들었다. 도장칼이 되였을 때 우리의 기쁨은 참으로 컸다. 그런데 도장칼로 나무판에 글자를 새겨보던 김택동무의 얼굴에는 그놈이 지기 시작하였다. 쇠가 물려서 칼끝이 인차 문질러지고말았던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야장간에서 흔히 하는 식으로 칼끝을 불에 달구어 인차 물에 담그어냈다. 그렇게 하면 쇠가 의례히 굳어지려니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몇번 반복하여 해보았으나 역시 칼끝이 물렀다. 실패가 거듭되였으나 우리는 물러서지도 않았고 또 물러설수도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것을 끝까지 해내야만 하였다. 우리는 또 서로 토론하고 실험해보면서 쇠의 강도를 높일 방도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칼끝을 달구어서는 두드리고 또 달구어서는 두드리고 물에 담그고 하기를 여러차례 반복해서야 끝이 굳은 도장칼을 만들어낼수 있었다. 다 해놓고보니 별것이 아니였지만 성공하기까지는 실로 악전고투를 계속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는 쇠에 대한 일정한 지식과 숙련이 요구되는 이 기술문제를 불굴의 의지와 창조적열의로 해결해냈다. 우리에게 도장칼을 자신의 힘으로 끝까지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인다운 립장과 혁명에 모든것을 바치려는 강의한 혁명정신이 없었더라면 빈주먹으로 그것들을 만들어낼수는 도저히 없었을것이다. 도장칼을 마련하자 우리는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에 착수하였다. 서로 도장칼을 손에 들고 나무판에 한자 두자 파내는 훈련을 했다. 칼끝에 힘을 주어야 하는것만큼 칼에 대이는 손끝이 부르트고 피가 졌다. 그래도 우리는 천을 손끝에 감고 련습을 계속하였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우리는 누구나 다 글자를 새기는데 익숙해졌다. 사실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주관적욕망과는 달리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였다. 의자도 없이 올방자를 틀고앉아 무릎우에 목판을 놓고 거기에다 글자를 새기는 일은 하루동안만 해도 다리가 쏘고 허리가 아프고 팔이 떨어지는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출판물이 광범한 군중속에 들어가게 하기 위하여 며칠이고 밤을 지새며 앉은 자리에서 글자를 새겼다. 지어 식사하는 시간마저 짜내려고 통강냉이를 삶아다가 옆에 놓고 한손으로 집어먹으면서 일을 계속하였다.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은 주로 김택동무가 하였고 나는 그를 도와주군 하였다. 이렇게 글자를 새긴 목판에다 로라로써 등사잉크나 먹을 칠하고 종이를 놓고 다른 로라로 밀어보았다. 그러니 훌륭하게 인쇄가 되였다. 16절지 크기의 목판 한장에 4호활자만 한 작은 글자로 보통 100~200자, 지어 300자까지 새길수 있었다. 구호 같은것은 큰 글자 몇개만 새기면 되였다. 이때로부터 우리는 선동문이나 구호 같은것은 주로 목판으로 찍어냈다. 그리고 등사를 할수 없을 때나 등사기의 능력이 모자랄 때에는 목판으로 소책자도 찍어냈다. 참으로 목판인쇄의 성공은 오직 혁명의 위업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싸운 우리의 피어린 투쟁의 열매였다. 이름 두석자의 도장 하나 새기는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굳은 나무판에 작은 글자를 가득 새기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였겠는가.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손끝에서 피가 흘러도 도장칼을 놓지 않고 목판에 글자를 새기던 김택동무의 모습이 삼삼히 떠오른다. 그는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오직 혁명의 리익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쳐 싸운 참된 혁명전사였다. 오래동안 목판에 글자를 새겨온 그는 나중에는 아래다리가 약간 휘여들어 걸음걸이가 바르지 못하게 되였다. 그것은 그가 3년나마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양으로 같은 일을 반복한데다가 자주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지 않으면 안되였고 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였기때문이였다. 우리는 그의 건강이 념려되여 몸을 돌보면서 일하라고 한두번만 권고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군 하였다. 《우리가 쉬는 시간만큼 출판물이 광범한 군중들속에 늦게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혁명투쟁에 그만큼 지장을 주게 될게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하는것을 그대로 방임해둘수는 없었다. 하루는 성배동무가 그에게 《정 그러다가 병신이라도 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혁명을 하루이틀만 하다가 말겠습니까.》고 하면서 충고하였다. 그래도 언제나 락천적인 김택동무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설마 병신까지야 되겠습니까. 설사 병신이 된다 해도 혁명에 바친 몸이 아닙니까. 혁명과업을 앞에 두고 몸을 아껴서야 어떻게 혁명에 몸을 바쳤다고 말할수 있겠습니까. 나는 몸보다 혁명과업을 다하지 못하는것 같아서 걱정이 될뿐입니다.》 이 말에 감동된 우리는 그에게 더는 휴식을 권고하지 못하였으며 그처럼 혁명에 몸바쳐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다졌다. 모든것을 혁명위업에 바쳐 싸움으로써만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하여 우리는 겹쌓이는 난관을 물리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으며 맡겨진 혁명임무를 끝까지 수행해나갈수 있었던것이다. 우리는 출판물을 량적으로 제 기일내에 보장하는것으로 결코 만족할수는 없었다. 같은 책 하나, 같은 격문 한장을 찍어내도 될수 있으면 질적으로 더 좋게 만들어냈으며 혁명에 리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힘든 일도 궂은 일도 가리지 않았다. 구국군들과의 반일련합전선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반일부대들에 파견되는 정치공작원들에게 주어보낼 소책자를 찍을 때에 있은 일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반일부대들과의 련합전선사업을 강화하는것은 일제의 력량을 약화시키고 혁명력량을 강화함에 있어서 매우 큰 의의가 있었다. 그러므로 유격대에서 그들에게 보내는 출판물을 만들어내는것은 매우 중요한 사업이였다. 우리는 반일부대들에 소책자를 하루라도 더 빨리 만들어보내기 위하여 며칠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찍어내고있었다. 여기에 식량마저 떨어졌다. 나는 짬짬이 뒤산에 올라가서 고사리며 닥지나물 등을 뜯어다 나물죽을 쑤어서는 끼니를 에우도록 하였다. 그런데 맨 풀만 먹고 며칠째 힘든 일을 계속하다나니 허기증이 나서 더는 그대로 견디여낼수 없었다. 나는 할수없이 비상용으로 남겨두었던 한줌밖에 안되는 밀가루를 꺼냈다. 그것을 산에서 뜯어온 나물과 섞어서 죽을 쑤려고 했다. 그때 김택동무가 밀가루주머니를 털고있는 나를 놀라는 기색으로 바라보다가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아니, 그것이 밀가루가 아니요?!》 나는 요긴할 때 쓰려고 동무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상용으로 밀가루를 남겨두었던것이라고 그에게 대답하였다. 그는 나에게 또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마침 잘되였소. 그것으로 풀을 쑵시다.》 《예?!》 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얼마 되지 않은 밀가루였지만 낟알을 구경한지 며칠 잘되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것은 참으로 귀중한 량식이였다. 그런데 이 밀가루로 풀을 쑤자고 하니 어떻게 리해해야 할지 전혀 알수 없었다. 《설마 우리가 굶어죽기야 하겠소. 하루이틀만 더 참으면 이 소책자를 가지러 올 동무들이 식량을 가지고 올텐데… 그래서 풀을 쑤어 이 소책자에 표지를 씌우자는거요. 동무의 생각은 어떻소?》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나에게 이렇게 묻는것이였다. 그의 혁명에 대한 충실성앞에 나는 머리가 숙어졌다. 성배동무도 그의 의견에 감동되였던지 동의하였다. 반일부대들에 나갈 이 소책자들에 표지를 잘해 붙이는것은 혁명에 보다 유익한 일이였다. 소책자의 혁명적내용이 미치게 될 영향은 말할것도 없는 일이지만 일제를 반대하여 간고한 투쟁을 하면서도 자체로 이렇게 훌륭한 책을 만들어내는 우리 항일유격대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보다 새로와질것은 명백한 일이였다. 바로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김택동무의 의견대로 하기로 했다. 그러나 작식을 책임지고있는 나로서는 또한 동지들의 건강과 생명에 대하여서도 응당 생각해야 하였다. 나는 여러가지로 생각하던 끝에 얼마 안되는 밀가루지만 그것을 절반 갈라서 풀을 쑤고 나머지절반은 산나물과 섞어서 죽을 쑤어 동무들의 식사를 보장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다른 소책자들보다 특별히 잘 만든 소책자를 반일부대들에 보낼수 있었다. 후에 통신원들을 통하여 알아본데 의하면 우리가 정성들여 만든 그 소책자들은 반일부대병사들속에서 실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들을 혁명의 편에 묶어세우는데 있어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참으로 그때 우리는 산속에서 거의 맨주먹으로 혁명이 요구하는 출판물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교시하신바와 같이 우리가 혁명을 해야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뿐만아니라 조국을 해방할수 있다는 혁명사상을 견지하고 싸웠기때문에 가능하였던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혁명정신만 가지면 모든 곤난을 극복하고 오직 조국의 해방과 혁명승리를 위한 투쟁에 자기의 모든것을 바쳐 줄기차게 싸울수 있다는것을 실지체험을 통하여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오늘 우리 전체 인민들은 항일유격대원들이 그러하였던것처럼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함으로써 자신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며 모든것을 오직 혁명의 리익에 복종시켜 전진, 전진, 투쟁 또 전진하는 기세로 계속 힘차게 싸워나가고있다. 이리하여 우리 인민은 조국통일의 혁명적대사변을 앞당기고 혁명의 전국적승리를 반드시 달성하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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